풀씨 빛깔 책읽기

 


  마당 가장자리 조그마한 텃밭에서 스스로 씨를 내어 스스로 자라는 들풀 하나 겨울을 맞이하며 바삭바삭 마른다. 누렇게 시들기 앞서 씨앗을 맺고, 바람이 불 적마다 천천히 씨앗을 퍼뜨린다. 나즈막한 겨울햇살 우리 집 마당으로 스며들 적에 누렇게 말라죽은 풀포기로도 드리운다. 아이들 뛰노는 마당을 바라보며 해바라기를 하다가, 문득 풀씨를 깨닫는다. 너희는 참 고운 빛으로 그 자리에 서는구나. 너희가 높다란 여름햇살 받으며 푸른 잎사귀 뽐낼 적에도 그 자리에 서고, 이렇게 추운 겨울날 나즈막한 햇볕 쬐며 씨앗을 흩뿌릴 적에도 그 자리에 서네. 꽃이고 풀이고 모두, 씨앗 한 알에서 비롯해 새싹 한 줌으로 자라고, 뿌리 하나 내리면서 줄기 씩씩하게 올라, 크고작은 꽃으로 흐드러진 다음 알록달록 저마다 다른 씨앗으로 다시 마무리될 테지. 너희가 우리 식구와 함께 이 시골집에서 살아가니, 나는 자그마한 씨앗부터 새싹과 풀줄기와 잎사귀와 꽃에다가, 마지막 누렇게 시든 몸뚱이에 어리는 빛살까지 누릴 수 있구나. 4345.12.26.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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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Girl 마이걸 1
사하라 미즈 지음 / 시리얼(학산문화사) / 2009년 8월
평점 :
품절


 

만화책 즐겨읽기 202

 


선물, 함께 살고 싶다는 말
― MY GIRL 1
 사하라 미즈 글·그림,서현아 옮김
 시리얼 펴냄,2009.8.25./8000원

 


  예수님나신날을 지나며, 뭔가를 해야 하나 하고 생각하다가 아이들과 면내 가게에 가서 과자 몇 점 사 봅니다. 이것도 아이들한테 선물이라면 선물이 되겠지요. 면내까지 자전거를 함께 타고 달렸으니, 추운 날 자전거수레에서 찬바람 실컷 쐬며 마실하는 일도 선물이라면 선물이 될 테고요. 그러고 보니, 큰아이는 2010년과 2011년 한겨울에도 이 자전거를 탔고, 작은아이는 올해에 처음으로 겨울자전거를 타 보는군요. 큰아이는 추운 날 자전거에 이럭저럭 익숙할 수 있지만, 작은아이는 이 추운 날 자전거 타는 일이 퍽 고되리라 생각합니다. 그래도 달리 말이 없습니다. 다만, 작은아이는 아직 말문이 트지 않아, 추워도 춥다 말을 못하니 말이 없달 텐데, 찬바람 싱싱 불며 작은아이 손이 발갛게 얼어도 바깥에서 놀기를 더 좋아해요.


- ‘우편함을 더 이상 보지 않기로 한 것은, 벌써 3년 전이다. 유채꽃이 흐드러지게 핀, 이런 시골 동네로 이사온 의미도, 이제는 잊어버렸다. (2∼3쪽)
- “안 돼. 하고 싶은 말을 안 하면, 우리 엄마처럼 돼!” (26쪽)
- “아까 할미가 괜찮다고 한 것은 그런 뜻이야. 어떤 얼굴을 해도 좋아. 마사무네가 알고 있는 ‘요코 씨’를 저 아이에게 많이 이야기해 주거라. 그리고, 좋은 추억을 잔뜩 만들어 주려무나.” (102∼103쪽)

 


  그나저나, 십이월 이십오일이 예수님이 태어나신 날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사람들이 다 그렇다고 말하니 그러려니 하지만, 또 한겨레가 이날을 기린 지 얼마 안 되었는데에도 온통 이 얘기가 넘치니 그러려니 하는데, 따로 예수님나신날을 기리며 서로 선물을 주고받으려 한다면, 선물이란 무엇이 될는지 궁금합니다.


  착하게 살고, 참답게 살며, 곱게 살아가는 내 모습이 나 스스로 나한테 주는 선물이 된다고 느낍니다. 하늘에서 돈벼락이 떨어진다든지, 내 책이 불티나게 팔린다든지, 내가 집안일에서 홀가분하게 풀려난다든지, 이런저런 일도 선물이라면 선물이 될 수 있을 텐데, 썩 내키지는 않아요. 싫지는 않으나 굳이 반기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돈벼락보다는 따순 사랑이 즐겁고, 내 책 잘 팔리는 일보다는 사람들 가슴속에 슬기로운 생각씨앗이 드리우는 일이 반가우며, 나 스스로 씩씩하게 집안일 건사하는 삶이 기쁘거든요.


  선물은, 누구나 마음으로만 줄 수 있으리라 느낍니다. 선물은, 누구나 마음으로만 받을 수 있으리라 느낍니다. 물건이나 물질로는 주고받지 못하는 선물이라고 느낍니다. 겉모습이나 껍데기로는 이루지 못하는 선물이라고 느낍니다.


  마음을 빛내는 선물이라고 느낍니다. 내가 아끼거나 좋아하는 사람 마음자리에 푸르고 싱그러운 나무가 자라도록 북돋우는 선물이라고 느낍니다. 나를 아끼거나 좋아하는 사람들이 내 마음밭에 푸른 잎사귀와 고운 꽃봉오리가 흐드러지기를 바라며 생각을 살찌우는 선물이라고 느낍니다.


  때로는 돈 만 원이 선물이 됩니다. 때로는 밥 한 그릇이 선물이 됩니다. 때로는 책 한 권이 선물이 됩니다. 그리고, 웃음 한 자락이 선물이 되고, 따순 말 한 마디가 선물이 돼요.

 


- “어? 혹시 망가졌어?” “실이 끊어졌나 봐.” “그럼 걱정하지 마. 잠시 보여줄래?” “고칠 수 있어?” (23쪽)
- “요 앞에 내가 사는 집이 있어. 지은 지 20년, 역에서 20분, 주위엔 논밭뿐이고, 불편한 곳이지. 몇 번이나 이사 가려고 했지만, 그럴 수 없었어.” (45쪽)


  추운 바람 싱싱 부는 시골길을 아이들과 자전거로 달리다가, 한손을 하늘로 뻗으며 “아, 춥다! 춥구나!” 하고 노래합니다. 차디찬 바람이 불거든요. 추우니까 추운 바람을 신나게 맞이합니다. 추운 바람이 온몸 구석구석 스며듭니다. 자전거마실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니, 손가락이랑 발가락이 굳습니다. 밤새 펴지지 않습니다. 뻣뻣하게 굳은 손발가락에, 등허리와 머리카락까지 굳습니다. 영 풀리지 않습니다.


  네 식구 지내는 고흥 시골집은 다른 마을이나 도시와 견줘 매우 따스합니다. 매우 따스한데에도 겨울에 이만큼이면, 다른 마을이나 도시에서는 겨울자전거를 엄두조차 못 낼는지 몰라요. 그런데, 아무리 춥다 하더라도 타고 보면 다 탈 수 있어요. 중국 연길시는 한국보다 훨씬 추워, 영 도 밑으로 삼사십 도는 가볍게 내려가는데, 그곳 사람들은 한겨울 얼음추위에도 자전거를 타는걸요. 짐자전거에 짐을 가득 싣고 달리는걸요.


  즐기려 할 적에는 즐기는 삶이 되고, 누리려 할 적에는 누리는 삶이 되는구나 싶어요. 그러니까, 나 스스로 고되거나 힘들다 여기면, 내 삶은 그야말로 고되거나 힘듭니다. 나 스스로 환하거나 빛난다 여기면, 내 삶은 더없이 환하거나 빛나요.


  선물은 내가 남한테 주거나 남이 나한테 주는듯 보이지만, 곰곰이 따지면, 모든 선물은 내가 나한테 줄 뿐입니다. 당신은 당신한테만 선물을 줄 수 있고, 나는 나한테만 선물을 줄 수 있어요. 내가 당신한테 보내는 마음이란, 누구보다 내가 나한테 보내는 마음이에요. 당신이 나한테 띄우는 마음 또한, 누구보다 당신이 당신 스스로한테 띄우는 마음입니다.


  우리들이 이 지구별에서 선물을 꾸려 선물하는 까닭은, ‘남을 돕’거나 ‘남을 좋아하’기 때문이 아니에요. 바로 나를 아끼고, 나를 사랑하며, 나를 좋아하기 때문이에요. 스스로 내 삶을 살찌우면, 시나브로 내 이웃 삶도 살찌우는 일이 되거든요. 스스로 내 넋을 북돋우면, 저절로 내 이웃 넋도 북돋우는 빛이 돼요.

 


- “코, 코하루는, 엄마를 좋아하는 사람이랑 같이 살고 싶어.” (46쪽)
- ‘코하루와 함께 집에 돌아가서, 잠들 때까지, 오늘 있었던 일을 하나라도 많이 이야기한다. 그것이 나의 새로운, 하루 생활이다.’ (68쪽)
- “부부라곤 해도 어차피 남남이니, 언제나 마음이 맞을 수는 없죠. 말다툼은 접어두고 서로를 조금이라도 이해하려 노력하지 않으면 상처만 주게 될 뿐입니다.” (143쪽)


  사하라 미즈 님 만화책 《MY GIRL》(시리얼,2009) 첫째 권을 읽으며 찬찬히 헤아립니다. 만화책 《MY GIRL》에 나오는 풋내기 아버지와 어린 딸아이는 언제나 서로가 서로한테 스스로 선물을 하는 나날이었어요. 그리운 이한테 띄우던 글월 하나는, 그리운 이를 마음 깊이 떠올리는 생각 하나는, 그리운 이녁한테 부치는 선물이기 앞서, 이녁 스스로 보듬는 선물입니다. 오래오래 차근차근 스스로 살가이 선물하는 삶이었기에, 그리운 이들은 언제가 되든 만납니다. 몇 해가 흐르건, 그리운 이들은 서로 아끼는 넋이 한 자리에 모여 환하게 웃을 수 있습니다.


  내가 당신한테 무엇을 선물할 때에는, 이 선물을 받을 당신이 기뻐하기를 바라지 않아요. 이 선물을 꾸리는 내가 즐거우며 기쁩니다. 선물을 받는 당신은, 어 하고 놀라다가는, 마음속에 곱게 피어나는 빛줄기가 떠오르며, 이 빛줄기를 둘레를 밝혀요.

 


- “그, 그치만 혹시 매일매일 보고 싶으면? 그럼 얘기가 다 없어지잖아?” “하하, 없어지지 않아.” “그, 그치만, 자꾸자꾸 보고 싶으면?” “그럼, 자꾸자꾸 이야기하면 되지.” (109쪽)
- “엄마가 말하는 ‘행복’이 뭔데요?” “뭐?” “대학을 졸업하고 회사에 취직하고, 먹을 만큼 나이를 먹으면 결혼하고 가정을 이루는 거? 일반적인 길에서 벗어나면 무조건 불행하다고 보는 시각은, 틀렸다고 생각해요.” (165쪽)


  풀잎 하나를 똑 따서 선물을 할 수 있습니다. 종이 한 장을 살살 오려서 선물을 할 수 있습니다. 연필 한 자루 바지런히 놀리며 선물을 할 수 있습니다.


  선물을 백화점에서 산다고 못박지 말아요. 전화 한 통 거는 손가락질이 바로 선물이에요. 선물을 값진 물건으로 따지지 말아요. 맑은 눈빛으로 싱그러이 웃으며 속삭이는 노래 한 가락이 곧 선물이에요.


  선물은 마음밥이에요. 마음을 살찌우는 밥이 선물이에요. 산타 할아버지가 집집마다 돌며 선물을 돌린다지요? 그래, 나는 이 말을 믿습니다. 산타 할아버지는 참말 모든 집에 선물을 돌려요. 무슨 선물을 돌리느냐고요? ‘사랑’과 ‘꿈’과 ‘믿음’이라는 선물을 그윽히 돌려요.


- “올해 선물이라면 벌써 산타 할아버지가 줬어요.” “어머?” “마사무네 아빠요.” (186쪽)


  내 마음밭으로 스며드는 선물을 떠올립니다. 웃음 한 자락, 노래 한 가락, 말 한 마디, 생각씨앗 한 톨, 꿈 한 가지, 이런 선물 저런 선물 예쁘게 떠올립니다. 4345.12.26.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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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책 읽기모임 (도서관일기 2012.12.25.)
 ―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서재도서관 함께살기’

 


  인천에서 사진책도서관을 꾸리며 하고팠던 ‘사진책 읽기모임’을 아직 못 한다. 집살림과 아이돌보기를 나란히 하면서 사진책도서관까지 지키기란 만만하지 않다. 큰아이가 제법 자라 무언가 해 보려 할 즈음 작은아이가 태어났고, 작은아이가 돌을 지날 무렵 고흥으로 살림살이와 책을 옮기느라, 책을 싸고 풀고 갈무리하는 데에 긴 나날을 보냈다. 이제 작은아이가 제법 씩씩하게 놀 수 있구나 싶으니, 그동안 미룬 ‘사진책 읽기모임’을 고흥에서 해 볼까 하고 생각한다. 한 달에 한 차례 주말을 잡아서 하면 좋으리라 생각한다. ‘읽기모임’을 하는 자리에는 우리 두 아이는 도서관 골마루를 마음껏 뛰고 놀아도 된다. 어른들(또는 푸름이들)은 즐겁게 사진을 보며 놀고, 때로는 우리 아이들 노는 모습을 사진으로도 찍고, 아이들은 널따란 골마루와 교실에서 저희끼리 뛰고 놀면 되리라 생각한다.


  다른 읽기모임은 저마다 책을 먼저 사서 읽은 다음 느낌을 나누는 자리라면, 사진책도서관 읽기모임은 이곳에 모여서 사진책 하나를 함께 펼쳐서 함께 읽고 함께 느끼는 자리라 하겠다. 왜냐하면, 한국 여느 새책방에서 장만할 수 있는 사진책도 있지만, 외국 새책방에서조차 장만하기 어려운 사진책이 많다. 또, 이런저런 이름난 사람들 작품만 따지기보다, 삶을 사랑스레 담은 사진책을 돌아본다면, 사진을 읽거나 느끼거나 찍는 길에 한결 이바지할 만하리라 본다. 새해 1월부터 할 수 있을까 모르겠는데, 새해에는 씩씩하게 읽기모임을 꾸리자고 생각한다. 도서관 들어오는 어귀에 나무푯말 하나 세우면 좋겠지.


  사진엽서를 만들어 사람들한테 띄워야지. 도서관 이야기책 《삶말》과 달리 ‘읽기모임 이야기책’을 엮을 수 있겠지. 이렇게 하자면 돈이 더 들 테고, 살림돈이 줄는지 모르지만, 뜻있는 이들이 함께하면서 넉넉히 서로 돕고 즐기며 누릴 수 있으리라 믿는다.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을 하다가, 아이들과 함께 도서관을 들른다. 인천으로 부칠 책을 꾸리는 동안 두 아이는 여느 때와 같이 도서관 곳곳을 뛰고 기면서 논다. 셋째 칸에 있는 사다리는 두 아이 담타기 놀이기구가 된다. 지난달까지, 작은아이는 이 사다리에 올라갈 줄만 알고 내려올 줄은 모르더니, 오늘은 혼자 꼭대기까지 올라갔다가 혼자 다부지게 내려온다. 대단한데. 너도 참 기운차게 크는구나. 앞으로 이 옛학교 운동장까지 우리가 쓸 수 있으면, 너희는 훨씬 기운차게 뛰놀 수 있겠지. 그때에는 너희뿐 아니라, 이곳 고흥 시골아이나 이웃 도시아이도 우리 도서관으로 찾아와서 가슴속에 묻은 ‘뛰놀고픈 생각’을 흐드러지게 풀어놓을 수 있겠지. (ㅎㄲㅅㄱ)

 


* 도서관 지킴이 되기 : 우체국 012625-02-025891 최종규 *
* 도서관 지킴이 되어 주는 분들은 쪽글로 주소를 알려주셔요 (011.341.71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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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쪽지 2012.12.25.
 : 길죽음

 


- 작은아이가 낮잠을 건너뛰며 놀려고 한다. 낮잠 달게 자며 노는 버릇을 들여야 할 텐데 생각하면서 자전거마실을 하기로 한다. 꼭 낮잠을 자야 하지는 않지만, 아이들이 낮잠을 건너뛴 채 개구지게 놀려 하면, 자꾸 칭얼거리거나 떼쓰는 일이 생긴다. 한두 시간쯤 달게 자고 일어나면 찌뿌둥한 기운이 사라지며 한결 즐거이 놀 텐데, 큰아이에 이어 작은아이까지 낮잠 없이 놀려 하니, 곁에서 지켜보는 나도 퍽 힘들다.

 

- 어제오늘 바람이 퍽 차갑기에 아이들 낄 장갑을 챙긴다. 서재도서관에 갈 때에는 그냥 가고, 도서관에서 나와 면내에 갈 적에는 장갑을 끼우기로 한다. 두 아이를 수레에 태우고 대문을 나서는데, 어제처럼 바람 많이 불고 바람이 퍽 차다. 그래도, 우리 식구가 충북 음성에 살 적에는 눈밭을 헤치며 자전거를 탄 적 있는걸. 훨씬 추운 날씨에도 큰아이는 씩씩하게 자전거수레에서 추위와 찬바람 맞으며 달린 적 있는걸.

 

- 서재도서관에 짐을 갖다 놓으면서 책 두 권 챙긴다. 예전에 읽은 이오덕 님 《우리 글 바로쓰기》 1권과 《우리 문장 쓰기》를 살핀다. 새해에 새롭게 마무리할 ‘우리 말글 이야기’ 글꾸러미에 이오덕 님 ‘우리 글 바로쓰기’ 이야기를 한 꼭지 써야겠다고 생각하며 곰곰이 돌아본다. 나는 이 책들이 어렵다 생각한 적 없고, 이 책들을 읽으며 머리가 맑게 트인다고 느꼈는데, 뜻밖에 퍽 많은 이들은 이 책이 무슨 이야기를 들려주는지 좀처럼 못 알아채는구나 싶다. 왜 그럴까. 찬찬히 읽고, 거듭 읽으며, 생각하며 읽는다면, 못 알아챌 이야기는 없다. 한국사람으로서 한국이웃이랑 나눌 한국말을 생각하며 읽으면, 내 말과 글을 어떻게 건사할 때에 스스로 아름다이 빛나는가를 또렷하게 깨닫도록 즐거이 이끌어 준다. 이를테면 “우리 말의 특성을 없이보고 남의 나라 말에 따라가려고 할 때 우리 말은 죽는다. 더구나 입으로 하는 말이 그렇다(131쪽).” 같은 이야기는 꾸밈없이 생각하면 아주 쉽다. 나도 옆지기도 내 이웃도, 학교에서 한국말을 한국말답게 배운 적이 없다. 우리 둘레에서 어른이라 하는 이들 또한 아이들 앞에서 한국말을 한국말답게 들려주는 일이 매우 드물다. 왜냐하면, 학교교육은 제도권교육이면서 입시교육에 얽매이니까, 한국말을 가르치지 않고 입시문제만 가르친다. 한편, 표준말과 띄어쓰기에 얽매이면서, 삶말과 고장말을 북돋우거나 살찌우지 않는다. “흔히 쓰는 쉬운 입말이나, 좀 논리를 세워서 쓰는 글이라도 입말체로 쉽게 써도 될 것을 공연히 남의 나라 말 번역한 글같이 함부로 ‘의’를 넣어 쓰는 버릇은 우리 말을 죽이는 글쓰기라 아니할 수 없다(132쪽).” 같은 이야기도 매우 쉽다. 수수하게 읽으며 수수하게 받아들이면 된다. 내가 쓰는 글이랑 내가 하는 말이 어떠한가 하고 곰곰이 생각할 수 있으면, 이 말뜻을 환하게 짚을 수 있다.

 

- 큰아이는 어느새 제 장갑을 낀다. 큰아이는 노란 벙어리장갑인데 장갑이 예쁘다고 한눈에 느낀 듯하다. 아버지가 끼워 주지 않아도 스스로 끼고 논다. 작은아이는 혼자 장갑을 끼지 못하니, 아버지가 한 짝씩 꾹꾹 눌러 끼운다.

 

- 바람이 차다. 큰아이가 면내 가는 길에 노래를 두 가락 뽑다가는 이내 입을 다문다. 노래를 부르며 입구멍으로 찬바람 들어가는 줄 느꼈겠지. 아뭇소리 않고 이불과 내 두꺼운 겉옷을 뒤집어쓴다.

 

- 면소재지를 찍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맞바람. 추운 겨울 맞바람은 자전거가 삐걱거리게까지 한다. 체인이 한 번 풀려 넘어질 뻔하다. 가까스로 자전거를 세우는데, 내 오른정강이가 발판에 찍힌다. 겨울이라 긴바지 입었기에 덜 다쳤는데, 정강이에서 피가 흐르는구나 하고 느낀다. 수레에 앉은 큰아이가 몹시 추워 한다. 수레 덮개를 내린다. 이러면 한결 낫지? 배추밭 옆을 달리고, 빈논 옆을 달린다. 등판에 땀이 흥건히 고일 무렵 마을 어귀에 닿는다. 온몸이 꽁꽁 얼면서 땀이 흐른다. 집으로 꺾는 고샅길 한쪽에 마을고양이 한 마리 길게 뻗은 모습 본다. 아, 죽었구나. 차에 치여 죽었네. 내가 마실 나올 적에는 못 봤는데, 그새 차에 치여 죽었구나. 이 마을에 차 있는 집은 이장님 댁뿐인데. 그러나, 이장님은 이쪽 길로 안 다니잖아. 다른 마을 사람이 우리 마을로 차를 몰고 와서는 들이받고 그냥 갔나 보다. 고양이는 차바퀴에 한 차례 밟히며 꽥 하고 외마디소리를 냈을 텐데, 어쩌면 그냥 갈 수 있을까. 사람이 아닌 짐승이니까 그냥 가도 될까. 집에서 키우는 고양이 아닌 들에서 홀로 살아가는 고양이라서 치여 죽이건 말건 아랑곳하지 않아도 될까. 누구네 차가 쳤을까. 마을마다 돌며 물건 파는 짐차가 쳤을까. 성탄절 맞이해서 시골마을 사는 어버이 찾아온 도시 딸아들이 몰고 온 자가용이 쳤을까.

 

- 작은아이는 수레에서 잠들었는데, 이불을 걷고 내리려 할 무렵 깬다. 뭐니. 더 자고 일어나야 하는데, 고작 십 분 자고 깨니. 두 아이를 방으로 들인다. 자전거를 한쪽에 세운다. 실장갑 끼고 나온다. 죽은 고양이를 안는다. 벌써 온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아랫배는 아직 따스하다. 치여 죽은 지 얼마 안 되었다고 새삼 느낀다. 논둑이 넓따란 풀섶에 누인다. 너는 다시 태어날 때에는 저 숲속 나무로 태어나렴. 사람도 자동차도 공장도 전쟁도 모든 아픔과 슬픔도 없는 호젓한 숲속에서 사랑과 꿈을 키우는 아름드리 나무로 살아가렴.

 

(최종규 . 2012 - 자전거와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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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딴섬(무인도)에 가져갈 책

 


  벌써 열 해는 지난 일 같은데, 어느 방송사에서 나를 취재하러 왔을 때에 “무인도에 가시면 어떤 책을 가져가시겠어요?” 하고 물었다. 이때 나는 참 어이없는 이야기를 묻는구나 싶었다. 취재를 나온다면, 취재를 받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 줄 조금이나마 살펴야 할 노릇 아닌가. 내가 쓴 글이나 내가 낸 책을 읽었으면, 내가 어떻게 생각하며 삶을 일구려 하는가를 살짝이나마 짚을 텐데 말이다. 그러나, 이 물음을 들으면서 곧바로 떠오른 생각은, 취재를 하기 앞서 어느 한 사람을 알아보려고 그이가 쓴 글이나 낸 책을 읽었다 하더라도, 마음으로 깊이 사랑하면서 돌아보지 않는다면, 지식이나 정보는 얻을는지라도, 넋이나 얼은 조금도 헤아리지 못한다. 그래서 눈을 살짝 감았다가 뜨고는 대꾸한다. “저는 아무 책도 안 가져갈 생각이에요. 그 섬이 바로 나한테는 책이 될 테니까요. 섬에서 살아가며 누릴 이야기로 이 지구별에 꼭 하나만 있으면서, 내가 새롭게 누릴 책을 몸으로 쓰고 마음으로 새겨야지요.” 연필은 가져가겠느냐, 공책은 가져가겠느냐 하고도 물었던가 모르겠다. 글쎄, 가져갈 수 있으면 가져가겠지. 그런데, 텅 빈 종이꾸러미와 연필을 가져간달지라도, 몇 쪽을 쓰고는 더 쓸이 없으리라고 느낀다. 하루하루 새롭게 누리는 삶을 적기에는 두툼한 공책 수백 권으로도 모자랄 뿐 아니라, 이렇게 이야기를 쓰느라 막상 외딴섬 사랑스러운 삶을 덜 누릴 수밖에 없다. 외딴섬에 간다는 뜻은, 외롭게 살아간다는 뜻이 아니라, 홀로 아름답게 살아간다는 뜻이니까, 종이에 삶을 적바림해서 이야기를 남길 까닭 없이, 내 마음에 이야기를 아로새겨서, 내 입과 눈과 몸과 손으로 누군가한테 이야기를 들려주면 넉넉하다. 그러니까, 여느 섬으로 마실을 간다든지, 여느 이웃마을로 나들이를 간다면, 이때에는 공책이랑 연필을 꼭 챙긴다. 이웃마을 둘러보며 누린 아름다움을 글로 정갈히 건사해서 내 ‘글동무’랑 ‘글이웃’하고 알콩달콩 웃음으로 나누면 즐거우니까. 4345.12.25.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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