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도 느리지도 않는 빠르기이다. 왜냐하면 '삶을 누리는' 흐름이니까. '도시에서 빠르게 치닫는' 사람들 눈길로만 바라보니 '느리'지만, 서로 사랑하며 살아갈 아름다움을 찾으려 하니까 '느긋'하게 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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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우리 데이즈 1
나가하라 마리코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0년 5월
4,200원 → 3,780원(10%할인) / 마일리지 210원(5% 적립)
2012년 12월 27일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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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온 지 두 해가 지나고, 곧 새해가 밝는데, 이 책을 주문해서 읽으려 한다. 그러나, 갓 나올 때에만 읽힐 값이 있지 않을 테니, 또 나처럼 천천히 '늦게' 읽으며 생각할 사람들도 많아야 하니까, 즐겁게 장만해서 느긋하게 읽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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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반도체와 백혈병- 삼성이 버린 또 하나의 가족
박일환, 반올림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10년 1월
7,000원 → 6,300원(10%할인) / 마일리지 3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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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덕 글쓰기

 


  1925년에 태어나 2003년에 숨을 거둔 이오덕 님은 ‘사람들이 말과 글을 너무 어리석게 쓰는구나’ 하고 느끼며 《우리 글 바로쓰기》를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누구보다 이오덕 님 당신이 쓴 글이 ‘참 어리석었다’고 스스로 느껴서, 바로쓰기를 하셨어요. 이제 우리들은 이 알맹이를 북돋아, 우리 슬기를 빛내는 ‘살려쓰기’를 할 수 있으면 아름다우리라 생각합니다. 이오덕 님이 1980년대에 비로소 “우리 글 바로쓰기”를 외칠 적에는, 일제강점기에서 풀려났어도 사람들 스스로 한겨레 말글을 제대로 사랑하거나 아끼지 못했어요. 500년에 걸친 조선 한문 굴레에서 허덕이다가, 서른여섯 해 일본말 수렁에 빠졌고, 다시금 미국 자본주의 물결에 휩쓸리기만 하니, 더군다나 요즈음은 대학입시 쳇바퀴에 사로잡히기까지 해요. 누가 보아도 가녀리며 딱한 겨레입니다. 1980∼1990년대에는 ‘바로쓰기’를 하는 데에 힘을 모을밖에 없다 할 만합니다.


  아직 ‘바로쓰기’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고 느낍니다. 다만, 이제는 ‘바로쓰기’와 아울러 ‘살려쓰기’를 하면서, 우리 깜냥껏 한국말 살찌우는 길을 걸어갈 만하리라 생각합니다. 국어학자라서 한다거나, 국문학과를 다녔기에 한다거나, 말글운동을 하니까 하지 않아요.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사람으로 살아가니까 즐기는 삶입니다. 지식으로 가꾸는 말이 아니라, 삶으로 가꾸는 말입니다. 학문으로 갈고닦는 글이 아니라, 사랑으로 보살피는 글입니다.


  이오덕 님은 숱한 글과 책을 내놓으면서 당신 뒷사람한테 ‘선물’을 남겼습니다. 뒷사람인 우리들은 저마다 ‘이오덕 글’을 받아먹으면서 새로운 열매를 거두어 주기를 바랐습니다. 이 뜻을 헤아리면 돼요. 기쁜 선물 예쁘게 누리면서 “우리 말 살려쓰기” 밑넋을 깨달으면 돼요. 내 아이하고 사랑스레 나눌 말을 생각하는 하루가 “우리 말 살려쓰기”예요. 국어사전에서 토박이말을 캐낸대서 ‘바로쓰기’나 ‘살려쓰기’가 되지 않아요. 국어사전에서 어설피 캐내는 토박이말은 자칫 ‘똘레랑스’나 ‘럭셔리’라는 낱말처럼 지식자랑이나 겉치레말이 될 수 있어요. 오래된 토박이말은 지난날 ‘여느 사람이 여느 삶에서 빚은 낱말’인 줄 느끼면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은 ‘오늘 내 여느 삶에서 수수한 낱말을 새롭게 빚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으면 돼요.


  ‘이오덕 글쓰기’란 누구나 즐겁고 환하며 아름답게 새말 빚고 나누면서 새삶 즐기고 밝힐 수 있다는 넋이요 사랑입니다. 4345.12.27.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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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055) -의 : 말의 바탕

 

이것은 자기 나라 글자인 ‘가나’와 우리 나라 글자 ‘한글’이 전혀 다른 말의 바탕에서 생겨난 글자임을 모르고 하는 말이고, 남의 나라 말글에 철없는 입놀림을 하는 짓이라고 본다
《이오덕-우리 문장 쓰기》(한길사,1992) 426쪽

 

  “자기(自己) 나라”는 “제 나라”로 손보고, ‘전(全)혀’는 ‘아주’나 ‘무척’이나 ‘매우’로 손봅니다. “글자임을 모르고”는 “글자인 줄 모르고”로 손질합니다. “남의 나라 말글”은 “다른 나라 말글”로 손질하면 됩니다. 찬찬히 손보고 손질하면서, 글과 말을 한껏 빛낼 수 있습니다.

 

 전혀 다른 말의 바탕에서 생겨난
→ 아주 다른 말에서 생겨난
→ 몹시 다른 바탕에서 생겨난
→ 매우 다른 말바탕에서 생겨난
 …

 

  1980년대부터 우리 말글 바르게 쓰는 길을 꾸준하게 밝힌 이오덕 님은 2003년에 숨을 거두기까지 바지런히 당신 넋을 북돋았습니다. 이오덕 님이 쓴 글을 찬찬히 읽은 분들은 1980년대 글투와 1990년대 글투와 2000년대 글투가 얼마나 다른가를 환하게 헤아릴 수 있으리라 봅니다. 더 깊이 살피는 분들은 1970년대 글투와 1960년대 글투와 1950년대 글투까지 견주며 톺아볼 수 있어요. 다만, 서른 해나 쉰 해에 걸친 글투를 살핀다 하더라도, 일부러 눈여겨보며 살펴야 깨달을 수 있습니다만, 사람들은 으레 ‘책에 실린 줄거리’만 좇는데 바빠, 이오덕 님이 ‘우리 말글을 알맞고 바르게 쓰자’고 외치면서 ‘이오덕 님 스스로 얼마나 당신 글을 갈고닦으며 북돋우려 힘썼는가’ 하는 대목은 놓치곤 합니다.


  서른 해나 쉰 해에 걸친 글투를 곰곰이 돌아보면, 이오덕 님은 “우리 글 바로쓰기”를 외치기 앞서, 당신 스스로 당신 글을 아주 힘을 들이고 사랑을 쏟아 가다듬거나 고쳤어요. 당신 스스로 미처 모르고 쓴 잘못되거나 아쉬운 글투는, 다음에 새 글을 쓰며 고쳤고, 당신이 쓴 글 또한 책을 새로 찍을 적마다 고쳐서 실으려고 했어요. 글은 ‘한 번 배우며 끝나’지 않거든요. 글은 태어나서 숨을 거둘 때까지 날마다 새롭게 배우거든요. 이오덕 님은 당신 스스로 예순 살이나 일흔 살에도 언제나 새롭게 배워서 글을 쓰고 말을 하는 삶매무새를 보여주었습니다.


  다른 사람더러 당신 글 바로잡으라고만 외치지 않았어요. 누구보다 이오덕 님 스스로 당신 글을 바로잡으면서 깨달은 빛을 이웃사람과 뒷사람한테 나누어 주려고 했어요.


  1992년에 나온 《우리 문장 쓰기》라는 책은 1980년대부터 1990년대 첫머리까지 쓴 글을 싣습니다. 이때에는 이오덕 님 글에도 군데군데 ‘-의’이 끼어듭니다. 아니, 이무렵에는 이오덕 님 스스로 ‘-의라는 토씨도 쓸 만한 자리에는 쓴다’고 여겼습니다. 때로는 아주 오래도록 쓰던 버릇이 고스란히 남기도 해요. 이를테면 “남의 나라 말글” 같은 대목인데요, 이오덕 님은 “다른 나라”라고 말하기보다 “남의 나라”처럼 말하기를 즐겼습니다. 그러면 “나의 나라”라고도 쓰셨을까요? 아니에요. 이오덕 님은 ‘나의’처럼 쓰는 글투가 참 어리석다고 거듭 밝히셨어요. 그런데, ‘나’와 한짝을 이루는 ‘남’이라는 낱말에서는 조금 더 슬기롭지 못하셨습니다.


  이 자리에서는 “남의 나라 말글”을 벗어나 “다른 나라 말글”처럼 적거나 “이웃 나라 말글”처럼 적으면 됩니다. 더 생각을 기울이면 “이웃나라”처럼 적을 만해요. “이웃집”은 한 낱말이에요. 흔히 쓰고 널리 쓰는 ‘이웃-’은 앞가지로 삼으면 됩니다. 그러나, 국어사전을 살피면 “이웃사랑”이나 “이웃사람”을 한 낱말로 안 삼아요. 국어학자 밑생각이 깊지 못한 탓이라 할 텐데, 국어사전에 안 실린다 하더라도, 우리들은 스스로 생각을 빛내면서 “이웃돕기”라든지 “이웃나눔”이라든지 “이웃가게”라든지 “이웃노래” 같은 새 낱말을 빚으면 됩니다. “이웃땅”, “이웃밭”, “이웃마을”처럼 새 낱말을 빚을 수 있어요. 스스로 일구는 삶을 스스로 일구는 말로 꽃피우면 즐겁습니다.

 

 서로 다른 말뿌리에서 생겨난
 저마다 다른 말삶에서 생겨난
 사뭇 다른 말밑에서 생겨난

 

  이오덕 님은 “전혀 다른 말의 바탕에서 생겨난 글자”처럼 글을 쓰셨습니다. 1980년대 글투인데요, 2000년대에도 이렇게 글을 쓰셨을까 하고 생각을 기울이며 《우리 문장 쓰기》를 읽을 수 있다면, 우리는 이오덕 님 넋을 고맙게 얻을 수 있는 한편, 내 깜냥껏 내 말삶을 북돋울 수 있습니다.


  내 말은 내가 가꾸거든요. 내 삶은 내가 가꾸거든요. 내 일도, 내 놀이도, 내 꿈도, 내 사랑도, 언제나 내가 가꿉니다. 곧, 이런 책을 읽거나 저런 강의를 듣는대서 내 지식을 살찌우지 못해요. 나 스스로 나를 가꾸려는 넋이요 몸가짐일 때에 내 삶을 가꿀 수 있어요.


  “말의 바탕”처럼 글을 쓴 까닭은 ‘말’과 ‘바탕’ 두 가지 뜻을 밝히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보기글을 살피면, ‘말’만 쓰거나 ‘바탕’만 써도 돼요. 둘 가운데 하나만 써도 이야기흐름은 살아나요. 꼭 두 낱말을 다 쓰고 싶으면 ‘두 낱말을 다 쓰면서 말흐름을 살찌울 새 모습’을 찾으면 됩니다.


  ‘말바탕’이라고 하면 돼요. 말뿌리나 말밑이라 하면 돼요. 말자취나 말흐름이나 말줄기라 할 수 있어요. 바탕이나 뿌리나 밑이나 자취나 흐름이나 줄기가 무엇인가 하고 돌아보면 ‘삶’으로 이어져요. 그래서 ‘말삶’이라는 낱말이 태어나요. 또한 ‘말사랑’이나 ‘말생각’이나 ‘말넋’이라는 낱말을 빚을 수 있겠지요.


  이오덕 님이 쓴 《우리 문장 쓰기》 같은 책을 읽는 까닭은 하나입니다. 이 책에 담긴 살가운 넋을 받아먹으면서, 나 스스로 내 넋을 북돋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오덕 님이 외친 이야기라서 무턱대고 따라야 하지 않아요. 아무리 아름다운 생각이라 하더라도 무턱대고 따를 때에는 아름다울 수 없어요. 생각을 하면서 즐겨야 아름답습니다. 왜 이런 이야기를 외치셨을까 하고 생각하면서, 내 슬기를 빛내어 서로 아름다울 길을 찾을 때에 즐겁습니다. 4345.12.27.나무.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이는 제 나라 글인 ‘가나’와 우리 나라 글 ‘한글’이 사뭇 다른 말삶에서 생겨난 줄 모르고 하는 소리이고, 이웃나라 말글에 철없이 입놀림을 하는 짓이라고 본다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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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벌레

 


숲이 있으면
나무가 자라고 풀이 돋아
겨울에도
푸르게 숨쉬고 맑게 빛나는
꽃이 있고,
곁에 가늘가늘 고즈넉히
노래하는 벌레 있다.

 

늦가을
11월 19일에도
고흥 도화 동백마을에는
풀벌레가 노래하고
부전나비 춤춘다.

 

니 우예 겨울잠 안 자노
말을 걸다가
나도 모르게
온 들판 누렇고 푸른 빛을
가만히 바라본다.

 


4345.11.19.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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