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읽는 책 7] 시골 흙일꾼 삶

 


  시골에서 흙 만지는 사람은 모두 흙일꾼
  새내기도 헌내기도, 초보도 원로도 없이
  서로서로 사랑스러운 흙 만지는 삶.

 


  시골에서 지내며 둘레를 살피면, 시골마을 어르신은 ‘나이 여든’이건 ‘나이 일흔’이건 아무렇지 않게 흙일을 합니다. 흙 만진 지 쉰 해가 넘었건 예순 해가 넘었건 이녁 스스로 ‘전문가’라든지 ‘고수’라든지 ‘원로’라고 여기지 않아요. 그저 흙일꾼(농사꾼)이에요. 이와 달리, 도시에서는 모두 전문가요 고수요 원로예요. 시를 쓰거나 기자로 일하거나 법을 다루거나 정치를 하거나 컴퓨터를 만지거나 사진을 찍거나 사회운동을 하거나 무엇을 하든, 온통 ‘-가(家)’나 ‘작가(作家)’ 같은 이름 얻으려 애써요. 스스로 ‘님’이 되어요. 기자님, 판사님, 대통령님, 간호사님, 요리사님, …… 되지요. 농사꾼더러 농부님처럼 가리키는 분이 더러 있지만, 참말 농사꾼 들은, 또 아이들 보살피며 사랑하는 살림꾼(주부) 들은, ‘님’도 ‘-가’도 ‘작가’도, 또 ‘선생님’도 바라지 않아요. 농사꾼과 살림꾼한테는 이런저런 높임말이랑 꾸밈말이 어울리지 않아요. 흙을 만지고 물을 만지며 숨결 푸르게 북돋우는 자리에 서면, 누구라도 빙그레 웃으며 가장 맑은 넋 되는구나 싶어요. 4346.6.9.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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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1517) 눈물의 2 : 눈물의 아우성이요

 

진짜는, 터지는 억장으로 토해 내는 한 맺힌 절규요. 눈물의 아우성이요
《김수정-아기공룡 둘리 (7)》(예원,1990) 7쪽

 

  ‘토(吐)해’는 ‘뱉어’나 ‘쏟아’로 다듬습니다. ‘한(恨)’은 그대로 둘 수 있으나 ‘응어리’나 ‘아픔’으로 손보면 한결 낫고, ‘절규(絶叫)’는 ‘울부짖음’이나 ‘부르짖음’으로 손봅니다. 가만히 따지면, ‘진(眞)짜는’도 그대로 둘 만한 한편, ‘참말은’으로 손볼 수 있어요. “터지는 억장(億丈)”도 “터지는 가슴”으로 손볼 만합니다. 한자말 ‘억장’은 “썩 높은 것”을 뜻한다고 해요. 관용구처럼 “억장이 무너진다”처럼 쓰는데, “가슴이 무너진다”나 “마음이 무너진다”고 쓸 수 있어요.

 

 눈물의 아우성이요
→ 눈물겨운 아우성이요
→ 눈물나는 아우성이요
→ 눈물지는 아우성이요
→ 눈물어린 아우성이요
 …

 

  슬프거나 가슴 벅찬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이 눈물을 왈칵 쏟아낼 때가 있습니다. 이때 우리들은 “눈물바다를 이룬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눈물바다’가 아닌 ‘눈물의 바다’처럼 말하는 분이 드물게 있습니다.


  사람들 아픔을 먹고 자란다고 하면서 ‘눈물꽃’이나 ‘눈물나무’를 이야기하곤 합니다. 이때에도 ‘눈물꽃-눈물나무’처럼 알맞게 적는 분들이 있습니다만, 사이에 토씨 ‘-의’를 넣어서 ‘눈물의 꽃-눈물의 나무’처럼 적으려고 하는 분이 꼭 있습니다.

 

 눈물바다 / 웃음바다 (o)
 눈물의 바다 / 웃음의 바다 (x)

 

 웃음이나 눈물을 학문으로 파고드는 분들은 으레 “눈물의 미학”이나 “웃음의 해학”이니 하고 읊조립니다. “아름다운 눈물”이나 “익살스러운 웃음”처럼 읊조리는 일은 없습니다. 아름다움을 말하는 학문이면서도 ‘아름다움’이 아닌 ‘美學’이라 말하기 때문인지 모릅니다만, 우리 삶을 꾸밈없이 담아내거나 드러내려는 움직임을 찾아보기가 퍽 어렵습니다.


  학문과 삶은 따로따로인지, 학문은 삶에 터잡지 않아도 되는지, 학문은 삶하고 거리를 두어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삶이 없이 어떤 문화나 역사나 예술이 있을까 싶습니다. 삶에 뿌리내리는 말을 하지 않고 무슨 생각을 나눌 수 있는지 모르겠어요.

 

 눈물의 외침입니다 (x)
 눈물로 외칩니다 (o)

 

  어쩌면, 뿌리 잃고 떠도는 모습이 우리 삶일까요. 뿌리 없이 맴도는 모습이 우리 삶인가요. 뿌리가 없어도 얼마든지 줄기를 올리고 잎을 틔우고 꽃도 피고 열매도 맺을 수 있다고 여기는 우리 삶인지요. 4341.8.10.해./4346.6.9.해.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참말은, 터지는 가슴으로 뱉어내는 응어리 진 울부짖음이요. 눈물나는 아우성이요

 

..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079) 눈물의 4 : 눈물의 밥

 

피곤에 전 방석모와 방패 / 한쪽으로 치워놓고 / 우리들의 형제 우리들의 친구들이 / 빗속에서 눈물의 밥을 먹는다
 곽재구 《서울 세노야》(문학과지성사,1990) 32쪽

 

  ‘피곤(疲困)’ 같은 낱말은 스스로 쓰고 싶을 때에 씁니다. 이런 낱말 안 쓰고 싶다면, “피곤에 전”은 “고단한”으로 손봅니다. “우리들의 형제 우리들의 친구”는 “우리들 형제 우리들 친구”나 “우리 형제 우리 동무”로 손질합니다.

 

 눈물의 밥을
→ 눈물밥을
→ 눈물어린 밥을
→ 눈물 나는 밥을
→ 눈물 흘리며 밥을
→ 눈물 뚝뚝 밥을
 …

 

  말로 빚는 예술을 가리켜 시라고 합니다. 한국말로 빚는 한국예술이란 한국문학이 되겠지요. 국어사전을 살피면 ‘눈물밥’도 ‘웃음밥’도 없어요. 그러나, 말로 빚는 예술인 시인 만큼, 시를 쓰는 우리들은 ‘눈물밥’이나 ‘웃음밥’ 같은 낱말 즐겁고 아름답게 빚을 수 있습니다.


  ‘사랑밥’이나 ‘꿈밥’ 같은 낱말 빚을 수 있어요. ‘이야기밥’이나 ‘노래밥’ 같은 낱말 일굴 수 있어요. 아름다운 생각 길어올리면서 새말 빚어요. 생각이 밥이 되어 ‘생각밥’ 되고, 마음을 살찌우기에 ‘마음밥’ 되지요. 들에서는 나락이 익어 몸을 살찌우는 밥 되고, 시를 쓰는 우리들은 마음을 살찌우는 글밥 짓습니다. 4346.6.9.해.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고단한 방석모와 방패 / 한쪽으로 치워놓고 / 우리들 형제 우리들 친구들이 / 빗속에서 눈물밥을 먹는다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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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그림 읽기
2013.6.7. 큰아이―시그림 함께

 


  아이가 그림을 그리도록 이끌고 싶을 때에는, 어머니나 아버지가 곁에서 그림을 함께 그리면 된다. 아이는 스스로 그림이 좋아, 누가 시키지 않아도 그림을 그리기도 하는데, 어머니나 아버지가 말없이 그림을 즐기다 보면, 아이는 저도 그림을 그리고 싶어 곁에 앉아 얌전하고 예쁘게 그림을 즐긴다. 큰아이는 어제에 이어 계단을 그린다. 아버지는 무언가 다른 그림 그리고 싶어, 파란 빛깔 연필로 하늘과 구름을 그리다가, 꽃 한 송이 그리고, 굵직한 나무 한 그루 그린다. 나무는 굵직하고 커서 가지가 안 보이도록 키가 크다고 생각하며 그린다. 그런 뒤, 아이들 이름을 곱게 적어 넣고, 큰아이한테는 ‘숲’을, 작은아이한테는 ‘빛’을 선물한다. 큰나무 오른쪽에 어머니와 아버지 자리도 그린다. 그러고는 어머니한테는 ‘하늘’을 아버지한테는 ‘땅’을 선물한다. 자, 그러면 이제 무얼 그릴까? 곰곰이 생각하다가, 연필로 또박또박 글을 적어 본다. 내가 읽으면서 즐겁고, 아이한테 한글 가르치면서 재미날 만한 글을 적는다. 누구나 시인이니, 누구나 시그림 그릴 수 있다고 느낀다.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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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는 말 150] 사랑밥

 


  따사로운 손길로 웃음 담아 짓는 밥에는 사랑이 깃듭니다. 여느 아침밥이고 낮밥이며 저녁밥이면서, 사랑밥 됩니다. 오순도순 웃음꽃 피우면서 밥을 먹을 적에는, 이 밥이 쌀밥이나 보리밥일 뿐 아니라, 웃음밥이기도 하다고 느낍니다. 그러고 보면, 이야기를 나누며 즐기는 밥이기에 이야기밥이라고도 느낍니다. 밥 한 그릇으로 기운을 얻어 삶을 새롭게 일구니, 삶밥이 되곤 합니다. 삶이 되는 밥이란, 목숨을 살찌우고 숨결을 살리니, 살림밥이기도 해요. 그런데, 몹시 슬프거나 힘든 일 있어, 어느 때에는 눈물밥 먹습니다. 슬픔밥이라 할까요. 씩씩하게 일어서야지요. 꿈밥을 먹고, 믿음밥을 먹으며 새힘 북돋아야지요. 기지개를 켜면서 하늘을 올려다봐요. 하늘숨 마시고 하늘밥 먹어요. 가만히 쪼그려앉아 들풀과 들꽃 쓰다듬어요. 흙숨 마시고 흙밥 먹어요. 풀을 즐기니 풀밥이지만, 풀바람 쐬면서 풀밥입니다. 나무그늘에 앉아 도시락 먹으면 들밥이 될 텐데, 푸른 내음 가득한 나무바람 들바람 듬뿍 마시니, 푸른밥도 되어요. 서로서로 나누는 밥이에요. 다 함께 누리는 밥이에요. 나눔밥이고, 어깨동무밥입니다. 구름밥이며, 무지개밥입니다. 4346.6.9.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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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 적부터 읽은 시집

 


  고등학생 적부터 읽은 시인을 서른아홉 살에 두 아이 낳아 돌보는 시골마을에서 다시 읽으며 생각한다. 조태일, 김현승 두 시인은 스물 몇 해 앞서나 오늘이나 가슴을 북돋운다고 느낀다. 김소월, 윤동주, 한용운, 이육사 네 시인은 예나 이제나 아름다운 노래를 새록새록 되새겨 준다고 느낀다. 김수영, 신동엽, 고정희, 김남주, 박노해 다섯 시인은 예전에는 못 느낀 다른 깊이와 너비를 해마다 새롭게 건드려 준다고 느낀다.


  신경림 시인을 가만히 헤아린다. 신경림 시인 시집 이야기를 스물 몇 해 만에 처음으로 느낌글로 갈무리한다. 고등학생이던 1992년과 1993년에는 ‘교과서에서 볼 수 없던 이야기’를 느낄 수 있었다. 스물 몇 해 지난 오늘날에는 ‘교과서에 실리는 이야기’를 느낀다.


  아마, 앞으로 언제가 될는 지 모르나, 권태응 같은 분들 동시를 교과서에서 제대로 다룰 날 있을 수 있다. 2001년에 이오덕 님이 《농사꾼 아이들의 노래》 같은 책을 내며 널리 알리고서야 교과서에도 권태응 님 동시가 실린다 할 수 있고, 백창우 같은 분이 〈감자꽃〉에 가락을 붙였기에 이러한 시가 교과서에 실린다 할 수 있는데, 나는 권태응이라는 이름을 아주 느즈막하게 알았다. 둘레에서 알려주는 사람 없었고, 곁에서 권태응 시인 좋아하는 사람 만나지 못했다.


  오늘 신경림 시인 2008년 시집 한 권 곰곰이 돌아보면서 권태응 님을 떠올린다. 그리고, 이원수 님을 떠올린다. 시란 무엇이고 이야기란 무엇이며 삶이란 무엇일까. 책이 좀 팔리고 여러모로 인기인 되면 ‘좋은 시’라 할 수 있을까. ‘읽히는 시’하고 ‘사랑스러운 시’는 얼마나 어울릴 만할까.


  신경림 시인이 꼭 농투산이 되어 열 해 스무 해 흙하고 씨름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흙이 어떠한 숨결이요 흙을 어떠한 사랑으로 맞이할 때에 우리가 착하고 참다우며 고운 사람 되는가를 생각해 볼 만하다고 느낀다. 신경림 시인이 애써 장돌뱅이 되어 서른 해 마흔 해 골골샅샅 다리품 팔며 떠돌아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게다가 신경림 시인은 장돌뱅이처럼 장사하며 지낸 적 있다지 않은가. 그러나, 이 땅 골골샅샅 더 깊고 고요한 시골과 멧골과 두메를 사귀며 작은 이웃 마주하면서 어깨동무하는 나날로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었으면, 신경림 시인 삶과 사랑과 눈길과 손길은 사뭇 새롭게 거듭났으리라 느낀다.


  그래, 그저 그뿐이다. 신경림 시인은 시골에서 안 살지만, 나는 아이들과 옆지기하고 시골에서 산다. 나는 날마다 시골노래를 듣는다. 나는 언제나 시골노래를 부른다. 그뿐이다. 그예 그뿐이다. 4346.6.9.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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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6-09 05:20   좋아요 0 | URL
함께살기님의 글을 읽고 있으니 저도,
조태일님의 <국토>나 황명걸님의 <한국의 아이>, 김명인님의 <동두천>을 뜨겁던
가슴으로 읽은 그 시간들이...떠오릅니다.
신경림 시인의 시를 처음 읽었던 건, 아마 ,<農舞>였던 듯 싶어요.
친구들과 罷場,을 읽으며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보아도 웃는다'를 읽으며 낄낄 서로를 더욱 사랑하던 시간이었지요.

며칠전에 ,<노동의 새벽>으로 처음 만났었던 박노해 시인의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를 몇 장 넘겨 봤는데...참.. 좋더군요.

부끄럽게도 저는 권태응 시인을 몰랐어요.
<감자꽃>, 감사한 마음으로 담아갑니다.~


파란놀 2013-06-09 07:53   좋아요 0 | URL
저도 <감자꽃>을 1994년이 아닌 1998년에 이르러 비로소 알았어요. 다만, 책은 1994년에 나왔지만, 노래는 예전부터 듣기는 했는데, 그 노래가 그 시인 줄 제대로 모르기도 했고, 요 몇 해 또는 요 열 해 남짓 제법 알려지기는 했어도, 아직 권태응 시인이나 <감자꽃> 시집은 제대로 읽히거나 사랑받지 못해요.

더 오랜 나날 흐르면, <감자꽃> 시집에 깃든 깊은 사랑 우리들한테 골고루 스며들 수 있으리라 믿어요. 이 시집에 담긴 시는 '동시'가 아니라 '시노래'로구나 하고 느낄 만큼 참 아름답지요...

신경림 시인이 그 '파장' 시처럼, '못난 놈'으로 살아가며 '서로 웃고' 좋아하는 삶 즐겁게 이을 수 있기를 빌어요. 부디 '원로'는 되지 마시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