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가 된 아빠 살림어린이 그림책 20
앤서니 브라운 글.그림, 노경실 옮김 / 살림어린이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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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279

 


철없는 ‘큰 아기’
― 아기가 된 아빠
 앤서니 브라운 글·그림,노경실 옮김
 살림어린이 펴냄,2011.4.20./1만 원

 


  ‘큰 아기’는 철이 없습니다. 몸은 커졌는데 마음은 커지지 않았으니 철이 없습니다. 몸은 크지만 마음이 크지 않는다면 얼마나 어리광쟁이요 칭얼쟁이요 미련쟁이일까요. 몸은 작으나 마음이 쑥쑥 자란다면 얼마나 예쁘고 착하며 사랑스러울까요.


  철이 없는 ‘큰 아기’는 스스로 삶과 살림을 어떻게 돌볼 때에 아름다운가를 깨닫지 않습니다. 깨닫지 못한다기보다 깨닫지 않습니다. 아직 삶을 들여다보는 눈이 없고, 살림을 일구는 손이 없습니다.


  철없는 ‘큰 아기’인 터라 혼자서 개구지게 놀려고 할 뿐, 살붙이나 동무하고 살가이 얼크러지지 못합니다. 어리광을 부리고 칭얼거리며 미련스럽습니다. 참말 ‘다 큰 아기’가 되면 ‘아이를 돌보’는 일이라든지 ‘집안일 맡는’다든지 하는 데에는 젬병이에요. 철이 없어 저 혼자밖에 모르거든요. 철이 없기에 둘레를 찬찬히 살필 줄 모르거든요.


  철없는 ‘큰 아기’는 우리 둘레에 퍽 많습니다. 젊은 사내들만 서른 마흔 쉰 되도록 철없는 ‘큰 아기’ 모습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젊은 가시내들도 서른 마흔 지나 쉰 예순 되어도 철없는 ‘큰 아기’로 살곤 합니다. 요즈음은 그야말로 철없는 ‘큰 아기’를 곳곳에서 봅니다.


.. 존의 아빠는 집이 떠나갈 듯이 시끄러운 음악을 좋아하고, 커다란 방에는 아빠의 장난감들이 가득하지요 ..  (6∼7쪽)

 

 


  씨앗을 심지 못하는 사람은 철이 없습니다. 나무를 돌볼 줄 모르는 사람은 철이 없습니다. 바람맛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철이 없습니다. 꽃가루와 풀내음 누리지 못하는 사람은 철이 없습니다. 여름에 더위를 못 느끼고 겨울에 추위를 안 느끼는 삶이라면 철이 없습니다. 철을 모르기에 철이 없고, 철을 맞아들이지 않으니 철이 없어요.


  제철에 나는 먹을거리를 제대로 먹지 않으니 철이 없어요. 제철에 피는 꽃을 제때에 느끼지 못하니 철이 없어요. 제철에 흐르는 냇물을 제 손과 발로 누리지 못하니 철이 없습니다.


  철이 없는 사람은 살림을 일구지 못합니다. 살림이란 목숨을 살리는 일입니다. 목숨을 살리는 일이란 하루하루 새롭게 삶을 짓는 일입니다. 하루하루 새롭게 삶을 짓는다고 할 때에는 언제나 이야기가 샘솟습니다. 날마다 새 숨결로 거듭나면서 환하게 웃는 사람일 때에 비로소 철이 든 사람이에요. 언제나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태어나면서 이웃과 어깨동무하는 사람이라면 아름답게 철이 든 사람이지요.


  다만, 오늘날 학교에서는 아이들이 철이 들도록 이끌지 않아요. 어린이집에서는 어린이가 어린이답도록 북돋우지 않아요. 일찌감치 영어를 가르치려 애쓰고, 일찍부터 아이들 머리에 갖은 지식 집어넣습니다. 초등학교는 초등교육 아닌 ‘초등입시’에 파묻히지요. 중학교는 중등교육 아닌 ‘중등입시’요, 고등학교 또한 고등교육 아닌 ‘고등입시’일 뿐입니다. 온통 입시교육이에요. 삶도 사랑도 사람도 가르치지 못하고 배울 수 없어요.


  틀에 박힌 제도권 노예교육에 열두 해 길들이는데, 철든 아이로 자라지 못하는 모습은 마땅하다 할 만해요. 틀에 박힌 제도권 노예교육에 아이들 집어넣는 어버이 또한 철없다고 여길 만해요. 학교에서 아이들한테 삶과 사랑과 사람을 슬기롭게 보여주지 못하는 어른도 모두 똑같이 철없다고 할밖에 없어요.


.. 아빠는 조금이라도 머리가 아프거나 감기 기운이 있으면 큰일이 나요. 얼른 자리에 누워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독감에 걸린 게 틀림없다며 법석을 피우거든요. 엄마는 그런 아빠를 ‘다 큰 아기’라고 부른답니다 ..  (10쪽)

 


  대통령이라는 자리에 올라선대서 철있는 사람이라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의사 노릇 하거나 박사 노릇 한대서 철있는 사람인지 모르겠습니다. 신문사 기자나 방송국 피디는 철있는 사람일까요. 논밭에 농약 아무렇지 않게 뿌리는 시골사람은 얼마나 철있는 사람인가요. 골목길에서 빵빵거리며 내달리는 사람은 얼마나 철있는 사람이려나요.


  베스트셀러와 스테디셀러 아닌, 내 마음밭 살찌울 책을 다른 전문가들 추천이나 비평에서 벗어나, 스스로 눈길과 눈썰미 키워서 하나둘 찾아내어 읽을 줄 아는 사람이 아니고서야 철있는 사람이 되지 않아요. 서울 얘기만 가득한 신문은 내려놓을 줄 알아야 철이 듭니다. 큰도시 소비문명 가득한 텔레비전은 끌 줄 알아야, 조금이나마 철있는 사람에 다가설 만합니다.


  두 다리로 마을을 걸을 때에 철을 시나브로 느낍니다. 두 손으로 풀포기 쓰다듬고 나무줄기 어루만질 때에 철을 찬찬히 헤아립니다. 두 귀로 소리를 들어 봐요. 유월에 어떤 소리 들리는가를 살펴요. 칠월과 팔월에는, 십이월과 일월에는, 사월과 오월에는, 다달이 어떤 소리가 우리 삶터를 밝히는가 하고 귀를 기울여요. 소리를 가누면서 즐길 수 있을 때에 조금씩 철들 수 있어요.


.. “그렇게 젊어지고 싶어 하더니, 진짜로 소원을 이루었네.” 엄마는 쓸쓸한 얼굴로 살짝 미소를 지었어요 ..  (14쪽)

 


  앤서니 브라운 님은 그림책 《아기가 된 아빠》(살림어린이,2011)에서 철이 안 든 ‘큰 아기’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집안에서 아버지 노릇을 못 하거나 안 할 뿐 아니라, ‘아버지’가 어떤 사람인지조차 모르는 ‘다 큰 사내’를 이야기합니다. ‘아버지’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니 ‘어른’이나 ‘어버이’란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겠지요. 스스로 아버지나 어른이나 어버이를 모르니까, ‘아이’란 어떤 사람인지도 모를밖에 없어요.


  아무것도 모르지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지요. 아무것도 느끼지 않지요. 아무것도 사랑할 줄 모르지요.


  몸뚱이만 큰 철없는 사내 아닌, ‘몸뚱이까지 조그맣게 달라진’ 철없는 아기가 되면, 철이 없는 모습이 무엇인가를 느낄 만할까요. 철이 들면 부끄러움이나 창피를 느낄까요. 철이 조금 들어 무엇이 부끄럽고 어느 대목이 창피한가를 느낀다면, 이제부터 삶을 고치고 살림을 바라보며 사랑을 헤아리는 길로 접어들 수 있을까요.


  철이 없는, 다시 말하자면, 바보스레 살아가는 사람 곁에 철이 있고 슬기로운 옆지기 있다면, 조금씩 거듭나면서 차근차근 아름다운 매무새 갖출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철이 없는 사람 곁에 또 철이 없는 옆지기가 있다면 서로서로 철없는 채 언제까지나 맴돌겠구나 싶어요.


  어린이다운 마음을 건사할 때에 아름다운 마음빛이 됩니다만, 철이 없는 마음일 때에는 아름답지도 않고 예쁘지도 않으며 사랑스럽지도 않습니다. 어린이다움하고 철없는 모습은 아주 달라요. 어린이는 씩씩하며 야무집니다. 어린이는 튼튼하고 웃음보따리입니다. 어린이는 늘 새 마음 새 뜻 새 꿈을 키웁니다. 4346.6.26.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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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삼덩굴 책읽기

 


  조그마한 부전나비 한 마리를 사진으로 찍을 때까지 부전나비만 보았는데, 집으로 돌아와 사진을 찬찬히 들여다보다가 새로운 모습 깨닫는다. 부전나비는 개망초꽃에 앉았다. 부전나비가 앉은 개망초꽃을 환삼덩굴이 타고 올라오며 새 잎사귀 올린다. 들풀이 서로 기대어 자라는 셈이기도 하고, 들풀이 저마다 자리를 다투는 모습이기도 하다. 우리 살림집 둘레로 환삼덩굴이 거의 안 보여 살짝 서운하다 여겼더니, 서재도서관 둘레에 환삼덩굴 이제서야 곳곳에 올라오는구나. 덩굴풀 뜯어먹으러 마실을 가야겠네. 내가 먼저 톡 끊어 입에 넣고 ‘이야 무슨 맛이려나.’ 하고 냠냠하면, 큰아이와 작은아이는 “나도 줘.” 하면서 손을 벌리겠지. 그러면 나는 “너희가 손수 따서 먹어 봐.” 하고 말할 테고. 그날그날 밥상에 올릴 만큼 뜯으러 나들이를 다니면 좋겠구나. 4346.6.25.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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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집 2. 개망초꽃 작은주홍부전나비 2013.6.24.

 


  풀이 있어야 꽃이 피고, 꽃이 있어야 벌나비 춤을 춘다. 풀이 없으면 꽃이 피지 않고, 꽃이 피지 않으면 벌나비 찾아들지 않는다. 한국말에는 ‘꽃을 담는 그릇’을 가리키는 낱말이 없다. 한국사람은 예부터 집 안쪽에 따로 꽃그릇(화분)을 두지 않았기에, 이런 그릇 가리키는 낱말을 지을 일 없다. 마당이 꽃밭이면서 텃밭이요, 집 둘레가 풀밭이면서 꽃밭이고, 울타리가 바로 꽃나무요 덩굴이다. 흙과 나무로 지은 집에 지붕은 온통 흙이고 짚으로 덮고, 지붕에서는 박이 자라 꽃을 피우니, 예부터 한겨레는 숱한 풀과 꽃으로 온 집안과 마을을 가꾸었다고 느낀다. 이제 시골마을마다 농약 비료 듬뿍 쓰고, 지붕 갈고 마당 시멘트 바르면서 들풀을 몹시 싫어한다. 마을 어르신들은 풀포기 조금만 자라도 모기 걱정을 하거나 뱀이 나온다고 근심한다. 그런데 풀이 자라지 않으면 누가 이곳에서 살 수 있을까. 집 안팎에 풀이 흐드러지지 못하면 우리는 어떤 숨을 마실까. 철 따라 다른 풀이 자라고, 달마다 새로운 풀이 돋아, 푸르며 맑은 바람이 솔솔 불 때에, 비로소 우리들은 싱그러운 숨결 될 수 있지 않을까. 씩씩하게 자라는 개망초에 흰꽃 맺히고, 개망초꽃에 작은주홍부전나비 앉는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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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모모 2013-06-26 02:24   좋아요 0 | URL
화분보다 꽃그릇이란 말이 더 예뻐요! *.*

파란놀 2013-06-26 09:32   좋아요 0 | URL
'꽃그릇'은 제가 한 번 만들어 본 낱말이에요.
'화분'이라는 낱말이 그리 내키지 않아서요 ^^;;
 

다른 물맛

 


  집에서 끓여 아이들 먹이는 밥이랑, 바깥에서 사다가 먹이는 밥을 곰곰이 헤아려 보면, 아무래도 물맛부터 다르다. 조용하고 시원한 바람 흐르는 시골마을에서 흐르는 땅밑물을 길어서 짓는 밥에서 피어나는 맛이랑, 댐에 가둔 물을 길디긴 시멘트 물관과 쇠파이프 물꼭지를 거쳐서 얻어 짓는 밥에서 샘솟는 맛은 다르다.


  만화책 《미스터 초밥왕》에 나오는 아이는 초밥 맛을 더욱 높이려고 ‘초밥을 지을 때에 쓰는 물’을 ‘초밥에 쓸 쌀을 거둔 시골에서 나락이 늘 마시던 물’을 길어와서 쓰기도 한다. 제아무리 쌀이 좋다 하더라도 ‘쌀이 나고 자란 고장’에서 ‘나락이 자라는 동안 늘 마시던 물’이 아닌 수도물을 쓰면 제맛이 살아나지 않는 줄 몸으로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렇게 지은 밥맛도 벽에 부딪힌다. ‘쌀이 나고 자란 고장’에서 ‘나락이 늘 마시던 바람’까지 담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오늘날 도시사람은, 또 시골이라 하더라도 읍내나 면소재지 사람은, 샘물이나 냇물이나 우물물이나 땅밑물이나 골짝물이 아닌 수도물을 마신다. 언제나 수도물뿐이다. 애써 시골로 깃들지 않고서야 물맛을 제대로 알아채거나 느끼기 어렵다. 물맛을 이야기 나누기 어렵고, 물맛을 놓고 이래저래 삶빛을 주고받기 어렵다.


  그러나, 물 한 방울에서 물맛을 느끼지 못하는 도시 사회가 더 깊어지거나 퍼진다 하더라도 물맛을 자꾸 이야기해야지 싶다. 물맛이 사라지고, 물맛을 잃는 오늘날이기에 더더욱 ‘가게에서 플라스틱병에 담아서 파는 먹는샘물’ 아닌, 사람과 들짐승과 풀벌레와 푸나무 모두 살리는 ‘물맛’이 무엇인가를 꾸준히 이야기해야지 싶다. 물맛을 모르고는 밥맛을 알 수 없고, 밥맛을 모르고는 삶맛을 알 수 없다. 4346.6.25.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책과 헌책방과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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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가운 상말
 612 : 일물일어설

 

과연 일물일어설一物一語說까지도 넘어선 작가적 유연성으로 보아줄까요
《은희경-생각의 일요일들》(달,2011) 33쪽

 

  ‘과연(果然)’은 ‘참으로’나 ‘그야말로’나로 손보고, “작가적(作家的) 유연성(柔軟性)으로”는 “작가다운 부드러움으로”나 “작가다운 따스함으로”로 손볼 수 있습니다.


  ‘일물일어설(一物一語說)’은 국어사전에 안 실립니다. 한국말도 아니요, 한국말로 스며든 한자말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어떤 서양사람이 얘기한 학설을 중국사람이나 일본사람이 한자말을 빌어서 옮긴 글월이 ‘一物一語說’이지 싶어요. 이 글월은 “하나의 사물을 나타내는 데 적합한 말은 하나의 말밖에 없다”를 뜻한다고 해요.


  이러한 글월이라면 “한 가지 것에 한 가지 말”처럼 적을 수 있어요. 굳이 사자성어나 오자성어 꼴로 적어야 하지 않아요. 뜻을 살려 “저마다 다른 이름”처럼 적어 봅니다. “저마다 이름 하나”처럼 적어도 되고, “모두한테 이름 하나”처럼 적을 수 있어요.


  서양사람이 들려준 얘기를 한자말로 옮긴 사람도 이녁 스스로 깊이 생각하면서 ‘一物一語說’ 같은 글월을 빚었어요. 이러한 얼거리를 살펴, 우리도 한국말로 서양사람 얘기를 알맞고 환한 글월로 빚으면 아름답습니다. 그러면, 나중에는 “작가적 유연성” 같은 대목도 한결 보드라우면서 쉽게 풀어서 새롭게 적을 수 있고, 이 보기글 또한 한껏 빛나는 아름다운 한국말로 아주 달리 적을 수 있습니다. 4346.6.25.불.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그야말로 한 가지를 나타내는 말은 하나뿐이라는 옛말까지도 넘어선 작가다운 부드러움으로 보아줄까요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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