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쓰는 동안

 


  책을 쓰는 동안 생각합니다. 오늘까지 내가 살아온 나날을 곰곰이 생각합니다. 책 한 권에 깃들 글 한 줄은 내 숨결입니다. 책 한 권을 쓰는 동안 길어올리는 생각꾸러미는 내 꿈입니다. 글을 쓰면서 내가 일구는 삶을 깊이 생각하고 넓게 바라봅니다. 오늘까지 살아온 길과 앞으로 살아가는 길이 어떤가 하고 찬찬히 짚습니다. 나 스스로 즐겁게 여긴 대목이 무엇인가를 돌아보고,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즐거운 웃음은 어디에 있는가를 깨닫습니다.


  책이란 책입니다. 삶이란 삶입니다. 우리 시골마을 조그마한 보금자리 처마로 찾아오는 제비는 제비입니다. 마을 어르신들이 뿌리는 농약은 농약입니다. 농약바람 불 때마다 미리 알아채고는 멀리멀리 무리지어 꽁무니를 빼는 잠자리는 잠자리입니다. 농약을 맞고 타죽은 고들빼기와 비름나물은 고들빼기요 비름나물입니다.


  책을 깎아내릴 까닭이 없으면서, 책을 거룩하게 섬길 까닭이 없습니다. 제비를 모른 척할 까닭이 없으면서, 제비를 우러를 까닭이 없습니다. 농약이 없으면 흙을 못 일군다고 여길 까닭이 없으면서, 농약이 곡식과 푸성귀뿐 아니라 우리 마을과 숲을 어떻게 바꾸어 놓는가를 모르쇠 할 까닭이 없습니다. 벼멸구가 농약에 맞아 죽는다면, 잠자리도 농약에 맞아 죽습니다. 누군가는 고들빼기 김치를 담기도 하고 비름나물을 맛나게 무쳐서 먹는다 하더라도, 이 풀(나물)을 뜯어서 먹을 일손이 없으면 그저 잡풀로 여길 만합니다.


  누군가는 책에서 길을 찾지만, 누군가는 책에서 길도 삶도 뜻도 못 찾아요. 누군가는 책 하나 고맙게 가슴에 안아 아름다운 이야기 길어올리지만, 누군가는 책 만 권 거머쥐어도 가슴을 북돋우는 사랑스러운 넋 살찌우지 않아요. 책을 읽기에 더 대단하지 않습니다. 책을 모르기에 덜 떨어지지 않습니다. 삶이 있으면 사랑과 꿈과 책이 나란히 있어요. 삶이 없으면 사랑도 꿈도 책도 아무것도 없어요. 스스로 배우려 할 때에 배웁니다. 스스로 가르치려 할 때에 가르칩니다. 스스로 글을 쓰려 하니까 글을 씁니다. 스스로 책에서 길을 찾으려 하는 만큼 책에서 길을 찾아요. 책을 쓰는 동안 생각을 깨우고 마음을 일으킵니다. 4346.8.13.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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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내버스 안 온 날

 


시골서 버스 손님
얼마 없어
군내버스 곧잘
큰길로만 휙 지나가고
고을 안쪽 굽이길은
안 들어오기도 한다.

 

마침 오늘
땡볕 내리쬐는 한여름
팔월 칠일 저녁 다섯 시,
아이 둘 비지땀 흘리며
마을 어귀서 노는데
이십 분 지나도록
버스도
아무 자동차도
안 지나간다.

 

아이들 큰아버지 찾아오는 오늘
아이들과 읍내로
마중가는 길인데
한참 기다리다가
택시를 부른다.

 

단골 택시삯은 13000원.
군내버스를 탔다면 1500원.

 


4346.8.7.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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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애(厚愛) 2013-08-13 11:19   좋아요 0 | URL
참 좋은 시입니다.^^
탐 나네요.

파란놀 2013-08-18 08:37   좋아요 0 | URL
아, 고맙습니다~~~ ^^
 

군내버스 꾀꼬리

 


  시골집 떠나 마실을 나오는 길, 큰아이가 군내버스에서 조잘조잘 노래를 부른다. 스스로 가락과 노랫말 지어 부르다가는, 즐겨부르는 몇 가지 노래를 이어서 부른다. 군내버스는 오늘 따라 조용하다. 할매들도 할배들도 그저 조용히 타고 읍내로 간다. 우리 아이들은 어떤 마음 되어 이렇게 노래를 한껏 부르면서 군내버스를 타고 읍내로 나올 수 있을까. 나는 이 아이들한테 어떤 빛을 물려주고, 이 아이들은 어버이한테 어떤 꿈을 이어주는 하루일까. 4346.8.13.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아빠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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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읽고 싶은 글

 


  시골마을에서는 아이가 읽어 달라 얘기하는 ‘글 적힌 알림판’이 드물다. 도시로 나들이를 나오니, 이곳에도 글 저곳에도 글이다. 그런데, 시외버스 걸상 뒤판에 적힌 글을 비롯해, 도시에 가득한 글은 온통 광고하는 글이다.


  여섯 살 큰아이는 한글을 꾸준히 익히면서 새롭게 보는 글을 즐겁게 읽고 싶은 마음이다. 그러나 이와 달리 우리 사회를 이루는 어른들은 돈을 더 벌도록 물건을 더 팔고 싶은 광고와 홍보만을 꾀하는 글판(알림판)을 붙인다.


  아이와 함께 누구나 즐겁게 바라볼 만한 글판은 어디에 있을까. 삶을 밝히면서 사랑을 빛내는 글을 붙이면서 마을과 보금자리를 돌보려는 어른은 몇이나 있을까. 어른들은 어떤 글을 써서 둘레 사람들한테 읽히려고 하는가. 4346.8.13.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글쓰기 삶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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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2014년에 '7~8살 어린이 첫 국어사전'을 쓸 생각입니다. 그리고 2015년에는 '초등 낮은학년 국어사전'을 쓰려고 합니다. 지난 1994년부터 그러모은 온갖 국어사전과 자료를 바탕으로, 쉬우면서 즐겁고 아름답게 읽는 국어사전을 쓰려고 합니다.

 

지난 스무 해에 걸쳐 그러모은 자료가 넉넉하지만, 아직 못 갖춘 자료가 몇 가지 있습니다. 그리고, 국어사전을 쓰는 동안 다른 '글삯벌이'는 거의 할 수 없는 만큼, [국어사전 집필기금 모으기]를 해야겠다고 느낍니다.

 

여러 학술기금이나 문화재단기금이 있기에, 이곳저곳 알아보았지만, '국어사전 쓰는 일'은 '전문 영역'이라고 여겨, 대학교 관련학과 졸업장이나 대학원 석사학위를 증빙자료로 바라곤 합니다. 나는 고졸학력으로도 '보리국어사전 엮는 편집장'으로 일했고, '국립국어원 한글문화학교 강사'라든지 '한글학회 공공언어순화지원단 단장'을 했지만, 이런 경력으로는 '국어사전 집필기금'을 받기가 너무 어렵고, 현실로는 '불가능'이로구나 싶습니다.

 

어떻든, 시골에서 아이들과 살뜰히 지낼 살림돈을 어느 만큼 건사할 수 있는 테두리에서 국어사전을 조금이나마 느긋하게 쓰고 싶은 마음입니다. 아무튼, 오늘부터 '국어사전 쓰기'를 할 생각이고, 2014년 한글날에 '7~8살 어린이 첫 국어사전'을 선보이려고 해요. [국어사전 집필기금]에 한손 거들어 주는 분들 모두한테는 이 책이 나오면 정갈하게 쓴 손글씨 담은 책을 선물로 드리려 합니다. 얼마나 어떻게 모아야 할는지 아직 모르겠지만, 길은 틀림없이 있을 테지요.

 

항공방제 대피로 고흥을 떠나 여러 날 지내면서 곰곰이 생각하면서, 바지런히 국어사전을 쓰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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