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밥

 


밭둑에 자라는 풀
숲에 돋은 버섯
들에 난 열매

 

하나씩 톡 따서
살살 혀로 굴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데

 

콕 찌르듯 아리지 않은
쌉쌀한 맛과 내음이면
두고두고
나물 삼는다.

 


4346.8.22.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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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그림놀이] 하늘고래 (2013.9.8.)

 


  다른 두 식구 잠든 결에 대청마루에 종이 펼치고 크레파스통 연다. 큰아이는 아버지 옆에 엎드려 함께 그림을 그린다. 아버지는 고래를 그리기로 한다. 큰아이는 저랑 어머니 모습을 그린 뒤, 아버지처럼 ‘하늘 나는 고래’를 그린다. 아버지는 촘촘하게 별을 그리고 무지개하늘 바르느라 품이 많이 들고, 큰아이는 어느덧 세 번째 그림까지 그린다. 네 손도 참 빨라졌구나. 아버지 손이 오늘은 너무 더디었나? 하기는. 고래가 바닷물 철썩이면서 첨벙 날아오르기까지 오래 걸리잖니. 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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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꽃비녀

 


  옆지기가 미국 람타학교에서 한국으로 돌아온 뒤, 네 식구 처음으로 읍내마실을 다녀온다. 읍내 버스역에서 버스를 기다리는데, 가방을 내려놓고 쉬는 바로 앞으로 하얀 옷 차려입은 할머니가 힘들게 앉으신다. 하얀 옷 할머니는 머리카락이 거의 다 빠져 아주 듬성듬성하다. 그러나, 숯이 얼마 안 남은 머리카락을 묶어 비녀를 꽂았다. 비녀에는 꽃무늬 하나 앙증맞게 깃든다.


  어느 시골마을에서나 ‘아줌마 파마’라 하는 ‘보글보글 머리’를 한 할매만 많은데, 꽃무늬 깃든 은비녀 꽂으며 지내는 할매를 아주 오랜만에 만난다. 꽃비녀 할머니, 앞으로도 가끔 읍내마실 누리시면서 아름다운 봄과 여름과 가을과 겨울 즐겁게 마주하시기를 빌어요. 4346.9.9.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책과 헌책방과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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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아이 14. 2013.7.24.

 


  꽃대 껑충 자라 아이들 키뿐 아니라 어른들 키만큼 오르고 나서야 꽃송이 벌리는 꽃이 있다. 꽃대 땅바닥에 붙듯이 살짝 돋고는 나즈막하게 피어나 아이도 어른도 쪼그려앉아 가만히 고개를 숙여야 들여다볼 수 있는 꽃이 있다. 키다리 나리꽃을 만난다. 키다리 나리꽃과 마주하는 아이는 키도 손도 안 닿는다. 꽃송이를 들여다보고 싶으나, 꽃내음을 맡고 싶으나, 도무지 안 된다. “얘야, 꽃대를 살며시 쥐고 가만히 당겨 보렴. 꽃대가 안 부러지게 살살 당기면 돼.” “그래?” 꽃대를 살그마니 붙잡아 저한테 당기는 아이가 꽃송이를 들여다보다가 꽃내음을 맡는다. “알겠니? 싱그러운 여름빛이 바로 이 꽃송이에 깃들었단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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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쪽지 2013.7.24.
 : 나리꽃 자전거

 


- 아이들과 놀기란 아주 쉽다. 그저 마음을 홀가분하게 열고 아이들하고 놀면 된다. 아이들은 아주 놀랍거나 대단한 깜짝잔치를 베풀어 주어야 반기지 않는다. 아이들은 자전거에 태워 가까운 면소재지 우체국 다녀오는 길로도 즐거워 한다. 그러면, 자전거는? 대단한 자전거를 몰아야 아이들과 다닐 수 있지 않다. 튼튼한 자전거라면 다 즐겁다. 여느 짐자전거라면 뒷자리에 방석을 깔아 아이 하나 앉힐 만하고, 손잡이와 안장 사이에 조그마한 걸상을 놓아 아이 하나 더 앉힐 만하다. 돈을 조금 들일 수 있으면 자전거수레 하나 장만할 수 있다. 아이 태우는 자전거수레는 20∼30만 원이면 장만할 수 있다. 우리 집 아이는 둘이고, 큰아이는 여섯 살 되면서 두 아이를 자전거수레에 나란히 못 태운다. 큰아이 몸이 많이 큰 만큼 따로 샛자전거를 붙여서 달린다. 샛자전거는 10∼20만 원 즈음 헤아리면 장만할 만하다. 이만 한 값을 비싸다고 여긴다면 가없이 비쌀 테지. 그런데, 이만 한 값은 자동차 기름 몇 번 넣을 만한 값일 뿐이다. 자가용을 덜 타고 자전거를 장만해서 아이들과 즐겁게 삶을 누릴 적에 얻는 보람과 빛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 돈으로 셀 수 없는 웃음과 이야기를 낳는다.

 

- 한여름 더위가 한풀 꺾이려는 너덧 시 즈음 아이들을 부른다. “얘들아, 이제 땡볕이 덜 따가우니 자전거 탈까?” ‘자전거’ 소리에 작은아이가 먼저 고개를 홱 돌려 쳐다본다. “자정거? 자정거 타자!” 하면서 부리나케 마당으로 내려선다. 큰아이도 바로 따라온다. 수레와 샛자전거 붙인 자전거를 마당에 내려놓으니 작은아이는 누나가 앉는 샛자전거에 붙은 무당벌레 딸랑이를 만진다. 아이야, 네가 무럭무럭 자라서 샛자전거에 앉을 수 있으면 이제 네가 이것 늘 만질 수 있어. 그때에 네 누나는 혼자서 따로 자전거를 몰 수 있겠지.

 

- 소포꾸러미를 수레에 싣는다. 물을 챙긴다. 자, 이제 달릴까. 우체국으로 신나게 달리는 길에 호덕마을과 원산마을 들판 맞닿는 자리에 핀 나리꽃을 본다. 마을 어르신들이 틈틈이 풀베기를 하느라 해마다 몽땅 베여 죽는데, 용하게 해마다 다시 꽃대를 올려 꽃을 피운다. 땅에 뿌리박은 숨결이란 이렇게 씩씩할까. 마을 어르신들은 어느새 논둑이나 밭둑에 이처럼 고운 꽃 피어나도 썩 반기지 않는데, 집안 마당 한쪽에 일구는 꽃밭에서만 꽃을 보려 하시는데, 너희 들나리(들에서 피는 나리)는 기운차고 다부지게 살아가는구나.

 

- 우체국에서 소포를 부친다. 소포를 부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까 본 나리꽃 앞에서 자전거를 세운다. 큰아이한테 꽃내음 맡아 보라 이야기한다. 키 껑충 자란 나리꽃을 보려고 꽃대를 살살 잡아 끌어당긴다. “아, 냄새 좋다!” 냄새를 맡고 또 맡는다. 냄새를 맡고 자꾸 맡는다. 얘들아, 이 여름 지나고 가을이 와서 다시 너희가 싹둑 베이더라도, 이듬해 여름에 또 이렇게 어여쁜 꽃잔치 베풀어 주렴. 언제나 씩씩하고 다부진 고운 빛으로 우리 마을에 꽃빛을 나누어 주렴.

 

- 집에 닿는다. 큰아이한테 대문 열어 달라고 말한다. 큰아이는 콩콩 달려간다. 대문을 연다. 착하고 예쁘다.

 

(최종규 . 2013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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