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밥 먹자 33. 2013.8.30.

 


  여러 달 떨어져 지낸 어머니와 만나기 하루 앞서, 아주 단출하게 아침밥을 차린다. 퍽 단출하게 차린 밥이라 큰접시에 밥을 푸고 무와 오이를 썬 다음 달걀 한 알 올린다. 작은아이가 냉큼 달걀부터 집어서 먹으려 하기에, “보라야, 아직 다 안 차렸으니 조금 기다리렴.” 하고 말한다. 미역국을 옆에 놓고, 돈나물 뜯어서 헹군 뒤 밥접시 한쪽에 올린다. “자, 이제 먹자.” 이제 밥술을 들려는데, 미국에서 석 달 공부 마치고 일산 할머니 댁으로 돌아온 옆지기가 전화를 건다. 아이들은 밥을 먹다 말고 전화를 받는다. 그래, 너희한테는 어머니 목소리가 밥이 되겠지. 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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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함께 - 고운 빛을 곱게

 


  언젠가 ‘가난한 골목동네 골목사람 모습’을 누군가 흑백필름으로 찍은 사진을 본 적 있다. 이 사진에 나오는 가난한 골목동네는 흙바닥이었다. 시멘트나 아스팔트로 길바닥을 깔기 앞서이다. 서울 마포쯤 가난한 골목동네 사진이었다고 떠오르는데, 이 사진들 가운데 아이들 뛰노는 작은 집에서 마당에 기저귀와 옷가지 빨랫줄에 넌 사진이 있었다. 때는 봄이라, 흙으로 된 길바닥 곳곳에는 풀이 돋았다. 나는 이 사진을 보고는 ‘흑백필름만 있던 옛날’이 아니라 ‘칼라필름이 그리 비싸지 않던 무렵’이니, 이와 같은 모습은 무지개빛이 또렷하게 드러나도록 찍을 때에 한결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사진이 되겠다고 느꼈다. 아니, 이렇게 예쁘게 살아가는 예쁜 사람들 예쁜 빛을 왜 흑백으로만 찍으려 하는지 궁금했다.


  다큐사진은 흑백이어야 하는가? 가난한 사람들 골목동네는 흑백으로 찍어야 맛이 살아나는가?


  사진길 걷는 사람들은 스스로 틀을 깨야 한다고 느낀다. 다른 누군가 세운 틀이 있으면 그 틀까지 깨고 새로운 빛과 새로운 아름다움과 새로운 사랑을 찾아 씩씩하게 사진 한길 걸을 노릇이라고 느낀다.


  바깥에서 구경꾼 눈길로 바라본다면 ‘가난한 골목동네’이다. 그렇지만, 이 동네에서 살아가는 사람, 이른바 ‘주민’이나 ‘동네사람’ 눈길로 바라본다면, 아이들 예쁘고 어버이도 예쁜 살가운 보금자리이다. 봄바람에 기저귀 나부끼고 봄나물 돋는 골목동네 사랑스러운 빛을 느껴야지. 이 빛을 흑백으로 뭉개지 말아야지.


  흑백사진이 ‘빛을 뭉개는 사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흑백사진을 아무 자리에서나 찍으면 빛을 뭉갠다. 칼라사진을 아무 자리에서나 찍으면 빛이 어지럽다. 흑백도 칼라도 알맞다 싶은 자리에 알맞게 써야 한다. 이때에는 흑백이 낫고 저때에는 칼라가 낫다고 할 수 없다.


  흑백필름으로 찍은 사진으로도 얼마든지 싱그러운 봄빛을 담을 수 있다. 빛과 삶과 꿈과 사랑을 한데 어우르면서 ‘사진에 담는 사람들이 바로 내 이웃이면서 나 스스로’라고 깨달으면, 어떤 필름, 또는 어떤 디지털파일로 찍든, 사진에 고운 빛을 곱게 담을 수 있다. 4346.11.12.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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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모모 2013-11-12 1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그렇네요. 왜 흑백으로만...?
찍는 사람 눈에는 그곳이 잿빛으로만 보였나봐요.
제가 흑백사진을 안 좋아해요.
알록달록한 색깔 보는 재미가 없어져서~

파란놀 2013-11-12 13:03   좋아요 0 | URL
음, 좋은 말씀이에요.
잿빛으로만 보여서 흑백을 찍는다고도 할 수 있네요.
고맙습니다.
 

고흥집 26. 빨래빛 고운 2013.5.1.

 


  아이가 있는 집은 빨래빛이 한결 곱다. 아이들한테 입히는 옷은 알록달록 어여쁘기 때문이다. 곰곰이 헤아려 보면,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들도 알록달록 어여쁜 빛이 흐드러지는 옷을 입을 만하다. 아이도 어른도 아름다운 빛을 실컷 누리면서 싱그러운 풀과 파란 하늘하고 사이좋게 어울리면 날마다 즐겁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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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순이 2. 빨래 잘 개지 (2013.7.27.)

 


  “벼리야, 빨래 같이 개자.” “왜요?” “왜기는. 이 옷들 다 너희 옷이잖니. 아버지가 빨래를 해서 다 말렸으면 너희 옷은 너희가 갤 줄 알아야지.” “아휴. 알았어요.” “아휴가 뭐니. 벼리는 예쁜 아이 아니니?” “응, 예쁜 아이야.” “예쁜 아이가 입는 예쁜 옷 아니니?” “응.” “그러면, 예쁜 옷을 예쁜 아이가 예쁘게 개야지.” 빨래를 개는 두 사람 곁에서 산들보라가 부채질을 해 준다. 폭폭 찌는 한여름 방에서 빨래를 천천히 갠다. 다 갠 옷가지를 아이들 그림 언저리에 올려놓는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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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순이 1. 설거지 하겠어 (2013.7.3.)

 


  키가 제법 자라 앉은뱅이걸상 받치고 올라서면 딱 설거지를 할 만한 키가 된다. 아직 수세미질이 서툴고 물을 너무 많이 쓰는 설거지이지만, 이럭저럭 보아줄 만하다. 때로는 큰아이 몰래 다시 설거지를 하지만, 아이로서는 살림하기보다는 놀이하기로 여기는 설거지이니 그대로 지켜보기로 한다. 아이더러 설거지를 하라고 부르지 않는다. 아이 스스로 설거지 하고 싶다 할 적에 말리지 않는다. 수저는 도마에 올리고 접시는 시렁에 올리며 천천히 천천히 설거지를 한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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