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쪽지 2013.12.19.
 : 된바람 실컷

 


- 우체국으로 소포를 부치러 간다. 길을 나서려고 자전거를 마당에 내려놓는데, 바람이 몹시 드세다. 바람이 어디에서 어디로 부는가 살핀다. 뭍에서 바다로 분다. 된바람이다. 오늘 된바람은 퍽 드세어 나무가 휘청휘청한다. 가는 길은 몰라도 오는 길은 몹시 애먹겠다고 느낀다. 하기는, 겨울바람이잖은가. 겨울에는 면소재지 들렀다가 집으로 돌아올 적에 이 된바람을 고스란히 맞아야 하잖은가.

 

- 작은아이 타는 수레에 짐을 싣는다. 이동안 두 아이는 마당에 막대기와 돌을 길게 깔더니 밟기놀이를 한다. 막대기와 돌을 징검다리 삼는다. 그러니까, 마당을 넓은 냇물로 삼는달까. 물살이 거센 냇물에 막대기와 돌을 놓고 살금살금 건너는 놀이를 한다. 너희는 그런 생각을 어떻게 했니. 어쩜 그런 생각을 다 해내니. 그러나 아이라면 이렇게 놀이넋이 있다고 느낀다. 무엇이든 놀이가 된다. 어떻게 하든 놀이로 즐긴다.

 

- 자전거를 대문 앞으로 뺀다. 큰아이가 저기 앞까지 걸어가자 한다. 대문을 닫고 저기 앞까지 걸어가니, 이제는 마을 어귀로 걸어가자 한다. 마을 어귀에서도 두 아이는 한참 콩콩대며 논다. 살짝 쉴 겨를조차 없구나. 몸에서 샘솟는 기운이 이렇게 대단하구나.

 

- 도서관에 들러 책 몇 권 챙긴다. 아이들이 그림을 그려 다 채운 그림종이꾸러미를 갖다 놓는다. 집에 그대로 둘까 하다가, 아이들 그림은 꾸준히 쌓이는데, 둘 자리가 모자란다. 서재도서관 한쪽에 아이들 그림꾸러미를 두기로 한다. 이동안 아이들은 건넛마을 도랑에서 지내는 오리를 구경하겠다고 저희끼리 달려갔다가, 오리가 없다며 쭐래쭐래 돌아온다.

 

- 면소재지로 달린다. 이동안 큰아이가 작은아이한테 말을 가르친다. “보라야, 안 추워? 보라야, 안 추우면 안 춥다고 ‘네’ 해야지.” “네!” “보라!” “보라!” “산들!” “산들!” “사름!” “사름!” “벼리!” “벼리!” “최!” “최!” “종!” “종!” “규!” “규!” “최종규!” “최종규!” “어머니!” “어머니!” “엄마!” “엄마!” “전!” “전!” “은!” “은!” “경!” “경!” “전은경!” “전은경!” “구름!” “구름!” “하늘!” “하늘!” “아버지, 보라 말 잘 해요. 누나가 하는 말 따라하네.” 큰아이가 마음에 담는 말이 입으로 살몃살몃 흐르면서 노래가 된다. 이 노래를 작은아이가 귀로 듣고 가슴으로 받아안아 새로운 노래로 빚는다. 두 아이는 서로 아끼고 믿으면서 하루하루 살아간다.

 

- 우체국에서 편지를 부치고 가게에 간다. 가게 들머리에 까만 자동차가 스르르 선다. 아무 대책이 없는 자동차다. 어쩜 저렇게 가게 들머리에 바싹 자동차를 세우나. 저렇게 하면 다른 사람들 어떻게 드나들라고. 자동차이든 자전거이든 타고 가게를 찾는 다른 사람은 어쩌라고. 우체국에 갈 적에도 자동차들이 아무렇게나 서곤 한다. 그야말로 저 혼자 볼일 보겠다는 배짱이다. 한쪽으로 자동차를 붙인다든지, 사람이 지나갈 틈을 마련하지 않는다. 시골 우체국이나 가게 둘레에는 빈터가 많은데 왜 이렇게 자동차를 댈까. 자동차를 모는 이들은 엉터리로 자동차를 대놓고도 외려 저희가 큰소리를 내기 일쑤이다. 이런 이들을 볼 적마다 운전면허를 어떻게 주었는지 궁금하고, 자동차를 장만할 적에 ‘소양 교육’을 안 시키는지 궁금하다. 자동차를 모는 이들은 적어도 해마다 한두 차례쯤 ‘마음가짐 교육’을 받아야 하리라 느낀다.

 

- 자전거를 달려 집으로 돌아간다. 맞바람이 드세다. 겨울에 부는 된바람이다. 나는 앞에서 이 바람을 이럭저럭 견딘다 하지만 큰아이는 샛자전거에서 춥겠다. 동호덕마을에 이르러 자전거를 세우고 아이들 옷깃을 여민다. 큰아이는 길가에 수두룩한 억새 가운데 한 포기를 가리키며 꺾어 달라 한다. 꺾어서 내민다. “아이, 좋아!” 하면서 콩콩 뛰는 큰아이가 사랑스럽다. 너는 한겨울에도 꽃아이답게 놀 줄 아는구나. 된바람이 모질어도 한손에 억새풀을 꼬옥 쥐고는 씩씩하게 선다.

 

- 숨을 가쁘게 몰아쉬면서 자전거를 밟는다. 기어를 2*4까지 내리지만 자전거가 앞으로 나아가기 힘들다. 겨울철 된바람이 불기 앞서까지는 이 길을 3*5로 달렸지만, 앞으로 새봄 찾아올 적까지 이렇게 된바람 실컷 먹는 자전거를 달려야 할 테지. 훅훅 숨을 몰아쉬면서 하늘을 바라본다. 구름이 아주 빠르다. 파랗게 빛나는 하늘을 며칠만에 본다. 해가 나왔다가 들어갔다가 하는데, 해가 나오면 그럭저럭 따스하다. 해가 구름 뒤로 숨으면 된바람이 더욱 모질다. 누렁조롱이를 본다. 멧비둘기를 본다. 이렇게 바람 세찬 날에 멧새는 어떻게 지낼까.

 

- 신기마을에서 동백마을로 접어드는 언덕마루에 선다. “자, 이제 다 왔구나. 잘 왔어.” “정말? 이제는 안 추워요.” 자전거는 스르르 내리막을 달려 마을로 접어든다. 아랫길에서 자전거를 세우고, 큰아이가 대문을 열어 준다. 마당에 자전거를 들인다. 작은아이는 잠에서 깨지 않는다. 큰아이는 오른손에 쥔 억새를 들고 집으로 들어가려 한다. “벼리야, 억새는 집 바깥에서 갖고 놀자.” “그래요? 그러면 억새 심어도 돼?” 꽃삽을 찾아 들고 마당 한쪽에 억새를 심는다고 땅을 쫀다. 이동안 작은아이를 품에 안고 잠자리에 누인다. 큰아이는 찬바람 부는데 아랑곳하지 않고 씩씩하게 땅을 쫀다. 땀으로 범벅이 된 웃옷을 벗고 찬물로 씻는다. 씻는 김에 빨래를 한다. 다 마친 빨래를 들고 마당으로 내려서니, 어느새 큰아이는 억새를 다 심었다. 억새풀을 가운데에 박고 흙을 예쁘게 모아 놓았다. 이렇게 해 놓고도 더 다독이고, “나, 억새한테 물 주고 싶어.” 한다. 물병을 통째로 건넨다. 억새풀 둘레로 물을 졸졸 붓는다. 억새가 이리 옮겨 와서 네 손길을 받으며 곱게 서는구나. 이 억새가 씨앗을 날려 이듬해에는 우리 집 마당 한쪽에 억새 물결이 일렁이려나.

 

(최종규 . 2013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꽃아이 25. 2013.12.18.

 


  자전거를 타고 우체국에 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된바람이 드세다. 아이들 옷깃을 여미려고 자전거를 세운다. 큰아이는 깡총깡총 뛰더니 억새 한 포기 꺾어 달란다. 억새 한 포기 꺾어 건넨다. 아주 좋아라 하며 다시 콩콩 뛴다. 앞으로 달리고 뒤로 걷는다. 즐겁구나. 억새 한 포기가 너한테 웃음을 듬뿍 베푸는구나. 네 웃음을 먹고 아버지도 기운을 내어 이 된바람을 신나게 누리며 자전거 발판을 굴러야겠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책아이 89. 2013.12.1.ㄴ 책을 만질 적에

 


  책을 만질 적에 무엇을 생각할까. 책에 찍힌 잉크를 생각할까. 책을 꾸민 겉싸개를 생각할까. 책으로 만든 종이를 생각할까. 책이 되어 준 나무를 생각할까. 책이 되어 준 나무가 자라던 숲을 생각할까. 책이 되어 준 나무가 자라던 숲에서 함께 살던 수많은 이웃 목숨과 숨결과 바람과 햇볕을 생각할까. 사람들은 나무를 빌어 이야기를 차곡차곡 담는다. 어른끼리 주고받는 이야기가 있고, 아이한테 물려주려는 이야기가 있다. 모든 이야기는 책이 될 수 있고, 무척 아름답구나 싶은 이야기이지만 막상 책으로 태어나지 못하기도 한다. 책을 손에 쥐는 아이는 어떤 이야기와 빛과 생각을 얻을까. ㅎㄲㅅㄱ

 

(최종규 . 201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책아이 88. 2013.12.1.ㄱ 밝은 볕과 책

 


  겨울에도 한낮에는 따사로우면서 밝은 볕이 드리운다. 서재도서관으로 나들이를 온 아이들이 한창 땀이 나도록 뛰어놀다가, 이제는 덥다고 하면서 조용히 서서 그림책을 펼친다. 아이들은 맨 먼저 실컷 뛰놀고, 실컷 뛰놀며 땀이 나면 살짝 쉬면서 하늘숨을 마시고 풀내음을 먹었다가, 이렇게 책 한 줄 읽으면 아름답고 튼튼하게 자랄 수 있겠지. ㅎㄲㅅㄱ

 

(최종규 . 201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똥을 밟는다

 


  면소재지 우체국을 들러 아이들과 가게에 가는 길에 자전거를 해코지하는 까만 자동차를 본다. 까만 자동차 사내는 온갖 거친 말씨를 주워섬긴다. 저이한테 똑같이 거친 말씨를 돌려줄까, 아니면 더 거친 말씨를 얹을까 하다가 이도 저도 안 하기로 한다. 나한테는 우리 두 아이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들한테는 아예 아무 말을 않고 대꾸도 없을 때가 가장 낫다. 이른바, 똥을 밟았다고 여기면 된다.


  자전거를 몰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생각한다. “똥을 밟았다”고 하는 말을 요즘 사람들은 “나쁜 일을 겪었다”고 할 적에 흔히 쓴다. 그런데, 이렇게 써도 될 말일까. 누가 이런 말을 쓸까.


  예부터 시골사람은 누구나 똥오줌을 거름으로 삼았다. 언제나 똥을 만지며 흙을 보살폈다. 시골에서 흙을 일구는 사람은 아이들을 낳아 돌보면서 아기 똥을 퍽 오랫동안 만진다. 어버이가 늙어 몸져누우면 어버이 똥을 꽤 오랫동안 만지기도 한다. 시골사람한테 똥은 하나도 지저분할 수 없으며, 더럽거나 나쁜 것이 안 된다. 삶에는 밥과 나란히 똥이 있기 마련이다.


  누가 똥을 나쁘게 바라볼까. 누가 ‘똥밟기’를 나쁜 일 겪었다는 뜻으로 썼을까. 시골에 살지 않거나, 흙을 만지지 않거나, 아이들을 돌보지 않거나, 늙은 어버이를 모시지 않는 이들이 바로 “똥을 밟았다” 같은 말을 쓰지 않았을까. 스스로 삶을 지을 줄 모를 뿐더러, 스스로 삶하고 동떨어진 이들이 함부로 쓴 말이 엉뚱하게 널리 퍼지지 않았을까. 오늘날 사람들은 거의 모두 시골하고 멀어지며 흙하고 등을 진 채 살아가니 이런 말이 얄궂게 퍼지는 셈 아닐까. 4346.12.19.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책과 헌책방과 삶)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