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구니 달 - 베틀리딩클럽 저학년 그림책 2001 베틀북 그림책 12
메리 린 레이 글, 바버리 쿠니 그림, 이상희 옮김 / 베틀북 / 2000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326

 


바람이 우리를 지켜봅니다
― 바구니 달
 바버러 쿠니 그림
 메리 린 레이 글
 이상희 옮김
 베틀북 펴냄, 2000.7.15.

 


  메리 린 레이 님이 글을 쓰고, 바버러 쿠니 님이 그림을 그린 《바구니 달》(베틀북,2000)을 읽으면, 책끝에 붙임말이 있습니다. 이 붙임말을 읽으면, 미국에서 나무를 잘라 바구니를 짜는 사람들은 거의 다 사라졌다고 합니다. 아니, 모조리 사라졌다고 해도 틀리지 않다고 합니다.


  그림책 《바구니 달》에서는 미국 숲 문화를 들려줍니다. 이 그림책을 읽는 내내, 나는 이 나라에서 송두리째 사라진 수많은 풀 문화와 짚 문화를 떠올립니다. 미국에서는 나무를 베어 바구니를 짜는 사람이 사라졌다면, 한국에서는 짚을 베어 바구니를 짜거나 둥구미를 엮는 사람이 사라졌습니다. 이제 한국에서는 바구니나 둥구미뿐 아니라, 섬이나 자리를 짤 만한 짚이 나오지 않습니다. 굵고 단단하며 길고 곧게 뻗은 예쁜 짚이 더는 나오지 않아요. 모두 농협에서 품종개량을 하는 바람에 ‘키 작고 짚 가늘며 거무튀튀한’ 짚만 있습니다. 그나마 이런 짚조차 가을걷이를 하면서 모조리 한 덩어리로 묶어 고기소 먹을 사료로 삼습니다.


.. 달이 완전히 둥글어질 때까지 아버지는 허드슨에 갖다 팔 바구니를 짭니다. 그러다 보름달이 뜨면 집을 나서지요. 우리 집엔 말도 없고 마차도 없어서 아버진 그 먼 길도 걸어 다니세요. 아주 늦게서야 집에 돌아오시는데, 둥근 달이 보름달이라야 캄캄한 밤길을 환하게 비춰 주거든요 ..  (6쪽)

 


  이 땅에서 바구니 짜고 짚신 삼으며 자리 엮는 사람이 사라진 까닭을 생각해 봅니다. 시골사람을 몽땅 도시가 잡아먹었기 때문입니다. 1950년대를 지나 1960년대를 맞이한 독재정권은 경제개발이라는 이름을 내세워 사회를 윽박지르려고, 또 몇몇 재벌을 키워 검은돈을 거머쥐려고 갖가지 특혜를 베풀며 공장을 때려지었습니다. 때려지은 공장에서 부속품처럼 아주 낮은 돈만 받고 일할 노동자가 있어야 하니, 시골에서 젊은이를 끌어모읍니다. 시골 아이를 도시로 보내도록 하려고 시골마을 두멧자락까지 작은학교를 끝없이 짓습니다. 학교를 다닌 아이들은 모두 ‘도시 예비 노동자’가 되어야 하는 길을 걷습니다. 시골에서 흙 파며 풀 먹는 삶은 ‘가난하고 나쁜 삶’인 듯 가르칩니다. 시골을 떠나 도시에서 공장일을 해야 효도가 되는 듯 가르칩니다. 이러는 한편, 시골을 떠난 젊은이 빈자리는 농약과 화학비료로 채우게끔 부채질을 하고, 비싼 농기계를 써서 젊은 일손 몫을 하도록 부추깁니다.


  이 나라 독재정권은 도시에 있는 공장 노동자로 쓰려고 시골사람을 도시로 끌어들이는 한편, 시골에 남은 사람들한테서 돈을 울궈내려고 농약과 화학비료를 사다가 쓰도록 이끕니다. 농협에서는 품종개량이라는 이름을 내걸며 씨앗을 농협에서 사다 쓰는 얼거리로 바꿉니다. 한편, ‘경지정리’를 내세워 시골마다 농기계를 안 쓰면 안 되는 틀로 바꾸지요.


  이렇게 되니, 적게 거두어 적게 먹고도 ‘돈 걱정을 안 하면서’ 오순도순 오붓하게 살던 마을이 하나둘 사라집니다. 그나마, 시골마을 작은학교조차 나라에서는 돈을 안 들이고 지었어요. 시골사람한테 땅을 스스로 내놓게 해서 작은학교 터를 마련하고, 작은학교 건물조차 시골사람 스스로 시멘트를 개고 벽돌을 쌓아서 짓도록 시켰어요. 그리고, 시골마다 학교를 떡하니 지은 뒤에는 온갖 월사금과 납부금을 거둬들였고, 아이들을 몽둥이로 다스리는 짓을 일삼았어요. 이동안 아주 ‘자연스럽게’ 시골에서는 짚으로 무언가 만드는 일이 사라집니다. 시골사람이 짚신 신는 일은 자연스럽지만, 짚신을 신으면 손가락질을 하며 놀려요. 고무신을 신어도 놀리니, 짚신을 누가 신겠어요. 짚이나 억새나 대로 엮은 돗자리는 ‘새마을운동’하고 동떨어진다면서, 짚으로 짠 바구니와 둥구미 또한 ‘새로운 문명이나 문화’하고 안 맞는다면서, 모두 불태우거나 거름더미에 던지도록 내몰았습니다. 나일론 돗자리를 쓰도록 시키고, 플라스틱 바가지와 그릇을 쓰도록 부채질했습니다.


.. 어른들이 바구니를 만드는 동안 어둠이 깃들고, 이런저런 얘기가 오갑니다. 가끔은 아버지가 말하고 가끔은 조 아저씨나 쿠엔 아저씨가 말하지요. 보통은 나무가 자기한테 들려줬다는 이야기를 하고 또 합니다. 나도 나무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어 보고 싶었어요 ..  (12쪽)

 


  숲에서 조용히 살며 나무를 베어 바구니를 짜던 이들은 바구니만 짜지 않았습니다. 이녁이 먹을 밥을 이녁 스스로 흙을 만지면서 거두었습니다. 이녁이 지낼 집 또한 숲에서 나무를 조금씩 얻어서 조그맣고 조촐하게 지었습니다.


  숲에서 바구니 짜던 이들은 쓰레기가 없습니다. ‘쓰레기’라는 낱말조차 없었겠지요. 서로 이웃이 되어 사랑스러운 마을을 이루었겠지요. 서로 아끼고 돌보는 평화로운 삶터를 이루었겠지요. 흙을 만지고 나무를 아끼며 바구니를 짜는 이들 마음속에는 ‘전쟁’이나 ‘경제개발’ 따위는 없습니다. 나무가 들려주는 노래를 듣고, 숲이 베푸는 노래를 즐기며, 흙이 가르치는 노래를 배웁니다.


  이 나라 한국에서 흙을 만지면서 짚을 짜거나 엮거나 삼은 시골사람은 풀이 들려주는 노래를 들었어요. 숲이 베푸는 노래를 즐겼지요. 골짜기와 바다와 냇물이 가르치는 노래를 배웠어요.


.. 무슨 일이 있었는지 털어놓자 엄마가 말씀하셨어요. “나무들은 우리 마음을 알 거야. 허드슨 사람들이 뭐라고 하건 신경 쓸 것 없단다.” ..  (25쪽)


  전문 가수가 불러야 노래가 아닙니다. 전문 작사가나 작곡가가 지어야 노래가 아닙니다. 텔레비전이나 라디오에 나와야 노래가 아닙니다. 노래방에서 부를 수 있어야 노래가 아닙니다.


  노래는 삶에서 태어납니다. 노래는 사랑으로 태어납니다. 노래는 꿈과 함께 태어납니다. 노래는 마알간 눈빛으로 부릅니다. 노래는 따스한 손길로 부릅니다. 노래는 고운 마음을 나누려는 넉넉한 넋으로 부릅니다.

 


.. “어떤 이들은 바람의 말을 배워서 음악으로 만들어 노래 부르지.” 조 아저씨가 계속해서 말했어요. “그리고 또 어떤 이들은 바람의 말을 듣고 시를 쓴단다. 우린 바람의 말로 바구니 짜는 법을 배웠지.” 그때 참나무 이파리 하나가 창고 안으로 날아 들었어요. “바람이 우릴 지켜보고 있었구나.” 하면서 조 아저씨가 덧붙였어요. “바람은 믿을 만한 존재가 누군지 알거든.” ..  (27쪽)


  바람이 우리를 지켜봅니다. 햇살이 우리를 지켜봅니다. 들풀이 우리를 지켜봅니다. 나무 한 그루가 우리를 지켜봅니다. 바닷물이, 냇물이, 도랑물이, 실개울이 우리를 지켜봅니다.


  구름이 우리를 지켜보고, 멧새가 우리를 지켜봐요. 작은 꽃이, 작은 벌레가, 작은 짐승이, 작은 개구리가, 작은 둠벙이, 모두 우리를 지켜봐요.


  가슴으로 함께 느껴요. 우리 가슴속에서 피어날 사랑을 저마다 곱게 느껴요. 마음으로 함께 어깨동무해요. 우리 마음밭에 뿌릴 씨앗을 저마다 즐겁게 헤아려요. 우리가 먹는 밥은 영양소가 아닌 사랑입니다. 우리가 하는 일은 직업이나 전문영역 아닌 사랑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물려받아 누릴 삶은 장래희망이나 진로계획이 아닌 사랑입니다. 4346.12.29.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댓글(2)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appletreeje 2013-12-29 09:55   좋아요 0 | URL
바버라 쿠니님의 <바구니 달>을 저도 참 좋게 읽었어요~
그림도 좋았고 이야기도 좋았습니다.
옮겨주신 27쪽의 말을 마음에 넣어 두었지요~*^^*

파란놀 2013-12-29 10:12   좋아요 0 | URL
이 그림책을 읽었나 하고 넘어갔는데
아무리 살펴도 도서관에 없더라구요.
이번에 장만하고 보니 예전에 안 장만했더라구요 ^^;;;

참말 27쪽, 아저씨가 들려준 '바람 이야기'가 아주 좋아요.
그리고, 그 좋은 이야기대로
우리들이 잊은 '우리 풀짚 문화' 이야기를
써야겠다고 깨달았어요.
 

아름다운 책도, 못난 책도

 


  아름다운 책이나 못난 책이 따로 있을까. 아름다운 사람이나 못난 사람이 따로 있을까. 그러나, 사람들은 곧잘 말한다. 저이는 참 아름다운 사람이야 하고. 저놈은 참 못난 녀석이야 하고. 우리 삶터에 아름다운 빛 드리우려고 힘쓰는 사람한테는 ‘아름다운 님’이라는 이름을 붙이기 마련이고, 우리 삶터를 짓밟거나 짓누르거나 어지럽히는 사람한테는 ‘못난 놈’이라는 이름을 붙이기 마련이다.


  그러면, 우리 삶터에 아름다운 빛 드리우려고 한몫 거드는 책일 때에 ‘아름다운 책’이 될까. 우리 삶터를 들쑤시거나 어지럽히거나 편가르기나 따돌림이나 괴롭힘 따위를 불러들이려는 책일 때에 ‘못난 책’이 될까.


  사랑이 없이 태어난 아이는 없다고 느낀다. 사랑을 못 받고 태어난 아이는 없다고 느낀다. 어머니 몸속에서 열 달 지내며 태어난 아이는 모두 사랑을 받았다. 엄마젖을 먹든 가루젖을 먹든, 씩씩하게 자라 어른이 된 사람들 모두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이 사랑을 전쟁으로 짓밟는지든지 독재와 군국주의로 짓누른다든지 하면서 바보짓을 저지른 사람이 있다. 이네들은 왜 바보짓을 일삼았을까. 돈으로 사람을 괴롭히는 사람이 있고, 얼굴 생김새나 학력을 따지면서 이웃을 들볶거나 해코지하는 사람이 있다. 이네들은 왜 이런 바보짓을 일삼을까.


  아름답다는 책이든 못나다는 책이든, 모두 나무를 베어 만든다. 숲에서 푸른 바람 베풀던 나무가 책으로 다시 태어난다. 책은 그저 책일 뿐이고, 나무는 그예 나무일 뿐이다. 책이 되어 준 나무는 ‘아름다운 책’이나 ‘못난 책’이 될 마음이 하나도 없다. 말없이 사람한테 몸을 맡기어 책이 되었을 뿐이다.


  혼자 살던 지난날에 가끔 ‘못난 책’이라 할 만한 책을 냄비 받침처럼 쓴 적 있으나, 도무지 이렇게 할 마음이 일지는 않았다. 남들은 으레 이렇게 한다니 나도 한 번 해 보았으나, 책이 되어 준 나무한테 미안해서 차마 책을 냄비 받침으로 못 쓰겠더라. ㅈㅈㄷ신문을 냄비 받침으로 쓴다는 분들도 있는데, 나로서는 ㅈㅈㄷ신문뿐 아니라 다른 신문이라고 그리 아름답다고 느끼지 않는데, 어느 신문으로도 냄비 받침을 쓰고 싶지 않았다.


  시골숲이나 시골들을 다니다 보면, ‘미국 자리공’을 곧잘 본다. 뿌리를 뽑고 뽑아도 다시 돋는다. 아무렴. 모든 풀은 자르고 잘라도, 태우고 태워도 다시 돋는다. 미국 자리공만 힘줄이 세지 않다. 개망초이든 망초이든 베고 또 베어도 얼마나 잘 자라는가. 민들레 또한 시골사람이 농약을 퍼부어 태워 죽이고 또 죽여도 그 자리에 씩씩하게 다시 올라온다. 쑥을 보아라. 뽑고 뽑아도 쑥쑥 다시 올라오지 않는가. 그나저나, ‘미국 자리공’을 볼 적에 저 풀을, 저 무시무시하게 번지는 서양풀을, 이 나라 숲과 들을 잡아먹을듯이 퍼지는 저 서양풀을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하다가도 그냥 지나친다. 낫으로 벤들, 발로 밟는들 무엇이 달라질까. 이 나라에 퍼진 ‘그야말로 끔찍한 것’들을 떠올리면 자리공은 아무것도 아닐 뿐 아니라, 자리공이든 다른 귀화식물이건 이 땅에서 푸른 바람을 베풀어 준다. 저 서양풀도 미국이건 어느 서양에서건 자랄 적에는 그 나라에서 푸른 숲을 이루어 온 지구별에 푸른 숨결을 베풀어 주지 않았겠는가.


  한국사람이 고추장을 마치 한국 먹을거리인 양 여기지만, 고추가 한겨레 여느 사람이 널리 먹는 푸성귀가 된 지는 아직 백 해가 안 된다. 감자도 고구마도 토마토도 배추도 모두 다른 나라에서 들어왔다. 한겨레가 김치를 먹은 역사는 아직 천 해가 안 된다. 오백 해쯤 되었을까. 솜을 얻는 목화를 언제 들여왔는가. 목화 또한 귀화식물이다. 늦겨울부터 온 시골마다 노란물결 일렁이도록 하는 유채가 한국땅에 들어온 지 그리 오래지 않다. 배추보다는 오래되었다지만, 이렇게 군청마다 잔뜩 뿌린 지는 스무 해나 서른 해쯤 되었을까.


  나는 내 마음을 사로잡는 아름다운 책을 즐겁게 읽고 싶다. 내 마음을 사로잡지 못하는 책은 굳이 읽고 싶지 않으며, 사들일 뜻이 없는데다가, 누가 선물해도 애써 들추고 싶지 않다. 이 지구별에 태어나는 아름다운 책들만 읽어도 이 아름다운 책을 모두 읽을 수 있겠나.


  그러니까, 어떤 나무이든 지구별을 살찌우는 푸른 바람이다. 어떤 책이든 누군가를 밝히고 빛내며 보살펴 주는 살가운 마음벗이다. 나는 내 마음에 벗이 될 아름다운 빛인 책을 사귀고 싶다. 아름다운 책이나 못난 책을 따로 가르지 못한다. 그저 내 마음에 닿는 책을 나한테 아름다운 책이라 여기면서, 다른 책들은 다른 책들대로 누군가한테 아름답게 스며들 책이라 느낀다.


  다 다른 사람들한테 다 다르게 아름다운 책들이 태어날 테지. 그러나, 전쟁무기 같은 책만큼은, 아니 전쟁무기가 되는 책만큼은, 농약이나 화학비료가 되는 책만큼은, 핵발전소나 핵폐기물 같은 책만큼은, 폭력과 욕설 같은 책만큼은, 불평등과 차별 같은 책만큼은, 계급이나 학벌 같은 책만큼은, 부디 태어나지 않기를 빈다. 아름다운 나무로 빚은 종이에 아름다운 이야기를 실어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면 얼마나 사랑스러울까 하고 꿈꾼다. 4346.12.29.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책 언저리)

 

 


댓글(2)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appletreeje 2013-12-29 10:06   좋아요 0 | URL
예~저도 제 마음에 벗이 될 아름다운 빛인 책을 사귀고 싶습니다~
다 다른 사람들에게 다 다르게 아름다운 책들이 태어나겠지요.^^
그런데 '미국 자리공'은 어떤 풀인가요?
이름도 처음 들어보고 어떻게 생긴 풀인지도 잘 몰라서요..^^;;

파란놀 2013-12-29 10:13   좋아요 0 | URL
사진 몇 차례 찍기는 했지만
어디에 숨었는지 찾기는 힘들고 ^^;;;
자리공 이야기를 하려고
사진을 여러 차례 찍으면서
늘 다른 이야기에 밀려
아직 못 풀었네요 ^^;;;

우리 '느낌(정서)'하고는 안 맞는
열매를 맺고, 좀 ... 거석한 느낌이랍니다.
 

 

  지난 2000년 6월, 아주 뜻깊은 사진책이 하나 나왔지만, 그즈음 이 책을 차마 장만하지 못했다. 사진은 좋은데, 사진마다 엉뚱하게 붙인 뚱딴지 같은 말 때문이었다.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라는 백승종 님이 붙인 ‘사진말’은 몽땅 ‘추리소설’이었다. 이를테면, “동네 아저씨처럼 친근하게 느껴지는 저이들 중에도 전쟁의 광란에 야수같이 미쳐 날뛴 사람들이 있었을 거라니, 도무지 믿고 싶지 않은 사실이다(247쪽).”, “과일 궤짝에 사과나 배를 가득 담아 머리에 이고 어렵게 먼길을 걸어 여기까지 나왔는데, 별로 팔리지를 않아 걱정이다(117쪽).”, “백 장 가량이나 되는 다양한 사진 기록을 통해 우리는 사회주의 조국 건설로 가는 북한의 힘겹고 참담한 역사를 한 번 뒤쫓아가 보려고 한다(머리말).” 같은 말들. 처음부터 끝까지 북녘을 깎아내리거나 비아냥거리는 말을 넣는다. 동독 도편수 에리히 레셀이라는 사람이 북녘사람 여느 삶을 사진으로 담을 적에는 깎아내리거나 비아냥거리는 마음이 하나도 없었을 텐데, 이 사진을 어떻게 손에 넣어 남녘에서 사진책으로 내놓는 사회학과 교수이자 역사학자라는 분은 온통 깎아내림말과 비아냥뿐이다. 북녘 학자나 지식인이 남녘땅 여느 사람들 사진을 앞에 놓고 온통 깎아내리기만 하거나 비아냥거리기만 하면 즐거울까? 북녘 정치를 비판하고 싶다면 비판할 노릇이다. 그러나, 비아냥거려야 하지 않으며, 추리소설을 쓸 까닭도 없다. 사진은 사진 그대로 읽어야 한다. 《동독 도편수 레셀의 북한 추억》은 책이름 그대로 에리히 레셀이라는 사람이 1950년대 북녘에서 일하며 만난 ‘정치하고는 동떨어진 여느 시골사람과 도시사람’ 모습을 ‘애틋한 이야기(추억)’로 담은 사진을 엮은 책이다. 이 책에 실린 사진을 들추면서 서로 만나지 못하는 우리 이웃과 한겨레를 돌아볼 노릇이지, 싸잡아 헐뜯는 데에 이 사진을 쓰는 일은 누구한테 도움이 될까. 북녘과 남녘 정치가 이토록 엉망진창인 탓을 누구한테 돌리려 하는가. 비아냥과 손가락질과 편가르기를 하는 학자와 지식인이 분단과 반민주와 국가보안법과 불평등과 온갖 차별을 부채질하거나 끌어들이지 않았을까? 부디 이 예쁜 사진책을 고침판으로 다시 펴낼 수 있기를 빈다. 지식인이건 학자이건, 쓸데없는 붙임말은 모두 잘라내고, 그예 우리 이웃이자 한겨레인 북녘땅 여느 사람들 삶을 수수하고 투박하게 만날 수 있도록 새로운 책으로 곱게 엮어서 선보이기를 빈다. 사진들이 너무 아깝다. 4346.12.29.해.ㅎㄲㅅㄱ


7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동독 도편수 레셀의 북한 추억
백승종 / 효형출판 / 2000년 6월
15,000원 → 13,500원(10%할인) / 마일리지 750원(5% 적립)
2013년 12월 29일에 저장
품절
아버지, 난 누구예요- n세대가 쓰는 이 땅의 작은 역사
백승종 엮음 / 궁리 / 2000년 8월
8,000원 → 7,200원(10%할인) / 마일리지 400원(5% 적립)
2013년 12월 29일에 저장
절판

그 나라의 역사와 말- 일제 시기 한 평민 지식인의 세계관
백승종 지음 / 궁리 / 2002년 8월
15,000원 → 13,500원(10%할인) / 마일리지 750원(5% 적립)
2013년 12월 29일에 저장
절판

정감록 미스터리
백승종 지음 / 푸른역사 / 2012년 8월
18,000원 → 16,200원(10%할인) / 마일리지 900원(5% 적립)
2013년 12월 29일에 저장
품절


7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시로 읽는 책 94] 학교 다니기

 


  신나게 놀고, 사랑을 예쁘게 나누며,
  어깨동무하는 꿈 서로 만나는,
  배움터.

 


  내 어릴 적 학교는 하루라도 빠지면 몽둥이로 찜질을 하는 곳이었습니다. 한 주에 두 차례, 때로는 두어 차례 아침모임을 운동장에서 하는데, 앞옆뒤로 나란히를 시키며 줄서기를 해야 했고, 한 시간 남짓 덥든 춥든 꼼짝않고 서지 않으면 뺨을 맞거나 정강이 걷어차이는 곳이었습니다. 군인이 되어 무엇이든 위에서 시키는 대로 따르도록 길들이는 곳이 학교였습니다. 학교 밖으로 나가서 삶을 배울 수도, 사랑을 나눌 수도, 꿈을 꿀 수도 없게 꽁꽁 가두었습니다. 학교를 빠지면 안 되듯이 회사도 빠지면 안 되겠지요. 시키는 대로만 배워야 하듯이, 시키는 대로만 따라야 하겠지요. 그렇지만, 놀지 못하고, 사랑하지 못하며, 어깨동무하거나 꿈꾸지 못한다면, 학교가 아니고 마을이 아니며 보금자리가 아닌 한편, 나라도 정부도 아닐 테지요. 4346.12.29.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재미있는 집의 리사벳 동화는 내 친구 35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지음, 일론 비클란드 그림, 햇살과나무꾼 옮김 / 논장 / 2003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어린이책 읽는 삶 43

 


놀면서 아름답게 자라는 아이들
― 재미있는 집의 리사벳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글
 일론 비클란드 그림
 햇살과나무꾼 옮김
 논장 펴냄, 2003.10.15.

 


  오늘 아침에 마을회관에서 한 해를 갈무리하는 모임이 있었습니다. 마을 할매는 회관 부엌에서 밥상을 차리시고, 마을 할배는 회관 마루에 앉아서 밥상을 기다리십니다. 이동안 우리 집 두 아이는 회관 마루와 부엌 사이를 쉴새없이 오갑니다. 이리 뛰고 저리 구르면서 까르르 웃습니다. 마을회관 할배들은 아이들이 어지럽게 뛰논다며 조용히 하라고 말하지만, 아이들은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그저 웃고, 그저 달리며, 그저 뒹굽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 집 아이들만 이러하지 않습니다. 온누리 모든 아이들은 누가 무어라 하건 말건 까르르 웃으면서 뛰놀아요. 지구별 모든 아이들은 할매나 할배가 말리든 안 말리든 신나게 달리고 뒹굴면서 노래합니다.


  그러니까, 아이들이 뛰놀지 못한다면 아이답지 못한 모습입니다. 아이들이 까르르 웃으면서 뛰놀도록 하지 못한다면, 아이들이 있을 만한 곳이 아닙니다. 학교에서는 아이들한테 공부를 시킨다면서 조용히 하라 하지만, 학교에서 아이들이 공부를 하도록 하더라도 공부하는 시간보다 훨씬 긴 시간 마음껏 뛰놀도록 할 수 있어야지 싶어요. 그래야 아이들은 아이답게 자랄 테니까요. 아이들은 아이답게 꿈꾸고 노래하면서 뒹굴어야 아이다우니까요.


.. 재미있는 집에서는 목요일마다 완두콩 수프를 먹어요. 그렇다고 리사벳이 목요일마다 완두콩을 콧구멍에 쑤셔넣는 건 아니에요. 사실은 딱 한 번 그래 봤을 뿐이에요 … 누군가를 골탕먹이려는 마음은 없었어요. 넣으면 어떻게 될까 궁금했을 뿐이에요 … 사실 엄마는 오늘 머리가 너무 아파서 조용히 누워 쉬고 싶었어요. 리사벳의 콧구멍을 후벼파고 싶지 않았다고요..  (5, 6, 10쪽)


  아침부터 저녁까지 쉬지 않고 뛰노는 아이들인데, 이 아이들이 놀 만한 곳에서 살아가는지 궁금하곤 합니다. 아이들은 누구나 하루 내내 신나게 뛰놀면서 자라는데, 우리 어른들은 아이들과 함께 어떤 데에서 일하거나 살아가는지 궁금합니다. 아이들이 놀기 어려운 곳을 집으로 삼지는 않는가요. 아이들이 놀 수 없는 데에서 일하지 않는가요. 아이들이 놀기 어려운 곳에서 살며 아이들을 묶어 놓지 않는가요.


  놀지 못한 채 자라는 아이는 어떤 어른이 될까요. 놀이와 동떨어진 채 살아가는 아이는 어떤 사랑을 이웃과 나누는 어른으로 살아갈까요.


  아이한테는 이것을 가르치거나 저것을 가르치기보다는, 아이 나름대로 이렇게 놀거나 저렇게 놀도록 해야지 싶어요. 아이와 살아가는 어른은 아이들이 이렇게도 놀고 저렇게도 놀도록 즐겁고 따사로우며 포근한 놀이마당을 마련할 수 있어야지 싶어요.


.. 장롱 옆에는 리나스 이다 아주머니의 기타가 세워져 있어요. 마디켄이 줄을 퉁기자, 마음을 적시는 듯한 고운 소리가 났어요. 어떻게 하면 아주머니처럼 기타를 잘 칠 수 있을까요 ..  (22쪽)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님이 글을 쓰고 일론 비클란드 님이 그림을 그린 어린이책 《재미있는 집의 리사벳》(논장,2003)을 읽습니다. 리사벳은 언제나 즐겁게 놀고 싶은 아이입니다. 리사벳네 언니 마디켄도 늘 기쁘게 놀고 싶은 아이입니다. 둘은 한결같이 놀이에 살고 놀이로 하루를 누립니다.


  이 아이들은 앞으로 어떤 어른으로 자랄까요. 이 아이들은 앞으로 어떤 삶을 지으면서 새로운 사랑을 이 땅에 드리울까요.


  어찌 보면 말썽꾸러기이고, 어느모로 보면 말괄량이입니다. 언니 마디켄은 여기에 싸움꾼이라 할 만합니다. 그러나 이 아이들 마음은 착해요. 착하면서 참답습니다. 거짓말을 하지 않고 남을 괴롭히지 않습니다. 동무를 아끼고 싶고, 어머니와 아버지를 사랑합니다. 동무와 예쁘게 어울리고 싶으며, 날마다 새롭게 놀이를 찾고 싶어요.


.. 마디켄은 리사벳의 손을 꼭 쥐었어요. 동생이랑 사이좋게 나란히 걸어가는 모습을 보면, 엄마가 틀림없이 기뻐하겠죠 … 마디켄은 꼭 중요할 때는 엄마 말을 까맣게 잊어버려요. 늘 싸우고 난 뒤에야 잘못을 뉘우치고, 다시는 안 그러겠다고 다짐하죠. 하지만 지금은 리사벳을 도와줘야 하니까 이야기가 달라요. 싸우면 안 된다는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어요 ..  (12, 35쪽)


  리사벳은 콩알을 콧구멍에 넣으며 놀아요. 우리 집 두 아이도 콧구멍에 무언가 넣기를 즐깁니다. 길다란 과자도 콧구멍에 넣고, 까마중 까만 열매도 콧구멍에 넣습니다. 그리고, 콧구멍에 넣은 것을 도로 빼서 입에 넣고 아주 맛나게 먹어요.


  재미있지요. 재미나지요. 오이 한 조각이나 무 한 조각도 그냥 먹지 않아요. 두 손으로 살며시 휘면서 무지개라 말하고, 둥그런 오이 조각을 야금야금 먹으면서, 보름달로 바뀌었느니 반달이 되었느니 초승달이라느니 하면서 놀아요.


  나무막대기는 긴칼이 되기도 하지만, 하늘 나는 빗자루가 되기도 합니다. 바닥에 내려놓고는 냇물 건너는 다리로 삼기도 하고, 무시무시하거나 커다란 울타리라 여기며 껑충껑충 뛰어넘기도 해요. 맨손 맨몸으로 마당을 휘휘 달리면서 어마어마한 모험을 한다고 여겨 까르르 웃기도 합니다.


  옆에서 아이들 놀이를 지켜보기만 해도 즐겁습니다. 아이들 사이에 섞여 함께 놀아도 즐겁습니다. 장난감이 따로 있어야 하지 않습니다. 꼭 놀이터까지 가야 하지 않습니다. 천천히 들길을 걸어도 놀이가 됩니다. 자전거를 달려 이웃마을 찬찬히 지나다녀도 놀이가 되어요.


.. “자, 꼬마 아가씨들, 뽀뽀를 받고 나서 엉덩이를 좀 맞아야겠어. 그런 다음, 자는 거다.” 아빠는 딱 이 말만 했고요. 하지만 둘은 뽀뽀는 받았지만 엉덩이는 맞지 않았을뿐더러, 아직 자지도 않았어요. 어린이 방 불은 꺼진 지 오래였지만. 리사벳이 물었어요. “언니 침대에 가도 돼?” “응, 와도 돼. 그 대신 내 코에 손대지 않도록 조심해.” 리사벳은 그러겠다고 약속하고, 마디켄의 침대에 올라갔어요. 그리고 “언니, 팔베개 해 줘.” 하고 말하며 마디켄의 팔에 머리를 괴고 누웠어요. 마디켄은 팔베개를 해 주는 걸 좋아했어요. 그러면 자기가 훨씬 나이 많은 언니 같아, 리사벳이 귀엽게 느껴졌죠 ..  (54∼55쪽)


  나도 어릴 적에 우리 아이들마냥 혼자서 놀이를 생각해 내면서 놀았습니다. 손가락을 꼬물거리면서 혼자서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신나게 즐겼어요. 종이 한 장에 이 그림 저 그림을 그리면서 세 시간이고 네 시간이고 까맣게 잊으면서 놀았어요. 학교에서 수업 시간에 얼굴은 칠판을 쳐다보지만 마음속으로는 ‘노는 꿈’을 그리면서 나도 모르게 빙긋빙긋 웃곤 했어요. 이러다가 교사한테 들켜 얻어맞는다든지 꿀밤을 맞기도 했지만, 마음속으로 그리는 ‘노는 꿈’을 멈출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수업 진도는 따분하고, 교과서 지식도 재미없지만, 머리로 하나하나 그리는 노는 꿈은 언제나 새롭고 즐거워요. 하늘을 날기도 하고 바닷속을 가르기도 합니다. 먼 우주를 날기도 하며 지구별 맞은편에 있는 이웃나라 아이하고 어깨동무하기도 합니다.


  우리 집 아이들 바라볼 적마다 어린 날을 떠올립니다. 나는 언제나 우리 어머니와 아버지와 형한테서 사랑을 받아먹으며 자랐습니다. 이렇게 즐거우면서 고맙게 받아먹은 사랑을 아이들도 함께 누리도록 하고 싶습니다. 아이들이 어떤 놀이를 하든 기쁘게 맞이하고 싶어요. 아이들이 노래를 부르고 놀이를 즐기는 눈빛을 따사롭게 얼싸안고 싶어요. 이러는 동안 저도 새롭게 일하는 기운을 얻고, 이러는 사이 아이들은 씩씩하면서 튼튼한 마음이 되어요.


  놀면서 아름답게 자라는 아이들입니다. 놀면서 아름답게 살아가는 어른들입니다. 놀면서 웃습니다. 놀면서 노래합니다. 놀면서 아름답게 일합니다. 4346.12.28.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