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살과 일곱 살

 


  일곱 살이 된 큰아이는 새해 첫날 아침에 “나 이제 일곱 살 되었어?” 하고 묻는다. 지난해에는 “나 여섯 살 아니야. 다섯 살이야!” 했고, 그러께에도 “나 다섯 살 아니야. 네 살이야, 네 살!” 하던 아이인데, 일곱 살이 되니 나이를 스스럼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셈일까. 네 살이 되는 작은아이는 나이를 놓고 딱히 생각이 없다. 작은아이더러 세 살이라 하면 그러려니 네 살이라 해도 그러려니, 백 살이라 해도 그러려니 한다. 작은아이는 아직 스스로 몇 살이라고 말할 줄 모른다. 4347.1.2.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빠 육아일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책빛 읽는 손길

 


  박노해 님이 쓴 시를 읽던 고등학생 때인 1992년 여름날이었다. 기계를 하도 만지다가 손그림이 모두 지워져 그만 주민등록증 새로 고칠 적에 눈물을 흘린다는 이야기를 보고는 숨이 멎었다. 문득 궁금해서 사포로 손그림을 긁어 보았다. 책상이나 벽이나 바닥에 손가락과 손바닥을 질질 문대어 보았다. 칼로 살살 살점을 잘라 보기도 했다. 날마다 한두 시간쯤 철봉을 잡고 턱걸이와 뒤돌아넘기를 해 보았다. 손그림은 웬만해서는 지워지거나 벗겨지지 않는다. 언제나 무엇이든 손으로 쥐고 잡고 만지고 하는데, 손그림은 그야말로 씩씩하게 열 손가락마다 다 다른 모양새로 있다.


  고등학교를 마치고 어머니 아버지와 제금나서 따로 산 지 스무 해가 넘은 오늘, 내 손그림을 새삼스레 들여다본다. 첫째 아이를 낳고 둘째 아이를 낳으면서 날마다 수없이 기저귀를 빨래하고 다리고 걸레질을 하고 물을 만지고 아이들 쓰다듬고 하면서 손그림이 살짝 무디어지곤 했다. 칼이나 낫에 벤 손가락이 아물면서 손그림이 살짝 울퉁불퉁 바뀌기도 한다. 그렇지만 빨간 물 묻혀 척 찍으면 손그림이 번듯하게 나온다. 손그림이 사라질 만큼 되자면 손으로 얼마나 일을 많이 해야 했을까. 손그림이 사라진다면, 맨손으로 무언가 잡을 적마다 자꾸 미끄러져 얼마나 힘들면서 고단할까.


  책을 많이 읽는 사람도 손그림이 무디어질까. 글을 많이 쓰는 사람도 손그림이 지워질까. 책짐을 많이 나르는 사람이나, 헌책방에서 책먼지를 쉴새없이 닦는 사람도 손그림이 살짝살짝 뭉그러질까.


  손가락과 손바닥에 손그림이 있어 책을 손에 쥔다. 손가락에 손그림이 있으니 얇은 책종이를 살몃살몃 붙잡아 찬찬히 넘긴다. 책을 읽는 손길은 어떤 이야기를 얻고 싶을까. 책을 살피는 손길에는 어떤 빛이 서릴까. 책빛은 우리들한테 어떤 노래가 될까.


  종이를 만지면서도 책빛을 읽는다. 나무를 심거나 돌보면서도 책빛을 읽는다. 밥을 짓고 설거지를 하며 아이를 품에 안으면서도 책빛을 읽는다. 박노해 님은 공장에서 함께 기름밥 먹는 동무와 이웃을 바라보면서 책빛을 읽었을 테지. 우리는 모두 언제나 엄청난 책빛을 읽고 나누는 이웃들이다. 4347.1.2.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책 언저리)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시로 읽는 책 95] 놀이

 


  흙일은 흙놀이, 들일은 들놀이.
  글쓰기는 글놀이, 그림그리기는 그림놀이.
  살면서 하는 일은 살면서 누리는 놀이.

 


  어른들은 일하고 아이들은 놀이합니다. 어른들은 땀흘려 일하고, 아이들은 땀흘려 놀이합니다. 흙을 만지건 물을 만지건, 어른들은 늘 일이고, 아이들은 언제나 놀이입니다. 아기를 돌보건 밥을 짓건, 어른들은 늘 일이며, 아이들은 언제나 놀이입니다.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어른은 으레 일이 되고 창작이 되며 작품이 돼요. 그러나, 아이들은 글놀이와 그림놀이예요. 어른들은 전문직업으로서 가수가 되려 하지만, 아이들은 즐겁게 노래를 부르며 놀아요. 곰곰이 돌아보면, 우리 어른들 삶은 삶일이기 앞서 삶놀이라고 느껴요. 놀 줄 알 때에 일하고, 놀 수 있을 때에 살가이 어깨동무하면서 일하는구나 싶어요. 4347.1.2.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아버지 그림놀이] 종이 살려쓰기 그림 (2013.12.28.)

 


  큰아이가 그림종이에 그림을 그리고 나서 가위로 오린다. 종이인형을 갖고 놀겠단다. 큰아이한테 “벼리야, 그림종이 그림은 오리지 말아야지. 따로 오리는 종이가 있잖아. 빈 우유곽을 오려서 쓰면 되는데, 왜 그림종이를 오리니.” 하고 이야기한다. 큰아이가 종이인형 자리만 빼고 버리려는 종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이 종이가 아깝다고 느낀다. 네 아버지 어릴 적에는 이만 한 종이조각조차 몹시 아끼면서 썼는데. 그래, 끄트머리를 살려서 다른 그림을 그려 볼까? 아이가 종이를 오려 종이인형 만들듯이, 나도 뭔가 오려서 쓸 그림을 만들어 보면 되겠네. 큰아이가 한손에는 연필을 들고 다른 한손에는 호미를 쥔 모습을 그린다. 종이가 작으니 웃몸만 그린다. 그러고는 종이배에 탄 모습으로 한다. 종이배는 하늘을 날고 무지개를 탄다. 별과 달이 반짝반짝 빛나며 우리 아이를 반긴다. 아버지가 쪽그림 그리는 모습을 보던 큰아이가 ‘제 모습’을 그리니 거들겠다면서 예쁜 빛깔을 입혀 준다. 다 마무리를 짓고는 가위로 잘라, 벽에 붙인 아이들 그림과 사진 사이에 살짝 끼운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3)

 

 

 

 

 

 


댓글(2)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꼬마요정 2014-01-01 21:39   좋아요 1 | URL
아니.. 정말로 저 그림을 따님이 그린거에요?? 와~ 그림 잘 그리네요.. 게다가 똑똑하기까지.. 자리가 모자라니까 저렇게 반짝거리는 생각을 하는군요~^^

파란놀 2014-01-01 21:57   좋아요 1 | URL
쪽그림은 제가 그렸어요 ^^
그 그림에서 종이배 자리만 큰아이가 빛깔을 입혔습니다 ^^

아이하고 곧잘 그림놀이를 하는데
그런 그림놀이 가운데 하나예요~
 
포토닷 Photo닷 2014.1 - Vol.2
포토닷(월간지) 편집부 지음 / 포토닷(월간지) / 2013년 12월
평점 :
품절


 

 

 

찾아 읽는 사진책 154

 


생각을 모아서 엮는 사진책
― 사진잡지 《포토닷》 2호
 포토닷 펴냄, 2014.1.1.

 


  사진가는 사진을 찍어서 사진잔치를 열기도 하고 사진책을 내기도 합니다. 사진만 찍고 사진잔치를 안 열거나 사진책을 안 엮는 사진가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꼭 사진잔치를 열어야 하지 않고, 반드시 사진책을 펴내야 하지 않아요.


  사진잔치는 서울이나 부산처럼 커다란 도시에서 열어야 하지 않습니다. 전주나 순천에서 사진잔치를 열 수 있습니다. 고흥이나 함평처럼 작은 시골에서 사진잔치를 열 수 있습니다. 사진잔치에 백만 사람이나 십만 사람이 찾아들어야 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쉽게 찾아올 만한 곳에 전시관이 있어야 하지 않아요. 어디에서나 전시관을 열 만하고, 언제라도 사진잔치를 꾸릴 만합니다.


  사진잔치는 언론 매체에 알려져야 하지 않습니다. 가까운 동무와 이웃을 불러 조촐하게 즐길 수 있습니다. 아이가 자라는 흐름을 사진으로 담아 종이에 앉힌 뒤, 돌잔치를 하거나 생일잔치를 하면서 이쁘장하게 사진잔치를 함께 마련할 수 있어요. 아이가 열 살을 맞이하는 날을 기려, 갓 태어난 날부터 열 살로 자라기까지 거친 삶을 백 장이나 천 장으로 갈무리해서 벽에 차곡차곡 붙이는 사진잔치를 마련할 수 있습니다. 두툼한 사진책을 꼭 한 권 만들어서 아이한테 선물로 줄 수 있어요.


  널리 알려져야 이름난 사진책이 아닙니다. 널리 이름을 날려야 멋진 사진가로 되지 않습니다. 사진잡지 《포토닷》 2호(2014.1.)를 읽으며 생각합니다. “내가 좋아서 시작한 일인데 다른 사람들도 함께 좋아해 주고 내 사진이 올라오기를 기다려 주는 사람도 있어 이제 저 혼자만의 놀이가 아닌 그들과의 약속이 되어 버렸어요(28쪽/김민수).”와 같은 말마따나, 스스로 좋아서 찍을 때에 사진이 됩니다. 스스로 좋아하지 않으면 사진이 안 됩니다.


  사진을 찍어 돈을 벌 수 있고, 사진관(또는 스튜디오)에서 일할 수 있으며, 사진기자로 일할 수 있겠지요. 그렇지만, 직업이 ‘사진찍기’라서 ‘사진가’이지 않아요. 직업이 기자이기에 ‘글작가’라 하지 않습니다. 공무원이 시청이나 군청이나 면사무소에서 쓰는 보고서도 ‘글’이에요. 연필을 쓰든 셈틀을 쓰든 글을 만져요. 그렇지만, 공문서를 가리켜 ‘글’이나 ‘문학’이라 하지 않으며, 이런 글(보고서)을 쓰는 이들더러 ‘작가’라 하지 않습니다.

 


 

 

  사진가란 어떤 사람일까요?


  “모국에 돌아와 다시 보게 된 우리 땅의 풍경은 안으로 스며 있고 오래 응시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내 몸과 같은 느낌이었다. 첫 눈에 매혹하지는 않지만 오래도록 남아 있는, 질리지 안는 풍경 속에 스며 있는 빛을 찾아가고 있고 … 전시는 책에 비해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있다. 책의 형식으로 이미지를 엮어 만들어 낼 수 있는 공간은 사진가에겐 매우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처음 사진을 알게 된 것도 사진책을 통해서였고, 책으로 내 작업을 정리할 때, 하나의 작업이 완성되는 느낌을 받는다(101쪽/주상연).”와 같은 이야기를 가만히 곱씹습니다. 삶을 느끼고 읽을 줄 알면서, 이러한 삶을 사진기를 빌어 찬찬히 담아내어 나눌 수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사진가로 다시 태어난다고 봅니다. 삶을 느끼거나 읽을 줄 모른다면 사진가로 나아가지 못한다고 봅니다. 삶을 느끼거나 읽더라도, 이를 사진기를 빌어 찬찬히 담아내지 못한다면, 찬찬히 담아냈어도 이웃이나 동무하고 나누지 못한다면, 무엇보다 사진을 찍는 나 스스로 즐겁게 웃거나 울지 못한다면 사진가로 다시 태어나지 못한다고 봅니다.


  사진으로 이야기하는 사람이기에 사진가입니다. 연필로 이야기하는 사람이기에 글작가입니다. 붓으로 이야기하는 사람이기에 그림작가(또는 화가)입니다. 노래로 이야기하는 사람이기에 노래꾼(또는 가수)입니다.


  시골마을 흙지기는 흙으로 이야기를 해요. 씨앗 한 톨로 이야기를 하지요. 풀 한 포기로 이야기를 해요. 그래서 흙지기(또는 농사꾼)입니다. 시골 흙지기하고 사진가는 똑같아요. 손에 호미를 쥐거나 사진기를 쥐는 모습만 다를 뿐, 삶과 눈길과 넋이 똑같아요.


  이리하여, “사진가는 이전에 어떤 그릇에 담아 어떤 세팅으로 어떤 분위기에서 먹었을 때 더 맛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나는 요리를 하는 것도 좋아하지만 더 좋은 음식사진을 찍기 위해 한식은 물론 프랑스 요리까지 배웠다 … ‘오퍼레이터가 되지 말아라, 테크니션이 되지 말아라, 생각이 있는 사진가가 되어야 한다’고 가르친다. 수업시간에 기술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기획과 사고능력이 있어야 롱런하는 사진가가 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122쪽/이종근).”와 같은 이야기를 즐겁게 주고받을 수 있습니다. 사진기 다루는 솜씨로는 사진가로 태어나지 못해요. 사진기를 잘 만진대서 사진가라는 이름을 얻지 못해요. 사진으로 담아서 나누려는 이야기를 깨달아야 하고, 사진으로 엮어서 밝히는 빛을 알아차려야 해요. 사진가는 사진으로 삶을 짓는 사람이거든요. 사진가는 사진에 빛을 얹어 이야기꽃을 피우는 사람이거든요.


  생각을 모아서 엮는 사진책입니다. 저마다 다른 자리에서 다르게 살아가는 사람이 복닥복닥 모여 삶을 이루는 한켠에서 사진기를 손에 쥐고는 내 생각을 따사롭게 그러모아 이야기 한 타래를 사진빛으로 영그는 사진가입니다. 사진잡지 《포토닷》 2호를 덮으면서 꿈꿉니다. 이 땅 아름다운 사진가들이 사진을 한결 사랑하면서 삶을 더욱 즐기는 새해 맞이할 수 있기를 빕니다. 4347.1.1.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사진책 읽는 즐거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