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들은 안녕하십니까? - 흔들리는 부모들을 위한 교육학
현병호 지음 / 양철북 / 2013년 12월
평점 :
절판


 

 

사랑하는 배움책 21

 


아이들은 늘 삶을 배웁니다
― 우리 아이들은 안녕하십니까
 현병오 글
 양철북 펴냄, 2013.12.6.

 


  오늘도 언제나처럼 자장노래를 부르면서 두 아이를 재웁니다. 큰아이는 왼쪽에, 작은아이는 오른쪽에 눕습니다. 밤에 아이들 재우면서 부를 적에는 자장노래이고, 낮에 아이들 함께 놀며 부를 때에는 놀이노래입니다. 밤에 부를 적과 낮에 부를 때 노랫가락을 바꿉니다. 노래를 부르는 빠르기를 달리하고, 노래를 부르는 목청을 달리합니다.


  아이들을 재우거나 아이들과 놀면서 노래를 부르고 보면, 이 노래는 아이한테 들려주거나 베푸는 선물로 그치지 않습니다. 노래를 부르는 내 마음이 따스하고, 노래를 내 귀로도 함께 들으며 즐겁습니다.


  아이들과 들마실을 하면, 아이들만 즐겁지 않아요. 아이와 함께 들길을 걷는 내 몸과 마음도 나란히 즐겁습니다. 아이들을 데리고 바닷가로 가면, 아이들만 바다놀이를 하며 신나지 않아요. 나도 바다내음 맡고 바다빛 누리면서 신납니다. 밥을 차려 맛있게 먹일 적에 아이들만 배부르지 않습니다. 나 또한 배부르면서 즐거워요.


.. 서로가 잘되도록 돕기보다 서로가 못되기를 은근히 바라게 만드는 것이 학교와 사회의 문화가 되었다 … 학교가 그렇게 아이들을 하루 종일 잡아놓고 있지 않는다면, 또 그렇게 경쟁하도록 몰아붙이지 않는다면 더 좋은 친구들을 사귀고 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열리지 않을까 … 학교에서 ‘선생님 말씀 잘 듣기’를 그토록 강조하는 것은 선생님의 말씀이 그만큼 값져서가 아니라 말 잘 듣는 인간을 기르는 것이 학교교육의 주된 목적이기 때문이다 … 우리는 일개 학교의 교칙이 헌법보다 우위에 있는 이상한 나라에 살고 있는 셈이다 ..  (15, 16, 20, 34쪽)


  일곱 살 큰아이를 샛자전거에 태웁니다. 네 살 작은아이를 수레에 태웁니다. 나는 앞에서 자전거를 끕니다. 두 아이 무게와 샛자전거 무게와 수레 무게는 꽤 됩니다. 여름에는 더위에 땀으로 폭삭 젖고, 겨울에는 추위에 오들오들 얼어붙습니다. 여름에는 참 덥다고 느끼고, 겨울에는 참 춥구나 느낍니다. 그렇지만 여름에도 겨울에도 자전거를 달립니다. 우리 집에 자가용을 안 모시니 자전거를 타기도 하지만, 자전거를 타면 즐겁습니다. 아이들 숨소리를 느낄 수 있고, 어느 곳에서나 마음대로 멈추어 쉴 수 있습니다. 멧골도 넘고 바닷가도 달립니다. 논둑길도 달리고 고샅길도 다닙니다.


  아이들과 이곳저곳 돌아다닌다 할 수 있기도 하지만, 자전거를 달리며 흘리는 땀과 느끼는 추위가 재미있습니다. 들바람을 쐬고 바닷바람을 먹는 자전거마실이 신나요.


  그러고 보면, 아이들 옷가지를 손으로 조물락조물락 비벼서 빨래할 적에도 재미있습니다. 이불을 발로 꾹꾹 눌러 빨 적에도 신납니다. 이 조그마한 옷을 입고 조그마한 몸으로 그처럼 개구지게 뛰고 달리고 노는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이 조그마한 옷을 한결 아끼고 보듬자고 생각합니다. 이 작은 옷이 어느덧 안 맞을 만큼 자라고, 다른 작은 옷이 어느새 안 맞을 만큼 큽니다.


  마당에서 함께 옷을 넙니다. 방에서 함께 옷을 갭니다. 때로는 아이들이 비질이나 걸레질을 거듭니다. 큰아이는 곧잘 설거지를 거듭니다. 수저를 밥상에 곱게 놓을 줄 압니다. 풀밥을 잘 먹고, 마당에서 까마중을 훑을 적에 함께 훑어 주곤 해요. 이 겨울 지나고 새로운 봄 찾아들면, 아버지와 함께 봄풀 뜯으러 이곳저곳 함께 다녀 주겠지요. 조물딱조물딱 호미질을 하며 흙을 같이 일구어 줄 테고요.


.. 이 땅의 학교는 졸업장을 팔아먹는다. 값비싼 졸업장은 지상천국도 약속한다면서 … 사랑과 이해, 우리가 살아가는 데 가장 필요한 능력이 아닐까 … 아이들이 진정으로 가슴 뛰는 삶을 살기를 바란다면 가슴속에 사랑을 키울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 … 사실 수능 준비 같은 이상한 공부에 몰입하는 것 자체가 이상한 일인 것이다 … 도시에서 자라면서 아이들이 약아지고 양심과 감스성이 무디어지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일까 … 행복은 이렇듯 돈과 시간을 아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사는 데 있지 않을까 ..  (26, 30, 40, 50, 63, 66쪽)


  미술학원에 다녀야 그림을 배우지 않습니다. 그림을 배우고 싶으면 종이와 연필이 있으면 됩니다. 붓과 물감이 있어도 됩니다. 그림을 배우고 싶으면 스스로 그림을 그리면 됩니다. 스스로 그릴 때에 비로소 그림을 배웁니다. 남이 가르쳐 줄 수 없어요.


  글을 쓰고 싶다면? 스스로 글을 쓰면 돼요. 스스로 글을 써야 글을 배웁니다. 사진을 찍고 싶다면? 스스로 사진을 찍어야지요. 노래를 부르고 싶다면? 스스로 노래를 불러야지요. 춤을 추고 싶다면? 스스로 춤을 추어야지요. 흙을 일구고 싶다면? 스스로 흙을 일구어야지요.


  자전거를 잘 타고 싶다면 스스로 자전거를 탈 노릇입니다. 자전거를 달리지 않고서 자전거를 탈 수 없어요. 이론을 배우거나 영화를 본들 자전거를 타지 못합니다. 자전거는 이론이 아니라 자전거입니다. 그림도 이론이 아니라 그림이에요. 스스로 즐겁게 그릴 때에 그림이에요. 마음속에 피어나는 이야기를 그려야 그림입니다. 이런 기법과 저런 솜씨를 뽐낸대서 그림이 되지 않습니다. 나타내고 싶은 빛을 그림이라는 틀에 빌어서 보여주기에 그림이에요.


  문장작법에 맞춘대서 글이 되지 않아요. 우리는 보고서나 논문을 쓰지 않아요. 글을 씁니다. 삶을 들려주는 글을 씁니다. 삶을 사랑하는 글을 써요. 자랑하려는 글이 아니라, 스스로 즐겁게 살아가면서 나누는 글입니다. 남한테 읽히려는 글이 아니라, 가슴속에서 피어나는 사랑을 곱다시 적바림하는 글입니다.


.. 고급 빌라에서 인상을 찌푸리며 살아가는 것이 그들이 바라는 아이의 장래일까 … 우리 교육 현실이 이렇게 된 것은 무엇보다 우리네 부모들이 아이들을 닦달하며 모든 수단을 동원해 발벗고 나서서 뛰어다닌 결과이지 않을까 … 엄연히 이름이 있는 아이들에게 번호를 매겨서 부르기 편하다는 이유로 이름 대신 번호를 부르곤 한다. 그런 교사들은 흔히 한 해가 다 가도록 반 아이들 이름을 다 외우지 못하기 일쑤다 … 불행히도 학교는 애초에 아이들을 자유로운 존재로 키우기 위해 만들어진 기관이 아니다. 석탄이나 석유 같은 ‘자원’이 되도록 아이들을 교육하는 곳에 더 가깝다 ..  (75, 82, 95, 125쪽)


  학교에서는 아무것도 못 가르쳐요. 왜냐하면, 학교는 학교이지, 집이나 삶터나 보금자리나 마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학교라는 울타리나 틀이 아닌, 집이라면, 집에서 무엇이든 가르치고 배웁니다. 우리는 삶을 배우면서 가르치지, 지식이나 교과서나 책을 배우면서 가르치지 못해요. 밥이란 삶이고, 옷이란 삶이며, 집이란 삶입니다. 밥짓기와 옷짓기와 집짓기는 모두 삶입니다. 이론이나 교과서로는 배우지도 가르치지도 못해요. 학교 아닐 집일 때에 비로소 밥을 어떻게 짓고 옷을 어떻게 지으며 집을 어떻게 짓느냐를 배우고 가르쳐요.


  이론이 아닌 몸으로 먹는 밥이에요. 지식이 아닌 몸으로 입는 옷이에요. 실기나 체험이 아닌 삶으로 누리는 집이에요.


  그러나, 오늘날 이 나라 학교에서는 밥도 옷도 집도 보여주지 않습니다. 오늘날 이 나라 학교를 다니고 나면 밥과 옷과 집하고 멀어지기만 합니다. 대학교를 다닌 아이들이 손수 밥을 차릴 줄 아나요. 유학을 다녀온 아이들이 바느질이나 뜨개질을 할 줄 아나요. 대학원 무슨무슨 논문을 쓴 아이들이 나무를 베고 손질해서 기둥을 세우고 처마를 댈 줄 아나요.


  약초도감이나 식물도감을 들여다본대서 나물을 캐거나 뜯지 못해요. 스스로 들과 숲을 다니고 논둑과 밭둑에서 풀을 뜯어서 먹어야 비로소 나물을 캐거나 뜯을 수 있어요. 눈으로 보고, 코로 맡으며, 혀로 느낄 때에 나물을 알고 배워요. 손으로 만지고, 입으로 먹으며, 뱃속에 넉넉히 담아서 삭혀야 나물을 익히고 깨달아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을 해야 사랑을 압니다. 마음에서 샘솟는 꿈을 꾸어야 꿈이 됩니다. 착하고 참답게 살아가려는 빛이 있을 적에 삶이 즐겁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어른들은 곰곰이 헤아릴 노릇입니다. 스스로 즐겁게 살아가고 싶어서 아이를 낳아 함께 지낼 생각이냐, 아니면 아이한테 졸업장을 선물할 생각이냐, 둘 가운데 어느 길로 가고 싶을는지 헤아릴 노릇입니다.


.. 슈타이너 사상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이들에 대한 사랑이다 … 나무 한 그루 없는 휑한 운동장은 아이들이 운동하기 위한 공간이기보다 전체 조례나 운동회 같은 집단 의례를 위한 공간이다 … 너무 일찍부터 부모와 멀어지고, 대신 텔레비전과 더 가까워진 아이들, 골목과 놀이 친구를 잃어버리고 대신 학원 선생님을 만나는 아이들은 더 이상 몸을 놀려 놀지 않는다 … 문제의 본질은 학교 폭력이 아니라 ‘폭력 학교’이다 ..  (183, 209, 249, 264쪽)


  대안교육을 이야기하는 잡지 《민들레》가 있습니다. 《민들레》를 펴내는 현병오 님이 그동안 꾸준히 쓴 글을 그러모아 《우리 아이들은 안녕하십니까》(양철북,2013)라는 배움책 하나 내놓았습니다. 오늘날 우리 아이들이 학교에서 느긋하게 지내지 못한다고 여기는 마음을 이 책으로 찬찬히 보여줍니다. 오늘날 이 나라 학교는 입시지옥일 뿐이요 시험기계만 만들 뿐이라는 모습을 낱낱이 밝힙니다.


  그렇다면, 대안교육은 무엇을 말할까요. 제도권교육 아닌 대안교육은 얼마나 다른 교육일까요. 제도권이 아니니 낫다고 할 만한지요. 대안을 말하니 아름답거나 즐겁다고 할 만한지요.


  교과서를 안 쓰고, 입시지옥이 아니며, 시험기계를 만들지 않는 대목에서는 제도권교육보다 나은 대안교육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나무를 심지 않고, 나무를 아끼지 않으며, 나무를 누리지 않는 곳에서 어떤 대안교육이 이루어질는지 잘 모르겠어요. 나무를 심는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는 자리에서 어떤 대안교육 이론이나 생각이 설는지 잘 모르겠어요. 나무를 사랑하고 아끼며 누리는 이야기를 담는 책이 아니라면, 우리 아이들한테 얼마나 즐거울 만한지 잘 모르겠어요.


  제도권교육이냐 아니냐는 대수롭지 않습니다. 대안교육이냐 아니냐는 대단하지 않습니다. 삶이냐 아니냐를 보아야 합니다. 사랑이냐 아니냐를 헤아려야 합니다. 꿈이냐 아니냐를 읽어야 합니다.


  배움책 《우리 아이들은 안녕하십니까》는 오늘날 이 나라 교육제도가 얼마나 엉망진창인가를 잘 밝힙니다. 오늘날 이 나라 대안교육도 그리 아름답거나 알차거나 슬기롭지 못하다고 넌지시 이야기합니다. 그러면, 아이와 어른은 어떤 삶으로 나아갈 적에 아름답거나 즐겁거나 사랑스러울까요. 우리들은 어떤 삶과 사랑과 꿈을 꽃피우는 하루를 누리면서 활짝 웃을 만할까요.


  아쉽지만, 《우리 아이들은 안녕하십니까》라는 책에서 이 대목을 건드리지는 않습니다. 삶과 사랑과 꿈이 아름답게 나아가는 길까지 이 책에서 보여주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삶이든 사랑이든 꿈이든 스스로 찾아야 합니다. 남이 찾아 주지 않습니다. 그러니, 이 책에서 굳이 다룰 까닭이 없을 만해요.


  그러면, 다른 사람이나 대안이나 제도나 교육은 둘째치고, 글쓴이 현병호 님 스스로 이녁 삶과 사랑과 꿈을 어떻게 다스리거나 가꾸면서 하루가 즐겁게 빛나는가를 들려주기를 바라요. 제도권교육과 대안교육 비판은 살짝 내려놓고, 현병호 님 스스로 밝히거나 빛내는 삶을 보여주기를 바랍니다. 스스로 걸어가는 즐거운 길을 밝히면 됩니다. 스스로 부르는 고운 노래를 들려주면 됩니다. 스스로 나누는 예쁜 사랑을 흐드러지게 펼치면 됩니다. 교육이란 삶이니, 삶을 말하고 보여주면 모든 꿈이 즐겁게 이루어집니다. 4347.1.13.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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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그림놀이] 우리 집은 숲이야 ㄱ (2014.1.12.)

 


  아이들이 늦도록 잠들지 않으려 한다. 이때에는 어떻게 해야 좋을까. 졸릴 때까지 더 놀리는 수밖에 없지. 잠들지 않으려는 아이를 억지로 재운들 잠들지 않고 종알종알 떠들기만 한다. 그래서 종이를 펼치고 큰아이와 함께 그림을 그리기로 한다. 큰아이는 ‘맑고요’라는 이름을 붙인 ‘게임 주인공’을 그린다. 나는 큰아이와 마주보고 엎드린 채 우리 네 식구를 하나씩 그릴 생각이다. 먼저 나무를 네 그루 그리기로 한다. 오늘 그림은 ‘우리 집은 숲이야’이다. 먼저, 한 사람 앞에 나무 한 그루씩 놓고, 큰아이 작은아이 곁님 나, 이렇게 그린다. 그러고서 나뭇잎을 그린다. 큰아이와 작은아이 모두 아버지 그림을 들여다본다. “아버지 그림 잘 그린다!” 하고 말해 준다. 그러니? 너희도 스스로 그림을 잘 그리고 싶다 생각하면 잘 그릴 수 있어. 오늘은 딱 여기까지만 그리고 덮는다. 자, 아이들아, 이제 자야지? 자고 일어나서 함께 마저 그리자.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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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땅임자는 땅에서 얼마나 돈을 거두어들여야 즐거울까. 집임자는 집에서 얼마만큼 돈을 긁어모아야 기쁠까. 함께 살아가는 이웃은 어떤 사람일까. 우리는 어디에 어떤 이웃을 두면서 누구를 동무로 삼으며 하루를 누릴까. 울타리 옆에 있는 사람이 이웃일까. 마음으로 사귀거나 만나는 사람이 이웃일까. 돈이 많이 있다고 하더라도 스스로 많은 줄 못 느낀 채 즐거이 나눌 줄 모르면 사랑을 꽃피우지 못하겠지. 돈이 얼마 없다고 하더라도 스스로 즐거운 삶이라고 느끼며 살아가면 언제나 사랑을 꽃피울 테지. 도시 한복판에서 얇은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지내는 사람들이 ‘이웃’인지 ‘남남’인지 ‘동무’인지 어떤 사람인지를 《수상한 연립주택》이 살몃살몃 보여준다. 4347.1.13.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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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연립주택
오영진 글.그림 / 창비 / 2008년 12월
12,000원 → 11,400원(5%할인) / 마일리지 60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3월 3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2014년 01월 13일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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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순이 10. 꽁꽁 얼어붙는 자전거에서 (2014.1.12.)

 


  산들보라야, 수레에 앉아 겨울마실 하자니 춥지? 그런데 네 누나도 샛자전거에 앉기까지 너처럼 그렇게 지냈단다. 게다가 네 누나는 고흥보다 훨씬 추운 음성 멧골마을에서 네가 뒤집어쓰는 두툼한 겉옷도 없이 이 수레를 탔지. 네 누나는 자전거수레에서 겨울나기를 했달까. 너도 자전거수레에서 꽁꽁 얼어붙으면서 겨울나기를 하렴.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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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쪽지 2014.1.12.
 : 못물 얼어붙는 고흥 겨울

 


- 수레바퀴 튜브를 갈았다. 이제 아이들과 마실을 갈 수 있다. 날은 춥지만 옷을 두툼하게 입히고 길을 나선다. 모자와 장갑을 모처럼 갖춘 아이들이 마당과 고샅을 달리면서 논다. 너희는 자전거를 타건 말건 그저 놀면 다 좋지?

 

- 지정마을 쪽으로 올라간다. 천등산 줄기 쪽으로 올라갈까 생각해 보다가, 아무래도 힘이 벅차다 싶어 못 옆에까지만 간다. 우리 마을과 지정마을 사이에 있는 못물을 바라본다. 반쯤은 물이 살짝 얼었다. 물이 얼지 않은 쪽에 오리 한 무리 노닌다. 이렇게 못물이 어는 날에도 물에 내려앉아 헤엄치며 먹이를 찾는 오리를 보면, 참말 이원수 님 동시에 나오듯 “얼음 어는 강물이 춥지도 않니?” 하는 노래가 터져나온다. 참말 너희는 괜찮지?

 

- 서재도서관에 살짝 들러 짐을 내려놓는다. 신기마을 논둑길을 달리기로 한다. 신기마을 어귀 염소우리 옆을 지나가는데, 흰개가 우리를 따라온다. 샛자전거에 앉은 큰아이가 말한다. “아버지, 하얀 털 멍멍이가 우리를 따라와! 왜 따라와?” “왜 따라올까? 우리하고 놀고 싶은가 봐.” 원산마을 논배미를 지나 호덕마을로 접어들 때까지 흰개가 우리 자전거 옆을 나란히 달린다. 참말 심심해서 우리하고 나란히 달렸겠지?

 

- 호덕마을 둘레를 따라 달리다가 고인돌 여럿 있는 옆을 지나가는데 길이 질퍽질퍽하다. 날이 이리 추운데 이 길은 어인 진흙길? 지난해까지 흙도랑이던 곳을 어느새 시멘트도랑으로 바꾼 모습을 본다. 시골에 살며 늘 보아야 하는 모습 가운데 하나이다. 이런 시멘트도랑을 문화나 문명이나 복지로 여겨야 할까? 흙도랑을 없애면 시골살이 나아진다고 여겨야 하는가?

 

- 작은아이가 수레에서 잠들 줄 알았으나 잠들지 않는다. 거의 보름만에 탄 자전거라서 잠들고 싶지 않으려나. 그러나 동오치마을 지나 면사무소에 닿을 무렵, 드디어 작은아이가 잠든다. 면소재지 가게에서 자전거를 세우니 큰아이가 “아버지, 보라 잠들었어요.” 하고 말한다. “응, 나도 알아.” 가게에서 솜사탕을 보고는 사 달라고 조른다. 얘야, 너 이렇게 졸라대려면 자전거 타지 말자.

 

- 다시 자전거를 타기 앞서, 큰아이는 벙어리장갑을 하늘로 휙휙 던지면서 논다. 이제 집까지는 맞바람을 먹으며 달리는 길이다. 면소재지 벗어날 무렵, 마을 할매들이 “하나는 뒤에서 자고 하나는 앉고 가고, 좋겠네.” 하고 주고받는 이야기를 귓결로 듣는다. 면소재지에서 벗어난 뒤, 불긋불긋한 열매가 보여 자전거를 멈춘다. 그래, 치자 열매로구나. 하얀 치자꽃이 불그스름한 열매를 맺네. 가까이 다가서서 사진을 찍는다. 곁에는 새롭게 여린 줄기를 내놓는 찔레가 있다. 가시가 잔뜩 돋은 새 줄기이지만, 이 줄기가 보드랍다면서 봄날 ‘찔레싹’을 꺾어서 먹은 우리 어매들이고 아배들이다. 봄은 아직 멀었지만 찔레싹은 돋는다. 찔레싹을 꺾어서 먹을 시골사람 없지만, 찔레는 예나 이제나 똑같이 자란다.

 

- 땔감을 잔뜩 실은 경운기를 본다. 큰아이는 경운기 모는 할배한테 큰소리로 인사를 한다. 바람이 모질게 부니 큰아이가 춥다고 말한다. 거의 다 돌아왔지만, 자전거를 세운다. 겨울들 사진을 한 장 찍는다는 핑계로 몇 분쯤 쉰다. “벼리야, 춥지? 모자 바로 쓰고 옷 잘 여미어. 그러면 다시 간다.” 겨울에는 겨울바람을 먹으면서 자라지. 여름에는 여름볕 먹으면서 자라고. 이 겨울도 씩씩하게 나면서 네 몸에 새로운 빛을 가득 담기를 빈다.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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