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옷, 검은옷

 


흰옷은 시골서도
때가 잘 타
하루 지나고 이틀 되면
깃과 소매가 까무스름.
사흘 입고 나흘째에는
복복 비벼 빨아
까만 땟물 빼고
햇볕에 말린다.

 

까만옷은 도시서도
때 탄 티를 잊어
하루나 이틀로는 모르고
사흘과 나흘로도 모르지만
퀴퀴한 냄새 피어나
비로소 북북 비비고 헹구어
해바라기 시킨다.

 


4347.1.30.나무.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흰마음과 검은마음

 


  하얀마음에 티끌 하나 앉으면, 마치 티끌만 있다는 듯이 여길 만한데, 까만마음에 얼룩 크게 앉으면, 제대로 알아보는 사람이 드물다. 까만마음에 드리운 얼룩에 곰팡이가 피어 큼큼한 냄새가 코를 찔러도 얼룩이 있는지 곰팡이가 있는지 못 알아채기까지 한다. 어디에서 냄새가 나는지 모를 뿐더러, 냄새가 나는지조차 모르기도 한다.


  하얀마음을 버리면 티끌이 묻어도 알아채기 어려우니까 좋을까. 까만마음이 되면 지저분한 얼룩이 덕지덕지 있어도 알아채는 사람이 드물기에 좋을까. 하얀마음인 사람한테 묻은 티끌은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까만마음인 사람한테 드리운 얼룩과 곰팡이는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하얀마음인 사람한테 티끌이 묻으면 다른 사람보다 이녁 스스로 곧바로 알아채어 복복 비벼 빨리라 생각한다. 까만마음인 사람한테 티끌이 묻으면 다른 사람도 이녁 스스로도 알아채지 못한 채 묵은 때 되거나 구린 냄새로 바뀌도록 빨래할 마음조차 없으리라 느낀다. 4347.1.30.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보배섬에서 보배가 난다. 보배섬에서 보배가 자란다. 보배섬에서 난 보배가 보배섬뿐 아니라 이웃마을과 뭇나라를 살찌운다. 보배섬에서 자란 보배가 보배섬을 비롯해 온 고을과 고장에 맑고 밝은 숨결을 나누어 준다. 아리랑 가락 하나 흐른다. 아리랑 가락 둘 흐른다. 아리랑 가락 서이가 너이가 감돌면서 춤사위 흐드러진다. 보배섬에서 솔솔 피어나는 노래를 듣는다. 보배섬에서 흘러나오는 고운 가락에 젖어든다. 보배로운 삶이기에 보배로운 웃음이요, 보배로운 사랑이기에 보배로운 꿈이다. 보배섬을 떠나 서울에서 살아가는 사람 가슴에서 싹튼 조그마한 풀노래를 작은 시집에서 읽는다. 4347.1.30.나무.ㅎㄲㅅㄱ


1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진도아리랑
박상률 지음 / 큰나(시와시학사) / 2003년 12월
6,000원 → 5,400원(10%할인) / 마일리지 300원(5% 적립)
2014년 01월 30일에 저장
절판



1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능금밭에 농약과 비료를 안 치면서 일찌감치 굵고 단단하며 맛난 능금알 얻었으면, 모두들 능금밭에 농약과 비료를 안 쳤을까 궁금하다. 왜냐하면, 농약도 비료도 없던 지난날부터 능금밭은 있었으니까. 농약과 비료를 안 치는 푸성귀밭에서 거둔 푸성귀가 비싼값에 팔려도 시골 흙일꾼 누구나 농약과 비료를 안 치지는 않는다. 비닐집에서 키운 푸성귀보다 맨땅에서 키운 푸성귀가 비싼값에 팔려도 시골 흙일꾼은 비닐집을 만든다. 밭을 숲처럼 가꾸고, 마을을 숲처럼 돌보며, 집을 숲처럼 사랑할 때에 비로소 아름다운 삶터가 되는 줄 모르는 사람은 없을 테지만, 정작 지구별 거의 모든 나라 거의 모든 사회에서는 숲을 버리거나 밀거나 망가뜨리거나 허물면서 도시만 죽죽 넓히고 키운다. 왜냐하면 돈만 바라보기 때문이다. 돈을 버는 삶이 나쁠 까닭은 없으나, 사람들 모두 돈만 바라보면서 제빛을 잃고 제넋을 잊으며 제길을 놓친다. 《사과가 가르쳐 준 것》을 어디에서 누가 가르치거나 배우는가. 4347.1.30.나무.ㅎㄲㅅㄱ


1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사과가 가르쳐 준 것
기무라 아키노리 지음, 최성현 옮김 / 김영사 / 2010년 4월
10,000원 → 9,000원(10%할인) / 마일리지 500원(5% 적립)
2014년 01월 30일에 저장
품절



1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기차로 여행하는 책

 


  두 아이를 데리고 기차여행을 한다. 설날을 맞이해 고흥에서 음성으로 가는 길이란 기차여행이다. 먼저 고흥 읍내까지 군내버스를 타고 20분 달린다. 고흥읍에서 순천 버스역까지 시외버스로 한 시간 달린다. 순천 버스역에서 순천 기차역까지 30분 걷는다. 기차를 기다리며 한 시간 즈음 기차역 언저리에서 뛰논다. 기차를 타고 네 시간 가까이 달려 조치원역에 닿는다. 조치원역에서 한 시간 즈음 다시 기차를 달려 음성역까지 간다.


  작은아이는 순천을 떠난 기차가 전주를 지날 즈음 앙탈을 부리다가 새근새근 잠든다. 큰아이는 졸린 눈빛이지만 졸음을 참고 “언제까지 가? 할머니 집 멀었어?” 하고 스무 차례 넘게 묻는다. 조치원역에서 내려 기차를 갈아탄 뒤, 서서 가는 할매가 보여 내 자리를 내준다. 할매더러 앉아서 가시라고 이야기한다. 할매는 일부러 값싼 표를 끊으셨을 수 있다. 애써 자리를 내주지 않아도 된다. 아이를 돌보지 않고 자리를 내주는 셈인가 하고 살짝 생각해 보는데, 두 녀석이 저희끼리 잘 노니, 내 자리를 할매한테 내주어도 되겠다고 느낀다.


  할매는 고맙다고 자리에 앉는다. 다리가 무척 아프시겠지. 큰아이는 걸상 아닌 바닥턱에 앉는다. 아마 그 자리가 더 재미있으리라. 나도 큰아이 나이만 하던 지난날에 기차에서 저 바닥턱에 앉으며 놀지 않았을까. 어렴풋하게 떠오르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어머니가 자리에 앉으라고 꾸중하셨는데, 그래도 저 바닥턱 자리가 더 마음에 들었다.


  바닥턱에 앉아 동생하고 놀던 큰아이가 천가방에서 그림책을 꺼낸다. “책 읽어야지. 보라야, 누나가 책 읽어 줄게.” 하면서 그림책을 종알종알 읽는다. 이번 기차여행길에는 그만 《도라에몽》 만화책을 못 챙겼다. 깜빡 잊었다. 그러나 그림책은 두 권 챙겼으니, 이 그림책 두 권으로 잘 놀자꾸나. 큰아이는 예쁜 그림을 예쁜 말씨로 읽어 준다. 내 자리에 앉아서 가는 할매도 일곱 살 큰아이가 읽는 그림책을 함께 들여다본다. “아기가 어찌 그리 잘 읽누? 유치원 다니나?” “아니요. 안 다녀요.” 일곱 살 아이와 일흔 훌쩍 넘은 듯한 할매는 이야기도 잘 나눈다. 놀고 책을 읽고 까르르 웃는 사이 어느새 음성역에 닿는다. 4347.1.30.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책 언저리)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