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속은 어떻게 생겼을까? 쪽빛문고 11
가코 사토시 지음, 고향옥 옮김, 김웅서 감수 / 청어람미디어 / 2009년 9월
평점 :
절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346

 


바다와 사람과 지구별
― 바다 속은 어떻게 생겼을까?
 가코 사토시 글·그림
 고향옥 옮김
 청어람미디어 펴냄, 2009.9.30.

 


  일본에서 1969년에 처음 나온 그림책 《바다 속은 어떻게 생겼을까?》(청어람미디어)는 한국에서 2009년에 번역합니다. 그런데 나는 이 그림책을 1980년대에 해적판으로 본 일이 떠오릅니다. 이 그림책에 나오는 바닷속 모습을 어느 책인지 그림책인지 몰래 훔쳐서 썼지 싶어요. 한국에서는 1999년 12월 31일까지 세계저작권을 지키지 않았어요. 미국에서 나온 책이든 일본에서 나온 책이든 몰래 펴내곤 했습니다. 한국에서 펴낼 만하다면 그만큼 한국 아이들한테 도움이 되면서 좋다고 할 만하겠지요. 안 좋은 책을 애써 번역해서 낼 일은 없을 테니까요. 그렇다면 아름다운 책을 아름다운 손길로 가다듬고 묶어서 펴내야 아름다우리라 생각해요. 아름다운 책을 안 아름다운 손길로 몰래 내놓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1980년대를 살던 아이들이, 또 1970년대나 1990년대를 살던 아이들이 어른이 되면, 한국땅 어른들이 몰래 훔쳐서 펴낸 그림책을 모르겠습니까.


.. 얕은 바다에는 이밖에도 재미있는 생물이 많이 살고 있답니다. 그러나 얕은 바다는 언젠가 메워져 공장이 들어서거나 깊이 파여 항구가 되어 그 모습이 확 바뀌어 버릴지도 모릅니다 ..  (7쪽)


  마흔 해만에 제대로 번역한 그림책 《바다 속은 어떻게 생겼을까?》를 찬찬히 읽으며 생각합니다. 번역글은 매끄럽지 않습니다. 이 그림책을 읽을 사람은 바다학자 아닌 어린이입니다. 이 그림책은 과학자 아닌 어린이한테 맞추어 나왔습니다. 그러면, 이 책에 담을 낱말은 어린이 눈높이에 맞춰야겠지요. 이를테면, “내해는 육지로 둘러싸여 있어 파도가 많이 일지 않아 조용합니다(8쪽).” 같은 글은 “안바다는 뭍으로 둘러싸여서 물결이 크게 일지 않아 조용합니다.”처럼 손질해야 올바릅니다. 어쩌면 오늘날 한국 어린이한테는 ‘뭍’보다 ‘육지’ 같은 한자말이 익숙할는지 몰라요. 어른들은 아이한테 ‘물결’이라는 한국말은 안 가르치고 ‘파도’라는 한자말만 쓸는지 모릅니다.


  생각해 볼 일이에요. 물결이든 파도이든 ‘많이’ 일지 않습니다. 크게 일거나 작게 입니다. ‘둘러싸여 있어’와 같은 글꼴은 한국 말투가 아닙니다. ‘둘러싸여’처럼 적어야 한국 말투입니다. 낱말도 낱말이지만 말투를 제대로 추스를 수 있어야 해요. “굴은 조개의 한 종류입니다(9쪽).” 같은 글을 헤아려 보셔요. “굴은 조개 가운데 한 가지입니다.”나 “굴은 조개 가운데 하나입니다.”처럼 손질해야 올바릅니다.

 


.. 물고기를 더 많아지게 하거나 더 크게 자라게 하는 바다목장도 연구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사람들도 바닷속에서 일을 하거나 살 수 있게 되었답니다. 이렇게 바닷속, 바다 밑바닥은 육지 위와 똑같이 자꾸자꾸 열리고 있습니다 ..  (17쪽)


  그림책 《바다 속은 어떻게 생겼을까?》는 아이들이 바다를 가까이 마주하면서 살가이 보듬도록 이끕니다. 바닷속으로 십 미터 백 미터뿐 아니라 천 미터까지도 깊이 들어가면서 돌아보는 그림책이에요. 바닷가 모래밭이랑 갯벌부터 지구별을 두루 살피는 그림책입니다. 이 그림책을 들여다보는 아이들은 너른 눈길과 깊은 마음길을 가다듬을 만합니다.


  참 잘 빚은 그림책이라 생각하는데, 여러모로 좋은 대목을 많이 엿보면서도 꼭 한 가지에서 걸립니다. 《바다 속은 어떻게 생겼을까?》는 처음부터 끝까지 ‘바다를 사람한테 쓸모있게 개발하자’는 쪽에서 바라봅니다. 바다 깊은 곳과 바닷가에 공장을 짓고, 바다 깊은 곳에 길을 내며 온갖 기계로 파헤치는 쪽에서 바라봐요. 갯벌이 어떤 노릇을 하고, 물결이 어떻게 흐르는가를 짚지 않습니다. 물과 뭍이 서로 어떻게 얽히면서, 지구별 숨결이 서로 어떻게 잇닿는가를 돌아보지 않습니다.


  ‘바다 자원’과 ‘바다 개발’이라는 눈높이로만 바라보기에, 기계를 많이 써서 바닷고기를 잔뜩 낚은 탓에 바닷고기 씨가 말라 ‘양식장’을 따로 만들어야 하는 얼거리를 제대로 밝히지 않습니다. ‘바다 자원을 관리’하면서 ‘현대 문명이 끝없이 치닫는 흐름’을 아주 좋거나 바람직한 쪽에서 바라봅니다.

 


.. 여러분도 바다를 조사하고 탐험해 보고, 바다를 사랑해 주세요 ..  (39쪽)


  바다는 어떻게 사랑해야 할까요. 바다를 어떻게 바라보면서 어깨동무할 때에 사랑이 될까요. 바다는 어떠한 곳일까요. 뭍은 어떠한 곳일까요. 지구별은 어떠한 곳일까요. 우리 어른들은 바다를 어떻게 바라보면서 보듬을 때에 아름다울까요. 우리 아이들은 바다에서 무엇을 느끼면서 무럭무럭 자랄 적에 아름다울까요.


  바다를 왜 조사하고 탐험해야 할까 궁금합니다. 바다를 조사하거나 탐험하는 사람은 바다를 어떻게 하고 싶은 생각인지 궁금합니다. 바다에 끝없이 쓰레기를 버릴 뿐 아니라, 바닷속에서까지 핵폭탄 실험을 하는 과학자와 산업국가 정책은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궁금합니다.


  바다를 더럽히는 목숨은 오직 사람뿐입니다. 바다에서 자원을 개발하는 목숨도 오직 사람뿐입니다. 사람들은 지구별에서 바다를 어떻게 건드리는 목숨일까요? 사람들은 지구별에서 바다를 어떻게 바꾸고 싶을까요?


  바다는 사람한테 개발되고 싶을까요. 바다는 사람 손길에 길들고 싶을까요. 바다는 한낱 양식장 노릇을 하는가요. 바닷가에 공장과 발전소와 군부대를 잔뜩 만들어 놓는 정책은 바다를 제대로 알거나 사랑하거나 지키거나 돌보려는 움직임이라 할 수 있을까요. 4347.2.16.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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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아리랑
박상률 지음 / 큰나(시와시학사) / 2003년 12월
평점 :
절판


 

 

시를 노래하는 시 67

 


봄볕을 부르는 노래
―진도 아리랑
 박상률 글
 시와시학사 펴냄, 2002.12.17.

 


  지난밤 꿈에 딱새와 제비가 잔뜩 나왔습니다. 이 꿈이 무엇을 뜻하는지 잘 모릅니다. 다만, 꿈을 꾸면서 수많은 딱새와 제비가 우리 집 처마에 집을 짓고 살아가는 모습이 반가웠어요. 내가 부르는 말에 딱딱딱 째째째 노래하면서 웃는 얼굴이 즐거웠어요. 처마 밑으로 손을 뻗으면 내 손등에 사뿐히 내려앉아 톡톡 뛰는 모습이 사랑스러웠어요.


.. 넌 / 뜨거운 흙으로 / 속살을 빚고 / 넘실거리는 물살 위에 / 아리랑을 띄운다 ..  (보배섬, 진도 아리랑 1)


  겨울이 지나가는 고흥 시골마을에서는 집집마다 봄맞이로 부산합니다. 빈 밭과 논둑에 불을 놓습니다. 나무를 베거나 가지를 칩니다. 겨우내 밭자락에 날아온 쓰레기를 치우고 돌을 고릅니다. 겨울 끝자락 햇볕은 포근하게 드리웁니다. 우리 집에 눌러앉는 떠돌이 개는 이제 추위에 떨지 않아도 됩니다. 우리 집 둘레로 찾아오는 새는 부쩍 늘었고, 동이 틀 무렵부터 온갖 새들이 갖은 노래를 들려줍니다. 봄이란 새로운 움직임이요 빛이며 노래로구나 싶습니다.


.. 팔십년대는 새로운 시대 / 뱃길 대신 새로 뚫린 / 찻길은 / 쇠밧줄로 달아맨 길 / 뭍사람 되기 위해 / 바삐 딛고 가는 길 ..  (연륙 2, 진도 아리랑 5)


  봄이 코앞인 겨울 막바지 햇볕은 아주 좋습니다. 빨래가 잘 마르고, 이불도 잘 마릅니다. 아이들은 하루 내내 바깥에서 뛰놉니다. 겨울이 끝날 즈음, 아이들은 집안에 붙지 않습니다. 겨우내 살빛이 허옇게 바뀌었다면, 곧 까무잡잡한 살빛으로 바뀌리라 느낍니다.


  어느새 겨울이 마지막이 되고 보니, 자전거마실을 할 적에 장갑을 안 끼워도 됩니다. 손이 살짝살짝 시리지만, 즐겁게 시원합니다. 자전거를 달리면서, 바람 흐름이 달라지는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겨우내 맞바람을 맞으면서 애먹었지만, 이제는 등바람을 맞으면서 한결 수월하겠다고 느낍니다. 무엇보다, 봄부터 맞이하는 바람은 따사로운 바람입니다. 온몸을 살살 간지르는 바람이요, 땀을 식히는 바람입니다. 향긋한 풀내음을 실어나르는 바람이요, 흰구름이 더욱 희도록 어루만지는 바람이에요.


.. 내 몸보다 더 무거운 / 나무 손수레에 / 올 농사 나락 여섯 가마를 싣고 / 공판장으로 간다 / 새마을 모자 점잖게 쓴 / 검사원님 / 왜 그리도 까다로우실까 / 가을볕에 나흘이나 말리고 / 풍로질 어깨 빠지게 했는데 / 덜 말렸느니 / 더 까불어야 한다느니 / 탈도 많고 트집도 많고 / 겨우 / 3등품 두 개 / 등외품 네 개로 내려놓고 ..  (추곡수매, 진도 아리랑 12)


  추운 겨울 동안 우리 집 처마로 찾아와 제비집에서 겨울나기를 하던 딱새는 다시 들과 숲으로 갑니다. 가끔 얼굴을 내밀면서 인사를 하지만, 따순 볕을 한껏 누리면서 신나게 날아다니는구나 싶어요.


  바야흐로 풀벌레가 깨어나겠지요. 곧이어 애벌레가 고치를 벗겠지요. 벌은 일찌감치 깨어났으니, 나비도 머잖아 날개춤을 선보이리라 생각합니다. 예쁜 꽃을 찾아 돌아다닐 나비만큼, 먹이를 찾아 날아다닐 새들이 자주 눈에 뜨이리라 생각해요.


  이러는 사이, 겨울눈이 하나씩 터집니다. 뒤꼍 매화나무는 꽃봉오리 터뜨리려고 몽실몽실 발그스름하면서 하얀 빛 어린 겨울눈이 굵어집니다. 깜짝 놀래키기라도 하듯이 매화꽃이 벌어지겠지요. 동백꽃도 벌어지겠지요.


.. 풍년가를 테레비로 떠들 때 / 정말 그럴까요 / 이곳에 풍년든 건 / 종자값, 비료값, 농약값, 물값, 품값 / ‘값’자 돌림 풍년이지 / 쌀농사, 마늘농사, 고추농사, 깨농사, 콩농사 / ‘농사’자 돌림 풍년은 아닌데 ..  (풍년, 진도 아리랑 14)


  박상률 님이 쓴 진도노래를 그러모은 《진도 아리랑》(시와시학사,2002)을 읽으면서 봄볕을 떠올립니다. 남녘 바닷가 한쪽에 깃든 진도에서는 해마다 봄에 어떤 노래를 불렀을까 하고 헤아려 봅니다. 바다를 마주하고 봄바람을 맞이한 진도사람은 어떤 노래로 새날을 손꼽았을는지 그려 봅니다.


  진도에서는 진도 아리랑이니, 완도에서는 완도 아리랑이겠지요. 장흥에서는 장흥 아리랑이요, 고흥에서는 고흥 아리랑이겠지요. 부산 아리랑이 있을까요? 있겠지요. 서울 아리랑이 있을까요? 있을 테지요. 골골샅샅 사람 사는 마을마다 아리랑이 있겠지요.


.. 요 간섭 저 간섭 얹어다가 / 두껍디두꺼운 빚을 얹어다가 / 남의 눈에 / 새마을이면 뭣한당가 // 그러더니 요새 와선 / 초가집이 한국적이라고? ..  (새마을, 진도 아리랑 20)


  봄은 들에서 빛납니다. 봄은 마음에서 환합니다. 봄은 눈망울에서 깨어납니다. 봄은 아이들 목소리에서 피어납니다.


  새로우면서 즐거운 하루가 찾아오면서 해가 높이 떠오릅니다. 높이 걸리는 해만큼 나무그늘이 짙습니다. 지난해 떨어져 구르는 가랑잎은 새삼스레 흙이 될 테고, 이 흙에서 기운을 얻는 나무는 새 잎사귀를 내놓습니다.


  나무마다 새 잎사귀를 내놓으면 풀벌레와 애벌레가 사각사각 갉아먹습니다. 풀벌레와 애벌레는 새 잎사귀를 먹으며 풀물 든 몸이 토실토실 오를 테고, 풀노래를 부르는 새들은 척척 벌레들을 잡아먹으면서 새끼 낳을 힘을 모으겠지요.


.. 사람 몸뚱이 어차피 / 쇳덩이는 아닌께 / 이 달만 견뎌 보고 / 정 힘들면 내려오너라 / 숫턱구석 떼갱치 밭에 / 너 좋아하는 참외나 / 몇 구덩 심어 놓을란다 ..  (누이야, 진도 아리랑 36)


  옛날에는 봄마다 소 우는 소리 넘쳤으리라 생각합니다. 오늘날에는 어디에서나 경운기 소리 넘칩니다. 옛날에는 젊은 일꾼이 경운기를 몰았고, 늙은 일꾼은 걷거나 자전거를 타거나 소를 몰았습니다. 오늘날에는 젊은 일꾼이 짐차를 몰고, 늙은 일꾼은 경운기를 몰거나 자전거를 탑니다.


  오늘이 지나 모레와 글피가 다가오면, 앞으로 이 땅에서 젊은 일꾼은 어떻게 들일을 갈까 궁금합니다. 오늘 짐차를 모는 젊은 일꾼은 늙은 일꾼이 되어도 짐차를 몰 텐데, 오늘 이 땅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은 앞으로 두 다리를 어떻게 버티면서 삶을 가꿀는지 궁금합니다.


.. 가을걷이 끝나믄 / 한번 올라갈란다 / 서울이 뭣이 좋아 일 년에 / 한 번도 / 안 내려오는지 / 내 올라가서 둘러볼 생각이다 ..  (본가에서, 진도 아리랑 54)


  시집 《진도 아리랑》을 읽습니다. 진도에서 살아가며 부르는 노래가 아닌, 진도를 떠나 서울에서 살아가면서 그리는 진도노래를 읽습니다. 진도에서 나고 자란 박상률 님이지만, 박상률 님도 진도를 떠나 ‘뭍사람’이 되었습니다. 진도말보다는 서울말이 익숙한 ‘서울사람’이 되었습니다.


  박상률 님은 다시 ‘진도사람’이 되거나 ‘섬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박상률 님이 서울을 떠나 진도로 돌아간다면, 그때에는 ‘서울 아리랑’을 부르려나요.


  진도에 있든 서울에 있든 봄은 봄입니다. 봄노래는 진도에서도 부를 수 있고 서울에서도 부를 수 있습니다. 봄볕은 진도에도 서울에도 똑같이 드리웁니다. 서울에는 높다란 건물이 너무 많아 봄볕이 골고루 비치지 못합니다만, 서울이나 부산처럼 커다란 도시라 해서 봄볕이 안 찾아가지 않아요. 서울이나 부산처럼 커다란 도시는 온통 시멘트땅이요 아스팔트바닥이라 봄볕을 받고 돋을 풀싹이 거의 없지만, 봄볕은 아랑곳하지 않고 드리웁니다.


  봄볕에 봄풀이 깨어납니다. 봄볕에 봄꽃이 피어납니다. 봄볕에 봄노래가 자라고, 봄볕에 봄빛이 물듭니다. 봄날을 맞이하는 사람들은 봄님이 되어 서로서로 어깨를 겯고 봄일을 하다가는, 봄나무 곁에 둘러앉아 봄밥을 나누어 먹습니다. 4347.2.16.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시집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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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아는 마음

 


  일곱 살 큰아이가 두 팔을 활짝 펼쳐 “안아 줘.” 하고 말할 적에 가슴이 찡합니다. 불쑥 꺼내는 이 말을 어떻게 맞아들여야 좋을까 하고 한참 생각합니다. 아이를 품에 안으면서도 생각하고, 아이를 재운 밤에도 생각합니다. 나도 어릴 적에 우리 아이처럼 어머니와 아버지한테, 또는 할머니와 할아버지한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는지 떠올려 봅니다. 일곱 살 밑일 적에 겪은 일은 하나도 떠올리지 못하는 터라, 그때까지 어떠했는지 모르겠는데, 일곱 살 뒤부터 누구한테도 “안아 줘.”와 같은 말을 한 적이 없어요.


  안긴 아이는 팔과 다리로 척 붙잡습니다. 안긴 채 움직입니다. 나는 아이를 안고는 이리저리 움직입니다. 요 녀석 재미나게 놀고 싶구나 하고 느끼는 한편, 안긴 아이가 느낄 즐거움과 따스함 못지않게 안은 어른이 느낄 즐거움과 따스함이 크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사랑은 어디에서 태어날까요. 사랑은 어디에서 샘솟을까요. 사랑은 언제 깨달을까요. 사랑은 언제부터 느낄까요. 누가 가르치고 누구한테서 배우며 누가 누구하고 주고받는 사랑이 될까요. 간밤에 딱새와 제비가 우리 집 처마에 둥지를 잔뜩 짓고는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꿈을 꾸었습니다. 처마 밑을 바라보며 딱새와 제비를 부르니 이 아이들이 모두 내 손등에 앉더군요. 함께 새가 되어 훨훨 날며 노래하는 마음이 사랑일까요. 4347.2.16.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삶과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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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4-02-16 09:23   좋아요 0 | URL
"안아 줘"할때 하던 일 다 제치고 우선 안아줄수 있는 부모가 되고 싶은게 제 바람인데...
아이의 그 말에 가슴 찡하다는 말씀에 저는 또 찡~합니다.

이 장면은 사진으로 보기가 힘들겠네요, 손이 모자라니까요^^

파란놀 2014-02-16 10:25   좋아요 0 | URL
손에 사진기가 있으면 찍겠지만
거의 못 찍는 모습이에요 ^^;;
누군가 곁에서 찍어 주면 찍을 테지만요.

그러나, 아이가 두 팔 벌린 모습은
언제나 마음속에 또렷하게 아로새겼으니
사진으로 안 찍어도
늘 사진처럼 가슴에서 싱그럽게 움직여요~
 

 

책을 본다

 


  책을 본다. 눈앞에 그득 쌓인 책을 본다. 이 많은 책들 가운데 내 마음을 살며시 건드리는 책이 있고, 내 마음에 와닿지 못하는 책이 있다. 내 마음을 살며시 건드리는 책을 쓴 사람은 어떤 눈빛일까 헤아려 본다. 내 마음에 와닿지 못하는 책을 쓴 사람은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며 살아갈까 가누어 본다.


  나는 내가 읽고 싶은 책을 본다. 내 이웃이나 동무는 이녁이 읽고 싶은 책을 본다. 서로 삶이 달라, 서로 읽고 싶은 책이 다르다. 서로 넋이 달라, 서로 바라보는 자리가 다르다. 나는 자가용을 몰지 않을 뿐 아니라, 운전면허조차 따지 않았다. 내 이웃이나 동무 가운데 운전면허를 따지 않은 사람은 매우 드물다. 나는 운전면허책을 들여다보는 틈마저 아깝다고 여겼다. 운전면허 시험을 치르는 틈도 아깝다고 여겼다. 이동안 내 마음 살찌울 책을 읽자고 생각했다. 이동안 내 눈빛 밝히는 풀과 꽃과 나무를 살살 어루만지자고 생각했다. 자가용을 몰면 책방마실을 하며 장만한 책을 가방에 꾹꾹 눌러담아 땀 삐질삐질 빼면서 어기적어기적 짊어지고 집까지 걸어가거나 자전거를 달리지 않아도 된다. 자가용을 몰면 우체국으로 소포꾸러미 보내러 자전거수레를 몰지 않아도 될 테고, 자가용을 몰면 읍내 저잣거리로 마실을 가서 가방이 무겁도록 짐을 짊어지고 나르지 않아도 되겠지. 그런데, 자가용을 몰면 길바닥만 보고 다른 자동차를 살피기만 해야 한다. 내 보금자리와 이웃마을 사이에 드리운 숲이나 바다나 골짜기를 바라볼 수 없다. 자가용을 모는 사람 가운데 집과 읍내 사이를 오가다가 살며시 멈추고는 바람 한 줄기 쐬며 풀노래를 듣는 사람이란 찾아보기 어렵다. 두 다리로 걷거나 자전거로 달릴 때면, 언제나 풀바람을 쐬고 풀노래를 듣는다. 자가용을 빨리 달리면, 집에서 느긋하게 책을 더 오래 손에 쥘 만하다 말할 분이 있을 텐데, 자가용으로 더 빨리 달린대서 책을 더 오래 손에 쥔다고는 느끼지 않는다.


  더구나, 종이책만 책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겨울바람도 책이요, 봄꽃도 책이다. 멧새 노랫소리도 책이요, 개구리 울음소리도 책이다. 오르막에서 숨을 돌리면서 아이들더러 “얘들아 하늘 좀 보렴. 구름 멋있지 않니?” 하고 말하며 구름바라기와 먼산바라기를 하는 일도 책읽기라고 느낀다.


  책을 본다. 책방마다 가득 쌓인 책을 본다. 나는 이 많은 책들 가운데 어느 책을 마음밥으로 삼고 싶을까. 나는 이 많은 책들 가운데 어떤 책을 골라서 내 마음빛을 밝히고 싶을까. 남들이 나한테 묻지 않는다. 언제나 내가 나한테 묻는다. 나 스스로 걸어갈 길을 나 스스로 묻는다. 나 스스로 아름답게 가꾸고 싶은 삶을 나 스스로 돌아본다. 길동무가 되는 책을 살피면서 하루를 열고 닫는다. 4347.2.16.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헌책방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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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가 시나브로 좋아진다

 


  한국에서 즐겁게 얼음판을 지칠 수 없어 러시아로 건너간 스물아홉 살 젊은이가 겨울올림픽에서 노랗게 빛나는 메달을 목에 건다. 경기를 마친 뒤 얼음판에 머리를 박고 한동안 있다가 입을 맞춘다. 얼마나 저 얼음판을 지치고 싶었으며, 얼마나 저 얼음판에서 땀을 흘리고 싶었을까. 이녁이 한국에서 태어나 자라는 동안에는 ‘안현수’였으나, 이제부터는 ‘빅트로 안’이다. 그런데, 이름이 무슨 대수인가. 어떤 이름이건 스스로 가장 즐겁게 빛나면서 사랑을 꽃피울 수 있으면 아름다운 숨결이 된다. 러시아에 막걸리 한 잔을 바친다. 4347.2.15.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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