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난 두 아이



  작은아이는 큰아이를 늘 따라한다. 큰아이는 작은아이한테 이것저것 가르치면서 물려준다. 작은아이는 큰아이가 하는 말대로 말할 뿐 아니라, 큰아이가 보여주는 움직임을 고스란히 따른다. 큰아이는 작은아이한테 제 말을 하나하나 가르치면서 알려준다. 둘이 함께 있으면 언제나 복닥복닥 조잘조잘 소리가 크다. 두 아이는 서로 새로운 이야기를 빚는다. 둘 가운데 하나가 자거나 하나가 따로 있으면 아주 조용하다. 움직임이 잦아들고 소리도 가라앉는다. 동생은 누나를 바라보면서 큰다. 누나는 동생을 마주하면서 자란다. 둘은 서로 아끼고 사랑하면서 삶을 일군다. 이러한 얼거리 그대로 어버이와 아이도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면서 삶을 짓는다. 4347.4.26.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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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함께 50. 물이 흐른다


  어느 시골이든 샘터나 우물터가 있습니다. 사람이 살아가자면 햇볕과 바람과 물과 흙과 풀이 있어야 해요. 이 다섯 가지가 없으면 사람은 죽습니다. 사람뿐 아니라 다른 목숨도 이 다섯 가지가 없으면 죽습니다. 햇볕이 없으면 지구별은 꽁꽁 얼어붙으니 어떤 목숨도 살지 못해요. 바람이 없으면 아무도 숨을 쉴 수 없으니 어떤 목숨도 살 수 없습니다. 비가 오거나 냇물이 흐르거나 샘이 솟지 않으면 모든 목숨은 메말라 죽습니다. 흙이 있어야 발을 디디면서 살아가고, 흙에서 풀이 돋아 모든 목숨이 밥을 얻어요. 이 다섯 가지를 바탕으로 다른 여러 가지가 태어나요. 흙과 풀이 있는 곳에서 나무가 자라고, 나무는 우리한테 집이 되면서 열매를 줍니다. 나무는 드센 바람을 가려 줄 뿐 아니라, 나무를 잘라 배를 무어 고기잡이를 하거나 냇물을 건넙니다. 나무로 낫자루나 지게를 만들어요. 옷장을 짜고 책걸상을 만듭니다. 나무가 있은 뒤에 돌과 쇠를 얻어 낫날이나 호미날이나 쟁기날로 삼지요. 돌은 기둥을 받치는 주춧돌이 되고, 지붕이 날아가지 않도록 누름돌이 되며, 마루로 올라서는 섬돌이 됩니다.

  도시가 생기고 댐을 지으면서 시골이 물에 잠깁니다. 도시에서는 샘터나 우물터가 없어도 수도를 이어 수돗물을 마십니다. 도시는 햇볕이 들지 않아도 지하상가나 건물에서 전깃불을 켭니다. 도시는 자동차 배기가스와 공장 매연과 발전소 전자파와 방사능이 춤추어도 환풍기를 쓰고 정화기를 씁니다. 도시에는 흙도 풀도 나무도 없으나 시골에서 먹을거리를 사들이고, 시골에서 키운 꽃과 나무를 사다가 심습니다.

  시골에서 살아가는 우리 식구는 한 달에 두 차례쯤 마을 샘터이자 빨래터를 치웁니다. 예전에는 모든 마을사람이 이곳에서 물을 긷고 아이를 씻기며 빨래를 했으나, 이제는 집집마다 땅을 파서 골짝물을 쓰니 샘터이자 빨래터에는 물이끼가 잔뜩 낍니다. 마을 어귀에 있는 아무도 안 쓰는 샘터이자 빨래터는 나그네나 길손이 지나가다 들여다보면 볼썽사납대서 예전부터 마을 할매들이 틈틈이 치우셨어요.

  마을에 샘터와 빨래터가 있어도 이곳에서 물을 긷거나 빨래하는 사람이 죄 사라진 한국입니다. 한국에서는 물을 긷는 모습이나 빨래하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을 수 없습니다. 인도나 버마나 부탄이나 베트남쯤 가면 물을 긷거나 빨래하는 수수한 모습을 사진으로 찍을 수 있을는지 모르나, 이제 한국에서는 도시나 시골 모두 빨래기계를 쓰니, 참말 빨래살이를 사진으로도 글로도 그림으로도 옮기지 못합니다.

  손으로 모를 내는 사람이 거의 없고 기계를 쓰니, 모내기를 사진으로 찍을 일이 없습니다. 가을걷이를 기계로 하고 나락털기도 기계로 하니, 가을빛을 사진으로 찍을 일이 없습니다. 기계와 농약과 비료가 춤추는 시골이기에 제비가 돌아올 흙집 처마 밑이 사라져 제비가 선보이는 멋진 춤과 날갯짓을 사진으로 찍을 일이 없습니다.

  우리는 스스로 어떤 삶을 잃거나 잊으면서 어떤 삶을 짓거나 일구는가요. 우리는 스스로 어떤 모습을 버리거나 등지면서 어떤 삶을 누리거나 가꾸는가요. 우리가 찍는 사진은 무엇을 보여줄 수 있을까요. 우리가 읽는 사진에는 우리 삶이 어느 만큼 살갑거나 사랑스럽거나 살뜰히 깃들 수 있을까요.

  마을 샘터를 치웁니다. 물이끼를 모두 걷습니다. 다시 깨끗한 샘터요 빨래터가 되고, 우리 집 아이들은 샘터 바닥을 네 발로 척척 기듯 다니면서 놉니다. 물이 맑게 흐르고, 바람이 싱그럽게 붑니다. 햇볕은 알맞게 따스합니다. 멧새가 하늘을 가르며 예쁘게 노래합니다. 4347.4.26.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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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함께 49. 꽃밥을



  싱그러운 바람을 마시면 온몸이 싱그럽습니다. 자동차 없고 아파트 없으며 고속도로도 골프장도 발전소도 없는 깨끗한 숲에 깃들어 숨을 크게 들이켜면 온몸이 해맑고 푸른 빛으로 거듭납니다. 맑은 바람은 우리 몸뿐 아니라 마음까지 맑게 다스립니다. 숲마실을 즐기는 이들이 숲빛을 사진으로 찍는 까닭을 쉬 알 만합니다. 숲에서 숲바람을 마시면 참말 숲빛이 이렇게 곱네 하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매캐한 바람을 마시면 온몸이 찌뿌둥합니다. 귀가 째지도록 시끄럽고 어수선한 곳에서 여러 시간 나들이를 하거나 일을 해야 하면, 나들이나 일을 마치고 난 뒤 머리가 멍하기 일쑤입니다. 시끄럽거나 어수선한 데에서 날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하는 하루가 삶이라면 몸과 마음이 늘 찌뿌둥하면서 어지럽기 마련입니다. 다람쥐 쳇바퀴 굴리듯 흘러야 하는 삶일 때에는 무엇을 바라보면서 무엇을 사진으로 찍을 수 있을까요.


  도시에서 태어나 자라서 살아가는 사람이 바라보는 모습은, 시골에서 태어나 자라서 살아가는 사람이 바라보는 모습과 다릅니다. 도시에서 대학교를 다니고 유학을 다녀온 뒤 사진을 하는 사람이 바라보는 모습은, 시골에서 중·고등학교나 초등학교만 마치고 흙을 만지며 살아가는 사람이 바라보는 모습과 다릅니다. 그러나, 어느 자리에 서건, 우리는 늘 삶이고 사랑이며 사진입니다. 맑고 깨끗한 바람을 마시는 사람이 바라보는 모습에도 고운 빛이 서리면서 사진이 됩니다. 매캐하며 시끄러운 바람을 마시는 사람이 마주하는 모습에도 예쁜 빛이 감돌면서 사진이 됩니다.


  아이들과 함께 먹는 밥을 차리면서 늘 ‘꽃밥’을 그립니다. 우리가 먹는 밥은 언제나 꽃밥이라고 생각합니다. 들꽃을 하나 꺾어 밥그릇에 살짝 얹곤 합니다. 꽃송이가 매달린 들풀을 나물 삼아서 밥상에 올리곤 합니다. 들꽃을 먹으면서 우리 몸이 들꽃이 되기를 바랍니다. 들꽃을 먹으면 우리 몸이 들꽃과 같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들꽃을 사진으로 찍으면 우리 눈도 들꽃처럼 되리라 생각합니다. 숲을 사진으로 찍거나 바다를 사진으로 찍으면, 우리 눈길과 눈빛도 숲과 바다처럼 맑고 푸르며 시원하고 싱그러울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사랑하는 님을 사진으로 찍습니다. 사랑하는 님을 사진으로 찍으면서 내 눈과 넋과 몸이 사랑스레 거듭납니다. 살가운 이웃과 어깨동무하면서 사진을 찍습니다. 살가운 이웃을 사진으로 찍으면서 내 눈길과 삶길과 손길이 살가이 거듭납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은 구경꾼이 아닙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은 기록을 하지 않습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은 마음에 이야기를 아로새기면서 스스로 새롭게 하루하루 일굽니다. 아름답게 살고픈 빛을 사진 한 장에 싣고, 사랑스레 손잡고 싶은 꿈을 사진 두 장에 담습니다. 4347.4.26.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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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함께 48. 푸름과 빨강



  더 예쁜 빛이 없고 덜 고운 빛이 없습니다. 모든 빛은 저마다 예쁘면서 곱습니다. 모든 빛은 다 다른 예쁨과 고움입니다. 더 예쁜 사람이 없고 덜 고운 사람이 없습니다. 누구를 만나건 모두 예쁜 넋과 고운 얼을 마주합니다. 모든 사람은 저마다 제 삶을 가꾸면서 예쁘거나 고운 이야기를 길어올립니다.


  이름난 몇몇 사람을 만나서 이녁 얼굴을 찍어야 값있지 않습니다. 수수한 마을 할매와 할배를 만나서 이녁 얼굴을 찍으면 값없지 않습니다. 내가 아는 아이를 찍건 내가 모르는 아이를 찍건 모두 값있습니다. 내가 아는 이웃을 찍건 내가 모르는 이웃을 찍건 모두 값있어요.


  이름을 드날리며 사진길 걷는 작가는 이름난 누군가를 만나서 ‘사람사진’이나 ‘얼굴사진’을 찍을 수 있습니다. 이런 사진은 이런 사진대로 값이 있습니다. 이름을 드날리지 않으면서 조용히 사진삶 누리는 사람은 이런 삶대로 이름을 안 드날린 수수한 이웃과 동무를 만나서 ‘사람사진’과 ‘얼굴사진’을 찍을 수 있습니다.


  이름난 사람을 찍기에 뜻있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저마다 살아온 발자국을 사진으로 담고, 다 다른 사람들이 다 다른 자리에서 땀흘리고 사랑하며 꿈꾸던 넋을 이야기 하나로 갈무리할 수 있는 사진이 될 때에 뜻있습니다. ‘사람을 찍어 보라’ 하고 말할 적에는 유명인사나 연예인이나 정치꾼을 찍으라는 소리가 아닙니다. 나 스스로 사랑하고 아끼는 곁님이나 이웃이나 동무를 먼저 사진으로 찍으면서 ‘사진에 이야기를 어떻게 담는가’를 돌아보라는 소리입니다.


  학교를 다니는 학생이라면, 바로 옆자리 동무를 찍을 수 있습니다. 학교에서 늘 옆에 앉는 동무는 어떤 마음일까요. 어떤 꿈이 있을까요. 어떤 사랑을 가슴에 품을까요. 어떤 빛을 마음밭에 심을까요. 어떤 길을 걸어갈까요. 늘 마주하는 옆짝인데, 옆짝 마음과 삶과 이야기를 얼마나 잘 아는가요.


  내 어버이를 사진으로 담을 수 있습니다. 내 어버이를 마주하면서 내 어버이가 이제껏 살아온 나날과 걸어온 길을 헤아립니다. 내 아이를 사진으로 찍을 수 있습니다. 내 아이를 바라보면서 내가 이 아이한테 어떤 사랑과 꿈을 물려주는 하루를 일구는지 되짚을 수 있습니다.


  푸른잎 단풍나무와 붉은잎 단풍나무를 나란히 바라보며 생각합니다. 두 단풍나무는 시골에 있는 폐교 한쪽에서 함께 자랍니다. 우람하게 자란 두 나무가 드리우는 빛깔은 무엇일까요. 사월에 꽃을 피우는 두 단풍나무는 잎빛과 꽃빛이 저마다 어떻게 얼크러질까요. 4347.4.26.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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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함께 47. 뒷모습과 앞모습



  갓꽃이 핍니다. 갓이라는 풀에서 피는 꽃이기에 갓꽃입니다. 갓풀은 잎사귀를 나물로 삼아서 먹기도 하고, 갓김치를 담가서 먹기도 합니다. 갓김치를 먹어 본 분들은 많을 텐데, 막상 갓풀에서 피어나는 갓꽃을 본 분은 드물리라 생각합니다.


  유채꽃이 핍니다. 유채라는 풀에서 피는 꽃이기에 유채꽃입니다. 요즈음은 웬만한 시골마다 논이나 빈터에 유채씨를 뿌리는 경관사업을 합니다. 구경거리로 볼 만하게 가꾸는 일이 경관사업입니다. 겨울 지나고 새봄인 삼월부터 사월까지 들판을 노랗게 물들이는 유채꽃입니다.


  경관사업을 벌이며 심는 유채는 노란 꽃이 지고 나서 씨앗을 맺는데, 이 씨앗이 바람 따라 날리며 곳곳에 드리웁니다. 꽃만 보도록 심은 유채이지만, 바람 따라 숲이나 들이나 마당에 내려앉은 유채씨는 해를 거듭하면서 나물로 거듭납니다. 잎이 펑퍼짐하게 퍼지고, 야들야들 맛난 나물이 됩니다.


  예부터 갓이나 유채는 따로 씨를 뿌리지 않았습니다. 꽃이 진 뒤 맺는 씨방이 무르익어 터지면 바람 따라 곳곳에 퍼져요. 겨울과 봄에 갓잎이나 유채잎이 돋으면 사람들은 즐거우면서 고맙게 갓잎과 유채잎을 얻었습니다.


  먼발치에서 바라보면 갓꽃과 유채꽃은 거의 똑같다 할 만합니다. 꽃으로만 놓고 본다면 갓꽃과 유채꽃에다가 배추꽃을 가리기란 퍽 어렵다 할 만합니다. 그러나, 시골에서 갓이랑 유채랑 배추를 돌보면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한눈에 알아보리라 생각해요. 늘 보고 언제나 함께 있으면 못 알아볼 턱이 없습니다.


  어버이라면 누구나 제 아이를 멀리에서도 알아봅니다. 수백 사람이 함께 찍어 머리만 깨알같이 나온 사진을 들여다보아도 어버이는 제 아이를 알아봅니다. 어버이라면 뒷모습으로도 제 아이를 알아봅니다. 앞모습도 알고 뒷모습도 아는 우리 아이예요. 몸과 마음을 함께 알고, 몸으로도 마음으로도 함께 살아가는 살붙이입니다.


  우리 집 옆밭에서 돋는 노란 갓꽃을 아이가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갓꽃을 바라보는 아이 뒤에 서서 아이를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바람이 고요하고 햇살이 포근합니다. 봄볕이 흐르고 봄바람이 살랑입니다. 갓꽃이 흔들립니다. 아이는 한참 꽃을 구경하다가 다른 데로 가서 까르르 웃으며 뛰놉니다. 나도 이제 꽃은 그만 구경하고 아이 뒤를 따라 다른 데로 가서 함께 놉니다. 4347.4.26.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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