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근싹을 보다



  내가 알기로는 틀림없이 당근싹이다. 당근싹이 돋았다. 곁님 아버지와 어머니가 돌보는 밭자락 한쪽에 당근싹이 돋았다고 느낀다. 나도 당근씨를 심어서 키운 적이 있기에, 이 싹은 당근싹이라고 이내 알아챈다. 이와 같은 모습이면서 당근싹 아닌 다른 싹일 수 있을까. 한번 곰곰이 생각에 잠겨 본다. 풀싹은 어떤 모습일는지 가만히 헤아려 본다. 민들레싹과 씀바귀싹은, 부추싹과 질경이싹은, 꽃마리싹과 꽃다지싹은 저마다 어떤 모습일는지 하나하나 헤아려 본다.


  우람한 느티나무가 되기 앞서, 아주 조그마한 느티씨가 떨어져 돋는 느티싹은 어떤 모습일는지 천천히 그림으로 그린다.


  사람들은 ‘밥’이라기보다 ‘먹이’로 삼으려고 씨앗을 심어서 기르곤 한다. ‘사랑’을 듬뿍 받아서 나눌 밥으로 풀포기를 얻으려는 마음이 아니라, 더 많은 ‘영양소’와 더 나은 ‘돈벌이’가 되기를 빌면서 씨앗을 심어서 기르곤 한다.


  밥은 어떻게 지어야 맛있을까? 손쉽게 짓는 밥이 맛있을까? 사랑을 담아 짓는 밥이 맛있을까? 즐겁게 노래하면서 짓는 밥이 맛있을까? 전화를 걸어 시켜서 먹는 밥이 맛있을까? 어떤 밥이든 함께 웃고 이야기꽃을 피우면서 먹는 밥이 맛있을까?


  당근싹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동안 온갖 생각과 이야기가 줄줄줄 흐른다. 4347.6.6.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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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살배기 산들보라 첫 머리깎기



  네살배기 산들보라가 처음으로 머리를 깎는다. 아이는 어떤 마음일까? 아이는 어떤 느낌일까? 나는 산들보라 몸짓과 눈길과 얼굴빛을 가만히 살펴본다. 산들보라는 머리를 깎는 내내 움직이지 않는다. 곧잘 빙그레 웃고, 가끔 뚱한 모습이다가, 이내 모두 잊은 느낌이다.


  보라네 누나인 사름벼리는 몇 살에 처음으로 머리를 깎았더라? 다섯 살 적에는 틀림없이 한 번 깎았는데, 이에 앞서 한 번 깎았는지 안 깎았는지 헷갈린다. 아무래도 한 번 더 깎은 적 있지 싶다. 그런데, 사름벼리 누나는 머리를 깎을 적에 몸이 잔뜩 얼어붙었다.


  곰곰이 돌아보면, 사름벼리가 머리를 깎도록 할 적에 곁님과 내가 제대로 마음을 추슬러 주거나 이끌지 못했다. 산들보라와 머리를 깎으러 마실을 할 적에는 홀가분한 마음이었다. 아이도 이러한 기운을 잘 알고 느끼겠지. 사름벼리 머리를 깎을 적에는 나도 좀 굳은 몸짓이었다면, 산들보라 머리를 깎을 적에는 가만히 지켜보면서 빙그레 웃는 몸짓이 된다. 4347.6.6.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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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다리놀이 1 - 혼자 올라가서 내려오기



  네살배기와 일곱살배기가 사다리를 오르내린다. 일곱살배기는 맨끝까지 척척 올라가고는 다시 땅으로 내려온다. 네살배기는 일곱살배기가 어떻게 오르내리는가를 물끄러미 지켜본 뒤, 천천히 사다리를 오르내린다. 네 발이 닿는 자리마다 새로운 자국이 생기고, 네 발을 디디는 곳마다 이야기가 자란다. 4347.6.6.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놀이하는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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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까치의 우산
김미혜 지음, 한수진 그림 / 창비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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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사랑하는 시 31



동시와 관찰일기

― 아기 까치의 우산

 김미혜 글

 창비 펴냄, 2005.1.12.



  가만히 지켜보면 모두 알 수 있습니다. 지켜보는 기운은 어느새 빛이 되기 때문에, 예부터 ‘잘 보라’고 했습니다. 잘 보는 일이 무척 대수롭기 때문에, 한국말에는 ‘눈여겨보다’라는 낱말이 있고, 찬찬히 보라는 뜻에서 ‘들여다보다’라는 낱말이 있어요. 그리고, 하나를 보면서 둘레를 함께 느끼라는 뜻에서 ‘살펴보다’라는 낱말이 있고, 오늘과 어제를 서로 비추면서 모든 삶은 한 갈래 흐름으로 잇닿는 줄 보라는 뜻에서 ‘돌아보다’가 있고, 다시금 흐름을 보라는 뜻에서 ‘되돌아보다’가 있으며, 더 깊이 흐름을 보라는 뜻에서 ‘뒤돌아보다’가 있습니다.


  보면서 제대로 알라는 뜻에서 ‘알아보다’가 있어요. 내가 보는 눈길과 눈빛과 마음씨를 곰곰이 건사하라는 뜻에서 ‘두고보다(두고 보다)’가 있습니다.



.. 동글동글 / 몸을 만다 ..  (콩벌레)



  잘 보는 사람은 잘 알 수 있습니다. 다만 보기만 해서는 볼 수 없습니다. 보면서 뜻을 헤아려야 볼 수 있습니다. 보면서 생각을 길어올려야 볼 수 있습니다. 보면서 생각을 씨앗으로 마음에 심어야 볼 수 있습니다.


  그저 보기만 한다면 ‘관찰일기’는 쓸 수 있어요. 그리고, 관찰일기는 틀림없이 ‘본’ 대로 쓰는 글입니다만, 언제나 한 가지만 보고 다른 모든 것을 못 보기 일쑤예요.


  관찰일기가 나쁘거나 잘못이라는 소리가 아닙니다. ‘보는’ 까닭은 관찰일기를 써야 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보는 까닭은 잘 알고 제대로 알며 바로 보면서, 사랑스레 껴안고 싶기 때문입니다. 보는 까닭은 깊이 알고 두루 알며 넉넉히 알면서, 아름답게 빛나고 싶기 때문입니다.



.. 봄 햇살 따스한 논 / 아파트가 빼앗았어요. / 개골개골개골개골개골개골 ..  (땅 한 평만!)



  관찰일기는 어떤 글인가요. 그리고, 수필은 어떤 글인가요. 그리고, 감상문이나 독후감은 어떤 글인가요. 그리고, 논술은 어떤 글인가요.


  우리 아이들은 어떤 글을 쓸 때에 즐거울까요. 우리 어른들은 어떤 글을 쓰면서 기쁜가요.


  모름지기 글이라고 할 적에는 언제나 사랑이 꿈과 같이 피어날 때에 글이라고 느낍니다. 사랑이 꿈과 같이 피어나지 못할 적에는 으레 ‘관찰일기로 머문’다고 느낍니다.


  사랑을 담지 못할 적에는 ‘글’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없다고 느낍니다. 꿈을 보여주지 못할 적에는 ‘글’이 못 된다고 느낍니다.


  사랑이 무엇인가 하면, 사람을 비롯한 모든 목숨을 살리는 빛입니다. 꿈이 무엇인가 하면, 지구별에서 살아가는 모든 숨결을 버티는 힘입니다.


  ‘기록하는 역사’는 글이 아닙니다. ‘기록하는 기억’은 글이 아닙니다. 아이도 어른도 ‘쓰는 글’이 될 때에 즐겁습니다. 어른도 아이도 ‘글쓰기’를 해야지, ‘감상문 쓰기’나 ‘보고서 쓰기’나 ‘관찰일기 쓰기’나 ‘문학 창작’을 할 때에는 즐겁지 않습니다.



.. 꽃들 찾느라고 / 땅만 보고 걸어요 ..  (꽃 탐사)



  동시는 문학이 아닙니다. 어른시도 문학이 아닙니다. 그저 ‘문학’이라는 틀을 따로 만들어서 이러한 이름을 붙일 뿐입니다. 아이한테 읽히는 글은 ‘문학’도 ‘어린이문학’도 아닌 ‘글’입니다. 이야기를 담은 글입니다. 이야기를 밝히는 글입니다. 이야기를 나누는 글입니다.


  ‘동시’라는 이름을 붙이니 ‘동시’라고 합니다만, 어른인 사람이 아이인 사람한테 어떤 글을 주어서 읽히려는 까닭은, 글을 쓴 어른과 글을 읽는 아이 모두, 마음속에서 꿈이 사랑스럽게 피어나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지식을 보여주려고 쓴다면 글(동시)이 아니라 보고서(문학)가 됩니다. 정보를 알리려고 쓴다면 글(동시)이 아니라 관찰일기(문학)가 됩니다.



.. 할머니는 다시 / 봄을 풀어 놓으신다 ..  (봄 쫓는 호랑이가 와도)



  김미혜 님이 쓴 동시 《아기 까치의 우산》(창비,2005)은 어떠할까 헤아려 봅니다. 이 동시는 ‘글’일까요? 이 동시는 ‘이야기’일까요? 이 동시는 ‘사랑’이거나 ‘꿈’일까요?


  김미혜 님은 ‘문학’을 하고 싶은 마음일까요? 김미혜 님은 ‘관찰일기’를 쓰고 싶은 마음일까요?


  아이들하고 ‘영양소’를 나누려고 밥을 먹지 않습니다. 아이들하고 ‘즐겁게 살면서 웃고 뛰놀려고 사랑스러운 기운을 얻도록 이끄’는 밥을 먹습니다. 아무쪼록, 동시가 문학이나 관찰일기가 아닌 글이나 이야기가 될 수 있도록 글빛을 여미고 글숨을 불어넣기를 바랍니다. 4347.6.6.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동시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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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추



  ‘단추 꿰기’를 쳐다보지 않던 네살배기 작은아이가 며칠 앞서부터 제 어머니 옷에 있는 단추를 제가 꿰거나 풀겠다고 나선다. 그러나, 아직 하나도 못 한다. 차근차근 손을 놀리며 놀다 보면 곧 ‘단추’를 아이 스스로 ‘내 것’으로 삼으리라. 4347.6.5.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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