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랑 놀자 37] 바뀐 날씨



  날씨가 바뀝니다. 해마다 꽃이 일찍 피고, 해마다 더위가 일찍 찾아오면서 늦게 끝납니다. 해마다 봄가을이 줄어들면서 여름겨울이 늘어납니다. 해마다 소나기가 사라지는 한편, 막비가 나타나요. 여름과 가을을 흔들던 거센 비바람이 한국에 찾아오는 일이 드물면서, 때 아닌 비바람이 찾아들곤 합니다. 예부터 네 철이 뚜렷하던 날씨였으나, 시나브로 철을 잃거나 잊는 날씨로 바뀝니다. ‘바뀐 날씨’예요. 그런데, 어른들은 바뀐 날씨를 안 느끼거나 못 느낍니다. 어른들은 바뀐 날씨를 바로잡으려고 애쓰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바뀐 날씨를 느끼기 어렵습니다. 아이들은 마당이나 골목이나 들에서 놀지 못하면서 학교나 학원에 매이기 때문입니다. 이러면서 학문과 정치로 ‘기후변화(氣候變化)’를 말하거나 따져요. 몸으로 ‘바뀐 날씨’를 느끼지 못하면서 머리로 ‘바뀐 날씨’를 어떻게 맞아들일까요. ‘제철 날씨’가 사라지는 흐름을 읽지 못하면서 학문과 정치로만 ‘기후변화’를 이야기하면 우리 삶터를 어떻게 바로세울 수 있을까요. 4347.6.11.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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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비 소리


  새벽에 빗방울이 듣는다. 마당에 떨어지는 빗물 소리를 듣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바깥을 살핀다. 섬돌 둘레에 어지럽게 널린 신을 추스른다. 신을 가지런히 놓아도 아이들은 으레 벗고 신고 하면서 흐트려 놓는다. 신에 빗물이 튀지 않도록 안쪽으로 들인다. 이불널개를 처마 밑으로 옮긴다. 빨랫대는 마당에 그대로 둔다. 비가 어느 만큼 올까. 요즈막에는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날이 없다. 구름이 몹시 짙다. 구름은 짙으나 비는 없다. 이런 날씨는 아주 안 좋다. 비가 오든지 구름이 걷히든지 해야 한다. 비가 올 때에는 시원하게 내린 뒤, 햇볕이 쨍쨍 내리쬘 때에는 따사롭게 내리쬐어야 들과 숲이 푸르게 빛난다. 어중간하게 흐린 날씨가 자꾸 이어지면 곡식이 제대로 여물지 못한다. 볕이 모자라기 때문이다. 사람도 볕이 모자라면 힘을 잃고, 살림살이도 볕을 덜 누리면 곰팡이가 핀다. 어떤 목숨이든 해와 비와 바람과 흙과 풀과 나무를 골고루 누려야 제대로 산다. 부디 오늘은 비가 시원하게 내린 뒤, 구름이 걷혀 해가 나기를 빈다. 그러나 새벽비는 새벽 네 시에 살짝 찾아오다가 그치고, 다섯 시 반부터 빗줄기는 더 듣지 않는다. 4347.6.11.나무.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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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枚のハガキ (リンダブックス) (文庫)
신도 가네토 / 泰文堂 / 2011년 8월
평점 :
품절


한 장의 엽서

一枚のハガキ, 2010



  ‘엽서 한 장’밖에 쓸 수 없던 태평양전쟁 때에, 시골에서 조용히 살던 사람들은 어떻게 지내야 했을까. 전쟁은 틀림없이 일본이 저질렀다. 그러나, 전쟁을 일으킨 정치권력자와 경제권력자와 지식권력자는 죽지 않는다. 죽는 사람은 시골사람과 가난한 도시내기이다. 시골사람과 가난한 도시내기, 여기에 식민지 백성이 총알받이로 끌려간다. 전쟁은 왜 일으켜야 했을까. 일본은 왜 아시아와 미국으로 쳐들어가야 했을까. 그리고, 미국과 유럽 여러 나라는 지구별에서 식민지를 늘리려 했을까. 전쟁무기를 마련할 돈으로 나라살림을 가꾸면 아무 걱정이 없지 않을까. 정치권력이나 경제권력이 없이, 스스로 흙을 일구어 살아가면 다툼이나 싸움이란 없이, 언제나 평화와 사랑이 넘치지 않을까.


  ‘엽서 한 장’을 사이에 두고 두 사람이 만난다. 끔찍한 전쟁에서 끔찍한 일을 겪고 살아남은 두 사람이 만난다. 두 사람은 가슴에 맺힌 응어리를 어떻게 풀어야 할는지 모르는 채 ‘살지도 죽지도’ 못하는 채 살다가 울음을 터뜨린다. 그리고, 집을 불태운다. 집이 불타고 난 자리에 ‘밀알 한 톨’을 심기로 한다. 집터에 있던 돌과 나무를 걷어낸다. 마당과 집터를 쟁기로 천천히 갈아엎는다. 맨발로 흙을 밟고, 맨손으로 흙을 보듬는다. 씨앗을 심는다. 겨우내 밀싹이 올라온다. 밀싹을 조곤조곤 밟는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되어 밀이 싱그러이 자란다. 여름을 앞두고 누렇게 익어 물결친다. 집터와 마당에 심은 밀알이기에 밀밭은 그리 넓지 않다. 그러나, 옛집을 헐어 들이 된다. 두 사람은 헛간에서 지낸다. 헛간은 두 사람이 살기에 넉넉하다. 아니, 사람은 누구나 조그마한 집이면 넉넉하다. 조그마한 집에서 살며 넓은 들과 숲을 누리면 된다. 물은 냇가에서 길면 된다. 적게 먹고 적게 쓰면서, 삶을 푸르게 빛내면 된다.


  신도 가네토라는 아흔아홉 살 영화감독이 2010년에 이 영화를 찍었단다. 신도 가네토라는 분은 백 살이 되던 2011년에 숨을 거두었단다. 일본사람이면서 ‘일본이 싫’고 ‘전쟁이 싫으’나, 삶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려는 넋을 영화에 알뜰히 담았구나 싶다. 한국사람은 나는 무엇을 사랑할 때에 아름다울까. 한국사람은 나는 어떻게 살아갈 때에 착할까. 4347.6.11.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영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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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들보라 물결 맞이하기


  한동안 바닷물에 안 들어갔으나, 어느새 바닷물에 몸을 맞춘 산들보라는 혼자서 척척 바다로 들어선다. 꼭 무릎까지만 들어서는데, 네 살이 되었다고 웬만한 물결에는 휘청거리지 않는다. 그래도 물결이 제법 치면 휘청거리면서 걷는다. 샘터나 골짜기와는 사뭇 다르면서 커다란 바다이다. 이 바다가 뭍을 품고 모든 목숨을 품으며 지구별도 품는단다. 4347.6.11.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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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끼홍합이 달라붙은 바위


  숲에 있는 바위에는 풀씨가 내려앉아 풀이 돋거나 이끼가 곱게 깔리곤 한다. 바닷가에 있는 바위에는 따개비가 들러붙거나 홍합이나 미역이 들러붙곤 한다. 따개비가 다닥다닥 붙은 바위에 새까만 얼룩이 있는가 싶더니, 가까이 다가가서 쳐다보니 새까만 얼룩이 아닌 새끼홍합이다. 이 조그마한 아이들이 무럭무럭 자라서 커다란 홍합이 되는구나.

  사람도 아주 작은 씨앗에서 비롯하였고, 아주 작은 몸이었으며, 천천히 무럭무럭 자란다. 풀 한 포기도 아주 작고, 나무씨 한 톨도 아주 작다. 새끼홍합도 아주 작을밖에 없다. 숨이 붙는 모든 이웃들은 아주 조그마한 몸에서 커다란 빛으로 거듭난다. 4347.6.11.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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