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함께 쓰는 글


  일곱 살 큰아이가 글을 잘 익히도록 깎두기공책에 한글을 천천히 쓴다. 내가 먼저 천천히 글을 쓰고, 아이가 내 글씨를 보며 따라서 쓴다. 아이는 아직 글씨쓰기보다는 글씨그리기에 더 가깝다. 비슷한 모양으로 그린다고 해야 옳다. 아이가 글쓰기로 거듭나려면, 한글을 어떻게 쓰는가를 제대로 깨우친 뒤 차근차근 생각을 담을 수 있어야 할 테지.

  아이가 쓰는 글은 ‘모양만 잡으려는’ 글이 아니다. 아이가 글씨를 하나씩 찬찬히 살피면서 바르게 쓰도록 이끄는 글일 뿐 아니라, 아이가 마음으로 받아들일 고운 빛이 서린 이야기가 있는 글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름에는 딸기 먹고, 가을에는 떡을 먹고, 겨울에는 무얼 먹고, 봄을 노래하는 하루” 이렇게 넉 줄을 쓴다. 일곱 살 아이가 ‘ㄹ’과 ‘ㄷ’과 ‘ㅁ’을 찬찬히 쓰지 못한다고 느껴, ‘ㄹ’과 ‘ㄷ’과 ‘ㅁ’을 고루 섞어서 글을 짓는다.

  아이는 아버지가 그때그때 지은 글을 읽으면서 ‘ㄹ’이든 ‘ㄷ’이든 ‘ㅁ’이든 얼마나 자주 나오는가를 헤아릴 테지. 이런 닿소리를 읽고 쓰면서 차곡차곡 담을 테지. 글씨마다 빛이 깃들기를 바란다. 글씨마다 숨결이 서리기를 빈다. 4347.6.14.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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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식구가 게우다



  네 식구 먹을 풀물을 짜려고 여러 가지 풀을 뜯는다. 보들보들한 나뭇잎도 뜯고, 이름을 아는 풀과 이름을 모르는 풀을 골고루 뜯는다. 이름을 모르는 풀은 먼저 한두 잎을 뜯어서 천천히 씹은 뒤에 생각한다. 오늘은 이름을 잘 모르는 풀 한 가지를 뜯다가, 막 돋으려는 어린 꽃으로 보건대 ‘자리공’이지 싶은 잎사귀를 몇 섞어서 풀물을 짰다. 날잎으로 먹을 적에는 끝맛이 살짝 시큼하다 싶었으나 이만 하면 먹을 만하다. 풀물로 짜면, 다른 풀과 섞어서 먹으면 어떠할까 궁금했다.


  풀물을 마실 때에는 좋았다. 그런데 세 시간쯤 지난 뒤 아이들도 곁님도 게우고, 나도 게운다. 무엇을 먹든 게우는 일은 없었는데, 아무래도 오늘 새롭게 먹은 자리공잎이 속을 건드려 게웠구나 싶다(내가 뜯은 풀이 자리공잎이 맞다면).


  풀물을 마실 적에는 소금을 함께 먹어야 한다고 곁님이 말한다. 그렇지. 그랬지. 예전에 풀물을 마실 적에 소금을 늘 함께 먹었는데, 한동안 안 먹다가 다시 먹으면서 미처 이 대목을 헤아리지 못했다. 젓가락나물을 먹을 적에도, 하늘타리나 무화과잎을 먹을 적에도, 멸나물잎을 먹을 적에도 없던 비릿함이 올라와 네 식구가 속을 게우니, 넷 모두 고단하다. 큰아이는 씻는방과 마당으로 가서 게웠으나, 작은아이는 이부자리에서 게우느라 베개와 깔개와 이불을 버린다. 작은아이로서는 속에서 올라올 적에 살짝 참았다가 밖에서 게우기 쉽지 않았으리라 느낀다.


  밤 한 시에 작은아이가 문득 일어난다. “나 물 마실래.” 하고 말한다. 이제 속이 가라앉았니? 물을 들이켠 작은아이더러 쉬를 누라 하고는 눕힌다. 보름달이 밝다. 개구리 노래가 그윽하다. 게울 적에 얼마나 띵하고 속이 쓰린지 새삼스레 느낀다. 이런 일을 자주 치르는 곁님은 여느 때에도 얼마나 띵하며 속이 쓰릴까. 나는 게우고 물똥을 누는데, 위아래로 이것저것 내보내니 속이 차분하다. 다 뜻이 있다고 느낀다. 센 풀을 받아들여 몸속에 있던 궂은 것이 제법 밖으로 나왔지 싶다. 4347.6.14.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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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글 읽기

2014.6.11. 큰아이―누나 지켜보겠어



  누나가 공책에 글씨를 쓴다. 동생이 옆에서 지켜본다. 네 살 산들보라는 아직 글씨를 쓸 마음이 없다. 흘낏 쳐다보고는 다른 놀이를 한다. 앞으로 한 살쯤 더 먹으면, 또는 한 살 반이나 두 살쯤 더 먹으면, 산들보라도 누나 곁에서 글씨를 쓸 테지. 그때에는 누나가 쓰는 글씨를 가만히 지켜보면서 따라 쓰겠지.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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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들보라 저 위를 봤어요


  누나가 글쓰기를 하는 옆에 선 산들보라가 문득 손가락 하나를 꼽더니 위를 가리킨다. “아버지 저 위에 뭐가 있어요!” 응, 뭐가 있니? “저기 뭐가 있어요.” 그래, 뭐가 있나 보구나. 뭐가 있을까. 뭐가 네 눈에 보일까. 너는 무엇을 보았을까. 나는 산들보라가 가리키는 곳을 보기보다 산들보라 얼굴과 손가락을 본다. 조물조물 입술을 달싹이면서 읊는 말마디를 바라본다. 4347.6.13.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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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랑 놀자 39] 다음살이


  우리들은 오늘을 삽니다. 오늘을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제 목숨을 고이 건사합니다. 오늘을 살기에 ‘오늘살이’입니다. 오늘 저녁에 새근새근 잠을 자면 이튿날 어떻게 될까요. 우리들은 즐겁게 다시 눈을 뜨면서 새 하루를 맞이할까요, 아니면 반갑지 않다는 투로 또 하루가 이어지는구나 하고 여길까요. 불교에서는 사람살이를 놓고 ‘오늘살이’ 다음에는 ‘내세(來世)·내생(來生)·후생(後生)’이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오늘을 살다가 죽은 사람이 다음에 다시 태어나서 누리는 삶을 가리키는 이름이라고 해요. 한자로 지은 이름인데, 이런 저런 그런 이름을 곱씹으면서 내 다음 삶은 어떠할까 하고 그려 봅니다. 나는 다음에 다시 태어날 적에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을까요. 나는 다음에 새로 태어날 적에 얼마나 사랑스러울 수 있을까요. 다음에 다시 맞이할 삶이니, 나로서는 ‘다음살이’가 되리라 느낍니다. 내 다음살이는 환한 웃음과 기쁜 노래가 어우러진 이야기잔치가 되면 참 아름다우면서 사랑스러우리라 생각합니다. 다음살이를 즐겁게 그리면서, 내 오늘살이부터 알뜰살뜰 눈부시게 가꾸자고 다짐합니다. 4347.6.13.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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