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와 함께 그림책 여행 아빠와 함께 그림책 여행 1
이루리 지음 / 북극곰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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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404



그림책으로 삶을 읽기

― 아빠와 함께 그림책 여행

 이루리 글

 북극곰 펴냄, 2014.6.18.



  개구리가 노래하는 소리를 들으면서 두 아이를 재웁니다. 한여름입니다. 오늘도 어제와 같이 함께 자리에 눕고, 조곤조곤 이야기를 속삭이며, 나긋나긋 노래를 부릅니다. 내가 두 아이를 눕히고 들려주는 이야기와 부르는 노래는 언제나 같습니다. 그렇지만, 언제나 똑같은 이야기와 노래를 들려주면서도 내 마음속에서 흐르는 빛은 늘 다릅니다.


  곰곰이 생각하지요. 왜 날마다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같은 노래를 부르는데에도 늘 다른 느낌일까 하고.


  아이들 팔다리와 몸을 천천히 주무릅니다. 오늘 하루 개구지게 뛰논 만큼 팔과 다리와 온몸한테 고맙다고 인사하듯이 천천히 주무릅니다. 긴 밤 푹 자고 일어나서 새롭게 맞이할 아침에 다시금 기운을 내어 즐겁게 뛰놀기를 바라면서 주무릅니다.


  아이들 몸을 다 주무르고 두 아이 사이에 드러누워 기지개를 켠 다음 노래를 부르면, 이 노래는 늘 내 마음에 먼저 스며드는구나 싶습니다. 왜 그럴까요. 나는 아이들한테 노래를 들려주는데 왜 내 마음에 먼저 스며든다고 느낄까요.


  지난 일곱 해를 돌아봅니다. 아마 지난해에는 지난 여섯 해를 돌아보았을 테고, 그러께에는 지난 다섯 해를 돌아보았을 테지요. 이듬해에는 지난 여덟 해를 돌아볼 테고요. 아이하고 부르는 노래는 아이가 마음으로 담기를 바라는 빛이면서, 나 스스로 이 아이들과 살아가는 동안 마음으로 담기를 바라는 빛입니다. 내가 날마다 새로 맞이하는 아침은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새로운 하루요 나한테도 새로운 하루입니다. 스스로 입으로 읊는 말은 스스로 가슴에 담는 생각이 되면서, 스스로 가장 밝은 꿈을 심는 셈입니다.



.. 생명이 고귀한 까닭은 무엇보다 생명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누군가의 엄청난 노고와 사랑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 할아버지도 할머니도 부모도 남편도 아내도 형제도 친구도 모두 인간의 운명을 함께 나눌 친구입니다 … 마치 동물들이 사람들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숲이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별이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이것이 바로 작가 엠마누엘레 베르토시가 《눈 오는 날》에 전하고 싶은 메시지입니다 ..  (19, 87, 417쪽)



  아이들한테 자장노래를 들려주다 보면, 나는 어느새 곯아떨어집니다. 두 아이를 모두 재우고서 조용히 일어나 글을 쓸 생각이지만, 늘 아이들보다 살짝 일찍 곯아떨어집니다. 아이들은 저희 아버지가 노래를 부르다가 어느새 똑 끊어지더니 먼저 숨을 고르게 쉬면서 잠들면 이윽고 따라서 잠듭니다.


  때때로 큰아이는 자다가 소리를 지르며 일어납니다. 뭔가 하고 옆에서 화들짝 놀라 일어납니다. “모기 있어.” 한 마디를 하며 이불을 끌어당깁니다. “아, 그래. 모기.” 엄청난 꿈이라도 꾸었나 하고 놀란 마음을 달래면서 빙그레 웃습니다. 가만히 귀를 기울입니다. 어디 모기 소리가 들리나.


  모기 소리가 들리면 옆방 불을 켭니다. 팔을 옆으로 뻗습니다. 모기야 모기야 내 팔에 내려앉으렴. 모기는 앵앵거리면서 내 팔이 아닌 아이들 몸 가운데 구석진 데에 내려앉으려고 합니다. 나는 모기 소리를 찾아 이리저리 살피며 내 팔이나 다리를 다시 뻗습니다. 이제 모기가 내 팔이나 다리에 내려앉으면 몇 초쯤 기다립니다. 그러고 나서 세차게 찰싹.


  한 차례에 잡히는 모기가 있고, 열 차례 넘게 쳐도 안 잡히는 모기가 있습니다. 오늘 밤은 어쩐지 모기 한 마리가 안 잡힙니다. 한 마리하고 한참 실랑이를 합니다. 그러나 모기는 끝끝내 잡히기 마련입니다. 마지막으로 찰싹 내리쳐서 잡았는가 싶더니 이불에 톡 떨어집니다. 얼른 모기를 줍습니다. “자, 모기 잡았어.” 하고 큰아이한테 말합니다. 큰아이는 다시 깊이 잠듭니다. 손에 쥔 모기는 아직 안 죽었습니다. 통통한 모기 한 마리가 바들바들 떠는 기운을 느낍니다. 손가락으로 꽉 눌러서 죽이려다가 차마 죽이지 못합니다. 부엌에서 물을 틀어 개수구로 모기를 빠뜨립니다.



.. 치히로의 언어는 산문이 아니라 마음으로 부르는 노래이며 어린아이가 들려주는 속삭임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 치히로의 그림에는 스케치가 없습니다. 실존하는 만물이 그렇듯이 말이지요. 치히로는 수채화 물감의 농담만으로 사물과 인물의 입체감을 살립니다. 또한 여백을 최대한 활용해서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허물어 버립니다 ..  (56, 129쪽)



  아버지로서 아이와 함께 그림책을 누린 삶을 이야기하는 《아빠와 함께 그림책 여행》(북극곰,2014)을 읽습니다. 돈을 벌려고 애쓰는 아버지는 많지만, 아이와 그림책을 읽으려는 아버지는 드문데, 이루리 님은 아이하고 도란도란 그림책을 누린다고 합니다. 그리고, 아이와 그림책을 누리면서 ‘아이한테만 읽히기에는 많이 아쉬운 작품’이 많다고 느껴, 이렇게 ‘아버지 이웃’을 비롯해서 ‘어버이 이웃’ 누구하고나 나누고 싶은 그림책 이야기를 조곤조곤 펼칩니다.


  마땅한 이야기이지요. 그림책은 아이만 누리는 책이 아닙니다. 그림책은 아주 어린 아이부터 누리는 책입니다. 아주 어린 아이들도 그림책을 읽으면서 삶을 맛보거나 헤아리거나 돌아볼 수 있습니다. 아이들만 읽는 책이 아니라, 아이들부터 읽는 책입니다.


  만화책도 이와 같아요. 아이들만 보는 책이 만화가 아닙니다. 아이들도 쉽게 알아듣거나 알아차릴 수 있게끔 이야기빛을 베푸는 책 가운데 하나가 만화입니다.


  다시 말한다면, 어린 아이들도 알아차릴 수 있도록 엮은 책이 그림책인 터라, 그림책은 ‘가장 쉬운 인문책’입니다. 그림책은 ‘가장 너르거나 깊은 역사책’입니다. 그림책은 ‘가장 사랑스럽거나 즐거운 이야기책’입니다.




.. 레이먼드 브리그스가 이렇게 그림책에 대한 통념을 깨뜨릴 수 있었던 까닭은 자신이 그림을 그리는 근본적인 동기를 늘 잊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 사람은 원래 별처럼 아름답고 자유롭고 즐겁게 태어난 게 아닐까요 … 아침 햇살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며 잠에서 깨어납니까?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하늘을 올려다본 기억은 언제입니까? 책을 읽다가 문득 고개를 들어 지는 해의 아름다움에 감탄한 적은 있나요 ..  (139, 218, 321쪽)



  어느 책을 읽더라도 우리들은 삶을 읽습니다. 그림책에서든 만화책에서든 어른문학에서든 늘 삶을 읽습니다. 책을 빚은 사람들이 이룬 삶을 책을 읽으면서 느낍니다. 그림책을 읽으면서 만나는 삶은 ‘사랑’과 ‘꿈’입니다. 왜 사랑과 꿈인가 하면, 어른으로서 아이한테 물려줄 만한 삶은 언제나 사랑과 꿈이기 때문입니다.


  아이한테 돈을 물려주어야 할까요? 아이한테 과학기술이나 전쟁무기를 물려주어야 할까요? 아이한테 총칼이나 탱크나 전투기를 물려주어야 할까요? 아이한테 골프장이나 발전소나 공장을 물려주어야 할까요? 아이한테 자가용이나 고속도로나 시멘트를 물려주어야 할까요? 아이한테 아파트나 국회의원 자리나 부동산을 물려주어야 할까요?


  어른이 아이한테 물려줄 것은 예나 이제나 사랑과 꿈입니다. 아이가 어른한테서 물려받을 것은 이제나 예나 꿈과 사랑입니다. 그림책은 한결같이 사랑과 꿈을 노래합니다. 그림책은 언제 어디에서나 사랑과 꿈을 보듬습니다. 그러니까, 그림책을 읽는 어버이는 아이와 나눌 사랑과 꿈을 읽으려는 사람이요, 아이와 함께 그림책을 읽을 적에는 어버이 스스로 새롭게 가꾸거나 일굴 사랑과 꿈이 어떠한 빛인가 하고 되새긴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빠와 함께 그림책 여행》이라는 책에서 고개를 갸우뚱할 만한 대목이 곳곳에 드러납니다. 이를테면, “치히로가 이야기를 들려주는 방식은 한편으로 생각하면 몹시 불친절하게 보입니다. 하지만 정작 그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면 놀랍게도 독자들은 토토의 마음으로 느끼고 생각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56쪽).”와 같은 글월인데, ‘몹시 불친절하게 보이’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이와사키 치히로 님 그림을 제대로 읽는다면, 또는 어린이 눈높이로 읽는다면, 또는 사랑과 꿈이라는 눈길로 읽는다면, 이때에도 ‘몹시 불친절하게 보일’까 궁금합니다. 이와사키 치히로 님이 빚은 그림에 “귀를 기울이면 놀랍게도” 토토가 어떤 마음인지 느낄 수 있다고 이루리 님 스스로 덧붙입니다. 곧, 이와사키 치히로 님 그림은 ‘몹시 불친절’한 그림이 아니라, 아이와 함께 천천히 차근차근 가만히 읽으면 마음 깊이 환하게 피어오르는 그림이라는 뜻입니다. 이러한 그림을 바라보면서 섣불리 ‘몹시 불친절’하다는 투로 말하는 일은 얼마나 즐거울는지 글쓴이 스스로 되새겨야지 싶어요.


  왜냐하면, 그림책은 똑같은 틀로 굽는 붕어빵이 아니에요. 그림책은 다 다른 작가가 모두 똑같은 줄거리나 얼거리로 짜야 하는 붕어빵이 아닙니다. 붕어빵을 같은 틀로 구워도 다 다른 맛이 나기 마련인데, 다 다른 사람들이 다 다른 삶을 바탕으로 다 다른 사랑과 꿈을 보여주는 그림책이 다 다른 빛일밖에 없어요. 아이와 함께 그림책을 읽는 어버이라면, ‘마음을 활짝 열고 다 다른 빛’을 넉넉히 끌어안으면 됩니다.


  한편, “얼핏 보면 원작 《슈렉》은 영화 〈슈렉〉보다 과격하고 비교육적입니다. 하지만 그림책 《슈렉》은 지금까지도 할리우드 제작자들을 포함한 모든 독자에게 평생 철학적인 숙제를 던지며 성장하고 있습니다(265쪽).”와 같은 글월은 앞뒤가 어긋납니다. 아니, 그림책을 읽으면서 ‘과격’이라느니 ‘비교육적’이라는 말을 함부로 쓸 수 있는지 아리송합니다. 게다가, 이렇게 말하고 나서 곧바로 “철학적인 숙제를 던지며 성장”한다고 덧붙이니, 더더욱 어수선합니다. 사람들한테 생각을 깊이 하도록 이끄는 그림책이라면 ‘교육을 하는’ 그림책이지 ‘비교육적’ 그림책이 아닙니다.


  아버지로서 아이와 함께 그림책을 읽는 일은 아름다우면서 사랑스럽습니다. 그런데, 그림책을 만날 적에 ‘제도권 사회를 만들고 이 틀을 붙잡으려는 어른으로서 바라보는 눈길’은 내려놓으면 좋겠습니다. 아이들은 어느 누구도 제도권 틀이 없어요. 아이들은 어느 누구도 금을 긋지 않고 편을 가르지 않습니다. 아이들한테 제도권 틀이나 금긋기나 편가르기를 보여주거나 가르치지 않기를 바랍니다. 아이들한테 사랑과 꿈을 보여주거나 가르치면서 물려주기를 바랍니다.


  이 그림책은 이렇게 즐기고, 저 그림책은 저렇게 즐길 수 있기를 바라요. ‘교육’이나 ‘교훈’이나 ‘감동’이라는 이름도 모조리 내려놓고, 그림책을 그림책으로서 마주하면서 이 책들마다 서린 빛을 읽을 수 있기를 바라요.


  우리는 아이들과 함께 그림책으로 삶을 읽습니다. 이웃이 누리는 삶을 읽고, 동무가 가꾸는 삶을 읽으면서, 내가 아이하고 새롭게 가꾸는 삶을 읽습니다. 사랑으로 삶을 가꾸고, 꿈으로 삶을 짓는 슬기로운 눈빛을 그림책에서 만날 수 있기를 빌어요. 4347.7.1.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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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섬 슈트
스즈키 오사무 지음, 이영미 옮김 / 북스토리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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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섬★수트
ハンサム★ス-ツ Handsome Suit, 2008


  아이들과 영화 〈핸섬 수트〉를 본다. “잘생긴 옷”이라니, 어떻게 옷이 잘생길 수 있다는 말인가. 그러나, 영화에 붙은 이름 그대로 “잘생긴 옷”이 있단다. 사람 얼굴은 못생겼다 하더라도 옷은 잘생긴 터라, 온갖 사람을 홀리는 옷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 영화에 나오는 주인공 사내는 늘 생각한단다. ‘스스로 못생겼다’고.

  스스로 못생겼다고 생각하는 사내는 언제나 얼굴 때문에 걸린다고 여긴다. 예쁜 가시내이든 안 예쁜 가시내이든 누구나 이녁 얼굴 때문에 이녁을 안 좋아한다고 여긴다.

  그러면, 참말 그러할까? 참말 사람들은 얼굴 때문에 누구를 좋아하거나 안 좋아할 수 있을까? 어쩌면, 겉으로 보자면 그러할 수 있다. 사람들은 겉으로만 마주하면서 서로 겉삶만 읽을 수 있다.

  달리 생각하면, 사람을 겉모습이 아닌 속모습으로 읽을 줄 안다면, 우리들 누구나 겉이 아닌 속을 살피거나 읽거나 사랑하면서 살아갈 수 있다.

  영화 〈핸섬 수트〉에 나오는 사내는 어떻게 해야 할까. 사람들이 이녁 마음씨를 읽지 않고 생김새로만 다가온다면 기쁠까? “잘생긴 옷”을 입고 돌아다닐 적에 둘레 사람이 ‘겉으로 바라보는 눈길’을 받으면 기쁠까? 마음을 읽지 않는 이웃이 겉치레로 다가오는 일이 이녁 삶에 어떤 기쁨이나 노래나 웃음이나 보람을 선물할 만할까?

  사랑은 얼굴 생김새나 몸매나 돈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사랑처럼, 삶도 얼굴 생김새나 몸매나 돈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책 한 권도, 글 한 줄도, 그림 한 장도, 노래 한 가락도, 늘 겉모습이나 겉치레가 아닌 마음씨와 알맹이로 이루어진다. 4347.7.1.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영화읽기)



아쉽게도 이 영화는

디브이디가 아직 나오지 않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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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끼 고양이 지켜보기


  우리 집에서 아이들이 어떻게 뛰노는가를 지켜보듯이 새끼 고양이를 지켜본다. 새끼 고양이는 우리 식구들이 마당에 내려오지 않고 집안에 조용히 있을 적에 마당으로 살몃살몃 눈치를 보면서 나와서 뛰논다. 새벽 다섯 시 반부터 마당에서 삑삑 찍찍 소리가 나기에 후박나무에 멧새가 날아와서 후박알을 따먹는가 하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새끼 고양이가 마치 새소리처럼 삑삑 찍찍 소리를 내면서 이웃 밭으로 돌울타리를 타고 넘어가서 놀다가, 다시 돌울타리를 타고 우리 집 마당으로 넘어오며 논다. 이렇게 돌울타리를 넘다가는 대문 밑으로 살살 빠져나가고, 다시 대문 밑으로 살살 들어온다. 어미 고양이가 하는 모든 몸짓을 따라한다.

  까망하양 새끼 고양이가 두 마리이고, 누렁하양 새끼 고양이가 한 마리이다. 세 마리가 얼크러지면서 노는 일은 드물고, 세 마리가 따로따로 논다. 어떻게 보면, 한 마리가 둘레를 살펴보는 동안 다른 고양이가 논다고까지 할 수 있다.

  마당에 작은아이 세발자전거가 덩그러니 있다. 세발자전거 때문에 새끼 고양이를 지켜보는 눈길이 걸리기는 하지만, 새끼 고양이한테는 세발자전거가 궁금한 것일 수 있으리라.

  한참 새끼 고양이를 지켜보는데 큰아이가 잠에서 깬다. 여섯 시 십팔 분. 큰아이는 어제 저녁 아홉 시 즈음 잠들었는데 퍽 일찍 일어났다. 큰아이도 아버지와 마루에 나란히 앉아서 조용히 새끼 고양이 놀이를 지켜보면서 하루를 연다. 4347.6.30.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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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말을 죽이는 외마디 한자말

 (1320) 통하다通 66 : 이 문을 통해


우리 가족을 포함해 안채에 사는 사람들도 대부분, 언제나 열려 있는 이 문을 통해 드나들어요

《고은명-후박나무 우리 집》(창비,2002) 55쪽


 이 문을 통해

→ 이 문으로

→ 이 문을 거쳐

→ 이 문을 지나

 …



  보기글에서는 “이 문을 거쳐서 드나들어요”를 뜻하는 낱말로 ‘通하다’를 넣었습니다. 그래요, 그렇지요. 그러면, 처음부터 ‘거쳐서’를 넣으면 됩니다. ‘거쳐서’를 뜻하는 외마디 한자말을 넣을 까닭이 없습니다.


  어느 문을 거쳐서 어디로 드나든다고 한다면, “어느 문으로” 어디를 드나든다는 이야기입니다. ‘거치’기도 하고 ‘지나’기도 하며 ‘가로지르’기도 하면서 드나듭니다. 4347.6.30.달.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우리 식구까지 해서 안채에 사는 사람들도 거의 다, 언제나 열린 이 문으로 드나들어요


‘가족(家族)’은 일본 한자말이니 “우리 가족”은 “우리 식구”로 다듬고, ‘-을 포함(包含)해’는 “-까지 해서”나 “-을 비롯해서”로 다듬습니다. ‘대부분(大部分)’은 ‘거의 다’나 ‘거의 모두’로 손보고, “열려 있는”은 “열린”으로 손봅니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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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책방에 배본된 제 책으로는 21번째 책인 <책빛숲>이 나왔습니다. 지난 2013년 9월에 나온 <책빛마실, 부산 보수동 책방골목>은 새책방에 배본되지 않았습니다. 1인잡지 <우리말과 헌책방>은 11호까지 냈지만 7호까지만 새책방에 배본되었습니다. 1인잡지 일곱 권을 뺀다면 열다섯 번째 책이라고 하겠습니다. 아무쪼록 즐겁게 장만해서 기쁘게 읽으시고 널리 나누어 주셔서, 이 책이 오래도록 사랑받으면서 새로운 빛이 태어나도록 이끄는 밑힘이 되도록 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


마을 살리는 책빛, 도시 살리는 책숲



  책방은 책방이기에 책숲이다. 책은 책이기에 책빛이다. 책숲이 되는 책방 한 곳이 마을에 있어 마을이 빛난다. 책빛이 되는 책이 책방에 깃들 수 있기에 도시가 환하다.


  교보문고나 영풍문고 같은 커다란 책방이 있어서 도시가 빛나지 않는다. 사람들이 커다란 책방에서 더 많은 책을 살펴보거나 장만해서 읽는다 하더라도 도시가 빛나지 않는다. 왜 그럴까? 사람들이 커다란 학교에서 더 많은 교재와 교과서로 학문을 익히더라도 도시가 빛나거나 나라가 빛나지는 않는다. 왜 그럴까?


  책은 더 많이 팔려야 책이 되지 않는다. 책방은 더 크거나 더 넓어야 책방이 되지 않는다. 책은 제대로 읽힐 수 있을 때에 책이다. 책방은 사람들한테 제대로 책숲이 될 수 있는 터전이어야 책방이다. 더 커다란 건물로 지어야 학교가 아니라, 사랑스러운 넋으로 아름다운 꿈을 가르치고 배울 수 있어야 학교이다. 건물이 없어도 사랑과 꿈을 가르치면서 배운다. 건물이 작아도 사랑과 꿈을 나누면서 가꾼다.


  먼 옛날부터 아무런 책이 없었어도 사람들은 밥짓기와 옷짓기와 집짓기를 가르치면서 배웠다. 먼 옛날부터 아무런 교사도 학자도 없었지만 사람들은 풀을 뜯어서 밥을 먹고 풀잎으로 바구니와 돗자리를 짰으며 풀잎(짚)으로 지붕을 얹었다. 그리고, 풀잎에서 실을 뽑아서 옷을 지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사람들이 학교를 수십 년에 걸쳐 다니지만, 스스로 밥을 짓지 못하고 옷을 짓지 못하며 집을 짓지 못한다. 오늘날에는 사람들이 돈을 버는 직장인이 될 뿐이고, 오늘날에는 사람들이 지식을 쌓으려고 책을 손에 쥘 뿐이다.


  작은 헌책방 〈아벨서점〉이 있다. 작은 헌책방은 그야말로 작다. 이 작은 헌책방에도 책은 10만 권 20만 권 30만 권, 이럭저럭 갖춘다. 그런데, 이 작은 헌책방에 책이 몇 만 권, 또는 수십만 권쯤 있다고 하더라도 대수롭지 않다. 이 작은 헌책방은 더 많은 사람들한테 더 많은 책을 팔 생각이 없다. 이 작은 헌책방은 한 사람이라도 가슴에 빛을 품기를 바란다. 책에 서린 빛을 사람들이 알아보고는, 책손 스스로 ‘빛나는 새 사람’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기를 바란다.


  시중 새책방에서 절판되어 사라진 책을 우리한테 잇는 징검다리인 헌책방이다. 도서관에서 안 갖추거나 도서관에서 대출실적이 없다면서 버린 책을 그러모아 새롭게 숨을 불어넣는 헌책방이다.


  작은 헌책방 〈아벨서점〉은 인천 배다리에 있다. 인천 배다리는 헌책방거리이다. 〈아벨서점〉을 비롯해서 여러 헌책방이 있다. 〈아벨서점〉 한 곳이 있어 배다리 헌책방거리가 살아나지 않는다. 그리고, 〈아벨서점〉 한 곳이 없으면 배다리는 살아나지 않는다. 이와 마찬가지로, 배다리에 있는 〈집현전〉과 〈대창서림〉과 〈한미서점〉과 〈삼성서림〉과 〈나비날다〉는 저마다 제 빛을 가꾸거나 보듬으면서 어깨동무를 한다. 더 돋보이는 책터가 아니고, 더 나은 책마당이 아니다. 함께 살아가면서 함께 웃고 노래하는 책잔치이다.


  커다란 자리에서 으리으리한 연출을 할 때에 ‘국제도서전’을 이루기도 할 텐데, 따로 며칠쯤 날을 잡아서 벌여야 책잔치를 이루지 않는다. 작은 헌책방 한 곳에서 작은 헌책 하나를 찾아내어 손에 쥘 적에도 언제나 책잔치이다. 책을 손에 쥔 사람들 가슴에 두근두근 설레며 기쁜 마음이 샘솟을 때에 비로소 책잔치이다. 헌책방 〈아벨서점〉은 이곳을 찾아오는 사람들한테, 또 인천 배다리 헌책방거리로 책 하나 찾으려고 나들이를 하는 사람들한테, 빛과 숨결과 노래와 꿈과 사랑을 들려주고 싶다. 함께 빛을 보고, 함께 숨을 쉬며, 함께 노래를 부르고, 함께 꿈을 꾸며, 함께 사랑을 하고 싶다.


  국어사전 만드는 일을 하는 최종규는 2014년에 마흔 살이다. 최종규는 열여덟 살부터 〈아벨서점〉과 배다리 헌책방거리를 드나들었다. 작은 헌책방 한 곳을 스물세 해째 단골이 되어 드나든다. 헌책방에서 만난 작은 책이 발판이 되어 국어사전을 만드는 밑힘을 얻는다. 헌책방에서 듣고 나눈 이야기를 씨앗으로 삼아 국어사전을 가꾸는 밑거름으로 쓴다.





  참으로 작은 헌책방에 무엇이 있기에 스물세 해를 단골로 드나들 수 있을까? 인천광역시는 2015년 ‘세계 책의 도시’로 뽑혔다고 하는데, 왜 인천은 ‘책도시’로 뽑힐 수 있었을까? 인천에는 책방이 몇 군데나 있으며, 인천에 있는 크고작은 새책방과 헌책방은 저마다 어떤 빛과 숨결이 있을까?


  마을 살리는 책빛이요, 도시 살리는 책숲이다. 마을 살리는 작은 책방이요, 도시 살리는 책방거리이다. 책은 돈으로 읽지 않는다. 책은 마음으로 읽는다. 책은 돈으로 만들지 못한다. 책은 사랑으로 만든다.


  《책빛숲, 아벨서점과 배다리 헌책방거리》는 책·빛·숲 세 가지 이야기를 들려준다. 책과 빛과 숲은 같은 말이다. 책과 빛과 숲은 서로 같으면서 서로 다르다. 책과 빛과 숲은 언제나 하나가 되어 흐른다. 책은 빛이 되고, 빛은 숲이 되며, 숲은 책이 된다. 책은 빛에서 태어나고, 빛은 숲에서 태어나며, 숲은 책에서 태어난다.


  작은 책방지기가 작은 책방을 일구며 살아온 작은 이야기를, 작은 책손이 작은 발걸음으로 찾아온 스물세 해 이야기를 《책빛숲》에 살포시 담았다.




..



글쓴이 소개

: 글을 쓰고 사진을 찍은 최종규(40)는 국어사전 만드는 일을 하고, 전남 고흥에서 ‘사진책도서관 함께살기’를 운영한다. 사진비평 《사진책과 함께 살기》를 썼고, 인천 골목동네 사진이야기 《골목빛, 골목동네에 피어난 꽃》을 썼다. 한국말 슬기롭게 쓰는 길을 밝히고 싶어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사자성어 한국말로 번역하기》,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뿌리깊은 글쓰기》, 《사랑하는 글쓰기》, 《생각하는 글쓰기》 같은 책을 썼고, 청소년이 나아갈 길 밝히려는 뜻으로 《어른이 되고 싶습니다》, 《책 홀림길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 같은 책을 썼다. 헌책방 책삶을 북돋우려고 《책빛마실, 부산 보수동 책방골목》, 《헌책방에서 보낸 1년》, 《모든 책은 헌책이다》 같은 책을 썼다.

 blog.aladin.co.kr/hbooks

 blog.naver.com/hbooklove

 cafe.naver.com/hbooks

 blog.yes24.com/hbooklove




..


글쓴이 최종규가 들려주는 이야기



ㄱ. 책방은 책방이기에 책숲이겠지요. 사람은 사람이기에 사람숲일 테지요.



ㄴ. 책방에서 책을 만납니다. 책방에서 책을 읽습니다. 책방에서 책을 삽니다. 책방에서는 물건을 사고팔지 않습니다. 책방에서는 싸구려 물건을 도맷값으로 함부로 넘기지 않습니다. 마음을 밝히거나 살찌우는 책 하나를 알뜰히 건사해서 알맞춤한 책손이 찾아오면 알맞다 싶은 값으로 팝니다.



ㄷ. 헌책방으로 찾아오는 중·고등학교 아이들은 거의 모두 교과서와 참고서밖에 볼 줄 모릅니다. 이 아이들은 교과서와 참고서를 보는 데에도 벅찹니다. 교과서와 참고서에 둘러싸인 채 고등학교를 마치고 대학교에 간대서, 이 아이들이‘책’을 손에 쥐려고 하지 않습니다. 책으로 삶을 일굴 줄 아는 중·고등학교 아이들이 드뭅니다. 곧, 책으로 삶을 가꿀 줄 아는 중·고등학교 교사부터 드물겠지요. 책 하나로 삶길 열며, 책 하나에서 사랑길 헤아리는 어른이 매우 드물어요. 우리 아이들이 모두 책을 많이 읽거나 눈이 높아야 하지는 않아요. 그렇지만 아이들 스스로 이녁 삶을 들여다볼 줄 모른다면 바보가 되겠지요. 아이들을 둘러싼 수많은 사람들 삶자락을 돌아볼 줄 모른다면 멍텅구리가 되겠지요. 나를 보지 못하니, 내 이웃을 보지 못해요. 나를 느끼지 못하니, 내 동무를 느끼지 못해요. 무엇보다 내 삶을 느껴야, 내 밥을 느끼고, 내 옷과 내 집과 내 마을을 느껴요.





ㄹ. 작은 사람이 작은 꿈으로 작은 책터를 보살핍니다. 작은 사람이 작은 책을 만지며 작은 사랑을 나눕니다. 천천히 이루는 꿈입니다. 하나씩 이루는 꿈입니다. 아름답습니다. 따사롭습니다. 책 문화는 바로 삶 문화입니다. 삶 문화는 곧 책 문화입니다. 사람이 살아온 발자국이 문화요, 문화는 곧 사람이 살아온 발자국이에요.



ㅁ. 우리가 헌책방 나들이를 하면서‘싼 물건’을 찾거나‘아주 드문 자료’를 캐낸다는 마음을 넘어서서‘내 마음 움직이는 이야기 하나’를 만나려는 매무새라면, 덧붙여‘지은이 삶을 고이 돌아보면서 내 삶 차곡차곡 일굴 슬기와 빛줄기’를 얻는 길동무나 스승이라고 받아들인다면 달라집니다. 헌책방은 앞으로도 목숨 줄 길이길이 이어 갈 책삶터, 책누림터, 책만남터, 책즐김터입니다.



ㅂ. 헌책방에서 마주하는 헌책은‘내가 이 책을 사서 읽기 바란다’해서 짠 하고 나타나지 않을 뿐더러, 어디에서“이 책 좀 보내 주셔요.”하고 바라지 못합니다. 기다려야 합니다. 책이 들어오기를 기다려야 하고, 미리 여럿 갖추어 놓으며 책손이 알아보고 사 가기를 기다려야 합니다.




ㅅ. 골목동네 삶을 글이나 사진으로 담으려 한다면, 마땅히 골목동네 한 자락에 내 살림집이나 일방을 얻어야 합니다. 이렇게 하지 않고서야 골목동네 삶을 알아보지 못해요. 왜냐하면, 아침부터 낮과 저녁과 밤과 새벽을 두루 골목동네에서 지내면서 봄여름 가을 겨울 네 철을 날씨와 흐름과 기운을 고스란히 받아안아야‘골목동네 맛을 조금 보았다’할 만하기 때문입니다. 동네 사람 아닌 구경꾼으로서는, 제아무리 뻔질나게 찾아든다 해서 골목동네를 알거나 읽을 수 없어요. 헌책방을 읽을 때에도 언제나 똑같습니다. 어쩌다 한두 번 찾아갔대서 인천 배다리를 안다 할 수 없습니다. 인천 배다리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배다리 헌책방거리에 한 주에 몇 차례씩 드나들지 않는다면 주민등록으로는 배다리 사람일 테지만,‘ 헌책방거리 이웃’은 되지 못해요. 헌책방 일꾼 이름을 알거나 얼굴을 안다고 헌책방을 알 수 없을 뿐더러, 헌책방 헌책을 알 턱이 없습니다.



ㅇ. 나는 고향 인천을 떠나 전라도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 집 아이들은 어버이를 따라 인천사람이 되었다가 음성 사람도 되었다가 이제는 고흥 사람이 됩니다. 우리한테 삶이란 무엇일까요. 인천에서 나고 자라면서 살아가는‘아벨서점’책지기 한 분은 어떤 마음으로 하루하루 책을 만질까요. 춘천을 떠나 인천에서 뿌리를 내리는‘아벨서점’책지기 한 분은 또 어떤 넋으로 날마다 책을 보살필까요. 책에서 읽는 빛은 삶빛입니다. 삶을 사랑하는 빛이 책마다 깃듭니다. 책에서 누리는 빛은 사랑빛입니다. 사랑하며 살아가는 빛이 책마다 서립니다. 책을 쓰는 사람이 빚은 고운 넋을 책방지기가 알뜰살뜰 보듬어 책시렁을 튼튼하게 짭니다. 책을 읽는 사람은 책시렁이 아름다운 헌책방으로 나들이를 하면서 오래오래 되읽을 만한 사랑스러운 책을 찾거나 살핍니다. 오늘 하루 만난 책들을 한데 그러모아 가슴에 폭 안은 뒤 가방에 담습니다.



ㅈ. 읽고 삭히고 살아갑니다. 읽고 생각하고 사랑합니다. 읽고 어깨동무하고 웃습니다. 책을 읽는 까닭은 머리에 지식을 담고 싶기 때문이 아니에요. 책을 읽는 까닭은 착하게 살고, 즐겁게 살며, 아름답게 살고 싶기 때문입니다. 학교를 다녀야 학교가 아니에요. 스스로 배우고 가르쳐야 합니다. 졸업장을 따야 학교를 다닌 셈 아니에요. 부엌에서 부엌일 하고, 아이들과 복닥이며 아이 돌보았어도 학교를 다닌 셈입니다. 책방이 곧 학교입니다. 도서관도 학교가 될 수 있습니다. 시골 논밭도 학교가 되며, 공장이나 회사도 학교가 됩니다. 어디나 학교가 되지요.




ㅊ. 책을 더 많이 읽어야 하지 않아요. 삶을 제대로 사랑해야지요. 책을 더 가까이해야 하지 않아요. 삶을 아름답게 일구어야지요. 삶을 제대로 사랑할 때에 책을 제대로 사랑합니다. 삶을 아름답게 일굴 때에 책을 아름답게 다룹니다. 삶을 제대로 모르면서 책을 제대로 읽을 수 없습니다. 삶을 알뜰살뜰 사랑하지 못하면서 책을 슬기롭게 사랑하지 못합니다.



ㅋ. 책을 더 읽었기에 더 훌륭하지 않습니다. 책을 덜 읽었기에 안 훌륭하거나 바보스럽지 않습니다. 아름답게 살아가는 사람이 아름답습니다. 사랑스레 살아가는 사람이 사랑스럽습니다. 책을 읽는 사람은 그저‘책을 읽은’사람입니다.



ㅌ. 해와 바람뿐이 아닙니다. 빗물과 냇물이 없으면 지구별 모든 도시는 하루아침에 말라비틀어집니다. 흙과 풀과 나무가 없으면 지구별 모든 도시는 곧장 무너집니다. 풀벌레와 새와 물고기가 없으면 지구별은 어찌될까요? 생각해 볼 수 있을까요? 핵발전소나 공장이나 골프장이 없대서 지구별이 무너지지 않아요. 손전화를 못 쓰거나 인터넷이 막히거나 학교가 문을 닫는대서 지구별이 흔들리지 않아요. 삶을 바라볼 수 있을 때에 삶을 누립니다. 삶을 바라볼 때에 삶을 즐깁니다. 삶을 누리거나 즐길 때에 책을 손에 쥡니다. 책을 손에 쥐어 삶을 깨달을 수 있다면, 저마다 스스로 어떤 보금자리를 가꾸면서 하루를 빛낼 때에 웃음꽃이 피어나는지 알아채리라 생각합니다.



ㅍ. 똑같은 책 한 권이더라도 책방마다 매무새가 다릅니다. 똑같은 책 한 권이라 하더라도 책방지기마다 다르게 건사합니다. 한결 마음을 쏟는 책방이 있고, 대수롭지 않게 꽂는 책방이 있어요. 모두 아름다운 책입니다. 모두 아름다운 책방입니다. 갓 문을 연 책방도 아름답고, 마흔 해를 씩씩하게 살아온 책방도 아름답습니다. 헌책방 할머니도 아름답고, 헌책방 언니도 아름답지요. 헌책방 아저씨도, 헌책방 오빠도, 헌책방 아지매도, 헌책방 누나도 모두 아름답습니다.



ㅎ. 책에는 빛을 담습니다. 책에 담긴 빛은 숲내음이 납니다. 빛은 숲에서 곱게 퍼집니다. 빛이 곱게 퍼지는 숲에서‘책으로 태어날 이야기’가 무럭무럭 자랍니다. 숲은 나무를 품습니다. 숲이 품은 나무를 베어 책을 만듭니다. 잘린 나무는 종이가 되는데, 종이가 되는 나무는 오래도록 숲에서 살아오며 누린 빛이 서립니다. 종이에 글과 그림과 사진을 앉힐 적에 숲내음이 고운 빛으로 퍼지고, 책 한 권 손에 쥔 사람들은 책과 빛과 숲을 함께 누립니다. 책·빛·숲, 이 세 가지는‘삶’을 나타내는 다 다른 낱말이자 다 같은 말마디로구나 하고 느낍니다.





..



헌책방 〈아벨서점〉 책지기 이야기



ㄱ. “내가 바로 신이에요. 신은 바로 자기 자신이에요. 책을 보는 일은 바로 신을 찾는 일이죠.”



ㄴ. “사람들이 책을 귀하게 여길 줄 알도록 이끌며 쉴 수 있는 북카페, 쉼터 하나 만들고 싶어요. 책 하나에 깃든 깊은 얼을 깨닫도록 하고 싶어요.”



ㄷ. “헌책방 오래 하니 좋은 사진 보는 눈도 높아져.”



ㄹ. “새로운 책이 매일매일 나오잖아요. 우리가 책방 안 했으면, 이런 책 어떻게 봤겠어요? 매일매일 충만한 삶인 거예요.”



ㅁ. “책이라는 거는 길이에요.”




ㅂ. “사람은 있잖아요, 가슴이 있어야 해요.”



ㅅ. “…… 책방이라는 것도 사실 책방 자체가 책이잖아요. 그런 것들을, 사실은 지금 우리나라 상황으로선, 뭐야 못 배운 사람들이 하는 거잖아, 책방을. 배운 사람들 안 하잖아. 뭐가 안 배워져서 못 하냐 하면은 생각을 못 배워서 못 하는 거예요. 아세요? 그렇게 수없이 책들을 봤는데 멋은 배웠는지 모르지만 지식나부랭이들은 입으로 쫑알거리는지는 모르지만은 생명을 못 배웠기 때문에 헌책방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없는 거예요. 이게 우리 사회의 폐단이고 우리가 끊임없이 뭐가 되는지 알아요? 음? 한쪽으로? 응? 미개한 지국으로 가고 있잖아요, 지금. 지식나부랭이 그렇게 많이 아는 사람들이 어떻게 이렇게 세상을 못 바꿀 수가 있어? 그렇지 않아요? 그건 아니라고…….”



ㅇ. “헌책방에서 일할 사람은, 책방에서 살고 싶다는 사람이면 돼.”



ㅈ. “손노동이 없는 사회가 사람의 사회이겠어? 귀신의 사회이겠지. 그래서, 애들도 몸소 행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행하도록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해.”




ㅊ. “우리는 카드도 안 해요. 정성껏 돈 가져와서 책 사 가기를 바라지. …… 책을 사람으로 받아들이라는 거야. 지식으로 만들지 말고. …… 헌책방이 나한테 학교가 된 거라. …… 이제는 책방들이 모여서 얘기를 해야 하지 않을까. …… 책과 책방에 대한 예우…… 책방을 물건을 사고팔고 하는 곳으로 보는 것은 아니고, 책은 역사가 담긴 것인데, 이런 생각을 잃어버리면 밀려날밖에 없는 것이고.”



ㅋ. “참고서로 책방이 움직이는 시대가 나타나서, 20∼30% 할인해서 파는 데가 있으며, 책방이 한꺼번에 30군데씩 사라지게 하는 폭력이 나타나면서, 이런 시대에 지식인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이건 책장사인지 무슨 장사인지……, 우린 그렇게까지 가지 말자……, 다 자신들이 갖고 있는 양심을 살게 하고, 정까지 지키고, 정직하게 팔면, 동네마다 서점이 살아나지 않겠는가. 자기들도 죽겠으니까 그렇게 하겠지만.”



ㅌ. “책을 무엇이라고 생각해요? 책은 바로 우리 가슴이에요. 책이 어디에 있다고 생각해요? 책은 바로 우리 가슴에 있어요.”


(최종규 . 2014)





뿌듯하고 즐겁습니다 ^^

여러 고운 이웃들

사랑을 받아서

책이 예쁘게 나왔어요.


글씨는 참 작답니다.

아주 적은 돈으로

아주 야무지게 만드느라

글씨가 작으니

널리 헤아려 주셔요~



5쇄쯤 찍을 수 있으면, 그때에는 글씨를 키우고

사진을 넉넉하게 실어서

'수정 증보판'을 내놓을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

수정 증보판을 내놓아

넉넉하게 큰 글씨와 여러 사진을 담아서

새로 선보일 수 있도록 힘을 보태어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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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30 22: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7-01 00:11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