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숲 시골빛 삶노래
― 한 사람이 읽는 책


  날마다 신문이 나옵니다. 신문은 날마다 온갖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신문을 읽는 사람은 날마다 새로운 이야기를 얻습니다.

  날마다 아침이 밝습니다. 동이 트는 하늘은 갖가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아침저녁으로 노래하는 새와 풀벌레는 언제나 새로운 이야기를 나누어 줍니다. 하늘과 해와 구름을 보면서, 또 새와 풀벌레와 개구리가 들려주는 노래를 들으면서, 날마다 새로운 이야기를 얻습니다.

  새로운 이야기는 신문에도 있지만, 나무 한 그루한테도 있습니다. 새로운 이야기는 텔레비전을 켜서 보는 방송에도 있지만, 풀 한 포기한테도 있습니다.

  해마다 오월이면 붓꽃을 누립니다. 우리 집 마당에서도 붓꽃을 보고, 마을 어귀에서도 붓꽃을 봅니다. 노랗게 봉오리를 올리기 앞서 푸른 잎사귀만으로 붓꽃인 줄 알아차리는 사람은 드물지만, 우리 집 마당에서 자라는 붓꽃을 늘 쳐다보니, 다른 데에서도 여린 줄기와 꽃대와 씨방을 볼 적에도 붓꽃인 줄 알아볼 수 있습니다.

  장미는 붓꽃이 피고 질 무렵 천천히 봉오리를 벌립니다. 소담스러운 봉오리를 볼 때마다 언제나 놀랍니다. 이 가느다란 줄기에서 어쩜 이렇게 커다란 꽃송이를 내놓을 수 있니.

  장미꽃이나 동백꽃은 꽤 오랫동안 꽃내음을 베풉니다. 그리고, 어느새 톡 떨어집니다. 꽃이 지고 난 장미나무나 동백나무는 썰렁하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무는 꽃을 피우려고 자라지 않아요. 줄기를 힘차게 올리고, 잎사귀를 푸르게 벌리면서, 한결같이 푸르면서 싱그러운 바람을 내뿜으면서 자랍니다. 꽃은 꽃대로 볼 만한 나무이면서, 꽃이 없을 적에는 잎사귀와 가지와 줄기를 기쁘게 노래하는 나무라고 느낍니다.

  아마 백만 사람은 나무한테서 꽃을 읽으리라 생각합니다. 아주 많이 읽히는 책이란, 꽃과 같은 숨결이리라 느낍니다. 꽃이 아닌 잎사귀나 줄기나 가지나 뿌리를 읽는 사람도 있어, 어떤 책은 백 사람이 읽거나 천 사람이 읽곤 합니다. 때로는 열 사람이나 한 사람이 읽는 책이 있어요.

  널리 사랑받는 책이라면 널리 꽃내음을 나누어 준다고 할 만합니다. 깊이 사랑받는 책이라면 깊이 푸른 바람을 나누어 주지 싶습니다.

  사진가 이상엽 님이 선보인 《최후의 언어, 나는 왜 찍는가》(북멘토,2014)라는 책을 읽다가 “구럼비 해군기지 공사장을 따라 이렇게 수 킬로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장벽이 세워져 있다. 팔레스타인 분리 장벽을 세운 이스라엘을 욕하다가 우리 땅에서 이런 풍경을 본다(64쪽).”와 같은 대목을 곰곰이 새깁니다. 그렇지요. ‘분리 장벽’은 팔레스타인뿐만 아니라 한국에도 있습니다. 아니, 한국에서는 꽤 예전부터 ‘분리 장벽’이 있었습니다.

  예전에는 전국체전을 할 적마다 중앙정부와 지역정부에서 ‘골목집 많은 동네’ 앞에 높다랗게 울타리를 세웠습니다. ‘보기 안 좋다’고들 했습니다. 1986년과 1988년을 앞두고는 참으로 많은 골목동네가 깡패와 전투경찰과 공권력 주먹질에다가 군화발에 사라졌습니다. 제주섬에 만든다는 해군기지 때문에 또 ‘높다란 울타리’가 생긴다는데, 나는 내 고향 인천에서도 ‘높다란 울타리’를 여러 해 보았어요. 지난 2006년이었는데, 작은 사람들이 모여 이룬 작은 골목동네 한복판에 인천시청에서 너비 70미터에 이르는 산업도로를 내려고 몰래 토지수용을 했고 몰래 철거까지 마쳤어요. 뒤늦게 산업도로 계획을 알아낸 ‘남은 동네사람’이 이를 반대하려고 했지만 힘이 닿지 않았는데, 산업도로 계획을 반대하는 동네사람이 늘고 또 늘어나니, 인천시청에서 한 일은 높다란 울타리 세우기였습니다.

  사진가 이상엽 님은 “한국 사진가의 위안부 할머니 사진이 정작 한국 사진계에서 외면당하는 현실. 차라리 이것이 자본의 문제라면 사진가들은 사회적 다큐멘터리를 하고 있다는 자신의 의무도 책임도 명예도 내려놓아야 할 지경이다(142∼143쪽).” 하고 덧붙입니다. 한국사람이 찍은 한국 이야기를 정작 한국 사진가들이 등을 돌린다고 해요. 그래요, 그렇지요. 그런데 말이에요, ‘성노예로 고단한 삶을 보내야 했’던 할머니들 이야기는 1980년대가 저물고 1990년대가 찾아올 무렵부터 비로소 불거졌어요. 이때에 이 할머님들을 만나서 사진을 찍고 말씀을 들으며 한국과 지구별에 이 이야기를 알리려고 한 사진가는 매우 드뭅니다. 사진가뿐 아니라 지식인도 퍽 드물었고, 사진가와 지식인뿐 아니라 초·중·고등학교 교사와 대학 교수 또한 이러한 이야기에 그닥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여느 사람들도 이녁 삶이 바쁘다고 하면서 이 이야기를 귀여겨들으려 하지 않았어요.

  사진가만 탓할 일은 없다고 느껴요. 사진가를 탓하기 앞서 이 나라 얼거리가 뒤틀렸어요. 뒤틀린 나라에서 학교를 다니고 학문을 하며 이것저것 배운 사람들이 뒤틀린 몸짓으로 뒤틀린 일을 하는 모습은, 어쩌면 매우 마땅한 흐름일 수 있어요. 어릴 적부터 아름다움을 못 보고 자랐으니까요. 어린 날부터 사랑스러움을 못 느끼며 컸으니까요.

  입시지옥인 한국 초·중·고등학교를 거치면서, 이웃을 이웃으로 여기지 않는 몸가짐이 배는 아이들입니다. 입시지옥이 끝나고 대학교에 다니더라도 취업지옥이 기다리기에, 다시금 동무를 동무로 삼지 않는 매무새로 젖어드는 아이들입니다. 언제나 점수따기에 숫자싸움만 하던 아이들이 ‘몸뚱이만 어른이 되’어요. 피가 튀기는 싸움터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아’서 기자가 되거나 사진가가 되는 아이들입니다. 이 아이들은 무엇을 볼 수 있을까요. 이 아이들은 무엇을 느낄 수 있을까요. 이 아이들은 무엇을 말할 수 있을까요.

  이상엽 님은 “사진기자들은 경쟁하듯 문제 있는 사진을 찍어 전송하고 이는 무분별하게 지면화되고 있다. 이들 대다수 기자의 심리에는 공리주의가 도사리고 있다(242쪽).” 하고 덧붙입니다.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헤아려 봅니다. ‘공리’란 무엇이고 ‘공리주의’란 무엇일까요. 한국말사전을 살피면, ‘공리주의’를 “(1) 모든 일에 개인의 공명(功名)과 이익만을 추구하는 경향이나 태도 (2) 행위의 목적이나 선악 판단의 기준을 인간의 이익과 행복을 증진시키는 데에 두는 사상”으로 풀이합니다. 사진기자뿐 아니라, 대통령과 시장과 군수와 교장과 교감을 비롯해, 여느 어른과 아이 모두, ‘내 밥그릇’이 아닌 ‘우리 마을’을 헤아리도록 하자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가 읽을 책은 어떤 책일 때에 아름다울까요. 우리가 쓸 책은 어떤 책일 때에 사랑스러울까요. 백만 사람을 섬기는 일이 한 사람을 망가뜨리려 한다면? 한 사람을 섬기려 하면서 백만 사람을 짓밟는다면?

  나무와 같은 책이 되고, 열매와 씨앗과 같은 책이 되며, 꽃과 잎사귀와 같은 책이 될 수 있기를 빕니다. 4347.7.18.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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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살아온 나이



  쉰 해를 살아온 책이 있고 오백 해를 살아온 책이 있다. 열다섯 해를 살아온 책이 있고 다섯 해를 살아온 책이 있다. 나는 어느 책을 골라서 읽는가? 나는 어느 책에 눈길을 두면서 가만히 바라보는가?


  오백 해를 묵은 책이 있대서 그 책을 바라볼 일은 없다. 오천 해를 묵은 책이 있대서 그 책을 쳐다볼 일은 없다. 나는 내가 바라볼 책을 본다. 내가 바라볼 책은 내 마음을 움직이는 책이다. 내가 쳐다볼 책은 내 마음을 건드려 내가 스스로 생각을 열어젖히도록 이끄는 책이다.


  책이 살아온 나이는 얼마나 대단할까 생각해 본다. 아무래도, 오백 해나 천 해쯤 묵은 책이 있다면 여러모로 값어치가 있으리라. 그런데, 나이값으로 헤아리는 값어치 말고, 무슨 값어치를 헤아리면 즐거울까? 이를테면 《월간조선》이나 《한겨레21》 같은 잡지도 앞으로 오백 해쯤 묵으면 대단한 값어치가 있는 책으로 여겨도 될까? 모든 시집과 소설책을 앞으로 천 해쯤 묵혀 대단한 값어치가 있다고 내세워도 즐거울까?


  어느 책은 오백 해가 아닌 다섯 해가 흘러도 빛이 난다. 어느 책은 다섯 해가 아닌 닷새가 흘러도 빛이 난다. 어느 책은 열다섯 해가 흐르거나 천오백 해가 흐르더라도 빛이 안 난다.


  책은 ‘나무를 베어 얻은 종이’라는 껍데기보다, ‘종이를 묶어서 빚은 이야기꾸러미’라는 속살로 따진다고 느낀다. 이야기를 읽으려고 책을 장만한다. 이야기를 나누려고 책방을 열고 도서관을 꾸린다. 이야기를 물려주려고 책을 읽어 아이들한테 조곤조곤 노래를 부른다.


  읽을 책을 읽으면 된다. 사라질 책은 없다. 종이가 바스라지는 책은 흙으로 돌아간다. 흙으로 돌아간 책은 나무 한 그루가 새롭게 자라도록 돕는 밑거름이 된다. 나무 한 그루가 새롭게 자랐으면 고맙게 베어서 새로운 책을 즐겁게 엮는다. 4347.7.17.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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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나이 있는 양반



  스무 해 앞서 으레 듣던 말을 떠올립니다. 그무렵 내 글을 읽던 이들은 ‘나이도 어린’이나 ‘나이가 어린’과 같은 말을 참 흔하게 썼습니다. 이런 말은 마흔 살이 될 무렵까지 자주 들었습니다. 이런 말을 들을 적마다 왜 이렇게 나이를 따지려 하나 알쏭달쏭했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려면 ‘이야기’를 보아야지, 왜 자꾸 ‘나이’를 보려 하나 싶어 쓸쓸했습니다. 나이를 들추려는 사람하고는 아무 이야기를 나눌 수 없다고 느꼈습니다. 이야기가 아닌 나이를 보니까요. 이야기가 아닌 나이를 생각하니까요.


  어떤 이는 나이조차 아닌 ‘학번’을 묻습니다. 그래서, “저는 고졸입니다. 학번이란 무엇인가요?” 하고 되묻는데, 이렇게 되물어도 “그래도 학번으로 치면 뭔지 알지 않느냐?” 하면서 끝까지 ‘나이 아닌 학번’으로 사람을 따지거나 재려는 사람이 꽤 있었습니다. 그래, 참다못해 “저는 토끼띠입니다.” 하고 말했더니, 띠로 나이를 헤아릴 줄 모르는 사람도 많더군요.


  글을 쓰려면 어느 만큼 나이를 먹어야 할까요? 어떤 글을 쓸 만한 사람은 어느 만한 나이를 먹은 사람뿐일까요?


  모차르트나 베토벤 같은 사람을 안 뒤에는, 내 글을 놓고 ‘나이’를 들먹이는 사람한테 “모차르트가 지은 노래를 들으면서, 모차르트가 몇 살에 이 노래를 지었는지를 따질 생각이느냐?” 하고 물었습니다. 노래가 아름다우면 아름다운 빛을 느낄 노릇이고, 노래가 사랑스러우면 사랑스러운 숨결을 느낄 일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물으면 엉뚱하게 “네가 모차르트인 줄 아니?” 하고 되묻는 사람이 퍽 많았습니다.


  세계대회에서 1위를 거머쥐는 운동선수는 나이가 어리거나 젊기에 1위를 거머쥐지 않습니다. 스스로 솜씨를 쌓고 재주를 키웠기 때문에 1위를 거머쥡니다. 무척 어린 나이에 테니스 대회나 골프 대회에서 1위를 차지하기도 하고, 무척 늙은 나이에 테니스이건 수영이건 골프이건 1위를 차지하기도 합니다. 그뿐입니다. 스스로 어떤 일을 할 수 있는 까닭은, 스스로 몸과 마음을 하나로 다스리면서, 스스로 나아갈 길을 걸어가기 때문이라고 느껴요.


  나는 어느새 마흔 살 나이로 접어듭니다. 마흔 살이 지나니, 이제 내 글을 읽으면서 ‘나이도 어린’이나 ‘나이가 어린’이나 ‘나이가 젊은’과 같은 말을 하는 사람이 부쩍 줄어듭니다. 아니, 이제는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지 싶습니다. 그리고, 예전과 달리 ‘나이 있는 양반’이라든지 ‘나이가 있는 사람’이라든지 ‘나이를 먹은 어른’이라든지 ‘나이도 먹고 애도 있는 양반’과 같은 말을 듣습니다.


  이 나이를 먹고 다시금 ‘나이’ 소리를 들으니 헤헤 하고 웃음이 납니다. 히히 하고 웃음이 터집니다. 내 나이가 어리다 할 적에는, 또 내 나이가 많다 할 적에는, 나는 내 이웃한테 어떤 모습인 셈일까 궁금합니다. 나이가 어리면 ‘이렇게 해야’ 하고, 나이가 있으면 ‘저렇게 해야’ 할까 궁금합니다.


  나이가 어려도 깨달은 사람은 깨달은 사람입니다. 나이가 많아도 안 깨달은 사람은 안 깨달은 사람입니다. 나이가 어려도 참거짓을 바라볼 줄 아는 사람은 바라볼 줄 아는 사람입니다. 나이가 많아도 참거짓을 가릴 줄 모르는 사람은 가릴 줄 모르는 사람입니다.


  아이들은 서로 나이를 묻지 않습니다. 어른이라는 사람들만 자꾸 이웃과 동무한테, 또 아이들한테까지 나이를 묻습니다. 이러다 보니, ‘나이를 안 묻고 살던 아이들’조차 동무끼리 나이를 따지면서 누가 오빠이니 언니이니 누나이니 동생이니 하고 자꾸 금을 긋고 맙니다. 4347.7.17.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빛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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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 뜨는 꽃담 시공주니어 문고 2단계 72
유타루 지음, 김효은 그림 / 시공주니어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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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 읽는 삶 57


 

마음으로 새기는 별빛

― 별이 뜨는 꽃담

 유타루 글

 김효은 그림

 시공주니어 펴냄, 2012.7.20.



  개구리는 살갗으로 숨을 쉽니다. 개구리가 몸을 적시려고 뛰어드는 둠벙이나 못에 농약 기운이 흐르면, 개구리는 그만 살갗이 타면서 숨이 막혀서 죽습니다. 사람은 코로 숨을 쉰다고 하지만, 사람도 살갗으로 함께 숨을 쉽니다. 몸에 꽉 끼는 옷을 입을 적에 답답한 까닭을 제대로 읽을 수 있어야 합니다. 살갗이 숨을 쉬지 못하면, 사람도 개구리처럼 죽을 수 있습니다.


  사람은 코로 바람을 마시지요. 살갗으로 바람을 느끼지요. 그리고, 살갗으로 햇볕을 머금습니다. 풀과 나무만 잎사귀로 햇볕을 머금지 않습니다. 사람도 살갗으로 햇볕을 머금습니다. 햇볕을 제대로 머금지 못하면, 사람들은 몸빛이나 낯빛이 파리합니다. 몸과 낯이 파리하면 ‘죽은 얼굴’이라고 해요. 왜냐하면, 우리는 누구나 밥과 물과 바람뿐 아니라 햇볕을 함께 먹으면서 몸을 튼튼하게 건사하기 때문입니다.


  여름날 창문을 꼭 닫아걸고 에어컨을 켠다고 해서 시원하지 않습니다. 시원하지 않을 뿐더러, 몸에도 나쁩니다. 여름날에는 여름볕을 온몸으로 먹으면서 까무잡잡하게 살갗이 타야 몸이 튼튼합니다. 예부터 아이들은 여름 내내 까무잡잡하게 살빛이 바뀌도록 씩씩하게 놀아야 한다 말했고, 어른들은 여름 내내 까무잡잡하게 살빛이 거듭나도록 야무지게 일해야 한다 말했습니다.



.. 승용차가 바짝 다가서며 비키라고 빵빵대. 할아버지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냥 묵묵히 걸어. 할아버지 얼굴에서 땀이 줄줄 흘러, 차들이 빵빵대며 휙휙 수레를 앞질러 가. 매연과 먼지가 할아버지를 옭아매듯 달려들어. 카악, 할아버지가 가래침을 모았다가 퉤엣, 뱉어 … “실례합니다.” 정장 차림의 여자가 마당에 들어와. 할아버지가 경계하듯 여자를 삐딱하니 올려다봐. “구청에서 나왔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주민들 항의가 들어와서요.” 여자는 너저분한 마당을 찡그린 얼굴로 훑어보며 말을 이어 가. “동네 사람들이 밤에 너무 시끄럽대요. 고양이들 때문에요. 그리고 집이 너무 지저분해서 귀신 도깨비가 나올 것 같다고들 해요.” 할아버지는 여자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해 ..  (19, 29쪽)



  바람이나 햇볕을 먹지 않고도 목숨을 건사할 수 있습니다. 풀과 나무도 햇볕이나 바람이 모자란 데에서조차 뿌리를 내립니다. 시멘트나 아스팔트 틈바구니에서도 줄기를 올리는 풀이나 나무예요. 빛 한 줄기 스미지 않더라도 꽃을 피울 줄 아는 풀과 나무입니다. 사람도 이와 같아요. 빛이 없는 데에서도 용케 살아남습니다.


  다만, 빛 한 줄기 없는 데에서 사람들은 사람다운 목숨을 건사하지 못합니다. 목숨줄은 붙었어도 즐겁지 못해요. 목숨줄은 이으나 사랑스럽지 못합니다.


  먼 옛날에는 누구나 시골사람이었고, 누구나 시골빛이었으며, 누구나 시골살이였습니다. 궁궐에 스스로 갇힌 임금님이나 몇몇 신하나 노예를 빼면, 참말 먼 옛날에는 모든 사람이 시골에서 흙을 만지고 바람과 볕과 빗물을 먹으면서 살았어요. 동양뿐 아니라 서양에서도 시골사람은 모두 까무잡잡한 낯빛이요 살빛이었습니다. 서양사람을 두고 ‘흰둥이’라 말하지만, 서양사람이라고 모두 흰 살결이 아닙니다. 시골사람은 어느 겨레나 나라에서도 흙빛 살결입니다.


  그리고, 도시사람은 어느 겨레나 나라에서도 허연 살결입니다. 해를 등지는 동양사람도 허연 살빛이에요. 해를 먹지 않으면, 또 비와 바람을 먹지 않으면, 동양에서도 서양에서도 몸이 아픕니다. 해를 먹어야 안 아프고, 비와 바람을 온몸으로 맞이해야 안 아픕니다.



.. 할아버지가 더럽고 때 묻은 손에 비누칠을 하면서, 땀난 얼굴을 씻으면서, 대문 쪽으로 자꾸 눈길을 돌려. 수건으로 얼굴을 닦으며 처마 밑 벽에 걸린 작은 거울을 들여다봐 … “혹시, 딴 곳으로 이사할 생각 없으세요?” 여자의 말에 할아버지가 두 눈을 부릅떠. 몸을 부르르 떨며 양철통을 집어. “동네에 놀이터 시설을 하나 더 만들려고 해요. 그래서 구청에서 놀이터로 쓸 땅을 알아보고 있거든요. 혹시 할아버지가 집을 파신다면…….” ..  (36, 54쪽)



  몸이 자꾸 아프면 마음까지 자꾸 아픕니다. 몸이 늘 튼튼하면 마음까지 으레 튼튼합니다. 몸이 자꾸 무너지면 마음까지 자꾸 무너집니다. 몸에 늘 기운이 넘치면 으레 마음에도 기운이 넘칩니다.


  우리가 몸을 가꾸려고 먹을 밥을 생각해 봅니다. 해와 비와 바람과 흙을 골고루 누린 곡식이나 열매를 밥으로 삼아 먹을 때에 싱그럽습니다. 해도 비도 바람도 흙도 골고루 누리지 못한 곡식이나 열매를 밥으로 삼아 먹으면 싱그럽지 못해요. 친환경이나 유기농이라는 이름이 붙더라도 비닐집에서 키운 곡식이나 열매는 얼마나 맛있거나 몸을 살찌울까 알 길이 없습니다. 제철에 나지 않고 비닐집에서 억지로 키운 곡식이나 열매를 놓고도 유기농이나 친환경이라는 이름을 붙여도 될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학교는 어떤 곳일까요. 학교는 아이들을 어떻게 가르칠까요. 학교는 아이들한테 무엇을 가르칠까요.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어른은 머릿속에 어떤 지식을 담았을까요. 해와 비와 바람을 등지는 학교는 아닌가요. 흙내음이나 흙빛이 없이 교과서 지식만 있는 학교는 아닌가요. 그리고, 비닐집에서 억지로 키우듯이, 학교라는 온실에서 아이들 마음속에 꿈이나 사랑은 없이 지식만 집어넣지 않나요.



.. “우주선을 타고 여행하면서, 죽은 별들에게 꽃씨를 뿌려 줄 거예요. 꽃이 피면 까만 별들이 살아날지 몰라요. 아니, 꼭 살아날 거예요. 살아나면 밤마다 하늘에서 반짝거리겠죠?” “별들이 반짝반짝할 때, 꽃향기가 밤하늘에 가득하겠는걸.” 할아버지 말에 아이가 가슴을 부풀리며 텅 빈 하늘을 올려다봐 … “할아버지는, 할아버지는 아직도 아직도 미워하고 원망해.” “누구를?” “할아버지 자기 자신. 할아버지는 자기를 미워하고 원망해.” ..  (74, 91쪽)



  유타루 님이 쓴 동화 《별이 뜨는 꽃담》(시공주니어,2012)을 읽습니다. 요즈음 보기 드물도록 예쁘게 빚은 동화문학이라고 느낍니다. 줄거리도 글흐름도 여러모로 정갈합니다. 아이 말투를 조금 더 잘 살릴 수 있으면 한결 나았을 테지만, 이만큼 동화를 쓸 수 있으니 놀랍습니다. 요즈음 쏟아지는 생활동화를 보면, 너무 ‘학교’와 ‘스트레스’에 기울어집니다. 입시지옥에서 괴로운 아이들 모습을 우스꽝스럽게 그린다든지, 어른들을 모두 바보스레 비꼬는 동화문학만 너무 많습니다. 생태나 자연을 말하는 동화도 ‘숲이 아이와 어른 모두한테 어떤 빛인가’ 하는 대목까지 깊이 파고들지 못하곤 합니다.


  동화도 소설도 주의주장이 아닙니다. 동화도 소설도 논설문이나 칼럼이 아닙니다. 동화나 소설은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날마다 새롭게 맞아들이는 하루를 환하게 웃듯이 누리는 이야기를 글로 풀어낼 적에 동화나 소설이 됩니다.


  《별이 뜨는 꽃담》은 도시에서 흔히 볼 만한 ‘손수레 할아버지’가 주인공입니다. 여기에 ‘초등학교 1학년 어린이’가 나란히 주인공입니다. 두 사람은 나이를 가로지르는 믿음을 주고받습니다. 두 사람은 겉모습으로 서로를 바라보지 않습니다. 두 사람은 오직 마음빛으로 만나고, 마음빛으로 이야기를 주고받습니다.


  아이는 할아버지한테 ‘학교에서 배운 교과서 지식’을 읊지 않습니다. 아이는 아이 마음에 가장 곱게 스며드는 ‘별’과 ‘꽃’을 할아버지한테 이야기합니다. 할아버지는 어릴 적부터 어떤 마음이었는지 문득 돌아봅니다. 할아버지도 어린 동무 아이처럼 이녁이 어릴 적에 ‘별’과 ‘꽃’을 늘 품고 살았다고 깨닫습니다. 그저 돈만 바라보면서 동무와 이웃이 없이 지내는 삶이 아니라, 언제나 별과 꽃으로 삶을 밝히고 싶은 사랑이 있은 줄 알아차립니다.



.. “할아버지네 집 담도 이렇게 꽃이 피는 담이면 좋겠어요. 꽃들이 활짝 핀 담이 할아버지네 집을 빙 둘러싸는 거예요. 정말 멋지겠죠? 그리고 …….” … 할아버지가 가 보라고 손짓을 해. 아이가 새끼 고양이를 내려놓고, 고개를 꾸벅 숙여 할아버지에게 인사해. 할아버지가 돌아서서 가는 아이를 바라봐. 저만치 가던 아이가 돌아서더니 큰 소리로 말해 ..  (95, 107쪽)



  아이는 제 어버이를 따라 다른 동네로 떠납니다. 할아버지는 모처럼 사귄 동무가 사라집니다. 다시 혼자가 됩니다. 그러나, 다시 ‘혼자’가 아니라, 이제부터 새롭게 마음을 열어 웃음꽃을 피우고 웃음나라를 가꿀 생각을 품습니다. 다시 태어날 꿈을 꿉니다. 다시 사랑할 길을 생각합니다. 할아버지 대문에 채우던 자물쇠 셋을 모두 버립니다. 그리고, 돈도 버리겠지요. 이러면서, 할아버지 집에 옛날처럼 다시금 꽃과 나무와 풀이 그윽하게 숨쉬는 ‘보금자리 숲’을 이루려 할 테고, 동네 한복판에 새로 깃드는 ‘보금자리 숲’은 이웃집에 고운 씨앗으로 퍼질 만하리라 느낍니다. 할아버지 겉모습이 아닌, ‘한 사람 가슴에 깃든 밝은 빛’을 할아버지네 이웃들도 차츰 알아보리라 느낍니다. 4347.7.17.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어린이문학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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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순이 28. 이제 여름자전거 (2014.7.15.)



  여름자전거에 걸맞게 여름옷을 입는다. 가벼운 옷차림으로 훌훌 날듯이 자전거를 달린다. 바람을 크게 들이켠다. 가슴을 활짝 편다. 우리는 여기에 있고, 우리 자전거는 이 길을 신나게 달린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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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4-07-18 04:30   좋아요 0 | URL
자전거를 타면서 사진을 어떻게 찍었을까요?
속도감이 느껴져 보기 좋으네요!^^

파란놀 2014-07-18 08:10   좋아요 0 | URL
한손으로 찍습니다 ^^

저는 예전에 신문배달을 오래 했기 때문에
한손으로 자전거를 타며
한손으로 사진을 찍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