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말 ‘존재’가 어지럽히는 말과 삶
 (184) 존재 184 : 지켜야 하는 존재

죽을 힘을 다해 지켜야만 하는 존재도 없었다. 베티를 보호하는 내 역할은 이미 끝났다
《호즈미/조은하 옮김-결혼식 전날》(애니북스,2013) 120쪽

 지켜야만 하는 존재
→ 지켜야만 하는 사람
→ 지켜야만 하는 동생
→ 지켜야만 하는 한식구
→ 지켜야만 하는 사랑
 …


  이 자리에서 말하는 ‘지켜야만 하는’ 누군가는 ‘한식구’입니다. 내 ‘동생’입니다. 그래서, 이 자리에서는 ‘한식구’나 ‘동생’이라고 적으면 됩니다. 또는, 한식구나 동생을 애틋하게 여기는 마음을 담아 ‘사랑’이라 적을 수 있어요. 수수하게 ‘사람’이라 적어도 돼요.

  ‘님’이라든지 ‘고운 님’이라든지 ‘사랑하는 님’으로 적으면 느낌이 사뭇 다릅니다. 낱말 하나에 따라 뜻과 느낌과 이야기를 한결 깊거나 넓게 밝힐 수 있습니다. 4347.7.18.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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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 힘을 다해 지켜야만 하는 사람도 없었다. 베티를 보살피는 내 몫은 이미 끝났다

한자말 ‘보호(保護)하다’는 ‘지키다’나 ‘보살피다’를 뜻합니다. 보기글을 보면, 앞쪽은 ‘지켜야만’으로 써요. 뒤쪽도 ‘지키는’으로 쓰면 됩니다. 또는 ‘보살피다’를 넣을 수 있어요. ‘역할(役割)’ 같은 일본 한자말은 ‘몫’이나 ‘노릇’이나 ‘구실’이나 ‘일’로 바로잡습니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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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자말 ‘존재’가 어지럽히는 말과 삶

 (183) 존재 183 : 한계는 존재


경계와 한계는 넘어가기를 멈추는 자리에만 존재한다 … 너머는 모든 방향으로 무한히 펼쳐 있다 … 한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무한한 우주가 있을 뿐이다

《마이클 A. 싱어/이균형 옮김-상처받지 않는 영혼》(라이팅하우스,3014) 198, 199쪽


 멈추는 자리에만 존재한다

→ 멈추는 자리에만 있다

→ 멈추는 자리에만 찾아온다

→ 멈추는 자리에만 생긴다

→ 멈추는 자리에만 나타난다

 …



  경계이든 한계이든 있거나 없습니다. 생기거나 안 생깁니다. 나타나거나 안 나타납니다. 드러나거나 안 드러나며, 서거나 안 섭니다. 한자말 ‘존재’를 쓰면, 이 보기글에서 경계나 한계가 어떤 모습으로 우리 앞에 있는가를 제대로 말하지 못하겠구나 싶습니다. 또렷하게 제대로 알 수 있도록 손질해야지 싶습니다.


  곰곰이 따지면, 이 보기글에서 “무한히 펼쳐 있다”도 “무한히 존재한다”처럼 적을 만했어요. 아무 데나 ‘존재’를 집어넣을 수 있지요. 무슨 소리인가 하면, 아무 데나 넣을 수 있는 ‘존재’ 같은 낱말은 어디에도 넣을 만하지 않습니다.


 한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 한계는 있지 않다

→ 한계는 없다

→ 한계는 있을 수 없다

 …


  쓰려고 하기에 쓰는 낱말입니다. 아름답게 쓰려고 하면 아름답게 쓰는 낱말입니다. 딱딱하게 쓰려고 하면 딱딱하게 쓰는 낱말이고, 길들거나 익숙한 대로 쓰려 하면 언제까지나 길들거나 익숙한 대로 쓰는 낱말입니다.


  한국말을 어떻게 써야 할까요. 한국말을 어떻게 쓸 때에 아름다울까요. 내 마음을 나타내고 내 넋을 드러내려면 어떤 낱말을 고를 때에 가장 또렷하면서 즐거울까요. 4347.7.18.쇠.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경계와 한계는 넘어가기를 멈추는 자리에만 나타난다 … 너머는 모든 곳으로 끝없이 펼쳐진다 … 끝은 있지 않다. 가없는 우주가 있을 뿐이다


‘한계(限界)’는 “미칠 수 있는 곳”을 가리킵니다. 이 한자말은 그대로 쓸 수 있으나, 글흐름에 따라 ‘끝’이나 ‘막다른 곳’이나 ‘마지막’으로 손볼 수 있어요. ‘경계(境界)’는 “나뉘는 곳”을 가리킵니다. 이 한자말도 그대로 쓸 수 있으나, 글흐름에 따라 ‘갈림길’이나 ‘울타리’나 ‘금’으로 손볼 만합니다. “모든 방향(方向)”은 “모든 곳”으로 손질하고, ‘무한(無限)히’는 ‘끝없이’로 손질하며, “펼쳐 있다”는 “펼친다”나 “펼쳐진다”로 손질합니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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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레이] 천하장사 마돈나 : 초회 한정판
CJ 엔터테인먼트 / 2013년 2월
평점 :
품절


천하장사 마돈나

2006



  영화 〈천하장사 마돈나〉를 2008년 무렵에 보았다. 처음에는 시큰둥하게 여겨서 극장에서 안 보았다. 뒤늦게 디브이디로 이 영화를 보면서 깜짝 놀랐다. 나는 인천에서 나고 자라다가 1995년부터 인천을 떠났고, 2007년에 비로소 다시 돌아왔다. 이러다가 2010년 가을에 다시 인천을 떠나 시골에서 지내는데, 2008년은 한창 인천 골목동네를 돌아다니던 무렵이다. 어릴 적에는 그리 눈여겨보지 않았으나 어른이 되어 새롭게 돌아보는 고향 골목이라고 할까.


  영화 〈천하장사 마돈나〉는 ‘사내로 태어났으나 가시내로 살고 싶은 아이’가 나온다. 그런데, 이 아이가 지내는 골목동네라든지, 이 아이가 운동부 연습을 하며 달리는 동네라든지, 이 아이가 머리를 움켜쥐면서 달음박질을 치다가 주저앉는 동인천 한복판이라든지, 하나같이 애틋하면서 아련한 빛이 흘렀다. 영화 줄거리는 줄거리대로 아기자기하게 잘 짰구나 싶은 한편, 영화를 이루는 온갖 무대와 모습은 더할 나위 없이 잘 살리면서 보여준다고 느꼈다. 아버지와 아이가 한판 붙은 그 골목 한켠은 얼마나 사랑스러운가.


  영화를 볼 적에 누군가는 줄거리를 따진다. 누군가는 연기 솜씨를 따진다. 누군가는 웃음이나 눈물을 따진다. 누군가는 아름다운 그림을 따진다. 나는 여기에 한 가지를 더 따질 수 있다고 깨달았다. 바로 ‘영화를 찍은 무대가 내 고향’이라고 한다면, ‘내 고향을 영화가 어떻게 바라보고 마주하면서 담아내느냐’ 하는 몸짓과 눈썰미를 따질 수 있구나 싶다.


  인천사람한테 〈천하장사 마돈나〉는 오래도록 마음에 남을 만한 작품이라고 느낀다. 다른 고장에서 나고 자란 사람한테는 그 다른 고장을 잘 그리거나 나타낸 애틋한 작품을 헤아릴 수 있으리라 느낀다. 이를테면, 〈집으로〉 같은 영화도 어느 시골마을 삶터를 애틋하게 잘 나타낸다고 느낀다. 영화는 영화대로 아름답고, 영화로 찍은 무대도 무대대로 아름답다고 할까. 인천을 잘 모른다거나 인천을 알고 싶다는 이웃이 있으면, 나는 서슴지 않고 〈천하장사 마돈나〉를 꼽는다. 잘 헤아려 보면, ‘사내로 태어났으나 가시내로 살고 싶은 아이’ 모습이란 바로 ‘인천이라는 도시가 오늘날 놓인 모습’하고 꼭 닮았다. 4347.7.18.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영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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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4-07-19 09:58   좋아요 0 | URL
저도 이 영화를 즐겁게 보았어요~
이야기의 얼거리도 재미있었지만 저는
류덕환,이라는 배우를 인상깊게 만나게 된 영화였어요.^^

파란놀 2014-07-19 10:47   좋아요 0 | URL
영화에 나오는 배역들 연기도 좋았고
여러모로 마음에 많이 남은 영화예요~
 

책 하나 아름답게



  아름다운 지식과 함께, 아름다운 웃음·노래·이야기가 고루 어우러질 때에 비로소 천천히 새로운 하루가 태어난다고 느낍니다. 천천히 새로운 하루가 태어나고, 또 태어나고, 다시 태어나면서, 어느새 삶을 이루지 싶습니다.


  아름다운 지식은 있어야 합니다. 책이나 도서관이나 학교에 갇힌 지식이 아니라, 삶을 밝히는 아름다운 지식은 있어야 합니다. 종교나 예배당이나 성경에 갇힌 지식이 아니라, 사랑을 빛내는 아름다운 지식은 있어야 합니다. 권력이나 전쟁이나 정치에 갇힌 지식이 아니라, 꿈을 드리우는 아름다운 지식은 있어야 합니다.


  책 하나 아름답게 태어납니다. 날마다 새로운 눈빛으로 즐겁게 삶을 가꾼 사람들이 엮은 책 하나 아름답게 태어납니다. 처음에는 한 사람이 아름다운 책을 알아봅니다. 나중에는 열 사람이 알아보고, 차근차근 백 사람 천 사람이 알아봅니다.


  아름답게 태어난 밝은 책을 알아본 사람들은 스스로 이녁 삶을 밝게 가꾸면서 즐겁게 아름다운 길을 걸어갑니다. 아름답게 걷는 길에는 누구나 이웃입니다. 아름답게 걷는 길에는 서로서로 사랑입니다. 아름답게 걷는 길에는 다 같이 어깨동무를 합니다.


  사람과 사람은 같은 자리에 있습니다. 사람과 풀과 나무도 같은 자리에 있습니다. 사람과 별과 온누리도 같은 자리에 있습니다. 책 하나 아름답게 읽는 눈길로 환하게 웃으면 지구별이 깊은 잠에서 깨어납니다. 4347.7.18.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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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름벼리는 고운 그림순이


  졸음과 씩씩하게 맞서면서 늦도록 놀고 싶은 사름벼리를 보다가 문득 한 가지를 떠올린다. 그래, 그림을 그려서 재우자. 책상을 함께 치운다. 큰 그림종이를 반으로 자른다. 한 장씩 나눈다. 그런 뒤 책상맡에 함께 앉아서 서로 그림을 그린다. 사름벼리는 네 식구를 모두 그린다. 나는 두 아이만 그린 뒤, 두 어버이는 어디엔가 숨긴다. 어디에 숨었을까. 사십 분 남짓 그림을 그렸구나 싶다. 시계를 보니 시간이 참 빨리 흘렀다. 엄청나게 마음을 쏟아서 그림을 그려도 이만큼 흐른다면, 학교에서 그림을 그리라고 주는 오십 분으로는 제대로 그림을 마치기 어렵겠구나 싶다. 그림순이는 그림을 먼저 다 그린 뒤, 아버지가 그림을 마무리짓는 모습을 보고는 곧바로 새근새근 잠든다. 4347.7.18.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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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4-07-19 10:07   좋아요 0 | URL
저희집 아이도 어렸을 때, 미술시간 때마다 그림을 늘 완성하지 못하곤 했어요.
너무 생각할 게 많았고 그릴 게 많은데, 미술시간이 끝나버려서요~

반원형 책상위에 놓인, 아버지의 그림종이를 보니 참 좋습니다.
요즘 아이들 가운데 이렇게 아버지와 나란히 앉아 그림을 그리는 아이들이
얼마나 있을까, 해서요~*^^*

파란놀 2014-07-19 10:48   좋아요 0 | URL
그냥 같이 그리면서 놀면 되는 일이라
어려울 것이 없는데,
다들
학교를 다니며 '길든 버릇'이 많아서
가만히 그림놀이를 한다든지
다른 놀이를 못 하는구나 싶기도 해요...

함께 그림을 그리다 보면 한두 시간은
그야말로 훌쩍 지나가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