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놀이 14 - 자전거 짐받이에



  누나는 자전거를 타고 싶다. 그러나 누나는 한참 공놀이를 하던 터라, 이 틈을 타서 동생이 누나 자전거를 한번 끌어 본다. 동생은 누나 자전거를 끌면서 놀고 싶었는데, 마침 때를 잘 만났다. 누나는 동생이 제 자전거를 끌고 논다면서 동생 옆에 다가가서 “내가 태워 줄게.” 하고 말하지만, 동생은 짐받이에 앉아서 놀기보다는, 짐받이에 다른 것을 얹은 뒤 슬슬 끌면서 놀고 싶다. 살살 실랑이를 벌인다. 4347.7.24.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놀이하는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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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생각 3. 몸에 맞는 자전거



  자전거를 탈 적에는 몸에 맞는 자전거를 타야 합니다. 더없이 마땅한 말이기는 한데, 몸에 안 맞는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 대단히 많습니다. 누가 선물로 주었다든지, 경품으로 자전거를 받았다든지, 아이가 나중에 자랄 몸을 생각해서 되게 큰 자전거를 받는다든지, 이런저런 때에 몸에 안 맞는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 퍽 많습니다.


  옷이라면 소매를 접어서 입겠지요. 그런데, 발보다 큰 신은 꿰기 어렵습니다. 커다란 신을 어떻게 신고 다닐까요. 발보다 작은 신도 꿰기 힘듭니다. 작은 신을 어떻게 신고 다닐까요.


  내 몸보다 작은 자전거를 타면 몸도 자전거도 힘듭니다. 내 몸보다 작은 자전거를 자꾸 타면 무릎이 아프고 등허리를 굽혀야 하며 팔이 늘 저리기 마련입니다. 목도 아플 테지요.


  내 몸보다 큰 자전거를 타면 몸이 고됩니다. 어떤 아이들은 발이 닿지 않는 커다란 자전거를 탑니다. 안장에 앉을 수 없을 만큼 커다란 자전거를 타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어버이는 왜 이 아이한테 ‘몸에 맞는 자전거’를 장만해 주지 못할까요? 자전거 한 대 장만하는 값이 비쌀까요? 어차피 몸이 클 테니, 몇 해쯤 ‘큰 자전거’를 타도록 해야 돈을 아낄까요?


  앞서 말하기도 했지만, 돈이 아깝다면, 아이한테 큰 신을 신겨 보셔요. 몇 해쯤 큰 신을 신겨 보셔요. 자, 몇 해쯤 큰 신을 신기면 어찌 될까요? 아이가 발이 자라면 ‘큰 신’이 어느덧 발에 맞을까요? 아마 맞을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큰 신을 몇 해쯤 신으면 신도 닳아서 더 못 신어요. 처음부터 발에 잘 맞는 신을 신도록 했으면, 신이 낡거나 닳을 때까지 즐겁게 신습니다.


  자전거는 소모품이 아닙니다. 그러나, 몸에 맞는 자전거를 타도록 하는 일은 ‘돈을 버리는 일’이 아니에요. 아이가 ‘몸에 맞는 자전거’를 몇 해 즐겁게 탄 뒤, 몸이 자라고 나면, ‘몸에 작은 자전거’는 자전거집에 팔면 됩니다. 이웃한테 선물하면 됩니다. 집이 넓거나 광이 큼지막하다면, ‘작은 자전거’를 곱게 모셨다가,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 이녁 아이를 낳을 적에 물려주어도 됩니다.


  자전거를 처음 탄다면, 인터넷에서 자전거를 골라서 장만하기보다는 자전거집에 찾아가서 ‘내 몸에 맞는 크기’를 고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인터넷에서 자전거를 골라서 장만한다면, ‘자전거 크기에 따라 어떤 몸(키)일 때에 타야 하는가’ 하는 도표를 먼저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4347.7.24.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자전거와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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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순이 30. 누나 자전거에 (2014.5.23.)



  네 살 산들보라가 문득 재미난 놀이를 알아챈다. 자전거 짐받이란 ‘짐을 싣는 자리’인 줄 알아채고는, 누나 자전거 짐받이에 이것저것 얹는다. 그러고는 누나 자전거를 천천히 끈다. 누나는 제 자전거를 동생이 갖고 논다며 애가 타지만, 동생은 아랑곳할 일이 없다. 스스로 재미난 놀이를 찾아냈기에, 재미난 놀이를 즐길 뿐이다. 사름벼리야, 너는 자전거를 보지 말고 다른 놀이를 하면 되지.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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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찍는 눈빛 26. 대문을 여는 나이


  아이가 대문을 엽니다. 아이가 어릴 적에는 스스로 대문을 열지 못합니다. 한 살 두 살 세 살 네 살 나이를 먹으면서 키가 자라기에 드디어 스스로 대문을 열 수 있습니다. 스스로 대문을 여는 아이는 스스로 집 바깥으로 나갑니다. 다만, 아직 어린 아이들은 멀리 나다니지 않습니다. 그저 ‘대문 열기’를 해낸 기쁨 하나로도 넉넉합니다. 누나 손이나 아버지 손을 빌지 않아도 혼자 씩씩하게 집 바깥으로 나갈 수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넓게 트입니다.

  사진을 찍을 적에는 곁에 누군가 ‘가르치거나 이끄는 사람’이 있으면 무척 좋다고 할 만합니다. 모르거나 궁금할 적에 바로 여쭐 수 있으니 더없이 좋다고 할 만합니다. 사진을 찍는 동안 곁에 ‘가르치거나 이끄는 사람’이 없다면 어떠할까요. 이때에는 안 좋다고 할 만할까요. 모르거나 궁금한 일을 여쭐 사람이 없으면 사진길을 어떻게 걸어갈 만할까요.

  그때그때 모든 것을 챙겨 주는 스승이나 이슬떨이나 길동무가 있어도 삶은 즐겁습니다. 둘레에 아무도 없어 나한테 아무것도 챙겨 줄 수 없는 삶도 이 삶 나름대로 즐겁습니다. 도와주는 이가 있으면 도와주어서 즐겁고, 도와주는 이가 없으면 스스로 모든 일을 맺고 푸는 동안 즐겁습니다.

  책을 읽으면 책에서 얻은 지식으로 즐겁습니다. 책을 안 읽으면 책이 아닌 온몸으로 삶을 부대껴서 지식을 얻어야 하니, 이때에는 이때대로 즐겁습니다.

  스승이나 이슬떨이나 길동무가 있다면 한결 빠르게 사진을 익힐 수 있습니다. 그런데, 스승이나 이슬떨이나 길동무가 없어도 스스로 마음을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사진을 빠르게 익힐 수 있고, 오랜 나날에 걸쳐 천천히 익힐 수 있습니다. 옆에서 늘 도와주는 사람이 있기에 ‘기대는 버릇’이 드는 바람에 혼자서는 사진을 제대로 못 찍는 사람도 있겠지요.

  밥은 어머니나 아버지가 차려 줄 수 있습니다. 밥은 스스로 차려서 먹을 수 있습니다. 밥은 내가 차려서 식구들 모두를 먹일 수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밥차림’이요 ‘밥먹기’이자 ‘밥나눔’입니다.

  다만, 밥을 먹자면 스스로 숟갈을 들어야 합니다. 밥을 먹자면 스스로 입을 움직여 씹어야 합니다. 밥을 먹은 뒤 스스로 몸을 움직일 노릇입니다. 사진도 언제나 스스로 찍습니다. 도와주거나 가르치거나 알려주는 이웃이 있더라도, 사진은 언제나 스스로 조용히 즐겁게 찍습니다.

  문을 열어요. 씩씩하게 스스로 대문을 열어요. 스스로 대문을 열어젖힌 뒤 마음도 활짝 열어젖혀요. 4347.7.24.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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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찍는 눈빛 25. 사진잔치를 연다



  사진을 찍기 때문에 사진잔치를 엽니다. 흔히 ‘전시회’라는 이름을 많이 쓰는데, 나는 늘 ‘잔치’라는 이름을 씁니다. 한자말 ‘전시회(展示會)’는 “작품을 보여주는 자리”를 가리킬 뿐이지만, 한국말 ‘잔치’는 “사진을 놓고 함께 기뻐하면서 즐기는 삶”을 나타냅니다. 책을 놓고 ‘책잔치’를 하듯이, 사진을 놓고 ‘사진잔치’를 할 수 있다고 느낍니다.


  사진잔치는 조촐히 열 수 있고, 커다랗게 열 수 있습니다. 전시관을 빌려서 사진잔치를 마련해도 되고, 마을에서 담이나 골목을 빌어 사진잔치를 꾸려도 되며, 우리 집 한쪽에 사진을 걸어서 이쁘장한 잔치판을 이루어도 됩니다.


  사진잔치를 할 적에는 사진틀을 반드시 마련해야 하지 않습니다. 사진전시회에서는 ‘사진을 판다’는 뜻도 있을 텐데, 사진잔치에서는 ‘사진 팔기’를 할 수도 있지만, ‘사진 함께하기’나 ‘사진 나누기’ 뜻이 한결 짙습니다. 나 스스로 즐겁게 찍은 사진을 이웃과 동무한테 선보이면서, 이 사진을 홀가분하게 선물할 수 있습니다. 사진을 선물받은 사람은 나한테 값을 치러 줄 수 있지만, 그냥 가져갈 수 있어요.


  사진을 종이에 앉히자면 돈이 듭니다. 돈이 들지요. 그런데 잔치를 여는 까닭은 ‘돈을 벌’ 뜻이 아닙니다. 돈을 모으고자 꾸미는 잔치가 아니라, 삶을 즐기거나 노래하고 싶은 뜻에서 마련하는 잔치입니다. 그동안 내가 찍은 사진을 가만히 돌아보면서 ‘내가 보기에 아름답구나’ 싶은 이야기를 추립니다. 아름답구나 싶은 이야기를 알뜰살뜰 엮어서 널리 선보입니다. 이때 나는 내가 그동안 어떤 사진을 어떻게 찍었는지 되새깁니다. 이웃과 동무는 내가 어떤 사진을 어떻게 찍는구나 하고 알아차립니다.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사진 이야기’가 넘칩니다.


  비평이나 평가나 이론이 오가야 하지 않습니다. 서로 즐기는 사진을 놓고 오순도순 이야기잔치를 꽃피우면 넉넉합니다.


  사진을 즐긴다면 사진잔치를 열어요. 학생이라면 학교에서 교실 한 칸이나 골마루 한쪽에 꾸밀 수 있습니다. 여느 아저씨나 아주머니라면 ‘우리 집 마루나 방’에 사진을 예쁘게 꾸며 놓고 먹을거리를 기쁘게 마련한 뒤 이웃과 동무를 불러요. 즐겁게 사진을 찍는 나를 북돋웁니다. 나한테 반가운 이웃과 동무한테 고운 빛을 나누어 줍니다. 4347.7.24.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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