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예뻐 하는 풀꽃



  풀꽃은 스스로 꽃을 피우고 씨앗을 맺는다. 풀꽃은 스스로 씨앗을 퍼뜨린다. 풀꽃은 스스로 풀밭을 이루고는, 풀내음을 나누어 준다. 사람들은 따로 ‘예쁜 꽃’을 만들어서 꽃집에서 사고팔기도 하는데, 집 둘레를 푸르게 우거지는 풀밭이나 숲으로 가꾼다면, 한 해 내내 꽃밭을 누릴 수 있다.


  꽃집은 왜 있어야 할까? 도시에서는 흙을 밟을 만한 땅이 없기 때문이다. 도시에는 풀밭도 숲도 없기 때문이다. 도시에서는 사람들 스스로 마당을 누리지 못하는 탓에, 손수 꽃밭을 가꾸지 못한다. 마당이 없으니 흙을 만질 데도 없고, 흙을 만질 데도 없으니 아파트에 꽃그릇을 두어야 하며, 때때로 꽃다발을 마련해서 선물해야 한다.


  사람은 밥만 먹으면서 살지 못한다. 사람은 서로 사랑을 나누어야 살아갈 수 있다. 나한테서 샘솟는 사랑을 이웃과 동무한테 나누어 준다. 이웃과 동무는 저마다 스스로 새로운 사랑을 길어올려 나한테 나누어 준다. 우리는 서로 사랑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깔깔 호호 하하 어깨동무를 한다. 삶은 사랑이 있기에 꽃처럼 곱거나 환하다.


  한편, 사람은 꽃내음을 먹어야 산다. 곱다라니 피어난 꽃을 꾸준히 마주할 때에 마음을 곱다라니 가꾼다. 꽃송이가 곱다라니 피어나기까지 풀내음을 먹는다. 꽃송이가 저문 뒤에는 씨앗을 받거나 씨앗을 바라보면서 이듬해에 새롭게 태어날 꽃빛을 기다린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스스로 시골살이를 누린다면 꽃집이 따로 있을 까닭이 없으나, 사람들이 스스로 시골을 떠나거나 등지기 때문에 꽃집이 따로 있어야 한다. 온통 자동차 물결인 도시에서 흙내음과 풀내음과 꽃내음을 먹고 싶으니 꽃집에서 꽃 몇 송이를 사다가 내 짝꿍이나 이웃이나 동무한테 선물을 할밖에 없다.


  폭식폭신한 흙땅을 밟으면서 풀밭에 쪼그려앉는다. 아주 조그마한 풀꽃을 바라본다. 나는 아주 어릴 적에도 이렇게 풀밭에 쪼그려앉아 풀꽃을 바라보았다. 나는 마흔 살 오늘날에도 이렇게 풀밭에 쪼그려앉아 풀꽃을 바라본다. 앞으로 마흔 해 뒤에라도 이처럼 풀밭에 쪼그려앉아 새로운 풀꽃을 바라보리라 느낀다. 내가 예뻐 하는 풀꽃은 늘 내 곁에 있다. 4347.8.14.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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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풍당당 질리 홉킨스 일공일삼 40
캐서린 패터슨 지음, 이다희 옮김 / 비룡소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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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 읽는 삶 60


 

‘우리 집’이 즐겁다

― 위풍당당 질리 홉킨스

 캐서린 패터슨 글

 이다희 옮김

 비룡소 펴냄, 2006.11.10.



  우리 집 식구가 함께 먹을 풀을 아침에 뜯는데 풀사마귀 한 마리가 손등에 폴짝 뛰어오릅니다. 풀잎에 앉아 다리를 쉬거나 먹이를 기다리던 사마귀는 깜짝 놀랐으리라 생각해요. 나도 깜짝 놀랐습니다. 처음에는 웬 풀잎이 손등에 붙어서 안 떨어지나 싶어 다른 손으로 슥슥 털려 했는데, 털려다가 멈추었어요. 풀잎이 아닌 사마귀가 손등에 붙었으니까요. 손등에 올라탄 사마귀를 슥슥 턴다면서 쳐냈으면 사마귀는 몹시 아팠으리라 생각합니다.


  사마귀는 날 수 있습니다. 사마귀한테는 날개가 있거든요. 내 손등에 올라탄 사마귀는 날아갈는지 안 날아갈는지 궁금했습니다. 가만히 서서 사마귀를 바라봅니다. 사마귀는 내 손등에서 안 떨어지고 싶은지, 톱니처럼 뾰족한 발을 내 손등 살갗에 박습니다. 간질간질합니다. 한참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귀엽습니다. “너도 우리 집이 좋지?” 하고 물으면서 풀사마귀를 강아지풀로 살그마니 옮깁니다. 풀사마귀는 강아지풀로 옮겨 탑니다.



.. 앨리스 선생님이 한숨을 쉬면서 고급스러워 보이는 기어 손잡이를 잡고 기어를 넣었다. “질리야.” “내 이름은 갈라드리엘이에요.” 질리가 이를 꽉 문 채 말했다. 앨리스 선생님은 질리의 말을 듣지 못한 듯했다 … 네빈스 가족은 희고 깔끔한, 먼지 없는 집에 살았다. 네빈스 가족이 살고 있던 나무 한 그루 없는 동네에는 하나같이 희고 깔끔하고 먼지 없는 집들만 있었다. 그 동네에 어울리지 않는 건 질리뿐이었다 ..  (12, 21쪽)



  나는 이제껏 세 가지 사마귀를 보았습니다. 첫째는 풀빛으로 몸빛이 고운 풀사마귀입니다. 둘째는 흙빛으로 몸빛이 어두운 흙사마귀입니다. 사마귀를 가리키는 다른 이름이 있을는지 모르지만, 나는 내가 바라보는 대로 사마귀를 부릅니다. 풀밭에 있으면 그야말로 풀하고 똑같아 보이기에 풀사마귀라고 부릅니다. 가을날 가랑잎이 지고 풀잎이 시들어 누렇게 빛이 바랜 곳에서 흙빛하고 똑같이 있는 사마귀를 보면서 흙사마귀라고 부릅니다. 셋째는 깜사마귀입니다. 깜사마귀는 올들어 봄날에 처음 보았어요. 까만 빛과 하얀 빛이 서로 줄무늬처럼 엇갈리는 조그마한 사마귀를 보았어요. 까만 줄무늬가 있으니 깜줄무늬사마귀라고 해야 할까 싶던데, 풀밭에서 사마귀를 만나면 어쩐지 반갑습니다.


  다른 풀벌레는 쉬 내뺍니다. 이를테면 메뚜기나 방아깨비나 여치나 풀무치는 같이 놀 생각을 않고 폴짝폴짝 내뺍니다. 사마귀는 언제나 그냥 있습니다. 사마귀는 내 손등이나 어깨나 머리에 곧잘 올라탑니다.


  사마귀도 노래하겠지요. 사마귀는 사마귀대로 노래를 하겠지요. 귀뚜라미와 방울벌레만 노래를 하지 않고, 사마귀도 노래를 하겠지요. 바람이 잔잔한 저녁나절 우리 집 둘레에서 울리는 온갖 풀벌레 노랫소리 사이에 사마귀 노래도 있겠지요.



.. “윌리엄 어니스트니?” “아니요.” 질리가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전데요.” “아.” 비록 눈은 움직이지 않는 듯했지만 아저씨는 환하게 웃었다. “네가 새로 온 여자 아이구나.” 아저씨가 오른손을 내밀었다 … 왜 이렇게 힘든 것일까? 다른 아이들 곁에는 항상 엄마가 있는데. 엄마를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바보 같고 멍청한 아이들 곁에도 엄마가 있는데 ..  (28, 55쪽)



  마당에서 사마귀랑 놀다 보면 어느새 들고양이 새끼가 뒤쪽에서 슬금슬금 걸어 나옵니다. 우리 집 광은 들고양이가 밤잠을 자고 새끼를 낳는 곳이기도 합니다. 이태 앞서 몇 마리가 우리 집 광에서 태어났고, 올해에 세 마리가 또 태어났습니다.


  어미 고양이는 바지런히 마을을 돌면서 들쥐를 잡습니다. 어미 고양이는 들쥐를 주둥이에 물고 새끼 고양이한테 갑니다. 새끼 고양이 앞에서 들쥐를 내려놓습니다. 이태 앞서 깨어난 들고양이는 사람 가까이 올 생각을 안 하지만, 우리 집 마당을 이 아이들도 놀이터로 삼습니다. 올해 깨어난 들고양이는 사람하고 꽤 가까운 데까지 와서 놉니다. 손이 닿는 데까지는 안 오지만, 섬돌에 놓은 신을 작은 주둥이로 물면서 놀기도 하고, 빨랫대 다리를 깨물기도 합니다. 평상 다리를 긁기도 하고, 아이들이 타는 자전거를 만지기도 합니다.


  새끼 고양이로서는 우리 집 온갖 살림살이를 하나하나 만지면서 재미있다고 여길는지 모릅니다. 나는 마룻바닥에 조용히 앉아서 새끼 고양이 놀음놀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재미있구나 하고 느낍니다.



.. 랜돌프 아저씨는 행복한 얼굴로 듣고 있다가는 이내 질리를 거들었고 질리 한 사람의 목소리만 울리던 것이 합창으로 변했다 … 질리는 랜돌프 아저씨의 팔꿈치를 잡고 조심스럽게 계단 아래로 안내했다. 질리는 고개를 돌리지 않으려고 애썼다. 트로터 아줌마의 표정은 질리가 마음속 깊이 간직하고 늘 그리워했던 그런 표정일 게 틀림없었다 … 윌리엄 어니스트는 네빈스 아줌마네 장식장 속에 있는 길쭉한 골동품 잔이 아니었다. 윌리엄 어니스트는 어린아이였다. 위탁 가정에 맡겨진 어린아이. 강해지지 않으면 트로터 아줌마가 없을 때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를 터였다 ..  (70∼71, 92, 164쪽)



  캐서린 패터슨 님이 쓴 어린이문학 《위풍당당 질리 홉킨스》(비룡소,2006)를 읽습니다. 이 작품에 나오는 아이는 저한테 내키지 않는 사람한테는 ‘질리’라는 이름을 쓰라고 말합니다. 이 아이는 제 이름이 ‘질리’가 아니고 ‘갈라드리엘’이라고 밝히기도 하지만, 어머니한테서 받은 ‘갈라드리엘’이라는 이름을 아무나 함부로 부르는 일을 못마땅하게 여깁니다.


  그런데, ‘질리’이든 ‘갈라드리엘’이든 이 아이는 어머니하고 함께 살지 못합니다. 아버지하고도 함께 살지 못해요. 이 아이를 낳음 어머니는 아이한테 전화조차 하지 않고, 편지도 안 씁니다. 짤막하게 끄적인 엽서만 몇 해에 한 차례 띄웁니다. 어머니도 아버지도 없이 혼잣몸인 어린 질리나 갈라드리엘은 ‘위탁 아이’가 되어 여러 집을 떠돕니다. 마음을 붙일 데가 없이 집과 학교를 자주 옮깁니다.



.. “만나서 반가웠어요.” 질리는 최대한 공손하게 말했다. 할머니가 자신을 나쁘게 생각하는 건 싫었다. 어쨌든 할머니는 엄마의 엄마 아닌가. 아니, 적어도 그렇게 주장하고 있지 않은가 … “할머니랑 같이 살기 싫어요.” “하지만 질리, 넌 말을 배운 뒤로는 툭하면.” “할머니랑 살고 싶다고 한 적 없어요! 엄마랑 살고 싶다고 했어요. 할머니는 우리 엄마가 아니에요. 난 할머니를 알지도 못해요!” “넌 네 엄마도 모르잖아.” “알아요! 기억해요! 내가 아는지 모르는지 선생님이 어떻게 알아요?” … 질리가 원한 건 무엇이었을까? 가족? 하지만 트로터 아줌마는 가족이 되고자 했다. 더 이상 이사하지 않는 것? 트로터 아줌마는 그것도 주고자 했다. 아니다. 질리가 원한 건 ‘위탁’ 자녀가 되지 않는 것이었다 ..  (185, 196, 202쪽)



  《위풍당당 질리 홉킨스》에 나오는 아이는 오직 한 가지를 바랍니다. ‘어머니와 함께 지낼 집’입니다. 다른 꿈은 없습니다. 다른 어느 것도 안 바랍니다. 돈을 바라는 일도 없고, 맛난 밥을 바라는 일도 없으며, 멋진 자가용을 타고 나들이를 다니기를 바라지도 않습니다. 크든 작든 초라하든 우람하든, 따사로운 보금자리에서 어머니 사랑을 듬뿍 받고 싶을 뿐인 아이입니다. 아이는 ‘우리 집’을 갖고 싶습니다. 전세이건 월세이건 대수롭지 않아요. 다른 사람 집에 얹혀서 지내든 내 집이든 대수롭지 않습니다. 어머니를 얼싸안고 까르르 웃다고 기쁘게 노래하는 삶을 누리고 싶을 뿐입니다.



.. “특별한 날이라서 이렇게 준비했는데 괜찮은지 모르겠네.” 할머니는 사과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할머니는 혼자 된 뒤로 늘 부엌에서 밥을 먹었거든. ‘혼자’라는 말이 질리의 머릿속을 울렸다. 질리는 ‘혼자’인 게 어떤 건지 잘 알았다. 하지만 톰슨 파크에서 지내 본 뒤에야 가까이 있던 사람을 잃는 느낌이 어떤 것인지 조금씩 깨닫기 시작했다. 질리는 수줍은 미소를 짓고 있는 할머니를 바라보았다. 할머니는 남편과 아들, 딸을 모두 잃었던 것이다. 정말로 ‘혼자’였다 … 하지만 뭔가 잘못된 것 같았다. 엄마의 얼굴은 다른 모든 방과 마찬가지로 이 방에도 어울리지 않았다. 아, 엄마. 왜 할머니를 버리고 떠나셨어요? 왜 날 버리고 떠나셨어요? 질리는 벌떡 일어나 엄마의 사진을 뒤집어 티셔츠 아래 다시 숨겨 버렸다 ..  (215, 218∼219쪽)



  저녁이 되어 아이들을 재웁니다. 아이들을 재우고 난 뒤 잠자리에 듭니다. 나는 아이들 앞에서 어버이입니다. 어버이인 터라 아이들을 사랑하는 자리를 누립니다. 아이들은 저희한테 아버지요 어머니인 사람을 좋아합니다. 글을 제법 잘 쓰는 일곱 살 큰아이는 종이를 작게 오린 뒤 연필로 또박또박 “아버지 좋아요♡”라든지 “어머니 사랑해요♡”와 같은 글을 쓴 다음, 이 쪽종이를 뒤집어서 살그마니 건넵니다.


  밤에 빗소리를 듣습니다. 빗소리에 문득 잠을 깹니다. 부랴부랴 일어나서 섬돌을 살핍니다. 빗물이 어디까지 튀는지 보면서, 섬돌 둘레에 널브러진 아이들 신을 추스릅니다. 비가 안 들이치는 데에 신을 옮깁니다. 아이들이 걷어찬 이불을 찾아 여미어 줍니다. 밤바람은 한여름에도 차니, 마룻문을 닫습니다. 부엌 개수대에 설거지를 안 하고 남은 그릇이 있는지 돌아봅니다. 엊저녁에 먹고 남긴 국이나 밥이 있는지 냄비를 열어 봅니다. 밤에 한 차례 집안을 돌아보고는 다시 잠자리로 돌아와 아이들 이마를 쓸어넘깁니다. 이불을 또 여미고는, 아이들 사이에 가만히 눕습니다. 그러면 아이들은 어느새 뒹굴뒹굴 하면서 저희 손이나 발을 내 몸뚱이나 다리에 척 걸칩니다. 이러고는 쩝쩝 짭짭 입맛을 다시면서 고로롱고로롱 소리를 내면서 어떤 꿈나라를 날아다닙니다.


  집이란 어떤 곳일까 하고 헤아려 봅니다. 집이란 잠만 자는 곳일는지, 집이란 고단한 몸을 쉬는 곳일는지, 집이란 살림을 꾸리고 사랑을 나누는 곳일는지 찬찬히 헤아려 봅니다.


  집이란 어떤 곳이 될 때에 아름다울까 궁금합니다. 집을 재산으로 여겨 부동산처럼 사고팔 때에 즐거울까 궁금합니다.


  누구나 마당이 있는 예쁜 집을 누릴 수 있기를 빕니다. 누구나 마당 한켠에서 자라는 커다란 나무를 쓰다듬으면서 즐겁게 새 하루를 맞이할 수 있기를 빕니다. 누구나 풀노래를 듣고, 풀벌레와 놀며, 풀피리를 불 수 있기를 빕니다. ‘사랑스러운 우리 집’을 노래하면서 삶을 한껏 빛낼 수 있기를 빕니다. 4347.8.14.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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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량한 말 바로잡기

 (1374) 일제 1


한 차례, 성인병 검진이라는 명목으로 환자다발지역의 주민에 대하여 일제검진을 하려고 한 적이 있었다

《하라다 마사즈미/김양호 옮김-미나마타병》(한울,2006) 163쪽


 주민에 대하여 일제검진을 하려고

→ 주민들을 모두 검진하려고

→ 주민들 모두를 검진하려고

 …



  한국말사전에 나오는 ‘日製’는 “일본 만년필”이나 “일본에서 만든 만년필”로 손봅니다. 한국에서 만든 물건은 “우리가 만든 만년필”이나 “한국에서 만든 만년펼”이라 하면 됩니다. “일본 제국주의”를 줄여 ‘日帝’라 한다는데, 한자로 적지 않고 한글로만 적어도 됩니다.


 아이들이 일제히 교실에서 나온다

→ 아이들이 한꺼번에 교실에서 나온다

→ 아이들이 우루루 교실에서 나온다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내게로 쏠렸다

→ 사람들 눈길이 한꺼번에 내게 쏠렸다

→ 사람들 눈길이 와락 내게 쏠렸다


  여럿이 한꺼번에 한다는 ‘一齊’를 생각해 봅니다. 한꺼번에 하니 ‘한꺼번에’라 하면 됩니다. 그렇지만, “일제 검거”나 “일제 고사”처럼 일본사람이 흔히 쓰는 말투를 한국에서 고스란히 받아들여서 씁니다. 꽤 오랫동안 이런 말투를 한국에서도 쓰다 보니, 이제 이런 말투가 아니면 이러한 이야기를 나타낼 수 없다고 여깁니다.


  검거를 하든 단속을 하든 점검을 하든 ‘한꺼번에’ 하거나 ‘다 함께’ 합니다. 시험을 치를 적에도 ‘모두 함께’ 치러요. 전국에서 한꺼번에 치르는 시험이라면 “일제 고사”보다는 “전국 시험”으로 쓸 때에 알아듣기에 한결 나으리라 봅니다. 4341.1.7.달/4347.8.13.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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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차례, 성인병 검진이라면서 환자가 많은 마을 사람들을 모두 검진하려고 한 적이 있었다


‘명목(名目)으로’는 ‘이름으로’로 다듬습니다. 그러나 “검진이라는 명목으로”는 “검진이라면서”로 다시 다듬습니다. “환자다발(多發)지역(地域)의 주민(住民)에 대(對)하여”는 “환자가 많이 나오는 곳 주민들을”이나 “환자가 많은 마을 사람들을”로 다듬어 봅니다.



 일제(一齊) : 여럿이 한꺼번에 함

   - 일제 검거 / 일제 단속 / 일제 점검 / 일제 고사

 일제(日帝) : ‘일본 제국주의’가 줄어든 말

   - 일제 식민 통치 / 일제 치하의 조국 땅에는 절대로 돌아가지 않겠다

 일제(日製) = 일본제(日本製)

   - 일제 만년필 / 일제 전자 제품


..



 알량한 말 바로잡기

 (1538) 일제 2 : 일제히 달아났다


야생 원숭이는 경계심이 아주 많아서 멀리서 볼 수밖에 없었다. 다가가려고 하면 일제히 달아났다

《오카 슈조/김정화 옮김-신들이 사는 숲 속에서》(웅진주니어,2010) 9쪽


 일제히 달아났다

→ 모두 달아났다

→ 모조리 달아났다

→ 한꺼번에 달아났다

 …



  들이나 숲에서 사는 원숭이는 둘레를 아주 꼼꼼히 살핀다고 합니다. 자칫 누군가 저희를 다치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들원숭이나 숲원숭이는 가까이 다가가서 볼 수 없어요. 먼 곳에 떨어져서 겨우 살펴볼 수 있습니다. 조금이라도 가까이 다가가려고 하면 모두 깜짝 놀라 이리저리 달아난다고 합니다. 4347.8.13.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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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원숭이는 둘레를 아주 꼼꼼히 살피니, 멀리서 볼 수밖에 없었다. 다가가려고 하면 모두 달아났다


“경계심(警戒心)이 아주 많아서”는 “둘레를 아주 찬찬히 살펴서”나 “둘레를 아주 꼼꼼히 살펴서”로 다듬어 줍니다.


..



 알량한 말 바로잡기

 (1467) 정원


부모님과 돌마는 공항 옆에 있는 정원에 갔습니다. 정원에 앉아서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었지요

《티베트 난민 어린이들/베블링 북스 옮김-평화를 그리는 티베트 친구들》 37쪽


 정원에 갔습니다

→ 뜰에 갔습니다

→ 꽃밭에 갔습니다

→ 풀숲에 갔습니다

→ 마당에 갔습니다

 …



  한국말사전에 모두 아홉 가지로 실린 ‘정원’입니다. 이 가운데 우리들이 쓰는 ‘정원’은 두 가지입니다. 먼저 “정한 인원”을 가리키는 ‘定員’을 쓰고, “뜰이나 꽃밭”을 가리키는 ‘庭園’을 씁니다. 나머지 일곱 가지 ‘정원’은 쓰는 사람이 없고, 쓰일 일이 없습니다. ‘正員’이나 ‘正圓’이나 ‘情願’이나 ‘淨院’ 같은 한자말을 누가 쓸까요. 이런 한자말은 묶음표를 쳐서 한자를 밝혀도 쓰임새나 뜻을 알기 아주 어렵습니다.


  역사사전에 실을 낱말이 셋인데, 중국 청나라 군함 이름이나, 조선 숙종 때 스님 이름은 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한국말사전에 실어야 할 까닭이나 뜻은 조금도 없다고 느낍니다.


 정원 미달 → 사람이 모자람

 정원 조정 → (사람) 숫자를 맞춤

 정원을 줄이다 → (사람) 숫자를 줄이다

 정원이 차다 → (사람) 숫자가 차다

 정원이 모이면 → (사람이) 다 모이면


  한편, ‘定員’이라는 낱말은 자리에 따라서 여러모로 풀어낼 수 있습니다. 써야 할 자리는 써야겠지만, 꼭 안 써도 되는 자리는 살포시 털어내 줍니다.


  정원을 가꾸다 → 꽃밭을 가꾸다

  정원을 꾸미다 → 마당을 꾸미다


  ‘꽃밭’과 ‘뜰’을 뜻한다고 하는 ‘庭園’ 또한, 말 그대로 ‘꽃밭’이라 하거나 ‘뜰’이라 하면 넉넉합니다. 곳에 따라서 ‘마당’으로 손질해도 되고 ‘앞마당’이나 ‘뜨락’이나 ‘앞뜰’로 손질해도 됩니다. 4341.8.9.흙/4347.8.13.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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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과 돌마는 공항 옆에 있는 뜰에 갔습니다. 뜰에 앉아서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었지요


“이야기를 나누었지요”라 적고, “대화(對話)를 나누었지요”라 적지 않은 대목이 반갑습니다.



 정원(正員) : 정당한 자격을 가진 구성원

 정원(正圓) : 완전히 동그란 동그라미

 정원(定員) : 일정한 규정에 의하여 정한 인원

   - 정원 미달 / 정원 조정 / 정원을 줄이다 / 정원이 차다 / 정원이 모이면 

 정원(定遠) : [역사] 중국 청나라가 독일에 발주(發注)하여 건조한 군함

 정원(政院) = [역사] 승정원

 정원(庭園) : 집 안에 있는 뜰이나 꽃밭

   - 정원을 가꾸다 / 정원을 꾸미다

 정원(情願) : 진정으로 바람

 정원(淨院) : 깨끗하고 조용한 집이라는 뜻으로, 절간이나 불당 따위를 이르는 말

 정원(淨源) : [역사] 조선 숙종 때의 중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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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사진잡지 <폰 매거진> 설문조사를 받고

짧게 답변을 적어서 보냈다.


..



Q1. 지금, 가장 중요한 사진작가는 누구라고 생각하는가? (1명 추천)

: 편해문



Q2. 그 이유는? (분량 제한 없음)

: ‘놀이’를 즐기는 ‘아이’들을 한국을 비롯해서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두루 만나면서 사진으로 찍고 이야기로 엮는 편해문 님이다. 편해문 님이 선보인 사진책은 《소꿉》(고래가그랬어,2009) 하나이다. 한국에서 놀이를 하는 아이도,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놀이를 하는 아이도, 살빛은 다 달라도 마음과 노래와 웃음은 모두 같은 모습이로구나 하는 대목을 《소꿉》이 잘 보여준다. 전시회를 연 적이 거의 없지만, 해마다 ‘놀이하는 아시아 아이들’ 사진으로 사진달력을 만든다. 한국 사진계 안밖으로 이름이 거의 알려지지 않았으나, 가장 뜻있으면서 아름다운 빛을 사진으로 담는 사람이라고 여길 만하다고 느낀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 아이들로 태어나서 살았고, 우리가 사랑하며 만나는 짝꿍하고 아이를 낳는다. 우리는 모두 아이이면서 어른이 되어 아이를 낳아 돌본다. 아이들이 놀이하는 삶을 찍는 사진이란 언제나 우리 모습을 그대로 담는 이야기가 된다. 아이들을 찍는 사진은 쉽지도 어렵지도 않다. 다만, 언제나 아이와 함께 놀고 웃으며 노래하는 넋일 때에라야 아이들을 사진으로 찍을 수 있다. 오늘날 한국에서 아이들을 사진으로 찍는 작가는 몇이나 될까. 아이를 아이 숨결 그대로 느끼거나 헤아리면서 마주하는 작가는 얼마나 될까. 아이들은 ‘미운 일곱 살’도 아니고 ‘방황하는 청소년’도 아니다. 아이들은 스스로 삶을 짓고 싶어서 놀이를 한다. 아이들을 지켜보면서 어른인 우리 모습을 돌아본다.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어른으로서 오늘 우리가 가꾸며 북돋울 삶과 마을은 어떤 빛일 때에 아름다운가 하고 배운다. 사진으로 찍는 이야기(주제)는 대단한 것이어야 하지 않다.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빛을 찍을 때에 사진이다. 편해문 님은 이러한 사진삶에 더없이 빛나는 예쁜 사진가라고 느낀다.



4347.8.13.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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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읽는 책 158] 씩씩하다



  비바람이 수그러들면

  어느새 꽃대 씩씩하게 올라

  옅은보라 맥문동꽃 방긋방긋.



  무시무시하다는 거센 비바람이 몰아치면 나무도 흔들리고 풀도 눕습니다. 그러나 비바람이 잦아들면 나무는 다시 반듯하게 서며, 풀은 새삼스럽게 우뚝 섭니다. 비바람에 쓰러진 풀도 있으나, 비바람에 아랑곳하지 않는 풀이 아주 많아요. 모두 더없이 씩씩합니다. 풀포기 하나는 아주 가늘고 여리며 가볍습니다. 작고 앙증맞은 뿌리가 땅밑에 살짝 박혔을 뿐이라 할 테지만, 비바람에 아랑곳하지 않아요. 한 사람은 지구별로 보자면 아주 조그맣고 여린 목숨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저마다 씩씩하게 삶을 가꿉니다. 날마다 새 아침을 맞이합니다. 언제나 새 노래를 부릅니다. 씩씩하기에 튼튼하고, 튼튼하면서 아름다운 하루입니다. 4347.8.13.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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