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량한 말 바로잡기

 (1413) 요리


마치 아빠가 직접 와서 내게 엄마가 요리하는 데 쓸 물을 더 가져오라고 말하는 것 같잖아

《러드야드 키플링/정회성 옮김-먼 옛날 와가이 강가에서 생긴 일》(서강출판사,2008) 80쪽


 엄마가 요리하는

→ 엄마가 밥하는

→ 엄마가 먹을거리를 마련하는

 …



  다른 사람 집에 가서 밥하는 사람을 ‘밥어미’라고 했습니다. ‘식모(食母)’라고도 했지만. 밥 잘하는 사람을 두고 ‘밥꾼’이라 할 수 있을 터이나, 우리들이 쓰는 말은 오로지 ‘요리사(料理師)’입니다. 밥을 하는 사람이니 ‘밥꾼’이고, 요리를 하는 사람이니 ‘요리사’입니다.


 요리 솜씨 → 밥하는 솜씨

 오늘의 특별한 요리 → 오늘 하루 남다른 먹을거리

 즉석에서 요리한 매운탕 → 바로 끓인 매운찌개


  밥보다 빵을 많이 먹고, 밥도 곡식으로 이룬 먹을거리만을 즐기지 않으니, ‘밥’이라는 말로 가리키기에는 테두리가 좁다고 느낄는지 모릅니다. ‘밥집’이 아닌 ‘식당(食堂)’이고, ‘밥먹기’가 아닌 ‘식사(食事)’일 때에는, 우리 ‘밥삶’은 사라지고 ‘食文化’만 남을는지 모릅니다.


 남자를 제 마음대로 요리하다 → 남자를 제 마음대로 주무르다

 거친 일꾼을 잘 요리했다 → 거친 일꾼을 잘 다루었다


  ‘殖利’도 ‘要利’도 한국사람이 쓸 말이 아닙니다. 도무지 무슨 말일까 알쏭달쏭합니다. 중요한 이치나 교리라면 한국말로 ‘고갱이’이거나 ‘알짜’나 ‘알맹이’나 ‘줄거리’입니다. ‘要理’가 아니지요. “천주교 요리를 가르치는 것을 본분으로 알았다”처럼 말하면, 이 ‘요리’를 얼마나 잘 알아들을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천주교 뜻”이나 “천주교 참뜻”이나 “천주교 깊은 뜻”이나 “천주교 참넋”처럼 적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한 가지 낱말을 잃으면 열 가지 낱말을 잃습니다. 한 가지 말투를 잃으면 열 가지 말투를 잊습니다. 한 가지 낱말을 살리면 열 가지 낱말을 살립니다. 한 가지 말투를 가꾸면 열 가지 말투가 살아납니다. 4341.4.15.불/4347.8.15.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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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아빠가 몸소 와서 내게 엄마가 밥하는 데 쓸 물을 더 가져오라고 말하는 듯하잖아


‘직접(直接)’은 털어내도 되고, ‘여기’나 ‘몸소’를 넣어도 됩니다. “말하는 것 같잖아”는 “말하는 듯하잖아”로 손봅니다.



 요리(要利) = 식리(殖利)

 요리(要理)

  (1) 긴요한 이치나 도리

  (2) [종교] 중요한 교리

   - 생계를 돕고 기도문과 천주교 요리를 가르치는 것을 본분으로 알았다

 요리(料理)

  (1) 음식을 일정한 방법으로 만듦

   - 요리 솜씨 / 오늘의 특별한 요리 / 즉석에서 요리한 매운탕

  (2) 어떤 대상을 능숙하게 처리함을 속되게 이르는 말

   - 남자를 제 마음대로 요리하다 / 거친 일꾼들을 아이 다루듯 잘 요리했다


..



 알량한 말 바로잡기

 (1415) 수분


이건 서리라는 거야. 공기 안에 있던 수분이 얼음덩어리가 되어 잎사귀에 붙어 있는 거지

《이마이즈미 미네코,안네테 마이자/은미경 옮김-숲에서 크는 아이들》(파란자전거,2007) 92쪽


 공기 안에 있던 수분

→ 공기에 있던 물기

→ 바람 사이에 있던 물방울

→ 바람 사이에 있던 물

 …



  한국말사전에는 모두 여섯 가지 ‘수분’이 실립니다. 이 가운데 사람들이 어느 만큼 쓰는 ‘수분’은 ‘물기’를 빼고는 없습니다. 물을 담아 꽃을 꽂는 그릇을 ‘水盆’이라 할 일이란 없습니다. ‘앙금’이나 ‘화장품’을 ‘水粉’이라 할 일도 없고, 주제를 지키는 일을 ‘守分’이라 할 일도 없습니다. 꽃가루가 옮겨서 붙는 일은 ‘꽃가루받이’일 뿐, ‘受粉’이 아닙니다. ‘壽分’ 같은 한자말도 쓰임새나 쓸모가 없습니다.


 수분을 섭취하다 → 물을 마시다

 수분이 증발하다 → 물기가 마르다

 수분을 다량 함유하다 → 물기가 많다


  ‘물기’를 가리킨다는 한자말 ‘수분’이 어느 자리에 쓰이느냐를 살펴보면, “수분 섭취”와 “수분 증발”과 “수분 다량 함유”처럼 다른 한자말하고 붙습니다. 그러니까 ‘수분’이라는 한자말이 쓰이면서 ‘섭취(攝取)’며 ‘증발(蒸發)’이며 ‘다량(多量)’이며 ‘함유(含有)’며 쓰이는 셈입니다. 처음부터 한국말을 쓴다면 다른 한국말을 알맞게 쓰도록 길을 트는 셈이요, 처음부터 한자말을 쓴다면 자꾸자꾸 다른 한자말을 불러들여서 말삶을 어지럽히는 셈입니다. 4341.4.17.나무/4347.8.15.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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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서리야. 바람 사이에 있던 물방울이 얼음덩어리가 되어 잎사귀에 붙었지


“서리라는 거야”는 “서리야”나 “서리라고 해”로 손봅니다. “공기 안에 있던”은 “공기에 있던”이나 “바람 사이에 있던”으로 손보고요. “붙어 있는 거지”는 “붙었지”나 “붙었단다”로 손질합니다.



 수분(水分) = 물기(-氣)

   - 수분을 섭취하다 / 수분이 증발하다 / 수분을 다량 함유하다

 수분(水盆) : 물을 담아 꽃을 꽂거나 괴석(怪石) 따위를 넣어 두는 그릇

 수분(水粉) 

  (1) = 무리

  (2) = 물분(-粉)

 수분(守分) : 분수나 본분을 지킴

 수분(受粉) : 종자식물에서 수술의 화분(花粉)이 암술머리에 옮겨 붙는 일

 수분(壽分) : 타고난 수명의 분수


..



 알량한 말 바로잡기

 (1410) 차도


구루는 내 방을 찾아와 오랫동안 기도를 해 주었지만, 병은 전혀 차도를 보이지 않았고

《사티쉬 쿠마르/서계인 옮김-사티쉬 쿠마르》(한민사,1997) 56쪽


 차도를 보이지 않았고

→ 나아지지 않았고

→ 나을 낌새가 없었고

→ 나을 듯하지 않았고

→ 나으려 하지 않았고

 …



  자동차가 다니는 길이면 ‘찻길’입니다. 차를 마시는 법이면 ‘차법’입니다. 그런데 남녘에서는 차 마시는 법을 ‘차 茶’라는 한자를 써서 ‘다도’라고 하는군요. 우리들은 “다를 마신다”고 하지 않고 “차를 마신다”고 하는데, 왜 차 마시는 법은 ‘다도’여야 할까요.


  ‘遮道’나 ‘遮路’나 어디에 쓰는 말인지 알 길이 없는 한편, 쓰일 곳조차 없습니다. 이와 같은 낱말이 한국말사전에 실리니 괜히 한국말사전 부피만 두껍습니다. 쓰이지 않는 낱말이 아니라, 쓰일 까닭이 없는 한편, 지난날 한문 권력자들이 아무렇게나 쓰던 말은 말끔히 털어내야 올바릅니다.


 그의 병세에 차도가 보이기 시작했다

→ 그는 병이 조금씩 나아졌다

→ 그는 병을 차츰 씻어내었다

 차도가 좀 있으신지요?

→ 좀 나아지셨는지요?

→ 좀 괜찮아지셨는지요?

 …


  몸이 아플 때에는 ‘아프다’고 말합니다. 아팠던 곳이 조금씩 아물면 ‘나아진다’고 말합니다. 느끼는 대로 말하면 되고, 바라보는 그대로 말하면 됩니다. 4341.4.2.물/4347.8.15.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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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루는 내 방을 찾아와 오랫동안 빌어 주었지만, 아픈 곳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고


“기도(祈禱)를 해 주었지만”은 그대로 두어도 되지만, “빌어 주었지만”으로 손볼 수 있습니다. ‘병(病)은’도 그대로 둘 만한데, “아픈 곳은”으로 손질할 수 있어요. ‘전(全)혀’는 ‘조금도’로 다듬어 줍니다.



 차도(車道) = 찻길

   - 차도로 뛰어들다 / 시위대는 차도로 나와서 시위를 계속했다

 차도(差度) : 병이 조금씩 나아가는 정도

   - 그의 병세에 차도가 보이기 시작했다 / 어르신네는 차도가 좀 있으신지요?

 차도(茶道) : ‘다도’의 북한어

 차도(遮道) = 차로(遮路)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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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량한 말 바로잡기

 (1432) 방치


그동안 내가 읽고 모아 온 책들을 정리하지도 못하고 한 방에 그냥 마구잡이로 쌓아둔 채 몇 달 간을 방치해 두었었다

《장석주-가을》(백성,1991) 126쪽


 몇 달 간을 방치해 두었었다

→ 몇 달 동안을 내버려 두었다

→ 몇 달 동안을 그대로 두었다

 …



  한국말사전에 실린 한자말 ‘방치’는 두 가지입니다. 이 가운데 “한 나라 정치”를 가리킨다는 ‘邦治’는 쓰일 일이 없습니다. 쓴다고 한들 알아들을 사람도 없을 테고요.


  두 번째 ‘放置’ 뜻풀이를 보면 ‘내버려 둔다’를 뜻한다고 합니다. 곰곰이 생각합니다. 우리는 어이하여 ‘내버려 둔다’는 말을 쓰지 않고, 이 말을 한자로 옮겨서 ‘방치’라고 쓰는가 하고. 한국말 ‘내버려 둔다’나 ‘내버린다’라고만 적으면 어딘가 모자라거나 아쉽거나 알맞지 않다고 느끼는지 궁금합니다.


 쓰레기의 방치로 → 쓰레기를 내버려 두어

 그대로 방치된 채 → 그대로 버려진 채


  한국말이 세계에 첫 손가락을 꼽을 만하다고 자랑할 까닭이란 없습니다. 그러나 영어바람이 미치도록 분다고 해서 영어바람에 휩쓸릴 까닭 또한 없습니다. 이 나라 권력자와 지식인이 옛날부터 한문을 썼다고 해서 오늘날 우리들까지 한문을 익히거나 알아야 할 까닭마저 없습니다.


  다만, 영어를 배우고 싶으면 배워야지요. 한문을 배워야겠다면 배워야지요. 배우되, 지식자랑이 되지 않도록, 지식으로 남을 억누르거나 깔보지 않도록, 마음가짐을 옳게 추스른 다음에 배워야지요. 배우되, 알뜰히 배워서 훌륭히 펼치도록 배워야지요. 말 사이사이 우쭐거리듯 끼워넣거나 섞는 못난 짓을 일삼지 않도록 매무새를 곱게 여미어야지요. 4341.5.25.해/4347.8.15.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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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내가 읽고 모아 온 책들을 갈무리하지도 못하고 한 방에 그냥 마구잡이로 쌓아 둔 채 몇 달 동안 내버려 두었다


‘정리(整理)하지도’는 ‘갈무리하지도’나 ‘차곡차곡 간수하지도’로 다듬습니다. “몇 달 간(間)을”은 “몇 달 동안을”로 손보고, ‘두었었다’는 ‘두었다’로 손봅니다.



 방치(邦治) : 나라의 정치

 방치(放置) : 내버려 둠

   - 쓰레기의 방치로 온 동네가 지저분해졌다 /

     죽은 물고기가 저수지에 그대로 방치된 채 썩고 있었다 


..


 알량한 말 바로잡기

 (940) 의사


그러나 틀림없이 이때는 자기 안에 분명히 어떤 의사를 가지고 한 말이었다

《기류 유미코/송태욱 옮김-나는 아들에게서 세상을 배웠다》(샨티,2005) 179쪽


 어떤 의사를 가지고 한 말이었다

→ 어떤 생각으로 한 말이었다

→ 어떤 뜻을 품고 한 말이었다

 …



  우리는 누구나 생각을 하면서 살아갑니다. 즐겁다고 생각합니다. 아침에 동이 트는 모습을 보면서 자리에서 일어나자고 생각합니다. 달과 별을 바라보며 이제 자야겠다고 생각합니다. 반가운 사람을 만나면서 함께 어깨동무하자고 생각합니다. 아이들과 놀면서 오늘 하루도 아름다운 나날이라고 생각합니다. 고운 말을 쓰면서 마음 깊이 고운 넋이 자라는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생각은 생각입니다. 생각은 ‘意思’가 아닙니다.


 의사를 전달하다

→ 생각을 알리다

→ 뜻을 알려주다

 국민의 의사를 존중하다

→ 사람들 생각을 섬기다

→ 사람들 뜻을 귀여겨듣다

 결혼할 의사가 전혀 없다

→ 혼인할 생각이 하나도 없다

→ 혼인할 마음이 조금도 없다


  병을 다스리는 사람을 ‘醫師’라고 쓸 일이란 없습니다. 그냥 ‘의사’면 됩니다. 윤봉길 의사를 말할 때에도 한글로 ‘의사’라 하면 되지, ‘義士’로 안 써도 됩니다. 그나저나, ‘義死’나 ‘義師’를 어떻게 알아볼 수 있을까요? ‘疑事’는 “의심스러운 일”이고 ‘疑辭’는 “의심스러운 말”이라는데, 이런 말을 왜 써야 할까요? ‘擬死’는 “외부로부터 갑작스러운 자극을 받은 동물이 움직이지 않고 죽은 체하는 일”을 가리킨다는데, 한국말로 ‘죽은 척’이라 하면 됩니다. 쉽고 알맞게 쓰면 됩니다. “회의에서 어떤 일을 의논함”을 ‘議事’라고 하는데, ‘會議’라느니 ‘議論’이라느니 자꾸 한자말을 빌어서 쓰니 다른 한자말까지 잇달아 쓰고 맙니다. 모임(← 會議)을 열어 어떤 일을 이야기(← 議論)하면 됩니다. 모임에서 이야기를 나누면서, 모임을 꾸리면(← 議事) 됩니다. 4338.6.8.물/4347.8.15.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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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틀림없이 이때는 아이 스스로 틀림없이 어떤 뜻을 품고 한 말이었다


보기글을 살피면, 앞에서는 ‘틀림없이’라 하면서도 곧바로 ‘분명(分明)히’라는 한자말을 쓰는군요. 뒤에 적은 ‘분명히’는 덜어야겠습니다. 아이가 마음속으로 어떤 뜻을 품고 말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보기글이니, “자기(自己) 안에”는 “아이 스스로”로 손봅니다.



 의사(衣?) = 옷상자

 의사(意思) : 무엇을 하고자 하는 생각

  - 의사 전달 / 국민의 의사 / 결혼할 의사가 전혀 없다

 의사(義士) : 의로운 지사

 의사(義死) : 의를 위하여 죽음

 의사(義師) : 의로운 뜻을 품고 일어난 군사

 의사(疑事) : 의심스러운 일

 의사(疑辭) : 의심스러운 말

 의사(縊死) :‘액사’의 원말

 의사(擬死) : 외부로부터 갑작스러운 자극을 받은 동물이 움직이지 않고 죽은 체하는 일

 의사(擬似) : 실제와 비슷함

 의사(醫事) : 의료에 관한 일

 의사(醫師) : 의술과 약으로 병을 치료, 진찰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

 의사(議事)

  (1) 회의에서 어떤 일을 의논함

  (2) 회의에서 의논할 사항

 의사(議史) : 신라 때에 둔 내사정전의 으뜸 벼슬


..



 알량한 말 바로잡기

 (1121) 운반


애들 두 명이 나를 따라와서 구입한 물건을 식당까지 운반한다

《오스카 루이스/박현수 옮김-산체스네 아이들 上》(청년사,1978) 48쪽

 

 물건을 식당까지 운반한다

→ 물건을 식당까지 나른다

→ 물건을 일터까지 옮긴다

 …


  보기글에서 말하는 ‘식당’은 ‘글에서 내가 일하는 곳’이니, ‘일터’로 손질할 수 있습니다. 아무튼, 한국말사전에는 두 가지 ‘운반’이 나옵니다. 하나는 “구름 가운데”를 뜻한다는 ‘雲半’인데, 최남선이라는 사람이 쓴 글에서 보기글을 따서 싣습니다.


 운반에 고용(高聳)한 것은 곧 반야봉

→ 구름 가운데에 높이 솟은 곳은 곧 반야봉


  문학작품에 쓰인 낱말이라면서 ‘雲半’을 실었구나 싶습니다. ‘高聳’도 그렇습니다. 그러나 ‘운반’이나 ‘고용’처럼 한글로만 적으면 무엇을 가리키거나 나타내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한국말사전에 실린 낱말이지만 ‘한국말’이라 하기 어렵고, ‘한국말사전 올림말’이라 하기도 어렵습니다.


  최남선이라고 하는 분이 아무리 훌륭하다고 한들, 이와 같은 고리탑탑한 낱말을 한국말사전에 왜 실어야 하는가를 따져야지 싶습니다. 굳이 싣고 싶다면, ‘한국 한자말 사전’을 따로 엮어서 실어야지요.


  이삿짐 운반 → 이삿짐 나르기

  운반의 편의를 생각해서 → 나르는 편의를 생각해서 / 나르기 좋도록


  물건을 옮겨서 나른다는 ‘運搬’은 말 그대로 ‘옮기다·나르다·옮겨 나르다’라고 말하면 그만입니다. 달리 더 할 말이 있을까요. 말뜻 그대로 이야기하면 되고, 말느낌 그대로 적으면 됩니다. 4339.7.20.나무/4341.6.24.불/4347.8.15.나무.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애들 둘이 나를 따라와서, 내가 산 물건을 식당까지 나른다


“애들 두 명(名)이”는 “애들 둘이”로 다듬습니다. ‘구입(購入)한’은 ‘사들인’이나 ‘산’으로 다듬고요.



 운반(雲半)

  (1) 구름의 가운데

   - 남쪽 맨 뒤로 둥긋하게 운반에 고용(高聳)한 것은 곧 반야봉이요…

  (2) 음력 동짓달을 달리 이르는 말

 운반(運搬) : 물건 따위를 옮겨 나름

   - 이삿짐 운반 / 물건 운반의 편의를 생각해서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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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46) 거동


부실한 영양 공급에 질병이 겹치면서 거동조차 어려웠다

《마이클 예이츠/추선영 옮김-싸구려 모텔에서 미국을 만나다》(이후,2008) 105쪽


 거동조차 어려웠다

→ 움직이기조차 어려웠다

→ 다니기조차 어려웠다

→ 자리에서 일어나기조차 어려웠다

 …


  지난겨울은 ‘지난겨울’일 뿐, ‘去冬’이 아닙니다. ‘속수자’는 무엇이고, ‘拒冬’은 무엇일까요? 풀이름을 왜 이렇게 한자말로 붙여야 할까요?


  어른들을 가리키며 “거동이 불편하다”라는 말을 곧잘 씁니다. 어릴 적부터 할머니 할아버지가 곁에 있었고 동네에도 할머니 할아버지가 많았기에 이 낱말을 자주 들었습니다. 들으면서 무슨 뜻인가는 제대로 몰랐으나, ‘몸을 움직이기 어려운 모습’일 때에 이 말을 했기 때문에 어렴풋이 헤아려 보기는 했습니다.


 거동이 불편하다 → 움직이기 힘들다

 거동이 수상하다 → 움직임이 수상하다


  군대에서 지낼 때, ‘거수자’라는 말을 처음 들었습니다. 초소에서 총을 들고 경계를 설 때 ‘거수자’가 있으면 어찌어찌 해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거수자’는 ‘거동수상자(擧動殊常者)’를 줄인 말이라 했는데, 한국말은 아니라고 느꼈습니다.


 작자의 거동만 지켜보고

→ 그치가 뭘 하는지만 지켜보고

→ 그치 움직임만 지켜보고

→ 그치 하는 일만 지켜보고

 …


  한국말사전을 뒤적이면 ‘움직임’이라는 낱말이 나옵니다. 한국말입니다. 그렇지만, 이 ‘움직임’이라는 낱말을 살려서, “할머니는 움직임조차 어려웠다”나 “할머니는 움직이기조차 어려웠다”처럼 말하는 사람은 그리 안 많습니다. 모두들 ‘거동’이라는 낱말을 넣습니다. 군대에서도 ‘움직임’보다는 ‘거동’을 사랑합니다.


  생각해 보면, 군대에서 총을 닦을 때 ‘수입(手入)’이라고 말해서 어리벙벙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전역하는 날까지 ‘수입’이라 안 하고 ‘손질’이라고 말했지만, 중대장이나 행정보급관이나 소대장은 하나같이 ‘총기수입’이라고만 말했고, 동무들도 ‘손질’보다는 ‘수입’이라고 말했어요. 4341.7.1.불/4347.8.15.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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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못 먹은데다가 몸까지 아프면서 움직이기조차 어려웠다


“부실(不實)한 영양(營養) 공급(供給)에”는 “어설픈 밥에”나 “제대로 못 먹은데다가”로 다듬습니다. “질병(疾病)이 겹치면서”는 “몸까지 아프면서”나 “몸이 아프면서”로 손질합니다.



 거동(去冬) = 지난겨울

 거동(拒冬) = 속수자

 거동(擧動) : 몸을 움직임

   - 거동이 불편하다 / 거동이 수상하다 / 작자의 거동만 지켜보고 있었다


..



 알량한 말 바로잡기

 (1460) 설치


슈퍼마켓에서는 계란 상자들이 다시 사용될 수 있도록, 계란 상자 모으는 코너를 설치하면 좋다

《M.램/김경자,박희경,이추경 옮김-2분 간의 녹색운동》(성바오로출판사,1991) 141쪽


 모으는 코너를 설치하면 좋다

→ 모으는 자리를 마련하면 좋다

→ 모으는 데를 두면 좋다

→ 모으는 곳을 놓으면 좋다

 …


  한국말사전에 여러 가지 한자말 ‘설치’가 실립니다. 이처럼 여러모로 실린 ‘설치’가 얼마나 쓰이는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 다만, “줄다리기에서 설치를 바라며”라 했을 때에 ‘설치’가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은 거의 한 사람도 없으리라 봅니다. 이런 자리에서는 “줄다리기에서 갚아 주려고”로 적어 주어야 알맞습니다.


 안테나의 설치 위치를 바꿨더니 → 안테나 놓인 자리를 바꿨더니

 설치가 간편하다 → 손질이 쉽다

 쓰레기 소각장 설치에 → 쓰레기 태우는 곳 짓기에

 신호등이 횡단보도에 설치되다 → 신호등이 건널목에 놓이다

 조명탑을 설치하는 → 조명탑을 세우는

 지부를 설치하고 → 지부를 두고


  한국사람 누구나 한국말을 사랑하면서 곱게 쓰면 좋겠습니다. 꾸밈없이 쓸 줄 알고 수수하게 쓸 줄 알며 따사롭게 쓸 줄 알기를 바랍니다. 어릴 적부터 한국말을 알뜰살뜰 배우면서, 이 말을 바탕으로 아름다운 생각과 꿈을 널리 펼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학교에서는 시험지식이 아닌 살가운 말씨와 넉넉한 몸씨를 배우고 가르치면서 삶을 가꾸는 빛을 나누어 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세우다, 놓다, 두다, 마련하다, 짓다, 손질하다, 꾸미다, …… 같은 낱말을 그때그때 알맞춤하게 쓰면 됩니다. 한자말 ‘설치’를 내려놓으면 됩니다. 쉬운 말은 쉽습니다. 아름다운 말은 아름답습니다. 한국사람이 먼먼 옛날부터 수수하게 주고받던 가장 쉽고 수수한 말은 언제나 가장 아름답습니다. 4341.7.26.흙/4347.8.15.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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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에서는 달걀 상자를 다시 쓸 수 있도록, 달걀 상자 모으는 자리를 두면 좋다


‘슈퍼마켓(supermarket)’은 ‘가게’나 ‘구멍가게’로 고쳐 줍니다. ‘계란(鷄卵)’은 ‘달걀’로 다듬고, ‘사용(使用)될’은 ‘쓰일’로 다듬으며, ‘코너(corner)’는 ‘자리’나 ‘칸’이나 ‘곳’으로 다듬습니다.



 설치(設置) : 베풀어서 둠

   - 안테나의 설치 위치를 바꿨더니 / 조립식 제품은 설치가 간편하다 /

     쓰레기 소각장 설치에 반대하여 / 신호등이 횡단보도에 설치되다 /

     조명탑을 설치하는 공사가 한창 / 각 시도(市道)에 지부(支部)를 설치하고

 설치(雪恥) = 설욕(雪辱)

   - 우리 동네 사람들은 줄다리기에서 설치를 바라며 긴장하고 있었다

 설치(楔齒) : [민속] 염습하기 전에, 입에 낟알을 물리려고 시신(屍身)의 이를 벌리는 일

 설치(齧齒) : [한방] 잠을 자면서 이를 가는 증상


..


 알량한 말 바로잡기

 (1433) 여전


‘서울 방면’이 아닌, ‘인천 방면’의 경인선을 타며, 어린 마음에 꽤 오랫동안 서글퍼했던 기억이 여전히 남아 있다

(이욱·김혜영) 《작가들》 22호(2007년 가을) 297쪽


 여전히 남아 있다

→ 고스란히 남는다

→ 그대로 남는다

→ 아직까지 남는다

→ 여태 남는다

 …



  ‘잔돈’을 가리킨다고 하는 ‘餘錢’은 쓸 일이 없습니다. 아니, 이러한 낱말은 한국말사전에 담지 말아야 합니다. 괜히 이런 낱말을 한국말사전에 담으니, 쓸데없이 부피만 두꺼운 한편, ‘한국말 숫자가 한자말보다 적다’는 엉터리 얘기가 나돕니다. ‘잔금’이라는 말도 ‘잔돈’이나 ‘남은돈’으로 고쳐 줍니다.


 그의 말버릇은 여전했다 → 그 사람 말버릇은 그대로였다

 여전하게 소란하고 → 예전처럼 시끄럽고

 큰 키도 여전하고 → 큰 키도 똑같고


  ‘예전과 같’기에 ‘그대로’라고 느낍니다. 예나 이제나 그대로라고 느끼는 마음은, ‘아직’도 예전하고 같은 마음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니까 ‘여태’ 예전 생각이 남았을 테지요. 예전에 품던 생각과 느낌이 오늘날 품는 생각과 느낌하고 그대로라면, ‘똑같’거나 ‘마찬가지’이기도 합니다. 그예 ‘고스란히’ 남습니다. 4341.5.26.달/4347.8.15.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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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쪽’이 아닌, ‘인천 쪽’으로 가는 경인선을 타며, 어린 마음에 꽤 오랫동안 서글퍼 했던 일이 아직까지 남는다


“서울 방면(方面)”이나 “인천 방면”은 “서울 쪽”이나 “인천 쪽”으로 다듬습니다. “인천 방면의 경인선”은 “인천으로 가는 경인선”으로 다듬어 줍니다. “서글퍼했던 기억(記憶)이”는 “서글퍼 했던 일이”나 “서글퍼 했던 생각이”로 손봅니다.



 여전(女專) : [교육] ‘여자 전문학교’를 줄여 이르는 말

 여전(如前) : 전과 같다

   - 그의 말버릇은 여전했다 / 상점과 행인들이 여전하게 소란하고 번잡했다 /

     큰 키도 여전하고 힘도 여전한 만큼  

 여전(餘錢) = 잔금(殘金)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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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사마귀 손등에 얹고 놀기



  마음으로 곱다라니 들여다보는 사람들이 둘레에 있는 줄 풀꽃은 모두 알아차리거나 느끼면서 즐겁게 피어나지 싶습니다. 사랑으로 따사롭게 마주하는 사람들이 곁에 있는 줄 풀벌레는 모두 알아보거나 헤아리면서 기쁘게 노래하지 싶습니다.


  풀꽃은 풀밭과 풀숲을 이룹니다. 풀벌레는 풀노래잔치를 이룹니다. 사람들은 풀밭에서 풀밥을 얻고 풀숨을 쉬면서 풀넋이 됩니다. 아침에 풀을 뜯다가 풀사마귀를 만납니다. 풀을 뜯는 내 손등으로 풀사마귀가 풀쩍 뛰어오릅니다. 아차, 내가 모르고서 풀사마귀가 앉은 풀잎을 뜯었습니다. 아니, 나는 알았겠지요. 내가 모르는 사이에 알았겠지요.


  손등을 찬찬히 듭니다. 나무그늘에 서기도 하고 볕을 쬐는 마당에 서기도 하면서 풀사마귀를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풀사마귀는 톱니 있는 발로 내 손등을 쿡 찍어서 버팁니다. 그러나, 풀사마귀로서는 쿡 찍는 셈일 테지만, 나로서는 간질간질 놀이입니다. 한참 풀사마귀하고 놀다가 아침밥을 차려야 한다고 깨닫고는 풀밭에 내려놓습니다. 아침에 먹을 풀을 뜯느라 풀사마귀를 만났거든요. 4347.8.15.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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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왜 자꾸 읽는가



  어떤 사람은 책을 자꾸 읽습니다. 왜 자꾸 읽을까요. 자꾸 읽고 싶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책을 꾸준히 읽습니다. 왜 꾸준히 읽을까요. 꾸준히 읽고 싶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책을 새롭게 읽습니다. 왜 새롭게 읽을까요. 새롭게 읽고 싶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책을 안 읽습니다. 안 읽고 싶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책을 멀리합니다. 책을 멀리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책을 등집니다. 등지고 싶기 때문입니다.


  겉보기로는 똑같을는지 모르지만, 속보기로는 사뭇 다릅니다. ‘자꾸’ 읽을 때와 ‘꾸준히’ 읽을 때와 ‘새롭게’ 읽을 때에는 참으로 다릅니다. 같은 책을 열 차례 읽는데, 그저 ‘자꾸’ 읽는다면 무엇을 얻을까요? ‘꾸준히’ 읽을 때하고 ‘새롭게’ 읽을 때에는 어떻게 달라질까요?


  책을 안 읽더라도 그냥 ‘안’ 읽을 때하고 ‘멀리할’ 때하고 ‘등질’ 때는 더없이 다릅니다.


  누군가는 경상도 밀양 송전탑 이야기를 모르쇠로 살아갑니다. 누군가는 ‘멀리합’니다. 누군가는 ‘등질’ 테지요. 경상도 밀양에는 송전탑 때문에 말썽이 있으나, 전국 곳곳에 핵발전소와 화력발전소와 골프장과 온갖 나쁜 것들 때문에 말썽이 있었습니다. 곳곳에서 터지는 온갖 아픈 일들에 우리는 얼마나 마음을 기울일까요? 어느 한 곳에만 마음을 기울이면 될까요? 몇 군데에만 마음을 쓰면 될까요? 내가 사는 곳하고 가까운 곳이라든지, 내가 아는 사람이 돕는 일만 마음을 두면 될까요?


  어떤 모습을 가르치거나 일깨우려고 다시 되풀이하는 삶이 있습니다. 한자말로는 ‘윤회’라고 합니다. 윤회란 쳇바퀴질입니다. 쳇바퀴에 갇힌 다람쥐가 똑같이 달릴 수밖에 없듯이, 사람도 쳇바퀴에 갇히면 똑같이 살기를 되풀이합니다. 쳇바퀴질을 멈추면 바깥으로 나올 수 있으나, 다람쥐도 사람도 바르게 살피지 못하니 깨닫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는 터라 삶을 바꾸지 못합니다.


  날마다 늘 새롭게 피어나면서 이루어지는 사랑이 될 때에 비로소 ‘삶’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어요. 삶이 될 때에는 책읽기가 언제나 ‘새롭게 읽는 삶’입니다. 삶이 될 때에는 노래하기가 언제나 ‘새롭게 노래하는 삶’입니다.


  우리가 가는 길은 삶을 찾고 삶을 이루는 사랑을 느껴서 밝히는 빛이로구나 하고 곰곰이 헤아려 봅니다. 지식으로만 머릿속에 넣는 책읽기라면 쳇바퀴질하고 똑같습니다. 회사나 예배당을 그저 다니기만 하는 모습도 쳇바퀴질하고 똑같습니다. 4347.8.15.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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