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우리말 착하게 가꾸기 ㉦ 살려쓰면 좋은 우리말 : 살림말


 말을 할 때에 가장 살펴야 할 대목은 무엇일까 생각해 봅니다. 글을 쓸 때에 손꼽아 헤아릴 대목은 무엇일까 곱씹어 봅니다.

 말을 하는 사람이나 글을 쓰는 사람이나, 말하기나 글쓰기에서 가장 눈여겨볼 대목을 옳게 눈여겨보지 못한다고 느껴요. 말하는 알맹이와 글쓰는 속살을 찬찬히 돌아보지 못한다고 느껴요.

 말사랑벗한테는 무엇이 가장 살필 대목인가요. 말사랑벗은 말을 하거나 글을 쓸 때에 어느 대목을 가장 헤아리는가요.

 생각하기 어렵다면 이렇게 해 보셔요. 말사랑벗은 하루하루 살아가면서 무엇이 가장 크거나 눈여겨볼 만한지 헤아려 보셔요. 내 삶에서 가장 아름답거나 사랑스럽거나 고마운 대목이 무엇인지 되뇌어 보셔요.

 내가 하는 말에서 가장 마음쓸 대목이란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삶인가 아닌가입니다. 내가 쓰는 글에서 가장 눈여겨볼 대목이란 내가 가장 아름다이 여기는 삶인가 아닌가예요.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를 살피고, 무엇을 말해야 하는가를 살펴야 하는데, 바로 이 ‘무엇’이란 나 스스로 아끼며 사랑하는 삶입니다. 가장 빛나며 보배스러운 알맹이예요.

 할 말이 있어야 말을 하고 쓸 글이 있어야 글을 쓴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할 말이란 ‘내가 꾸리는 삶’이고, 쓸 글이란 ‘내가 돌보는 삶’이거든요. 나 스스로 내 몸을 움직여 내 땀을 바친 삶이 아니고서는 말할 만한 즐거움을 찾기 어려워요. 나부터 내 마음을 바쳐 나누는 이야기가 아니고서는 글로 담을 만한 재미를 느끼기 힘들어요.

 물만 끓여 내놓는 컵라면 하나를 밥상에 올릴 때에도 얼마든지 숱한 이야기를 담을 수 있습니다. 컵라면 하나를 사 오는 마실길이라든지, 내 주머니에 돈이 없어 고작 컵라면 하나만 살 수 있었다는 이야기라든지, 아직 다른 밥을 할 솜씨가 없어 가까스로 컵라면 하나만 차렸다든지, 몸이 아파 다른 밥을 차리지 못하니 컵라면을 먹는다든지 하면서 온갖 이야기를 길어올립니다. 수많은 반찬을 차려 놓는 밥차림을 해야만 수많은 이야기가 나오지 않아요. 수많은 이야기가 나오더라도 뜬구름을 잡는 글이나 말이 될 수 있어요.

 우리는 우리 삶을 사랑하는 가운데 우리 이야기를 길어올립니다. 우리 이야기가 얼마나 착하고 참다우며 고운가를 살펴야 즐거운 이야기를 얻습니다. 내가 좋아하면서, 나와 내 동무랑 이웃이 다 함께 좋아하는 착한 이야기인지 아닌지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내 삶 사랑과 내 동무 사랑이 아리따이 깃든 참다운 이야기인가 아닌가를 짚어야 합니다. 곱게 일구는 삶으로 곱게 일구는 넋이며 곱게 즐기는 글입니다.


1. 자전거꾼 : 일하는 사람은 일꾼입니다. 놀이하는 사람은 놀이꾼입니다. 사냥을 하니까 사냥꾼이고, 글을 쓰면 글꾼이에요. 글쟁이라고도 하는데, 이와 같은 꼴로 그림쟁이와 사진쟁이라고도 합니다. 영화쟁이나 연극쟁이라고도 해요. 자전거를 타니 자전거꾼이면서 자전거쟁이입니다. 자전거를 즐기기에 ‘자전거 즐김이’라 이름을 붙여 볼 만합니다. 


2. 노래잔치 : 돌에는 돌잔치를 합니다. 예순 살에는 예순잔치를 합니다. 마을에서는 마을잔치를 하고, 학교에 처음 들어갈 때에는 첫잔치예요. 학교를 마무리 할 때에는 끝잔치나 마침잔치입니다. 태어난 날을 기려 생일잔치이고, 밥을 나누는 밥잔치입니다. 시를 즐기는 마당은 시잔치이고, 사진을 함께 나누기에 사진잔치이며, 그림을 즐기는 그림잔치에, 노래를 즐기는 노래잔치입니다. 


3. 네거리 : 예전 살던 인천 골목동네에 ‘삼거리정육점’이 있었어요. 가게는 고기집인데 밖에서 보면 고기집 아줌마가 갖은 꽃그릇을 예쁘게 벌여 놓아서 마치 꽃집처럼 보였어요. 이 고기집은 ‘세거리’ 모퉁이에 있었기에 ‘삼거리정육점’이었어요. 


4. 무너미마을 : 인천에서 살다가 충주 멧골마을로 살림을 옮겼습니다. 우리 식구들 지내는 멧골마을은 행정구역으로 광월리인데, ‘넓은벌’이랑 ‘고든박골’이랑 ‘무너미마을’이 있어요. 넓은벌이란 말 그대로 벌(들판)이 넓으니 붙는 이름이에요. 무너미마을이란 물이 넘는 마을이라 붙이는 이름이에요. 자, 그러면 고든박골은 어떠한 골(골짜기 또는 고을)이라서 고든박골이라 했을까요. 


5. 길그림 : 길을 그리기에 길그림입니다. 땅을 그리면 땅그림이에요. 저는 손으로 그림 그리기를 즐깁니다. 그러니까 손그림입니다. 손으로 글을 쓸 때에는 손글이에요. 손을 써서 말을 나눈다면 손말입니다. 


6. 골목꽃 : 골목에 난 길은 골목길입니다. 골목에 깃든 집은 골목집입니다. 골목에 피어 골목꽃이고, 골목에서 자라 골목나무입니다. 골목집에서 붙은 문패는 골목문패이고, 골목으로 동네를 이루어 골목동네이고, 골목동네에서 사는 사람은 골목사람이에요. 


7. 책방마실 : 들로 놀러가는 들놀이입니다. 물가를 찾아가기에 물놀이입니다. 산을 찾아가면 산놀이나 멧놀이예요. 이웃집을 찾아가는 이웃마실입니다. 맛난 밥집을 찾아다니는 밥집마실이에요. 저처럼 책방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책방마실을 합니다. 


8. 시골버스 : 사람들은 시외버스나 고속버스를 탑니다. 시외버스란 “시(市) 바깥(外)으로 나가는 버스”라서 붙은 이름이에요. 고속버스란 “빨리 달리는(高速) 버스”라서 붙이는 이름이에요. 시골에서 살아가는 저는 시골을 다니는 시골버스를 탑니다. 구비구비 작은 마을을 천천히 달리는 시골버스를 타며 생각합니다. 도시에서는 도시버스라 하지 않는데 시골에서만 시골버스라 하는구나 싶습니다. 빨리 달리면 빠른버스라 할 만한데,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9. 빠른전철 : 인천과 서울을 잇는 급행전철이 있고, 서울과 춘천을 달리는 급행전철이 있습니다. 전철은 언제나 ‘급행(急行)’입니다. 서울과 부산을 빨리 달리며 잇는 기차길을 놓고는 ‘고속철도’라 해요. 빨리 가기에 빠른길이고, 천천히 가면 느린길입니다. 때때로 도시로 마실을 나오며 빠른전철을 타는데, 빨리 달리는 이 전철을 타며 아끼는 겨 를만큼 나는 내 삶을 얼마나 아름다이 돌보는가 곱씹어 봅니다. 


10. 나들목 : 나가고 들어오는 길목이기에 나들목이에요. 저는 퍽 예전에 ‘지하철 출입구’를 일컬어 ‘지하철 나들목’이라 말해 보았습니다. ‘출입구(出入口)’는 일본말인데, 이 일본말을 알맞게 고쳐쓰거나 가다듬으려고 마음을 기울이는 사람이 좀처럼 없다고 느껴서 ‘나들목’을 써 보았어요. 일본말 ‘출입구’는 “나가고 들어오는 구멍”을 가리키거든요. 우리말로 제대로 한다면 ‘나들목’이 아닌 ‘들나목’이라 해야 옳습니다. 우리 문화로는 들어오기가 먼저이고, 들어오면 나가기에 들나목이라는 얼거리로 말을 합니다. 그러나 ‘나들간’이라는 낱말이 있고 ‘나들이’를 생각하면서 ‘나들목’도 참 좋이 쓸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11. 거님길 : 집에서는 텔레비전이나 라디오가 없어 바깥사람들이 주고받는 말마디를 따로 들을 일이 없습니다. 시골집에서 나와 도시로 마실을 나오면 어디에서고 수많은 이야기와 방송을 들어야 합니다. 버스마다 틀어 놓은 라디오에서는 교통방송 사회자가 ‘차도’와 ‘인도’를 말합니다. 귀가 따갑게 이런저런 낱말을 듣다가 퍼뜩 생각합니다. 차가 다니는 길이면 찻길이고, 사람이 다니면 사람길일 텐데. 사람이 걷는 길이면 사람길이면서 거님길일 텐데. 


12. 왼돌기 : 자가용이 없는 우리 식구는 가끔 택시를 탑니다. 택시를 타며 어딘가로 찾아갈 때에 택시 일꾼한테 “왼쪽으로 꺾어 주셔요.”라든지 “요 앞에서 오른쪽으로 가 주셔요.” 하고 말씀합니다. 이때에 웬만한 택시 일꾼은 못 알아듣습니다. 으레 다시 말해 달라 묻고, “좌회전이요?”나 “우회전이요?” 하고 되묻습니다. ‘왼쪽’과 ‘오른쪽’이라는 낱말은 어느새 죽은말처럼 되고, ‘왼돌기’나 ‘오른돌기’ 같은 낱말은 마치 외국말처럼 여깁니다. 


13. 믿음집 : 하늘 높이 뾰족뾰족 솟은 예배당 탑을 볼 때면 언제나 쓸쓸합니다. 땅하고 살가이 어우러지면서, ‘주차장’ 아닌 ‘텃밭’을 일구면서 작고 소담스레 돌보는 믿음나눔집을 꾸릴 수 없는가 싶어 쓸쓸합니다. 사랑을 나누는 사랑집이 그립습니다. 믿음을 펼치는 믿음집을 꿈꿉니다. 


14. 버스길 : 나라와 지자체에서는 대단히 큰 돈을 들여 ‘버스전용차로’와 ‘자전거전용도로’를 닦습니다. 모든 길에는 사람과 들짐승과 자전거와 자동차가 함께 달릴 만하고, 서로 어울릴 만합니다. 더 힘센 사람이 더 여린 사람을 돌보듯, 더 빨리 달리는 탈거리가 더 느리게 오가는 탈거리나 사람이나 짐승을 보살피면서 사랑스레 어울릴 만합니다. 그렇지만 큰도시는 자동차가 너무 많아 따로 버스만 다닐 길, 곧 버스길이 없이는 자가용 없는 사람들은 아주 벅찹니다. 큰도시는 자전거만 다닐 자전거길을 마련하지 않고서는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차에 받칠까 걱정해야만 합니다.

 

(최종규 . 2011 -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함께 살아가는 말 37] 사흘거리

 지난 십이월 첫머리부터 꽁꽁 얼어붙던 날씨가 이듬해 이월 첫머리에는 비로소 풀리는지 궁금합니다. 이토록 꽁꽁 얼어붙으면 기름값부터 걱정이지만, 한 번 까딱 잘못해서 물이 얼어붙으면 도무지 녹을 줄 모르기에 근심입니다. 처음부터 집을 잘 건사해서 기름을 덜 먹어도 되도록 하고, 물이 안 얼도록 하면 가장 훌륭합니다. 이렇게 못하면서 날씨 탓만 하는 사람은 바보입니다. 아무래도 바보로 살다 보니 바보스레 생각하거나 바보스레 말하는구나 싶은데, 바보스러운 삶이니 바보스러운 굴레에서 이야기를 나누겠지요. 추운 겨울날 문득문득 이제 참말 ‘사흘거리’는 끝나고 없는데, 이 언제 적 이야기인 사흘거리를 자꾸 떠올리는가 싶어 또다시 바보스럽다고 느낍니다. 사흘거리로 찾아오던 따뜻한 날씨를, ‘나흘거리’로 거듭 추위가 찾아들던 날씨를, 그러니까 이 나라 이 땅에 자동차가 많지 않고 공장 또한 적었으며 고속도로며 기차길이며 어마어마하게 뚫리지 않던 지난날 날씨를, 오늘날처럼 자동차에다가 공장에다가 비행기에다가 고속도로며 고속철도며 큰 아파트며 수두룩한 터전에서 무슨 사흘거리나 나흘거리를 찾겠습니까. 텔레비전 기상캐스터들은 三寒四溫을 주절주절 읊습니다. (4344.2.1.불.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누리말(인터넷말) 25] PyeongChang 2018

 올림픽이나 월드컵이나 아시안게임 같은 큰 운동경기대회를 좋아할 분이 퍽 많다고 느낍니다. 나라밖에서 운동경기를 벌여 이기거나 메달을 목에 건다면 대단하다 할 수 있습니다만, 운동경기를 하는 이들은 이기려고 날마다 땀을 흘렸으니까 이길 수 있고 메달을 딸 수 있어요. 그런데 이들 운동선수는 젊음이 지나가면 어쩌지요. 오직 경기 하나를 해서 이기거나 메달을 따는 훈련만 받은 한국땅 운동선수는 나중에 어쩌지요. 메달을 못 따도 좋으니, 운동은 운동대로 좋아하면서 살아가는 좋은 이웃이 되어야 하지는 않을까요. 또다시 ‘강원도 평창 겨울올림픽 끌어들이기’ 운동이 벌어집니다. 온 나라 사람들이 모이는 운동경기를 치르자면 경기장 새로 짓지 뭘 또 하지 하면서 돈을 어마어마하게 들이부어야 합니다. 돈을 들이붓는 만큼 새 일자리와 돈벌이가 생긴다는데, 이렇게 돈을 쏟아 돈을 버는 삶이란 얼마나 아름답거나 즐거울 삶이 될까요. 배드민턴이 꼭 올림픽 경기여야 할까요. 탁구가 반드시 올림픽 종목이어야 하나요. 겨울날 즐기는 놀이는 겨울날 누구나 흐뭇하게 즐기면 좋을 텐데요. 그러나 이 나라 많은 사람들은 텔레비전에서 운동경기 지켜보면서 금메달 따기를 바라는 만큼, 평창이든 어디이든 겨울올림픽을 끌어들이기만 하면 기쁘다 여기겠지요. 그래, 한국사람 힘을 모으자는 “PyeongChang 2018”입니다. 아니, “평창 2018”이 아닌 “PyeongChang 2018”이로군요. (4344.2.1.불.ㅎㄲㅅㄱ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분석하는 책읽기


 글을 쓰는 사람 가운데 ‘분석하면서’ 쓰는 사람이 있을까 궁금합니다. 이모저모 따지면서 글을 쓰는 사람이 아예 없지 않겠지요. 생각없는 글이란 쓸 수 없으니까요. 그렇지만, ‘작품분석’이나 ‘창작분석’이란 없습니다. 글읽기와 글쓰기가 있습니다. 글이란 글이지 작품이 아니요, 사진은 사진일 뿐 작품이 아닙니다.

 노래를 부르는 사람치고 작품을 부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름난 노래이건 대단한 노래이건 따지지 않습니다. 내 가슴에 사무치면서 혀로 감돌기에 부르는 노래입니다.

 책을 읽을 때에는 글쓴이 이름을 따질 까닭이 없습니다. 저처럼 우리 말글 다듬기 일을 하는 사람이야, 책을 읽으면서 이모저모 잘못 쓴 대목을 짚을 수 있으나, 저 또한 책을 읽을 때에는 그저 책을 읽습니다. ‘문장분석’ 따위를 할 수 없고, 할 까닭이 없으며, 이런 일을 하면 하루하루 아깝습니다.

 흔히들 ‘지면분석’을 하고 ‘지면연구’를 합니다. 사람들이 더욱 잘 들여다보도록 편집을 해야 한다고 합니다.

 편집은 반드시 해야 합니다. 그러나, 편집할 글이 있어야 편집을 합니다. 편집할 글이 없이 편집을 할 수 없습니다.

 편집이란 글고치기가 아닙니다. 편집이란 글쓴이 넋을 매만지는 일이 아닙니다. 서툰 글이든 돋보이는 글이든, 그저 이 글마다 어떠한 삶이 깃들었는가를 돌아보는 일이 편집입니다. 이 글이 실린 책을 읽을 때에 눈이 아프지 않도록 하고, 이 책을 읽으면서 한결 마음이 느긋하거나 사랑스럽도록 이끄는 편집입니다. 눈부시게 해야 할 편집이 아니고, 눈부셔야 할 편집이 아닙니다. 편집에 앞서 글부터, 눈부셔야 할 글이 아니요, 눈부실 까닭이 없는 글입니다. 삶을 담는 글이고, 삶을 엮는 편집입니다.

 우리가 저마다 살아가는 집은 집입니다. 디자인 건축품이 아닙니다. 디자인 작품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고, 건축 작품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에요. 살림집에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살림집이면서 예쁘장하다면 좋을 수 있겠지요. 살림집이면서 예쁘장할 때에는 좋다 할 뿐, 더도 덜도 아닙니다. 살림집은 살림집답게 일구어야 해요.

 춤은 춤처럼 즐기는 춤입니다. 연극은 연극대로 즐기는 연극입니다. 글은 글맛이 나도록 쓰며 읽는 글입니다.

 시를 분석하며 읽을 수 없습니다. 그림책을 낱낱이 파헤치거나 따지면서 읽힐 수 없습니다. 만화책을 넘기면서 그림결이 몹시 엉성한 작품들은 퍽 껄끄럽기는 하지만, 껄끄러운 대로 줄거리와 이야기를 들여다봅니다. 처음부터 만화쟁이 한 사람 그림결이 빈틈없이 마무리될 수 없는 노릇이니까, 이런 대목은 술렁술렁 지나치려 합니다. 그런데, 참말 좋은 만화를 사랑스레 그리는 이들은 새내기 때이든 익숙내기 때이든 그림결이 아주 따사롭습니다. 투박할 때에는 투박한 대로 따사롭고, 보드라울 때에는 보드라운 대로 따사롭더군요.

 젊을 때에는 한껏 거칠거나 윽박지르듯이 글을 쓸 수 있습니다. 늙을 때에는 한결 차분하면서 쓰다듬듯이 글을 쓸 수 있습니다. 어느 때 어느 글이 더 훌륭하거나 낫다 여길 수 없습니다. 젊은이 글은 젊은이 글대로 좋고, 늙은이 글은 늙은이 글대로 좋습니다. 늙은이이면서 젊은이처럼 살아가면 이 글은 이 글대로 좋고, 젊은이이면서 애늙은이가 다 되었다면 애늙은이 글은 또 이러한 결대로 좋습니다.

 다 다른 사람들 다 다른 삶이기에, 다 다른 글을 다 다른 마음으로 받아들입니다. 글은 짜거나 재거나 꿰어맞출 수 없습니다. 글은 오로지 즐길 뿐이요, 읽을 뿐입니다. 글은 오직 쓸 뿐이요, 나눌 뿐입니다. (4344.2.1.불.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쿠바를 찍다 - 사진작가 이광호의 쿠바 사진여행
이광호 지음 / 북하우스 / 2006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보배와 같다고 느끼는 사진을 찍으려면
 [찾아 읽는 사진책 16] 이광호, 《쿠바를 찍다》(북하우스,2006)


 서울예대 사진과를 나오고, 《노블레스》라는 잡지 사진기자로 일하고, 이탈리아 사진대학을 다녀오고, 서울 청담동에서 개인 스튜디오를 열었고, 계원조형예술대학교·청강문화산업대학교·서일대학교·송담대학교에서 사진을 가르친다고 하는 이광호 님이 내놓은 사진책 《쿠바를 찍다》를 읽습니다. 사진학과를 다녀 사진기자가 된 다음, 사진 찍는 일터를 마련한 한편, 사진학과 강사(또는 교수)가 되어 사진을 가르치는 분이 내놓은 사진책입니다.

 책날개에 적힌 사진쟁이 해적이를 읽으면서 가만히 생각합니다. 이광호 님으로서는 어떤 사진을 왜 어떻게 얼마나 좋아하는가를 한 줄로도 읽지 못합니다. 다만, 이광호 님으로서는 무언가 끌리는 사진을 좋아하면서, 이렇게 끌리는 모습을 당신도 사진으로 담아서 나누고 싶어 한다고는 느낍니다.


- 아바나를 떠나기 하루 전 서점에 들렀다. 그리고 한 컷의 사진을 보게 되었다. 그저 우연이었다. 햇빛이 역광으로 들어오는 아바나의 골목 풍경을 잡아낸 컷이었다. 아, 왜 나는 이런 생각을 못 했을까. (134쪽)


 이광호 님은 “아, 왜 나는 이런 생각을 못 했을까.” 하고 느낍니다. 이렇게 느끼는 일은 잘못이 아닙니다. 사진과를 나오거나 사진과를 다니거나 사진과에서 가르치는 수많은 사람들이 으레 이렇게 느끼거나 생각하니까요.

 그러나, 내 사진을 좋아하거나 사랑하자면 “아, 왜 나는 이런 생각을 못 했을까.” 하고 느낄 일이란 없습니다. “어, 이렇게 찍은 사진이 참 좋네.” 하고 느낄 뿐입니다. 나는 왜 이렇게 생각하지 못했을까가 아니라, 이야 이렇게 찍으니 참 좋구나 하고 느끼면 넉넉합니다.

 사진찍기란 사진읽기입니다. 내가 찍은 사진을 나부터 잘 읽어야 나 스스로 새롭게 사진을 찍지, 내가 애써 찍은 사진이 어떠한 사진인가를 옳게 읽지 못한다면, 제아무리 수십만 수백만 장에 이르는 새 사진을 찍는달지라도, 이 가운데 무엇이 알짜요 무엇이 빛이요 무엇이 껍데기요 무엇이 그늘인지를 깨닫지 못합니다.


- 다녀온 후 환상이 깨어진 부분도 없지 않다. 그러나 뜨거운 애정을 가진 사람들의 훈훈한 입김이 아직도 나에게 남아 내 시간을 풍요하게 만들어 준다. (10쪽)


 ‘환상’이란 다녀오기 앞서도 품고 다녀온 다음에도 품습니다. ‘깨진 환상’은 다녀오기 앞서도 깨지고 다녀온 다음에도 깨집니다.

 삶은 환상이 아닙니다. 한자말로 하자면 ‘삶 = 현실’입니다. 나로서는 그곳에서 살아가지 않으면서 그곳 사람들이 ‘내 꿈에 나오는 모습’처럼 있기를 바라서는 안 됩니다. 바랄 수 없다가 아니라, 바라서는 안 됩니다. 내가 꿈으로 그리는 어떤 모습이 있으면, 내가 이러한 꿈처럼 내 터전에서 살아갈 노릇입니다. 남들보고 내 꿈으로 그리는 모습대로 살아가라고 바랄 수 없을 뿐더러 바라서는 안 됩니다.

 사진이란 삶찍기입니다. 내 둘레 사람들이건 내 모습이건 삶을 찍는 사진찍기라서, ‘사진찍기 = 삶찍기’입니다.

 앞서, 사진찍기에 앞서 사진읽기를 옳게 해야 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니까, ‘사진찍기 = 삶찍기 = 삶읽기’입니다. 삶읽기를 할 수 있으면 사진찍기를 할 수 있습니다. 거꾸로, ‘삶읽기 = 삶찍기 = 사진찍기’가 됩니다.

 내 삶을 읽고 내 둘레 사람들 삶을 읽어야, 비로소 내가 사진으로 무엇을 왜 어떻게 얼마나 찍고 싶어 하는가를 알아챕니다. 알아챈 다음에야 사진기를 쥐어들 수 있고, 알아채고서 사진기를 쥐어들면 내 앞에 마주하는 사람들이 나를 보며 빙긋 웃는다든지 스스럼없이 마주한다든지 거리끼지 않으며 얼싸안습니다. 사랑스러운 낯빛 몸짓이 사라질까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광호 님은 《쿠바를 찍다》에서 골목맥주 파는 사람들 앞에 놓인 자전거를 안 치우고 사진을 찍었다 하는데, 이광호 님이 스스로 자주 밝히는 대로 ‘말을 걸면서 사진을 찍었다’고 한다면, “이봐, 사진 좀 멋나게 찍게 자전거 좀 살짝 옆으로 밀어 놓고 또 한 번 찍을래?” 하고 말을 걸면 됩니다. “사진기 앞이라고 그렇게 얼굴 굳히거나 딱딱하게 있지 말라구?” 하며 다시금 말을 걸면 돼요. 말걸기란, 인사말이나 허드렛말을 아무렇게나 읊는 일이 아니라, 내가 사진으로 담고픈 사람들하고 이곳 이때에 차분히 마주하면서 살가이 ‘이야기꽃’ 피우는 일입니다. ‘치즈!’나 ‘김치!’ 하고 외는 말조차 말걸기입니다.


- 내게 베네치아는 충격이었고 보는 것마다 취재거리였다. (28쪽)


 스스로 충격을 바라는 사람은 베네치아에서도 충격이요 보는 모습마다 취재거리이면서, 서울 사직동에서도 충격이며 보는 모습마다 취재거리입니다. 스스로 충격을 받아들이려는 사람은 강원도 양구 멧골짜기에서도 충격이고 보는 모습마다 취재거리입니다. 꼭 베네치아로 나아가야 충격이 되지 않아요. 내 가슴이 얼마나 ‘충격을 가슴에 안고파 하느냐’입니다. 내 눈길과 마음길이 얼마나 ‘취재거리를 알아채며 느끼려 하느냐’예요.

 이름난 배우만 사진 모델이 되란 법 없습니다. 새내기 배우 또한 사진 모델이 될 수 있습니다. 예쁘장한 여배우만 사진잡지 겉장을 채워야 하지 않습니다. 못생기면 어떻게 안 생기면 어떤가요.

 그러나 어떠한 사람을 놓고 잘생기니 못생기니 말할 수 없습니다. 모든 사람은 저마다 제 삶과 제 낯과 제 꿈을 간직합니다. 다 다른 사람들 다 다른 낯과 삶과 꿈을 읽을 수 있어야 비로소 사람을 사귑니다. 지난날 《샘이 깊은 물》이라는 잡지에서 ‘이름 널리 판 모델 아닌 여느 살림꾼 아줌마’를 겉장으로 채운 넋을 읽을 줄 알아야 합니다. 다 다른 사람들 다 다른 삶을 읽으며 사람을 사귀어야 바야흐로 ‘여행을 하면서 여행하며 만난 사람 모습 사진’을 찍습니다.


- 수선공도 그렇고 장소도 그렇고 구도가 마음에 들었다. 웃으며 한 컷 찍으려고 하니 얼굴을 굳히며 돈을 요구하는 것이 아닌가. 약간은 당황스러웠지만 … 더 놀란 건 간단한 수선이니 신발 고치는 값을 받지 않겠다며 그냥 가라고 할 때였다. 그들의 자존심인 것인지, 사진을 찍을 때엔 돈을 내라더니 정작 신발은 그냥 고쳐 주다니. 재미있는 사람들임이 분명하다. 억지로 1불을 내미니 그는 사진 포즈를 취해 주었다. (82쪽)


 쿠바에 한 달이나 머물렀으면서 《쿠바를 찍다》처럼 홀쭉한 사진책을 내놓는 일은 부끄럽습니다. 고작 한 달인가 하고 여길 수 있으나, 한 달이란 대단히 긴 나날입니다. 그렇다고 한 해나 두 해 머문다 해서 더 멋지거나 놀랍거나 아름답다 싶은 사진을 찍지는 않아요. 하루나 이틀을 머문다 해서 더 모자라거나 어리숙하거나 못난 사진을 얻지는 않아요. 살짝 스쳐 지나간달지라도, 내가 내 가슴으로 무슨 사랑을 피워 올리는가에 따라 사진이 달라집니다. 딱 1초 겨를이 나서 1/30초로 사진 한 장 찰칵 찍을 수 있다 하더라도 아름답다 싶은 사진을 얻습니다.

 한 달이면 한 달이라는 나날을 놓고 하루에 사진책 한 권을 엮는 매무새로 서른 날치 사진 가운데 몇 장씩 뽑아 사진책 하나를 새삼스레 또 하나 일굴 만합니다. 그러면, 《쿠바를 찍다》는 쿠바에서 무엇을 찍었는지요. 쿠바 골목을 찍었는지요. 쿠바 사람들을 찍었는지요. 쿠바 바다를 찍었는지요. 쿠바 살림집을 찍었는지요.

 쿠바를 찍든 한국을 찍든 서울을 찍든 흐리멍덩하게 찍으면 사진이 아닙니다. 그냥 ‘찍기놀이’입니다. 찍기놀이를 했는데 ‘사진을 찍었다’고 함부로 말해서는 안 됩니다. 찍기놀이가 나쁜 일이라는 소리가 아닙니다. 찍기놀이는 찍기놀이대로 즐겁습니다. 찍기놀이는 찍기놀이요, 사진찍기는 사진찍기인 줄을 옳게 가누어야 합니다.

 사진찍기는 사진읽기요, 삶읽기요 삶찍기라고 했습니다.

 찍기놀이는 찍기놀이입니다. 찍으며 노는 일입니다. 찍으며 노는 사람은 사진기를 쥔 나 혼자입니다. 나 혼자 여기도 다니고 저기도 다니면서 즐겁게 노는 찍기놀이입니다.

 찍기놀이로도 얼마든지 사진책을 낼 수 있습니다. 찍기놀이로 사진책을 내놓는 《두나's 도쿄놀이》나 《두나's 런던놀이》가 있습니다. 배두나 님 사진책은 처음부터 사진책이라고 여기지 않으며 내놓은 사진책이고, 스스로 사진이라 생각하지 않으며 즐긴 찍기놀이입니다.

 가볍다 해서 나쁠 까닭이 없고, 가볍기 때문에 더 좋을 까닭이 없습니다. 가벼운 찍기놀이는 말 그대로 가벼운 찍기놀이입니다.

 우리 집 서른두 달짜리 어린 딸아이도 날마다 찍기놀이를 합니다. 찍기놀이를 하다가는 아빠 사진기를 빼앗아서 제가 사진을 찍기도 합니다. 아이는 아이대로 아이 눈썰미에 따라 제 아버지랑 어머니를 마주하면서 부대끼는 ‘삶이 있기’ 때문에, 이렇게 느끼는 삶결 그대로 삶읽기를 합니다. 삶읽기가 그예 삶찍기인 사진찍기로 이어갑니다.


- 한 장 한 장의 사진이 소중한 것은 바로 그 순간 그 분위기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238쪽)


 사진쟁이 이광호 님은 보배와 같다고 느낄 사진을 찍으려 하는구나 싶습니다. 좋습니다. 누구는 찍기놀이를 하고, 누구는 보배사진을 얻으려 합니다. 누구는 살아가며 사진을 즐기고, 누구는 강단에서 사진 이론을 들려줍니다. 이렇게 해도 사진이고 저렇게 해도 사진인 한편, 이렇게 하니 그저 삶이고 저렇게 하니 그저 놀이입니다. 구태여 ‘사진 울타리’에 집어넣으려 할 까닭이 없습니다.

 《강운구 사진론》이라는 책에서 강운구 님이 수없이 되풀이하면서 이야기하는데, ‘예술을 하는 사람이 예술을 하면서 사진을 한다고 말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사진이 아닌 예술을 하면서 예술을 굳이 사진이라고 말할 까닭이 없습니다. 찍기놀이를 하면 그냥 찍기놀이를 즐기면 될 뿐, 찍기놀이도 사진이라고 우길 까닭이 없습니다. 쿠바를 여행하면서 찍기놀이를 즐겼으면 찍기놀이를 즐겼을 뿐입니다. 그때그때 숱한 사람과 부대끼며 ‘이광호 님이 받은 느낌’을 사진으로 담고팠다면, ‘사진이라는 매체’를 쓰며 찍기놀이를 했을 뿐이지 ‘사진을 한’ 셈은 아닙니다. 쿠바를 여행한 나날을 글로 적거나 그림으로 그렸을 때에도 ‘쓰기놀이나 그리기놀이를 했다고 해야, 글쓰기를 했다거나 그림그리기를 했다고 할 수 없’어요.

 어쩌면, 이런 이야기가 좀 지나치다고 느낄 분이 있을까 궁금한데요, 하나도 지나친 이야기가 아닙니다. 쿠바사람은 쿠바라는 나라에서 ‘억지로 예술스러운 노래를 부르’거나 ‘일부러 예술스러운 집을 꾸미며 살지’ 않습니다. 그저 쿠바사람은 쿠바사람 삶을 즐깁니다. 쿠바사람이 쿠바사람대로 즐기는 삶을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들이 ‘아, 이것 참 예술이로구나.’ 하고 생각할 뿐입니다. 부에노 비스타 소셜 클럽이든 무엇이든, 이 사람들은 노래를 좋아해서 노래를 부르지, 예술이 되거나 작품이 되라며 노래를 부르지 않습니다. 좋아서 부르는 노래를 듣는 우리들이 ‘이 노래야말로 예술이라고!’ 하고 외친들 얼마나 부질없습니다. 정작 이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은 즐거이 춤추고 마시며 흐드러지는데.

 쿠바를 찍는 사진들은 어설피 “쿠바를 찍다”라 말해서는 안 됩니다. “쿠바에서 함께 놀았다”고 말해야지요. 아니, “쿠바에서 찍기놀이를 조금 맛보았다”고 말해야지요.

 삶을 읽지 않았으니 삶을 찍지 못하고, 삶을 찍지 못했으니 사진찍기라 할 수 없으며, 사진찍기를 할 수 없었으니 사진을 한 셈이 아닙니다.

 그러나, 사진을 하고 싶어 이모저모 애쓰거나 땀을 흘린 삶입니다. 사진으로 걸어가고자 힘을 쏟고 마음을 바친 나날입니다. 부디, 이 땀과 발걸음을 예쁘게 돌아보면서 착하게 보듬어 주면 좋겠습니다. 이럴 때에 비로소 내 나름대로 내가 보배와 같다고 느끼는 사진 한 장을 얻습니다. 다른 사람이 좋다고 말해 줄 사진이 아니라, 내가 사랑하며 좋아할 사진 한 장을 얻어야 할 사진삶입니다. (4344.2.1.불.ㅎㄲㅅㄱ)


- 쿠바를 찍다 (이광호 사진·글,북하우스 펴냄,2006.7.10./15000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