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걀 한 개 보리피리 이야기 1
박선미 글, 조혜란 그림 / 보리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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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아가는 이야기가 가장 즐겁습니다
 [책읽기 삶읽기 21] 박선미+조혜란, 《달걀 한 개》


 어린이한테 이 나라 어른들 지난 삶자락을 들려주는 이야기책 《달걀 한 개》를 읽다. 《달걀 한 개》라는 이야기책은 경상남도 밀양에 있는 작은 마을 백산에서 1970년대에 어린 나날을 보내던 한 사람이 달걀이란 먹을거리를 놓고 겪거나 부대낀 삶을 담는다. 어떤 이한테 1970년대는 까마득한 옛날일는지 모르지만, 나이 서른을 넘은 사람한테는 그다지 먼 옛날이 아니고, 나이 마흔을 넘은 사람한테는 어렵잖이 떠올릴 어린 나날일 테고, 나이 쉰이나 예순을 넘은 사람한테는 어린 동생이나 아이를 돌보며 보내는 나날일 테지. 흔히 옛날이야기라 하면 범이 담배 피워 물던 이야기라든지 고려나 조선 때쯤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이야기라고 생각하기 일쑤이다. 그렇지만 바로 하루가 지난 어제 이야기만 하여도 옛날이야기가 될 수 있다. 지난해에 겪은 이야기 또한 옛날이야기라 할 만하다. 멀디멀어 아주 까마득해야만 옛날이야기가 아니다. 옛날이야기란 사람들이 이 땅에서 옹기종기 모여 오순도순 살아온 이야기이다.

 살아온 이야기는 기쁠 수 있고 슬플 수 있다. 웃음이 넘치던 지난 삶일 수 있고 눈물이 가득한 지난 삶일 수 있다. 기뻐 웃음이 넘치던 삶이라 하여 아름다운 삶이라고 여길 수 없고, 슬퍼 울음이 가득한 삶이라 하여 못마땅하거나 어설픈 삶이라고 여길 수 없다. 기쁘다 하지만 몇몇 사람들 배만 부른 볼꼴사나운 이야기일 수 있고, 슬프다 하지만 뭇사람들 가슴을 저미는 촉촉한 이야기일 수 있다.


.. 병아리들은 무럭무럭 자라서, 여름쯤이면 마당이 그득해. 다른 집은 닭을 장에 내다 팔아서 돈벌이가 된다는데, 아야네는 그걸 한 마리 팔 새가 없어. 배 타는 삼촌 오면 고아 줘, 공부하러 간 오빠 오면 한 마리 잡아야지, 고모가 친정 오면 한 마리 해 먹이고, 또 돌아갈 때 보따리에 한 마리 묶어 보내야지, 큰 손 왔다고 상에 올려, 실한 놈은 키워서 씨암탉 해야지 ..  (24∼25쪽)


 내가 떠올릴 수 있는 1970년대는 조각조각 잘린 몇 토막 이야기이다. 다닥다닥 촘촘히 붙은 집들로 이루어진 인천 골목동네에서 놀던 일, 심부름하러 구멍가게에 달려 내려갔다가 달려 올라온 일, 겨울날 몹시 추웠다고 떠오르는 달삯집에서 네 식구가 쪼르르 모여 이불 돌돌 말아 자던 일, 어린 형하고 더 어린 내가 시멘트 담이 퍽 높구나 싶은 골목 한켠에 서 있던 일, 5층짜리 아파트 동네로 짐차를 타고 살림집 옮기던 일 ……. 고모 댁에 찾아갔을 때에 방에 다락이 있어 나무계단을 타고 다락에 올라가 먼지를 뒤집어쓰며 뒹굴던 일이 살짝살짝 떠오른다.

 《달걀 한 개》를 읽으면 “아야는 흰자만 까 먹고 노른자는 사탕 녹여 먹듯이 입에 넣고 굴리면서 아껴 아껴 먹었어(44쪽).” 하는 대목이 있다. 인천 골목동네에서 살던 나도 달걀을 마음껏 먹었다고는 느끼지 않는다. 해가 갈수록 차츰차츰 좀더 자주 먹을 수 있었다고 느끼나 해를 거스를수록 드물었다고 느끼며, 충청도 시골집으로 방학 때마다 찾아올 적에는 닭장에서 한 알 고맙게 꺼내어 먹는 달걀이란 더없이 드물며 소담스러운 밥거리였다고 느낀다. 입이 짧은 나한테 외할머니가 날달걀 하나를 톡 깨서 밥에 풀어 주던 일은 오래도록 떠오른다. 이제 와 헤아리면 내 몸에는 삭인 밥거리들, 이를테면 동치미나 김치국물이나 찬국수물이 받지 않는다. 이제는 매운김치를 건드리지도 못하지만 맵지 않은 김치라 하더라도 삭인 밥거리인 만큼 잘 안 맞는다. 사람들은 으레 한국사람이 김치를 못 먹는다면 말이 안 된다 하지만, 김치처럼 삭인 밥거리가 몸에 안 맞는 사람이 없을 수 없다. 어떤 사람은 물이 목으로 넘어가지 않기도 하는데, 삭인 밥거리 못 먹는 사람이야 마땅히 있을밖에. 아주 어릴 때하고 푸름이 나이가 되었을 때부터는 나한테 찬국수를 사 주는 사람은 없었다고 느끼는데, 아마 내가 떠올리지 못해서 그렇지, 아버지가 바깥밥 먹자며 식구들이 신포시장이나 동인천으로 마실을 나와 함께 찬국수를 먹다가 내가 크게 탈이 나는 바람에 나한테는 더는 안 사 주었을는지 모른다. 나한테는 따로 만두를 사 주거나(찬국수집에서는 으레 만두를 함께 파니까) 다른 뜨거운 국물을 사 준다. 오랜 동무가 내 몸을 잘 모르는 가운데 찬국수 잘하는 집이 있어 같이 먹으러 가자고 해서 억지로 한 그릇 먹은 다음 한 주 내내 배앓이를 하며 괴로운 적이 있다.

 《달걀 한 개》를 쓴 박선미 님은 달걀 노른자를 살살 녹여서 먹었다고 했다. 나도 어릴 때에 달걀 노른자를 살살 녹여서 먹었다. 박선미 님처럼 흰자를 먹을 때에는 아주 조금씩 야금야금 갉아먹었다. 어머니는 옆에서 이 꼴을 지켜보며 꾸짖었으나, 그러거나 말거나 이 맛있는 먹을거리를 금세 먹어치울 수 없는 노릇. 스물일곱 달째 함께 살아가는 어린 딸아이랑 도시로 마실을 나가면 전철간에서 으레 어르신들이 아이한테 사탕을 먹으라 건네주는데, 아이는 사탕을 받으면 늘 오래오래 낼름낼름 돌리며 녹여 먹는다. 길에서 얼음과자를 하나 사 줄 때에도 베어 먹는 법이란 없다. 얼음이 녹아 줄줄 흐르는 데에도 혀로 날름날름 핥아 먹는다. 그만큼 맛나고 좋다는 뜻일 테지.


.. 여자 아이들이 물을 이고 와서 솥에다 붓고, 달걀을 조심 조심 조심 …… 한참을 넣었어. 소금도 몇 줌 넣었나? 불을 때는 아이들은 코끝이 시커매진 것도 모르고 열심이야. 학교 밭에서 일할 때는 요리조리 빠져서 선생님한테 야단을 듣던 남자 아이들도 부지런히 삭정이를 주워 오고. 달려오다 넘어져 무르팍이 까지고 ..  (40쪽)


 이야기책 《달걀 한 개》에 나오는 시골학교 선생님은 몸이 퍽 여렸나 보다. 크게 병치레를 하고 일어나니까 마을사람마다 선생님 어여 몸 추스르라며 달걀을 보내 왔다는데, 선생님은 “아이구, 이 귀한 거를, 너거나 하나 더 먹이지. 엄마한테 잘 묵고 어서 낫겠다고 말씀디리라(39쪽).” 하고 얘기하더니, 얼마 뒤 아이들을 모두 모아 놓고는 “자아, 인자부터 달걀 삶아 먹는 공부를 할 끼다(39쪽).” 하면서 마을 어른들이 내어 준 달걀을 알뜰히 그러모아 한꺼번에 삶아서 아이들한테 골고루 나누어 준다. 이때 아이들 모습이 참 재미나다. 여느 때에는 개구쟁이에 말썽쟁이였다지만, 선생님이 ‘달걀 삶아 먹는 공부’를 하자니까 스스로 소매 걷어붙이고 나서면서 삭정이를 주워 오고 물을 길어 오고 불을 때며 함께 달걀 삶기를 했다지. 학교에서 아이들과 함께 하는 공부를 이렇게 아이들 스스로 신나게 할 수 있게끔 교육 얼거리를 짠다면 얼마나 좋으랴 싶다. 대학바라기가 맨 첫째로 눈길을 둘 일이라 할지라도, 아이들과 살아숨쉬는 공부를 하면서 숨돌리기를 해야 하지 않겠는가. 학교에서 함께 맛난 밥을 지어 먹기도 하고, 나무그늘에서 쉬기도 하며, 나무열매를 따먹는 날을 맞이하기도 하는 가운데, 흙과 바람과 해와 물과 풀을 가슴으로 살포시 껴안도록 이끌어야 비로소 ‘가르치는 이와 배우는 이’가 서로서로 살가이 어깨동무할 수 있지 않겠느냐 생각한다.

 그나저나, 이 책에 붙은 이름은 왜 “달걀 한 개”일까. 달걀을 셀 때에는 ‘한 알’ ‘두 알’ 하고 세야 옳지 않나. 올바로 말하자면 “달걀 한 알”이다. 그나마 “계란 한 개”라 하지 않으니 낫다 할 만하지만, 다른 누구도 아닌 아이들한테 우리 어른들 살갑던 삶자락을 곰곰이 되씹도록 이끌어 주고자 하는 책이라 한다면, “달걀 한 알”이라고 책이름을 고치고, 책에 깃든 서너 대목에서도 “한 개”를 “한 알”로 고쳐야 마땅하다. 또는 “달걀 하나”라 해 볼 수 있겠지. ‘알’로 세기도 하지만 그냥 ‘하나 둘 서이 너이’ 하기도 하니까. 아니면, 책이름을 “달걀 이야기”라 해 보아도 된다. 말 그대로 달걀하고 얽힌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반드시 ‘한 알’만 갖고 풀어내는 이야기가 아니라, 달걀을 둘러싼 이야기를 그리는 만큼 “달걀 이야기”라고 책이름을 고쳐도 잘 어울린다.

 왜 책이름을 따지느냐 하면, 《달걀 한 개》란 뭐 대단한 이야기책이 아닐 뿐더러, 아주 거룩한 이야기책 또한 아니기 때문이다. 《달걀 한 개》는 여느 사람들 여느 자리 수수한 이야기책이다. 이리하여 이 책에 깃든 말마디라든지 이 책에 붙이는 이름은 가장 수수한 자리를 찾아들어야 한다. 학교 문턱을 오래 밟았든 한 번도 밟지 못했든, 시골 농사꾼이든 도시 회사원이든, 똑똑한 어린이이든 시험 성적이 잘 안 나오는 어린이이든, 누구나 손쉽고 즐거우며 살가이 마주하여 읽도록 글월 눈높이를 맞출 뿐 아니라, 가장 바르면서 곱고 착한 말씨로 가다듬을 수 있어야 한다. ‘임금님 달걀’이나 ‘대통령 달걀’도 아닌 ‘시골사람 달걀’ 이야기 아닌가. 조금 더 말결을 보듬으며 가다듬는다면 좋겠다.

 책끝에 ‘추천글’을 쓴 윤구병 님이 “그 입담에 스며 있는 건강한 교육관, 인생관도 퍽 대견합니다”라고 적는데, 어른들이야 윤구병 님이 박선미 님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줄 알며, 이렇게 말할 수 있겠거니 생각할 테지만, 이 책을 읽는 어린이한테는 둘 다 똑같은 ‘어른’이다. 한 어른이 다른 어른한테 ‘대견하다’라는 말을 쓸 수 있는가. 쓸 수 있다고 하더라도 이런 자리에서는 ‘훌륭합니다’라든지 ‘알뜰합니다’라든지 ‘아름답습니다’라고 말해야 알맞다. 어른책에서도 말 한 마디 어설피 하면 안 되지만, 어린이책이라면 말 한 마디 더더욱 곱씹고 살피면서 해야 한다. 이밖에 박선미 님 말투에서 바로잡을 대목을 한두 가지 들어 본다면, 6쪽과 14쪽과 29쪽에 ‘것’을 너무 자주 쓴다. “소리질러 대는 게 자주 들리거든(6쪽)”은 “질러대는 소리가 자주 들리거든”으로 바로잡고, “알에서 모두 잘 깨어 나온 거거든(14쪽)”은 “알에서 모두 잘 깨어 나왔거든”으로 바로잡으며, “침 삼키는 것도 조심하면서(29쪽)”는 “침 삼키기도 잘 살피면서”로 바로잡으면 좋겠다. ‘조심’ 같은 한자말이야 익히 쓰기는 하는데, 예전 어르신들은 이 말을 안 썼다. 늘 ‘살피다’라는 말을 썼다. 사람들이 어른들을 떠나 보낼 때에 요사이는 “조심해서 들어가셔요.” 하는 말을 곧잘 하는데, 예전 어르신들은 노상 “살펴 들어가셔요.”나 “살펴 가셔요.” 하고 말했다. 《달걀 한 개》같이 옛날이야기를 구수히 들려주려는 책이라 할 때에는 ‘살피다’ 같은 낱말을 잘 갈무리해 주면 좋겠다. 10쪽에서 “너무 급한 나머지”는 “너무 바쁜 나머지”로 다듬고, 25쪽에서 “실한 놈”은 “통통한 놈”이나 “살찐 놈”으로 다듬으며, 30쪽에서 “머리가 아주 복잡해”는 “머리가 아주 어지러워”나 “머리가 너무 어수선해”로 다듬어 본다. 마지막으로, 54쪽을 보면 글쓴이가 따로 적바림한 글이 있는데, 이 글에서 “어린 아야만 한 아이들과 함께 지내는 선생님이 되었어.”라고 했다. 이 대목은 아주 틀렸다. 내가 나 스스로를 일컬어 ‘선생님’이라 말할 수 없다. 내가 나 스스로를 일컬을 때에는 ‘교사’라 해야 알맞다. “어린 아야만 한 아이들과 함께 지내는 교사가 되었어”라든지 “어린 아야만 한 아이들과 함께 배우고 있어”라든지 “어린 아야만 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어”처럼 고쳐야겠다.

 알뜰하고 알찬 이야기책 《달걀 한 개》인 만큼 곁다리라 할 만한 글투와 글쓰기를 이렁저렁 짚어 본다. 이런저런 글투와 글쓰기를 더 가다듬거나 추스를 수 있을 때에 이 이야기책은 훨씬 빛이 나면서 고운 물이 들리라 생각한다. ‘입말로 생생하고 재미나게 풀어써’서 어린이문학을 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아이들과 즐겁게 나눌 좋으며 곱고 착한 말’을 ‘살아숨쉬는 기운을 살며시 불어넣으며 한결 따스하고 사랑스레 펼칠’ 수 있기를 바라 마지 않는다.

 살아가는 이야기가 가장 즐겁다. 내가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 스스로 신나게 나눌 수 있을 때에 가장 즐겁다. 남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 너머로 구경하거나 호박씨를 까는 이야기보다, 나 스스로 내 온몸 바쳐 힘차게 살아가는 이야기를 꾸밈없이 나눌 수 있으면 참으로 즐겁다. 문학이란 바로 삶에서 비롯한다. 어린이문학이든 어른문학이든, 또 판타지라 하든 공상과학이라 하든 뭐라뭐라 하든 삶에서 비롯하거나 삶에 바탕을 두지 않는 문학이란 없다. (4343.11.2.불.ㅎㄲㅅㄱ)


― 달걀 한 개 (박선미 글,조혜란 그림,보리 펴냄,2006.5.31./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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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 맞는 마음


 퍽 모처럼 식구들과 함께 읍내 마실을 한다. 읍내 마실을 하면서 생각한다. 예전 사람들은 사일장이든 오일장이든 장날에 맞추어 읍내에 마실을 한다고 했다지만, 이런 읍내 마실조차 매우 드문 일이었으리라고. 한 달에 한 번쯤 마실을 했으려나. 두어 달에 한 번쯤 마실을 했을까.

 아이 엄마랑 아이랑 나란히 읍내 마실을 한 지 한 달쯤 되지 않았나 싶다. 이래저래 딱히 읍내로 마실을 할 일이 없었다. 모처럼 읍내에 나가서 중국집에 들러도 그닥 맛있지 않다고 한다.

 아이를 걸리다가 안다가 하면서 시골버스 타는 데로 간다. 집을 나서며 시골길을 조금 걷는데, 집 둘레 멧자락에서 보던 느낌하고 사뭇 다르다. 시골자락 가을은 이렇게 찾아오는구나 하고 새삼 느낀다. 버스 타는 때를 맞추어야 하지만 살짝살짝 가을맛을 보면서 걷는다. 이러다가 어쩌면 늦을까 걱정스럽다. 저 앞 시골버스역에 서 있는 느티나무를 보며 걷다가 아이고, 내리막을 따라 시골버스가 탈탈탈 내려오는 모습을 본다. 큰일이다. 어, 아직 버스역까지 가려면 더 걸어야 하는데. 아이를 안고 헐레벌떡 달린다. 손이라도 흔들어야 하나 싶어 손을 흔들며 달린다. 아이도 아빠 품에 안긴 채 손을 흔들며 함께 소리를 질러 준다. 버스기사는 못 보고 못 들은 듯. 버스가 탈탈 움직이려 한다. 다시 부르고 자꾸 부르니 버스가 가려다 멈추고, 또 가려다 멈춘다. 아예 멈추어 주거나 뒤로 와 주어도 좋으련만. 왜 자꾸 갈 듯 말 듯 그러나.

 버스기사는 차갑게 떠나지 않았다. 버스에는 여고생 두 사람이 먼저 타고 있다. 어, 어느 마을에 사는 학생들이지? 탈탈 느릿느릿 달리는 버스는 손님을 한 사람 더 태우고 읍내로 들어선다. 모두 다섯 사람이 탔다. 여느 때에는 우리 식구들만 타기 일쑤이다. 장날이 아니라면, 또 주말이 아니라면 우리 식구들만 타는 널따란 택시와 같달까.

 버스가 달리는 산등성이를 따라 곱게 이어진 층층논에서 누렇게 익던 벼는 모두 베어내어 텅 비다. 누렇게 익은 벼가 찰랑거리던 때에도 곱고, 모두 베어내어 볏단을 묶은 때에도 곱다. 햇볕에 반짝이는 가을 은행잎은 금빛과 닮았고, 가을 은행나무 옆에서 나란히 자라는 감나무에 대롱대롱 달린 감알 또한 금빛과 닮았다. 감알은 보는 자리에 따라, 또 아침이냐 낮이냐 저녁이냐에 따라 빛깔이 사뭇 다르게 바뀐다. 시골에서 살아가기 때문에 이러한 빛바뀜을 날마다 즐길 수 있어 고맙다. 멧자락에 깃든 감나무랑 읍내에 깃든 감나무랑 들판에 깃든 감나무랑 모두모두 빛과 모습이 다르다. 감알을 따서 책시렁 한켠에 얹어 놓고 날마다 들여다보노라면, 날마다 차근차근 익으며 보여주는 빛깔이 참 예쁘다.

 읍내로 마실을 나서는 길에 흔하디흔하다 할 만한 빨간 나뭇잎하고 어우러지는 노란 나뭇잎이랑 아직 푸른 나뭇잎이랑 빈 들판을 살며시 사진으로 담는다. 흔하디흔한 모습이기는 한데, 해마다 새삼스러운 흔한 모습이라 좋다. 우리 아이한테는 이제 막 새롭게 보는 흔한 모습이요, 앞으로 해마다 다 달리 마주하며 맞아들일 새 가을 빛깔일 테지. 나한테 사진기가 있어 이 모습을 담으니 좋고, 사진찍기를 하며 살아가니까 이 모습을 살뜰히 옮겨 딸아이랑 앞으로도 오래오래 즐길 수 있어 좋다. (4343.11.1.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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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찍새 어린이, 밥 안 먹고 어디 가셔요? 모양은 그럴듯하게 아빠를 흉내내었군요. -_-;;; 

- 2010.10.31.

 

 그래, 찍는 모습은 참 멋있다. 그러니까 밥은 좀 먹고 놀자?

 

 너 말야, 울지도 않으면서 어딜 우는 척... 연극도 잘 하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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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0-11-02 04:54   좋아요 0 | URL
아이쿠, 귀엽습니다. 엄마도 살짝 찬조 출연 해주셨네요?
맨아래 사진은 정말 우는 척 하는건가요?

파란놀 2010-11-02 06:46   좋아요 0 | URL
네, 우는 척하는 모습이 살짝 드러나 보이지 않나요?
^^;;; 아주 꾀쟁이랍니다..
 

 기찻길 옆 골목동네 한켠에서 놀고 있는 골목고양이. 참 느긋하네.

- 2010.10.28.인천 중구 신흥동3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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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래와 글쓰기


 아이가 새벽 두 시 반부터 깬다. 잠들 줄을 모른다. 세 시 반이 지나고 네 시 반이 지나도 제대로 잠들지 못한다. 왜 그럴까. 어디가 아픈가. 무슨 나쁜 꿈이라도 꾸었을까. 다섯 시 반이 되니 자리에서 일어나 울먹이며 아빠를 부른다. 엄마는 깊이 잠들어 아이가 불러도 대꾸를 못한다. 한숨을 깊이 내쉬며 되도록 따스한 말씨로 아이를 부른다. “왜, 쉬 마렵니?” 살짝 생각하는 눈치이더니 “응, 쉬 마려.” 한다. “그래, 쉬 하자.” 하며 기저귀를 벗기고 오줌걸상에 앉힌다. 아이가 쉬를 눈다. 아이를 품에 안다가 살며시 눕혀 다시 기저귀를 채운다. 기저귀를 다 채운 다음 아이를 번쩍 안고는 나즈막하게 노래를 부른다.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는 아이를 안고 노래를 불러 준 지 얼마나 되었을까. 아이가 너무 칭얼거린다면서, 아빠 몸이 고단하다면서, 이 핑계 저 둘러대기로 아이를 한결 따스히 어루만지지 못하며 살아오지 않았는가.

 맨 먼저 〈겨울 물오리〉를 부른다. 두 번 더 부른다. 〈한 아이〉를 부르고 〈순복이〉를 부르며 〈우리 어머니〉였나를 부르고 〈우는 소〉였던가를 부른다. 노래이름은 잘 떠오르지 않는다. 노래말도 잘 떠오르지 않아 떠오르는 대목부터 부르고는 다시 처음부터 부른다. 가운데쯤부터 부르다 보면 첫머리가 떠오른다. 〈해바라기〉를 부르고 〈찔레꽃〉이었던가를 부른다. 두 가락쯤은 백창우 님이 노랫말을 붙인 노래이지 싶으나, 다른 모든 노래는 이원수 님 어린이시에 붙인 가락을 붙인 노래이다. 백창우 님이 새로 지은 노래도 괜찮다고 여기지만, 난 다른 어느 노래보다 이원수 님 어린이시에 붙인 노래가 좋다. 아이를 품에 안고 자장노래를 부를 때에는 으레 이원수 님 어린이시에 가락을 붙인 노래를 읊는다(노래를 지으며 시 몇 글월을 조금 바꾸었다). “언제나 일만 하는 우리 어머니, 오늘은 주무셔요. 바람 없는 한낮에, 마룻바닥에. 콧등에 땀이 송송 더우신가 봐. 부채질 해 드릴까. 그러다 잠 깨실라. 우리 엄만 언제나 일만 하는 엄만데, 오늘 보니 참 예뻐요, 우리 엄마도. 콧잔등에 잔주름 들도 예뻐요. 부채질 가만가만 해 드립니다.”, “얼음 어는 강물이 춥지도 않니. 동동동 떠 다니는 물오리들아. 얼음장 위에서도 맨발로 노는, 아장아장 물오리, 귀여운 새야. 나도 이젠 찬바람 두렵지 않다. 오리들아, 이 강에서 같이 살자.”, “찔레꽃이 하얗게 피었다오. 누나 일 가는 광산 길에 피었다오. 찔레꽃 이파리는 맛도 있지. 남 모르게 가만히 먹어 봤다오. 광산에서 돌 깨는 누나 맞으러, 저무는 산길에 나왔다가, 하얀 찔레꽃 따 먹었다오. 우리 누나 기다리며 따 먹었다오.”, “할아버지가 대로 엮은, 커다란 광주리에, 호박만 한 풍선을 천 개쯤 매달고, 쌍둥이 강아지와, 해바라기씨를 가득 싣고, 엄마가 계시는 별을 찾아간다던, 철길 옆 오두막의 눈이 큰 순복이는, 아직도 그 마을에 살고 있을까, 첫 별이 뜰 때부터, 사립문에 기대 서서, 빨간 스웨터 주머니의, 호두알을 부비며, 으음 요즘도 엄마별을 기다릴까.”

 어쩌면 아이한테 불러 준다는 자장노래는 아이한테만 사랑스럽거나 포근한 노래가 아니라, 이 노래를 부르는 어버이 스스로 사랑스럽거나 포근해지도록 이끄는 노래는 아닐까. 어버이라고 안 졸립고 안 지치며 안 힘들겠나. 졸립고 지치며 힘들면서도 기꺼이 자장노래를 부르도록 하는 힘은 바로 이 노래에 있지 않으려나. 누구보다 어버이 스스로 따스하게 감싸면서, 이 따스함으로 아이를 함께 넉넉히 어루만지도록 이끄는 노래가 자장노래가 아니랴 싶다. 그러고 보면, 요즈음 백창우 님이 새로 지은 노래는 자장노래로 아이하고 함께 즐길 만하기는 어렵고, 한낮에 재미나게 부르며 마음껏 뛰노는 노래로는 잘 어울린다.

 그나저나, 한참 노래를 부르니 아이가 두 팔을 힘없이 늘어뜨린다. 노래 몇 가락 더 부르며 천천히, 아주 천천히 자리에 눕히며 가슴을 토닥이는데, 아이가 번쩍 눈을 뜬다. “엉? 엉? 아빠 코 자? 코 자?” 하고 말을 건다. (4343.11.1.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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