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책 = 좋은 사람 = 좋은 삶
 ― 2010년에 반갑게 만난 새책 일곱 가지



 한 해를 갈무리하는 마지막날이 되면 으레 올 한 해 새로 나온 책으로 어떠한 책을 뜻깊게 읽었는지 되새기곤 합니다. 2010년을 마감하고 2011년이 되거나 2012년이 된다든지, 때로는 2020년이나 2030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알아차리는 ‘2010년에 나온 반가운 책’이 있기도 합니다. 느즈막하게 알아채거나 마주하는 좋은 책은 뒷날 느즈막하게 마주하는 대로 뜻깊으며 고마운 책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올 한 해에는 올 한 해대로 반가우면서 고마이 마주한 책을 즐기면 넉넉하다고 느낍니다. 꼭 한 가지 책만 꼽을 수 없을 뿐더러, 일곱 가지 책을 추리면서도 이렇게 일곱 가지만 추리는 일도 마땅하지 않다고 느끼지만, 이들 일곱 가지 책을 제 깜냥껏 어떻게 제 삶으로 녹여내었는가를 들려주면서, 이들 일곱 가지 책을 속속들이 사랑하고 두루 받아들이는 사람이 다문 한 사람이라도 있으면 좋겠다고 꿈을 꿉니다.
 



ㄱ. 좋은 밥을 먹고 싶으면 좋은 삶을 일구어야지

- 책이름 : 우리 안에 돼지
- 글 : 조슬린 포르셰,크리스틴 트리봉도
- 옮긴이 : 배영란
- 펴낸곳 : 숲속여우비 (2010.2.5.)
- 책값 : 7000원

 맨 먼저 《우리 안에 돼지》라는 책을 꼽아 봅니다. 2010년에 나온 ‘가장 손꼽힐 환경책’을 들라면 서슴없이 이 책을 꼽습니다. 《우리 안에 돼지》는 조그마한 부피로 조그마한 이야기를 담은 책이면서, 바로 이 조그마한 이야기를 우리 스스로 멀리하거나 손사래치면서 까맣게 잊기까지 한다고 깨우칩니다.

 깨우쳐 주는 책이라 해서 좋은 책은 아닙니다. 지식을 다루며 새삼스러운 이야기를 들려주는 책은 몹시 많습니다. 환경책이라 할 때에는 ‘지식 다루기’로 깨우치는 데에서 그치면 참다이 환경책이라 할 수 없습니다. 올바르게 살아가며 착한 넋을 보듬는 가운데 사랑과 믿음을 나부터 내 가슴에 예쁘게 아로새기도록 돕거나 이끄는 책일 때에 비로소 ‘환경책’이라는 이름을 붙입니다.

 지난 열 해 사이에 한국땅에서 나온 훌륭한 환경책으로 《수달 타카의 일생》(그물코,2002)만 한 책이 없다고 생각하는데, 《우리 안에 돼지》는 《수달 타카의 일생》과 함께 ‘환경책을 읽으며 내 삶을 사랑스레 일구고픈 꿈’을 꾸는 분들이 왼쪽과 오른쪽에 나란히 놓을 책이 되겠다고 느낍니다. 저는 올해 이 책을 제 둘레 세 사람한테 선물해 주었습니다.


ㄴ. 좋은 사진을 찍고 싶을 때에는 좋은 사람이 되자

- 책이름 : 낙동강 before and after
- 글·사진 : 지율 스님, ‘낙동강 숨결 느끼기’ 순례 동행들
- 펴낸곳 : 녹색평론사 (2010.3.31.)
- 책값 : 3000원 (http://www.chorok.org)

 지율 스님이 내놓은 조그마한 사진책 《낙동강 before and after》는 여느 책방에는 없습니다. 출판사로 전화해서 여쭈어야 합니다. 오늘날 같은 누리에서 책을 이렇게 사고파는 일이란 바보스러운 짓이라 할 만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같은 누리인 만큼 ‘책을 더욱 천천히 더디 걸리는 길을 따라 장만하여 차근차근 읽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우리는 책을 너무 손쉬우면서 게을리 장만해서 읽습니다. 이럴 바에는 아무 책조차 안 읽어야 하지 않겠느냐 싶습니다. 책은 집안에 드러누워 ‘무료배송 총알배송 당일배송’ 따위로 받아서 외우는 지식보따리가 아닙니다. 책 하나란 나 스스로 한결 아름답게 살아갈 길을 깨닫도록 돕는 길동무입니다.

 지율 스님 사진책 《낙동강 before and after》는 잘 찍은 그럴싸한 사진책이 아니요, 못 찍은 엉성궂은 사진책 또한 아닙니다. 그저 지율 스님이 살아가는 매무새를 고스란히 담은 고운 사진책입니다. 잘나고자 찍는 사진이 아니요, 내보이려 찍는 사진이 아닙니다. 사진기를 쥔 사람과 사진기 앞에 선 사람(또는 사물이나 풍경이나 자연)하고 한 목숨 한 흐름 한 삶 한 넋이 되는 가운데 이루어진 사진입니다.


ㄷ. 좋은 꿈을 이루려면 좋은 말을 해야지

- 책이름 : 이치고다 씨 이야기 (1)
- 글·그림 : 오자와 마리
- 옮긴이 : 정효진
- 펴낸곳 : 학산문화사 (2010.10.25.)
- 책값 : 4200원


 오자와 마리 님은 ‘착한 만화’를 그리는 분입니다. 나라안에 옮겨진 오자와 마리 님 작품은 몇 가지 안 되고, 이분 만화를 아는 분도 얼마 안 됩니다. 만화를 좋아한다거나 사랑한다 하는 분 가운데에도 오자와 마리라는 이름이 낯익은 분은 드물지 않겠느냐 생각합니다.

 《이치고다 씨 이야기》는 ‘딸기밭’이라는 이름을 얻으며 지구별에서 ‘착한 젊은이’하고 함께 ‘착한 삶’을 즐기고파 하는 바깥별 사람이 부대끼는 나날을 들려주는 만화책입니다. 나쁜 짓을 할 마음이 없을 뿐더러, 나쁜 일을 할 까닭조차 없고, 나쁜 꿈을 꿀 일도 없는 ‘딸기밭(이치고다)’ 씨이고, 딸기밭 씨하고 함께 살아가는 젊은이입니다.

 사랑과 평화와 믿음과 기쁨과 웃음과 눈물과 어머니 보드라우며 넉넉한 품을 예쁘게 그릴 줄 알면서 만화로 빚을 줄 아는 오자와 마리 님 《이치고다 씨 이야기》입니다. 2010년 한 해 동안 1권과 2권이 나왔고 2011년에는 3권과 4권이 나올 수 있을까 하고 손꼽아 기다립니다. 이 만화책도 고마운 벗님 셋한테 한 질씩 선물해 주었습니다.


ㄹ. 좋은 살림꾼으로 웃음꽃 집안을 이루려면

- 책이름 : 햇살이 비치는 언덕길 (바닷마을 다이어리 3)
- 글·그림 : 요시다 아키미
- 옮긴이 : 이정원
- 펴낸곳 : 애니북스 (2010.10.20.)
- 책값 : 8000원


 《햇살이 비치는 언덕길》은 ‘바닷마을 다이어리’라는 이름으로 나오는 만화책 셋째 권입니다. ‘바닷마을 다이어리’는 이어그리는 작품이면서 따로따로 보아도 괜찮은 작품입니다. 3권부터 읽어 2권과 1권을 읽어도 됩니다. 권마다 다 다른 빛깔로 다 다른 사람들 다 다른 삶무늬를 빚습니다.

 사랑하며 아끼고 살아가는 데에 넉넉할 한삶을 저마다 어떻게 꾸리거나 일구는가를 꾸밈없이 보여주는 만화책입니다. 아주 마땅한 소리인데, 더 많은 돈이나 더 큰 이름이나 더 센 힘을 바라는 사람은 이 만화책에 나오지 않습니다. 아니, 안 나오지는 않아요. 다만, 이들은 아주 불쌍합니다. 돈을 바라면서 사랑을 잃는 사람이니 딱합니다. 이름을 얻으려 하면서 믿음을 버리는 사람이니 가엾습니다. 힘을 거머쥐면서 따스함을 내동댕이치니 안쓰럽습니다.

 햇살은 언덕길에도 비치고 달동네에도 비치며 아파트에도 비칩니다. 사람들 스스로 햇살을 못 느낄 뿐이거나 안 느낄 뿐입니다. 햇살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시골에서 살아가든 도시에서 살아가든 아리땁습니다. 어디에서나 웃음꽃 가득한 살가운 집안살림을 이룹니다.


ㅁ. 좋은 마을은 좋은 손길로 맺는 좋은 두레

- 책이름 : 협동조합도시 볼로냐를 가다
- 글·사진 : 김태열, 김현경, 우미숙, 전홍규
- 펴낸곳 : 그물코 (2010.10.1.)
- 책값 : 4000원


 이탈리아 볼로냐는 협동조합도시라고 합니다. 이를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되려나요. 저도 이 책을 읽으며 비로소 깨닫습니다.

 얼마 앞서 《신부님 우리들의 신부님》(백제,1979)이라는 소설책을 다시 읽습니다. 《사하라 이야기》(2008)와 《흐느끼는 낙타》(2009)라는 싼마오 문학을 우리 말로 옮긴 ‘막내집게’라는 조그마한 출판사에서 ‘조반니노 과레스키’ 님 문학 《비밀일기》를 새로 펴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신부님 우리들의 신부님》을 다시 읽습니다. 이 소설책을 다시 읽다 보니 ‘1940년대 첫무렵까지 힘차게 마을 협동조합을 꾸리다가 파시스트 무리한테 깡그리 짓밟힌 사람’ 이야기가 얼핏 나옵니다. 이탈리아 파시스트 독재를 아는 사람은 많을 텐데, 파시스트가 무너뜨리려 했던 자유와 민주와 평화와 평등 가운데 하나는 바로 ‘협동조합’이었습니다. 소설책 하나를 다시 읽으며 새로 깨닫는 이야기가 가슴으로 스며드는 가운데 《협동조합도시 볼로냐를 가다》를 새삼스레 되새깁니다. 이 책을 쓴 네 사람이 조금 더 마음을 쏟거나 조금 더 품을 들였다면 훨씬 빛나는 책으로 태어났으리라 느끼지만, 우리네 삶터를 돌아보건대, 이처럼 조그마한 판으로 앙증맞게 이야기를 펼치기만 해도 넉넉하리라 봅니다.

 이 나라 대한민국에서는 협동조합도시에 앞서 ‘생활협동조합(생협)’ 물건을 기쁘게 장만하는 흐름조차 거의 뿌리내리지 못하니까요. 아직까지도 생협 물건은 돈 넘쳐나는 부자들이나 사다 쓰는 줄 아는 바보스러운 지식인이 너무 많습니다. ‘아줌마 삶’이 되어 ‘생협운동’부터 하지 않고서는, 진보운동이나 환경운동이란 어느 도시에서건 뿌리깊이 파고들 수 없습니다.


ㅂ. 좋은 삶이기에 좋은 죽음

- 책이름 : 숨겨진 풍경
- 글 : 후쿠오카 켄세이
- 옮긴이 : 김경인
- 펴낸곳 : 달팽이 (2010.1.21.)
- 책값 : 12000원

 누구나, 고맙게 얻은 목숨으로, 고맙게 살아가다가 고맙게 죽습니다. 고맙게 밥을 먹고 고맙게 똥을 눕니다. 《백성 백작》(그물코,2006)이라든지 《즐거운 불편》(달팽이,2004) 같은 책에 이러한 이야기가 잘 나오기도 합니다.

 구제역이니 조류독감이니 하기 앞서 내 삶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내 삶이 얼마나 좋은 삶인가를 돌아보지 않고서는 구제역이나 조류독감이란 언제나 다시 생겨날밖에 없습니다.

 내 손으로 논밭을 일구어 먹을거리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해야 가장 옳으나, 가장 옳은 말을 좀처럼 나누기 어려운 이 나라입니다. 가장 옳은 일을 못한다면 둘째로 옳은 일이라도 해야 하는데, 둘째 셋째 넷째로 옳은 일이나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거나 아끼거나 껴안으려나요. 좋은 삶이 아닐 때에는 좋은 죽음이 아닙니다. 사람들 스스로 좋은 마을을 일구지 않으니 짐승들 또한 슬프게 살다가 슬픈 아픔을 곳곳에 흩뿌립니다.


ㅅ. 좋은 아이와 좋은 어버이

- 책이름 : 나와 너
- 글·그림 : 앤서니 브라운
- 옮긴이 : 서애경
- 펴낸곳 : 웅진주니어 (2010.4.1.)
- 책값 : 11000원


 나라밖 그림쟁이 앤서니 브라운 님은 몹시 아름다운 나날을 일구지 않느냐 하고 헤아리곤 합니다. 앤서니 브라운 님 작품을 볼 때면 마음으로 느낍니다. 당신을 만난 적이 없을 뿐더러 만날 길도 없으리라 생각하는데, 애써 코앞에서 마주해야만 당신 작품을 읽어낼 수 있지 않습니다. 당신이 베풀어 놓은 그림책을 읽으면서 언제라도 당신하고 이야기꽃을 피울 수 있어요.

 그림책 《나와 너》는 영국에서 예부터 내려오는 이야기를 앤서니 브라운 님 삶에 걸맞게 다시 그린 작품입니다. 좋은 옛사람이 있기에 좋은 오늘사람이 좋은 그림책을 일굽니다. 좋은 흙이 있기에 올해에도 좋은 곡식을 얻으며, 좋은 님이 한집에서 함께 살아가기에 오늘도 좋은 하루를 보냅니다.

 나부터 좋은 어버이로 살아간다면 내 아이는 좋은 아이로 무럭무럭 자랍니다. 아이를 다그치거나 나무라기만 한다면 아이가 좋은 사람으로 클 수 있으려나요. 말은 이리 하면서도 몸이 제대로 못 따르곤 하는데, 그렇지만 나부터 좋은 어버이로 살아내면서 내 아이와 내 짝꿍이랑 좋은 나날을 좋은 넋으로 어깨동무하고 싶어요. 내가 있고 네가 있으며, 네가 있어서 내가 있습니다.


ㅇ. 내가 거둔 열매

 다른 분들이 일군 열매 일곱 가지는 언제 들추어도 새롭게 즐겁습니다. 저 또한 올 한 해 여러 가지 열매를 일구었는데, 제 열매는 저를 비롯해 뭇사람들한테 어떠한 맛과 멋으로 스며들까 궁금합니다. 저는 올 한 해 네 가지 낱권책을 내놓았고, 1인잡지 《우리 말과 헌책방》은 세 권 내놓았습니다. 여느 책방에서 파는 낱권책 네 가지는 《사진책과 함께 살기》(포토넷,2010.5.), 《골목빛, 골목동네에 피어난 꽃》(호미,2010.6.), 《어른이 되고 싶습니다》(양철북,2010.9.), 《사랑하는 글쓰기, 잘못 쓰는 겹말 이야기》(호미,2010.12.)입니다. 1인잡지 《우리 말과 헌책방》은 8호와 9호와 10호를 내놓았으며, 저마다 이름을 달리 붙여 8호는 “오래된 책은 아름답다”이고, 9호는 “작은책방이 살리는 책마을”이며, 10호는 “책을 읽는 마음 삶을 읽는 마음”입니다.

 2011년 새해에도 이웃 분들 좋은 책을 기쁘게 맞아들이면서, 나 또한 내 이웃들한테 좋다 싶을 만한 책을 기쁘게 나누고 싶습니다. 서로서로 다 다른 자리에서 다 다른 꿈을 알뜰살뜰 보듬으면 좋겠습니다. (4343.12.31.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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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와 통하는 우리말>에 실을 네 번째 글. 

가. 우리말 생각 ㉣ 우리 겨레 말글


 아저씨는 네 살짜리 아이와 막 태어날 아이를 돌보는 어버이입니다. 둘레 분들은 저처럼 ‘어버이’라는 낱말을 쓰지 않습니다. 다들 ‘부모(父母)’라는 낱말만 쓰셔요. 저도 때에 따라서는 ‘부모’라는 낱말을 쓰지만, “어머니와 아버지를 아울러 가리키는 우리말”인 ‘어버이’라는 낱말을 한결 좋아합니다. 저는 제가 좋아하는 낱말을 즐겨써요.

 그러고 보니, 저는 ‘즐겨쓰다’라는 낱말을 붙여서 씁니다. 말사랑벗들은 알까 모르겠는데, 동무들이 인터넷을 켤 때면 차림판 한쪽에 ‘즐겨찾기’라는 자리가 있어요. 인터넷이 처음 나오던 때에는 영어로 ‘favorite’이라고 적혔는데, 나중에 이처럼 한글이자 우리말 이름 ‘즐겨찾기’가 붙었어요. 누가 이 이름을 지었는지 모르지만 참 잘 지었다고 느낍니다. 이 이름은 처음에는 낱말책에 안 실렸지만, 이제는 떳떳하고 당차게 낱말책 올림말이 되었어요.

 인터넷을 켤 때면 늘 이 낱말 ‘즐겨찾기’를 생각합니다. “즐겨서 찾아가는 곳을 한 데에 묶었”을 때에 ‘즐겨찾기’라 하듯이, ‘즐겨-’라는 앞마디를 발판 삼아서 ‘즐겨먹다’나 ‘즐겨쓰다’나 ‘즐겨읽다’나 ‘즐겨보다’ 같은 새 우리말을 지을 수 있어요. ‘애용(愛用)하다’라 하기보다는 ‘즐겨쓰다’라 하면 좋고, ‘애독(愛讀)하다’라 할 때보다는 ‘즐겨읽다’라 하면 나으며, ‘애청(愛聽)하다’라 하지 말고 ‘즐겨보다’라 하면 훨씬 즐겁습니다.

 아저씨가 이 글을 쓰는 내내 네 살짜리 아이는 아빠 무릎에 앉거나 등에 업히거나 옆에 나란히 앉아 책을 펼쳐 놓고 아빠가 함께 읽어 주기를 바랍니다. 아빠 된 몸으로서 글만 쓸 수 없으니, 글 쓰던 손을 멈추어 아이와 함께 그림책을 넘깁니다. 가위 바위 보 하는 그림이 나오면 “감자에 싹이 나서 잎이 나서 가위 바위 보” 노래를 불러 주고, 공 차는 모습이 나오면, “공을 차네.” “공을 잡네.” 같은 말을 들려줍니다. 그림책에 나오는 언니가 댕기를 예쁘장하게 맸으면 “댕기를 맸네.” 말하고, 아이는 곧바로 “댕기 맸네.” 하며 따라합니다.

 말사랑벗들은 ‘댕기’라는 낱말을 들어 본 적이 있나 모르겠군요. 으레 ‘리본(ribbon)’이라는 소리만 듣지 않았나 싶어요. 얼마 앞서는, 옆지기하고 이야기를 하면서 아이한테 ‘세모뿔’이라고 가르쳐야 하느냐 ‘삼각뿔’이라 가르쳐야 하느냐를 놓고 머리를 갸웃갸웃했습니다. 우리말로 ‘세모’랑 ‘네모’를 가르치고 싶으나, 아이가 학교에 든다든지 여러 가지 책(수학책)을 익힌다든지 할 때에는 어김없이 ‘세모’나 ‘네모’라는 낱말은 없고 ‘삼각(三角)’과 ‘사각(四角)’이라는 낱말만 있기 때문입니다. 학교와 교과서와 사회를 헤아린다면 우리 아이 또한 ‘삼각’이랑 ‘사각’이라는 낱말로 배워야 할 테지요. 게다가 ‘삼각팬티’라고만 하지 ‘세모속옷’이라 말하는 사람은 없어요. ‘삼각관계’라 일컫지 ‘세모사이’라 일컫는 사람 또한 없고요.

 길에서도 비슷합니다. 우리 식구는 ‘세거리’와 ‘네거리’와 ‘건널목’과 ‘거님길’ 같은 낱말을 쓰지만, 다른 분들은 ‘삼(三)거리’와 ‘사(四)거리’와 ‘횡단보도(橫斷步道)’와 ‘인도(人道)’라는 낱말을 쓰셔요.

 《건방진 우리말 달인(기초편)》이라는 책을 읽다 보면 “경기 지방 사투리거든(19쪽).”이라는 대목이 나와요. 꽤나 많은 분들은 이처럼 엉터리 말을 아무렇지 않게 쓰는데, 말하는 사람이나 책을 내놓는 사람이나 읽는 사람이나 조금도 깨닫지 못해요. 이 말마디가 얼마나 엉터리인지를 몰라요. 그래서, 어떤 이는 “고통과도 같은 괴로움”이라 말하고, 어떤 분은 “나와 다른 타인”이라 말하기도 하며, “축제가 열리고 개최된다”라 말하는 사람마저 있습니다. “살다가 거주했습니다”라 말하는 사람이라든지 “쉽게 평이하게 쓴다”고 말한다든지 “길을 걸으며 하이킹을 한다”고 말하거나 “배려의 마음”을 이야기하기도 해요. 말사랑벗들은 이 말이 엉터리인지 아닌지 알겠어요?

 차근차근 짚어 볼게요. 먼저, ‘사투리’는 “어느 한 지방에서 쓰는 말”을 가리킵니다. ‘지방말’이나 ‘지역말’이 ‘사투리’예요. 어떤가요. 이렇게 풀이해 보면 알 만한가요. “경기 지방 사투리”라 적은 글은 “경기 지방 지방말”이라 적은 꼴이에요. “경기 사투리”라 적거나 “경기 지방 말”이라 적거나 “경기도 고장말”이라 적어야 올발라요. ‘고통(苦痛)’은 ‘괴로움’을 가리키는 한자말이에요. 그러니까 “고통과도 같은 괴로움”이란 얼마나 멋없는 말인가요. ‘타인(他人)’이라는 한자말은 ‘남’, 곧 ‘다른 사람’을 일컬어요. “나와 다른 타인”이란 말이 안 되는 말이랍니다. 자, 이제 다른 엉터리 말이 왜 엉터리 말인지는 말사랑벗들이 하나하나 살펴보겠어요?

 손수 낱말책을 뒤적이면서 말뜻을 찬찬히 헤아리다 보면, 어른이든 어린이이든 푸름이이든, 우리가 주고받거나 펼치는 말글 가운데 옳지 못하거나 어이없거나 알맞지 못한 대목이 지나치게 많은 줄 깨달으리라 생각해요. 우리들은 ‘한겨레’라고는 하지만 정작 한겨레답게 한겨레 말을 하지 못하는 판이에요. 겨레말을 제대로 생각하지 못하고, 겨레글을 옳게 쓰지 못해요. 겨레말이 튼튼하게 자리잡지 못하니까 겨레얼을 한껏 북돋우지 못합니다. 겨레글을 알차게 가꾸지 못하니까 겨레넋을 싱그럽거나 슬기롭게 다스리지 못해요.

 동무들은 일본에서 살아가는 한겨레를 어느 만큼 아는가요. 일본에서 살아가는 한겨레인 유미리 님이 쓴 책을 읽어 보았나요. 나중에 한번 찾아서 읽어 보셔요. 사기사와 메구무라는 분도 있는데, 이분은 그만 스스로 목숨을 끊었어요. 이름에서 엿볼 수 있듯 ‘일본 국적’인 분인데, 소설을 쓰던 어느 날, 자료를 찾느라 당신 할머니랑 할아버지 발자취를 알아보다가 당신 할머니가 북녘사람임을 알아채고는 깜짝 놀랐답니다. 당신한테 1/4만큼 한겨레 피가 흐르는 줄을 느즈막하게 알았는데, 당신 어버이는 이런 일을 몰랐거나 얘기를 안 했대요. 그러니 이름부터 아예 일본 이름인 ‘사기사와 메구무’였겠지요. 이분이 쓴 소설 가운데 《당신은 이 나라를 사랑하는가》라는 작품이 있어요. 저는 이 작품을 읽으며 눈물이 핑 돌고 가슴이 아팠어요. 유미리 님이 쓴 《훔치다 도망치다 타다》를 읽으면서도 가슴이 촉촉했습니다. 이분들, 이른바 ‘재일조선인’이라는 한겨레 문학을 읽다 보면, 남녘에서 살아가는 사람 가운데 ‘일본에 한국사람이 사는 줄 까맣게 모르는 사람’이 아주 많다는 대목이 얼핏설핏 나옵니다. 참 그럴까 하고 놀라다가는, 요즈음 사람들 말매무새와 마음밭을 들여다보면 참 그렇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입니다.

 우리는 남녘땅 사람들만 한겨레인 줄 알기 일쑤이고, 북녘땅이나 일본땅이나 중국땅이나 러시아땅에 똑같이 한겨레가 살아가는 줄 생각하지 못하거나 살피지 않기 일쑤예요. 더구나, 이 나라 바깥 한겨레만 제대로 모르는 우리들이 아니라, 이 나라 안쪽인 남녘땅에서 함께 살아가는 한겨레를 제대로 모르기 일쑤예요. 이제 ‘이웃사촌’이라는 낱말은 옛말입니다. ‘이웃’이라는 말조차 쓰기 멋쩍습니다. ‘동무’라든지 ‘벗’이라는 낱말을 쓰면서 사귈 만한 살가운 사람은 얼마나 되려나요. ‘어깨동무’나 ‘씨동무’라 할 만한 사랑스러운 사람은 얼마나 되나요. 남을 살피기 앞서 나 스스로 내 둘레 사람들한테 ‘이슬떨이’나 ‘길동무’나 ‘너나들이’ 노릇을 하는지 생각해야 합니다.

 말사랑벗님들을 비롯해, 저나 제 둘레 모든 사람들, 곧 우리 한겨레가 어깨동무하면서 즐거이 쓸 우리말이란, 남녘을 비롯해 북녘과 일본과 중국과 러시아에서 골고루 서로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넋으로 나눌 말입니다. 남녘땅 테두리에서 살핀다면, 대학교를 나온 사람들이라든지 기자나 법관이나 정치꾼이나 공무원이나 교사 같은 사람들만이 아니라, 저잣거리 장사꾼이랑 시골 농사꾼이랑 바닷가 고기잡이랑 공장 일꾼 누구나하고 사이좋게 나눌 말이 한겨레 우리말입니다.

 초등학교만 나온 사람이나 초등학교조차 못 나온 사람하고도 즐거이 나눌 수 있을 때에 아름다운 우리말입니다. 할머니 할아버지하고도 슬기롭게 나눌 만한 말이어야 좋은 우리말입니다. 어린 동생하고도 재미나게 나눌 만한 말일 때에 고운 우리말입니다. 우리들은 우리 겨레가 사이좋게 어깨동무할 ‘한겨레 말삶’을 헤아리면서 차근차근 일구어야 훌륭하면서 사랑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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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12.25. 

 읍내로 아이를 데리고 차를 얻어 타고 돌아올 일이 있어 케익을 하나 사 보았다. 아이는 뻥터뜨려를 들고는 아빠한테 쏠까나 한다. 이 녀석아, 사람한테 겨누지 마라. ㅠ.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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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12.27.  충청북도 음성군 읍내리. 

오래된 흙벽 창고 건물이 하나 빼고 모조리 헐렸다. 그러고 보니, 흙벽 창고를 안 보이게 쌓아 놓던 담벼락도 곧 허물겠네. 이 그림도 가뭇없이 잊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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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 인형
가브리엘 뱅상 지음 / 별천지(열린책들) / 2009년 10월
평점 :
품절




 손 맞잡고 다 같이 노는 겨울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35] 가브리엘 벵상, 《꼬마 인형》(열린책들,2003)



 아침에 두 손이 꽁꽁 얼어붙을 때까지 눈을 쓸다가 들어옵니다. 더 쓸어야 하지만 손가락이 아린 데다가 아침을 차려야 하기에 나중에 더 쓸기로 하고 들어옵니다. 우리 식구한테는 자동차가 없으니 굳이 길을 신나게 쓸지 않아도 됩니다. 사람이 걸을 자리만 쓸어도 돼요. 우체국 일꾼하고 택배 일꾼이 오간다거나 이오덕학교 자동차가 움직일 때에 미끄럽지 않도록 눈길을 씁니다. 그러나 애써 눈길을 쓸어 놓아도 택배 일꾼은 지난 한 주 동안 아무도 찾아오지 않습니다. 우체국 일꾼은 꼭 한 번 들렀습니다.

 눈을 쓸면서 생각합니다. 우리 딸아이가 두 살쯤 더 먹는다면 아빠 곁에서 겨울날 눈을 함께 쓸지 않겠느냐고. 앞으로 이태는 아빠 혼자서 눈쓸기를 도맡고, 이동안은 아빠 곁에서 눈밭을 마음껏 밟으면서 놀라 하면 좋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 보면, 내 어릴 적 살던 동네에서 큰눈이 내리면 저랑 또래 아이들은 눈밭에서 신나게 놀았고, 어른들은 주섬주섬 모여 눈을 치웠습니다. 우리들한테 눈을 쓸라느니 무어라느니 하지 않았다고 떠오릅니다. 어린이가 밟아도 눈 발자국이 나서 눈을 쓸기에 조금 까다롭지만, 어른이 밟을 때만큼 까다롭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아이들은 눈밭에서 뒹굴며 놀아야 합니다. 손이 시린 줄을 모르도록 놀고, 볼이 발개지도록 놀아야 해요. 눈싸움은 누가 가르쳐야 하는 놀이가 아닙니다. 눈을 어떻게 뭉쳐야 하는가를 애써 어른들이 가르칠 까닭이 없습니다.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놀며 동무한테서 배우고 언니나 오빠나 형한테서 배웁니다. 눈을 굴러 눈사람 빚기 또한 구태여 어른한테서 배우지 않습니다. 스스로 익히거나 형제 자매 남매끼리 눈누리에서 뒹구는 동안 시나브로 익힙니다.

 겨울이기에 겨울나라 눈밭에서 놉니다. 봄이 새롭게 찾아오면 봄누리 꽃밭에서 놉니다. 여름을 다시금 맞이하면 여름철 물가에서 놉니다. 가을을 새삼스레 맞아들이면 가을녘 들판에서 구슬땀을 흘리며 일놀이를 하겠지요.


― “나랑 놀자 ……. 그런데 놀러 나가면 주인 할아버지한테 혼나겠지!” (25쪽)


 온통 눈누리가 된 시골집에서 바깥마실은 꿈을 꾸지 않습니다. 용하게 눈이 살짝 멎은 날 낮에 읍내 장마당 마실을 하면서 먹을거리는 장만해 놓았습니다. 애 아빠가 잘못하는 바람에 그만 집안 물이 얼어붙어 멧중턱 이오덕학교를 오르내리며 물을 길어 써야 하지만, 그런대로 지낼 만합니다. 바보스러운 애 아빠 때문에 집식구가 애먹지만, 그만큼 애 아빠는 물이 얼마나 대수로우면서 고마운가를 다시금 느낍니다. 요사이는 멧골자락에서도 땅을 파서 땅속물을 뽑아올려 쓰거나 수도물을 이어서 쓰는데, 아득히 먼 옛날까지도 아닌 우리네 어머니 아버지랑 할머니 할아버지 적 시골마을과 멧골마을에서는 겨울날 물을 어떻게 썼으려나요. 우물물은 겨울에도 녹지 않았으려나요. 겨울에 우물마저 얼어붙으면 어찌해야 하나요. 눈 덮인 길에 우물물을 길어올 때에 손은 얼마나 시렸을까요. 겨우내 빨래는 어찌 하고 설거지랑 밥하기는 어떻게 했으려나요.

 아이가 스물아홉 달 나이에 집안에 물이 얼어붙어 애먹는 삶을 헤아리는지 모르는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 아예 모르지는 않으리라 생각하는데, 왜냐하면 예전에는 집에서 빨래하고 씻기고 했으나 이제는 집에서 빨래를 못하고 씻기지도 못해요. 멧길을 터벅터벅 걸어 올라가서 빨래하고 씻긴다든지, 어제처럼 읍내 마실을 가서 읍내 목욕탕에서 씻긴다든지 하면 몸으로 알아채겠지요.


― “가질래?” (63쪽)


 눈누리가 된 집이다 보니 집안에서 퍽 오랫동안 지냅니다. 이오덕학교 언니 오빠들은 겨울방학을 맞이했습니다. 눈오는 날 눈쓸기를 하면 아빠 따라 아이도 눈밭에서 뛰어다닙니다. 그렇지만 집에 있을 때라면 아빠가 밥하는 곁에 찰싹 달라붙어 불가에서도 두려움 없이 놉니다. 불가에서 놀다가 아빠나 엄마한테 꾸지람을 듣지만 달리 놀거리가 없습니다. 밥하는 아빠가 아이를 더 살피면서 자그마한 일거리라도 주어야 합니다. 밥을 먹이고 나서는 밥상을 치울 때에 밥상 닦기 같은 일거리를 나누어 주어야 합니다. 노래를 부르며 아이랑 함께 춤을 춘다든지, 종이를 펼쳐 놓고 아이는 그림을 그리도록 하고 아빠는 글을 쓴다든지, 아이한테 그림책을 읽어 주다가 아빠는 아빠대로 아빠 책을 읽고 아이는 아이대로 아이 책을 읽도록 이끌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놀아 주고 저렇게 놀아 주다가도 아이는 혼자서 종알종알 떠들면서 잘 놀기도 합니다. 망가진 사진기를 들고 사진을 찍어 준다 하기도 하고, 요 인형 조 인형을 집어들고 놀기도 하며, 볼펜이나 크레파스를 들고 이곳저곳에 그림을 그리며 놀기도 합니다.


― “또 오려무나.” “그럴게요.” (75쪽)

 

 ‘말’이 거의 안 나오는 그림책 《꼬마 인형》을 펼칩니다. 아이는 아빠나 엄마가 이 그림책을 펼쳐 이야기 살결을 붙여 읽어 주어도 좋아하고, 저 혼자 펼쳐서 읽으면서도 좋아합니다.

 그림이 따사로우면서 보드랍거든요. 그림결이 포근하면서 너그러워요. 하나도 투박하지 않은 굵직한 금으로 이루어진 그림이요, 수수하면서 살가운 손길로 이루어진 그림이야기입니다. 할아버지가 작은 ‘어린이 손인형’을 꼬물거리면 어린이 손인형은 살아숨쉬는 놀이동무가 되고, 할아버지가 작은 ‘늑대 인형’을 쪼물딱거리면 늑대 인형은 무시무시한 이빨로 어린이 손인형을 잡아먹을 듯 무섭습니다. 그림책을 넘기는 아빠랑 아이는 함께 웃고 함께 울며 함께 손을 잡습니다.


― “드디어 꼬마 손님이 하나 왔군.” (9쪽)


 《꼬마 인형》에 나오는 ‘사람 어린이’는 혼자서 ‘할아버지 손인형 연극’을 보러 찾아오고, 할아버지는 딱 한 사람인 관객인 어린이 앞에서 즐겁게 손인형 연극을 선보입니다. 사람 어린이는 할아버지 연극에 빠져들면서 어린이 손인형하고 놀고파 하고, 늑대 손인형한테서 어린이 손인형을 살려내려고 하는데, 그림책 《꼬마 인형》 마지막 쪽을 덮을 무렵, 어린이도 할아버지도 서로 손을 맞잡거나 어깨동무를 하면서 골목길에서 마음껏 뛰놉니다.

 두 사람한테는 손인형 연극도 재미나겠지만, 무엇보다 서로서로 마주 바라보면서 웃고 떠들고 달리며 춤추는 놀이가 가장 재미납니다. 우리 집 딸아이가 온갖 놀잇감을 보여줄 때보다 엄마나 아빠가 함께 손을 맞잡고 놀 때에 가장 즐거워하듯, 《꼬마 인형》 어린이 또한 살가운 눈빛과 따뜻한 손길로 함께 놀 벗이 가장 고마워요.

 집식구들 둘러앉아 아침을 먹고 밥상을 치우니 어느새 열두 시를 넘고 한 시 가깝습니다. 오늘도 하늘에는 흰구름 가득하지만 햇살이 따사롭게 내리쬡니다. 한 시를 넘고 두 시쯤 되면 우리 집 마당에도 햇볕이 넓게 드리우겠지요. 아침나절 쓸어 놓은 길은 눈이 말끔히 녹을 테고요. 이 즈음 해서 아이랑 손 잡고 밖으로 나와 아빠는 눈길을 마저 쓸고, 아이는 눈밭을 더 뛰어놀라 해야겠다 싶습니다.

 겨울이라고 날마다 눈이 오지 않으며, 어쩌면 한 해 두 해 뒤틀리는 날씨 때문에 앞으로는 눈 구경 하기 몹시 힘들는지 몰라요. 큰도시에서는 큰눈 때문에 길이 막힌다고 시끄러운데, 멧골자락에서는 큰눈이든 작은눈이든 눈쓸기를 할 때에는 손가락 아리며 고달프지만, 아이하고 신나게 뒹굴며 놀 수 있어 호젓합니다. 아이랑 아빠 숨소리와 목소리만 멧골에 울려퍼집니다. 때때로 눈산에서 먹이를 찾는 작은 새들 지저귀는 소리를 듣고, 바람이 살랑 불면 바람결에 나뭇가지에서 호도독 떨어지며 날리는 눈소리를 들어요. 집안 물은 얼었으나 골짜기 냇물은 졸졸 흐릅니다. 가느다란 냇물 소리를 듣는 가운데, 아이가 눈 밟으며 내는 뽀도독 소리를 듣습니다. 화학방정식 소금이든 흙이든 연탄재이든 뿌리지 않는 길에서 놀 수 있어 좋은 시골마을 겨울 하루입니다. (4343.12.30.나무.ㅎㄲㅅㄱ)


― 꼬마 인형 (가브리엘 벵상 글·그림,열린책들 펴냄,2003.4.20.(2009.10.30. 다시 나옴)/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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