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종이를 머리에 얹다. (__) 

- 2010.12.26. 

 

그러고 나서 눈길에 발자국 내기를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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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나누는 기쁨 ㉣ 삶, 사람, 사랑, 사진
 ― 사진이 태어나는 밑뿌리



 제주섬에 가면 꼭 가 보아야 할 만한 곳으로 여러 군데를 들곤 합니다. 이 가운데 으레 손꼽는 자리인 하나, 누구보다 사진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으레 거치는 자리는 두모악갤러리입니다.

 두모악갤러리를 찾아가 보면, 제주섬 오름을 담은 김영갑 님 사진이 예쁘게 걸린 채 사람들을 기다립니다. 김영갑 님이 당신 사진을 그러모아 선보인 마지막 터전이 이곳 두모악갤러리입니다.

 지난 2010년 11월 13일, 둘째를 밴 옆지기하고 스물여덟 달째 함께 살아가는 딸아이랑 함께 제주섬 마실을 했습니다. 사람들은 제주섬을 찾아가며 올레길을 걷는다든지 바닷가를 거닌다든지 한라산을 탄다든지 합니다. 자가용을 빌려 이곳저곳 쏘다니기도 하겠지요. 우리한테는 자가용이 없고 자가용을 빌릴 돈이 없으며 자가용을 몰 면허증이 없습니다. 그래도 용케 차를 태워 주는 분이 있어 두모악갤러리를 찾아갔습니다. 마침 김영갑 님 사진책 《마라도》가 새판으로 다시 나왔기에 즐겁게 장만합니다. 충주 멧골집으로 돌아와 비닐을 뜯어 책을 펼치니, 앞머리에 사진심리학자 신수진 님 추천글이 달립니다. 신수진 님은 김영갑 님 사진책을 보며 “김영갑의 신작 아닌 신작, 마라도에선 그들의 삶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이 우리를 압도한다.”고 적습니다.

 사진을 찬찬히 살핍니다. 지난날 눈빛출판사에서 나온 《마라도》에서 본 사진이지만, 새판으로 볼 때에는 느낌이 사뭇 다릅니다. 판짜임과 엮음새가 다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김영갑 님 예전 사진책이든 새 사진책이든 사진은 똑같습니다. 김영갑 님 사진이 베푸는 선물은 매한가지입니다. 제주섬을 사랑하고 사진을 아끼며 삶을 즐기는 가운데 사람을 얼싸안는 따스함은 한결같습니다.

 우리 식구도 제주마실을 하면서 바다를 보기는 했으나, 막상 우리가 거닌 길은 올레길이 아닌 제주섬 골목길이었고, 제주시 이도1동에 자리한 헌책방 〈책밭서점〉에 오래 머물었습니다. 찬바람이 꽤 불어 골목길 마실은 얼마 못했는데, 따순바람이 불 때에 네 식구가 다시금 찾아가 골목길은 골목길대로 거닐며, 올레길이 아닌 여느 시골마을 고샅길을 걷고 싶습니다.

 우리 식구는 어디를 다니든 관광이 아닌 마실이고, 놀러가기가 아닌 나들이입니다. 뜻밖에 우리 식구가 제법 돈을 번다면 일본마실까지 다닐는지 모르는데, 우리 식구들이 일본마실을 한다면 어김없이 일본 헌책방거리와 골목길을 거닐지 않겠느냐 생각합니다. 그러나 도시에서만 다니면 지루한 만큼, 일본 시골자락을 찾아 고샅길을 함께 거닐어야지요. 우리 식구는 따스한 사람과 포근한 삶과 너그러운 사랑과 싱그러운 사진을 좋아하거든요.

 새로운 사진책 《마라도》에 붙은 추천글을 읽을 다른 분들은 무엇을 느낄까 설핏 궁금하지만, 참말로 사람들은 김영갑 님 사진을 들여다볼 때에 “작가의 시선이 우리를 압도한다”고 느낄까 싶어 알쏭달쏭합니다. 왜냐하면, 김영갑 님 사진은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우리한테 어떤 놀라운 모습을 보여주며 내리누르는’ 느낌이 들지 않기 때문입니다. 김영갑 님 스스로 사랑하는 삶터에서 사랑하는 사람들 매무새를 사랑하는 사진으로 담았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내리누르지(압도) 않습니다. 사랑은 내세우지 않습니다. 사랑은 우쭐거리거나 뽐내지 않아요. 사랑은 살가이 껴안습니다. 사랑은 촉촉히 젖어드는 눈물과 해맑게 빛나는 웃음으로 애틋합니다.

 흔히들 김기찬 님이 일군 《골목 안 풍경》이 ‘골목길을 찍은 사진’이라 일컫지만, 김기찬 님이 내놓은 사진책 《골목 안 풍경》은 ‘골목길을 찍은 사진’이라 할 수 없습니다. 김기찬 님은 ‘골목동네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모습’을 ‘풍경으로 담은’ 분입니다. 골목동네에서 살아가는 여느 사람들 수수한 삶을 아낌없이 사랑하면서 꾸밈없이 담은 사진이 차곡차곡 모여 《골목 안 풍경》이 태어났다고 느낍니다.

 골목길 모습 가운데 하나로 ‘골목동네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모습’을 꼽을 수 있습니다. ‘골목동네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모습’은 골목길을 이루는 숱한 모습 가운데 한 가지입니다. 골목사람이 골목길 모든 모습이 될 수 없고, 되지 않으며, 될 까닭이 없어요. 그렇다고 골목집 담벼락이나 우체통이나 문패나 꽃그릇이 골목길 모든 모습이 되지 않아요.

 사진을 읽으려면 옳게 읽어야 하고, 사람을 마주하며 이야기를 나누려면 제대로 이야기를 나누어야 하며, 사진을 사랑하거나 아끼려면 ‘사진’을 참다이 ‘사랑하’고 ‘아껴’야 한다고 느껴요. 배병우 님 사진을 놓고 ‘소나무’를 찍은 사진이라 하지만, 배병우 님 사진 또한 ‘소나무를 찍은 사진’이 아닙니다. ‘소나무숲에 드리운 빛과 그림자를 찍은 사진’이 배병우 님 사진입니다. 우리들은 사진쟁이 한 분이 어떠한 이야기를 어떠한 사진틀에 담아 어떠한 삶자락을 보여주려 하는가를 찬찬히 돌아보면서 알뜰살뜰 가슴으로 받아들여야지 싶습니다. 사진읽기를 알맞게 하면서 삶읽기를 살가이 하고, 사람과 사랑이 어우러지는 터에서 어떠한 문화꽃과 예술나무가 자라는가를 느껴야지 싶습니다. 비평을 하는 사진이나 소장을 하는 사진이나 전시를 하는 사진이나 보도를 하는 사진이 아닐 테니까요. 내 사랑하는 삶을 보여주는 사진이고, 내 사랑하는 사람을 마주하는 사진이며, 내 사랑하는 꿈을 꿈을 빛그림으로 아로새기는 사진일 테니까요.

 살아가기에 사진에 이야기를 담습니다. 살아가기에 사진에 깃든 이야기를 읽습니다. 나 스스로 사람인 까닭에 사람을 찍는다 하지만, 사람 몸이나 얼굴을 찍지 않더라도 사람 내음 물씬 묻어나는 사진을 이룹니다. 지팡이나 도마나 옷깃이나 장갑이나 굳은살이나 밥그릇을 찍는 사진으로도 사람을 얼마든지 이야기합니다. 사랑하기에 사진을 즐길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담기도 하는 사진이지만, 사랑하는 마음을 사진에 담아 둘레 사람들하고 사이좋게 나누기도 합니다.

 삶과 사람과 사랑입니다. 사진이란 다른 무엇보다 이 세 가지를 밑바탕으로 단단하고 참다우며 착하게 다스린 다음에 일구는 문화꽃입니다. 사진이란 바로 이 세 가지를 언제나 곁에 놓으면서 예쁘고 따스하며 넉넉히 아우르는 가운데 이루는 예술나무입니다.

 신문사 기자가 되었기에 보도사진을 찍지 않습니다. 사진학과 교수가 되었다 해서 사진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갤러리를 열었다고 사진문화를 나누지 않습니다. 사진잔치를 마련한 작가라 하더라도 사진예술을 꽃피우지 않습니다. 마음과 꿈과 눈물과 웃음과 땀방울이 알알이 영그는 삶·사람·사랑이 만나야 비로소 사진이 태어납니다. (4344.1.1.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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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합니다’와 ‘하고 있습니다’


 다시금 새해를 맞이합니다. 새롭게 맞이한 해인 만큼 나이는 한 살 더 먹어 서른일곱이 됩니다. 제 나이 서른일곱이란 대단한 숫자가 아니요, 그리 많은 숫자 또한 아닙니다. 서른일곱이라면 서른일곱에 걸맞게 살아가면서 서른일곱에 걸맞게 생각하고 서른일곱에 걸맞게 말을 하거나 글을 써야 올바릅니다.

 새해 첫날, 내 글투는 어떠한가 하고 새삼스레 곱씹어 봅니다. 지난날 내 글투가 어떠했는가 가만히 헤아립니다. 1998년에 한글학회에서 주는 ‘한글공로상’을 참 어린 나이에 받기는 했으나, 이때에는 신나게 팔뚝질을 하듯이 운동을 했을 뿐, 참다이 말사랑이나 글사랑으로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아무래도 사회가 사회이다 보니 팔뚝질 아니고서는 사람들이 귀나 눈을 열지 않기도 했다지만, 차분하게 말사랑 글사랑을 펼치지 못했어요. 이무렵 제가 쓴 글을 돌아보면 ‘것’을 얼마나 자주 썼는지 모릅니다. “그러한 것도 그저 지나간 일이 되고 마는 것인지” 같은 글을 곧잘 썼어요. 이제는 이렇게 글을 쓰지 않고 말도 이렇게 하지 않습니다. 이제는 “이 또한 그저 지나간 일이 되고 마는지”처럼 글을 쓰고 말을 합니다. 아니면 “이마저 한낱 지나간 일로 삼고 마는지”처럼 글을 쓰거나 말을 해요.

 1998년에 쓴 글을 되짚으니 “먼저 풀어야 한다. 더불어,” 같은 글투도 보입니다. 이 대목도 엉터리입니다. ‘더불어’를 글 맨앞에 외따로 쓸 수 없어요. “이와 더불어”처럼 적어야 올바릅니다.

 2007년부터 2009년 첫머리 사이에는 ‘자기(自己)’와 ‘자신(自身)’이라는 낱말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를 놓고 오래도록 머리앓이를 했습니다. 이러한 낱말은 한자말 아닌 우리 말로 삼아서 그대로 써야 하지 않겠느냐 여겼습니다. 그런데 이 낱말을 쓰고 다시 쓰다 보니 어쩐지 저 스스로 초라하지 않느냐 싶더군요. 고작 이런 낱말조차 우리들이 지난날부터 곱게 쓰던 말투를 살피어 새로운 오늘날에 알맞게 담아내지 못한다면 말사랑 글사랑이란 덧없지 않겠느냐 생각했어요. 이러는 동안 ‘자신’이나 ‘자기’라는 낱말이 깃드는 자리를 곰곰이 돌아보았습니다.

 ┌ 자신은 착한 일인 줄 알고 했어도
 │
 │→ 나는 착한 일인 줄 알고 했어도
 │→ 나로서는 착한 일인 줄 알고 했어도
 │→ 당신은 착한 일인 줄 알고 했어도
 │→ 그때에는 착한 일인 줄 알고 했어도
 └ …


 적잖은 사람들은 ‘자신’과 ‘자기’뿐 아니라 다른 낱말을 옳게 다듬거나 풀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말과 말은 1:1로 맞추어 고치거나 다듬을 수 없는데, 이 낱말이 이런 자리에 쓰이든 저런 자리에 쓰이든 1:1로만 생각해 버릇하거든요. ‘자신’ 한 가지를 다듬을 때에도 마찬가지예요. 맨 처음으로는 ‘나’로 다듬습니다. 글흐름을 살피다 보면 ‘나로서는’처럼 ‘-로서’를 사이에 넣어야 한결 부드럽기도 하고, ‘당신’이나 ‘이녁’이나 ‘그 사람’이라고 넣어야 알맞기도 합니다. 때로는 ‘그때에는’이나 ‘그무렵에는’을 넣어 줍니다. 그야말로 때와 곳에 따라 다듬을 말투가 다릅니다.

 ┌ 이름을 소중히 여기고
 │
 │→ 이름을 소담스레 여기고
 │→ 이름을 대수로이 여기고
 │→ 이름을 알뜰히 여기고
 │→ 이름을 아름다이 여기고
 │→ 이름을 고맙게 여기고
 │→ 이름을 보배로이 여기고
 └ …


 ‘소중(所重)’이라는 한자말을 놓고도 퍽 오래도록 골머리를 앓았습니다. 이만 한 한자말 또한 구태여 한자말로 갈라야 한다면 사람들이 ‘우리 말 운동이라더니 아주 막 나가는군’ 하고 여길까 싶었습니다.

 이태쯤 앞서부터 ‘소중’이라는 낱말은 되도록 안 쓰지만, 서너 해쯤 앞서까지는 이 한자말을 그대로 쓰곤 했습니다. 이제는 이 낱말을 아예 안 써요.

 처음에는 ‘소담스럽다’라는 낱말을 써 보았습니다. 국어사전에 실린 ‘소담스럽다’는 두 가지 뜻풀이가 달립니다. 첫째는 “생김새가 탐스러운 데가 있다”이고 둘째는 “음식이 풍족하여 먹음직한 데가 있다”입니다. 왜 이 낱말 ‘소담스럽다’를 ‘소중하다’와 맞추었느냐 하면, 어느 날 ‘탐(貪)스럽다’라는 외마디 한자말 뜻풀이를 헤아리니, “마음이 몹시 끌리도록 보기에 소담스러운 데가 있다”로 나오더군요. 이 말풀이에 나오는 ‘소담스러운’이라는 낱말이 눈에 확 들어왔고, “소담스럽게 쌓인 눈”이라는 보기글을 곰곰이 생각하니까, “소담스럽다 : 마음이 몹시 끌리도록 좋다”라는 느낌으로 쓸 만한 낱말이구나 싶었어요.

 “소중하다 = 매우 귀중하다”입니다. “귀중하다 = 귀하고 중요하다”입니다. “귀하다 = 아주 보배롭고 소중하다”입니다. “중요하다 = 귀중하고 요긴함”입니다.

 여느 사람들은 ‘소중하다’가 무슨 뜻이요 어떤 쓰임인지 제대로 모릅니다. 그냥저냥 쓰는 낱말입니다. ‘보배롭다’가 토박이말인 줄 모르는 사람도 아주 많아요. 아니, 생각조차 않겠지요. 그래, ‘보배로이’는 ‘소중하게’하고 거의 똑같은 낱말이에요. 이 낱말을 쓰면 ‘소중하게’는 퍽 말끔히 털어낼 만합니다.

 다만, 모든 자리에 ‘보배로이’를 쓰기는 어렵습니다. 어느 때에는 ‘보배로이’를 쓰고, 어느 자리에는 ‘소담스레’를 씁니다. 국어사전은 예나 이제나 ‘소담스럽다’ 말풀이를 두 가지로 못박지만, 얼마든지 세 가지 네 가지 말풀이와 쓰임새가 늘어날 만합니다. 우리 스스로 다섯 가지 여섯 가지 말풀이와 쓰임새를 북돋우면 됩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소담스럽다’ 같은 낱말을 더욱 아끼고 사랑해야 한다고 느껴요. 그리고 ‘알뜰히’나 ‘살뜰히’나 ‘알뜰살뜰히’를 쓰면서 ‘소중히’를 털 수 있고, ‘아름다이’나 ‘고이’, 여기에 ‘대수로이’를 쓰면 거의 모든 자리에서 깔끔하게 다듬을 수 있습니다.

 ┌ 펼쳐 보이고 있으니까요 (x)
 └ 펼쳐 보이니까요 (o)

 지난 2010년 여름께부터는 ‘있다’라는 말투를 되짚습니다. “하고 있다” 꼴로 쓰는 ‘있다’를 톺아봅니다.

 “보이고 있으니까요”처럼 적는다 해서 이 말투를 못 알아듣는 사람은 없습니다. 아니, 거의 모두라 할 만한 이 나라 사람들 누구나 이렇게 말을 하거나 글을 씁니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가 이 말투가 영 낯설다고 느낍니다. 무엇보다 학교교육이라든지 책이나 방송하고 동떨어진 채 살아오던 사람들 ‘말을 담은 글’을 읽으면서 이런 말투를 하나도 찾아보지 못했어요.

 ┌ 바깥말 자리에만 머물고 있습니다 (x)
 └ 바깥말 자리에만 머뭅니다 (o)

 제가 쓴 예전 글을 다시금 읽으며 “하고 있다”나 “-고 있다” 꼴 말투를 살펴봅니다. 모르는 노릇이지만, 우리 말법을 영어 말법에 끼워맞추면서 이런 말투가 자꾸 퍼지지 않느냐 싶습니다. 사람들이 영어를 널리 배우거나 가르치면서 이런 말투를 스스럼없이 쓰는구나 싶습니다.

 우리 말글을 조금 배운 사람은 알 텐데, 우리 말에는 ‘지난날 때매김’이 없습니다. ‘현재진행형’ 또한 없습니다. 영어이든 다른 서양말이든 때매김이 똑부러지게 나뉘고, 현재진행형 말투가 참 잦아요. 서양책을 한국말로 옮기며 현재진행형 말투인 “하고 있다”와 “-고 있다”가 저절로 튀어나옵니다.

 ┌ 토박이말로 짓고 있다면 (x)
 └ 토박이말로 짓는다면 (o)


 어찌 보면, 이제는 우리 말글에도 ‘지난날 때매김’을 넣거나 ‘현재진행형’을 달아도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굳이 예스러운 말투로 말해야 할 까닭이 없다 여길 수 있어요.

 다른 한편으로 보면, 우리는 우리 이웃하고 우리 말글을 나누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우리들 넋과 얼을 보듬으면서 말을 하거나 글을 쓰면 넉넉합니다. 괜시리 서양 말법처럼 우리 말법을 다루어야 하지 않아요. 한국사람은 한국땅에서 한글로 글을 쓰면 되고, 일본사람은 일본땅에서 가나로 글을 적으면 돼요. 서양사람은 로마자라 하는 알파벳을 쓰면 되겠지요.

 셈틀을 쓰며 인터넷으로 국어사전을 살필 때에는 국립국어원에 들어갑니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창을 보면 “표준국어대사전에 대한 다양한 여러분의 의견을 기다립니다. 답변은 드리지 않습니다.” 하고 적혔습니다(지난해 첫머리까지만 해도 저는 이 대목에서 “적혀 있습니다”라 글을 썼으나, 이제는 “적혔습니다”라 글을 씁니다). 말글을 다루는 공공기관이자 정부부터 글을 이렇게 써요. “표준국어대사전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란 무엇이려나요. 무슨 이야기를 들려주려는 말투이고, 이런 글은 어느 나라 글이라 할 만한가요. “표준국어대사전이 어떠한지 여러분 생각을 들려주셔요. 따로 답변하지는 않습니다.”처럼 적어야 할 글이 아닌지요. 그나저나 답변도 안 해 주면서 표준국어대사전이 어떠한가 하고 알려 달라고 적은 모양새가 쓸쓸해 보입니다. 이러쿵저러쿵 말이 있으면 대꾸를 해야 할 텐데, 귀는 있되 입이 없으면 어떡하나요. (4344.1.1.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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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해 첫날 첫글 (아톰 사랑)


 새해 첫날을 맞이한 아침나절, 어떠한 글을 쓰며 새 하루와 새 해를 열면 좋을까 하고 한참 생각합니다. 책 이야기를 쓰나 헌책방 이야기를 쓰나 멧골자락 아이키우기 이야기를 쓰나 하다가, 아무래도 내가 걸어가는 길은 다른 무엇보다 우리 말글을 다루는 사람으로 부대끼는 삶이니까, 우리 말글 이야기를 쓰자고 생각합니다.

 말부터 옳고 바르게 할 줄 알아야 생각을 옳고 바르게 합니다. 생각을 옳고 바르게 할 때에 삶을 옳고 바르게 꾸리는 길을 찾고, 삶을 옳고 바르게 꾸리는 길을 찾아야 비로소 책다운 책을 옳고 바르게 살핍니다. 책다운 책을 옳고 바르게 살피는 사람은 책 하나 장만하고자 새책방과 헌책방을 알뜰히 사랑하거나 아끼는 매무새를 가다듬습니다.

 맨 처음은 마땅히 말이요 글입니다. 가장 작은 말마디 하나를 보살피고, 가장 여린 글줄 하나를 보듬습니다. 가장 힘여린 살붙이를 돌보는 나날을 사랑하고, 더없이 어리며 예쁜 딸아이와 함께 지내는 오늘을 좋아해야겠다고 느낍니다. 엊저녁 《우주소년 아톰》 만화책 6권째를 읽습니다. 만화영화로 그린 아톰은 만화책으로 처음 나온 아톰 이야기를 알뜰히 살렸습니다. 2003년에, 그러니까 데즈카 오사무 님이 돌아가신 뒤 다른 이들이 새롭게 그린 아톰 만화영화는 《우주소년 아톰》 만화책을 알뜰히 살리지 않았습니다. 그저 ‘아톰 캐릭터’ 예쁘게 꾸미고 ‘쓰리디 멋스러이 다듬는’ 데에 눈길을 맞추었습니다. 아톰은 예쁘장한 로봇이 아니라 사람보다 더 사람다운 마음을 사랑하는 착한 어린이인데, 이 대목을 살리거나 살피지 못한다면, 제아무리 뛰어난 솜씨와 빼어난 손길로 아톰 만화영화를 다시 그린달지라도 재미있을 수 없고 값있을 수 없으며 보람찰 수 없어요. 만화책 아톰을 보면, 사람들은 거의 웃지도 울지도 않으며 살아가는데, 아톰만큼은 늘 웃고 웁니다. 아톰만큼은 착하게 웃고 해맑게 웁니다.

 올 새해에 헤아릴 내 말글이든 올 새해에 장만할 내 책이든 올 새해에 찾아들 헌책방이나 골목길이든, 저로서는 데즈카 오사무 님이 1951년에 처음 《아톰대사》를 그리며 담은 넋을 사랑하거나 아끼는 매무새를 곱게 잇고픕니다. (4344.1.1.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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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1-01-02 00:25   좋아요 0 | URL
항상 좋은 글을 올려주시네요.된장님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

파란놀 2011-01-02 08:05   좋아요 0 | URL
좋게 읽어 주시는 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좋은 글을 쓴다기보다..

고마워요.
새해 복 많이 받으소서~
 
올드보이 한대수
한대수 지음 / 생각의나무 / 2005년 11월
평점 :
품절




 즐기는 삶으로 즐기는 사진찍기
 [내 삶으로 삭인 사진책 32] 한대수, 《올드보이 한대수》



- 책이름 : 올드보이 한대수
- 글·사진 : 한대수
- 펴낸곳 : 생각의나무 (2005.11.18.)
- 책값 : 13000원



 (1) 즐거운 삶과 즐거운 사진


 어떠한 일이건 즐기지 않는다면 힘듭니다. 어떠한 일이든 즐길 때에는 홀가분합니다. 어떠한 사진이건 즐기지 않는다면 그저 그렇습니다. 어떠한 사진이든 즐길 때에는 아름답습니다.

 어떠한 일이건 뜻있기에 할 수 있지 않습니다. 뜻있는 일이라서 힘겨운 데에도 참으며 할 만하지 않습니다. 어떠한 일이건 이야기가 있는 삶이기에 할 만합니다. 이야기가 있는 삶인 일인 까닭에 힘겹다고 느끼지 않으면서 즐겁게 나눕니다.

 사진을 하나 찍는 자리에서도 즐거움과 이야기를 헤아립니다. 먼저 즐거웁자고 찍는 사진이지, 뭔가 그럴듯한 그림을 보여주거나 자랑하려고 찍는 사진이 아닙니다. 이름을 얻는다거나 돈을 번다거나 힘을 거머쥐려고 사진찍기를 할 수 없어요. 사진을 말하는 ‘사진비평’도 마찬가지입니다. 권위자가 된다거나 대학교수가 되려고 사진비평을 할 수 없습니다. 즐겁게 사진을 찍고, 즐겁게 사진을 말할 뿐입니다.

 사진찍기란 이야기를 찍는 일입니다. 사진찍기란 거룩한 뜻이나 대단한 뜻이나 놀라운 뜻이나 훌륭한 뜻을 사진 하나로 보여주는 일이 아닙니다. 사진찍기란 내 삶을 이야기로 여미어 사진이라는 틀로 담는 일입니다. 사진찍기란 내 삶과 네 삶을 우리 삶으로 아로새기면서 다 함께 어깨동무하자는 테두리에서 얼싸안는 놀이입니다.

 누군가는 ‘사진 한 장으로 온누리를 바꾼다’거나 ‘사진 한 장으로 뒤틀린 누리 속내를 보여준다’거나 ‘사진 한 장으로 참목소리를 들려준다’는 목적의식이나 소명의식을 내세웁니다. 어려운 말로 목적의식이나 소명의식인데, 쉽게 말하자면 한 마디로 ‘뜻’입니다.

 어쩌면 바꿀 수 있는지 모릅니다. 어쩌면 까밝히거나 드러낼는지 모릅니다. 어쩌면 알리거나 보여줄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어떠한 삶을 어떠한 삶으로 바꾸려나요. 잘잘못을 밝힐 때에 무엇이 ‘잘’이고 무엇이 ‘잘못’이며, 이를 알아보거나 가누는 잣대란 무엇인가요. 가난한 사람들을 드러내거나 아리따운 몸매를 보여주는 일은 누구한테 반가운가요. 사건과 사고를 굳이 사진으로까지 담아서 알리지 않는다면 사건과 사고란 일어나지 않은 일이 되나요.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눈길이 없다면 아름다운 모습을 사진으로 옮기지 못합니다. 그런데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눈길을 얻자면, 나 스스로 아름다운 삶을 일구어야 합니다. 아름답게 살아가지 않고서는 아름다움을 알아보지 않습니다. 아름다운 사람이 아니고서는 아름다운 벗이나 이웃이나 살붙이를 알아채거나 느끼지 못합니다.

 ‘미학’이라는 지식으로 아름다움을 안다고 할 수 없습니다. 미학이라는 지식은 그예 지식입니다. 사진은 지식이 아니요, 사진찍기는 지식찍기가 아닙니다. 주어진 틀대로 옮기는 일이 사진이 아닙니다. 사진은 아름다움을 꽃피우는 삶입니다. 꼭 사진기를 들었을 때에만 아름다움을 볼 줄 아는 삶이 아니라, 사진기가 없을 때에도 언제나 아름다움으로 꾸리는 삶이어야 합니다. 글을 쓰든 그림을 그리든 만화를 그리든 노래를 부르든 춤을 추든 밥을 하든 설거지를 하든 빨래를 하든 아이를 돌보든 길을 걷든 자전거를 타든 할머니 팔을 붙잡고 짐을 들어 드리든 사진기를 쥐든 노상 아름다운 내 삶일 때에 비로소 내 두 눈으로 바라보는 곳에서 아름다움이 무엇인가를 느끼면서 사진기 단추를 찰칵 하고 누릅니다.

 맛나 보이는 밥도 있겠지만, 맛나 보이는 밥이 맛이 있지는 않습니다. 맛있는 밥이 맛있는 밥입니다. 잘 찍은 사진은 잘 찍은 사진일 테지요. 기계질을 잘하거나 셈틀을 잘 만진다면 잘 찍었다 싶은 사진을 잘 만들겠지요.

 그러나 내 삶을 따로 기계로 꾸미거나 겉모습을 덧바르거나 어찌저찌 만들 수 없습니다. 하루하루 주어진 나날을 살아갑니다. 아침에 해가 뜨고 낮에 따사로우며 저녁에 해가 집니다. 새벽에 잠을 깨고 바지런히 일을 하거나 놀이를 한 다음 고단하게 잠자리에 듭니다. 아이하고도 복닥이고 짝꿍이나 이웃이나 동무하고도 부대낍니다. 한 번 선물받은 삶을 스무 해 만에 접기도 하지만 백 해까지 잇기도 하고, 그럭저럭 쉰이나 예순이나 일흔 즈음에 마무리짓기도 해요. 그예 흐르는 삶이고, 이처럼 흐르는 삶결에 맞추어 차분히 담아내는 사진입니다.

 사진은 배우지 못합니다. 사진은 가르치지 못합니다. 살아내는 하루하루대로 살아내는 무늬를 이루면서 사진을 이룹니다. 사진은 살아내는 내 나날입니다. 사진학교를 다니거나 사진강의를 듣는다고 사진에 눈을 뜰 수 없습니다. 좋은 사진책을 수천 수만 권 간직한다든지 읽었다 해서 사진읽기를 잘하지 않아요. 좋은 삶을 좋은 넋으로 일구면서 좋은 말로 사랑을 나누면서 살아가는 사람일 때에 비로소 사진읽기를 즐깁니다. ‘잘하기’ 아닌 ‘즐기기’입니다.

 우리는 ‘사진찍기’나 ‘사진읽기’나 ‘사진하기’ 모두 배우지 못하고 가르치지 못합니다. ‘사진하는 마음’이나 ‘사진 찍히는 삶’이나 ‘사진 이루는 손길’을 배우거나 가르치지 못합니다. 우리는 오로지 ‘사진기 다루는 솜씨’를 배웁니다. ‘사진이 걸어온 발자취’를 배웁니다. ‘사진쟁이 이름’과 ‘사진책 목록’을 배웁니다. 사진을 갈래에 따라 나누어 놓은 학문을 배웁니다. 사진을 갈래에 따라 나눈 다음 이런 사진은 어떻고 저런 사진은 저떻다 하는 이론은 배웁니다.

 사진을 좋아하고 싶으면 내 삶을 좋아하면 됩니다. 사진을 사랑하고 싶다면 내 삶을 사랑하면 넉넉합니다. 사진을 아끼고픈 꿈이라면 내 삶을 아끼는 꿈날개를 펼칠 노릇입니다.

 사진하는 마음이란 살아가는 마음입니다. 내가 사진을 한다면 내 사진하는 모습은 내가 살아가는 모습입니다.

 사진찍는 매무새란 살아가는 매무새입니다. 내가 사진을 찍는 매무새란 고스란히 내가 살아가는 매무새입니다.

 사진읽는 눈썰미란 살아가는 눈썰미입니다. 내가 사진을 읽는 눈썰미 그대로 온누리와 사람과 삶을 바라봅니다.

 우리들은 삶을 즐겨야 합니다. 사진이 아닌 삶을 즐겨야 합니다. 작은 들꽃을 즐기고 눈 덮인 겨울산을 즐겨야 합니다. 자전거를 즐기고 제주섬을 즐겨야 합니다. 용눈이오름이든 한라산이든 즐겨야 합니다. 골목길이든 고샅길이든 즐겨야 합니다. 예쁘장한 연예인이나 영화배우나 노래꾼이나 다 좋으니 좋은 동무나 이웃으로 삼아 하루하루 즐겨야 합니다. 우리 집 딸아이를 즐기고 사랑스러운 짝꿍을 즐기며, 학교를 즐기고 회사를 즐기며 나라를 즐겨야 합니다. 바다를 즐기고 딱정벌레를 즐기며 저어새를 즐겨야 합니다.

 즐길거리는 가득합니다. 우표를 즐기든 책을 즐기든 고무줄을 즐기든 좋습니다. 내가 즐기는 삶을 아끼며 사랑하면 됩니다. 내가 즐기는 모두를 좋아하며 보듬으면 됩니다.

 사진이란, 내가 즐기는 삶을 가만히 적바림하거나 나누는 어깨동무입니다. 사진이란, 내 일기장입니다. 사진이란, 내 사랑입니다.


 (2) 살아가는 대로 사진을 찍은 한대수 님


 사진찍기를 새로 배우려는 사람이라든지 글쓰기를 남달리 익히고파 하는 사람이든지 꽤 많습니다. 사진찍기를 배우려는 사람을 볼 때면 참 딱하구나 싶고, 글쓰기를 익히려는 사람을 볼 때에도 몹시 슬프다고 느낍니다. 사진찍기랑 글쓰기는 배울 수 없는 일인데 배우려 하니 딱하거나 슬프기도 하지만, 사진찍기하고 글쓰기를 가르치려는 사람들 또한 딱하거나 슬픕니다. 가르칠 수 없는데 가르치려 하니까 딱하면서 슬픕니다.

 사진찍기를 정 가르치려 한다면 사진기를 목에 걸거나 가방에 쑤셔넣은 다음 너른 방 한켠에서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면 됩니다. 또는 쭐레쭐레 골목마실을 하거나 산을 타거나 들놀이를 다녀오면 됩니다. 이러다 보면 ‘가르치는 쪽이든 배우는 쪽’이든 스스럼없이 저절로 사진을 찍으며 스스로 알아차리거나 깨닫습니다. 글을 쓰는 사람이든 글을 가르치는 사람이든 똑같이 알아내거나 헤아립니다.

 수다 한 자락이 사진입니다. 마실 한 번이 글입니다.


.. 작곡을 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이 음이다. 사람들이 내 노래를 듣고, 가사가 훌륭하다고 하지만 사실 좋은 음이 없으면 아무리 훌륭한 가사도 무의미해진다. 가사 없는 훌륭한 음악들이 많지 않은가? 클래식 심포니 대부분, 그리고 재즈와 뉴에이즈의 음악이 좋은 예다. 음이 인간의 몸매라면 가사는 옷이다. 일단 몸매가 완벽해야 무슨 옷을 입혀도 매력적이다 … 한국 사진작가들이 몽골의 저임금을 활용해 포르노 사진을 찍다 발각되어 논란을 불러일으킨 적도 있었다고 한다. 한 작가는 현재 3개월째 감금돼 있는 상태다. 나도 한국인인지라 그런 의심을 받을 뻔했다 ..  (26, 244∼245쪽)


 한대수 님은 즐겁게 노래를 불렀습니다. 먼저 즐겁게 노래를 짓고, 즐겁게 노래를 들었습니다. 즐겁게 노래를 부르던 한대수 님이지만, 한대수 님이 살던 이 나라 권력자나 공무원은 하나도 안 즐겁게 일했습니다. 아니, 이들 권력자와 공무원은 조금도 즐거웁지 않게 ‘돈·이름·힘’ 세 굴레에 얽매이거나 허덕였습니다. 즐겁게 노래부르는 한대수 님이 즐겁게 살거나 즐겁게 노래부르도록 놓아 두지 않았습니다.


.. 35년 동안의 뉴욕 생활을 생각한다면 영어 노래와 분위기의 변화는 이상한 일이 아니다. 요즘 한국에 오래 머물면서 한글 작사가 자연스레 되는데, 그것과 마찬가지다 … 가이드가 한국어로 모두 통역을 해 주면 그들은 지역 주민과 섞일 일이 전혀 없다. 그들은 커피조차도 스스로 주문해 보지 못한 채 그저 한국으로 돌아와 “노르웨이에 다녀왔노라!” 혹은 “파리에 다녀왔노라!”라고 자랑할 것이다. 물론 그들은 뭔가를 보기는 했겠지만 ‘결코 진지한 대화를 나눌 만큼의 경험은 하지 못했을 것’이다 ..  (32, 298∼299쪽)


 한대수 님은 미국으로 건너가서 사진을 찍을 때에, 사진찍기로 돈을 벌었으나 언제나 즐겁게 사진기를 쥐어들었습니다. 더 큰 돈을 벌거나 더 높은 이름을 얻을 생각으로 사진을 찍지 않았어요. 사진도 찍으며 돈도 벌었으나, 돈벌이 사진이 아니라, 삶을 즐기는 사진이었습니다.


.. 내 가족들 중 누구도 내가 무지션, 특히나 록뮤지션이 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클래식 음악이라면 뭐 좋다고 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들이 옳았습니다. 왜냐하면 음악은 모든 이를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지선 씨가 음악을 사랑한다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가장 먼저 훌륭한 재능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인생에서 누릴 수 있는 많은 편안함을 희생하고 포기할 각오를 해야죠. 마지막으로 당연히 음악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  (44쪽)


 이야기책 《올드보이 한대수》(생각의나무,2005)를 읽습니다. 이 책은 이야기책이지 사진책이 아닙니다. 사이사이 사진을 제법 곁들였지만 사진책 아닌 이야기책에 넣을 만합니다.

 그러나 저는 《올드보이 한대수》를 이야기책이라기보다 사진책으로 읽습니다. 왜냐하면 이 책에는 ‘한대수 삶’이 고이 담겼거든요. 삶은 곧 사진이요, 사진이 다시금 삶인 까닭에, 《올드보이 한대수》를 읽으면서 사진쟁이 한대수를 만나고, 사진쟁이 한대수를 만나면서 한대수 님이 어떠한 삶으로 사진을 껴안았는가를 살핍니다.

 사진을 곁들인 책이기에 한대수 님 사진밭을 톺아볼 수 있습니다만, 사진이 따로 없더라도 한대수 님이 어떠한 사진을 즐기면서 어떠한 넋으로 어떠한 삶을 일구었는가를 넉넉히 헤아릴 수 있습니다.


.. 틀에 박힌 생활이 강요되는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가끔 해방의 느낌을 주는 탈출구가 필요하다 … 옷을 기워 10년씩 입든가 자동차를 고쳐 20년씩 사용한다면 자본주의 체제에 큰 타격을 안겨 줄 것이다. 끊임없이 새로운 모델과 새로운 유행상품이 쏟아져나오고, 그것들을 더욱 ‘쉽게’ 소비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신용카드의 역할이 절대적인 것이다 … 그때나 지금이나 몽골의 매력은 다른 어떤 나라와도 비교할 수 없는 ‘대자연’이다. 끝없는 초원의 대지, 그리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푸른 하늘,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을 추상이 아닌 실제로 체험할 수 있는 나라다 … 노르웨이의 진짜 보물은 바로 아름다운 대자연이다. 이곳의 풍경을 진지하게 감상하려면 적어도 몇 달은 잡아야 할 터!..  (146, 164∼165, 233, 289쪽)


 이른 새벽에 쌀을 씻어 불리고, 아침에 밥을 안치며, 이윽고 조기국을 끓이면서 된장국을 나란히 끓이는 가운데, 밥을 안치기 앞서 깎아 놓은 밤 열두 알을 여린 불로 삶습니다. 옆지기랑 아이는 새근새근 잠든 채 일어나지 않았고, 아빠가 조기국을 얼추 다 끓일 무렵 아이부터 일어납니다.

 바지런히 밥상을 닦고 수저를 놓습니다. 밥냄비를 옮기고 국냄비를 옮깁니다. 밥그릇마다 밥을 퍼 담고, 조기를 국에서 건집니다. 물고기 살을 발라서 아이 밥그릇에 담습니다. 밥 한 술에 고기 몇 점을 먹이고, 된장국으로 끓인 두부랑 버섯과 양파를 먹입니다.

 아침저녁으로 밥을 차리고 먹이며 치우는 데에 몇 시간이 걸리는 지 잘 모릅니다. 시간을 헤아릴 겨를이 없습니다. 식구들 밥 먹는 모습을 가끔 사진으로 담지만, 아이한테 밥을 먹이면서 사진을 찍기란 몹시 어렵습니다. 애 엄마가 밥을 먹이면 아빠가 사진을 찍을 테고, 애 아빠가 밥을 먹일 때에 애 엄마가 몸이 느긋하다면 사진을 찍어 주겠지요. 그러나 사진으로 담든 못 담든 날마다 두 차례씩 벌이는 즐거운 밥잔치입니다. 밥잔치를 한 번 치르고 나면 온몸에서 기운이 쏙 빠져나가는 듯해서 졸음이 쏟아집니다. 한 번 눈을 붙이지 않고서야 새힘을 내지 못합니다.

 설거지할 그릇을 한쪽에 수북히 쌓아 놓고는 《올드보이 한대수》를 새삼스레 다시 펼치고는 덮습니다. 쉰아홉에 아이를 낳은 한대수 님 가시버시인데, 한대수 님네 아이는 우리 아이하고 동갑이거나 한 살이 많거나 하지 싶습니다. 한대수 님도 당신 아이 무럭무럭 자라나는 모습을 사진으로 담을까요? 아마, 담겠지요? 어떤 모습으로 한대수 님 아이 삶을 사진으로 담으려나요? 《올드보이 한대수》는 아직 아이가 없던 때 이야기를 담은 책인데, 아이를 함께 키우는 삶을 하루하루 사랑하는 오늘 이야기를 새롭게 책으로 여민다면 어떠한 글과 사진으로 우리한테 즐거운 꿈을 들려줄 수 있을까요.


.. 나는 스카피타에게 컴퓨터를 이용해 디지털로 작업하면 그런 작업은 2시간이면 완성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렇게 응수했다. “그러나 내 방식대로 하면 내가 찍은 사진들이나 촬영 장소, 혹은 당시 주변에서 들렸던 소리, 또는 촬영하면서 겪었던 어려움 등 모든 경험들에 대한 이야깃거리가 생긴다 …….” ..  (191쪽)


 즐기는 삶만큼 좋은 삶은 없다고 느낍니다. 즐기는 사진만큼 좋은 사진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즐기는 운동이 가장 좋은 운동이요, 살을 빼거나 힘살을 붙이는 운동은 덧없구나 싶어요.

 한대수 님 노래를 듣고, 한대수 님 글을 읽으며, 한대수 님 사진을 보는 분들 누구나 즐거운 넋과 즐거운 꿈과 즐거운 삶을 따사롭고 넉넉히 부둥켜안는다면 참으로 기쁘겠지, 하고 조용히 생각해 봅니다. (4343.12.31.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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