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숲이 아니어도


 깊은 숲이 아니어도 나무 백 그루쯤 우거지면 새들이 아늑하게 둥지를 틀 수 있고, 푸른바람이 산들산들 시원합니다. 나무는 어느 나무라 하든 좋습니다. 굴참나무이든 떡갈나무이든 멧벚나무이든 물푸레나무이든 살구나무이든 오얏나무이든 뽕나무이든 다 좋습니다. 온갖 나무가 백 그루쯤 뒤섞여 우거져도 좋습니다.

 사람이 빚은 책이 될 때에는, 좋은 책이 아니어도 백 권쯤 모이면 사람들이 즐겁게 펼칠 수 있거나 고맙게 쥘 수 있거나 아름다이 누릴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사람이 빚은 책은 이 책이든 저 책이든 가리지 않으면서 백 권쯤 갖춘다면, 또 천 권이나 만 권쯤 갖춘다면, 십만 권이나 백만 권쯤 갖춘다면 어떠할는지 궁금합니다.

 이 책 저 책이 있는 까닭은 이 책을 보고픈 사람과 저 책을 읽고픈 사람이 있기 때문일 테지요. 다 다른 사람들이 얼크러진 삶터이니 다 다른 사람들한테 도움이 될 온갖 책이 있을 만합니다. 그렇지만, 참으로 다 다른 사람들한테 다 달리 아름다울 책이 이렇거나 저렇게 있는 셈인지, 제법 팔리며 돈이 될 만한 책이 이렇거나 저렇게 있는 셈인지 아리송합니다.

 좋다고 할 만한 책이라면, 참으로 좋다고 할 만해서 아이들한테 물려줄 만한 책이라면, 천 권 만 권 십만 권 백만 권이 될 수도 있을 테지만, 꼭 백 권쯤만 알뜰히 추려, 책꽂이 하나 좋은 나무를 골라서 짠 다음, 얌전히 꽂고는 어른과 아이가 함께 즐길 때가 더없이 어여쁘리라 생각합니다. (4344.6.14.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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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계와 책읽기


 기계를 안 쓰면 넓은 논밭을 언제 갈아엎으며 논을 언제 삶고 밭에 언제 이랑고랑 내느냐 할 오늘날입니다. 그런데, 흙을 일구는 사람은 목숨을 다스리는 사람입니다. 목숨을 다루는 사람이기에 품과 겨를을 들여서 일을 합니다.

 나는 내 두 아이뿐 아니라 이웃이나 동무가 낳아서 키우는 아이를 어떤 ‘주어진 시간표 틀’에 맞추어 지식을 쏙쏙 집어넣는 일을 할 수 없습니다. 나 스스로 내가 좋아하는 책을 읽든, 내 아이한테 책을 읽히든, 둘레 아이가 책을 읽도록 거들든, 지식이 아닌 삶으로 책을 받아들이도록 할 뿐입니다.

 기계를 쓰면 틀림없이 온갖 일을 훨씬 빨리 마무리짓습니다. 기계를 쓰면 팔과 손과 허리와 다리가 하나도 안 아프면서 빨래를 다 해냅니다. 기계를 쓰면 꽤 멀리까지 수월하게 오갈 수 있습니다. 기계를 쓰면 짐을 싣든 사람을 태우든 걱정할 일이 적다고 합니다.

 그러나 나는 기계처럼 살고 싶지 않을 뿐더러, 내 몸뚱이를 쓸 수 있는 삶일 때에는 내 몸뚱이를 쓰고 싶습니다. 내 팔다리가 힘들 때에는 택시를 부르거나 버스를 타면 됩니다. 내 팔다리를 쓸 만하다면 두 다리로 걷거나 자전거를 몰면 됩니다. 내 손으로 빨래를 하면서 내 식구들 옷가지를 만지작거리고 두 아이 똥오줌 냄새를 손에 잔뜩 풍기면서 살아갑니다.

 나는 내 아이가 똑똑한 사람이거나 잘난 사람이거나 대단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나는 나부터 똑똑한 사람이거나 잘난 사람이거나 대단한 사람이 되기를 꿈꾸지 않습니다. 해야 할 일을 하는 착한 사람으로 살고, 할 수 있는 즐거움을 나누는 고운 사람으로 지내며, 하고픈 일을 사랑하는 참다운 사람으로 삶을 일구기를 비손합니다.

 책은 첫 줄부터 끝 줄까지 기계처럼 읽을 수 없습니다. 책읽기를 할 때에는 한 줄만 즈믄 번 읽을 수 있습니다. 한 줄이 좋아 두고두고 되읽을 수 있고, 때로는 휙 건너뛸 수 있습니다. 같은 책을 자꾸자꾸 읽을 수 있으며, 새로운 책만 찾아나설 수 있겠지요. 틀에 박을 수 없는 책이요 책읽기이듯, 틀에 박을 수 없는 삶이며 사랑입니다.

 기계를 써야 하느냐 안 써야 하느냐가 아닙니다. 어떤 기계를 왜 언제 어디에서 얼마나 누구하고 쓰느냐 하는 이야기입니다. 이제 막 세이레를 갓 지난 어린 아기가 새근새근 자는 살림집 곁으로 부릉부릉 큰소리를 내는 오토바이를 몰며 시골일을 한다면, 이와 같은 기계는 사람 삶에 무엇을 이바지하는 셈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아이는 바람이 거세게 분대서 잠을 깨지 않습니다. 아이는 바람에 나부끼는 나뭇잎 소리에 잠을 깨지 않습니다. 아이는 개구리 우는 소리에 잠을 깨지 않고, 뻐꾸기 높은 목청에 잠을 깨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아이는 기계 소리에는 어김없이 잠을 깹니다. 자동차나 오토바이 소리에는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아이는 텔레비전 소리에도 잠들지 못하는데, 호미나 괭이로 흙을 쪼는 소리에는 근심없이 잘 잡니다. (4344.6.13.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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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사라는 사람


 아이들보고 무엇을 먹겠느냐고 물어서 밥을 차리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저희 어버이를 믿고 밥을 먹습니다. 독이 든 밥이든 썩은 밥이든 어버이를 믿고 맛나게 먹습니다.

 아이들한테 무엇을 배우겠느냐고 물으며 수업을 꾸리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저희를 가르치는 사람을 믿고 찬찬히 받아들이며 삭이도록 해야 합니다. 아이들은 저희 어버이를 믿으면서 저희 보금자리에서 밥을 먹으면서 살아가듯이, 아이들은 저희 교사를 믿으면서 저희 배움터에서 마음을 먹으면서 배웁니다.

 교사라는 사람은 아이한테 독이 든 밥이나 썩은 밥을 먹이지 않도록 몹시 애쓰고 늘 새로 배우는 사람입니다. 교사라는 사람은 스스로 가르치고 배우는 사람입니다. 교사라는 사람은 스스로 아름다운 살림을 제 손으로 일구면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4344.6.13.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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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톱갈이


 손톱을 못 깎은 지 꽤 되었지만 늘 잊는다. 아이 손톱을 깎다가 문득 생각나서 내 손톱을 들여다보지만, 다른 일이 있고 아이하고 또 다른 여러 가지로 복닥이다가 내 손톱을 깎는 일은 으레 지나친다.

 둘째 아이가 태어나고 나서 손톱을 깎은 일이 없다. 둘째 아이가 태어난 지 석 주가 지났다. 이동안 첫째 아이 손톱은 깎였나 하고 생각하다가 내 손톱을 바라본다. 내 손톱은 네 손가락이 모두 갈렸다. 오른손 넷째 손가락은 손톱이 안쪽으로 파였다. 첫째 아이를 낳아 똥오줌기저귀를 빨 때에도 손톱갈이는 늘 있었지만 이만큼 손톱갈이를 하지는 않았다. 두 아이 기저귀 빨래가 되기도 하지만, 집식구가 한 사람 늘었기 때문에 그만큼 내 몸을 더 써야 한다는 뜻이리라.

 옆지기 몸이 튼튼해서 아이를 셋이고 넷이고 낳는다면? 옆지기 몸이 튼튼하다면 옆지기가 빨래를 나누어 할 테지. 이때에는 내 손톱도 덜 갈 테고. 옆지기 몸이 튼튼해서 아이를 더 낳는다 하더라도 내 손톱은 더 갈리지 않을 테며, 옆지기 몸이 여리기 때문에 두 아이를 겨우 낳아 함께 살아가기에 내 손톱은 꼭 이만큼 갈리겠구나 싶다.

 얼른 첫째 손톱을 깎고, 아침밥을 안치며, 다른 반찬을 마련해야겠다. 세이레를 지내는 동안 날마다 책 한 쪽 들추기란 꿈조차 꾸기 어렵다. 그러나 임길택 님 동시를 틈틈이 들추면서 조금씩 기운을 차린다. (4344.6.13.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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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lmo 2011-06-13 11:03   좋아요 0 | URL
아웅~ㅠ.ㅠ
님 건강도 돌보셔야죠.
님이 건강하셔야 가족들도 다 건강할 수 있는거예요.

손톱 빨리 깎으시고, 멸치도 열심히 드셔보세요~^^

파란놀 2011-06-13 15:45   좋아요 0 | URL
예전에 어머니들이 어떠했을까 하는 삶을
몸으로 잘 배워요.

에고, 아침에 아이 손톱을 깎고 나서
제 손발톱도 드디어 깎았어요! ^^

카스피 2011-06-13 15:13   좋아요 0 | URL
흠,된장님도 결혼하시고 아이 둘이 생기시니 손톱깍을 시간도 없으신가봐요.오래전에 긴 머리를 묶으시고 등가방을 메고 캐논 디카를 메고 숨책에서 사진 찍으시던 모습이 기억에 남네요.아이들이 생기시니 예전처럼 마음대로 책 마실을 못 다닐실것 같네요^^

파란놀 2011-06-13 15:44   좋아요 0 | URL
둘째가 조금 더 크면 이제 즐거이 마실을 다녀야지요~ ^^
아이를 시설에 넣지 않고 집에서 돌보면
그야말로 아무것도 할 겨를이 없답니다..
 
KLIMT - 구스타프 클림트 위대한 미술가의 얼굴 8
게르베르트 프로들 지음, 이은진 옮김 / 열화당 / 199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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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라밖 빼어난 그림을 ‘한국말로 읽’다가
 [책읽기 삶읽기 62] 게르베르트 프로들, 《KLIMT》(열화당,1991)


 헌책방을 다니면서 나라밖 빼어난 그림들이 담긴 책을 제법 장만했습니다. 아직 나라안에는 손꼽을 만큼 괜찮거나 훌륭히 엮은 ‘그림 이야기책’이 드물기 때문입니다. 나라밖에서는 좋은 종이에 좋은 엮음새로 빚은 책이 많지만, 나라안에는 이 또한 드물며, 종이에 앉힌 그림결이나 빛느낌이 썩 안 곱기도 했습니다.

 일본말이나 영어나 프랑스말이나 독일말로 된 나라밖 그림 이야기책을 읽을 때에는 글은 안 읽고 그림만 읽습니다. 그림마다 무슨 풀이를 붙였을까 궁금하지만, 막상 풀이가 어떠한가를 알아낼 길은 없습니다.

 생각해 보면, 그림책뿐 아니라 사진책도 이와 같습니다. 나라밖 빼어난 사진쟁이 작품 가운데 한국말로 옮겨진 책은 거의 없습니다. 유진 스미스 님이 빚은 《미나마타》라든지 으젠느 앗제 님이나 스티글리츠 님이 일군 사진책이 한국말로 옮겨지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나라밖에서 나라밖 말로 빚은 책을 어찌저찌 장만하는 길밖에 없습니다.

 나라밖 사진책을 읽을 때에도 사진에 붙인 풀이는 못 읽습니다. 그저 사진만 읽습니다. 사진평론가가 사진을 어떻게 말하건 말건 아랑곳할 수 없습니다. 무어라 적혔는지 모르니까요.

 이렇게 책읽기를 해서야 사진읽기가 되겠느냐 싶지만, 풀이글은 모르는 채 열 해 스무 해 사진읽기를 하면서 시나브로 깨닫습니다. 풀이글을 읽으며 사진을 읽었다면, 수많은 나라밖 사진쟁이 사진을 ‘풀이글대로 읽는 틀’에서 홀가분하기란 어려웠으리라고. 그러니까, 나라밖 그림책을 한국말 아닌 서양말이나 일본말로 된 책을 헌책방에서 장만해서 그림읽기만 하던 일이란 ‘풀이글대로 읽는 틀’이 아니라 ‘내 가슴으로 스며드는 느낌’을 찾는 일이 되는구나 싶어요.


.. “나는 화가이므로 아침부터 저녁까지 매일 그림을 그린다. 인간의 형상과 풍경, 그리고 이따금 초상화들을.” ..  (클림트/12쪽)


 게르베르트 프로들 님이 글을 쓰고 엮은 《KLIMT》(열화당,1991)를 장만해서 읽습니다. 일본말이나 서양말로 된 클림트 님 책은 곧잘 읽었기에 그동안 ‘클림트라는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는가’라든지 ‘클림트라는 사람은 무슨 생각을 했는가’ 같은 대목이 궁금했습니다. 한국말로 된 책을 읽으면 이렇게 궁금해 하던 이야기를 알 만하겠지 하고 생각합니다.

 기쁘게 장만해서 기쁘게 책장을 넘깁니다. 그런데, 막상 한국말로 된 책을 읽기가 벅찹니다. 한글로 된 《KLIMT》라는 책에는 클림트라는 사람이 어디에서 태어나, 무엇을 배우며 자라고, 몇 살에 어디에서 무슨 그림을 배우면서 그렸는가, 하는 이야기가 깨알같이 적힙니다.

 신나게 책을 펼치다가 힘겨이 책을 덮습니다. 그림은 그예 그림으로 보아야 할 노릇 아닌가 하고 새삼스레 생각합니다.

 문득 한 가지 떠오릅니다. 인천에서 수채그림을 그리는 박정희 할머님이 떠오릅니다. 박정희 할머님은 미군부대 도서관에서 나온 ‘반 고흐 화집’을 하나 얻어 당신 딸아이한테 보여주며 그림을 가르쳤다고 했습니다. 어떤 ‘화가 되기 수업’이 아닌 ‘그림을 좋아하며 즐기도록’ 그림을 가르쳤다고 해요. 그림쟁이가 되라는 가르침이 아니라, 언제나 그림을 사랑스레 즐기도록 가르쳤다고 했습니다.

 수채그림을 그리는 박정희 할머님은 서양말로 된 이야기를 하나하나 옮기면서 그림을 가르치지는 않았으리라 생각합니다. 그저 ‘그림으로 된 책’에서 ‘그림을 당신 깜냥껏 읽으’면서 가르쳤으리라 생각해요.

 그림쟁이 한 사람 삶과 발자취를 낱낱이 파헤치며 꼼꼼히 다루는 일은 무척 뜻있다고 생각합니다. 비평이나 평론이 맡은 몫이니까요. 그림쟁이 한 사람이 어디에서 누구하고 무엇을 하며 살아왔는가를 좇는 일이란 그림쟁이 한 사람을 더 살뜰히 읽도록 돕는 길 가운데 하나라고 느낍니다.

 다만, 그림 하나만 읽으면서 그림쟁이 삶을 읽을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사진 하나를 읽으면서 사진쟁이 삶을 헤아릴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글 하나를 읽으면서 글쟁이 삶을 돌아볼 수 있어야지 싶어요.

 좋은 삶과 좋은 그림과 좋은 꿈과 좋은 책으로 좋은 나날을 일굴 수 있으면 누구나 어디에서라도 아름다우리라 생각합니다. (4344.6.13.달.ㅎㄲㅅㄱ)


― KLIMT (게르베르트 프로들 글,정진국·이은진 옮김,열화당 펴냄,1991.10.1./4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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