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쪽지 2011.12.25.
 : 두 아이 태운 자전거수레

 


- 자전거수레에 아이 둘을 처음으로 태우다. 마을 웃집에 세 살 민준이가 찾아왔다. 민준이 어머님이 둘째를 낳고 몸풀이를 하시느라 민준이를 시골 할머니 할아버지한테 며칠 맡겼단다. 마을회관에 네 살 벼리를 데리고 찾아가서 함께 놀다가, 두 아이가 회관에서 심심해 한다고 느껴 논둑길을 따라 마을을 한 바퀴 돌았다. 그러고 나서 우리 집으로 함께 와서 몸을 녹이고 놀다가, 두 아이를 자전거수레에 태운다.

 

- 날이 좀 쌀쌀하고 바람이 제법 불어 자전거마실을 멀리까지 안 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마을 웃집 손자 민준이가 자전거수레에 탄 지 얼마 안 되어 꾸벅꾸벅 하더니 이내 고개를 푹 숙이며 잠든다. 아까부터 많이 졸린 얼굴이었으나 도무지 낮잠 잘 생각을 않더니 자전거수레에서 새근새근 잠든다. 마치 우리 집 벼리를 보는 느낌이다. 벼리도 집에서 낮잠을 안 자려 들다가 자전거수레에 타고 함께 마실을 다니다 보면 어느새 꾸벅꾸벅 고개를 이리저리 흔들다가 앞으로 푹 숙이곤 했다.

 

- 자전거수레에 앉으면 마냥 앉아서 달리니까 스르르 졸음이 오는지 모른다. 앞에서 달리는 사람은 졸음이 올 수 없고, 앞에서 달리니 땀이 줄줄 흐른다. 아이 하나는 잠들고 다른 아이 하나도 잠들락 말락 한다. 어떡할까 하고 살작 생각하다가 면까지 다녀오기로 한다. 수레에서 잠들었대서 바로 회관으로 돌아가 자리에 눕히면 금세 다시 깰는지 모른다. 면까지 다녀오면 우리 집 벼리도 사르르 잠들는지 모르고.

 

- 깊은 시골마을 면소재지는 일요일에 거의 다 문을 닫는다. 작고 깊은 시골마을 면소재지 밥집이라면 면사무소나 우체국 일꾼한테 장사를 할 테니, 애써 일요일까지는 안 연달 수 있으리라. 면소재지 가게에 들러 벼리를 수레에 다시 태울 때에는 아이가 겉옷 맨 위 단추를 안 꿰려 한다. 수레에 태울 때에는 단추를 다 꿰었는데, 아이가 답답하다며 스스로 끌렀다. 면소재지 들러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아이가 고개를 푹 숙인다. 졸릴까. 추울까. 시골길로 접어들어 볕이 잘 드는 조용한 데에서 멈춘다. 벗겨진 모자를 다시 씌운 다음 아이한테 단추 꿸까, 하고 묻는다.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추우니까 이런 날에는 단추를 다 꿰어야지, 단추를 안 꿰니 바람이 다 들어가잖아.

 

- 면으로 가는 길은 살며시 내리막이요,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살며시 오르막. 면으로 갈 적에는 두 아이 태운 수레가 그리 힘들지 않다고 느끼나, 집으로 돌아올 적에는 두 아이 태운 수레가 이렇게 무거우며 벅차다고 느낀다. 아이 둘을 수레에 태우며 다니는 분들은 허벅지와 등허리가 얼마나 딴딴하려나. 수레를 달아 끌려면 허벅지뿐 아니라 등허리가 튼튼해야 한다. 자전거도 사람도 모두 튼튼해야 한다. 새해를 맞이하고 여름이 찾아오면 둘째 아이도 수레에 태울 수 있을 테니, 그때까지 내 몸을 알뜰히 추스르고 다스려야겠다. 두 아이를 수레에 태워 면내 마실을 다니자면 참말 튼튼하고 씩씩해야겠다.

 

- 호덕마을을 지날 무렵 우리 아이도 새근새근 잠든다. 그러나 집에 닿아 자리끈을 풀고 살며시 안아 방으로 들어가자니 잠에서 깬다. 아이 어머니가 말한다. “눈을 떴잖아. 벼리야, 안기지 말고 내려서 걸어.” 자리에 눕히면 다시 눈을 감고 잠들기를 바라며 살며시 눕힌다. 머리카락을 쓰다듬는다. 방에서 나와 땀으로 젖은 옷을 벗고 저녁 차릴 준비를 한다. 아이는 내가 방에서 나와 부엌으로 갈 때에 다시 눈을 뜨고는 흥얼흥얼 노래를 불렀단다. 그냥 더 자면 덧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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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1-12-27 13:14   좋아요 0 | URL
ㅎㅎ 아빠가 태워주는 자전거 그네로 아이들이 넘 좋아하겠네요.그나저나 한 겨울에는 좀 춥겠는데요^^

파란놀 2011-12-28 04:55   좋아요 0 | URL
지난해 더 추운 날에도 눈 맞으며 자전거를 탔는걸요~ ^^
 


 밤에 쓰는 글

 


 아침에 일어나서 아이들과 저녁을 먹고 겨우 잠자리에 들며 하루를 마감하기까지 오늘을 어찌 보냈는가 돌아보며 눈을 감으며 등허리를 폅니다. 나한테 오늘은 어떤 삶이었을까요. 아이들한테는, 옆지기한테는 오늘 하루 어떤 나날이었을까요.

 

 갓난쟁이 둘째는 이제 날마다 네 차례쯤 똥을 누는 몸으로 시나브로 굳어져, 언제부터였던가 날마다 똥기저귀를 넉 장씩 빨아야 합니다. 똥기저귀를 빨자면, 아이들을 씻기자면, 빨래를 널자면 걷자면 개자면 갈무리하자면, 하루하루 어떻게 흐르는가를 잊습니다. 그저 이 집안에서 보내는 오늘입니다. 달력에 어떤 날짜가 적힌들 대수롭지 않습니다. 오늘이 무슨 요일이든 아랑곳할 일이 없습니다. 날이 춥다 한들 덥다 한들 무엇 하나 달라지지 않습니다. 누가 살았든 죽었든 나하고는 아주 먼 나라 이야기입니다. 아이들은 날마다 새로 밥을 먹고, 새로 똥오줌을 누며, 새로 말을 배우고, 새로 삶을 누립니다. 아이들은 언제나 새삼스레 웃고 뛰고 박차고 달립니다.

 

 식구들 모두 잠든 밤에 퍼뜩 깹니다. 첫째 아이가 몸을 비트는 소리에 깹니다. 쉬가 마려운가, 오늘은 부디 혼자 일어나서 쉬를 누고 오면 얼마나 좋을까, 이래저래 생각하며 눈을 감은 채 기다립니다. 이리 비틀고 저리 비틀기에 아이를 부릅니다. 쉬 마렵니, 쉬 마려우면 일어나서 쉬하러 가자. 조용합니다. 부시시 일어나서 아이 머리카락을 쓰다듬습니다. 일어날 낌새가 없습니다. 잠꼬대였나.

 

 그만 잠을 깬 바람에 그냥 일어나기로 합니다. 하루 가운데 몇 시간 살짝 조용하게 주어진 이 밤을 누리기로 합니다. 셈틀 화면에서 쏟아지는 불빛이 옆방에서 잠자는 세 식구를 깨우거나 잠 못 들게 하지 않기를 비손하면서, 이 밤에 글을 몇 꼭지라도 붙잡으려고 합니다. 낮에는 도무지 글을 쓸 수 없습니다. 마음을 다잡으며 글을 쓰기 힘들다기보다, 낮 동안 아이들이랑 부대끼며 집일을 꾸려야 하니까 셈틀을 켤 수 없어요. 어제 하루 책읽기는 잠자리에 든다며 세 식구보다 몇 분 먼저 이불을 뒤집어쓰고 드러누워 책 한 쪽 훑으며 끝났습니다. 고작 한 쪽 훑었을까 싶을 때에 두 아이도 이부자리로 찾아들었고, 이부자리에 찾아든 두 아이는 여느 때와 비슷하게 한동안 잠을 안 자면서 노닥거려요. 그래그래, 너희가 이래야 어린이답지, 너희가 이불을 뒤집어쓰기 무섭게 코를 골골 곤다면 어린이다울 수 있겠니. 돌이키면, 너희 아버지도 너희만 한 어릴 적 너희 할머니랑 할아버지가 잠들지 못하도록 이래저래 꽁알거리며 노래를 부르지 않았겠니. 너희가 보여주는 온갖 몸짓과 목소리가 너희 아버지가 이 밤에 씩씩하게 일어나 글을 쓰도록 해 주는 힘이 된단다. 너희 어머니, 곧 내 옆지기가 이 밤에 꿋꿋하게 눈 부비며 두 손 비비고 글을 쓰게 이끄는 기운이 된단다. 우리 네 식구 살림살이가 아니라면 이 밤에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우리 네 식구 시골집이 아니라면 깊은 밤에 너희 오줌 누이거나 기저귀를 갈며 일어나 마당에 한두 차례 나와서 밤하늘 올려다보기를 했을까.

 

 고마운 하루는 지나갑니다. 고단한 하루는 마감합니다. 새로운 하루가 찾아옵니다. 새삼스러운 하루를 맞이합니다. 하루를 보내고 하루를 누리는 삶이기에 이 모든 이야기를 글로 빚을 수 있습니다. (4344.12.26.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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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곰 비디 비룡소의 그림동화 66
돈 프리먼 글 그림, 이상희 옮김 / 비룡소 / 2001년 8월
평점 :
절판



 서로 한식구 되어 살아가기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119] 돈 프리먼, 《아기 곰 비디》(비룡소,2001)

 


 아이한테 그림책을 쥐어 주면서 생각해 봅니다. 이 그림책을 읽는 우리 아이는 이 그림책을 얼마나 좋아할 수 있을까. 우리 아이는 이 그림책을 얼마나 여러 차례 들여다볼 만할까. 아이 스스로 이 그림책을 찾아 읽으려나, 어버이가 애써 내밀어야 비로소 펼쳐 읽으려 하나.

 

 어른인 내가 읽는 책을 곰곰이 돌아봅니다. 나는 내가 장만해서 읽는 이 책을 몇 차례쯤 되읽을 수 있을까. 나는 이 책을 한 번 읽고 나서 오래오래 덮어둘까. 다시 읽는 날이 있을까. 되읽지 않고 한 번 읽어 그친다면 굳이 이 책을 장만해서 읽어야 할 까닭이 있나.

 

 아이한테 물려주겠다는 생각으로 사서 읽는 책은 부질없습니다. 바로 오늘 이곳에서 내 삶을 북돋우는 책만 사서 읽어야 아름답습니다. 아이한테 물려주겠다는 마음으로 사서 입는 옷은 덧없습니다. 아이한테 물려주겠다는 뜻으로 장만하는 아파트나 땅이나 자가용은 값없습니다.

 

 아이들은 사랑을 느낍니다. 아이들은 책이나 지식이나 집이나 돈이나 자가용을 느끼지 않습니다. 사랑을 느끼는 아이들은 사랑으로 살아갑니다. 사랑을 못 느끼는 아이들은 껍데기와 겉치레에 휘둘리면서 나뒹굽니다.

 

 곰곰이 돌이키면, 어버이 스스로 아름다이 살아가는 나날일 때에 아이들 또한 아름다이 꾸리는 삶이 돼요. 어버이 스스로 껍데기와 겉치레에 휘둘리면서 나뒹구니까 아이들 또한 껍데기와 겉치레에 젖어들면서 나뒹굴고 말아요.


.. 비디는 털이 복슬복슬한 장난감 곰돌이예요. 테일러가 주인이지요. 비디랑 테일러는 숨바꼭질을 가장 좋아해요. 가끔 비디는 우뚝 멈춰 섰다가 뒤로 벌렁 넘어지곤 해요. 태엽이 다 풀린 거예요 ..  (3∼5쪽)


 아이들한테 좋은 모습만 보여주지 않아도 됩니다. 아이들과 살아가는 어버이 스스로 좋은 모습을 보면 돼요. 어버이나 둘레 어른 스스로 좋지 못한 모습으로 살아가면, 이 모습을 아무리 숨기거나 감추려 한다 하더라도 아이들은 언젠가 남김없이 바라보고 느끼며 생각합니다.

 

 아이들한테는 좋은 모습을 보여주려 애쓰지 말아야 해요. 그저 아이들과 좋은 삶을 일구면 돼요. 아이들한테 좋은 그림책을 읽히려 힘쓰지 말아야 해요. 아이들한테 영어를 일찍부터 가르치거나 영어 그림책을 읽히거나 영어 동화책을 읽히겠다고 법석을 떨지 말아야 해요. 아이들은 지식이나 정보가 아닌, 사랑과 믿음을 받아먹는 나날을 누려야 해요.

 

 아이들은 아이 몸을 살찌우는 밥을 골고루 먹어야지, 영양식을 먹을 수 없어요. 아이들은 흙과 바람과 물과 햇살을 듬뿍 머금은 곡식과 열매와 푸성귀를 먹어야지, 값진 바깥밥을 먹을 까닭 없어요.

 아이들은 제 어버이랑 놀아야 합니다. 아이들은 보육교사나 놀이지도사랑 놀 까닭이 없어요. 아이들은 동무와 형제랑 놀아야지 놀이공원에서 놀 까닭이 없어요.


.. 처음으로 혼자가 된 비디는 책을 보며 즐거워 했어요. “왜 아무도 나한테 이런 얘기를 안 해 줬을까?” 비디는 속상해서 중얼거렸어요 ..  (10∼11쪽)


 둘레에서 명작이라고 손꼽는 그림책을 장만해서 읽습니다. 아이한테 명작 그림책이라 일컫는 작품을 슬그머니 내밀어 봅니다. 아이는 명작이라 하는 작품에는 그리 눈길을 보내지 않습니다. 아이는 아이한테 즐겁거나 좋거나 재미나거나 신나는 그림책을 들여다봅니다. 그림책보다는 함께 뒹굴 어버이를 더 좋아합니다.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달리기를 할 ‘놀이 어버이’를 반깁니다.

 

 한참 놀고 나서 땀을 식히고 다리와 몸을 쉬면서 들여다보는 책입니다. 뛰놀고, 밥먹고, 책도 읽고, 노래도 부르고, 꾸벅꾸벅 졸며 뗑강이나 억지도 쓰고, 또 먹고, 씻고, 뒹굴고, 어지르고, 꾸중을 듣다가는 또 놀면서 하루를 보냅니다.

 

 앞으로도 이 아이는 이렇게 살아가겠지요. 제 하루를 온통 제 것으로 삼아 저한테 즐거우며 좋을 일거리와 놀잇감을 누리겠지요.

 

 그러니까, 어버이나 어른은 아이들한테 좋은 마당 하나 깔아 주는 사람이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적잖은 어버이나 어른은 아이들한테 좋은 마당 하나 깔아 주지 못합니다. 좋은 마당 깔지 못하는 어버이나 어른을 탓하거나 손가락질하거나 못마땅해 하는 아이가 있습니다. 좋은 마당 없는 데에서 놀랍도록 좋은 마당을 새로 일구거나 마련하는 아이가 있습니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어른한테는 아이라 할 테지만, 이 아이는 무럭무럭 자라서 푸름이로 우뚝 서고, 곧이어 젊은이로 튼튼하게 서요. 젊은이로 튼튼하게 선 아이는 어느새 스스로 어른입니다. 스스로 어른이 되어 스스로 좋은 마당을 일구어요.


.. “이 동굴에서 잘 지내려면 뭔가 더 있어야 될 것 같은데……. 그게 뭘까? 아, 알았다!” 비디는 곧장 밖으로 나가 눈 덮인 언덕을 총총걸음으로 내려갔어요. 테일러와 함께 살던 집으로 갔지요 ..  (22∼23쪽)


 돈 프리먼 님 그림책 《아기 곰 비디》(비룡소,2001)를 읽습니다. 아기 곰 비디는 인형 곰 비디입니다. 인형 곰은 어린이 테일러랑 한집에서 살았습니다. 어린이 테일러가 제 어버이랑 집을 비우고 어디 멀리 놀러갔을 때에 인형이자 아기 곰인 비디는 작은 집을 뛰쳐나옵니다. 스스로 제 삶을 찾아 길을 떠납니다. 그러나 아직 아기요 인형인 비디인 탓에 그만 태엽이 다 돼요. 태엽이 다 되니 발랑 나자빠져요.


.. “그래, 나에겐 네가 필요해. 그런데 테일러 너한테는 누가 필요해?” 비디가 테일러에게 물었어요 ..  (43쪽)


 비디한테는 따순 손길이 있어야 합니다. 어쩌면 비디는 언제까지나 따순 손길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어린이 테일러도 이와 마찬가지예요. 테일러는 어린이일 때에도 어른이 된 다음에도, 둘레 사람들한테 따순 손길을 나눌 뿐 아니라, 테일러 스스로 이웃한테서 따순 손길을 받아야지요. 사랑을 받는 아이가 되면서 사랑을 주는 아이입니다. 어른한테서 배우는 아이요, 어른을 가르치는 아이예요.

 

 아니, 가르치고 배운다는 말은 그닥 알맞지 않아요. 함께 살아간다고 해야지요. 함께 살아가면서 서로를 돕고 서로를 사랑하며 서로를 고마이 여겨요.

 

 비디와 테일러는 한식구입니다. 비디와 테일러는 서로를 사랑합니다. 서로서로 고맙습니다. 서로서로 즐겁습니다. 날마다 눈을 마주하고 노상 마음을 나눕니다. 한식구라면 마땅히 사랑이 오갈 노릇이요, 한식구인 만큼 꿈과 이야기를 보드라이 나누겠지요. 함께 살아가면서 좋은 나와 너와 우리입니다. (4344.12.25.해.ㅎㄲㅅㄱ)


― 아기 곰 비디 (돈 프리먼 글·그림,이상희 옮김,비룡소 펴냄,2001.8.2./6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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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026) -의 : 어린이들의 마음

 

.. 어린이들과 같이 살아가면서도 어린이들의 마음을 잘 몰라, 들은 대로 보이는 대로 어린이 여러분들과 이웃사람들의 삶을 받아쓰기 하는 마음으로 정성을 다하여 썼습니다 ..  《김은영-김치를 싫어하는 아이들아》(창비,2001) 5쪽

 

 “정성(精誠)을 다하여”는 그대로 둘 수 있을 테지만, “온힘을 다하여”나 “온 사랑을 다하여”로 손보면 한결 나아요. 앞뒷말과 묶어 “받아쓰기 하듯 온마음을 다하여 썼습니다”처럼 손볼 수 있어요.

 

 어린이들의 마음을 잘 몰라
→ 어린이들 마음을 잘 몰라
→ 어린이들이 어떤 마음인지를 잘 몰라
→ 어린이들이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는지를 잘 몰라
 …

 

 나는 내 마음입니다. 내 어버이는 내 어버이 마음입니다. 논자락 볏포기는 볏포기 마음입니다. 파란 빛깔 맑은 하늘은 하늘 마음입니다.

 

 잇달아 나오는 “이웃사람들의 삶”에서도 이와 마찬가지예요. “이웃사람들 삶”입니다. “이웃사람들이 지내는 삶”이나 “이웃사람들이 일구는 삶”이거나 “이웃사람들이 여미는 삶”이나 “이웃사람들한테서 느끼는 삶”이에요.

 

 토씨 ‘-의’는 한국말을 북돋우지 않아요. 토씨 ‘-의’를 써 버릇하면 내 넋과 뜻과 사랑을 고이 싣지 못해요. 토씨 ‘-의’에 얽매이면 정작 무슨 이야기를 나누려 했는가를 잊거나 잃어요. 흐리멍덩한 글이 되고 흐릿한 말이 되고 말아요.

 

 그렇지만 어딘가 쓸모가 있을 토씨 ‘-의’라 할 테지요. 어쩌면 아무 데도 쓰일 일이 없거나 앞뒷말을 엮어 한 낱말로 삼을 때에 이음돌 구실을 하는지 모르지요.

 

 이곳저곳 함부로 쓸 ‘-의’는 아니에요. 써야 한다면 참말 알맞고 올바르게 써야 할 ‘-의’예요. 다른 토씨도 그래요. ‘-를/-을’을 아무 데나 넣지 않습니다. ‘-이/-가/-는’을 아무렇게나 붙이지 않아요. ‘마찬가지’라는 낱말은 “이와 마찬가지예요”처럼 적바림해야 올바르지, “마찬가지로 말하자면”처럼 외따로 쓸 수 없어요.

 

 아이들과 살아가는 어른들은 아이들이 바로 오늘 이곳에서 쓸 한국말부터 앞으로 저희끼리 쓸 한국글이 옳고 바르며 착하고 참답도록 이끌어야 합니다. 어른들부터 옳고 바르게 말을 하고 착하고 참답게 글을 써야 합니다.

 

 좋은 넋으로 좋은 삶을 북돋아야지요. 좋은 얼로 좋은 말을 빚어야지요. 토씨 하나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서 내동댕이치지 않기를 빌어요. 토씨 하나 마구 굴리면서 내 말과 우리 겨레 글과 아이들 말빛을 주눅들게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4344.12.24.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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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1-12-25 07:24   좋아요 0 | URL
`의`를 쓰지 않아야 좋다는 것은 알았는데 그렇게 실천이 잘 안되더라고요.
어느 경우에 빼야할지 자신이 없었어요.
그런데 예로 들어주신 김은영 시인의 인용구를 보니 `어린이들의 마음`의 `의`를 빼도 전혀 이상하지 않네요. 또 배우고 가요.

파란놀 2011-12-25 13:44   좋아요 0 | URL
누구나 차근차근 생각하면
알맞으면서 사랑스레
말을 하고 글을 쓰는 길을
즐거이 열 수 있어요~
 


 생각 못한 글쓰기

 


 옆지기하고 다섯 차례째 맞이하는 예수님나신날이라고 한다. 미처 생각해 보지 못했다. 하나하나 헤아리자면, 모든 일이 둘이 함께 다섯 차례째 맞이한다. 이제 며칠 뒤면 첫째 아이도 다섯 살로 접어든다. 다섯 차례째 겨울이 지나면 다섯 차례째 봄이고, 이 다음에는 여섯 차례째 여름이겠지. 다섯 차례째를 생각하지 못하며 살아간다면, 앞으로 맞이할 여섯 차례째나 일곱 차례째나 열 차례째를 생각할 수 있을까. 열다섯 차례째나 스무 차례째는 헤아릴 수 있을까.

 

 둘째 아이 기저귀를 갈 때에 함께 잠에서 깬다. 옆지기가 쉬를 누고 오는 동안 둘째 아이를 안고 달랜다. 밤에 기저귀를 갈 때면 왜 이리 우니. 너도 네 누나하고 똑같구나. 다시 자리에 눕는다. 이윽고 첫째 아이도 쉬가 마렵다고 말한다. 혼자 스스로 갈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꼭 불러서 함께 가야겠니. 그러나, 이렇게 함께 가는 일도 앞으로 몇 해 뒤면 시나브로 사라지리라. 여섯 살 일곱 살 여덟 살이 되면 저 스스로 쉬를 보겠지. 아니, 예닐곱 살쯤 된다면 밤하늘 별을 올려다보며 바깥으로 나와 뒷간에서 쉬를 눌 수 있으리라.

 

 이제 한 살을 더 먹으면, 글을 쓰며 살아온 지 열여덟 해째 된다. 내 삶 가운데 반토막 즈음 글쓰기로 살아온 셈이다. 이제껏 내 글이 시끌복닥하게 팔린 적 없으나, 네 식구 밥술을 뜨면서 살아간다. 나는 글을 쓰면서 어떤 삶을 일굴 수 있으리라 생각했을까. 나는 내가 참으로 써야 하는 글을 쓰는 사람일까.

 

 아이들은 나와 옆지기를 어버이로 맞이하리라 생각했을까. 두 아이는 나와 옆지기가 저희 어버이인 삶이 흐뭇하거나 즐거웁거나 아름다울까. 아침에 읍내 장마당 다녀오는 버스길, 읍내로 갈 때에는 자리에 앉고 집으로 올 때에는 서서 왔다. 아이는 서서 오며 아버지 바짓가랑이만 붙잡는다. 할머니들이 같이 앉자고 불러도 안 간다. 버스에서 내리고 나서 함께 버스를 탄 이웃 할아버지한테서 능금 한 알을 얻었다. 제 주먹보다 훨씬 큰 능금을 꽁꽁 언 손으로 들며 싱긋 웃는 아이를 바라본다. 나는 이 아이와 함께 살아갈 수 있을 줄 생각이나 했을까.

 

 나는 어떤 책을 쓸 수 있을까. 나는 어떤 책을 읽을 수 있을까. 나는 어떤 시골마을 보금자리를 얻어 어느 땅뙈기에 어떤 씨앗을 심을 수 있을까. 나는 우리 책들을 어느 터에 예쁘게 건사하면서 슬기로운 책쉼터를 꾸밀 수 있을까. 네 식구 살아가는 이 시골마을에 어떤 도시 어느 이웃이 시끌벅적한 도시살이를 훌훌 버리고 찾아오도록 이끌 수 있을까.

 

 시골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나요. 시골에서 땅을 파고 글을 파며 사랑을 일구고 꿈을 꽃피우면 즐겁지 않나요. 별빛이 좋아요. 한겨울 찬바람에 기저귀가 꽁꽁 얼어붙다가는 따사로운 햇볕에 스르르 녹아 금세 마르니 좋아요. 억새와 갈대가 이루는 밭이 좋아요. 자전거로 신나게 달리는 조용한 시골길이 좋아요. 아이들 손을 잡고 자동차 걱정 없이 마음껏 넓은 길을 거니는 느낌이 좋아요.

 

 내가 누릴 좋은 삶을 생각해 보지 못했어요. 내가 치를 고된 삶을 생각해 보지 않았어요. 언제나 고스란히 받아들이는 나날이에요. 모두 남김없이 맞아들이는 삶이에요. 내 코가 냄새를 못 맡을 줄 처음 목숨 얻어 태어날 때에 어찌 알았겠어요. 냄새를 못 맡는 코이다 보니, 중·고등학교 다니며 똑같은 밥·반찬인 똑같은 도시락을 먹어도 물리거나 질리는 일이 없었겠지요. 홀살이를 하던 때에도 늘 같은 밥·반찬만 마련해서 먹고, 네 식구랑 살아가면서 새로운 밥·반찬을 스스로 먼저 떠올리지 못하고 말아요. 옆지기가 일깨우는 말을 들으면서, 이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을 만났어도 이렇게 일깨우는 말을 들었을까 궁금하고, 나는 내 옆지기한테 어떤 목소리로 어떤 삶을 일깨우며 지내는가를 돌아봐요. 좋은 새날 고마이 누리는 하루라면, 좋은 글 새로 써서 적바림하는 하루로 보내고 싶어요. (4344.12.25.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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