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길 어린이

 


  비가 퍼붓는다. 이 날씨에 우산을 쓰기 싫다고 한다. 그래, 비옷만 입고 걸어라. 네 젖은 옷은 다 빨아 주지. 아이는 제 우산을 든 채 물웅덩이마다 텀벙거리며 걷는다. 옷은 다 젖었다. 집으로 돌아오고 나서, 아이가 더 놀도록 할걸 그랬나 싶지만, 아직 봄날이기 때문에 오늘은 이만 놀고 더 따뜻할 때에 더 실컷 놀도록 하자고 생각한다. (4345.4.26.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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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맑은’ 사람 노래하는 고정희 시인
[말사랑·글꽃·삶빛 6] 생각으로 빛내는 말

 


  고정희 시인이 남긴 시집 《지리산의 봄》(문학과지성사,1987)이 있습니다. 이 시집에 실린 〈이별―편지 3〉이라는 시를 읽으면, 첫머리에 “새벽 다섯시면 / 수유리 옹달샘 표주박 속에 / 드맑게 드맑게 넘치고 있는 사람 / 드맑게 넘치다가 / 아침 나그네 목 축여주고” 하는 대목이 있습니다. 드맑게 드맑게 넘친다는 사람 이야기를 읽다가 문득 깨닫습니다. ‘드-맑게’로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드높은 사랑입니다. 드날리는 깃발입니다. 드센 기운입니다. 드솟는 꿈입니다. 드넓은 품입니다.


  앞가지 ‘드-’를 붙이는 낱말을 하나하나 떠올립니다. 여러 가지 낱말이 떠오르고, 여러 곳에 곧잘 썼다고 느낍니다. 그러나, ‘드-’를 붙여 크거나 대단하다는 느낌을 나타낼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학교에서 배운 적이 없구나 싶습니다. 초등학교에서든, 중·고등학교에서든, 교사가 학생한테 ‘드-’라는 앞가지를 잘 살려 생각을 북돋우라고 이끄는 일이란 없구나 싶어요.


  학교 문법 수업에서는 왜 이 대목을 가르치지 않았을까요. 학교에서 교사는 학생한테 왜 이러한 말짜임을 이야기하지 못할까요. 한국사람으로서 한국말을 잘 살릴 뿐 아니라 한국글을 살찌우는 길을 가르치지 못하는 까닭을 생각해 봅니다. 한국사람으로서 한국말을 살리지 못할 때에 어떤 외국말을 제대로 배울 만한가 궁금합니다. 한국사람이면서 한국글을 알맞고 기쁘게 쓸 줄 모른다면 어떠한 이야기꽃을 펼칠 만한가 궁금합니다.


  드넓은 바다라 한다면, 드깊은 바다이기도 합니다. 드높은 하늘이라면 드파란 하늘이기도 합니다. 드맑은 꽃잎은 드보드라운 꽃잎입니다. 드좋은 일이나 드나쁜 일이 있을 테지요. 드기쁘거나 드즐거운 꿈을 꾀할 수 있겠지요. 드밝은 불빛처럼 드너른 사랑빛이 됩니다.


  드하얀 빛깔이나 드까만 빛깔을 헤아립니다. 드푸르거나 드빨간 빛깔을 그립니다. 고운 빛깔을 어루만지듯, 고운 말결을 어루만집니다. 좋은 무늬를 쓰다듬듯, 좋은 말넋을 쓰다듬습니다.


  고등학교 다니던 어느 날 국어사전을 뒤적이다가 ‘도차지’라는 낱말을 보았습니다. ‘독차지’ 아닌 ‘도차지’라니, 처음에는 국어사전이 잘못되지 않았나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아니었어요. 어느 국어사전에는 ‘都차지’라고 적지만, ‘獨차지’와는 다르며, 어쩌면 한국사람 스스로 잊거나 잃은 낱말이 되겠다고 느꼈어요. 왜냐하면, 혼자 맡는다는 뜻으로 ‘도맡다’가 있거든요. 국어학자는 ‘도-차지’에서 ‘도’를 ‘都’로 적어야 한다고 생각할는지 모르지만, ‘도-맡다’처럼 ‘도-’가 앞가지 되어 여러 곳에 쓰였다 할 수 있어요. ‘도-’를 앞에 붙여 새롭게 여러 낱말을 빚는 얼거리를 살필 만합니다. 도-보다, 도-살피다, 도-주다, 도-듣다, 도-쓰다, 도-걷다, …… 여러모로 말가지를 칩니다.


  이런 낱말을 꼭 써야 한다는 소리가 아닙니다. 반드시 새 한국말을 빚어야 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생각할 수 있을 때에 즐겁습니다. 한국말로 생각하고 한국말로 꿈꾸며 한국말로 사랑할 때에 아름답습니다. 어여삐 드빛나는 말을 빚을 수 있어요. 홀가분하게 드날리는 말꽃을 널리 흩뿌릴 수 있어요.


  더 좋거나 더 낫다 싶은 말을 찾지 않아도 됩니다. 내 삶을 내 손으로 빛내는 말을 내 마음을 기울여 아끼면 됩니다.


  시집을 즐겁게 읽습니다. 나도 시를 즐겁게 씁니다. 싯말을 즐겁게 되뇝니다. 싯말을 노래하듯 즐겁게 엮습니다. (4345.4.26.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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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2-04-26 10:58   좋아요 0 | URL
'드-' 라는 앞가지가 참 깊고도 맑은 울림을 가지는군요.

드넓은, 드깊은, 드푸른, 드하얀...
'도-'라는 앞가지도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어요. 혼자 한다는 의미인가봐요.

마지막에 드빛나는, 이라는 말, 참 예쁘네요. 드빛나는 하루 되셔요, 저도 함께.

파란놀 2012-04-26 12:53   좋아요 0 | URL
모든 낱말이 국어사전에 실리지는 않아요.
몇 가지는 제 나름대로 붙여 보았어요.

꼭 국어사전에 실린 낱말만 써야 하지 않으니까요.
글을 쓰고 나서 보니, 미처 한 가지 얘기를 못 넣었더라구요.
에궁... @.@
 


 책으로 보는 눈 181 : 삶이 곧 시, 책이 바로 사랑

 


  《조선인민군 우편함 4640호》(삼인,2012)를 엮은 이흥환 님은 “대개의 전쟁사가 전투 기록, 전략전술사로만 기술된 군사이거나 전쟁의 배경, 원인에만 치중한 정치사이다. 이런 기록은 생명력이 없다. 생명력이 없다는 것은 사람의 목소리가 기록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며, 생명력이 없는 기록은 그래서 잊히기 쉽다(164쪽).” 하고 이야기합니다. 나는 이 대목에 밑줄을 그으며 고개를 끄덕입니다. 한 사람이나 두 사람이 죽었다 하더라도 이들 죽은 넋을 기리거나 돌이킬 수 있어야 역사일 텐데, 막상 수천 수만 수십만 수백만이 죽었다 하는 싸움터 이야기를 들출 때에 으레 남쪽으로 쳐들어왔다느니 누가 나쁜 놈이라느니 하는 목청만 높이기 일쑤예요. 서울 어느 동네에서 마구 철거를 하며 재개발을 하려 들 때에 그만 목숨을 잃은 사람들이 있는데, 정작 이들 슬픈 넋을 기리거나 달래는 몸짓은 없이 법이 어떻고 경제가 어떻고 하는 목소리가 드높기까지 해요.


  사람이 살아가는 터전인걸요. 사람이 모여 이루어지는 마을인걸요. 사람이 모여 이루어진 마을을 아우른다는 나라인걸요.


  민주와 평화를 바라던 1980년대 어느 날 어느 곳에 몇 천이나 몇 만이라는 숫자가 모였다고 이야기하는 일도 그리 달갑지 않습니다. 어느 집회나 어느 모임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모였다고 내세우는 일도 썩 반갑지 않습니다. 일본대사관 앞 수요집회에 천이나 만 사람쯤 모여야 한다고 느끼지 않아요. 다문 한 사람이 수요집회를 하더라도 틀림없이 수요집회이고, 이 집회를 몇 분이나 몇 시간에 걸쳐 한다고 적바림할 까닭이 없어요. 한 사람이 모였건 열 사람이 모였건, 모인 사람들 뜻을 살피고, 모인 사람들 삶을 귀기울여 들으며, 모인 사람들 눈망울과 마음결을 함께 읽을 수 있어야 아름답습니다.


  고정희 님 시집 《지리산의 봄》(문학과지성사,1987)을 다시 읽습니다. 오늘밤 이 시집을 다 읽고 덮을 텐데, 고정희 님이 당신 어머님한테 마지막 옷을 입히며 눈물을 적시는 이야기를 담은 시를 읽다가 “당신 칠십 평생 동안에 열린 산과 들의 숨소리가(수의를 입히며)”라는 글줄에 밑줄을 천천히 긋습니다. 전라남도 해남에서 흙을 일구던 늙은 어머니 몸과 마음에 깃들던 멧자락과 들판 내음을 맡을 수 있기에 이렇게 시를 썼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삶이 곧 시요, 시가 바로 삶이겠지요. 삶이 곧 글이며 그림이고 사진일 테지요. 글이나 그림이나 사진이 바로 삶일 테지요. 사랑이 시로 태어나고, 시가 사랑으로 거듭납니다. 꿈이 글이라는 옷을 입고, 글이 꿈이라는 모습으로 다시 샘솟습니다.


  일본 전통놀이 ‘카루타’를 삶으로 받아들인 아이들이 나오는 만화책 《치하야후루》(스에츠구 유키 그림) 첫째 권을 읽으면 123쪽에, 카루타 학원 스승이 초등학교 6학년 어린이한테 “100명의 친구가 생겼다고 여기고, 사이좋게 지내라.” 하고 이야기합니다. 놀이나 경기라는 틀을 넘어, 마음으로 사귀는 좋은 벗으로 지내라는 뜻입니다. 대회에서 1등을 하거나 높은 성적을 거둘 생각으로 하는 일이 아니라, 날마다 웃음꽃으로 어깨동무할 벗하고 삶을 짓는 사랑입니다. 그러니까, 책읽기는 삶읽기이면서 사랑읽기요 꿈읽기입니다. (4345.4.25.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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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새 박스 1~9 세트 1 데츠카 오사무 걸작선
데즈카 오사무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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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인가 10권째 느낌글을 올렸다. 이제 박스세트 첫째 것 느낌글은 다 되었다. 낱권마다 따로따로 붙였는데, 흔히 이 만화책은 상자째 살 테고, 낱권은 모두 절판되었으니, 이 박스세트에 느낌글 아홉 가지를, 내 서재 주소로 붙인다. 이 만화책을 상자로 주문하려다가 망설이는 분이 있다면, 이 느낌글을 찬찬히 살피며 즐겁게 질러 주시기를 빈다. 생각을 하면서 읽어야 비로소 아름다운 만화인 <불새>인 줄 깨닫는다. 생각을 안 하면서 읽는다면, 미완성 작품 <불새>를 제대로 사랑하며 내 꿈을 키울 수 없다.

 

아홉 가지 느낌글에는, 웬만하면 '본문 모습'도 사진으로 찍어서 담았으니, 미리읽기를 해 보시려는 분한테도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

 

1권 느낌글 : 삶이란 아름다이 주어진 꿈빛 (2011.8.28.)

http://blog.aladin.co.kr/hbooks/5031553

 

2권 느낌글 : 한길로 이어지는 한결같은 사랑 (2011.8.30.)

http://blog.aladin.co.kr/hbooks/5037463

 

3권 느낌글 : 모든 정부는 모든 사람을 바보로 삼는다 (2011.9.15.)

http://blog.aladin.co.kr/hbooks/5076400

 

4권 느낌글 : 개죽음·참죽음·막죽음·늙어죽음 (2011.9.20.)

http://blog.aladin.co.kr/hbooks/5088938

 

5권 느낌글 : 삶과 죽음은 모두 똑같은 이야기 (2011.9.30.)

http://blog.aladin.co.kr/hbooks/5114032

 

6권 느낌글 : 정치와 종교는 모두 하나, 쓰레기 (2012.1.26.)

http://blog.aladin.co.kr/hbooks/5377747

 

7권 느낌글 : 내가 바라보는 아름다운 꿈 (2012.2.21.)

http://blog.aladin.co.kr/hbooks/5437393

 

8권 느낌글 : 놀이는 누구한테서 배워? (2012.3.8.)

http://blog.aladin.co.kr/hbooks/5479523

 

9권 느낌글 : 어딘가 일그러진 사람들 (2012.3.18.)

http://blog.aladin.co.kr/hbooks/5506770

 

..

 

지난 2011년 8월부터 써서 2012년 3월에 이르러 비로소 9권까지 느낌글을 마무리. 지난해 시월과 십일월에는 충북 음성에서 전남 고흥으로 살림집 옮기느라 거의 짬을 내지 못했다. 그래서 새해를 넘기고서야 겨우 6권째 느낌글을 올릴 수 있었다. 남은 두 번째 상자도 찬찬히 곰삭여 느낌글을 마무리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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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닐에 싸인 ‘겉속 바뀐’ 만화책

 


  만화책 《치하야후루》 셋째 권을 주문했다. 새책은 비닐에 곱게 싸였다. 즐겁게 뜯어서 읽는다. 그런데 어째 그림결이며 줄거리가 영 딴판이다. 무언가 하고 겉종이를 벗기고 보니, 겉종이는 《치하야후루》이지만 알맹이는 《미드나이트 카페》 둘째 권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길 수 있을까. 배본사에서 잘못했을까. 한꺼번에 나온 여러 가지 만화책을 만들다가 이런 잘못이 생겼을까. 책을 어찌 바꾸어야 하느냐 생각하다가 문득 떠오르는 다른 생각. 아, 이런 잘못은 출판사에 전화해 주어야 하는구나. 왜냐하면, 나 말고 다른 누군가 이렇게 엉뚱한 책을 받아볼 수 있을 테니까. 책을 보내온 곳으로도 ‘잘못된 책’인데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여쭈고, 출판사로도 전화해야겠다. (4345.4.25.물.ㅎㄲㅅㄱ)

 

 

.. 아아... 며칠을 기다려야 3권을 읽을 수 있을까 ㅠ.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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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25 18: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4-25 21: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알라딘고객센터 2012-05-02 12:08   좋아요 0 | URL
불편드려 죄송합니다. 이미 1:1고객상담으로 문의주셔서 안내해드린것으로 조회됩니다.이후 상품평이 아닌 이용하시면서 불편하신 점은 1:1 고객상담을 이용해 주시면 됩니다. 편안한 시간 보내세요. 감사합니다

파란놀 2012-05-03 06:06   좋아요 0 | URL
어찌 보면 '재미난' 경험이었기에
이런 글도 하나 쓸 수 있었구나 싶어요.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