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산에서 바라보는 도서관
 [‘사진책 도서관’ 함께살기] 도서관일기 2012.4.22.

 


  네 식구 뒷산을 오른다. 뒷산에서 멧풀을 뜯어먹고 놀다가 마을 논밭 사잇길을 천천히 걸어 도서관에 들른다. 뒷산에서 도서관을 바라보니 참 예쁘다. 예전에 이곳이 초등학교였을 적에는 훨씬 예뻤겠지. 그무렵 이 시골마을 복닥거리는 아이들 노랫소리가 가득 울렸겠지. 그러나 앞으로 새롭게 아이들과 어른들 노랫소리가 알맞게 울릴 수 있으면 넉넉하리라 생각한다. 학교도, 도서관도, 집도, 공공기관도, 우체국도, 회사도, 모든모든 삶터와 집터와 일터는 이렇게 어여쁜 숲과 들과 멧자락 사이에 알맞춤하게 자리잡아야 즐거울 수 있겠다고 느낀다.


  커다란 책꽂이 하나를 또 옮긴다. 세 차례째 옮기는 커다란 책꽂이는 퍽 수월하게 붙인다. 그래도 이 커다란 책꽂이 하나를 옮기자면 마치 밥 한 그릇 먹는 기운이 들어가는구나 싶다. 무게도 덩치도 대단하다. 속 빈 나뭇조각 아닌 통나무를 잘라서 마련한 책꽂이는 무게도 덩치도 대단한데, 이만 한 책꽂이가 되어야 백 해이든 이백 해이든 고이 이어갈 테지.


  오늘 만화책 자리는 얼추 새로 갈무리했다. 다른 자리도 찬찬히 갈무리하자면, 앞으로 몇 달쯤 더 있어야 할까. 차근차근 갈무리하자. 한두 해 살아갈 마을이 아니니, 오래오래 지내기 좋도록 천천히 사랑하고 아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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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2-04-27 1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른 자연과 책, 좋은 건 다 있네요. 사랑스러운 아이까지...
삶이 아름다운 이유입니다.

파란놀 2012-04-27 15:06   좋아요 0 | URL
음.. 그러네요~
오호호~ 다 있어요, 다 있어!

하늘바람 2012-04-28 1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도서관에는 누가 다녀가나요?
가고 싶네요
개인도서관 넘 근사합니다

파란놀 2012-04-28 15:05   좋아요 0 | URL
아직 책 갈무리가 한참 남아서 공개하지는 않아요.
올여름은 되어야 비로소 어느 만큼 갈무리를 마치고
공개를 하겠지요~ ^^

분꽃 2012-04-29 1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맨아래쪽칸에는 책을 안 꽂는게 어떨까요?? 먼지도 많이 타고, 어쩌다보면 발길에 채이기도 하고요. 집안이 아니라서 많이 망가질 듯 해요. 제 생각에는요...^^;;;

파란놀 2012-04-30 02:29   좋아요 0 | URL
아직 바닥을 어찌하지 못하지만, 맨발로 다니도록 하려고요.
그래서 맨 밑바닥에도 책을 꽂으려 해요~ ^^

나중에 바닥 청소하려면 애먹겠지요 @.@

아무래도 대형청소기가 있어야 할까 싶기도 해요... 이궁...
 
높이 더 높이 네버랜드 Picture Books 세계의 걸작 그림책 155
셜리 휴즈 그림 / 시공주니어 / 2004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그저 즐겁게 하늘을 날아요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161] 셜리 휴즈, 《높이 더 높이》(시공주니어,2004)

 


  아이들이 하늘을 납니다. 새들이 하늘을 납니다. 물방울이 하늘을 날고, 구름이 하늘을 둥실둥실 떠서 홀가분하게 마실을 즐깁니다.


  어른들이 땅을 걷습니다. 자동차가 땅을 달립니다. 커다란 쇠삽날 달린 쇳덩이차가 땅을 파헤칩니다. 어른들은 땅뙈기마다 쇠기둥을 박습니다. 어른들은 어느 땅이든 쇠기둥을 올립니다. 으리으리하게 무언가를 박고 세우고 지키고 사들이고 팔아치우고 자랑합니다. 이리하여 어른들은 하늘을 날지 않습니다.


  어른들은 하늘을 못 난다기보다 날지 않습니다. 어른들은 하늘을 날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어른들을 하늘을 날겠다는 꿈을 품지 않습니다. 어른들은 홀가분하게 어깨동무하며 사랑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어른들 머리에는 무언가 그득그득 찼어요. 먼저 지식조각이 찼고, 정보덩이가 찹니다. 다음으로 돈 생각이 찼고, 숱한 자격증과 졸업장 같은 종이더미가 찹니다. 흔히들 ‘내 일을 하고 싶다’고 말합니다만, 어른들이 하고 싶다는 일이란 무엇인지 알쏭달쏭합니다. 어른들 스스로 꿈을 펼치겠다는 일인지, 돈을 벌겠다는 일인지 어딘가 흐리멍덩합니다. 꿈을 펼치려 하는 일이라면 애써 회사나 공공기관 같은 데에서 일해야 하지 않습니다. 꿈을 펼치려 하는 어른이 총칼을 들고 군대에서 ‘나라지키기’를 하겠다며 눈알을 부라릴 수 없습니다.

 

 


  돈을 버는 일이 나쁘다고는 여기지 않습니다. 돈을 벌고 싶으면 즐겁게 돈을 벌 노릇이거든요. 자전거를 타고 싶으면 즐겁게 자전거를 탈 노릇이에요. 자동차를 싱싱 몰며 지구별을 누비고 싶으면, 이렇게 누비면 돼요. 다만, 자동차로 지구별을 누리는 일은 여행이 아닙니다. 그저 자동차질입니다. 자전거로 전국을 달리거나 세계를 달리는 일 또한 여행이 아닙니다. 그저 자전거질입니다.


  생각을 하고, 뜻을 품으며, 사랑을 할 때에, 비로소 삶입니다. 생각이나 뜻이나 사랑을 헤아리지 않고서 하는 일이라면, 그저 무슨무슨 몸부림이나 몸짓입니다.


  자, 두 팔을 벌립니다.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파란 빛깔 해맑은 바람결을 느낍니다. 눈을 감습니다. 하늘을 마음껏 날아다니는 새들 지저귀는 소리를 듣습니다. 가만히 귀를 기울여 새들이 주고받는 이야기를 헤아립니다. 나도 새들한테 조잘조잘 말을 겁니다. 또는 마음속으로 새들과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이러고는 몸을 살짝 옹크렸다가 두 발을 껑충 구르며 훨훨 하늘을 납니다.


  새파란 하늘 밑에 싯푸른 들판이 펼쳐집니다. 싯푸른 들판 곁에는 싱그러이 푸른 숲입니다. 싱그러이 푸른 숲은 봄을 맞아 새로 돋은 잎사귀 빛깔이요, 잎사귀 빛깔처럼 푸른 빛깔 새 꽃망울 빛깔입니다. 숲에서 살아가는 퍽 많은 나무들 꽃송이는 풀빛입니다. 봄날 멧자락이 한결 푸른 까닭은 새잎과 새꽃이 곱게 얼크러지기 때문입니다.

 

 


  하늘을 훨훨 날아다니며 구름하고 벗삼는 나는 돼지고기 세겹살을 먹지 않습니다. 바람을 먹습니다. 하늘을 가벼이 날아다니며 무지개하고 동무하는 나는 나물밥이나 풀국을 먹지 않습니다. 햇살을 먹습니다. 하늘을 예쁘게 날아다니며 참새랑 제비랑 동박새랑 너나들이하는 나는 복숭아도 살구도 포도도 수박도 먹지 않습니다. 빗물과 안개와 이슬을 먹습니다.


  하늘을 날기 때문에 따로 옷을 갖춰 입지 않습니다. 하늘을 나니까 굳이 운동화나 구두 따위를 꿰지 않습니다. 하늘을 나는 만큼 손전화도 지갑도 가방도 걸치지 않습니다. 하늘을 나는 동안 교과서도 책도 인터넷도 신문도 방송도 모두 까맣게 잊습니다. 하늘을 나는데 고속도로나 고속철도나 공항이나 항구가 쓸모있을 까닭이 없습니다.


  길이 있어야 다닌다고 하지만, 우리한테 따로 길이 없어도 넉넉하던 옛삶이었으리라 느낍니다. 사람은 모두 두 발로 걷던 사람이 아니라, 온몸으로 하늘을 날며 홀가분하게 어디라도 찾아다닐 수 있었을 테니까요. 애써 땅을 파고들어 석유를 캐거나 가스를 뽑아야 하지 않아요. 온누리에 아스팔트 찻길을 잔뜩 늘려야 하지 않아요. 짐을 부리는 나루가 커다랗게 생겨야 하지 않아요.

 

 


  생각해 봐요. 모든 길은 돈이 아니던가요. 고속도로도 돈을 더 벌려고 짓지 않나요. 자동차도, 기름도, 수출과 수입도, 무역협정도, 몽땅 돈벌이에 치우치지 않나요. 그런데, 늘 돈벌이를 하면서 정작 앞에서는 돈벌이 아닌 경제요 문화요 사회요 하면서 다른 이름을 붙이지 않나요. 스스로 껍데기를 뒤집어쓰지 않나요. 스스로 허울좋은 말만 일삼지 않나요. 어른들은 스스로 예쁘게 날아다니며 꿈을 꾸고 사랑하던 아름다운 삶을 내팽개치지 않나요. 어른들은 어른끼리만 안 날지 않고, 아이들마저 날개와 날갯짓을 잊도록 몰아세우지 않나요. 아이들이 오롯한 하느님으로 살아가는 흐름을 꺾지 않나요. 아이들이 옹근 땅님으로 빛나는 결을 짓밟지 않나요.


  셜리 휴즈 님 그림책 《높이 더 높이》(시공주니어,2004)를 읽습니다. 그림으로만 이루어진 그림책을 읽습니다. 영어로 된 책이름도 《up and up》이라 합니다. 아이가 참 예쁘게 하늘을 나는구나 싶으면서도, 그닥 내키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아이는 풍선이 없어도 하늘을 날 테니까요. 옷을 입지 않아도 될 뿐 아니라, 구두를 신지 않아도 되고, 양말을 꿰지 않아도 돼요. 아이들은 두 팔을 하늘로 쭉 뻗치고 고개를 하늘로 들어 마음을 해맑게 활짝 열기만 하면 돼요. 착한 넋, 고운 얼, 참된 꿈, 빛나는 사랑을 온몸으로 기쁘게 품으면 천천히 하늘로 떠오릅니다. 착하지 못한 넋이나 곱지 못한 얼이나 참답지 못한 꿈이나 빛나지 않는 사랑이라면, 아이들이라 하더라도 하늘로 떠오르지 못해요.


  하늘을 나는 아이들은 ‘더 높이’ 날지 않습니다. 날고 싶은 대로 마음껏 납니다. 아이들은 ‘높이’ 날지도 않지만 ‘더 높이’ 날지도 않습니다. 그저 즐겁게 하늘을 날아요. 그저 즐겁게 새 하루를 맞이해요. 그저 즐겁게 밥을 먹어요. 그저 즐겁게 뒹굴며 놀아요. 그저 즐겁게 조잘조잘 떠들고 노래하며 춤춰요.


  부디, 하늘 나는 아이들한테 엉뚱한 말 좀 삼가 주셔요. 아이들은 더 높이 날고 싶기에 날지 않아요. 그저 즐겁게 날고 싶으니 날 뿐이에요. 아이들은 그저 즐겁게 놀고 싶으니 놀 뿐이에요. 이런 놀잇감 저런 영화 그런 시설이 있대서 아이들이 예쁘게 놀지 않아요.


  품어야 할 것을 몸에 품어요. 갖추어야 할 대목을 마음에 갖춰요. 거짓이나 꿍꿍이는 걷어치우고, 사랑이랑 꿈을 즐겁게 껴안아요. (4345.4.27.쇠.ㅎㄲㅅㄱ)

 


― 높이 더 높이 (셜리 휴즈 그림,시공주니어 펴냄,2004.3.25./7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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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골 냄새 책읽기

 


  시골은 냄새가 납니다. 흙냄새가 나고 풀냄새가 나며 해냄새와 바람냄새가 나는 한편, 물냄새가 납니다. 냄새가 없다면 시골일 수 없고, 숱한 냄새가 골고루 얼크러지지 않는다면 시골이라 할 수 없습니다.


  시골은 따분합니다. 스스로 흙을 아끼거나 사랑하려는 몸가짐이 아니라 한다면 시골은 따분합니다. 인터넷이 슝슝 뚫리기를 바라거나 버스가 5분이나 10분마다 다니기를 바라거나 극장이나 밥집 옷집 들을 바란다면 참으로 따분한 시골입니다. 스스로 새와 벌레가 들려주는 소리를 들으려 하지 않으면 시골은 따분합니다.


  나는 시골에서 살면서 냄새를 느낍니다. 풀마다 다 다른 냄새를 느낍니다. 바람마다 다 다른 냄새를 느낍니다. 새벽부터 저녁까지 햇살마다 다 다른 냄새를 느낍니다. 이를테면, 봄날 아침부터 천천히 보송보송 마르는 빨래를 만지며 햇살 내음을 느낍니다. 여름철이면 아침에 금세 보송보송 마르는 빨래를 만지작거리며 햇살 내음이 얼마나 짙게 배는가 하고 느낍니다. 두 팔을 벌리고 해를 먹습니다. 풀을 뜯거나 김을 매며 해를 먹습니다. 고랑을 내거나 나뭇잎을 쓰다듬으며 해를 먹습니다.


  그런데 도시사람은 시골이 냄새가 나고 따분하다며 싫다 합니다. 도시사람은 시골에서는 돈구멍 이름구멍 힘구멍 하나 없다며 못마땅해 합니다. 그래요. 시골이니까 풀이랑 흙이랑 바람이랑 냄새를 날라요. 시골이니까 돈이나 이름이나 힘이랑 동떨어져요. 시골이기에 언제 어디에서라도 먹을거리가 샘솟아요. 시골인 만큼 내 몸을 살찌우는 숱한 먹을거리를 마음껏 누려요.


  나무열매는 돈으로 따지지 않습니다. 들풀이나 멧풀은 돈으로 셈하지 않습니다. 냇물이나 우물물은 돈으로 사고팔지 않습니다. 새파란 낮하늘이나 새까만 밤하늘은 돈으로 재지 않습니다.


  그나저나, 나는 왜 이런 글을 쓸까요. 글쎄요. 잘 모르겠습니다. 그저, ‘산촌유학’이라는 이름 때문에, 《산촌유학》(문원,2012)이라는 일본 푸른문학 소개글을 읽는데, 출판사 일꾼이 적바림한 글줄 첫머리에 “제13회 미메이 문학상 대상 수상작. 주인공 케이가 그랬듯 도시 아이들이 생각하는 ‘시골’은, 냄새나고 지루한 곳이라고 생각하기 일쑤이다. 버스를 타고 시골로 내려가면서도 주인공 케이는 다시 도시인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 했다. 온통 초록뿐인 거리를 보면서 말이다.” 하는 대목이 나오더군요. 참말 도시 아이들은 시골을 이렇게 여길까요. 도시 어른들이 시골을 이렇게 여기며 도시 아이들한테 시골을 엉뚱하게 아로새긴 셈 아닐까요.


  아아, 시골사람인 내가 보기에, 도시야말로 냄새가 나던걸요. 자동차 배기가스 냄새, 시멘트 냄새, 아스팔트 냄새, 가게마다 버리는 쓰레기에서 풍기는 냄새, 사람들 침 뱉는 냄새, 화학약품으로 만든 화장품 냄새, 술과 담배 찌든 냄새, 지하철 쇳덩이 냄새, 버스 플라스틱 냄새, …… 도시에서는 정작 내고 맡고픈 냄새가 없던걸요. 더구나, 도시에서는 돈을 치르지 않으면 두 다리 뻗고 드러누울 쉼터도 없고 엉덩이 붙이고 앉을 걸상조차 없는걸요. 어쩔 수 없겠지만, 《산촌유학》이라는 일본 푸른문학은 시골 아이들한테 읽히려는 문학이 아니었겠지요. 오직 도시 아이들한테 읽히려는 문학일 테지요. 한국에서도 한국땅 도시 아이들한테 읽히려는 문학이겠지요. (4345.4.26.나무.ㅎㄲㅅㄱ)

 

..

 

  왜 이렇게 다들 '시골을 깎아내리며 돈을 벌고 문학을 하며 글을 쓰려' 할까요. 슬프고 슬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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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

 


무덤 둘레는
아이들 뛰놀기
참 좋구나.

 

흙과 풀이 곱고
나무내음 싱그러우며
햇살이 잘 든다.

 

어른들 죽어
흙으로 돌아가면
아이들 마냥 뒹굴며
흙하고 사귀어
흙기운 받아먹도록
한껏 사랑을 베푸는구나.

 


4345.4.11.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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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색잉꼬 1
테츠카 오사무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1년 9월
평점 :
품절


 


 거룩한 보배와 풋내기 보풀
 [만화책 즐겨읽기 146] 데즈카 오사무, 《칠색 잉꼬 (1)》

 


  두 아이가 두 팔 쪽 뻗고 잡니다. 아침이 밝습니다. 아이들은 깊은 밤에 자꾸 깨어 보채거나 뒤챘습니다. 밤새 아이들 다독이느라 곁에서 나 또한 잠을 거의 못 이룹니다. 자고 싶으나 자지 못하니 힘듭니다. 보채고 뒤채는 아이한테 두 차례 물을 먹이고 무릎에 누이다가 가슴에 안다가 마당에 내려와 바깥바람 쐬며 별을 보다가, 다시 무릎에 누이다가 가슴에 안다가 셈틀을 켭니다. 이렇게 잠을 못 자니 셈틀을 켜서 일을 하자 생각하고, 둘째를 무릎에 앉힙니다. 이럭저럭 있자니 아이가 고개를 까딱까딱하면서 눈은 안 감습니다. 아이를 무릎에 다시 눕힙니다. 고개를 떨구고 팔을 쭉 뻗으며 잠듭니다. 자리 깔고 방석 놓은 다음 가만히 눕힙니다. 이불을 덮습니다. 이제는 깊이 잡니다.


- “이런 여우에게 농락당하는 듯한 얘길 자네는 믿는단 말인가?” (16쪽)
- “나는 아마추어요. 전문 배우가 아니야. 노라 페이튼은 대배우, 천하에 이름을 떨치는 명배우지.” (105쪽)

 


  아이 얼굴을 바라봅니다. 자던 아이가 갑자기 팔을 들어 활갯짓을 할라치면 곧장 팔을 뻗어 가슴을 다독입니다. 무슨 꿈을 꾸다가 놀랐을까요. 이렇게 곁에 눕혀 재우니 아이한테 무슨 일이 있든 곧바로 손을 쓸 수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밤새 아이를 가슴에 눕히거나 팔베개를 하며 재우면, 아이가 자다가 놀란다거나 꿈결에 활갯짓을 할 때에 바로바로 다독일 수 있습니다. 첫째도 둘째도 곁에서 따숩게 토닥이는 손길에 마음을 놓습니다.


  차분히 가라앉은 아이를 바라봅니다. 이제 날이 훤합니다. 밤새 치대고 복닥였으니 아이들은 좀 늦게까지 자겠지요. 깊은 밤에 네 식구 조용히 잠자리에 들면, 집 둘레 논자락에서 목청 돋우는 개구리들 떼울음소리 들을 수 있습니다. 쉬를 누거나 첫째 아이 쉬를 누이러 밖으로 나오면 둘레에서 한꺼번에 터지는 개구리들 떼울음소리가 온몸으로 스며듭니다.


  곰곰이 생각에 젖습니다. 도시에서 살며 제법 먼 곳에서 자동차 지나가는 소리를 들을라치면 으레 잠이 깹니다. 집 앞으로 자동차가 지나가도 이 소리가 잠을 깨웁니다. 그러나, 개구리들 떼울음소리는 잠을 깨우지 않습니다. 새벽녘부터 울리는 들새와 멧새 소리도 잠을 깨우지 않습니다. 일어나고 싶으면 일어나도록 이끄는 소리요, 고단한 몸이면 더 쉬도록 달래는 소리입니다. 봄맞이 제비들 우리 집 처마에 집 손질 하느라 부산을 떨며 내는 소리도 우리 식구들 마음을 보드라이 어루만지는 소리입니다.

 

 


- “누군가, 스승이 있는가?” “아뇨, 없습니다. 자기류지요.” “좋아, 출연 조건은 뭔가? 추, 출연료는?” “출연료? 후후, 그런 건 필요없습니다.” (25쪽)
- “실례합니다만, 셜리 형사님은 아직 연애는 해 본 적이 없습니까?” “그런 일 한 번도 없어! 애당초 남자와 여자가 함께 붙어서 어울린다니 불결한 데다 시간 낭비야. 그런 것보다 범인을 쫓는 쪽이 훨씬 좋아.” (38쪽)
- “누구에게도 가르쳐 주지 않을 거야. 비록 형이라 해도. 유산은 누구도 손대지 못하게 하겠어.” “뭣 때문에?” “그건 저주받은 재산이야.” “건방진 소리 마. 어린애 주제에.” “파파가 도박이랑 마약으로 번 돈도 있지만, 대부분은 사람을 죽여서 모은 돈이라고!” “사람을 죽여? 누굴 죽였다는 거지?” “형은 파파가 한 일을 모르는 거야? 파파는 말이야, 요 근래 5∼6년 동안 인도차이나에서 배를 타고 탈출한 몇 십만 명이나 되는 난민의 배를 덮쳐서 약탈하는 것이 일이었어. 여자도 아이들도 갓난아기도 가리지 않고 죄다 죽여서는, 시체로부터 몸에 걸친 것들 전부를 빼앗은 거야!” (181∼183쪽)


  티없이 살아가는 목숨들이 내는 소리는 맑습니다. 티없으니까 맑겠지요. 돌이키면, 사람 또한 티없이 살아갈 때에 부르는 노래가 맑습니다. 티없이 꿈을 꾸는 사람들 말소리가 맑습니다. 티없이 사랑을 나누는 사람들 이야기소리가 맑습니다.


  내가 노래하는 소리는 해맑을 수 있습니다. 내가 이야기하는 소리는 드맑을 수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일 텐데, 내가 말하는 소리는 까칠할 수 있습니다. 내가 외치는 소리는 메마를 수 있습니다.


  내가 살아가는 결대로 내 입에서 소리가 터져나옵니다. 내가 꿈꾸는 무늬대로 내 손에서 글이 샘솟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빛깔대로 내 몸에서 향긋한 내음이 나거나 구린 냄새가 퍼집니다.


  아이들 웃음이라서 더 맑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티없이 살아갈 때에 비로소 아이들 웃음이 맑습니다. 어른들 웃음이라서 어둡거나 무겁지 않습니다. 어른이라는 허울을 뒤집어쓰고 어둡거나 무겁게 삶을 짓누르기에 어른들 웃음이 어둡거나 무거워요.


  사랑을 속삭이는 사람들은 사랑 가득한 노래를 부릅니다. 믿음을 부르는 차분하며 고즈넉한 삶은 믿음을 부르는 밥과 옷과 집을 짓습니다. 제 뱃속만 채우려는 시커먼 꿍꿍이는 시커먼 쇳소리를 냅니다. 알량한 재주로 눈속임하는 겉치레는 앙칼진 미운 짓으로 드러납니다.

 

 


- “마리코! 응석은 받아들이지 않겠어. 너는 그렇게 함부로 권총이나 공수도를 휘두르고 싶은 거냐? 그런 인민모자 같은 건 벗어던져! 때로는 일류 극장에 멋을 부리고 가 보라고. 내 마음을 모르겠니.” “멋을 부리라고 해도 이거 (옷) 한 장뿐인걸요.” (34∼35쪽)
- “발이나 손! 긴 머리! 그게 무대에서 돋보인다고 말하는 건가요? 아니요! 그런 건 나의 도구예요. 도구에 지나지 않아요! 발이나 머리가 연기를 하는 게 아니에요. 나 자신이 연기를 하고 있는 거라고요!” (96쪽)


  진주목걸이를 한대서 목이 진주가 되지 않습니다. 금가락지를 낀대서 손가락이 금덩이가 되지 않습니다. 은행계좌에 돈을 쌓아놓는대서 가멸찬 살림이 되지 않습니다. 밥상이 휘어지도록 맛난 먹을거리를 차린대서 배가 부르지 않습니다.


  내 마음이 진주와 같아야 진주다운 삶이요 몸이며 넋입니다. 내 마음이 환하게 빛나야 내 손가락뿐 아니라 내 발가락과 머리카락 모두 환하게 빛납니다. 내 마음에 사랑을 담아야 내 말마디에 따스한 손길 고이 뱁니다. 내 마음으로 사랑을 짓는 하루일 때에 늘 넉넉하면서 기쁜 삶을 누립니다.


  책을 더 많이 읽어야 똑똑해지거나 훌륭해지지 않습니다. 어떤 훈장을 잔뜩 달아야 거룩해지거나 높아지지 않습니다. 졸업장이나 상장을 잔뜩 벽에 붙여야 돋보이거나 우러러보이지 않습니다.


  똑똑해지자고 살아가는 하루가 아니거든요. 뽐내자며 살아가는 나날이 아니거든요. 이웃을 밟고 올라설 때에 좋은 삶이 되지 않거든요.


  아이를 안으며 생각합니다. 아이를 무릎에 누이며 생각합니다. 아이가 먹을 밥을 차리며 생각합니다. 아이가 입을 옷을 개고 빨래하며 생각합니다. 아이한테 말을 걸며 생각합니다. 내 삶에서 가장 대수로운 대목은 무엇인가. 내 하루에서 가장 빛나는 때는 언제인가. 내 생각 가운데 가장 슬기로운 꿈은 무엇인가.

 

 

 


- “카츠라, 카에데. 내가 그린 그림을 제대로 봤느냐? 몇 번을 고쳐 그렸는지 모르겠다만, 이 얼굴에는 죽음의 상이 배어나오고 있다!” “아버지의 기분 탓이에요. 그런 건 아무것도 안 보이는걸요.” “에에이! 너희들의 눈은 옹이구멍이냐. 그러고도 화가 후지타 츠기하라의 딸이라 할 수 있느냔 말이다. 이걸 봐라! 어느 걸 봐도 죽음의 상이 드러나 있다. 난 말이다, 생명감이 넘치는 살아 있는 그림을 그리고 싶은 거다.” (120∼121쪽)
- “언니는 늘 손해라든가 이익이라든가 하는 얘기뿐이네.” “150장이나 수상의 얼굴을 그린다고, 무슨 가치가 있는 거지! 더욱더 많이 다른 그림을 그려서 팔아야 한다고!” “언니는 화상인 카라쿠치 씨랑 약혼하고 나서는 그런 말만 하네.” “난 말이지, 재산이 필요해. 아버지의 아틀리에에 잠들어 있는 다른 그림을 전부 팔면, 10억 엔은 될 거야.” “난 단지, 아버지가 망상에서 해방되어서, 제대로 된 삶을 사시길 바랄 뿐이야.” (124쪽)
- “그 초상화만은 돈을 벌기 위한 속셈으로 그런 거였다. 나는 20년 전, 수상에게서 초상화를 의뢰받았을 때 처음으로 욕심에 눈이 흐려졌다. 이 무슨 한심한 근성이냐. 그때 나는 한심하게도, 어떻게 그려야 기뻐해 줄까, 칭찬을 받을까를, 신경쓰기 시작한 것이야. 내 그림에서는 생명의 빛이 사라져 버렸다. 카에데야, 만약 내가 전 재산을 버리고, 다시 한 번 처음부터 시작한다고 해도 실망하지 않겠니?” “아버지만 행복하실 수 있다면.” (132쪽)


  데즈카 오사무 님 만화책 《칠색 잉꼬》(학산문화사,2011) 첫째 권을 읽습니다. 만화책 이름이니 이렇게 적는다지만, ‘잉꼬’는 어느 새를 가리키는 일본말입니다. ‘鸚哥’를 일본말로 이처럼 읽을 뿐입니다. 한국말로 하자면 ‘사랑새’예요. ‘사랑앵무’라고도 한다지만, 그냥 ‘사랑새’입니다. “七色鸚哥”란 “일곱빛 사랑새”인 셈입니다.


  그러나저러나 책이름은 책이름입니다. 데즈카 오사무 님 만화 가운데에는 “넘버 세븐”도 있거든요. 이런 이름이야 가벼이 생각하며 지나갑니다. 다만, 한국사람 가운데 새한테 붙이는 이름 하나조차 찬찬히 생각하지 못하는 이가 퍽 많은데, 새이름 하나 살뜰히 생각하지 못하면서 《칠색 잉꼬》라는 만화책 속살은 얼마나 헤아릴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한낱 재미난 만화로만 여길는지, 그저 웃으며 덮을 만화로만 바라볼는지 궁금합니다.


  누군가는 재미나게 읽은 다음 덮을 테고, 누군가는 싱겁게 여기며 덮으리라 봅니다. 누군가는 꽤 낡은 작품이라 여길 수 있고, 누군가는 흔한 줄거리라 생각할 수 있습니다.


  따지고 보면, 아이를 낳아 돌보는 삶이란 참 ‘흔합’니다. 으레 ‘누구나’ 아이를 낳아 돌보잖아요. 나도 내 어버이가 낳은 아이요, 우리 아이들은 내가 낳은 아이예요. 어디에서나 갓난쟁이와 어린이를 마주합니다. 어디에서라도 할머니와 아저씨를 만납니다.


  그런데 바로 이런 흔한 삶, 너른 사람한테서 이야기가 샘솟습니다. 흔하게 부대끼는 삶에서 사랑이 샘솟습니다. 너르게 마주하는 사람들마다 빛나는 꿈이 있습니다.

 

 


- “저기, 이런 생활은 그만두고 어딘가로 떠나는 건 어때요? 코우 씨는 배우였잖아요. 다시 돌아가면 되잖아요.” “안 돼. 지금 와서 옛날로 돌아갈 수 있겠어. 지금의 나는 이제 쓰레기라고!” “자신을 가지세요.” (73쪽)
- “테츠오, 너는 로라처럼 되고 싶지 않겠지. 언제까지나 엄마가 말한 대로만 움직이지는 마라. 자신의 의지를 가져!” (159쪽)


  빼어나다는 연극 솜씨를 선보이는 ‘칠색 잉꼬’이기에 일곱 빛깔 무지개 같은 얼굴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누구라도 일곱 빛깔 무지개 같은 얼굴이요 마음이며 삶이에요. 이를테면, 무시무시하다는 독재정권을 휘두른다는 사람도 제 손자 앞에서는 활짝 웃으며 곤지곤지 잼잼 하고 말하지 않겠어요? 학교에서 학생들한테 손찌검을 하거나 몽둥이를 휘두르는 교사라도 밤에 잠들 때에는 아기마냥 보드라운 낯빛으로 예쁘게 꿈나라로 접어들지 않겠어요?


  바람이 붑니다. 봄바람이 붑니다. 봄바람은 마늘밭 마늘잎을 살짝살짝 건드리며 붑니다. 마늘잎은 푸르게 물결칩니다. 봄비 내린 논마다 물이 그득하고, 물이 그득한 논에는 개구리가 웁니다. 개구리 우는 논으로 숱한 새들이 찾아들어 먹이를 얻으려 합니다. 낮 동안 개구리는 조용합니다. 낮에는 온갖 새들이 온 들판과 멧자락을 가득 누비며 갖은 목소리로 노래를 부릅니다.


  바람소리는 누구한테나 바람소리입니다. 풀잎 눕는 푸른빛은 누구한테나 푸른빛입니다. 따사로운 햇살은 누구한테나 햇살입니다. 제비들 삐삐째째 소리는 누구한테나 새소리입니다. 싱그러운 이슬 달린 푸성귀는 누구한테나 푸성귀입니다.


  만화책 《칠색 잉꼬》는 사람들 가슴에 곱게 서린 거룩한 보배를 살며시 건드립니다. 사람들 스스로 느끼지 못하는 거룩한 보배가 어떤 빛깔인가 하고 가만히 이야기합니다. 사람들 스스로 바보스레 움켜쥐려는 힘·이름·돈이란 얼마나 덧없는 보푸라기 같은가 하고 보여줍니다. 그래, 삶은 재미있습니다. 사랑은 즐겁습니다. 꿈은 고맙습니다. (4345.4.26.나무.ㅎㄲㅅㄱ)

 


― 칠색 잉꼬 1 (데즈카 오사무 글·그림,학산문화사 펴냄,2011.9.25./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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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26 09: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파란놀 2012-04-26 12:56   좋아요 0 | URL
강만보라는 분은 한국사람인데,
한국에서 낸 사진책은 시중에 없더라구요 ㅠ.ㅜ

우째 일본에서만 이 책이 나오고
한국에서는 못 나오는지 ... @,.@

일본사람은 한국 제주도, 아니 '탐라나라'라는 곳을
무척 좋아하는 듯해요.

시바 료타로 님 책이 <탐라 기행>이기도 하지만,
이처럼 일본에서 생각 깊은 사람들은
'제주'가 일본 '오키나와'처럼 '식민지 이름'인 줄 알고는
'탐라'라는 이름을 쓰곤 해요. 오키나와 아닌 '류우큐우'라는
이름을 쓰듯 말이에요.

그런데 '류우큐우'도 왕국 이름이고, 이에 앞선 이 섬마을 토박이
이름은 또 따로 있다 하더라고요.

..

어쨌든... 아아, 고맙습니다 /@..@/

마녀고양이 2012-04-26 1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오랜 그림체입니다. 유행에 민감한 사람이라면
구식이야 하고 거들떠도 보지 않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랜 기간 두터운 팬층을 형성하고 인정받는 데즈카 오사무는 참 대단하네요....

겉에 취해서 속도 잃어버리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칠색 잉꼬, 사랑새... 이쁜 이름이예요.

파란놀 2012-04-26 12:56   좋아요 0 | URL
생각해 보니, <칠색 잉꼬>는 자그마치 서른한 해 묵은 만화책이군요...
1981년에 일본에서 나왔다 하거든요.

그나저나,
일산에서 데즈카 오사무 특별전시회 하지 않았던가요?
저는 가 보고 싶어도
너무 멀어서 가지 못했어요... ㅠ.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