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가 길을 잃었어요 네버랜드 우리 걸작 그림책 3
이형진 글 그림 / 시공주니어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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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고흥집으로 돌아가서 다시 붙일게요~ )

 


 함께 걸어가기에 좋은 길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163] 이형진, 《하나가 길을 잃었어요》(시공주니어,2003)

 


  우리 집 네 식구 도시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그리지 못합니다. 우리 집 네 식구 도시에서 이럭저럭 살림을 꾸리며 살아가는 모습이 어떠할까 하고 그리지 못합니다. 도시에서는 아이들이 자동차에 받힐까 끝없이 걱정해야 합니다. 도시에서는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들 모두 온갖 시끄러운 소리에 시달려야 합니다.


  도시에서 지내는 동안에는 도시가 얼마나 시끄러운 소리와 빛깔과 냄새로 가득한가를 느끼지 못하기 일쑤입니다. 도시를 벗어나 시골에서 며칠쯤 쉬든 하루쯤 누리든 여러 해 살아가든 하노라면, 사람과 풀과 흙과 햇살 모두를 살리며 보듬는 소리와 빛깔과 냄새란 무엇인가 하고 환하게 깨달을 수 있습니다.


.. “하나야, 정말 안 따라올래?” “싫어, 오빠가 또 내 장화 보고 놀렸단 말이야.” ..  (2쪽)


  어른들이 마음껏 흙을 밟을 수 있으면, 아이들은 마음껏 흙을 기거나 뒹굴거나 뛰놀 수 있습니다. 어른들이 흙을 밟을 생각이 없으면, 아이들은 흙을 밟을 수 없습니다. 어른들이 너른 풀과 싱그러운 바람을 누릴 수 있으면, 아이들은 너른 풀과 싱그러운 바람을 누립니다. 어른들이 자가용과 아파트와 쇼핑센터와 지하철을 누린다면, 아이들은 이러한 곳에 몸과 마음을 맞추어야 합니다.


  아이한테는 무엇이 좋은 놀잇감이 될까 생각해 봅니다. 아이한테는 어디가 좋은 놀이터가 될까 헤아려 봅니다. 백화점에서 장만하는 놀잇감이 아이들한테 좋을까 궁금합니다. 놀이공원이나 야구장이나 축구장이 아이들한테 좋을까 궁금합니다.


  아이들은 어떤 사람으로 살아갈 때에 아름다울까요. 아이들은 어떤 사랑을 꽃피울 때에 어여쁠까요. 아이들은 어떤 생각을 길어올릴 때에 맑게 빛날까요.


  아이들이 어떤 졸업장이나 자격증을 따야 한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어떤 학원이나 시설을 다녀야 한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어떤 과자나 음료수나 약을 먹어야 한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언제나 어른들과 똑같이 먹고 마시고 살아가고 느끼고 생각하고 사랑할 때에 가장 홀가분하고 좋으리라 느낍니다. 곧, 어른들부터 가장 좋은 밥을 스스로 찾아서 먹고, 가장 좋은 물을 스스로 찾아서 마시며, 가장 좋은 보금자리를 스스로 찾아서 누리고, 가장 좋은 꿈을 스스로 찾아서 빛내며, 가장 좋은 사랑을 스스로 찾아 돌볼 때에 하루하루 기쁘겠구나 싶어요.


.. 하나는 깜짝 놀랐어요. 아무것도 사러 온 게 아니잖아요. 하나는 고개를 홱 돌려 창 밖을 보았어요. 그제야 엄마 생각이 났어요 ..  (12쪽)


  아이들한테만 읽히는 책이란 없습니다. 어린이책은 어린이한테만 읽히는 책이 아니라, 어린이 눈높이에 맞추어 누구나 읽도록 빚는 책입니다. 갓난쟁이들 보라고 만든다는 그림책 또한 갓난쟁이들 머리를 북돋우고 생각을 키우는 그림책이 아니라, 갓난쟁이 눈높이로도 즐거우면서 누구한테나 즐거웁도록 빚는 책이에요.


  아이들한테 먹이는 밥이란, 아이들도 함께 먹을 수 있으면서 누구나 맛나게 먹을 만한 밥이란 뜻입니다. 아이들한테 들려주는 노래란, 또 아이들이 부르도록 하는 노래란, 아이들만 부르라는 노래가 아니라, 어린이와 푸름이와 어른 모두 즐겁게 누리면서 맑게 부르라 하는 노래라는 뜻입니다. 어린이노래는 ‘아이들만 부르는 유치한 노래’가 아니에요. 그러니까, 대중가요라는 이름으로 어린 아이들이 ‘가수가 되고 싶어’ 하는 ‘섣부른 돈벌이 직업쟁이’가 되도록 내모는 어른들이란, 어른들한테도 얄궂고 아이들한테까지도 얄궂은 슬픈 짓을 하는 셈입니다. ‘어린이노래를 부르는 가수’로도 즐겁게 살아가야지요. ‘k팝스타’라든지 ‘인기가수’라 하는 이름은 껍데기예요. 즐겁게 노래하고 싶은 삶이라면, 내 삶을 빛내는 노래말을 스스로 짓고, 내 사랑을 북돋우는 노래가락을 스스로 엮어, 내 꿈을 이루는 노래잔치를 언제 어디에서라도 마련하는 일이에요.


  음반이 잘 팔리는 일이 ‘가수’가 아닙니다. 텔레비전에 얼굴을 비추는 일이 ‘가수’가 아닙니다. 가수란, 노래쟁이란, 노래꾼이란, 노래누리란, 노래삶이란, 노래놀이란, 노래빛이란, 노래 한 마디가 내 삶에 곱게 스며들면서 내 둘레 모든 이웃과 동무한테 웃음빛과 삶빛을 들려주는 일입니다.


.. 개구리는 하나 목소리에 놀랐는지 아래로 폴짝 뛰어내렸어요. 그렇지만 이번엔 하나가 더 빨랐어요. “잡았다.” ..  (28쪽)


  이형진 님 그림책 《하나가 길을 잃었어요》(시공주니어,2003)를 읽습니다. 그림책에 나오는 ‘하나’는 그림책에서 길을 잃습니다. 그러나 그리 어렵지 않게 다시 길을 찾습니다. 그런데, 그림책 아이가 길을 잃었는지 안 잃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아이는 아이로서 스스로 가장 좋아하는 쪽으로 갔거든요. 개구리하고 놀고 싶기에 개구리 따라 저 가고픈 대로 갔어요. 그곳이 늪이든 논이든 멧자락이든 대수롭지 않습니다. 그곳이 도심지이든 빌딩숲이든 어느 가게이든 대단하지 않습니다.


  아이는 언제나 가장 즐겁게 놀고 싶습니다. 아이는 늘 가장 기쁘게 웃고 싶습니다. 아이는 노상 가장 신나게 하루를 누리고 싶습니다.


  굳이 얼굴 찌푸리고 싶지 않습니다. 구태여 코를 감싸쥐며 살고 싶지 않습니다. 괜히 싫거나 고단한 무언가를 맡고 싶지 않습니다.


  참말 스스로 가장 좋아하는 대로 살아야 가장 좋습니다. 스스로 가장 사랑스럽다 여기는 대로 말하고 생각하며 꿈꾸어야 가장 사랑스럽습니다.


  그림책에 나오는 어머니는 이녁 아이를 혼자 떼어놓고 어딘가 다녀오는 일이 스스로 가장 좋았을까요. 그림책에 나오는 어머니 스스로 괜시리 뿔을 내거나 짜증을 부리면서 스스로 가장 사랑스럽다 여길 만한 길하고 스스로 가장 멀어지고 만 셈 아닐까요.


  아이하고 즐겁게 나들이를 다니다가 왜 골을 내야 하나요. 아이하고 기쁘게 마실을 다니다가 왜 씩씩거리며 큰소리를 내야 하나요. 어버이 스스로 길을 버린 나머지 아이 또한 길을 버립니다. 어버이 스스로 뒤늦게 깨닫고는 눈물을 흘리니, 아이도 뒤늦게 깨닫고는 눈물을 흘립니다.


  부디 가장 좋은 사랑만 생각해 주셔요. 제발 가장 따스한 믿음만 헤아려 주셔요. 좋은 사랑을 먹고, 좋은 사랑을 나누며, 좋은 사랑을 들려주셔요. 맑은 꿈을 먹이고, 맑은 사랑을 심으며, 맑은 사랑을 돌보아 주셔요.


  그나저나, 그림책 줄거리는 도시 한복판에서 이루어지는 일일 텐데, 도시 한복판에서 개구리가 살아갈 수 있나 궁금합니다. 그림책을 빚은 이형진 님은 도시 한복판 가게나 여러 물건 모습은 아기자기하게 잘 그리시지만, 개구리 모습은 어딘가 엉성궂구나 싶습니다. 봄날 봄볕 받으며 깨어난 개구리 모습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림책 개구리하고는 너무 동떨어지는걸요. 그림결은 예쁘장하기는 한데, 개구리는 개구리다우면서 예쁘장하게 그릴 수 있으면 한결 아름다웠으리라 생각합니다. (4345.5.6.해.ㅎㄲㅅㄱ)

 


― 하나가 길을 잃었어요 (이형진 글·그림,시공주니어 펴냄,2003.12.15./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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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해인

 

 

  작은 시집 《작은 기쁨》(열림원,2008)을 읽는데, “시는 / 내 마음을 조금 더 / 착하게 해 주었다” 하는 노래 한 마디에 오래도록 눈길이 멎는다. 내가 글을 왜 쓰는가 하고 생각해 보니, 나 또한 내 마음을 내 손으로 착하게 다스리고 싶기 때문이로구나 하고 깨닫는다. 내 삶을 내 생각으로 예쁘게 일구고 싶기에 글을 쓰고, 내 꿈을 내 사랑으로 보듬고 싶기에 사진기를 쥐는구나 하고 느낀다.


  이해인 님은 수녀원에서 마흔 해를 넘게 살았다 하는데, 수녀원이란 어떤 곳일까. 수녀원에서 올리는 비손은 누구를 아끼거나 사랑하는 춤이나 노래일까. 수녀원에서 마주하는 사람들은 어떤 이야기를 품으며 어깨동무할까.


  참말, 착하게 살아가고 싶어 수녀원이라는 길을 걸어가며 싯말 몇 가닥 갈무리한 이해인 님이라 할 테지. 문학이나 예술이나 어떤 이름이 붙기 앞서, 스스로 착한 삶을 좋아하며 빙긋 지은 웃음 한 자락이 싯말 하나로 태어났겠지. 이해인 님과 이웃한 사람들이 저마다 착하게 살아가고 싶은 꿈과 예쁘게 사랑하고 싶은 이야기를 조곤조곤 나누면서 하루하루 고맙게 맞이하며 누릴 수 있기를 빈다. (4345.5.6.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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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2-05-06 11:50   좋아요 0 | URL
제 사무실 책꽂이에 놓여 있는 이해인 수녀님 시집은 마음이 어수선할때,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이 생길때 읽으면 도움이 됩니다. 정갈하게 해주지요.

파란놀 2012-05-07 06:05   좋아요 0 | URL
마음속으로 바라는 대로 좋은 이야기를 찾으시리라 생각해요
 


 집안일은 즐거워

 


  집안일은 즐거워. 아침 일찍부터 똥 뽀지작 하며 바지랑 기저귀랑 기저귀싸개랑 한꺼번에 푸진 똥내음 가득 풍기는 둘째 아이 옷가지 빨래하는 집안일은 즐거워. 붕붕 방방 뛰고 놀고 닫고 노래하는 첫째 아이 먹일 밥을 하는 집안일은 즐거워. 네 식구 살아가는 시골집 안팎을 쓸고닦는 집안일은 즐거워. 그러나 나는 아직 집안일 건사를 잘 하지는 못해. 참 더디게, 참 천천히, 참 느릿느릿 하나씩 배우고 깨닫고 느끼고 생각하면서 살아가.


  손에서 물이 마를 새 없어. 손에서 일을 놓는 겨를 없어. 눈에서 아이들 모습이 사라지는 적 없어. 눈에서 일거리 놓치는 틈 없어. 숨을 돌리지 못하다 싶도록 복닥이느라 한 달이 어찌 지나고 한 철이 어떻게 흐르는가를 깜빡 잊기도 하니, 어느새 감자 심는 때이고, 어느새 감꽃 필락 말락 하는 때로구나. 아이들은 무럭무럭 자라고, 어른들도 튼튼하게 큰다. 바람은 맑고 햇볕은 따스하며 냇물은 고즈넉하네. 들새와 제비가 마음을 달래 주고, 개구리와 풀벌레가 생각을 어루만져 준다.


  식구들 다 함께 들마실을 나온다. 식구들 나란히 멧마실을 다닌다. 식구들 어깨동무하며 밤하늘 누리며 하루를 마감한다. (4345.5.6.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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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12-05-06 11:11   좋아요 0 | URL
늘 집안 일 하기 싫어 툴툴거리는 저를 반성하게 되네요.
들마실 하기 정말 좋은 날씨입니다

파란놀 2012-05-07 06:01   좋아요 0 | URL
그저 즐겁게 마주하셔요~
 


 나무 책읽기

 


  시골에서 열 해쯤 살아야 시골사람이 된다고들 말합니다. 사진을 한다 할 때에 열 해쯤 해야 비로소 눈이 트인다고들 말합니다. 인천에서 살 적에 인천물을 열 해쯤 먹어야 바야흐로 인천사람이라 할 만하다고들 말합니다.


  그러나,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 스스로 열 해가 지난 누군가를 바라보며 당신 시골사람이요, 당신 사진하는 사람이요, 당신 인천사람이요, 하고 받아들이는 듯하지는 않습니다. 울타리 하나를 세워 사람들을 몰아세우고, 이 울타리를 넘으면 다른 울타리를 세워 다시 몰아붙이며, 이 울타리를 또 넘으면 새삼스러운 울타리를 거듭 마련해 자꾸 닦달합니다.


  나는 내 나름대로 생각합니다. 시골에서 하루를 살아도 시골사람입니다. 사진기를 갓 장만했어도 사진으로 바라보는 눈을 새로 틉니다. 인천에서 한나절을 보냈어도 인천사람이라 할 만합니다.


  스무 해를 살아야 시골사람이 되지 않습니다. 마흔 해를 뿌리내려야 토박이가 되지 않습니다. 예순 해 한길을 걸어야 사진빛을 뽐내지 않습니다. 시골을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은 하루를 살아도 시골을 아끼고 사랑합니다. 사진을 좋아하거나 사랑할 사람은 꼭 한 번 사진기를 손에 쥐어도 좋은 빛과 사랑스러운 그림을 빚습니다. 스스로 가장 즐겁게 누릴 삶을 헤아린다면, 어디이든 이녁한테 고향이 되고 보금자리가 됩니다.


  시골집에서 지내며 늘 나무를 바라봅니다. 어디를 둘러보아도 온통 나무입니다. 도시로 마실을 나오며 나무만 바라봅니다. 어디를 둘러보아도 높고낮은 건물과 아스팔트와 자동차로 득시글거린다 하지만, 내 눈에는 나무만 한껏 들어옵니다. 나무가 숨쉬는 소리를 듣습니다. 나무가 노래하거나 우는 소리를 듣습니다. 나무가 부르는 소리를 듣습니다. 나무가 웃는 소리를 듣습니다. 나무가 잠을 자는 소리를 듣습니다. 나무가 꿈을 꾸는 소리를 듣습니다.


  도시에서 살아가는 나무는 참으로 가녀립니다. 늘 아프고 늘 콜록거립니다. 도시에서 뿌리내린 나무는 참으로 앙상합니다. 잎이 시들시들하고 힘알이가 없구나 싶습니다. 그러나, 모두 나무입니다. 모두들 봄맞이 푸른 잎사귀 달려고 힘쓰는 나무입니다.


  도시에서 마주하는 사람들은 도시에서 자라야 하는 나무처럼 힘알이가 없으며, 갖은 때와 먼지를 잔뜩 머금었다고 느낍니다. 도시에서 스치는 사람들은 도시에서 뿌리내려야 하는 나무처럼 가냘프고 아프며 힘들구나 싶습니다.


  모두들 사랑스레 살아갈 수 있기를 빕니다. 저마다 아름다이 뿌리내리며 어깨동무하기를 바랍니다. 서로서로 예쁘게 어깨동무하면서 고운 나날을 빛내는 꿈을 꿉니다. 내 시골집 나무를 그립니다. 내가 나들이를 온 도시에서 가만가만 바라보는 나무를 떠올립니다. 이 나무들과 함께 내가 살아가고, 내 목숨과 함께 나무들이 숨을 쉽니다. (4345.5.5.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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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12-05-05 10:05   좋아요 0 | URL
어릴때부터 보아온 커다란 나무 혹은 추억이 깃든 나무는 나이가 들어서도 마음에 안식이 될 것같아요. 존재감만으로도 힘이되는 게 나무네요. 전 딱이 생각나는게 없지만 집에 있었던 작은 포도나무 하나가 생각나네요

파란놀 2012-05-05 11:28   좋아요 0 | URL
좋은 나무 한 그루가
오래오래 내 마음속에서
사랑스러운 이야기를
이어가리라 믿어요~

순오기 2012-05-05 12:37   좋아요 0 | URL
오랜만에 들러 주욱 훑어봤습니다~~~~ 요즘 서재 마실도 못했거든요.
네식구가 파주로 마실 하셨네요~~ ^^

파란놀 2012-05-06 07:41   좋아요 0 | URL
네, 처가 식구 있는 일산 거쳐
오늘 시골집 고흥으로 돌아간답니다 !!!
@.@
 

[함께 살아가는 말 91] 나중에 내요

 


  파주책도시로 마실을 나옵니다. 파주 책도시에서 사진잔치를 열기에 전남 고흥에서 퍽 먼 마실을 나옵니다. 바깥으로 나온 만큼 바깥에서 밥을 사다 먹고, 잠을 잘 자리를 따로 얻습니다. 이틀을 묵은 파주에서 나오며 1층 손님맞이방에 열쇠를 돌려주는데 “‘바우처’로 하시면 되지요?” 하고 묻습니다. “네?”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해 되묻습니다. 문득, ‘바우처라 하는 말이 나중에 다른 분이 삯을 치르도록 하는 일을 가리키는가’ 하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 님이 나중에 돈을 치러 주신다는 말이지요?” 하고 이야기합니다. 네 식구 함께 짐을 꾸려 나오며 다시 곰곰이 생각합니다. 한국사람끼리 주고받는 말인데 한국사람이 알아들을 만한 말을 쓰지 않는 일이 너무 흔한 이 삶이 얼마나 좋거나 얼마나 아름답거나 얼마나 즐거웁다 할 만한지 아리송합니다. 한국에 호텔이라는 곳이 옛날부터 있은 적이 없으니 ‘호텔’이라는 이름부터 영어에서 가져다 쓴다 하지만, 이런 낱말 저런 낱말 몽땅 영어로 적어야 하지는 않습니다. 자동차를 한국에서 처음 만들지 않았으니 자동차를 이룬 곳곳을 가리키는 이름도 한국말로 따로 없을밖에 없으나, 굳이 ‘백미러’라 할 까닭 없이 ‘뒷거울’이라 하면 됩니다. 내 이웃을 생각하고 내 삶을 사랑할 줄 안다면, 잠을 자는 호텔 이름부터 이곳에서 쓰는 숱한 말마디를 한결 예쁘며 사랑스레 보듬을 수 있겠지요. 아이들한테 물어 보셔요. 아이들하고 좋은 말을 함께 생각해 보셔요. (4345.5.5.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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