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언니 마음을 살찌우는 좋은 그림책 8
마사 알렉산더 그림, 샬롯 졸로토 글, 김은주 옮김 / 사파리 / 2002년 5월
평점 :
절판



 어떻게 좋아할 삶인가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165] 마사 알렉산더·샬로트 졸로트, 《우리 언니》(언어세상,2002)

 


  아침부터 저녁까지 내내 붙으려 하는 아이가 새벽에 다시금 깨어 새벽 내내 곁에 있도록 합니다. 하루에 한 시간쯤, 새벽에 한 시간쯤, 낮에 한 시간쯤, 아이가 혼자 새근새근 달게 잠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한 시간 짬을 얻어 호젓하게 어떤 일 한 가지를 할 수 있으면 얼마나 홀가분할까 하고 생각합니다.


  깊이 잠들었다 싶어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나 옆방으로 와서 셈틀을 켭니다. 몇 분 지나지 않아 둘째 아이가 낑낑거리며 깨더니 아버지한테 기어옵니다. 내 무릎으로 올라와서 척 눕습니다. 곁에 누나도 자고 어머니도 자는데, 이렇게 살을 부비며 자야 잠이 잘 오는지 모르고, 꿈나라에서 길을 잃고 헤맸는지 모릅니다. 아이 삶에서 헤아리자면, 하루 한 시간 떨어져 지낸다는 일은 아예 생각할 수 없는 일이 될는지 모릅니다.


.. 언니는 언제나 동생을 돌보았어요. 폴짝폴짝 줄넘기를 하면서도 동생을 지켜보았고 ..  (4쪽)

 


  읍내에서 토마토 어린싹과 오이 어린싹을 장만합니다. 넉넉히 장만하고 싶지만, 여러모로 집일과 바깥일로 바쁘다며 뒷밭을 바지런히 일구지 못해, 작은 두 고랑에 심을 만큼만 장만합니다. 둘째가 많이 어려 여러모로 손이 많이 가야 하다 보니, 둘째를 붙드느라 밭고랑 일구기가 만만하지 않습니다. 얼른 스스로 서고 스스로 걸어 주어야 홀가분하게 밭을 일굴 텐데, 둘째는 돌을 코앞에 두고도 아직 스스로 서서 걸을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두 다리로 신나게 뛰노는 누나를 날마다 쳐다보면서도 스스로 서서 걸을 마음이 생기지 않는가 봅니다.


  그러나, 둘째 아이가 씩씩하게 서서 씩씩하게 걸을 수 있는 날이 되면, 이제부터 ‘기어다니고 들러붙기만 하던 모습’이 언제 있었느냐는 듯 마음대로 걷고 뛰고 달리며 눈앞에서 사라지겠지요. 어디로 갔는지 안 보여, 아이 찾느라 바쁜 날을 맞이할 테지요. ‘품 안 아기’로 지낼 날은 얼마 안 남았다 할 만합니다. 늘 품어 달래며 토닥일 아기로 지낼 마지막 며칠일는지 모르니, 이 나날을 온통 아끼고 사랑하며 누릴 노릇이라 할 만합니다.


.. 동생은 데이지 꽃밭 속에 옹크리고 앉았어요. 멀리서 언니의 목소리가 들렸어요. 언니는 큰 소리로 동생을 애타게 찾고 있었어요 ..  (14∼15쪽)

 


  요즈막 저녁마다 두 아이를 나란히 재웁니다. 먼저 둘째 아이를 가슴에 얹은 다음 노래를 부릅니다. 어린이노래이기 앞서 어버이로서 좋아하는 노래를 부릅니다. 이원수 님 동시에 가락을 붙인 노래를 찬찬히 부릅니다. 한두 가락 부른들 아이가 잠들지 않습니다. 열대여섯 가락쯤 불러야 둘째가 스르르 잠듭니다. 열 가락 남짓 부를 즈음 첫째 아이가 옆으로 찾아와 눕고, 첫째 아이가 누을 즈음 잠든 둘째를 토닥이던 손으로 첫째를 토닥이며 예닐곱 가락쯤 노래를 부릅니다. 한 시간 남짓, 때로는 두 시간 가까이 쉬잖고 자장노래를 부릅니다.


  자장노래는 아이들을 재우는 노래일 수 있고, 자장노래는 아이들과 살아가는 내 마음을 북돋우는 노래일 수 있습니다. 아이들을 재우며 자장노래를 부르며 생각합니다. 아이들하고 함께 즐거이 부를 노래일 때에 자장노래로 부를 만합니다. 아이들과 낮에 기쁘게 놀며 부를 노래이기에 저녁나절 나란히 잠자리에 누워 부를 만합니다. ‘어린이’노래라는 이름이지만, 어린이노래란 어린이 눈높이에 맞추어 모든 사람들이 사랑과 꿈과 믿음을 담뿍 싣는 이야기노래가 되는구나 하고 느낍니다. 오늘날 온누리를 휘감는 대중노래로는 아이들을 사랑하고 꿈꾸며 믿기가 퍽 어렵겠다고 느낍니다. 어린이노래는 삶을 사랑하는 노래라면, 대중노래는 돈을 버는 노래가 될 테니까요.


.. 지금은 그런 잔소리하는 언니가 없어요. 햇살을 받아 빛나는 데이지 꽃들은 바람결에 한들거렸고, 커다란 벌이 윙윙 소리를 내며 날아다녔어요 ..  (17쪽)

 

 


  마사 알렉산더 님 그림과 샬로트 졸로트 님 글이 어우러진 그림책 《우리 언니》(언어세상,2002)를 읽습니다. 낮나절 둘째를 무릎에 앉히고 읽습니다. 동생을 무릎에 앉히고 그림책을 읽으니 첫째 아이가 슬금슬금 쳐다보다가 아버지 곁으로 다가옵니다. 첫째도 그림책 그림을 바라보며 아버지 목소리를 듣습니다. 이러다가 얼마쯤 지나 첫째는 첫째대로 저 놀고픈 대로 놉니다.


  두 아이가 이 그림책 줄거리를 알 수 있을는지는 모릅니다. 두 아이가 이 그림책을 좋아할 만한지는 모릅니다. 다만, 어버이로서 내가 이 그림책을 좋아할 만하면 넉넉하리라 느낍니다. 두 아이 어버이는 서른여덟 나이에 이 그림책을 좋아해 주었으니, 두 아이도 나중에 천천히 자라며 이 그림책을 좋아해 주면 됩니다. 아이들이 여덟 살이 될 때에 좋아해 줄 수 있고, 열여덟이나 스물여덟쯤에 비로소 좋아해 줄 수 있습니다.


  삶과 꿈과 사랑을 아끼는 넋을 아이들 스스로 북돋울 수 있으면 됩니다. 삶과 꿈과 사랑을 보살피는 손길을 아이들 스스로 가다듬을 수 있으면 됩니다. 즐거이 누릴 삶이고, 기쁘게 꽃피울 꿈이며, 예쁘게 이룰 사랑입니다. 어느 한쪽으로 이끌지 못하는 삶입니다. 어느 한쪽으로 몰아세울 수 없는 꿈입니다. 어느 한쪽으로 나아가야 아름답다 하는 사랑이 아닙니다.


  들꽃은 선 채 바라보아도 예쁘고, 앉아서 바라보아도 예쁩니다. 이쪽에서 바라보든 저쪽에서 바라보든 언제나 예쁩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달음박질을 쳐도 예쁜 아이들입니다. 한 자리에 쪼그려앉아 조잘조잘 떠들어도 예쁜 아이들입니다.


.. 동생이 울면 언제나 언니가 달래 주었는데, 언니는 혼자였어요. 우는 언니를 따뜻하게 안아 주거나, 손수건을 건네 주는 사람도 없었어요 ..  (21쪽)

 


  어떻게 좋아할 삶인가 생각합니다. 어떻게 누릴 새 하루일까 생각합니다. 어떻게 차려서 어떻게 즐길 새 아침 새 밥상일까 생각합니다. 어떻게 건사해서 어떻게 빨래하고, 어떻게 물을 받아 두 아이 어떻게 물놀이를 시킬까 생각합니다.


  내 마음속에서 맑은 넋으로 맑은 목소리 샘솟도록 할 때에 즐거우리라 느낍니다. 내 가슴속에서 밝은 얼로 밝은 이야기 울려퍼지도록 할 때에 기쁘리라 느낍니다. 좋아할 만한 삶을 스스로 빚고, 사랑할 만한 꿈을 스스로 일굽니다.


  스스로 살아가는 하루입니다. 스스로 빛내는 한삶입니다. 스스로 돌보며 스스로 웃고 떠드는 하루입니다. (4345.5.9.물.ㅎㄲㅅㄱ)

 


― 우리 언니 (마사 알렉산더 그림,샬로트 졸로트 글,김은주 옮김,언어세상 펴냄,2002.5.30./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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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째 아이 새 고무신

 


  첫째 아이 고무신이 작다. 새로 사야 한다고 생각하다가 때를 놓쳤더니 그만 10미리나 작은 고무신을 그냥 신고 다닌 셈이었다. 155에서 165로 껑충 뛴다. 이제 155 고무신은 동생이 물려받겠지. 첫째 아이 고무신은 하도 자주 신고 하도 온갖 곳을 두루 뛰어다니느라 까맣게 밴 때가 지워지지 않는다. 솔로 박박 문질러도 좀 꼬질꼬질해 보인다. 첫째 아이 첫 고무신은 아이가 서울마실을 하다가 전철을 내릴 때에 기찻길에 떨어뜨려 한 짝을 잃었다. 155 고무신은 두 짝 모두 잘 건사하며 남길 수 있어 둘째 아이한테 물려준다. 둘째가 부지런히 기고 놀며 먹는 하루하루 누리며 부디 이 고무신 예쁘게 아껴 주기를 빈다. (4345.5.9.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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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12-05-09 10:34   좋아요 0 | URL
진짜 고무신이네요^^
저희 딸도 아기때는 노란 고무신 사주었었어요
고무신이 막 놀기에는 편하지요

파란놀 2012-05-10 06:41   좋아요 0 | URL
쉽게 벗고 신으면 돼요.
그리고 가장 수수하면서 참 예쁩니다.
 


 시를 선물한다

 


  마음으로 사귈 만한 님한테 시를 한 자락 써서 드린다. 짤막하게 적은 글월이 되든 길디길게 늘어놓는 푸념이 되든 모든 글은 시라고 느낀다. 때때로 따로 ‘시’라는 이름으로 글을 쓴다. 조그마한 쪽종이가 되든 널따란 그림종이가 되든 짧은 글월이나 싯말 몇 마디 적바림한다. 마음으로 사귈 만한 님한테 내 좋은 넋을 실어 보낸다.


  나한테는 싯말이 있기에 시를 선물한다. 내게는 시노래가 있으니 시를 보낸다. 이웃 할아버지는 감알을 선물한다. 이웃 할머니는 시금치를 선물한다. 옆지기는 뜨개옷을 선물한다. 두 아이는 웃음과 수다를 선물한다. 들꽃은 푸른 잎사귀를 선물한다. 천천히 굵어지며 우람하게 뿌리내리는 나무는 거룩한 삶발자국을 선물한다. 깊은 밤 온 들판 맑게 울려퍼지는 밤새 소리를 들으며 생각한다. 내 마음을 실어 옮길 수 있는 한 가지가 무언가 하고 느낄 때에 내 삶이 사랑스럽다. (4345.5.9.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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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우리 말 93] Caution미끄럼주의

 


  경기도 파주 책도시에 있는 숙소에서 잠을 잔다. ‘숙소(宿所)’란 “묵는 곳”을 가리킨다. 이곳 숙소 이름은 ‘guest house 紙之鄕’이다. 따로 한글로 안 적고 ‘게스트 하우스’와 ‘지지향’을 알파벳과 한자로 적는다. 때로는 ‘hotel 紙之鄕’으로도 적으나, 어떻게 적든 한국말이나 한국글로는 안 적는다. 나라밖에서 손님들 찾아와 이곳에서 으레 묵기에 영어로 이름을 지었나 헤아려 본다. 한자로 나란히 적은 이름은 지구별을 지구마을로 여기는 매무새라고 생각해 본다.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하다. 왜 한국사람은 한국말로 ‘숙소’나 ‘여관’이나 ‘호텔’ 같은 곳을 일컫는 낱말을 짓지 않을까. 따로 한국말로 안 짓더라도 이런 한자말과 저런 영어로 적으면 좋다고 여길까. 이러거나 저러거나 대수롭지 않을 뿐더러 마음쓸 일이 없다고 느낄까. 곰곰이 따지면, ‘hotel’은 ‘호텔’로 적을 때가 가장 나을는지 모른다. 그러면 ‘guest house’는 어떻게 적어야 할까. ‘紙之鄕’은 “종이의 고향”을 뜻한다 할 텐데, 왜 한국말로 “종이 고향”이나 “종이 마을”이나 “종이 나라”처럼 이름을 짓지 않았을까. 나라밖 사람들이 한국으로 찾아올 때에는 한국 문화와 삶터와 이야기를 느끼고 싶어 할 텐데, 한국사람 스스로 한국말로 한국 문화와 삶터와 이야기를 돌보지 않는다면, 한국사람이 바깥으로 보여줄 만한 꿈이나 사랑은 무엇이 될까. 하룻밤 묵는 곳으로 들어가 두 아이 씻기려 하다 보니, 씻는 자리 유리문에 “Caution미끄럼주의”라고 적힌다. ‘Caution’은 “잘 살피라”는 뜻일 테니 “미끄러워요”나 “잘 살피셔요”라 적어야 올바르지 않을까 궁금하다. (4345.5.8.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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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촌 유학 - 제13회 미메이 문학상 대상 수상작
나카야마 세이코 지음, 서혜영 옮김 / 도서출판 문원 / 2012년 2월
평점 :
품절



 도시에는 숲이 있어야 해요
 [푸른책과 함께 살기 93] 나카야마 세이코, 《산촌 유학》(문원,2012)

 


- 책이름 : 산촌 유학
- 글 : 나카야마 세이코
- 그림 : 우메다 후지오
- 옮긴이 : 서혜영
- 펴낸곳 : 문원 (2012.2.29.)
- 책값 : 9000원

 


  학교가 처음 생긴 뒤부터, 무언가 배우려는 뜻을 품은 사람들은 학교가 있는 곳으로 찾아갑니다. 학교는 깊은 두멧자락 시골마을에도 서지만, 사람들이 조금 더 쉽게 찾아갈 수 있도록 읍내나 도시 한복판에 서곤 합니다. 시골마을에는 자그마한 학교가 있다면 도시에는 커다란 학교가 있습니다. 시골마을에 대학교가 자리잡는 일은 드물지만, 도시에서는 대학교가 쉽게 생깁니다. 다른 나라가 어떠한가를 살피기 앞서 이 나라를 살피면, 한국에서 내로라한다는 대학교는 으레 서울에 몰립니다. 서울 바깥에는 ‘내로라한다는’ 대학교가 서지 못합니다.


  사람들이 쉬 드나들거나 자주 찾아올 만한 도시에 학교가 서야 한다고들 말합니다. 극장도 책방도 도서관도 학원도 이것도 저것도 모두 도시 한복판에 서야 한다고들 말합니다. 둘레에서 으레 이렇게 말하기에 나 또한 어릴 적부터 이 같은 생각에 천천히 물들었습니다. 제아무리 좋다 하는 학교나 시설이나 기관이라 하더라도, ‘더 많은 사람이 쉽고 빠르게’ 찾아갈 만하지 않다면 부질없지 않겠느냐 여겼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더 많이 살아가는 도시라서 모든 시설과 학교가 도시에 모여야 할까요. 나부터 내 생각을 다스리면서 깨닫습니다만, 학교가 도시에 서야 할 까닭이란 없었구나 싶어요. 도서관도 박물관도 기념관도 체육관도 …… 어느 하나 도시에 서야 할 까닭이 없구나 싶어요. 도시에 무언가 서야 한다면 꼭 한 가지라고 느껴요. 바로 ‘숲’이라고 생각해요.


.. 오른쪽을 봐도 왼쪽을 봐도, 앞을 봐도 뒤를 봐도 온통 초록이다. 초록색 사이로 시냇물이라기에는 조금 큰 물길을 따라 맑은 물이 흐르고, 드문드문 보이는 기와지붕도 모두 같은 초록색이다 … “낡은 집이지? 지은 지 백 년은 됐을걸.” 현관의 큰 미닫이문을 열면서 아줌마가 말했다. 그 집은 무척 낡아 보였다. 에어컨도 달려 있지 않은 옛날 집이다. 그럼에도 집 안 공기가 서늘한 것은 지붕이 크고 천장이 높기 때문일까? … 별이 이렇게 밝게 빛난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어쩐지 딴세상에 온 것 같았다. 일본은 어디나 비슷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소리, 냄새, 색깔, 빛, 바람…… 여기는 내가 사는 곳(도쿄)과는 완전히 다르다 ..  (7, 22, 26쪽)


  도시에는 다른 시설이나 기관은 한 가지도 없어도 되리라 느낍니다. 도시에 대학교뿐 아니라 박물관이나 기념관 또한 한 곳도 없어도 되리라 느낍니다. 그러나, 도시에 숲이 없다면, 나무그늘과 들판이 없다면, 논이랑 밭이 없다면, 냇물이랑 골짜기랑 멧자락이 없다면, 이런 데에서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도시에 사람들이 많이 몰린 까닭은 학교 때문이 아닙니다. 돈 때문입니다. 먼먼 옛날부터 어느 나라에서든 도시가 이루어지는 까닭은 돈이 모이기 때문입니다.


  어른들은 돈 때문에 도시를 만듭니다. 어른들은 돈을 거머쥐려고 도시를 더 크게 키웁니다. 이렇게 어른들이 웅성웅성 모여 돈벌이를 하다가 남녀가 짝을 지어 아이를 낳고, 아이를 낳다 보니 수많은 아이들을 가르칠 겨를이 없습니다. 시골에서는 어버이와 아이가 숲과 들과 바다에서 함께 뒹굴며 서로 가르치고 배우지만, 도시에서 어버이 자리에 설 어른들은 돈을 버느라 바빠요. 언제나 돈을 벌고 늘 돈을 생각합니다. 도시에서 돈을 버는 어른들은 아이들하고 하루 내내 복닥이거나 뒹굴면서 삶을 가르치고 배우는 흐름을 읽지 못해요.


  곰곰이 따지면, 학교는 시골에 서야 올바르지만, 시골에서는 따로 학교라는 울타리가 없어도 됩니다. 도시는 학교가 설 만한 터가 아니지만, 도시 어른들은 아이들을 즐거이 가르치고 아이들한테서 스스럼없이 배울 짬이 없는 나머지, 따로 학교를 세웁니다. 따로 세운 학교에 아이들을 넣고, 아이들한테 삶 아닌 지식을 물려줄 어른을 새로 전문직업인으로 키웁니다. 왜냐하면, 아이들이 전문직업인 자리에 설 어른한테서 삶을 배운다면 이 아이들은 ‘돈만 벌 뿐 삶을 가르치지 못하는 어버이’ 곁을 금세 떠나거든요. 삶을 배울 수 없는 어버이한테서는 사랑을 배우지 못합니다. 삶을 들려주지 못하는 어버이한테서는 꿈을 듣지 못합니다. 삶을 보여주지 않는 어버이한테서는 이야기를 얻지 못합니다.


.. 재밌는 건 학생수가 적어서 교장 선생님이 전교생의 얼굴을 모두 알고 있다는 것, 아이들을 부를 때도 별명으로 부른다는 것이다 … 우리 (도쿄) 학교에서는 다른 학년과는 사이가 좋아지는 일이 없다. 그런데 여기서는 학년이 다른 건 크게 상관이 없는 모양이다. 2학년 아이가 (5학년) 아키라를 친구처럼 그냥 “아키라!” 하고 불렀고 … 인원수가 적어서 여자아이들과 저학년 아이들도 함께 시합을 했다. 저학년이 들어오면 공의 힘이 약하거나 패스를 해도 공이 제대로 안 가서 좀 헤매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런 데에는 이미 익숙한 듯, 그렇다고 저학년 아이를 빼놓고 시합을 하지는 않았다 ..  (22, 40∼41쪽)


  도시에는 책방이 없어도 됩니다. 도시에서 돈벌이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는 책방에 찾아가서 마음을 살찌우는 책을 읽을 겨를이 없으니까요. 도시에서 돈벌이 일에 매인 사람으로서는 책방으로 나들이를 하면서 마음을 착하고 환하게 빛낼 책을 끌어안을 틈이 없으니까요.


  도시에는 책방이 많아도 오늘날 도시사람은 책방마실조차 안 합니다. 인터넷으로 책을 삽니다. 인터넷으로 처세책과 자기계발책과 문학책과 인문책만 사다 읽습니다. 정작 삶을 밝히는 책은 사다 읽지 못하고, 애써 삶을 밝히는 책을 사다 읽어도 ‘이야기를 느낄 가슴’이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왜 도시사람은 삶을 밝히는 책을 읽으면서도 삶을 못 느끼고 말까요.


  돌이키면 나부터 지난날 도시에서 살며 이와 같았다 할 텐데, 도시에는 숲이 없기 때문에 숲넋을 삶으로 아로새기지 못합니다. 도시에서 살아가며 숲을 끌어안고 숲을 아끼며 숲을 어깨동무하는 매무새일 때라야 비로소 책을 읽을 수 있습니다. 숲을 모르면서 책을 읽지 못합니다. 숲하고 사귀지 않으면서 책을 사귀지 못합니다. 숲을 사랑하지 않을 때에는 책을 사랑하지 못합니다.


  도시에는 다른 무엇보다 숲이 있어야 합니다.


.. 일어나자마자 집안일을 도우라니, 이건 또 뭐야! 야채 주스를 마시면서 멍하니 텔레비전을 보고 있으면, 밥이 나오는 게 아침이잖아? 집안일을 돕다니! …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아이를 잃은 할머니에게는 아직도 전쟁이 계속되고 있는 거야. 지금도 때때로 꿈속에서 그 아이를 찾고 계신단다.” 등을 둥글게 웅크린 채 흐느끼는 할머니의 모습이 어둠 속에서 희뿌옇게 보였다. 잠이 완전히 깨고 말았다. 이부자리로 돌아왔지만 도저히 잠이 올 것 같지 않았다. 희생자 몇 명, 사망자 몇 명, 매일처럼 흘러나오는 텔레비전 뉴스나 신문의 글자. 하지만 숫자로는 아무것도 전할 수 없다. 사람을 숫자로 나타내는 건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다 ..  (29, 102∼103쪽)


  숲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은 삶을 누리지 못합니다. 숲을 누리지 못하는 오늘날 도시사람은 삶을 누리지 못합니다. 다만, 도시에 가득한 돈을 누립니다. 도시에 넘치는 돈으로 값싸거나 값비싼 놀음놀이에 빠져듭니다. 어떻게 살아가야 즐거운가를 생각하지 못하고, 어떻게 돈을 써야 할까를 따집니다. 어떻게 사랑할 때에 기쁜가를 헤아리지 못하고, 어떻게 돈을 굴릴까를 살핍니다.


  ‘산촌 유학’이란, 곧 ‘시골 배움마실’이란, 숲을 잃거나 잊은 도시에서 생각을 잃거나 잊고 싶지 않은 어른들이 당신 아이들한테 생각을 일깨우고 사랑을 보여주며 꿈을 들려주고 싶은 가느다란 끈과 같다고 느낍니다. 도시에서 살아가며 이마저 하지 못한다면 아이한테나 어버이한테나 아름다운 삶 한 자락 누릴 수 없겠다고 여기며 함께하는 ‘학교’라고 느낍니다.


  이제 시골에서 도시로 떠날 아이들은 거의 다 떠났습니다. 앞으로도 시골을 떠나 도시로 갈 아이들은 이럭저럭 있기는 한데, 머잖아 이 아이들은 몽땅 도시로 갈는지 모릅니다. 거꾸로, 도시에 몰린 채 삶이 아닌 지식에 허덕이며 사랑 아닌 정보에 둘러싸인 채 파리해지고 쓸쓸해지는 아이들이 도시를 떠나 시골로 갑니다. 흔히들 ‘귀농’이나 ‘귀촌’을 말하는데, 이제야말로 시골로 가지 않고서야 사람이 살아남을 수 없다고 여길밖에 없습니다. 도시에 남는다 하더라도 끼니를 이으며 돈을 벌 수 있겠지요. 도시에서는 돈벌이가 끊이지 않을 테니까, 어떡해서든 이웃나라하고 무역을 하며 공산품을 내다 팔아 먹을거리를 사들이면 밥은 먹을 수 있겠지요. 그러나, 참말 어른도 아이도 사람답게 살아남고 싶다면, 아니 사람답게 살아가고 싶다면, 도시를 떠나 시골로 갈밖에 없습니다.


.. “응, 그랬어. 하지만 나랑 아키라 오빠는 굉장히 기다렸어. 케이 오빠가 오는 거.” 나나는 나를 보면서 뒷걸음질 치며 걸었다. “왜?” “그냥…… 그게 그러니까, 친구가 생기는 건 기쁜 일이잖아!” … 우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엥? 그런데 그게 무슨 말이에요! “하지만 여름이 끝나면 말라 버리지. 다른 꽃들도 겨울이 되면 말라 버려서 어디에 있었는지조차 모르게 돼. 눈 아래에 묻히고 나면 다시는 꽃이 피지 않을 것 같지. 하지만 봄이 됐는데 꽃이 안 핀 적이 있니?” ..  (35, 89쪽)


  천천히 생겨 천천히 퍼지는 산촌 유학입니다. 시골살이를 하나도 모르는 채 도시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은 편의점과 유흥시설과 텔레비전과 전자제품에 익숙합니다. 도시 아이들뿐 아니라 도시 어른들은 전철도 버스(도시처럼 자주 많이 다니는 버스)도 비행기도 없는 시골에서 어떻게 지내야 하는가를 알지 못합니다. 자가용 없이 다니는 길, 두 다리로 걸어서 다니는 길, 온몸을 움직여 살아가는 나날을 알지 못합니다.


  도시에서는 그야말로 몸 한 번 움직이지 않아도 밥을 먹고 옷을 입으며 잠을 잡니다. 돈이 있으면 도시에서는 내 몸이 뚱뚱해지건 말라비틀어지건 대수롭지 않습니다. 돈만 있으면 도시에서는 내 삶이 어떻게 뒤틀리거나 비틀리거나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시골에서도 돈만 있으면 다 될까요. 시골에서도 돈만 있으면 아무 걱정거리가 없을까요. 시골에서도 돈만 있으면 얼마든지 지낼 만할까요.


.. 친구들과 함께 채소를 거두기도 하고, 논밭의 김매기를 돕기도 했다. 맨발로 흙 위에 서면 부드럽고 근질거리면서 기분이 좋아졌다 … 엄마는 슈퍼에서 사는 채소가 비싸다, 비싸다, 불평하곤 했지만, 출하까지 이렇게 품이 많이 드니 어쩔 수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 모두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버스에 올라타려는데, 할머니의 감자 같은 손이 내 등에 닿았다. “언제든지 돌아오렴.” ..  (43, 59, 141쪽)


  나카야마 세이코 님이 빚은 푸른문학 《산촌 유학》(문원,2012)을 읽습니다. 이 문학책은 푸름이가 읽도록 쓴 이야기인데, 푸름이 가운데에서도 시골 아닌 도시에서 살아가는 푸름이가 읽도록 썼습니다. 시골마을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이 이 책을 읽을 일이 아예 없지는 않겠으나, 이 책을 읽을 아이라면 도시에서 도시살이에 젖은 채 지내는 아이라고 느낍니다. 그런데, 도시 아이들이 이 책을 즐겁게 뽑아들어 읽을까 모르겠습니다. 도시 아이들은 도시에서 누리는 갖가지 놀음놀이를 들려주는 이야기책을 읽지, 시골마을 나들이 이야기를 읽을까요. 도시 아이들 가운데 스스로 깨우치거나 깨달아 도시를 떠나려 하는 아이가 있을까요. 도시 아이들 가운데 교사나 어버이가 이 책을 건네기 앞서 스스로 알아보거나 알아채어 기쁘게 읽어 제(푸름이) 삶을 고치려고 땀흘릴 아이가 있을까요.


  틀림없이 있으리라 믿습니다. 틀림없이 도시 삶이 어딘가 비틀리렸다고 느낄 푸름이가 있으리라 믿습니다. 틀림없이 입시지옥과 제도권교육과 사회제도 모두 어딘가 튀들렸다고 느낄 푸름이가 있으리라 믿습니다.


  한 사람으로 태어나 살아가는 뜻을 되새길 도시 푸름이가 있으리라 믿습니다. 한 목숨으로 태어나 살아가는 빛을 톺아볼 도시 푸름이가 있으리라 믿습니다. 한 사랑으로 태어나 살아가는 꿈을 보듬을 도시 푸름이가 있으리라 믿습니다. 제 어버이와 교사를 이끌고 도시를 떠나자고 씩씩하게 외치며 시골 삶을 찾아 빛·꿈·사랑을 일구려 할 도시 푸름이가 있으리라 믿습니다. (4345.5.8.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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