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을 여행하라 - 공정여행 가이드북
이매진피스.임영신.이혜영 지음 / 소나무 / 200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지구별을 사랑하는 두레
 [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34] 이매진피스 임영신·이혜영, 《희망을 여행하라》

 


- 책이름 : 희망을 여행하라
- 글 : 이매진피스 임영신, 이혜영
- 펴낸곳 : 소나무 (2009.6.10.)
- 책값 : 16000원

 


  “그곳에 머무는 여행자들이 하루에 쓰는 돈은 그곳 사람들 한 달 월급에 달한다고 하건만, 그토록 많은 여행자들이 발리로, 보라카이로, 몰디브로 여행을 떠나건만, 왜 여전히 여행지에서 만나는 현지 사람들은 가난한 것일까? 우리가 여행을 하며 쓰는 그 어마어마한 돈들은 모두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19쪽)?” 하고 묻는 이야기책 《희망을 여행하라》(소나무,2009)는 조그마한 목소리로 속삭입니다. 사람들이 여행에서 쓰는 돈 가운데 70∼85%는 외국인 소유 호텔이나 관광 관련 회사로 스며들고, 현지 공동체에는 1∼2%가 콩고물처럼 남는다고 합니다. 관광지를 찾아오는 사람이 늘고 또 늘어도, 관광지 사람들은 살림이 넉넉해지지 못하지만, 여행회사는 자꾸 돈을 벌 뿐 아니라, 새로운 여행사가 수없이 생겨난다고 합니다.


  나라 안팎으로 여행을 다니는 사람들은 돈흐름을 알까요. 스스로 여행을 즐기면 그만일 뿐, 내 주머니에 있던 돈이 어디로 가든 아랑곳할 일이란 없을까요.


  나는 따로 관광이나 여행이라는 이름으로 어딘가를 다닌 적이 없습니다. 언제나 나들이나 마실을 다닌다고 여겼고, 나들이길이나 마실길로 좋았다고 느낍니다. 그런데, 관광이나 여행이 아니더라도, 나들이를 나서며 드는 돈 가운데에는 찻삯이 참 많이 들고, 이 다음으로는 잠자리 찾는 값이 퍽 많이 듭니다. 밥을 사다 먹는다든지 다른 무언가를 누리며 쓰는 돈은 매우 적어요.


  한국에서는 제주섬을 관광지로 첫손을 꼽는데, 제주섬을 오가는 손님들은 ‘여행 경비’를 어떻게 쓸까요. 비행기나 배를 타는 삯, 하루나 이틀이나 여러 날 묵는 삯, 택시를 타거나 자가용을 빌리는 삯, 이런저런 삯이 ‘여행 경비’ 가운데 얼마쯤 차지할까요. 밥을 사다 먹을 적에도 ‘지역 밥집’에서 얼마나 사다 먹을까요. 물 한 병을 살 적에 편의점 아닌 ‘지역 가게’에서 얼마나 사다 마실까요. 기념품이나 선물은 어디에서 살까요. 나라밖 여행 아닌 나라안 여행에서조차 돈흐름은 마을사람한테 들어가는 일이 참 드문 노릇 아닐까 싶어요.


.. “헬리콥터가 착륙하자, 저는 제가 지고 있던 등반객들의 배낭과 제 짐을 헬기에 실었죠. 그러자 헬기를 빌려 우리를 구조하러 온 트레킹 회사 직원이 제 짐은 밖으로 내던졌어요. 제가 왜 그러느냐고 외치자 그가 답하더군요. ‘이 헬기는 너희들을 위한 게 아니야. 관광객들을 위한 거라구. 너희들은 얼음이 녹기를 기다렸다가 걸어서 내려가.’ 날씨는 너무 추웠어요. 우리는 눈 속에서 방한복도 없이 며칠을 걸었죠. 3일 후 룰카에 도착했지만 눈에 반사된 강한 빛 때문에 이미 실명한 후였어요.” … 지구상의 아름다운 곳이라면 어디에나 이런 호텔과 리조트가 있고 편안한 휴식이 있다. 그러나 아무도 그곳에서 일하는 이들의 잠자리를, 그들이 먹는 음식을, 그들이 받는 월급을 헤아리지는 않는다. 늘 깨끗한 옷을 입고 환히 웃으며 시중을 들어 주는 그들이 어떻게 사는지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 많은 관광객들은 지역 주민들에게 씻고 마실 물조차 부족하다는 사실에 대해 알지 못한 채 수영을 하고 샤워를 한다 ..  (39, 49, 169쪽)


  여행이나 관광이 아니더라도, 우리 사회 얼거리는 온통 얼기설기 짜입니다. 시골에서 흙을 일구어 거둔 곡식을 농협에서 독과점처럼 사들인 다음 팝니다. 정부(농협)는 ‘가을 곡식 사는 값(추곡수매가)’을 물건값 흐름에 맞추어 차츰 높이는 일이 없습니다. 곡식값은 예나 이제나 퍽 눅습니다. 흙을 일구는 이들은 제값을 받은 적이 아직 없다 할 만합니다. 능금, 배, 복숭아, 포도는 어떠할까요. 버섯, 꿀, 인삼은 어떠한가요. 요즈음 들어 정부(농협) 손길을 안 거치고 ‘생산지와 소비자’를 잇는 흐름이 생겼다지만, 예전에는 이런 흐름이 생길 수 없었어요. 땅에서는 농협, 바다에서는 수협, 이렇게 정부 독과점기구는 여느 자리 사람들 먹을거리를 쥐락펴락 흔들었어요.


  그러니까, 여행 정책이나 관광 산업만 몇몇 독과점 기업이나 업체나 정부 주머니를 불리는 일이 아니에요. 여느 삶에서 이루어지는 밥·옷·집 모두 몇몇 독과점 기업이나 업체나 정부 주머니를 불리는 얼거리예요.


  더 살피면, 전기·도시가스·기름(석유)·전화·인터넷·보험·연금 모두 독과점처럼 이루어집니다. 여느 사람들은 정부가 하자는 대로 따라야 합니다. 여느 사람들 뜻과는 달리 모든 사회기반시설이 마련됩니다. 고속도로를 왜 자꾸 늘릴까요. 공항을 왜 자꾸 지을까요. 비둘기호를 없애고 고속철도를 만든 까닭은 무엇일까요. 왜 시골은 자꾸 작아져야 하고, 왜 도시는 자꾸 커져야 할까요.


.. 하나의 리조트가 생겨날 때마다 몰디브 사람들에게 돌아오는 일자리는 리조트를 건설하는 일용직 노동자, 리조트가 완공된 후에는 객실 청소부, 식당 설거지, 호텔 잡부 같은 단순 노무직이었다. 기술도 필요 없고, 교육도 필요 없느나 언제든 해고당할 수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 … 현재 몰디브 인구의 83%는 관광업에 종사하고 있다. 그리고 유엔 인권보고서에 의하면 42%가 하루 1달러 이하로 삶을 견디고 있다 … “네팔은 세계의 자연박물관이에요. 숲과 강, 호수, 유구한 문화유산과 다양한 종족들. 아름답고 풍요로운 문화와 환경을 가진 나라죠. 경제적으로 돈이 없다고 네팔을 가난한 나라라고 부르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해요.” … “우리도 가난해요. 하지만 우리에겐 신이 주신 선물, 두 손이 있어요. 가장 아름다운 예술은 자연에 있고, 누구나에게 자연은 주어져 있잖아요.” ..  (50, 52, 145, 203쪽)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면 또 다른 곳을 볼 수 있습니다. 바로 물입니다. 사람이든 나무이든 짐승이든, 물이 없을 때에는 살아가지 못합니다. 햇볕과 바람이 없어도 살아가지 못하고, 물이 없어도 살아가지 못해요. 곧, 나라(정부)에서는 수도물 정책을 마련합니다. 사람들 누구나 샘에서 긷거나 우물을 파거나 냇물을 뜨면서 살았는데, 도시에서나 시골에서나 수도관을 깔면서 수도물을 마시도록 이끕니다. 어느 누구도 물값을 치르지 않고 물을 마시던 삶이었는데, 이제 모두들 물값을 치르며 살아가요. 물값을 치르지 않고 물을 나누던 때에는 서로서로 물을 아끼고 정갈히 지키려 했으나, 물값을 치르는 오늘날 오히려 물을 함부로 쓰고 마구 더럽히며 수많은 돈벌이에 어지러이 써요.


  더구나, 공장에서는 물을 엄청나게 씁니다. 공장에서는 기계를 식히거나 닦으면서 물을 씁니다. 원자력발전소뿐 아니라 화력발전소는 연로봉을 물로 식혀야 하니까 으레 바닷가에 짓습니다. 바닷물을 더럽히고 어지럽힙니다. 사람들 스스로 마실물 더럽히고 바닷물고기 죽여요. 전기가 모자라니 발전소를 더 짓고 또 지어야 한다지만, 참말 전기가 왜 모자란지 알쏭달쏭해요. 전기는 참말 모자랄까요. 전기가 모자라다면 왜 모자랄까요. 집집마다 자가발전을 해서 전기를 쓸 만할 텐데, 왜 전기를 나라에서 홀로 거머쥐면서 흔들까요. 발전소를 짓느라 어마어마한 돈을 들이고, 송전탑을 잇느라 또 어마어마한 돈을 들이며, 발전소와 송전탑 공해를 메우려고 새삼스레 어마어마한 돈을 들이는데, 이만 한 돈이면 집집마다 자가발전 시설을 거저로 마련하고도 돈이 넉넉하게 남을 뿐 아니라, 환경피해나 환경공해란 하나도 없으리라 느껴요. 왜 아파트를 짓거나 공장을 세우거나 여느 살림집 만들 때에 자가발전 시설을 안 갖출까요.


.. 아름다운 풍광, 이국의 문화유산만이 한국인 관광객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아니다. 여행객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남성이 여행지를 찾는 이유는 ‘색다른 재미’ 즉 ‘섹스 관광’에 있다 … 자유여행이라 한들 호텔과 패스트푸드, 혹은 다국적 체인 음식점을 오가며 관광지 중심의 여행과 쇼핑으로 끝난다면 그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 “네팔 사람들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여행자들이 가는 곳은 정해져 있어요. 그 말은 관광을 통해 돈을 벌 수 있는 사람들도 정해져 있다는 뜻이죠.” … 오늘날 수학여행은 교육이 아닌 관광이 되었다. 수학여행 가운데 학생들의 참여 공간은 보장되지 않는다. 학교 당국이 결정한 관광지를 조용히 잘 따라다니면 된다. 학교 교육의 연장이라지만 여행지에 대한 사전교육과 준비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자발적 참여의 기회를 원천적으로 뺏긴 학생들에게 수학여행의 최대 미덕은 ‘학교를 떠난다는 것’, 그것만 남은 것은 아닐까. 여행지의 역사와 문화를 배우기 전에 쇼핑을 하게 되고, 길 위의 사람들과 교감하기 전에 사진찍기에 바쁘다 ..  (59, 118, 129, 362쪽)


  생각은 차츰 새롭게 이어집니다. 먹을거리, 사회기반시설, 물, 전기, 이 다음으로 학교입니다. 학교도 독과점과 같습니다. 학교 교과서는 정부 검인정을 받아야 합니다. 일반학교이든 대안학교이든 정부 인허가를 받아야 합니다. 정부 인허가를 받은 학교를 나오고, 정부 인허가 있는 대학교를 마쳐야, 비로소 ‘공공기관 일자리’와 ‘회사원 일자리’를 얻어요.


  오늘날 이 사회에서는 학력차별이 버젓이 있습니다. 솜씨와 재주와 슬기에 따라 사람을 뽑아서 쓰지 않아요. 일을 알뜰히 잘 하는 사람이 일을 하도록 놓아 주지 않아요. 대학 졸업장이 있어야 일자리를 주고, 서울 쪽에 있는 이름난 대학 졸업장일 때에 비로소 마음을 놓도록 들볶아요.


  그러면, 학교에서는 무엇을 가르치나요. 학교에서는 참말 사람들이 ‘사회에서 즐겁고 아름답게 어우러져 살아가는 길’을 가르치나요. 학교라는 곳은 즐거움과 아름다움과 사랑이 아니라, 거꾸로 다툼과 싸움과 순위와 실적에 따라 서로를 짓밟고 올라서는 바보짓에 길들도록 내몰지 않는가요.


  누구라도 환하게 알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오늘날 학교에서는 시험공부만 가르쳐요. 오직 대학입시 하나만 바라보는 시험공부예요. 고등학교뿐 아니라 중학교와 초등학교도 이와 같아요. 사람다운 착한 넋을 북돋우는 학교가 없어요. 사람다운 참다운 슬기를 일깨우는 학교가 없어요. 사람다운 고운 사랑을 보살피는 학교가 없어요.


  온통 교칙이요 규칙입니다. 온통 체벌이요 벌칙입니다. 온통 점수요 계급입니다.


  학교는 아이들한테 똑같은 옷을 입히고, 똑같은 머리 모양과 머리 길이를 맞추면서, 똑같은 생각과 똑같은 몸짓을 하도록 밀어붙입니다. 다 다른 아이들이 다 다른 삶을 다 다른 아름다움으로 가꾸도록 돕지 않아요. 다 다른 아이들이 다 같은 톱니바퀴가 되어 부속품으로 쓰이게끔 몰아세워요.


.. “처음 필리핀에 가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필리핀 사람들의 여유로움이었어요. 제 눈에는 가난하고 어렵게만 보이는 살림과 환경인데, 다들 눈빛과 행동에 여유가 있는 거예요. 훨씬 잘 사는 우리와는 다른 모습이었죠.” …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고기를 잡던 어부들이 리조트의 신고를 받은 경찰에게 체포되었다. 어부들은 늘 고기를 잡아 오던 마을 앞바다에 나간 것뿐이었지만 그것이 사유지 무단 침입이 되어 버린 탓이다. 어부들이 헐값에 팔았던 집과 땅과 해안은 리조트의 사유지가 되었고, 어부들은 해안을 소유한다는 것은 그 연안의 바다까지 포함하게 된다는 것을 몰랐던 것이다 … 애초부터 개발업자들에게 현지 주민들은 그곳에서 사라져야 할 존재였다 … 잃어버린 일자리가 농업, 어업, 목축업 같은 전통사회를 이어온 자급과 자립의 뿌리였다면, 관광이 가져다준 일자리는 관광자본에 의존한 비정규직이라는 불안정함 위에 위태롭게 서 있다 … “론리 플래닛이요? 그들은 필리핀을 모르죠. 아, 물론 관광지는 필리핀 사람보다 잘 알 수도 있겠죠. 그들은 필리핀의 문화나 사람을 경험하는 여행이 아니라 필리핀을 구경하며 그저 먹고 마시고 버리고 떠나는 여행을 하는 가이드하니까요.” ..  (82, 103∼107, 198∼199쪽)


  그런데, 사람들을 이토록 길들이고 틀에 박히게끔 몰아세우면서도, 정부 권력은 마음을 놓지 못해요. 먹을거리와 전기뿐 아니라 학교까지 틀에 박히도록 길들이면서, 이런 것으로는 모자라다고 여겨 군대를 만듭니다. 언제나 전쟁 기운이 감돌도록 합니다. 서로 이웃이 되어 돌보게끔 하지 않습니다. 서로 노려보거나 윽박지르도록 몰아붙입니다. 낫과 호미가 아닌 총과 칼을 들게 합니다. 전쟁영화를 만들고 전쟁만화를 그립니다.


  ‘미래 사회’도 ‘과거 사회’도 온통 전쟁투성이인 양 그립니다. 지나온 옛사람 발자국을 이야기한다는 역사조차 ‘권력자 정치 다툼을 보여주는 전쟁’ 이야기만 가득합니다. 앞으로 다가올 밝은 앞날마저 ‘거대 강대국이 핵전쟁을 한다느니 무얼 한다느니’ 하면서 전쟁을 두려워 하도록 두려움을 이끌어 냅니다.


  어린 사내들을 군대로 불러들여서 가부장 권력 사회가 오래오래 단단히 이어지게끔 밑바탕을 다집니다. 어린 사내들은 군대로 끌려가서 총질과 칼질과 주먹질과 욕질을 배웁니다. 어린 사내들은 군대에서 익힌 총질·칼질·주먹질·욕질을 ‘사회로 돌아와’ 저보다 여린 후배나 이웃한테 폭력을 휘두릅니다. 사랑스러운 가시내를 만나 혼인하여 아이를 낳으면, 옆지기와 아이한테 주먹다짐 욕부림 따위를 휘두릅니다.


  회사에서 위계질서를 만듭니다. 사람을 사람으로 바라보지 않고 계급으로 바라봅니다. 군대에서 ‘충성!’ 하고 외치듯, 사내들 스스로 만든 위계질서에 따라 스스로 충성을 받거나 충성을 합니다.


.. “이스라엘에게 땅과 나라가 생긴다는 것만 생각했지, 거기 아랍 사람들이 살고 있고 그들과 우리가 함께 살아야 한다는 생각은 하질 못한 거죠. 그들의 문화와 종교에 대해 배우려 하지도 존중하는 마음도 없었던 거예요. 믿었던 건 무기와 돈뿐이죠.” … 티베트의 상징, 포탈라를 사진으로 간직하고 싶은 이들은 포탈라와 더불어 휘날리는 중국의 오성홍기를 함께 담아야 했다. 포탈라는 중국의 것이고, 중국은 오성홍기 없이 포탈라를 바라보는 것을 허락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 그토록 지적 소유권에 민감한 유럽에서 우리 돈 4만 원에 팔고 있는 시리아 고대 유물 미니어처. 옆에는 이집트 석관의 모형도 보인다. 유럽의 박물관들은 이 유물들의 소유권을 넘어 저작권까지 가질 권리가 있을까? … “돈을 벌 수 없어도 우리가 음악을 하고 그림을 그리고 있다면, 우리는 예술가라는 것을, 우리의 문화를 지키고 보전해 나가는 것 자체가 진보하는 삶이라는 것을 아이들은 배우고 있는 거죠.” ..  (220, 254, 294, 320쪽)


  정부 권력은 전쟁과 군대까지 만들었으면, 이제 사람들을 손쉽게 부릴 만할 텐데, 여기에서도 마음을 놓지 않아요. 정부 권력은 ‘새마을운동’을 만들어요. ‘경제개발 몇 개년 계획’을 만들어요. 또, ‘민주주의 선거제도’를 만들어요. 새로운 방송국을 만들고, 새로운 스포츠 쇼를 만듭니다. 새로운 토목공사를 벌입니다. 새로운 울타리를 끝없이 만들어요.


  이 덫에 안 걸리면 저 덫에 걸리도록 합니다. 저 덫에 안 걸려도 또 다른 곳에서 덫에 걸리도록 자꾸자꾸 울타리를 세워요.


  사람들한테 여행이나 관광이란 무엇일까요. 서울 여행이나 부산 여행은 어떻게 남다른 여행이 될까요. 남원 관광이나 통영 관광은 얼마나 새로운 관광이 될까요. 홍천 여행이나 옥천 여행은 얼마나 아름다운 여행이 될는지요. 안산 관광이나 포항 관광은 즐거운 관광으로 마무리지을 만한가요.


  온 나라가 ‘서울처럼 되기’로 흐릅니다. 온 나라가 서울처럼 되기로 흐르면서, 모든 돈과 사람과 문화와 정치 따위가 서울로 쏠리도록 합니다. 지구별 테두리에서 보자면, ‘서울처럼 되기’와 맞물려 ‘미국처럼 되기’가 나타납니다. 미국에서 대통령을 누구로 뽑든 말든 무엇이 대수일까요. 한국에서 대통령이 누가 되든 말든 무엇이 대단할까요.


  대통령 한 사람 때문에 지구별과 한 나라가 달라지지 않아요. 나 한 사람으로 지구별과 한 나라를 바꾸어요. 아름답게 살아갈 꿈을 키우며 내 삶을 나 스스로 일구어요. 곱게 사랑할 빛을 쓰다듬으며 내 하루를 나 스스로 누려요.


  뭔가 그럴싸한 구경거리를 본다거나, 뭔가 짜릿한 놀이를 한다거나, 뭔가 화끈한 먹을거리를 먹는다거나, 뭔가 엄청난 선물을 산다고 해서 여행이 되지 않습니다. 여행이든 관광이든, 나들이가 되든 마실이 되든, 서로서로 즐겁게 동무할 사람을 사귀는 삶입니다. 다 함께 어깨동무할 이웃을 마주하는 나날입니다. 내 아름다운 보금자리처럼 내 둘레 아름다운 보금자리를 느껴, ‘샘물이 이곳에서도 저곳에서도 깨끗하’도록 마음을 기울이는 일이 곧 여행이요 나들이입니다. ‘하늘이 이곳에서도 파랗고 저곳에서도 파랗’도록 마음을 쓰는 일이 곧 관광이며 마실입니다.


.. 많은 인재들이 인류애를 위해 국자세회의 빈곤과 난민, 건강 등의 문제를 위해 일하려고 준비 중인데, 왜 한국 내에서는 정작 일꾼을 찾기 어려운 것일까? 그렇게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는 글로벌 인재론, 유엔과 국제기구 열풍의 허상 … “나이트 스쿨에서 우리가 아이들에게 진짜 가르치고 싶은 건, 자기 목소리를 찾고, 자기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 가는 법이에요. 성공을 위해 마을과 고향을 등지고 떠나는 지식인이 아니라 자기가 선 자리에서 새로운 힘을 깨달아 삶을, 세상을 바꾸어 가는 새로운 아이들이 커 나가고 있는 거예요 … 공정여행은 우리가 여행하는 곳에서 만나는 사람의 삶과 사회를 존중하고, 그들의 문화를 배우고 소통하는 여행이며, 환경을 파괴하거나 다른 이의 인권을 침해하지 않는 소극적 책임을 넘어 그곳의 현실과 아픔에 귀기울이고 마음으로 함께하는 적극적인 여행, 우리의 움직임을 통해 일어나는 소비가 지역 사회에 스며들어 그 사회를 일으키고 사람들의 삶에 토양이 되는 정직하고 올곧은 여행의 여정을 뜻하는 것이다 ..  (369, 408, 445쪽)


  《희망을 여행하라》는 “당신은 떠나고 우리는 이곳에서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니까요(195쪽).” 하고 말합니다. 당신은 떠나고 우리는 이곳에서 살아야 한다면, 이는 바로 굴레이고 사슬입니다. 꿈이 아니라 미움입니다. 사랑이 아니라 괴롭힘입니다.


  ‘당신은 내 동무이고, 서로 함께 살아가는 지구별 이웃입니다.’ 하고 말할 수 있어야지 싶어요. 당신은 나와 한몸이고 한마음이요 한목숨이라고 느낄 수 있어야지 싶어요.

  참말, 서로 하나라고 느낄 때에 마음이 움직여요. 꽃과 내가 하나라고 느낄 때에 비로소 아름다움을 느껴요. 쌀알과 내가 하나라고 느낄 때에 배가 부르고, 물과 내가 하나라고 느낄 때에 싱그러이 웃어요.


  《희망을 여행하라》는 ‘여행하는 기쁨’을 따로 말하지 않아요. ‘이웃을 만나는 기쁨’을 말하고, ‘동무를 사귀는 기쁨’을 말해요. ‘내 마을을 아끼는 어깨동무’와 ‘지구별을 사랑하는 두레’를 말해요. (4345.9.23.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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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 없애야 말 된다
 (1653) '-적' 안 쓴 보기 61 : 착하다 ← 양심적

 

양심으로 살아가며 객관적인 진실과 거짓을 구별할 줄 아는 사람이 참된 사람입니다 … 자신이 착할 수 없다는 불신감 때문에 사람들은 악을 저지르며 일종의 자기만족에 빠져듭니다
《루이제 린저/윤시원 옮김-낮은 목소리》(덕성문화사,1992) 145, 154쪽

 

 ‘양심적(良心的)’은 “양심을 올바로 지닌”을 뜻한다 하고, ‘양심’은 “사물의 가치를 변별하고 자기의 행위에 대하여 옳고 그름과 선과 악의 판단을 내리는 도덕적 의식”을 뜻한다 합니다. ‘선(善)’은 “올바르고 착하여 도덕적 기준에 맞음”을 뜻한다 해요. 말뜻을 헤아리면 ‘양심을 올바로 지닌’이란 ‘착한 마음을 올바로 지닌’을 가리키는 셈이요, 보기글에 나오는 ‘양심으로 살아가며’란 ‘착한 마음으로 살아가며’나 ‘착하게 살아가며’를 가리킨다고 하겠어요.


  보기글을 보면 앞쪽에는 “양심으로 살아가며”라 나오고, 뒤쪽에는 “착할 수 없다는”이라 나옵니다. 곰곰이 살피면, 보기글 앞쪽처럼 뒤쪽에서도 “자신이 양심적일 수 없다는”이라 적을 만해요.
  앞과 뒤 모두 ‘착한 마음’이나 ‘착하다’와 같은 말마디로 이야기를 할 수 있으면 한결 나으리라 생각해요. 두 가지 말을 섞어서 쓰더라도, 두 가지 말은 다른 말이 아니라 같은 뜻인 말이요, 하나는 한자말이고 하나는 한국말인 줄 깨달아야지 싶어요.

 

 양심으로 살아가며 (x) ― 착하게 살아가며 (o)
 착할 수 없다는 (o) ― 양심적일 수 없다는 (x)

 

  보기글에는 ‘객관적(客觀的)’이라는 낱말이 나옵니다. 이 낱말은 “자기와의 관계에서 벗어나 제삼자의 입장에서 사물을 보거나 생각하는”을 가리킵니다. 곧, 다른 사람 눈길로 바라본다는 이야기입니다. 다시 말하면, 여러 눈길로 바라본다거나 고른 눈길로 바라본다고 할 수 있습니다. ‘주관적’은 “자기의 견해나 관점을 기초로 하는”을 가리킵니다. 그러니까, 내 눈길로 바라본다는 소리예요. 오늘날은 으레 ‘객관적-주관적’으로 이야기를 하는데, 한결 또렷하면서 쉽게 쓸 수는 없을까 궁금합니다. 한국사람 나름대로 풀어낼 한국말을 생각하기란 어려울까 궁금해요. 이 글월에서는 참과 거짓을 가리는 이야기를 다루니, ‘객관적’을 ‘올바르게’나 ‘올바로’나 ‘바르게’나 ‘슬기롭게’로 손질할 만하리라 느껴요.


  “진실(眞實)과 거짓”은 “참과 거짓”으로 다듬고, ‘구별(區別)할’은 ‘가릴’이나 ‘살필’로 다듬습니다. “자신(自身)이 착할 수 없다는 불신감(不信感) 때문에”는 “스스로 착할 수 없다고 믿기 때문에”나 “스스로 착할 수 없다며 스스로를 못 믿기 때문에”로 손보고, “악(惡)을 저지르며”는 “나쁜 짓을 저지르며”나 “못된 짓을 저지르며”로 손보며, “일종(一種)의 자기만족(自己滿足)에 빠져듭니다”는 “이른바 자기만족에 빠져듭니다”나 “이를테면 스스로를 괜찮다고 달랩니다”로 손봅니다. (4345.9.23.해.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착하게 살아가며 올바로 참과 거짓을 가릴 줄 아는 사람이 참된 사람입니다 … 스스로 착할 수 없다고 못미더워 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나쁜 짓을 저지르며 스스로를 괜찮다고 달랩니다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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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들보라 화력발전소 반대집회

 


  두 아이가 화력발전소 반대집회에 나간다. 잘 놀고 잘 지치고 잘 자고 했을까. 산들보라는 시끄럽건 말건 졸리면 자고 배고프면 칭얼거리며 일어나서 개운해지면 방방 뛰며 논다. 막 잠에서 깨어 아직 벙벙한 눈길로 다 같이 길거리를 걷는다. 조그마한 읍내 조그마한 길이 성난 아저씨 아주머니 할머니 할아버지 발걸음으로 꽉 찬다. (4345.9.22.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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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평론 글쓰기

 


  시집을 읽는다. 시집 끝에 붙은 문학평론을 읽는다. 시집마다 끝에 문학평론을 붙이곤 한다. 으레 대학교수가 쓰고, 때로는 교수 아닌 시인이 쓰곤 한다. 이제껏 이런 시집 저런 시집을 읽으면서 시집 끝자락 문학평론을 즐겁게 읽은 적이 아주 드물다. 왜냐하면, 시를 이야기하는 글이 아니라, 시를 조각조각 뜯어서 학문으로 꿰어맞추는 글이기 때문이다.


  곰곰이 생각한다. 시집 끝에 붙는 문학평론은 시를 읽은 느낌을 담은 글인가. 시를 토막토막 잘라서 누더기로 다시 깁는 글인가. 왜 문학을 ‘비평’하거나 ‘평론’해야 하는가. 왜 시를 ‘이야기’하지 않고, 왜 시를 ‘나누’려 하지 않는가. 시를 즐기는 꿈을 생각하기란 너무 어려운가.


  머리로 지어서 쓰는 시라면, 머리로 지어서 쓰는 문학평론이 걸맞으리라. 사랑하는 삶을 노래하는 시라면, 사랑하는 삶을 노래하는 느낌글이 걸맞으리라. (4345.9.22.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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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헌책방은 헌책이 있는 곳입니다. 국어사전 말풀이를 살피면 “헌책을 팔고 사는 가게”가 ‘헌책방’이라 합니다. ‘헌책’은 “이미 사용한 책”을 가리키는 낱말이라고 해요. 그런데, 헌책방이나 헌책을, 또 책을, 이런 말풀이로 나타내거나 바라보아도 좋을까 아리송합니다. 그저 ‘누군가 한 번 쓴(읽은) 책’을 ‘헌책’이라고 하기에는 무언가 허전합니다. 그예 ‘헌책을 팔거나 사는 곳’을 ‘헌책방’이라고 하기에는 어딘가 모자랍니다. 마음을 담는 책이요, 마음을 담기에 기나긴 나날이 흘러도 얼마든지 되읽으면서 꿈을 빛내도록 도우니까, 사람들이 헌책방으로 마실을 다니며 손에 책먼지를 묻히리라 느껴요. 그리 크지 않든 제법 크든, 마음을 밝히는 책 하나를 만나면서 기쁘게 웃을 만한 책쉼터인 헌책방이라고 느껴요. 헌책방은 서울에도 있고 부산에도 있습니다. 강릉에도 있고 춘천에도 있습니다. 작은 시골마을을 둘러싼 작은 도시에도 헌책방이 있습니다. 시골 들판과 숲하고 가까운 데에 있으며, 바다하고도 가까운 데에 있는 헌책방 여러 곳 이야기를 가만히 헤아립니다. 순천 〈형설서점〉 일꾼은 “도움되고 사랑받는 책도 있지만, 도움 안 되고 어느 한 사람만을 위해 만든 책도 있단 말이야. 그러나 그 책도 나올 가치가 있어 나왔으니까, 나는 그 책도 한 권이라도 사서 갖추는 거야.” 하고 말합니다. 베스트셀러나 스테디셀러만 책이 아닙니다. 삶을 담고 삶을 말하며 삶을 사랑하는 길을 밝힐 때에 비로소 책입니다.

 


  숲사람 이야기 2 - 엑스포 구경 아닌 헌책방 마실
  책으로 빚은 숲

 


  엑스포·나들이


  전라남도 여수에서 ‘엑스포’가 여러 달 열렸습니다. 적잖은 사람들이 여수로 엑스포 구경을 한다며 찾아갔습니다. 기차를 타고, 버스를 타며, 자가용을 몰아, 여수로 나들이를 다녔겠지요. 서울부터 여수까지 고속철도가 다니기에, 서울사람은 여수까지 손쉽게 오갈 수 있습니다.


  엑스포 막바지에, 우리 네 식구 살아가는 전남 고흥 시골마을에 ‘마을 이장님 새벽 알림방송’으로 엑스포에 구경하러 가라는 이야기가 흐르곤 했습니다. ‘마을로 공짜표 나왔으니 가실 분은 이장한테 와서 받아’서 구경하러 가라 했습니다.


  우리 식구는 이장님한테서 공짜표를 얻지 않습니다. 따로 엑스포를 구경하러 갈 마음이 없고, 이웃한 도시 여수로 나들이를 간다면 엑스포 아닌 다른 곳을 찾아가고 싶습니다. 여수에는 바다와 가까운 곳에 예쁜 헌책방이 있어요. 여수에도 예전에는 헌책방이 곳곳에 많았을 테지만, 이제는 고소동 641번지에 1·2층으로 이루어진 〈형설서점〉 한 곳이 있어요. 책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여수 나들이를 하면서 고소동 헌책방에 들러 마음밭에 책씨를 솔솔 뿌린 다음, 천천히 걸어 진남관을 거치고 이순신광장을 들러 돌산다리 바라볼 수 있는 바닷가에 앉아 책 한 권 펼치며 너른 바다 숨결을 맞아들일 수 있습니다. 헌책방으로 걸어서 오갈 만한 데에 있는 여관에서 며칠 머물면서 틈틈이 헌책방으로 책마실을 다닐 수 있습니다. 여수에서 살아가는 분이라면 자전거를 타고 슬슬 헌책방마실을 누릴 수 있어요.


  여수 엑스포는 끝났으나, 엑스포가 없더라도 헌책방은 튼튼히 있었습니다. 엑스포가 끝난 뒤에도 헌책방은 씩씩하게 제자리를 지키며 예쁘게 있으리라 생각해요. 책은 조그마한 씨앗입니다. 헌책방은 조그마한 씨앗을 건사하는 자그마한 씨앗주머니입니다.

 

 

 

 

 

  바다·멧자락


  전남 고흥에는 헌책방이 없습니다. 예전에도 없었는지 이제는 없는지 잘 모릅니다. 아마 예전에는 고흥에도 헌책방이 있었으리라 생각해요. 고흥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고흥에서 학교를 다니고 고흥에서 뿌리를 내리며 예쁘게 살아가던 지난날에는 헌책방뿐 아니라 새책방 또한 작은 면소재지에까지 있었겠지요. 나날이 초등학교가 문을 닫고 중학교와 고등학교마저 문을 닫아요. 전남 고흥에서 문을 닫은 학교는 쉰 군데가 넘어요. 예순 군데가 넘을는지 모르고, 머잖아 백 군데 넘는 학교가 문을 닫겠지요. 왜냐하면 시골사람이 자꾸자꾸 도시로 가거든요. 시골 초등학교를 다니다가도 이웃한 도시에 있는 커다란 초등학교로 옮겨요. 중학교까지 다니다가 고등학교부터는 순천이나 광주로 나가곤 해요. 고등학교까지 고흥에서 다니더라도 대학교를 간다며 훨씬 커다란 도시로 나가요. 그리고, 이렇게 한 번 시골마을 고흥을 떠난 아이들은 거의 도시에서 뿌리를 내려요. 다시 시골마을로 돌아와 시골사람으로 살아가는 길을 찾지 않아요. 이러니 시골마을 헌책방은 문을 닫고 사라져요. 시골마을 작은학교가 문을 닫고 사라지듯, 시골마을에 깃들던 작은 헌책방과 새책방은 소리도 소문도 자취도 소식도 남기지 못한 채 아스라이 사라져요.


  순천 〈형설서점〉에서 장만한 《三山二水》(정한조 엮음,1965)라는 묵은 책 하나를 살펴봅니다. 순천시와 승주군 역사를 다루었다는 묵은 책인데, 102∼103쪽에 순천시와 승주군 ‘국민학교 현황’이 표로 실립니다. 1964년 5월을 잣대로, 승주군에 있는 ‘분교’ 다섯 군데(평중·월가·이곡·도월·대룡) 가운데 넷은 학급수가 둘이요, 학생 숫자는 94∼130이며, 한 곳은 학급수 넷에 학생 숫자 166입니다. 이즈음에는 분교조차 학급이 둘이어도 학생은 100을 넘곤 했으나, 요즈막 고흥 면내 초등학교는 학생이 10 안팎인 곳이 퍽 많아요.


  네 식구는 군내버스를 타고 읍내로 갑니다. 읍내에서 시외버스로 갈아타고 두 시간 남짓 달려 여수에 닿습니다. 고흥에서 순천으로 나가는 길은 온통 숲길입니다. 왼쪽도 오른쪽도 숲이고 들입니다. 벌교를 거쳐 순천으로 가는 길은 온통 아파트와 가게입니다. 왼쪽도 오른쪽도 아파트요 가게들뿐, 숲도 들도 보이지 않습니다. 순천에는 순천만이 있다지만, 시외버스를 타고 달릴 때에는 바다를 볼 수 없습니다. 이러다가 순천을 벗어나 여수로 접어드는 길은 다시 숲길이 됩니다. 왼쪽도 오른쪽도 너른 숲이요 들입니다.


  숲바람을 쐽니다. 들바람을 맞습니다. 숲과 들을 거쳐 바다로 둘러싸인 도시 여수에 닿습니다. 여수는 제법 큰 도시라 할 텐데, 도시이면서도 숲이 있는 멧자락 사이에 이루어진 도시입니다. 너른 바다를 둘레에 예쁘게 안은 도시입니다. 똑같은 도시라 하더라도 이렇게 바다와 숲을 함께 얼싸안는 곳이라 하면 예쁜 넋을 푸른 숨결로 가꿀 만하리라 느껴요.

 

 

 

 

  여수 헌책방·순천 헌책방·진주 헌책방


  여수에 헌책방 한 곳 있고, 순천에 헌책방 한 곳 있습니다. 여수에는 고소동 여수경찰서 옆에 〈형설서점〉(061-664-8949)이 있고, 순천에는 시외버스역 둘레 저전동 230-2번지에 〈형설서점〉(061-741-0228)이 있습니다. 같은 이름을 쓰는 두 책방으로, 순천은 동생 헌책방이요, 여수는 형 헌책방입니다. 맨 처음에는 1981∼82년 무렵 형이 어머니와 함께 광주에서 헌책방 일을 했고, 동생은 1987년에 안동에서 헌책방을 열었습니다. 동생은 안동에서 세 해 헌책방 일을 잇다가 광주에서 헌책방을 하던 어머니하고 함께 책살림을 꾸리고, 동생이 남원에서 새롭게 제금나서 헌책방을 차릴 즈음 형은 회사를 그만둡니다. 그러고는 동생이 꾸민 남원 가게를 받아 책살림을 꾸리다가 여수로 옮깁니다. 이러면서 동생은 어머니하고 순천으로 옮겨 헌책방을 열었고, 세 차례 터를 옮긴 끝에 순천 저전동에 자리를 잡아요. 2012년 9월 1일에는 경남 진주 평안동에 있던 헌책방 〈즐겨찾기〉(055-748-4785)가 같은 진주에서 봉곡동 14-2번지로 옮기며 책방 이름을 〈형설서점〉으로 새로 붙입니다. 순천과 진주 헌책방 사장님은 서로 동무 사이라는데, 처음부터 같은 책방 이름을 쓸까 하다가 다른 이름이 되었고, 이제 같은 이름이 되면서, 여수와 순천과 진주 세 곳에 이름이 같으며 다른 헌책방이 책손을 기다리는 모습이 됩니다.


  시골집에서 순천으로 나들이를 다니면서, 때때로 여수까지 조금 먼 마실을 다니면서, 또 가끔 진주로 더욱 먼 다리품을 팔면서, 나라안 골골샅샅 고운 빛살 나누어 주는 헌책방을 만납니다. 찻집에서 차를 마시거나 밥집에서 밥을 먹을 수 있겠지요. 책이 있는 집에서는 책을 읽을 수 있습니다. 한 시간 두 시간 세 시간 즈음 서서 읽거나 골마루를 거닐며 읽거나 걸상에 앉아 읽습니다.


  시인 김지하 님이 1984년에 내놓은 《밥》(분도출판사)이라는 이야기책을 가만히 들춥니다. 1991년 뒤로 헌책방에 많이 쏟아지고 만 《밥》인데, 2012년에 새삼스레 이 책을 끄집어서 들춥니다. “예수 안에는 말도 소도 풀도 흙도 새도 바람도 다 삽니다. 예수가 민중이라는 것은 예수가 중생이라는 뜻입니다(81쪽).” 같은 대목을 곰곰이 아로새깁니다. 예수 마음속뿐 아니라 내 마음속에도 말이랑 소랑 풀이랑 흙이랑 새랑 바람이랑, 또 햇살이랑 나무랑 꽃이랑, 또 냇물이랑 바다랑 하늘이랑, 모두 얼크러져 살아가요. 예수도 부처도 나도, 또 내 옆지기와 아이들도, 또 내 이웃과 동무도 모두 마음속에 하느님이 있어요. 흙을 만지는 이웃집 할매 굵직한 손가락도 마음속에 깃든 하느님에 따라 움직여요. 배를 타고 그물을 건지는 이웃마을 할배 굵직한 손마디도 마음속에 서린 하느님에 따라 움직여요.


  여수 〈형설서점〉에서 마련한 《가정주부》(한국여성개발원,1987)라는 책은 미국사람 ‘레이 안드레’ 님이 썼는데, 첫머리에 “사람들은 그들의 공로가 값으로 계산할 수 없을 만큼 귀중하다고 하지만, 대부분의 가정주부들은 자신의 일에 대한 급여도, 어떤 보장도 받지 못한다(15쪽).” 하고 밝혀요. “사람들은 주부들이 귀중한 사회 성원이라 말하지만, 실제로는 이 사회에서 가장 낮은 임금을 받는 집단이 누리는 혜택조차도 받지 못하고 있다.” 하고 덧붙여요.


  이제 어느 새책방에서도 구경할 수 없는 《가정주부》라는 책을 찬찬히 읽으며 생각합니다. 국립중앙도서관에서는 디지털열람을 할 수 있다는 《가정주부》라는데, 헌책방 한 곳에서 아주 고맙게 만났습니다. 나는 이 책을 도서관 아닌 헌책방에서 만나는데, 《三山二水》 같은 책도 도서관 아닌 헌책방에서 만났어요. 올봄, 순천 〈형설서점〉으로 나들이를 하다가 《우리 고장 고흥》(고흥문화원,1983)이라는 작은 책을 만나기도 했어요. 이 책 또한 도서관에는 없어요. 국립중앙도서관뿐 아니라 고흥군립도서관에도 이 책은 없어요. 그러나 이런 책도 저런 책도 헌책방에서 새삼스레 만나요.

 

 

 

  헌책방에서 만나는 책


  인터넷이 발돋움한 오늘날 참 많은 일이 집이나 회사에서 이루어집니다. 컴퓨터를 켜서 인터넷을 열면, 몇 번 또각거린 다음 온갖 물건을 집이나 회사에서 손쉽게 받을 수 있어요. 다만, 나와 가게는 인터넷으로 만나지만, 이 사이에는 짐을 실어 나르는 택배 일꾼이 있어요. 우리들은 택배삯 얼마를 치르고 책이든 냉장고이든 가게를 안 찾아가고도 장만하거나 구경할 수 있어요.


  그런데, 온갖 책을 인터넷을 열어 구경하다가 살 수 있다지만, 인터넷으로는 만나지 못하거나 살피지 못하는 책이 많아요. 도서관에 가거나 새책방에 가더라도 만날 수 없는 책이 많아요. 《우리 고장 고흥》을 펼칩니다. 9쪽에 ‘우리 고장의 발전 연표’가 실립니다. 1980년대를 잣대로 예순 해 앞서라는 1910∼1919년에 처음으로 국민학교가 섰다고 합니다. 1920∼1929년에 한길이 처음 나고 자동차가 다녔다고 하며, 국민학교가 아홉 곳이 되었답니다. 1930년대에 국민학교가 열 곳이 되고 어업조합이랑 수리조합이랑 소방서랑 등기소가 생겼대요. 1940년대에 비로소 중학교가 생기고 1950년대에 농업고등학교가 생겼다는군요. 1960년대에는 보건소와 농협이 생기고 ‘시외버스 정류소’가 생겼다고 합니다. 1970년대에는 초·중·고등학교가 아흔아홉 곳이 되고, 1980년대에는 백열여섯 곳이 되었다고 해요.


  순천 성남국민학교 37회 졸업사진책(1986)도 헌책방에서 구경합니다. 모두 일곱 학급인 작은 학교로구나 싶은데, 한 학급 아이들을 조금 큰 사진 하나로 한꺼번에 찍습니다. 조금 돈이 있는 학교에서는 학생마다 증명사진 한 장씩 따로 찍어 담지만, 조금 돈이 없는 학교에서는 이렇게 조금 큰 사진으로 뭉뚱그려 졸업사진책을 엮곤 했어요. 학교옷 따로 없는 순천 성남국민학교 1986년 어린이는 저마다 다른 옷차림입니다. 어느 모로 보면 좀 후줄근하게 가난한 모습일는지 모르나, 겉모습 아닌 낯빛을 보고 눈빛을 보면, 또 입꼬리와 눈꼬리를 보면, 착하고 맑은 넋이네, 하고 느낄 만합니다. 몇 장 안 되는 얇은 졸업사진책 끝자락에 봄소풍 사진 있습니다. 1980년대 작은 국민학교는 마을 뒷동산으로 나들이를 갑니다. 아이들은 곁에 비탈밭 있는 뒷동산에서 들놀이를 즐깁니다. 아이들이 들놀이 즐기는 멧자락 밑으로 논배미 넓게 보입니다. 어느 아이는 시내에서 회사원이나 공무원, 또는 가게를 꾸리는 어버이와 살았을 테지만, 어느 아이는 순천에서도 농사를 짓는 어버이와 살았겠지요. 누군가 저승으로 가거나 나라밖으로 떠나면서 헌책방에 한 권 두 권 흘러드는 묵은 졸업사진책이에요. 집을 옮기면서, 낡은 짐을 버리면서, 이런저런 해묵은 이야기 서린 졸업사진책이나 사진첩이 헌책방으로 들어오곤 해요. 나는 이 졸업사진책 임자하고 아무런 끈이 없으나, 이 졸업사진책을 들추며 지난날 발자국을 읽습니다. 1980년대 졸업사진책으로 1980년대를 헤아리고, 1970년대 졸업사진책으로 1970년대를 헤아립니다. 1950년대나 1940년대 졸업사진책을 들추며 그무렵에는 학교와 마을과 어린이가 어떤 모습이었는가 하고 가만히 그립니다.


  헌책방에서는 삶과 마을과 세월을 넘나드는 이야기를 만납니다. 손에 쥐기로는 책 한 권이지만, 이 책 한 권은 돈 몇 푼으로 사고파는 물건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여러 사람이 살아온 땀방울이 스미는 책입니다. 숱한 사람이 부대낀 꿈이 서리는 책입니다. 온갖 사람이 어깨동무하던 사랑이 담기는 책입니다.


  나는 책을 읽으면서 삶을 읽고 사랑을 읽습니다. 내가 오늘 만난 이 묵은 책들은 기나긴 해를 이으며 빛을 선사하는 이야기꾸러미입니다. 헌책방에서 만나는 책은 저마다 다 다른 사람들이 저마다 다 다른 꿈을 품으며 저마다 다 다른 사랑을 일구는 이야기를 길어올리는 책이라고 느낍니다.

 

 

 

 

  구경과 마실


  수십만 사람 또는 수백만 사람이 엑스포를 구경했다고 합니다. 구경거리가 많아 수많은 사람이 찾아갈 만하리라 생각합니다. 헌책방은 작은 책쉼터이기에 수십만이나 수백만에 이르는 사람이 찾아갈 수 없습니다. 한꺼번에 백 사람이 찾아들어도 책을 살피기 어렵습니다. 스무 사람쯤 헌책방 골마루에 서면 북적북적합니다.


  널리 이름난 설악산이나 한라산에, 또 사람 많이 살아가는 서울땅 북한산이나 관악산에, 참으로 많디많은 사람이 발을 디딜 틈조차 없이 우글거리곤 합니다. 워낙 많은 사람이 드나들기에 흙길은 반들반들하며, 시멘트나 쇠붙이나 돌이나 나무로 거님길을 따로 마련하기도 합니다. 이름난 멧자락을 오르내리는 사람들은 ‘길을 밟’지만 ‘흙을 밟’지는 못합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흙을 밟아 내리누르면 풀도 나무도 자라지 못하거든요.


  두루 이름나지 않은 시골마을 작은 멧자락에는 멧마실을 하는 사람이 거의 없거나 아예 없습니다. 시골집 우리 식구는 마을 뒷산을 오릅니다. 흙을 밟기도 하고 나무를 쓰다듬기도 합니다. 풀내음과 나무내음을 맡습니다. 자동차 아닌 멧새 노래하는 소리를 듣습니다. 가게에서 울리는 노랫소리 아닌 바람이 일으키는 노랫소리를 듣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모여든 도시에서는 구경거리를 찾아나설밖에 없는지 모릅니다. 엑스포를 꾀하고 박람회를 마련하며 올림픽이나 월드컵 같은 경기를 치러야 할는지 모릅니다. 야구장이나 농구장에 수천 수만 사람이 몰려서 목청 터지게 외치며 경기를 지켜보아야 비로소 문화가 되거나 여가가 될는지 모릅니다.


  어쩌면 아주 마땅할는지 모르지만, 축구장이나 야구장처럼 2만이나 3만이나 5만을 받아들일 만한 도서관은 아직 한국에 없습니다. 1만이나 5천을 맞아들일 만한 도서관이나 새책방 또한 아직 한국에 없습니다. 나는 인천에서 태어나 자랐는데, 중·고등학생 때 구립도서관에 새벽 일찍 찾아가도 자리가 없어 밖에서 줄을 서서 기다려야 했어요. 수험공부를 할 만한 자리조차 찾기 힘들었어요. 두 다리를 뻗고 쉴 만한 물가나 냇가 또한 찾기 어려웠어요. 한 시간 즈음 드러누워 하늘을 올려다보며 쉴 풀숲이나마 찾지 못했어요.


  십만 이십만 삼십만 사람이 살아간다는 도시에 헌책방 한 곳이라 하면, 이곳을 누리기는 퍽 벅차다 할 만합니다. 좋구나 싶은 책을 언제라도 빌려서 읽을 도서관이 마을 곳곳에 크고작게 있어야 하면서, 좋구나 싶은 책을 언제라도 장만해서 예쁘게 건사하도록 돕는 새책방과 헌책방도 마을 곳곳에 크고작게 있을 때에 삶과 문화와 예술과 사랑이 아름다이 무르익을 수 있으리라 느껴요.


  책은 구경거리 아닌 읽을거리입니다. 책방은 볼거리 아닌 생각거리입니다. 표를 끊어 경기장이나 전시장을 찾아가며 무언가를 느끼는 일도 좋을 테고, 만 원이나 이만 원어치 책을 장만할 뜻으로 헌책방 마실을 즐기며 긴 나날과 너른 땅을 가로지르는 책을 느끼는 일도 좋을 테지요.

 

 

  책숲


  사람은 숲이었어요. 나무가 우거진 곳을 일컬어 숲이라 하는데, 나무뿐 아니라 나무하고 어깨동무하고 예쁘게 살던 사람 또한, 오순도순 모여 알콩달콩 이야기를 빚을 때에 사람은 숲이었어요.


  숲이던 사람이기에 손에 연필을 쥐어 글을 써서 책을 엮으면, 이 책은 이야기 감도는 숲, 곧 이야기숲이 돼요. 이야기숲이 되는 책이 하나둘 모여 천 만으로 얼크러지면, 이 책들 모인 곳은 책숲이 돼요.


  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이 밀려난 도시에서는 푸른 숨을 마시지 못하곤 해요. 이야기 감도는 책이 깃들 곳이 자꾸 사라지는 도시에서는 푸른 넋을 살찌우지 못하곤 해요. 저마다 스스로 어떤 마음숲이었고 어떤 사랑책이었는가를 돌이킬 수 있으면 좋겠어요. 사람들 누구나 스스로 숲이었고 이야기꾸러미였던 삶을 돌아보면서, 오늘 누릴 가장 좋은 생각을 어떻게 빛낼 때에 아름다울까 하고 깨달으면 좋겠어요.


  작은 도시에 작은 책숲인 헌책방이 있습니다. 커다란 도시에 작은 책숲인 헌책방이 있습니다. 도서관 곁에 새책방이 있고, 새책방 둘레에 헌책방이 있습니다. (4345.8.18.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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