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책을 읽고 쓸 수 있는가

 


  교과서를 덮고 책을 처음으로 읽은 고등학교 2학년 때인 1992년부터 두 가지 다짐을 했다. 이제부터 내가 읽을 수 있는 모든 책을 읽어 보기로 하자는 다짐 하나. 여기에, 이제부터 내가 읽을 수 있는 모든 책을 읽고서, 내가 읽은 책마다 한 줄로든 백 줄로든 느낌글을 써 보자는 다짐 둘.


  나는 지구별 모든 책을 읽을 수 있을까. 어떤 통계나 숫자로 따진다면 아마 읽을 수 없다고 하리라. 그러나 내 마음을 살피고 내 뜻을 헤아린다면 모든 책을 읽을 수 있다고 느낀다. 그런데 ‘모든 책을 다 읽는다’는 뜻을 돌아보면, 내가 온 땀과 품과 겨를을 들어 ‘종이에 찍혀 태어난 책’을 다 읽는 바로 이때에 새로운 책이 태어난다. 내가 잠든 사이, 또는 내가 숨을 거둔 뒤, 수많은 책이 새로 쏟아진다.


  어떤 사람한테든 뜻과 넋이 있으면 할 수 없는 일이 없다고 느낀다. 스스로 울타리를 세우고 틀을 짓기 때문에 할 수 없는 일이 있다고 느낀다. 한자말로 ‘초인’이라는 이름은, 곧 ‘넘어선 사람’이라는 이름은, 스스로 아무런 허울도 울타리도 틀도 없는 사람한테 붙는다. 하늘을 날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하늘을 난다. 물을 밟고 걸을 수 있다고 여기니 물을 밟고 걷는다. 곧, 지구별 모든 책을 누구나 다 읽을 수 있다. 주머니를 털어 책을 사야만 책을 읽지 않는다. 도서관에서 빌려 읽을 수 있고, 책방에 찾아가서 선 채로 읽을 수 있다. 그리고, 내 살림집 작은 방에 앉아 눈을 감고 마음을 가다듬으면서 읽을 수 있다. 지구별 곳곳에서 어떤 사람들이 어떤 일을 하는가를 지긋이 헤아리면서, 숱한 사람들이 저마다 슬기를 빛내어 영글어 놓는 열매를 받아들일 수 있다.


  어떠한 책이든 다 읽을 수 있다고 깨달은 뒤, 그러면 이렇게 읽은 책 이야기를 느낌글로 낱낱이 쓸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해 보았다. 이때에 나는 스스로 틀을 지었다. 나 스스로 틀을 짓지 않았으면 아마 나 스스로 읽은 모든 책에 얽힌 이야기를 글로 썼겠지. 그러니까, 눈에 드러나는 글 숫자와 부피로만 살피면 이러한 글쓰기는 할 수 없다. 눈으로 드러내는 모양새 아닌, 삶으로 녹이는 글쓰기를 한다면, 누구나 어떠한 글이라도 쓸 수 있다.


  스스로 읽은 책에 얽힌 이야기를 쓰는 일이란, 바닷가에서 물결 출렁이는 소리를 쓰는 일하고 같다. 몸소 읽은 책마다 무엇을 느꼈는가 하고 돌아보며 쓰는 일이란, 멧등성이 너머로 날아가는 멧새가 우짖는 소리를 쓰는 일하고 같다. 가을바람에 살랑이는 억새풀 이야기를 쓸 수 있는가. 풀벌레가 밤낮으로 노래하는 이야기를 쓸 수 있는가. 누렇게 익는 나락빛 이야기를 쓸 수 있는가. 해맑게 웃는 아이들 놀이 이야기를 쓸 수 있는가.


  햇볕을 글로 쓰고, 흙빛을 글로 쓰며, 달빛을 글로 쓸 수 있을 때에, 스스로 어떤 이야기라도 글로 쓸 수 있다. 책 읽은 느낌이야 아무것 아닌 글쓰기가 된다. 독후감이나 논문이란 얼마나 손쉬운 글이요, 손쉬우면서 덧없는 글이 될까. 삶을 밝히려고 쓰는 글일 때에는 어떠한 글도 마음에서 우러나와 홀가분하게 쓸 수 있다. 삶을 밝히지 않거나 삶을 짓지 않는 글일 때에는 아무런 글도 사랑스럽게 쓸 수 없다.


  가만히 돌아보니, 나는 고등학교 2학년 적에 두 가지 다짐을 하고, 이 다짐을 곰곰이 아로새기면서 한 가지 다짐을 더 해서 세 가지 다짐을 했다. 마지막 셋째 다짐은, 읽고 느낀 모든 이야기를 삶으로 풀어내자 하고 다짐했다. 읽는 까닭과 쓰는 까닭은 ‘살아가고 싶기’ 때문이다. 살아가려는 마음이나 뜻이 없다면 읽을 까닭도 쓸 까닭도 없다.


  그러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 어떤 삶을 빚거나 누려야 할까. 사랑하며 살아갈 나날이란 무엇이요, 꿈을 꾸며 착하게 다스릴 삶이란 무엇일까. 읽을 수 있는 책을 종이에서건 풀에서건 하늘에서건 찬찬히 읽으면서 생각한다. 내가 무언가 읽는 까닭은 스스로 어떠한 삶을 즐기고 싶기 때문인가 하고 돌아본다. 내가 무언가 쓰는 까닭은 스스로 어떠한 삶을 빛내고 싶기 때문인가 하고 되짚는다. 곧, 셋째 다짐인 ‘삶으로 녹이기’가 있을 때에 책읽기가 생겨나고 글쓰기가 일어난다. ‘삶으로 지내기’가 있어야 비로소 책도 글도 이 땅에 태어난다. (4345.10.15.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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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들보라 국그릇

 


  어린 산들보라는 물잔이든 국그릇이든 혼자 쥐어 혼자 마시고 싶다. 옆에서 그릇이나 물잔을 들어 먹여 주면 안 흘리고 마실 수 있지만, 흘리거나 쏟더라도 제 손을 쓰고 싶다. 그저 기다리며 가만히 지켜보면 될 테지. 옷은 빨면 되고 몸은 씻기면 될 테지. 하루하루 팔힘과 다리힘과 몸힘이 붙을 테니, 지긋이 바라보며 씩씩하게 밥을 먹으라고 맡기면 될 테지. (4345.10.17.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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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걀 까는 어린이

 


  달걀을 삶으면 큰아이가 곁에서 “내가 달걀 깨고 싶어.” 하고 말한다. 아직 ‘까다’와 ‘깨다’를 제대로 가누어 말하지 못하지만, 삶은달걀을 껍질 담는 그릇하고 나란히 내밀면 예쁘게 깐다. 큰아이 옆에서 작은아이가 지켜보면서 ‘얼른 까서 나도 하나 줘.’ 하고 응응거린다. (4345.10.17.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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묶음표 한자말 173 : 외피(外皮)

 


이 모든 것은 다 공포의 표피에 불과하며, 내가 잡을 수 있는 것은 그 외피(外皮)이고, 그 진짜는 도저히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루이제 린저/윤시원 옮김-낮은 목소리》(덕성문화사,1992) 33쪽

 

  “공포(恐怖)의 표피(表皮)에 불과(不過)하며”라는 글월을 곱씹습니다. 낱말을 하나하나 따지면, ‘공포’는 한국말 ‘두려움’을 가리키고, ‘표피’는 한국말 ‘겉껍질’을 가리키며, ‘불과하며’는 ‘지나지 않다’ 그러니까 ‘-일 뿐’을 가리킵니다. 말뜻 그대로 한국말로 옮기자면 “두려움의 겉껍질일 뿐이며”인 셈이고, 한국 말투로 가다듬어 “겉으로 드러나는 두려움일 뿐이며”나 “껍데기일 뿐인 두려움이며”으로 새로 쓸 수 있어요. ‘도저(到底)히’는 ‘도무지’로 다듬고, ‘파악(把握)하기’는 ‘알기’나 ‘헤아리기’나 ‘종잡기’로 다듬어 줍니다.


  한자말 ‘외피(外皮)’는 “(1) = 겉껍질 (2) = 겉가죽”을 뜻한다 해요. 곧, ‘외피’는 한국사람이 쓸 말이 아닌 바깥말입니다. 한국말 ‘겉껍질’과 ‘겉가죽’을 밀어내며 함부로 쓰이는 바깥말이에요.

 

 외피(外皮)이고
→ 겉껍질이고
→ 겉가죽이고
→ 껍데기이고
→ 겉모습이고
 …

 

  껍데기 같은 바깥말에 휘둘리지 않기를 빕니다. 알찬 속살 같은 한국말을 슬기롭게 쓰기를 빕니다. 겉치레 아닌 속치레를 하고, 겉발림 아닌 속가꿈으로 말과 넋과 삶을 아름다이 빛낼 수 있기를 빕니다. (4345.10.16.불.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이 모두는 다 겉으로 드러나는 두려움일 뿐이며, 내가 잡을 수 있는 것은 그 껍데기이고, 그 참모습은 도무지 알기 어렵습니다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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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권 나온 소식을 보고는 1권을 주문해 본다. 흔한 설정일 수 있고, 이 비슷한 만화를 여럿 보았는데, 어떠한 삶을 어떻게 풀어내느냐를 눈여겨보아야겠지. 부디 사랑스러운 만화이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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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코더와 책가방 1
히가시야 메메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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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0월 16일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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