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어른입니까 5] 나이읽기
― 사람을 보는 눈길, 허울을 보는 눈매

 


  아이들을 데리고 어디를 다니면 둘레 어른들이 우리 아이들을 바라보며 귀엽다고 말하다가도 으레 나이를 묻습니다. “너 몇 살이니?” 아이 앞에서 적어도 ‘-요’나마 붙여 “몇 살이에요?” 하고 묻는 어른은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어른들 스스로 당신이 아이보다 나이가 많으니까 처음부터 말을 놓고 들어옵니다.


  아이와 함께 다니는 다른 어른도, 아이 없이 혼자 다니는 다른 어른도, 으레 우리 아이더러 “몇 살”인가를 물을 뿐, 정작 이름을 묻는 일은 매우 드뭅니다. 어느 모임자리에서 조금 오래 얼굴을 마주할 때에는 이름을 묻기는 하되, 나이부터 먼저 묻고 나서 이름을 묻습니다.


  아이들 나이 알아맞히는 놀이를 하는 어른일까요. 나이를 알아서 무엇을 할는지 알 길이 없지만, 아이들 나이 하나만 궁금하게 여깁니다. 그렇다고 아이들 나이를 묻고 나서 잘 되새기지 않아요. 쉽게 묻고 쉽게 잊어요. 다시 쉽게 묻고 또 쉽게 잊어요.

  알고 싶어서 묻지는 않겠지요. 잘 되새기려고 묻지는 않겠지요. 버릇처럼 묻습니다. 서로 ‘높고 낮음(위계)’을 나누려고 묻습니다. 게다가, 아이와 함께 다니는 어른들은 나이를 묻고 나서 저희 아이랑 ‘숫자 대기’를 합니다. 한쪽이 나이가 더 많으면 누나이니 오빠이니 형이니 동생이니 언니이니 하고 부름말을 틀짓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군대나 회사나 공공기관을 들여다보면, 이들 조직은 밥그릇이라 하는 나이를 따집니다. 이른바 ‘호봉’이라고 해서, 얼마나 오래 조직에 몸을 담갔느냐를 놓고 ‘나이 매기기’를 합니다. 먼저 들어와서 조금 더 조직살이를 했으면 ‘어른(또는 선배) 노릇’을 하려고 듭니다.


  학교에서는 ‘학년’이라 하는 나이를 따집니다. 초등학교 몇 학년, 중학교 몇 학년, 고등학교 몇 학년, 이렇게 학년 나이에 따라 줄을 세웁니다. 다 다른 아이들이지만 다 같은 나이에 맞추어 똑같은 틀에 가두고는 줄을 세웁니다. 예전에는 일고여덟 살쯤 될 무렵에야 비로소 ‘같은 나이 줄세우기’를 했으나, 요즈음에는 갓난쟁이마저 보육원에 집어넣는 흐름이기에, 이 나라 아이들은 한두 살일 적부터 ‘같은 나이 줄세우기’에 들볶입니다. 키도 마음도 생각도 앎도 다른 아이들이요, 몸도 팔다리도 눈썰미도 다 다른 아이들이지만, 같은 나이에 맞추어 똑같이 생긴 교실에 들어가서 줄을 맞추어 앉아야 할 적에는 ‘번호로 부르는 숫자’를 받고는 똑같은 틀로 다스려집니다. 아이들은 아주 어릴 적부터 ‘관리 대상’이 돼요.


  아이들은 키가 자랍니다. 아이들은 몸집이 커집니다. 학교에서는 아이들 키와 몸무게와 가슴둘레와 이것저것 숫자로 꼬치꼬치 따지고 잽니다. 체력을 재고 시험을 치릅니다. 아이들은 학교에 들어가기 무섭게 저희 이름을 잊고, ‘아이한테 주어진 번호에 따라 끝없이 따지고 재고 매기고 붙이는 숫자’에 따라 다스려집니다. 이를테면 몇 살에 몇 센티미터 몇 킬로그램, 몇 살에 달리기 몇 초 팔굽혀펴기 몇 차례, 몇 살에 산수 몇 점 국어 몇 점, 몇 살에 던지기 몇 미터 행동발달사항 몇 점, 몇 살에 봉사활동 몇 점 영어능력이나 한자능력 몇 급 ……. 아이들은 학교를 다니며 저희 이름을 잊고 숫자를 외웁니다. 저 먼 데 있는 푸른숲 잣나무에 앉은 꾀꼬리를 알아볼 수 있느냐 없느냐를 따지지 않고 시력점수 2.0이라느니 1.0이라느니 0.1이라느니 또 얼마라느니 하는 숫자를 외웁니다. 책을 읽었으면 어떠한 책을 읽으며 가슴속에 어떤 꿈과 사랑이 샘솟는가 하는 대목을 이야기할 때에 아름답겠지만, 몇 권을 읽었는지를 따지고 주인공과 줄거리 외우기에만 휩쓸립니다.


  어느 모로 본다면, 푸름이한테 “너 몇 학년이니?” 하고 묻기보다는 “너 몇 살이니?” 하고 물을 때에 한결 사람다울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푸름이는 ‘중3’이나 ‘고2’가 아니라 ‘열여섯 살 푸름이’나 ‘열여덟 살 푸름이’라 할 때에 걸맞을 테니까요. 버스를 타거나 어느 시설을 쓸 적에 ‘학생 삯’ 아닌 ‘청소년 삯’을 따져야 알맞다 할 수 있어요. 그런데, 이 대목도 차근차근 더 헤아린다면, ‘어린이 삯’과 ‘푸름이 삯’과 ‘어른 삯’과 ‘어르신 삯’ 이렇게 나눌 수 있겠지요. 다시금 더 헤아리면, 이런저런 나이나 모습으로 가르지 말고 누구나 똑같은 삯으로 나눈다든지 아예 삯을 없애면 훨씬 나아요.


  이제 대학생이 퍽 많이 늘어났기 때문인지, 어른들 사이에서는 “몇 학번이셔요?” 하고 묻는 사람이 있습니다. 물어 보려면 차라리 ‘나이’를 물을 노릇이건만, 나이 아닌 ‘학력 신분’을 물어요. 스스로 학력 신분을 누리는 계급이기에 이처럼 물을 텐데, 삶을 즐거이 누리지 못하는 모습은 더없이 슬프구나 싶어요.


  한겨레 옛말에 ‘개밥에 도토리’가 있고, ‘따돌리다’나 ‘돌림뱅이’가 있습니다. 우리 겨레도 누군가를 괴롭히거나 들볶던 발자국이 있구나 싶은데, 양반과 양반 아닌 사람, 임금과 임금 아닌 사람, 권력자와 권력자 아닌 사람, 땅임자와 땅임자 아닌 사람, 이렇게 틀이 갈린 나머지 ‘개밥에 도토리’ 같은 말마디가 생겼구나 싶어요. 임금과 임금 아닌 사람이 갈리지 않고 서로 사랑스러운 사람으로 아끼거나 사랑했다면 ‘따돌리다’나 ‘괴롭히다’라는 낱말조차 안 태어났겠지요. 그러니까, 한겨레가 서로를 믿고 아끼는 삶을 누렸으면 ‘싸움’이나 ‘미움’ 같은 낱말은 안 태어나요. 자꾸자꾸 슬픈 수렁으로 빠지니까 ‘전쟁’이나 ‘(전쟁)무기’ 같은 한자말을 끌어들입니다.


  해마다 한 살 나이를 먹으며 철이 드는 일은 아름답다고 느낍니다. 저마다 한 살 나이가 들며 생각을 깊이 다스리고 꿈을 넓게 펼치는 일은 아리땁다고 느낍니다. 나이란, 밥그릇 숫자에 따라 금을 죽 긋고는 높고낮은 지위나 신분이나 계급을 나누라는 데에 쓰라고 생기지 않았으리라 느낍니다. 삶을 누리면서 사랑을 빛내는 한 살 두 살이 모여 ‘철’이 되고 ‘슬기’가 되기에, 먼먼 옛날부터 나이값을 말하면서 나잇살을 헤아렸으리라 느낍니다. 4345.12.1.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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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야
김홍모 지음 / 북스(VOOXS) / 2009년 3월
평점 :
품절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217

 


내가 좋아하는 12월 맞는 첫날
― 누나야
 김홍모 글·그림
 북스 펴냄,2009.3.18./9000원

 


  전남 고흥 시골집에서는 12월이 되어도 김이 나오지 않습니다. 깊은 밤이나 때이른 어둑어둑 새벽에는 김이 살짝 나오는구나 싶지만, 햇살이 드리우는 아침부터 별이 반짝이는 저녁까지 입김을 보지 못해요. 옆지기 동생이 시집을 가기에 모처럼 경기 일산으로 마실을 나오고 보니, 순천역에서 떠난 기차가 용산역에 닿아 내려 택시를 불러 타기까지, 또 일산집에 내려 짐을 들고 방으로 들어가는 동안, 입에서 나오는 숨결이 하얀 김이 되어 파르르 흩어집니다. 오, 겨울이로구나. 찬바람이로구나. 비로소 겨울 느낌을 누립니다.


  나는 12월이 다가오면 가슴이 콩닥콩닥 뜁니다. 한 해를 마무리한다는 12월이라고들 일컫지만, 나로서는 12월이 한 해를 처음 여는 달이라고 느낍니다. 왜 그런고 하니, 내가 내 어버이한테서 고운 사랑을 받아 태어난 달이 12월이거든요. 게다가 12월 가운데에서도 ‘큰눈 절기’에 태어났어요. 겨울에 태어났고, 12월에 태어났으며, 큰눈 절기에 태어난 내 목숨이 얼마나 예쁘며 사랑스러운지 모릅니다. 나를 이렇게 뜻깊은 날에 맞추어 이 땅으로 맞아들인 어버이가 얼마나 고마우며 어여쁜지 모릅니다.


  막상 12월에 큰눈을 구경한 일은 드물지만, 인천이라는 바닷마을에서 살아가느라 어쩔 수 없기도 했다고 느껴요. 인천은 서울 곁에서 ‘공산품 만들어 올려보내는 공장도시’ 구실을 맡거든요. 동네마다 크고작은 공장이 수두룩하게 있어 바람이 매캐해요. 서울사람 쓰고 버린 쓰레기를 인천에 파묻어요. 서울 꽃섬도 쓰레기섬이지만, 인천 변두리도 서울사람 쓰레기 묻는 터예요. 게다가 서울사람 쓰는 전기를 인천에서 만들고, 서울사람이 쓰고 버린 물을 인천에서 받아들여 인천 앞바다로 풀어놓잖아요. 이렇게 쓰레기와 매연이 가득한데다가, 온갖 수출입 짐꾸러미를 인천항에서 보내고 받고 부리고 나르고 하니까, 자동차 배기가스마저 끔찍해요. 이런 도시에는 눈이 내려도 뿌옇기 일쑤이고, 눈이 잘 안 내려요.


.. “누나야, 배고프다.” “빨래하고 와서 먹자. 호미하고 바가지 챙겨.” ..  (3∼4쪽)


  일산집에서 언손을 호호 녹이며 입김을 만듭니다. 두 아이는 일산집 개들이랑 놀면서 입김이 자그맣게 호호 나옵니다. 나는 애 입김을 바라보며 놀고, 아이들은 저희 입에서 입김이 나오는 줄 모르면서 까르르 웃고 떠듭니다.


  부산스레 놉니다. 낄낄 깔깔 놉니다. 엎어지기도 하고 넘어지기도 하면서 놉니다. 몸이 너무 차가우면 방으로 들어가서 이부자리에서 뒹굴며 놉니다. 일산 이웃집에서 우리 아이들한테 선물로 준 자그마한 놀잇감 자동차를 갖고 놉니다. 연필과 공책으로 놀고, 넓은 종이를 깔아 그림을 그리며 놉니다.


  깊은 밤 바깥으로 나오면, 일산 변두리에 있는 이곳에서 별을 조금 올려다볼 수 있습니다. 코앞에 우람한 송전탑이 있어 안타깝지만, 까만 밤하늘에 자그마한 별빛이 반짝반짝 예뻐요. 그런데 이 조그마한 몇몇 별조차 일산 시내로 간다든지, 서울 언저리로 들어간다든지 하면 하나도 안 보입니다. 보름달이 뜨든 초승달이 뜨든 도시 밤하늘에서는 달빛조차 어림할 수 없어요.


  무엇보다 도시에서는 눈을 느긋하게 구경하지 못합니다. 도시사람은 눈이 오기 무섭게 염화칼슘을 뿌리고 모래를 뿌려요. 길에 눈이 안 쌓이게 한다며 부산합니다. 왜냐하면, 자동차가 다녀야 하니까 길바닥에 눈이 있으면 안 된다고 여겨요. 도시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이 눈송이를 뭉쳐 눈놀이를 하거나 눈사람을 굴리도록 눈을 두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눈을 밟으며 발자국 내는 기쁨을 누리게 하지 않아요. 언제나 자동차를 먼저 생각합니다. 늘 자동차가 맨 먼저입니다.


  그러고 보면, 도시에 있는 길은 모두 자동차를 생각해서 놓은 길이지, 사람을 생각해서 놓은 길이 아니에요. 사람이 즐거이 오가도록 꾀하며 놓은 길이란 없어요. 자동차가 다니기 좋도록 길그림을 좍 펼쳐서 골목집을 쭉 밀고는 길을 반듯하게(?) 편다고 해요.


.. 누나는 빨래를 하고, 꼭지는 다슬기를 잡아요 ..  (10∼11쪽)


  해가 날 적에는 해가 나기에 즐겁습니다. 비가 올 적에는 비가 오기에 즐겁습니다. 바람이 불 적에는 바람이 불기에 즐겁습니다. 눈이 올 적에는 눈이 오기에 즐겁습니다. 시골마을에서는 해와 비와 바람과 눈을 그때그때 다 다르게 누립니다. 구름이 끼면 구름마다 모양이 다른 모습을 느낍니다. 바람이 부는 때에도 바람결이 늘 달라요. 고요히 잠든 바람이 있고 휭휭 몰아치는 바람이 있어요. 바람에 나뭇잎 날아다니기도 하고, 여름철에는 나뭇잎이 반짝반짝 눈부시기도 해요.


  봄에는 봄바람을 쐬는 빨래에 봄기운이 스며듭니다. 여름에는 여름햇살을 받는 빨래에 여름기운이 젖어듭니다. 가을에는 가을빛을 받아들이는 빨래에 가을기운이 감돕니다. 겨울에는? 겨울에는 겨울눈 소복소복 내리기도 하는 차가운 기운이 가만히 물들어요.


  겨울 문턱에 들어서는 12월은 차고 따가운 바람이 몸속 구석구석 들어옵니다. 오들오들 떨다가도 ‘아, 춥네.’ 하고 웃습니다. 참말 12월에는 첫 찬바람이 새록새록 즐겁게 차가든요. 두 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습니다. 어기적어기적 걷습니다. 무릎이 시리면 콩콩 뜁니다. 달음박질을 칩니다. 껑충껑충 뛰면서 폴짝폴짝 납니다. 손을 비비면서 추위를 녹이고, 아이들 볼에 내 볼을 대면서 서로서로 따순 기운을 나눕니다. 여름에는 아이들 안고 다닐 적에 땀이 후끈후끈 솟지만, 겨울에는 아이들 안고 다니며 서로 따뜻합니다.


.. 집에 갈 때는 누나 손을 꼭 잡고 가지요 ..  (19쪽)


  김홍모 님이 당신 이럴 적 이야기를 담았다고 하는 그림책 《누나야》(북스,2009)를 읽습니다. 애틋하게 그리는 누나와 얽힌 고운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참말, 형제 자매 여럿 있는 집안에서는 아이들이 서로서로 돕고 아끼면서 자라요. 형아가, 오빠야가, 누나야가, 언니야가, 저마다 살가우며 사랑스럽습니다. 살몃살몃 짓는 웃음이 곱습니다. 와하하 터뜨리는 웃음이 시원스럽습니다. 빙그레 짓는 웃음이 상냥합니다. 까르르 터뜨리는 웃음이 푸릅니다.


  삶이란 웃음입니다. 사랑이란 웃음입니다. 어버이는 사랑으로 아이들을 낳고, 아이들은 저마다 아끼고 보듬으며 돌보는 사랑으로 무럭무럭 큽니다. 아이들은 씩씩하게 자라 새롭게 어버이가 되어 이녁 어버이가 물려준 사랑을 저희들이 새로 낳는 아이들한테 이어줍니다.


  사랑이 씨앗 되어 밭에 드리웁니다. 사랑이 밭에서 튼튼히 자랍니다. 사랑이 흐드러지고 사랑이 꽃으로 피어나며 사랑이 소담스러운 열매로 나타납니다. 사랑이 있기에 오늘 하루를 누립니다. 사랑이 있어 그림쟁이가 되거나 글쟁이가 되거나 사진쟁이가 되어 이녁 어릴 적 함빡 누린 사랑을 책 하나에 알뜰히 담습니다. 김홍모 님이 앞으로도 당신 어릴 적 고운 사랑이야기와 꿈이야기를 새록새록 빚어서 즐거이 나눌 수 있기를 빌어요. 그림을 그리는 사람도 그림을 읽는 사람도, 바로 스스로 누린 사랑을 들려주는 이야기가 가장 즐겁고 아름답습니다. 4345.12.1.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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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과 놀이와 마실

 


  며칠째 밥을 안 하고 이불을 안 개며 청소할 일이 없다. 그러나 책을 편다든지 글을 쓸 틈은 도무지 안 난다. 아이들 쳐다보느라 바쁘다. 집에서는 이 일 저 일 끝없이 붙잡으면서 아이들 쳐다보느라 바쁘더라도 외려 틈틈이 책을 펴거나 글을 쓰는데, 바깥마실을 나오면 집안일에서는 홀가분해진다만, 홀가분해지는 몸과 마음으로 온통 아이들을 쳐다보아야 하기에, 차분히 스스로를 돌아보며 책과 글을 만지작거리기는 수월하지 않다.


  곰곰이 생각한다. 그러면, 이런 바깥마실이 못마땅한가? 아니다. 바깥마실은 바깥마실대로 뜻과 보람이 있다. 아이들을 더 쳐다보도록 이끄는 이 바깥마실은 ‘몸으로 읽는 책’으로 이끈다. 여느 날 여느 일에서는 누리지 못할 온갖 이야기를 온몸과 온마음으로 맞아들이도록 돕는다. 이를테면, 아이들과 바깥마실을 하기 때문에, 택시도 얻어서 타면서 택시 일꾼이 누리는 고단한 삶을 들을 수 있다. 시골버스가 어떤 마을 사이를 돌고 돌아 읍내로 가는가를 헤아릴 수 있다. 서울과 같이 커다란 물질문명 울타리에 자동차가 얼마나 많은가를 새삼스레 느끼고, 이 시멘트·아스팔트 쳇바퀴에서 겉차림에 마음을 기울이느라 속차림에는 마음을 못 기울이는 사람들이 더없이 많다고 다시금 느낀다.


  시골에서 숲을 바라보고 숲을 느낄 때가 가장 즐겁다. 도시로 마실을 나와서 지낼 적에는 ‘우리 식구가 얼마나 즐겁고 환한 데에서 기쁨과 웃음을 받아먹고 살아가는가’를 뚜렷하게 깨닫는다. 우리 식구는 우리 식구대로 시골마을에서 예쁘게 살되, 도시에서 살림을 꾸리는 이웃과 동무는 이들대로 예쁜 마음이 되어 예쁜 살림 꾸리도록 기운을 차리라고 가만히 빌어 본다. 저마다 씩씩하게 튼튼하게 사랑을 빛낼 수 있기를 빌어 본다. 겨울을 맞이해 찾아드는 차디찬 바람은 서로서로 더 어깨동무하고 더 따스히 손을 맞잡으며 더 아름다이 사랑을 빛내라는 뜻이라고 느낀다. 4345.12.1.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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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다루는 마음

 


  서울 불광3동에 있는 헌책방에 여러 해만에 찾아갑니다. 인천을 떠나 충청북도 멧골집에서 지내다가, 다시 전라남도 고흥 시골집에서 살아가니, 서울에 있는 크고작은 헌책방 가운데 몇 해에 한 차례라도 나들이할 수 있는 곳은 드뭅니다. 인천에서 살거나 서울에서 지낼 적에는 꾸준히 찾아들던 곳인데, 이제는 마음으로만 ‘책살림 즐거이 꾸리시겠지요?’ 하는 인사를 보냅니다.


  옆지기 동생 시집잔치가 있기에 경기 일산으로 찾아와서 사흘째 지내다가 택시를 불러 혼자서 불광3동 헌책방으로 나들이를 갑니다. 두 시간 남짓 책을 살핍니다. 헌책방 일꾼 삶 이야기를 조곤조곤 듣습니다. 책값을 셈하고서 책방 문을 나설 즈음, 헌책방 일꾼이 한 마디 들려줍니다. “여기에 있는 책들 80%는 내 마음에 있는 책들이에요.” 당신이 마음으로 아끼거나 읽거나 좋아하는 책들이 80%라는 뜻입니다. 다른 20%는 당신 마음에 없더라도 책손 마음에 들 만하리라 여기는 책이라는 뜻입니다. 이러거나 저러거나, 다른 20%도 헌책방 일꾼 마음이 닿은 책이겠지요. 교과서 진도에 맞추어 대학입학시험에 얽매이는 학습만화라 하더라도, 서울에서 주식투자 잘 하는 길을 들려주는 자기계발책이라 하더라도, 아이들 자습서나 교과서 한 권이라 하더라도, 헌책방 일꾼으로서는 당신 밥벌이만 헤아려서는 책을 사서 갖출 수 없습니다. 아무리 잘 팔릴 만한 책이라 하더라도, 마음이 가 닿아 ‘이만 한 책이라 한다면 책 다루는 일 하는 즐거움과 보람을 누리겠구나.’ 하고 느낄 만한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내 마음으로 살포시 찾아와서 곱게 닿는 책을 손에 쥐어 펼칩니다. 내 마음을 짠하게 움직이는 책을 주머니를 뒤져 돈이 얼마 있나 어림한 다음 장만합니다. 천 원 만 원 십만 원 ……과 같은 돈은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내가 마음을 들여 읽을 만한가를 살핍니다. 내가 마음을 기울여 사랑할 만한가를 헤아립니다. 내가 마음을 쏟아 아끼면서 빛낼 만한가를 돌아봅니다.


  책을 만지작거리던 손을 내리고는 문득 고개를 들어 보꾹을 올려다봅니다. 마음이 있을 때에 밥을 맛나게 짓고, 마음이 있을 적에 아이들이랑 살가이 노래노래 부르며, 마음이 있기에 비로소 책방마실을 합니다. 모든 책을 빠짐없이 갖추어야 할 도서관이나 책방이 아니에요. 책방 일꾼 스스로 마음으로 아낄 만한 책을 갖추어야 할 책방이에요. 도서관 또한 도서관을 지키는 일꾼 스스로 마음으로 보듬을 만한 책을 건사해야 할 노릇이로구나 싶어요. 내가 큰 새책방이나 숱한 도서관으로 나들이를 가지 않는 까닭을 시나브로 깨닫습니다. 온갖 책을 수없이 갖춘대서 나들이를 할 만하지 않아요. 도서관이나 새책방을 지키는 일꾼들 마음이 하나하나 묻어난 어여쁜 책이 있을 때에 신나게 나들이를 할 만합니다. 나는 한국땅 골골샅샅 예쁘게 살림을 일구는 크고작은 헌책방을 아름답다고 여깁니다. 참말 그러한데, 모두들 이녁 스스로 마음을 기울여 보살피는 책을 알뜰살뜰 건사하니 이들 아름다운 헌책방에서 내 눈길과 손길과 마음길을 아름답게 살찌우고 싶어 씩씩하게 아이들 이끌고 헌책방마실을 누립니다. 4345.12.1.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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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2-12-02 21:14   좋아요 0 | URL
불광 3동의 헌책방이면 어디 인가요? 예전 동명여고인가 그 부근에 헌책방이 하나 있었던것 같은데 문을 닫은것 같고 그 부근 헌책방이면 연신내역 부근에 한 2군데 있던것 같더군요.

파란놀 2012-12-02 21:39   좋아요 0 | URL
불광3동 연산초등학교 둘레 큰길에 있는 <작은우리> 헌책방입니다.
이곳도 아름다운 헌책방이랍니다~

카스피 2012-12-03 11:52   좋아요 0 | URL
작은우리라 이름을 들어보니 예전에 몇번 갔던곳인것 같네요^^

분꽃 2012-12-18 15:06   좋아요 0 | URL
저희동네에도 헌책방이 하나 생겼어요. 이름이 <아직숨은책방>인데요, 퓨전헌책방이라고 해야 할까??? 아주 조그만 옛날집을 얻어서 꾸몄는데 책이 아직은 많지는 않고요, 간단하게 차도 마실 수 있고 책구경도 하는....오래도록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랍니다~~

파란놀 2012-12-18 18:57   좋아요 0 | URL
재미있는 데가 문을 열었군요.
분꽃 님 바람처럼 오래오래 자리를 지키는
예쁜 책쉼터로 이어가면 좋겠어요~
 
 전출처 : sslmo님의 "내 사랑의 주체는 '나'"

 

저는 신문을 끊은 지 열 해가 넘었고,

방송을 끊은 지 스무 해가 넘었어요.

 

그저 들여다볼 적에는 저 스스로 길들여지지만,

숲을 바라보며 살아가니

늘 숲내음을 사랑할 말이 샘솟더라구요.

 

양철나무꾼 마음을 빛낼 좋은 모습을 들여다보시기를 빌어요.

'책'에서도,

이런저런 자잘한 책보다는

'삶을 사랑스레 북돋울 만한' 알맹이들을

기쁘게 찾아서 마음을 빛내는 말을 누려 보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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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2-12-02 20:14   좋아요 0 | URL
ㅎㅎ 전 신문을 안봐도 되지만 TV없인 못살겠더라구요^^;;;

파란놀 2012-12-02 21:39   좋아요 0 | URL
저런... 그렇군요 ㅠ.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