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화사람 마실 다니기 (13.3.2.)
고흥 길타래 5―올봄·지난봄 들마실

 


  고흥 도화면 동백마을에서 살아가는 우리 네 식구는 지난 2011년 가을부터 이곳에 보금자리를 틀었습니다. 2011년 8월에 집 자리와 도서관 자리를 살피러 고흥마실을 처음 했고, 9월에 마음을 굳힌 다음, 10월에 살림집 계약을 하고서, 11월에 도서관으로 쓸 흥양초등학교 건물 넉 칸 빌려서, 고흥에 갓 뿌리를 내렸어요.


  많이 어린 두 아이하고 부대끼는 삶이라 다른 시골이웃처럼 알뜰살뜰 집살림을 건사하지 못합니다. 도서관 또한 제대로 열지 못합니다. 그러나, 집과 도서관 모두 천천히 뿌리를 내리며 튼튼하게 줄기를 올려 잎을 틔우고 꽃을 피우리라 생각해요. 새봄을 맞이해 들일·밭일 바쁠 나날이지만, 아이들을 생각하면서 우리 마을부터 제대로 돌아보고 즐겁게 누리며 반갑게 걷자고 마음을 먹습니다. 시골에서 일구는 삶이란, 느긋하고 넉넉하며 아름답게 삶을 누리자는 뜻이 될 텐데, 아이들이 고운 봄볕 흐드러지게 쬐면서 들길 걷는 일에도 마음을 기울이며 재미있게 놀자고 생각합니다.


  볕 좋은 한낮, 자전거를 끌고 나옵니다. 두 아이를 자전거수레에 태웁니다. 이웃마을에는 봄볕이 얼마나 드리우는가를 돌아보기로 합니다. 여섯 살 세 살 아이와 거닐면 면소재지까지 오갈 수 있고, 천등산 언저리까지 다녀올 수 있는데, 자전거수레를 몰면 한두 시간 길을 둘러볼 수 있어요.

 

 

 


  동백마을부터 달리는 자전거는 동호덕마을과 도화면 소재지를 지나 서오치마을에 이릅니다. 도화면 장날이 예전에는 무척 컸다 하는데, 이제 예전 모습은 찾아볼 길 없습니다. 참말 많은 사람들이 복닥거리며 서로 아끼고 돕는 시골살이 이루던 지난날이었겠지요.


  볕 아주 잘 드는 길가에 있는 시골집 동백나무 소담스레 벌어집니다. 참 빨리 피어나는군요. 그만큼 볕이 좋다는 뜻이요, 볕이 좋은 만큼 다른 곡식과 푸성귀와 열매도 잘 익는다는 뜻일 테지요.


  전봇대에 챙 넓은 모자 하나 있습니다. 들일 하는 할머니가 이곳에 모자를 꽂으시는 듯합니다. 전봇대에 끈 하나 묶으면 여러모로 쓸모가 있겠어요.


  예전에는 길가 가게였음직한 살림집 앞을 지납니다. 유리창에 빛바랜 자국으로 남은 ‘담배’ 종이를 보고 알아챕니다. 이 언저리에서 군내버스를 기다렸을까요. 마을 분들 들일 하다가 이곳에서 담배도 사고 막걸리도 샀을까요. 간장도 사고 조미료도 사고 소금도 사고 과자도 사고 라면도 사고 했을까요.

 

 

 


  지등마을 어귀에 나무 한 그루 섭니다. 아직 그리 큰 나무는 아닙니다. 앞으로 쉰 해를 더 살고 백 해를 더 살면, 이 나무 한 그루 지등마을 밝히는 우람한 나무 되겠지요. 이백 해 더 살고 사백 해 더 살면, 지등마을 지키는 씩씩한 나무 될 테지요. 큰아이하고 나뭇줄기를 쓰다듬고 어루만집니다. 나뭇줄기에 귀와 손바닥을 대고 나무 숨소리 듣습니다.


  지등마을 어귀에는 이곳에 있는 시설을 살펴 적바림한 자국이 아직 있습니다. 새마을운동이 한창이던 때에 이런저런 시설을 살펴 숫자를 적바림했을까요. 우물이 몇이요 가게가 몇이며 주민 숫자 몇이라는 대목을 이렇게 마을 어귀에 적도록 시킨 사람은 누구일까요. ‘무슨무슨 지도자 아무개’와 ‘담당공무원 아무개’ 자국은 아직 햇볕에 바래지 않습니다.


  아이들 태운 자전거를 천천히 몹니다. 겨울바람처럼 드세지 않고 차갑지 않지만, 바람이 제법 붑니다. 자전거를 몰며 마을 한 바퀴 빙 돌아봅니다. 봄햇살 포근히 내려앉는 시골길을 천천히 달립니다. 봄햇살 먹는 들풀은 푸릇푸릇 돋고, 길가에서 자라는 후박나무도 새 잎을 틔우며 꽃봉오리 맺으려고 부산합니다.


  지등마을에서 이목동마을 사이는 오르내리막. 이목동마을로 가는 길은 내리막이고, 지등마을로 가는 길은 오르막입니다. 자동차로 달리면 오르막도 내리막도 모르겠지요. 자전거로 달릴 때에 비로소 길이 어떠한가 하고 깨닫습니다. 지등마을에는 붉은벽돌로 쌓은 버스터 있고, 이목동마을에는 군에서 새로 지어서 놓은 듯한 버스터 있습니다. 햇살과 빗물 가릴 지붕 있고, 옆과 뒤는 유리로 막음하니, 버스 오가거나 사람들 오가는 모습 살피기에 괜찮겠구나 싶습니다. 마을사람 스스로 버스터 건물 짓기 앞서까지는 아무 푯말 없이 ‘이쯤에서 버스 서고 지나가고’ 했으리라 생각합니다.

 

 

 


  우리 집 마당 후박나무도 줄기 한쪽에서 새 가지가 나오곤 합니다. 이런 새 가지를 가지치기 하라고도 하지만, 모두 쳐내고 싶지는 않습니다. 옆줄기에서 돋은 작은 가지 하나 쉰 해나 백 해쯤 지나면 굵고 튼튼하게 자라, 쉰 해나 백 해 뒤 태어나 뛰놀 아이들이 나무타기를 하며 놀 수 있으리라 느껴요. 사람들은 소나무 가지를 뭉텅뭉텅 잘라 우듬지만 달랑 남기곤 하는데, 나무젓가락 박듯 나뭇가지 모두 치는 일은 나무한테도 사람한테도 안 좋으리라 느낍니다.


  이목동 세거리에서 원도동 쪽으로 꺾어 구암 바닷가를 빙 돌아볼까 하다가 작은아이 새근새근 자고 큰아이도 퍽 졸린 듯해서 집으로 돌아가기로 합니다. 박문터를 지나, 시루봉과 유주산 사이, 사동마을 가는 푯말 있어 이쪽으로 올라갈까 하며 자전거를 끌고 가는데 퍽 가파릅니다. 자전거를 달리지 못하고 내립니다. 땀 뻘뻘 흘리며 수레를 끕니다. 올라가도 올라가도 끝이 안 보인다 싶은데, 왼쪽 벼랑 따라 쓰레기 많습니다. 누가 어디에서 왜 여기까지 와서 쓰레기를 버렸을까요. 형광등과 빈 푸대뿐 아니라, 헌 텔레비전까지 있습니다. 술병은 너무 흔한 쓰레기입니다. 멧비탈에 쓰레기를 버리면 이 쓰레기는 누가 치울까요. 이 쓰레기는 어찌 될까요. 쓰레기로 덮인 비탈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요.


  도시사람이 고흥으로 왔다가 쓰레기를 버렸을까요. 이 둘레 마을 분들이 버린 쓰레기일까요. 아니면, 이 마을에서 좀 먼 다른 마을에서 자동차 몰고 여기까지 와서 쓰레기를 버렸을까요.

 

 


  사동마을까지 가지 못하겠다 싶어, 자전거를 돌립니다. 비탈길을 천천히 내려옵니다. 다시 서오치마을로 들어섭니다. 서오치마을 굵은 팽나무 옆을 지나갑니다. 비탈길에서 작은아이가 잠에서 깼기에 팽나무 곁에서 살짝 쉬었다 갈까 싶었는데, 팽나무를 빙 둘러 울타리를 세웠군요. 이 팽나무는 아무나 찾아가서 누릴 수 없는 듯합니다. 푸른 빛깔 쇠울타리에는 이 마을 아무개가 서울에 있는 ㅅ대학교에 붙은 일을 기리는 걸개천 하나 붙습니다.


  면소재지 가로질러 도화냇물 따라 신호리로 접어듭니다. 누르스름한 빛깔 고운 들길을 달립니다. 논둑 한쪽에 포기를 이루는 유채풀을 봅니다. 햇살은 따사롭게 내리쬡니다. 아이들은 수레에서 하품을 합니다. 자, 집으로 돌아가서 마당에서 신나게 뛰며 놀자.

 

 

 

 * * *


  지난 2012년 3월 언저리에는 들마실 어떻게 즐겼는가 하고 돌아봅니다. 지난해에는 작은아이가 아직 잘 걷지 못해, 옆지기와 내가 작은아이를 서로 업거나 안으며 큰아이는 걸리면서 걸어다녔습니다. 동호덕마을 마늘밭 사이를 지나가고, 서호덕마을 자작나무를 구경했습니다. 도화냇물에서 헤엄치는 물고기를 하염없이 바라보았어요. 도화냇물에 시멘트 붓고 큰돌 쏟으면서 물고기가 아주 많이 사라진 듯합니다. 왜 냇바닥을 시멘트로 메꾸면서 물고기 삶터를 없애거나 망가뜨려야 할까요. 물고기를 몽땅 죽이면서 수십 억 들이는 ‘냇바닥 공사’는 누구한테 이바지하는 일이 될까요.


  우리 식구는 시멘트로 안 덮은 논둑이 있는 데를 찾아서 걷고 싶었습니다. 이제 고흥군에서 시멘트 안 덮은 논둑은 아주 드뭅니다. 경운기 다니기 좋도록 논둑을 시멘트로 덮고, 잡풀 자라지 말라면서 논둑이랑 밭둑 모두 시멘트로 덮으려 합니다. 시골에서 살아간다지만, 흙땅이나 풀밭 밟고 거닐기란 퍽 힘들어요.

 

 

 

 


  집에서 면소재지까지 두 다리로 걸어서 나들이를 하던 어느 날, 면소재지에서 볼일을 보고 집으로 돌아가는 이웃마을 할매를 만납니다. 할매는 머리에 짐보퉁이 이고 지팡이 짚으며 씩씩하게 걸으셨어요. 면소재지에서 우리 마을이나 옆마을까지는 1100원이면 되는데, 할머니는 두 다리로 걸어서 오갑니다. 이렇게 두 다리로 걸어서 오가면, 들바람 먹고 들새 노래 마시며 봄볕 한껏 즐길 수 있어요.


  도화초등학교는 운동장이 흙바닥입니다. 가짜 잔디 안 깔아 참 반갑습니다. 깔려면 진짜 잔디를 깔아야지, 플라스틱 호르몬 뭉치라 할 인조 잔디 까는 일은 아이들한테 못할 짓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집 큰아이는 집부터 도화초등학교까지 걸어서 나들이를 하며 이것저것 타며 놉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들길에서는 막 피어나는 유채꽃을 봅니다. 논을 그득 채운 자운영 풀밭을 바라봅니다. 먹음직스러운 싱그러운 풀을 뜯고, 바람소리를 들으며 천천히 걷습니다.


  일찍 핀 동백꽃은 일찍 떨어집니다. 늦게 피는 동백꽃은 늦게까지 붉은 빛깔 베풉니다. 냉이꽃이랑 들쑥갓꽃 어우러진 마을회관 앞자락 작은 꽃밭은 한창 봄물결입니다. 봄을 먹는 봄마실입니다. 4346.3.17.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고흥 길타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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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3-17 23:21   좋아요 0 | URL
검정 비닐봉투를 머리에 이신 할머님과, 옆지기님과 사름벼리와 산들보라의 사진이 넘 좋습니다.^^
그런데 저는 저렇게 활짝 핀 동백꽃을 본 적이 없어요. ^^;;;

파란놀 2013-03-18 08:49   좋아요 0 | URL
비닐봉투는 아니고 보따리예요. 서울 언저리에서는 동백나무 보기 힘들지요.
전라남도 경상남도 바닷가 쪽 마을에서는 장미 저리 가라 할.. 참말 그런데, 온갖 동백꽃이 골고루 핀답니다. 분홍빛 동백꽃도 있어요. 참말 깜짝 놀랄 만한 어여쁜 동백꽃이 골골샅샅 피고 진답니다.

올해에는 동백꽃튀김을 한 번 해 볼 생각이에요 ^^;;;

appletreeje 2013-03-18 10:38   좋아요 0 | URL
앗, 보따리군요 ^^;;
그런데 동백꽃튀김의 맛은 어떠할까요~??
생각만 해도 즐겁고 아름답습니다. ^^
 

봄햇살

 


눈이 내려 쌓입니다.
냇물에 논바닥에 지붕에
하얗게 눈밭 이룹니다.
숲에 내린 눈은
손으로 떠서 먹고
찻길에 내린 눈은
자동차 밟아 시커멓습니다.

 

눈이 녹으며
봄까지꽃 광대나물 별꽃
하나씩 둘씩 돋아
푸른 잎사귀
퍼집니다.

 

봄풀에는
봄내음과 봄맛과
봄바람과 봄빛이
어립니다.

 

햇살은
눈에 나무에 풀에 꽃에
또 내 살결에
골고루 드리웁니다.

 


4346.2.10.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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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3-03-17 14:44   좋아요 0 | URL
자연이 주는 최고의 선물이 봄햇살이라고 여기며 며칠 전 걸었답니다.

파란놀 2013-03-17 15:47   좋아요 0 | URL
좋은 선물 듬뿍 받으셨겠어요
 

책은 몇 사람이 읽어야 할까
[헌책방에서 책읽기 2] 오태석 외 연극인 10인, 《무대 밖의 모놀로그》(고려원,1978)

 


  연극하는 사람들이 연극 아닌 글로 이야기를 풀어 보인다. 왜 연극 아닌 글로 당신 이야기를 펼쳐 보일까. 연극으로는 성이 차지 않을까. 연극으로는 보여줄 수 없는 이야기 있기에 따로 글을 쓸까.


  노래를 부르던 사람이 춤을 춘다. 춤을 추던 사람이 꽃씨를 심는다. 꽃씨를 심던 사람이 사진을 찍는다. 사진을 찍던 사람이 시를 쓴다. 시를 쓰던 사람이 그림을 그린다. 그림을 그리던 사람이 아이를 낳는다. 아이를 낳던 사람이 밥을 짓는다. 밥을 짓던 사람이 글을 쓴다. 글을 쓰던 사람이 노래를 부른다.


  삶은 실타래 되어 하나둘 이어진다. 연극하는 사람들은 틀림없이 글과 연극이 만나는 대목 있다고 여겨, 새롭게 연극을 하듯 글을 썼겠지. 헌책방 책시렁에서 마주한 책 《무대 밖의 모놀로그》(고려원,1978)를 읽는다. 이 책도 새책방 책시렁에서 사라졌지만, 고려원이라는 출판사도 새책방 언저리에서 사라졌다. 연극하는 전무송 님 옆지기는 이녁한테 “나는 연극배우와 결혼했지, 장사꾼하고 결혼한 것이 아니에요(148쪽).” 하고 말했단다. 문득 내 옆지기를 생각한다. 내 옆지기는 어떤 사람하고 짝을 지어 시골집에서 살아갈까. 하루를 바칠 아름다운 집숲이나 밭뙈기 따로 없고, 그저 시골이기만 이 집에서 어떤 마음 되어 나와 아이들하고 하루를 부대낄까.


  연극하는 손숙 님은 “이 연극의 대사 한 마디 한 마디는 바로 시였고 가슴을 치는 감동이었다(205쪽).” 하고 말한다. 그렇구나. 연극으로 읊는 말이 시였기에 시와 같은 글을 쓰겠지. 시와 같은 연극이기에 시와 같은 노래를 부르고, 시와 같은 춤을 추며, 시와 같은 아이들을 사랑하는 하루를 보내겠지.


  누군가 《무대 밖의 모놀로그》를 애틋하게 여겨, 2013년에 새롭게 내놓을 수 있으리라. 어쩌면 2058년쯤 이 책이 다시 태어날는지 모른다. 그러나 2100년이 되거나 2300년이 되어도 이 책은 다시 태어날 일 없을 수 있다. 국립중앙도서관에서조차 찾아볼 수 없는 책 될 수 있고, 헌책방 다니다 보면 이럭저럭 만날 만한 책이 될 수 있다. 반가이 맞아들일 책손이 십만이나 백만쯤 될 수 있고, 살가이 알아보는 책손이 한둘이나 열 몇쯤에서 그칠 수 있다.


  책은 몇 사람이 읽어 주어야 할까. 책은 어떻게 곰삭혀야 아름다울까. 책은 사람들한테 어떤 이야기씨앗 남길까. 책은 우리 보금자리에 어떻게 스며드는 이야기밭이 될까. 무대 안에서 꿈을 노래하고 사랑을 속삭이던 열 사람 삶자락 조곤조곤 묻어난 묵은 헌책 하나 쓰다듬는다. 4346.3.17.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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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3-03-17 14: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978년것이면 아주 오래된 책이네요. 저도 이렇게 오래된 책 있는데, 읽은 책이라도 없애지 못하겠더라고요. 색깔이 변해도 낡아도 그런 대로 좋더라고요.
신간은 신간대로, 이런 책은 이런 대로 귀하게 여깁니다, 저도요...^^

파란놀 2013-03-17 15:46   좋아요 0 | URL
음, 1978년이면... 그렇게까지 오래된 책은 아니지만, 고려원에서 낸 책들은 참 많이 애틋해요

appletreeje 2013-03-17 2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이 연극의 대사 한 마디 한 마디는 바로 시였고 가슴을 치는 감동이었다."
왠지 알 것 같아요.
삼일로창고극장에서 보았던 추송웅님의 '빨간 피터의 고백'이 생각나는 밤입니다.
좋은 밤 되세요.*^^*

파란놀 2013-03-18 08:47   좋아요 0 | URL
극장에서 연극을 보셨군요.
가끔,
추송웅 님 연극 보신 분을 뵙는데,
다들 아주 좋았다고 하시더군요.
영화로도 사진으로도 거의 남지 않아
요즈음 사람들은(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떠했을까를 알 길 없지만,
추송웅 님 스스로 남긴 자료와 사진을 보면
참 대단했겠구나 싶어요.

서태지가 데뷔할 때 전영록이 퉁 던진 말을 본 사람들,
또 서태지가 갓 텔레비전에 나올 때에 본 사람들... 하고
쉬 견주기 어려울 테지만,
때때로 그런 생각이 들곤 해요.
요즈음 아이들이 서태지가 어떤 노래꾼이었는지 알기는 알까??? 하고...

^__^
 
안국동울음상점 랜덤 시선 33
장이지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시외버스, 김밥, 시집
[시를 노래하는 시 46] 장이지, 《안국동울음상점》

 


- 책이름 : 안국동울음상점
- 글 : 장이지
- 펴낸곳 : 랜덤하우스코리아 (2007.11.30.)
- 책값 : 6000원

 


  아이들을 시골집에 두고 혼자 읍내로 장보러 가는 길에 시집 한 권 챙깁니다. 이 마을 저 마을 구비구비 돌며 천천히 달리는 군내버스에서 시 몇 줄 읽습니다. 가방 가득 여러 먹을거리를 장만하고 나서, 읍내에서 시골마을 돌아가는 군내버스 기다리며 다시 시 몇 줄 읽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움직이면 아이들 바라보느라 종이책 손에 쥘 수 없고, 아이들 없이 혼자 움직이면 내 눈은 종이책을 바라봅니다.


.. 전깃줄들을 따라 무수한 전파가 흐르는 하늘. 군중들이 피곤한 직장을 가방 속에 넣고 집으로 흘러간다 ..  (군함 말리의 우주여행)


  책을 좋아하기에 책을 읽는달 수 있지만, 멧길을 오르거나 숲길을 거닐며 종이책 손에 쥐는 일은 없습니다. 나무를 보고 풀을 보는 즐거움이 온몸으로 스며들 뿐 아니라, 멧자락과 숲자락에서는 내 눈을 푸르게 쉬도록 이끄는 빛깔 가득하기에, 나무책 읽고 풀책 읽습니다. 메책 읽고 숲책 읽어요.


  시골 버스역에도 광고판 많고, 시골 읍내에도 가게 많아요. 집 바깥으로 나가면, 마을에서 벗어나면, 온통 눈을 어지럽히는 것투성이입니다.


  때때로 시외버스 타고 시골을 한참 벗어나 도시로 갈라치면, 종이책 여러 권 챙깁니다. 시외버스 덜덜거리는 소리에, 시외버스 달리는 고속도로 메마른 모습에, 좁은 걸상에서 옴쭉달싹 못하며 시달리는 몸은, 종이책마다 서린 이야기로 젖어들며 비로소 쉽니다. 마음을 가다듬어 종이책 읽으면서 시끄러운 소리를 잊고, 메마른 모습을 잊으며, 고단한 몸을 잊어요.


.. 아버지가 고향을 잃고 한참 뒤에 어머니가 고향을 잃은 세상에서 나는 깨어난다. 버스비를 아끼느라 바지 속의 토킅을 만지작거리며 세 정거장이나 걸어왔다는 삼동 어느 날 아버지의 추운 이야기가 잘 아물지 않아 다시 수면제를 찾는다. 지갑 속에 명함이 늘어가고 시계 속의 숫자들이 허물을 벗어놓고 날아간다 ..  (셔벗 랜드,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릴)


  꼭지를 틀면 집집마다 가게마다 물이 콸콸 나옵니다. 그러나, 오늘날 여느 살림집을 들여다보더라도 정수기를 으레 들입니다. 새로 짓는 아파트에는 아주 마땅히 정수기가 붙습니다. 동네 구멍가게에도 먹는샘물 페트병에 담아 팝니다. 나라에서 어마어마하다 싶을 돈을 퍼부어 댐을 세우고 물관 박고 물꼭지 붙이고 하지만, 정작 사람들은 수도물 그대로 마시지 않습니다.


  댐을 세우거나 물관 박거나 이래저래 하는 데에 들인 돈을 헤아린다면, 도시이건 시골이건 냇물과 도랑물 정갈하고 깨끗하도록 지키는 데에 돈이나 품을 썼으면, 누구라도 거저로 가장 맑으며 좋은 물을 마실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아니, 그리 안 많은 돈과 품을 들여도 냇물과 도랑물은 정갈하면서 깨끗할 수 있어요.


  왜 빗물을 마시지 못할까요. 왜 냇물을 마시지 못할까요.


  왜 빗물도 냇물도 흐뭇하게 마시지 못하는 삶터로 만들고 말까요. 왜 이러한 삶터에서 물 한 모금 느긋하며 한갓지게 즐기지 못하는 하루를 보내고 마나요.


.. 대학 입시 때인가 처음 정월 보름달에 빌었다. 고향집 앙상한 목련나무 꼭대기, 대머리 달은 내 인생의 편집자처럼 앉아 있었다. 내 생의 스토리를 다 안다는 듯 / … / 달은 그렇게 아버지처럼 늘 곁에서 걸었다 // 달빛에 기대어 잠시 졸아도 좋으리 ..  (십칠야 날씨, 포근함)


  서울로 마실 가는 길에 읍내 김밥집에서 김밥 두 줄 장만합니다. 시외버스에서 김밥을 먹으며 시집을 읽습니다. 천천히 씹으며 천천히 읽습니다. 시외버스가 고속도로에 접어들며 더 빠르게 달리자, 멧자락에 낸 구멍길이 자꾸자꾸 나옵니다. 밝음과 어둠이 되풀이되고, 눈이 따가우며, 속이 메슥거립니다.


  고속도로란 이런 길이지, 하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이곳에서 저곳으로 더 빨리 달리자며 낸 고속도로란, 숲을 무너뜨리고 시골을 망가뜨리면서 다니는 길이지, 하고 생각합니다. 자가용을 타든 시외버스를 타든, 이 탈거리는 기름을 태워 배기가스를 내뿜고, 자동차 한 대 만들기까지 숱한 지구자원을 쓸 뿐더러, 열 해 즈음 달린 자동차는 어느새 쓰레기 대접을 받으며 참말 끔찍한 쓰레기 내놓으며 지구별 더럽히지, 하고 생각합니다.


  스스로 달리는 수레라고 하는 자동차는 스스로 달린다고 할 만할까요. 스스로 달리는 수레에 탄 사람은 걱정없이 어디라도 갈 수 있다고 할 만할까요. 왜 먼길을 애써 가야 하고, 왜 먼길을 애써 갈 때에 이렇게 빨리 달려야 할까요.


.. 사람들은 마음대로 삶을 규정해. / 그런 삶을 살아보지 않은 내가 / 그런 삶의 시를 쓴다면 위선이야. / 사람들은 내게 위선을 바래. / … / 내가 꿈이야. 나는 텔레비전 속으로 잠들어 ..  (TV 채널들 사이를 떠도는 노래)


  지난날 사람들은 걸어서 움직였습니다. 조선이라는 나라에서 명나라나 청나라에 갈 적이건, 명나라나 청나라에서 조선이라는 나라에 올 적이건, 누구나 으레 걸어서 움직였습니다. 전라남도 시골에서 서울로 가든, 서울에서 전라남도 시골로 오든, 누구나 마땅히 걸어서 움직이던 지난날입니다.


  조선에서 명나라로 가던 이들은 몇 해에 걸쳐 오갔다 할 만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몇 해에 걸쳐 먼길 한 차례 오가면서 수많은 이야기를 온몸으로 가득 붙잡습니다. 시골에서 서울을 여러 달 걸쳐 오가던 사람도 숱한 이야기를 온몸으로 듬뿍 사로잡아요.


  옛사람은 금강산 나들이 한 차례 하더라도 책 열 권 쓸 만합니다. 옛사람은 서울마실이나 시골마실 한 차례 하더라도 책 다섯 권 쓸 만합니다. 오늘사람은 외국마실 열 차례 하더라도 책 한 권 쓰기 어렵습니다. 오늘사람은 서울마실이나 시골마실 열 차례 하더라도 책 한 줄 쓰기 힘들어요.


.. 편의점 아가씨, 예쁘기도 하지, 어쩜 / 저 찻집 이름, lonely, 아름답기도 하지, / 여고생 깻잎 머리, 귀엽기도 해라, / 나는 구름 빛이고, 아까 산 〈탄토 템포〉를 / 듣는다 ..  (탄토 템포)


  나는 빨리 달리고픈 마음 없습니다. 나는 빨리 태어나서 빨리 죽고픈 마음 없습니다. 나는 빨리 먹고픈 마음 없습니다. 나는 밥을 빨리 차려서 아이들한테 밥을 후다닥 먹일 마음 없습니다.


  나는 자가용도 없고 운전면허증도 없습니다. 자가용을 장만할 생각 없고, 운전면허증 딸 생각도 없습니다. 나는 군내버스를 가끔 타지만, 으레 자전거를 타고, 언제나 두 다리로 걷습니다.


  나는 들길을 느끼고 싶어요. 나는 마을길을 헤아리고 싶어요. 나는 바람소리를 들으면서 구름빛을 살피고 싶어요. 나는 새와 벌레와 풀을 이웃으로 삼아, 고즈넉한 시골자락 삶을 일구고 싶어요.


.. 군화 소리가 났다. 사람들은 컴퓨터 게임 안의 괴수들처럼 보였다 ..  (철남)


  서울은 넓습니다. 아파트와 건물과 찻길이 끝없이 이어질 만큼 넓습니다. 서울은 서울대로 넓은 만큼, 서울사람 이야기가 태어납니다.


  시골은 넓습니다. 들과 숲과 바다와 벌이 멀리멀리 잇닿을 만큼 넓습니다. 시골은 시골대로 넓은 터라, 시골사람 이야기가 태어납니다.


  다만, 이제 글을 쓰거나 시를 쓰거나 노래를 짓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으레 도시에서 살아가며 이것저것 합니다. 시골에서 흙 만지며 글을 쓰는 이는 매우 적습니다. 시골에서 흙 돌보며 대학교수로 일하는 이는 아주 적습니다. 시골에서 흙 먹으며 국회의원이나 장관이나 시장이나 군수나 대통령 하는 이는 아주 없다 할 만합니다. 시골에서 흙 누리며 변호사나 법관이나 의사나 경찰이나 군인이나 공무원으로 살아가는 이는 몇이나 될까요.


..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설산 사진이 / 둘러쓴 이불 밑으로 언 발을 집어넣는다. / 세상 참 춥다. 그러나 그곳은 아직 멀리 있다. / 고마운 텔레비전이 그곳에 대해 / 저능아처럼 논평한다. / 아비가 자식의 목을 눌렀다네요 ..  (천국, 내려오지 않는)


  장이지 님 시집 《안국동울음상점》(랜덤하우스코리아,2007)을 읽습니다. 장이지 님은 전남 고흥에서 어린 나날 보냈다고 합니다. 군내버스에서 이 시집을 읽다가, 읍내 버스역에서 시골집으로 돌아가는 군내버스 기다리며 이 시집을 읽다가, 전남 고흥에서 흙 부대끼는 할매와 할배는 이 시집을 어떻게 읽을 만할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이쁜 총각이 이쁜 시 하나 썼네, 하고 생각하실까요. 이쁜 젊은이가 이쁜 시집 하나 냈네, 하고 여기실까요.


.. 제일 깨끗한 눈은 딸에게 줄 / 선물이라지요 ..  (마술사와 눈, 노숙자의 꿈)


  시집을 덮습니다. 시집 《안국동울음상점》에 깃든 가장 정갈한 글월 한 자락은 장이지 님 할매나 할배한테 베푸는 말꽃, 곧 선물이라고 느낍니다. 시집 《안국동울음상점》에 담은 가장 따사로운 글월 두 자락은 장이지 님이 오늘 살아가는 서울에서 마주하는 이웃한테 건네는 말빛, 그러니까 선물이지 싶습니다.


  이야기를 노래하는 시입니다. 이야기를 춤으로 보여주는 시입니다. 이야기를 고소한 밥 한 그릇처럼 한껏 차리는 시입니다. 이야기를 씨앗 한 톨로 심는 시입니다. 4346.3.17.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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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풀 돋는다

 


  맛있는 풀 돋는다. 아직 더 두고보아야 한다. 뜯어서 먹고픈 마음 몽실몽실 피어나지만, 더 자라면 먹자고 생각한다. 이 둘레 다른 풀 많으니, 차근차근 골고루 이곳저곳 돌아가면서 뜯어서 먹어야지.


  봄이 오고 나면 먹을 풀 흐드러져서, 바지런히 뜯지 않으면 어느새 훌쩍 자라고 만다. 훌쩍 자라도 먹을 만하고, 꽃이 피면 꽃망울까지 함께 먹는데, 틈틈이 뜯어서 먹어야 새로 돋아 새로 먹을 수 있고, 즐겁게 뜯어서 먹으면 참으로 가을이 저물 녘까지 온식구 고운 숨결 누릴 수 있다.


  얘들아, 푸른 얘들아, 너희는 곧 우리 아이들하고 한몸이 되겠지. 아니, 이렇게 있는 이 자리에서도 늘 한몸이겠지. 조그마한 씨앗으로 땅밑에 있을 적에도 언제나 한몸이었고, 아이들 밥상에서 아이들 손 거쳐 천천히 스며들 때에도 노상 한몸일 테지. 4346.3.17.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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