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에 한 줄, 빛내며 읽는 책

― 봄노래 나누는 책읽기

 


  일본사람 오다 히데지 님은 《미요리의 숲》(삼양출판사,2008)이라는 만화책을 그렸고, 이 만화는 만화영화로도 나옵니다. 《미요리의 숲》 1권 186쪽을 보면, “적어도 1년은 있을 거예요. 가을 숲과 겨울 숲, 봄 숲도 보고 싶으니까요. 내년에는 벚꽃도 필 거고.” 하는 이야기가 흐릅니다. 정갈한 시골마을 숲을 지키고 싶은 어린 미요리는 할머니 할아버지하고 시골마을에서 지내며 여름뿐 아니라, 가을과 겨울, 여기에 그 다음으로 찾아올 봄을 함께 누리고 싶다는 말을 해요. 손전화 기계는 냇물에 던져서 버리고, 과자를 찾지 않으며, 텔레비전을 보지 않아요. 마을 아이들하고 숲에서 달리고 뒹굴어요. 도쿄라는 큰도시로 돌아갈 생각을 잊어요. 미요리 가슴에서 곱게 피어나는 꽃은 숲바람과 숲햇살을 먹으면서 자라는 줄 깨달아요. 무엇을 먹고, 무엇을 마시며, 무엇을 바라보고, 무엇을 즐기는 삶일 때에 스스로 아름다운가를 시나브로 알아채요.


  즐겁게 누릴 수 있는 삶이 아름답습니다. 즐겁게 노래할 수 있는 하루가 아름답습니다. 그리 멀지 않은 지난날까지, 이 나라 시골마을마다 노래가 넘쳤어요. 모내기를 하면서 모내기노래를 부르고, 베틀을 밟으며 베틀노래를 불렀어요. 밥을 지으며 밥짓기노래를 부르고, 아기를 재우며 자장노래를 불렀어요. 풀을 뽑을 적에는 풀뽑기노래를 부르고, 길을 거닐 적에는 길노래를 불렀어요. 이 나라 거의 모든 사람이 흙에 기대어 흙을 누리며 살던 지난날에는, 어린이와 늙은이 모두 노래를 부르는 삶이었어요. 놀면서도 노래, 일하면서도 노래, 쉬면서도 노래, 먹으면서도 노래, 웃으면서도 노래, 울면서도 노래였지요.


  시골이 차츰 줄고 서울이 커지고 도시가 늘어납니다. 시골이 차츰 줄면서 젊은이가 몽땅 서울이나 도시로 빠져나가면서 시골에서 노래가 사라집니다. 그렇다고 서울이나 도시에 노래가 흐르는가 하면, 사람들 스스로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노래는 찾아볼 수 없어요. 텔레비전에 얼굴 비추는 이쁘장한 사람들 대중노래만 판쳐요.


  독일사람 에냐 리겔 님은 판에 박힌 학교를 떨치고 아름다운 배움터가 되기를 꿈꾸며 학교살림을 꾸립니다. 《꿈의 학교, 헬레네 랑에》(착한책가게,2012)라는 책 167쪽을 보면, “아이가 가진 능력에 대해 학교는 그저 잘해야 ‘기특한 재능’ 정도로 여길 뿐 졸업성적을 평가할 때 이런 것은 하나도 반영되지 않는다. 반면 그의 인생을 멋지게 가꿔 나갈 수 있게 해 주는 것은 이런 재능들이다. 연극이 없었다면 요샤는 학교에서 한 가지 경험은 톡톡히 했을 것이다. 즉, 나는 바보구나, 라는 경험 말이다.” 하는 이야기가 흐릅니다. 성적평가를 안 하는 학교로 꾸리며 아이들마다 다 다르게 잘 하며 좋아할 길을 열고 싶었답니다. 성적평가를 안 할 뿐 아니라, 성적평가에 마음을 두지 않으니, 독일에서 ‘전국 공통 성적평가 시험’을 치를 때에조차 오히려 다른 학교보다 더 높은 성적이 나온다고 해요.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 누구나 스스로 가장 하고 싶은 길을 걸으며 가장 누리고 싶은 삶을 누리도록 북돋우니, 학과공부이든 꿈찾기이든 더없이 아름답게 빛난다지요.


  한국사람 안재인 님이 쓴 《아니온 듯 다녀가소서》(호미,2007)라는 책이 문득 떠오릅니다. 54쪽을 펼칩니다. “보이지 않아도 향기로 사람을 즐겁게 해 주는 꽃은 봄에만 피는 줄 알았는데, 여름엔 여름대로, 가을엔 가을대로 꽃이 피어납니다.” 하는 이야기가 흐릅니다. 바야흐로 새로 찾아드는 봄날 봄꽃이 논둑과 밭둑마다 피어요. 시골은 어디에나 논밭이니 논꽃과 밭꽃을 만납니다. 서울이나 도시는 논도 밭도 없기에 꽃집이 아니라면 봄꽃이 피어나는 모습을 마주하기 어렵습니다. 아무래도 도시에서는 사람들 옷차림이 가벼워지거나 밝은 빛깔로 바뀌어야 비로소 ‘봄이로구나!’ 하고 깨달으리라 느낍니다. 봄은 봄바람과 봄볕 누리는 봄풀에서 오는데. 봄은 봄노래 부르는 봄사랑으로 봄마음 되는 우리들 환한 눈망울에서 비롯하는데.


  눈망울 빛내는 봄을 함께 누릴 수 있기를 빌어요. 눈초리 보드랍게 보듬는 봄빛을 가슴 깊이 담아 봄길을 걸어 봄맞이 책읽기를 즐겨요. 마음자리 포근하게 적시는 책 하나 쓰다듬어요. 마음결 따사롭게 어루만지는 책 하나 쥐어요. 마음밭 너그러이 살찌우는 책 하나 펼쳐요. 봄책 읽는 맑은 눈빛으로 우리 곁 봄동무와 봄이웃하고 웃음꽃 나누어요. 4346.2.18.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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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가 말하는 사서 - 21명의 사서들이 솔직하게 털어놓은 사서의 세계 부키 전문직 리포트 15
이용훈 외 지음 / 부키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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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삶읽기 130

 


도서관을 지키는 마음
― 사서가 말하는 사서
 이용훈과 스무 사람
 부키 펴냄,2012.12.20./13000원

 


  《사서가 말하는 사서》(부키,2012)라는 책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이 책은 앞으로 도서관 사서로 일하고 싶은 푸름이한테 ‘도서관 사서가 하는 일’을 알려주는 길잡이 구실을 하는구나 싶습니다. 사서가 되려면 무엇을 잘 살피고 배워야 하는가, 도서관에서 일하는 사람이 되면 어느 대목을 잘 헤아리고 생각할 수 있어야 하는가, 책을 어떻게 마주하고 사람들과 어떻게 사귈 때에 즐거운가, 같은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런데, 도서관 사서는 정규직일까요, 비정규직일까요. 아마 정규직도 있을 테고 비정규직도 있을 테지요. 오늘날은 어느 일자리라 하든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갈리니까요. 책은 어디에서나 똑같은 책일 텐데, 책을 다루는 사람들은 사뭇 다른 대접을 받아요.


.. 교육이 끝나고 분임 토의를 할 예정이었으나 도서관의 필요성에 대한 교관들의 강력한 문제 제기로 분임 토의 자체가 불가능해 대신 전체 토론 시간을 가졌다. 그들의 눈에 나는 교도소의 현실을 모르는 이상주의자에 불과했다. 또 업무 과부하로 힘든 그들에게 새로운 업무는 전혀 달갑지 않았다 ..  (56쪽)


  《사서가 말하는 사서》라는 책에 나오는 도서관 사서는 공공기관이나 학교나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들입니다. 혼자서 도서관을 열어 꾸리는 사람들은 나오지 않습니다. 이를테면, 아파트나 골목집에서 방 한 칸을 ‘열린 도서관’으로 꾸며서 마을 이웃과 만나는 ‘도서관지기’ 이야기는 나오지 않습니다. 혼자서 기나긴 해에 걸쳐 그러모은 책으로 씩씩하게 여는 서재도서관이라 할 전문도서관 이야기도 나오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작은도서관(열린 도서관)이나 서재도서관이나 전문도서관은, 고등학교나 대학교를 마친 뒤 ‘직업(일자리)’을 찾을 푸름이한테는 그리 걸맞지 않을 만한 이야기가 될 수 있겠지요. 왜냐하면, 작은도서관을 꾸리면 돈을 벌지 못할 테고, 서재도서관이나 전문도서관을 열자면 스무 해나 서른 해쯤 오래도록 한결같이 책을 사서 읽고 모아야 하거든요. 푸름이한테 ‘꿈’을 들려주는 책이라면 이러한 대목을 짚을 테지만, ‘일자리(돈을 벌 자리)’를 알려주는 책이라면 이 같은 대목을 짚기는 어려우리라 봅니다.


.. 어린이가 도서관 그리고 책을 처음 만나는 결정적인 순간에 안내를 하는 이가 바로 사서인 ‘나’라는 사실이었다 … 아이들도 어쩌면 그와 같지 않을까. 기어다니던 아이가 어느 날 걸음마를 하고 발에 힘을 주어 생애 처음으로 걷거나 뛰게 된다. 다리에 힘이 실리고 발이 바닥에 닿아 쿵쾅거리는 느낌이 얼마나 신기할 것이며, 그와 같이 신기한 것들로 가득한 세상으로 뜀박질해서 나아갈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즐거울까. 영화를 본 후 내가 그간 아이들을 너무 몰랐던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됐다. 아이들의 위치에 서 보니, ‘도서관에서는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해. 그러니까 안 돼!’라는 규칙을 적용하기가 힘들어졌다 ..  (63, 67쪽)


  《사서가 말하는 사서》라는 책에 나오는 사서들은 대학교 문헌정보학과를 다닌 뒤 사서자격증을 딴 사람들입니다. 참말, 도서관 사서가 되자면, 대학교를 다녀야 하고, 관련 학과에서 배워야 하며, 자격증을 따야 해요.


  여기에서, 나는 한 가지를 곰곰이 헤아려 보고 싶습니다. 도서관이든 책방이든 책을 다뤄요. 책은 출판사에서 만들지요. 출판사는 작가이든 학자이든 여느 사람이든, 누군가 쓴 글을 받아서 책을 만듭니다. 그런데, 출판사 대표이든 편집자이든 영업자이든, 대학교 문헌정보학과를 다닌 사람은 그리 안 많습니다.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사진을 찍는 사람 가운데 대학교 문헌정보학과를 다녔거나 사서자격증을 딴 사람은 얼마 안 됩니다. 책을 그러모은 도서관이나 책방에서 일하는 사람들 가운데에는 대학교 문헌정보학과를 다녔거나 사서자격증 딴 사람이 꽤 많을 테지만, 막상 ‘책을 쓰고 만들며 엮어 사고파는’ 사람들 가운데에는 아예 대학교조차 안 다닌 사람들이 퍽 많아요.


.. 도서관만큼은 아이들에게 천국이다. 도서관에선 시험도, 등급도, 차별도 없다. 책을 좋아하는 많은 사람들에게도 “읽을 책이 쌓여 있는 도서관은 천국”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나는 천국에서 근무하는 것이다. 그런데 도서관이 진정한 천국이라면 서비스를 받는 사람만이 아니라 그 속에서 일하는 사람에게도 천국이어야 한다. 나에게 도서관은 천국이다(물론 어떤 사서교사는 도서관이 전쟁터라고 한다). 천국에서 근무를 하니, 아이들이 나에게 천사이기를 요구하고 기대하는 것 같다 ..  (152쪽)


  도서관은 책을 읽는 곳입니다. 도서관은 책을 지키는 곳입니다. 도서관은 책을 알려주는 곳입니다. 도서관은 책을 말하는 곳입니다. 도서관은 책으로 삶을 일구는 곳입니다. 도서관은 책과 함께 사랑을 나누는 곳입니다. 도서관은 책에 깃든 꿈을 사람들하고 함께 일구는 곳입니다.


  《사서가 말하는 사서》라는 책은 푸름이들한테 ‘앞으로 얻고 싶은 일자리’를 밝히거나 알리는 구실을 맡는 대목에서 참 값어치 있구나 싶습니다. 우리 어른들은 으레 의사이니 판사이니 검사이니 변호사이니 하면서, 돈·이름·힘 거머쥐는 대목만 아이들한테 보여주려 하거든요. 아기자기하면서 어여쁜 일자리라 할 도서관 사서 이야기를 즐겁게 들려주는 책은 이제껏 없었다고 느껴요.


  다른 한편으로는, ‘일자리 테두리를 넘어서는’ 대목은 짚지 못하기에 여러모로 아쉽습니다. 대학교를 다니지 못하는 아이들 가운데 ‘도서관 사서’를 꿈꾼다면? 어떤 기관이나 학교에서 일자리를 얻지 않고도 ‘도서관을 누리거나 즐기는 길’을 걷고 싶다면?


  꼭 공무원이 되어야 할 아이들은 아니에요. 애써 자격증을 따서 어떤 관리직이 되어야 할 아이들은 아니에요. 삶을 사랑하면서 밝히는 길 걸어가면 어여쁜 아이들이에요. 꿈을 키우면서 노래하는 길 닦으면 즐거운 아이들이에요.


.. “여보세요, 여기 방송사인데요, 지금 지방에 촬영 차 왔다가 서울로 돌아가는 길인데요, 장서각에 잠깐 들러 고문헌 좀 촬영하려고 합니다.” “죄송합니다만 공문을 보내셔야 합니다.” “잠깐 들러 촬영만 하면 되는데 무슨 공문입니까?” 이런 전화는 화가 나기에 앞서 안타깝다. 고문헌은 문화재다. 문화재라는 것이 지나다가 불쑥 들러서 볼 수 있을 만큼 그렇게 하찮은 존재는 아니다. 세계 어느 나라도 이런 결례는 없다 ..  (211∼212쪽)


  푸름이한테 ‘도서관 사서로 일하는 마음’을 조금 더 찬찬히 이야기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도서관 사서뿐 아니라, 공무원이건 교사이건 국회의원이건 시장이나 군수이건, 어느 자리에서건 즐거운 마음 되어 아름다운 삶길 걷도록 북돋우는 책을 우리 어른들이 베풀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마음을 가꾸고 살찌우면서, 삶을 누리고 빛내는 길을 이야기할 수 있기를 빌어요. 흙일꾼과 고기잡이 삶을 이야기할 수 있고, 집살림 꾸리는 사람들 사랑을 이야기할 수 있으며, 나무를 돌보고 풀을 뜨는 사람들 넋을 이야기할 수 있기를 빕니다. 우리 아이들이 이런저런 전문직에서 일해도 좋을 테지만, 이에 앞서 어떤 삶을 어떻게 아끼며 보듬을 때에 가슴 깊이 따사로운 사랑 샘솟는가 하는 대목을 이야기한다면, 더없이 반갑습니다. 4346.3.28.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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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3-28 10:28   좋아요 0 | URL
'맑은 날엔 도서관에 가자'라는 책을 반쯤 보았는데 좋았던 것 같아요.
이따 다시 나머지를 읽어야겠어요.

파란놀 2013-03-28 10:45   좋아요 0 | URL
네, 그렇군요.
맑은 날, 즐거운 날,
기쁜 날, 슬픈 날,
좋은 날, 아름다운 날,
언제나 사랑스러운 넋 북돋우는 이야기벗과 책 있으면
하루하루 웃음꽃 피어나리라 생각해요.
 

아기 매화나무

 


  뒷밭을 갈아엎어 쓰레기를 파낼 적에도 못 보고, 매화꽃 얼마나 피었다 살펴볼 적에도 못 보았는데, 엊그제 뒷밭에서 석면조각 천천히 줍다가 문득, 아주 조그마한 아기 매화나무 하나 돋은 모습을 본다. 어쩜 너는 삽차가 우르릉 지나다니고 할 적에 깔리지 않고, 치이지 않으면서, 이곳에서 곱게 살아남았니. 너 있는 줄 몰랐는데. 네가 이렇게 씩씩하게 줄기를 올리며 봉오리 터뜨리려는 줄 알아채지 못했는데.


  큰아이와 작은아이를 부른다. 얘들아, 여기 아기나무가 자란단다. 너희들 이곳에서 놀며 이 아기나무 다치지 않게 잘 지켜봐 주렴.


  내 새끼손가락 길이만큼 돋은 아기 매화나무는 해마다 무럭무럭 자라리라. 올해에는 이곳에 그대로 두고, 이듬해에는 조금 옆으로 옮겨심어야지. 요 작은 아기 매화나무에서 참말 자그마한 꽃송이 피어나면, 고 자그마한 꽃송이도 열매를 맺을까. 4346.3.28.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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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3-28 10:30   좋아요 0 | URL
이렇게 작은 나무에서도 매화꽃이 피었군요. ^^
정말 놀라워요...

파란놀 2013-03-28 10:44   좋아요 0 | URL
사진으로는 조금 커 보이지만,
그야말로 작디작답니다~~
 

다시 동백꽃

 


  서른일곱 살에 고흥으로 오면서 우리 보금자리를 장만했고, 서른일곱 살이던 2011년 겨울부터 2012년 봄과 겨울, 또 2013년 봄, 새로운 동백꽃을 새삼스레 만난다. 이웃집이나 이웃마을보다 볕이 살짝 적게 들어 동백꽃도 다른 집이나 마을보다 이레나 열흘쯤 늦고, 그만큼 동백꽃내음과 동백꽃빛 한결 느긋하게 간다. 바라보기만 해도 좋고, 곁에서 들여다보아도 좋으며, 마당에서 아이들과 뛰놀거나 책을 읽거나 평상에 드러누워 해바라기를 해도 좋다. 동백꽃이 나누어 주는 꽃내음을 물씬 누리면서 봄을 즐긴다.


  겨울을 난 잎사귀는 짙푸르다. 무척 짙다. 여기에 겨울을 곰삭힌 꽃송이는 짙붉다. 꽃잎을 하나둘 펼치며 한껏 벌어지는 동백꽃인데, 얼마나 겹겹이 붉은 꽃잎 이루어지는가를 보면 놀라우면서 곱다. 꽃나무 심어 꽃 즐기는 마음을 알겠다. 열매나무 심어 열매 즐겨도 좋은데, 꽃나무에서 꽃내음이 퍼뜨리는 기운은 몸과 마음 모두를 살찌운다. 아늑하게 살찌운다. 아리땁게 살찌운다.


  마을마다 집집마다 온통 동백나무이다. 군청에서는 길가에 동백나무를 꽤 많이 심었다. 이 나무들 앞으로 열 해 스무 해 서른 해 줄기차게 가지를 뻗고 줄기를 올리면, 어느 마을이건 꽃마을 될 테고, 어느 집이건 꽃집 될 테지. 십 미터 이십 미터 쭉쭉 자라난 우람한 동백나무가 봄마다 흐드러진다면, 사람들은 저절로 시골집으로 찾아들리라. 나무 한 그루 얼마나 거룩하며 따사로운가를 사람들은 머잖아 살결과 뼈마디로 느끼리라. 4346.3.28.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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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3-28 10:35   좋아요 0 | URL
아우..사진으로만 보아도 가슴이 일렁이여요~~
어쩌면 이렇게 곱고 탐스러울까요~?
함께살기님덕분에 날마다 봄을 마음에 가득 채워놓고 있어요. ^^
정말 감사합니다.

파란놀 2013-03-28 10:43   좋아요 0 | URL
저부터 스스로 즐거우니 사진도 찍고,
시골 아닌 데에서 살아가는 분한테도
자연스러운 꽃내음 나누어 주고 싶답니다~
 

제비똥 책읽기

 


  이레쯤 앞서부터 처마 밑 제비집 아래로 제비똥 여럿 보였다. 틀림없이 제비똥이기는 한데 제비 소리는 못 들었고, 다른 새가 이리로 와서 똥을 누었나 하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다 오늘, 2013년 3월 27일 아침에 제비 째째째 소리 울려퍼지기에 슬쩍 내다보니, 지난해 우리 집에서 태어난 새끼제비 세 마리가 옛 둥지에 들어와서 논다. 어, 너희였네. 너희가 돌아왔구나. 그런데 왜 세 마리이지? 한 마리는 어디 갔지? 너희 어미는 또 어디 갔지? 곧 모두 다 볼 수 있겠지?


  그나저나, 지난해에 제비를 처음 본 날짜를 헤아리니, 4월 23일이었다. 올해에는 자그마치 한 달 가까이 일찍 제비를 만난다. 왜 이렇게 일찍 찾아왔을까. 왜 벌써 제비가 왔을까. 제비들 겨울나기를 하는 중국 강남에 무슨 일 있을까. 중국 강남 쪽 시골마을 마구 파헤치거나 무너뜨려, 이 제비들이 너무 이르구나 싶은 봄에 찾아왔을까. 아직은 저녁에 해 떨어지면 몹시 추울 텐데. 3월 끝무렵 전라남도 고흥 퍽 따스하다 하지만, 저녁에 해 떨어지고 새벽 지나 아침이 오기까지 꽤 쌀쌀할 텐데.


  그동안 미루던 똥받이를 얼른 달아야겠다. 우리 집에서 태어난 제비들 저마다 좋은 짝 만나 우리 집 처마 밑으로 찾아들 적에 똥벼락 맞지 않자면, 부지런히 나무판 챙겨서 오늘은 똥받이부터 붙이자. 4346.3.27.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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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NY 2013-03-27 11:32   좋아요 0 | URL
와~~ 제비 본 지 참 오래된 거 같네요~ 어릴 때는 서울시내 한복판 주택에도 제비집이 있었는데말여요.

파란놀 2013-03-27 12:01   좋아요 0 | URL
처마가 높아 똥받이 다느라 퍽 애먹었어요. 그래도 즐겁게 달았으니, 제비들도 오늘 밤 포근하게 잘 자고, 똥도 마음껏 누기를 바란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