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내버스

 


멧등성이 구비진 길목에서
군내버스 기다린다.
봄볕 받으며 풀밭에서 뛰놀다가
버스 앞머리 보일 때
아버지가 동생 안고
손을 흔든다.

 

버스 아저씨가 보았는지 못 보았는지
보고도 그냥 지나가려는지
멈추는 듯 다시 달리려는 듯
오락가락하다가 멈춘다.
아버지가 내 손을 잡는다.
“자, 달리자.”

 

저 앞에 선 버스에서
할머니 두 분 내려
우리한테 마주 달려온다.

 

할머니 한 분 가방 받아 주고
할머니 한 분 내 손 잡아 주며
싸게싸게 버스 타자고 재촉한다.

 

“거그 버스 서는 데 아닌디
  아이들 있어 세워 주오.
  거그 말고 저 밑에 다른 데서 타야지,
  거그는 위험해서 안 서요.”

 

아버지는 버스 아저씨한테
꾸지람 듣고
할머니들은 깔깔 웃는다.
 “오늘은 자전거 안 타고
   버스 타고 다니오.”

 

우리 사는 동백마을 보일 즈음
단추를 삐이 누른다.
할머니들 또 웃는다.
 “어메, 저그 집인 줄 아나 보네.
   근디 너무 빨리 눌렀다.
   좀 더 가서 저그서 눌러야 하는디.”

 


4346.4.10.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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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날 맞이해

일산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뵈러 왔다.

아침 여덟 시에 아이들 깨워 집을 나서서

저녁 다섯 시 사십 분에 닿다.

 

아이들아, 애 많이 썼다.

잘 놀고 잘 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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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집 마루 책읽기

 


  동생하고 복닥복닥 놀던 큰아이가 갑자기 조용하다. 뭐 하나 궁금해서 슬그머니 들여다본다. 오호라, 혼자서 책을 읽는구나. 무슨 책을 읽나 가만히 어깨너머로 살펴본다. 도라에몽 만화책이네. 그런데 넌 아직 글을 익히지 않아 그림만 보지? 글도 익히면 그 만화책에 담긴 이야기를 더 재미나게 헤아릴 수 있단다.


  그나저나, 이제 환하고 따스한 봄이라 마룻바닥에 앉아서 책을 읽을 만하구나. 추운 겨울 모두 물러났구나. 꽃샘바람도 꽃샘추위도 모두 가셨구나. 앞으로 가을까지 마룻바닥에서 뒹굴며 놀다가 책도 읽다가 밥도 먹다가, 또 한여름에는 마룻바닥에 이불 한 장 깔고 시원하게 잠들 수 있구나.


  마루에 앉아 바람소리를 함께 듣지. 마루에 앉아 마당을 내다보며 개구리 노랫소리와 제비 춤사위를 즐기지. 마루에 앉아 푸른 잎사귀와 노란 유채꽃망울 바라보지. 종이책도 책이요, 풀꽃도 책이며, 개구리도 책이고, 봄볕도 책이다. 4346.5.5.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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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지 못한 책

 


  사려고 벼렸으나 일곱 달째 사지는 못하고 구경만 하던 책을 본다. 어, 이렇게 덩그러니 놓였네. 헌책방 사장님이 이제 이 책을 내놓아 주었구나, 그러면 살 수 있겠네, 하고 생각하며 사진을 몇 장 찍는다. 이렇게도 찍고 저렇게도 찍는다. 언제 보아도 ‘이 사진책에 깃든 사진’이 재미있구나 하고 느끼며 ‘사진책 모습을 사진으로 담다’가 그만, 이 책을 골라서 사기로 하던 생각을 깜빡 잊는다. 애써 부산까지 마실을 해서 이 책을 보았으나 또 놓친 셈인가.


  참 바보스럽지. 사진을 찍지 않고 책만 골랐으면 ‘책 모습을 담는 사진’이야 우리 집에서도 얼마든지 찍을 수 있잖아. 굳이, 이 사진책 하나 헌책방 책시렁 한쪽에 곱게 놓인 모습으로 사진을 찍겠다고 하다가 그만 ‘책을 사려고 하던 생각’을 잊을 수 있을까.


  한눈을 팔았다기보다 한마음을 판 셈일까. 이 사진책도 장만하고 다른 책도 더 장만하자고 책시렁 찬찬히 돌아보다가 그만 다른 책에 푹 빠져들면서 이 사진책은 까맣게 잊은 셈일까.


  사들인 책은 내 곁에 있다. 사들이지 못한 책은 사진에 남는다. 앞으로 언제쯤 다시 이 사진책 있는 헌책방으로 나들이를 갈 수 있을까. 그때까지 이 사진책 안 팔린 채 곱게 이 자리에 그대로 있으려나. 이 사진책은 내 품에 포근하게 안길 수 있을까.


  그러고 보니, “무화과나무 아래에서”라 하는 이 일본 사진책은 종이로 된 겉상자 따로 있다. 겉상자 없이 알맹이만 있는 사진책이 나왔을까. 겉상자는 다른 데에 따로 건사하셨을까. 사지 못한 책을 두고, 사진으로 남은 모습 한참 들여다보며 아쉬움 달랜다. 4346.5.5.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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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과 그림

 


  풀과 꽃과 벌레를 그리는 어느 분을 만나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다가 문득 ‘그림’이란 무엇일까 하고 생각해 본다. 찬찬히 떠오르는 대로 짤막하게 글월 하나 적는다. 우리 아이한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내 나름대로 적는다. 그러고 나서, 흰종이에 정갈하게 옮겨적고, 글월 하나 옮겨적은 뒤 빈자리에 그림 몇 붙인다. 치마 좋아하는 큰아이를 그리고, 큰아이가 좋아하는 웃는 얼굴로 그리며, 꽃 두 송이와 나비 한 마리 그린다. 꽃은 두 송이라지만 나비는 한 마리라 여길 이 있을 텐데, 큰아이 스스로 나비이니까 한 마리만 그리면 된다. 그런 다음 아이 손에는 호미 한 자루와 연필 한 자루 그려 넣는다.


  마음을 담으니 글이고, 마음을 보여주니 그림이다. 마음을 쓰기에 글이고, 마음을 노래하기에 그림이다. 아닐까? 다른 사람은 어찌 생각할는지 모를 노릇이고, 나는 글과 그림을 이렇게 생각한다. 4346.5.5.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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