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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개는 얼마나 많은 꿈을 견뎌냈나요 ㅣ 문학동네 시인선 114
권민경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12월
평점 :
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6.3.3.
노래책시렁 535
《베개는 얼마나 많은 꿈을 견뎌냈나요》
권민경
문학동네
2018.12.17.
문득 돌아보니, 2026해인 올해까지 얼추 스무 해 즈음 ‘돌봄손 꾸러미(복지 선물)’를 받았습니다. 글길을 걷는 나날이 꼭 가난해야 하지 않지만, 이름값을 드날려서 목돈을 거머쥐려는 글이 아닌, 마음을 나누면서 서로 북돋울 글을 쓸 적에는 가난한 길이곤 하구나 싶습니다. 지난 스무 해 즈음 받은 ‘돌봄손 꾸러미’를 돌아보면, 제가 안 쓰는 것만 용하게 골라서 베풀더군요. 누런쌀·온쌀만 먹는 사람한테 흰쌀을 안기고, 고기를 안 사먹는 집에 고기를 베풀고, ‘무형광·무표백 비누와 종이’를 골라쓰는데 ‘형광·표백 비누와 종이’를 주더군요. 그러니까 ‘돈·이름·힘’이 될 글이란 ‘흰쌀’ 같은 글이요, 형광물질과 표백제가 가득한 비누와 종이 같은 글이라는 뜻입니다. 《베개는 얼마나 많은 꿈을 견뎌냈나요》는 ‘견뎌낸’ 나날을 적는구나 싶습니다. 그렇지만 ‘꿈’은 견뎌낼 길이지는 않습니다. 꿈길은 남이 보기에 가시밭길 같을 수 있되, 꿈을 그리며 걷는 사람은 춤추고 노래하면서 봄나비와 봄꽃을 마주하는 느긋살이입니다. 꿈으로 하루를 짓는 사람은 남을 쳐다볼 일이 없습니다. 오늘 이 보금자리로 날아앉는 작은새가 베푸는 노랫가락을 귀여겨듣기에 꿈길입니다. 베개는 머리를 품고, 벼는 해바람비를 품다가 우리 몸으로 녹아듭니다.
ㅍㄹㄴ
작명소 아저씨 모세처럼 / 수염을 쓰다듬으며 무명들에게 말한다 / 너는 민경, 권민경, 권민경이야 / 아가가 권민경들이 되어 걸어나간다 (이름 부르기/14쪽)
결혼 이혼 수많은 / 공식과 행사 / 수학시간엔 의례히 출석 번호 34 35 / 엉뚱한 방법으로 답을 맞혔지 꼴통 (부케/22쪽)
그래요. 그렇군요. / 모르는 어른을 조심하라는데 모르는 아이는? 앞머리를 반듯하게 자른 사내아이. 잠에서 깨도 / 손잡고 따라가고 싶은 / 말들 (길吉/3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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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개는 얼마나 많은 꿈을 견뎌냈나요》(권민경, 문학동네, 2018)
이 책의 시편들은 내게서 영영 떨어져나간 것처럼 느껴진다
→ 이 책에 실은 노래는 내게서 아주 떨어져나간 듯하다
→ 이 노랫가락은 내게서 아주 떨어져나간 듯싶다
5쪽
누군가와 쑥스럽고 어색하게 인사하는 걸 상상하면 찡해진다
→ 누구랑 쑥스럽고 낯설게 꾸벅하는 모습을 그리면 찡하다
→ 누구하고 쑥스럽고 벌겋게 절하는 모습을 떠올리면 찡하다
5쪽
퇴원을 축하하며
→ 나와서 기쁘다며
→ 나오니 기뻐서
13쪽
누군가의 고통이 정말 나를 아프게 하나
→ 누가 아프면 나도 아프나
→ 누가 괴로우니 나도 아프나
→ 누가 울면 나도 아프나
14쪽
대대적인 퍼레이드를 준비중이다
→ 크게 걸어가려고 한다
→ 들썩들썩 나아가려고 한다
→ 시끌벅적 가려고 한다
24쪽
애써 꾸민 형식보다는 볼 수 없는 것들이 좋아요
→ 애써 꾸미기보다는 볼 수 없으면 좋아요
→ 애써 꾸밀 적보다는 볼 수 없으면 좋아요
40쪽
악한들의 동맹처럼 우리는 불안한 평온 속에 살아가겠지만
→ 우리는 못된 무리처럼 아슬아슬 조용히 살아가겠지만
→ 우리는 사납두레처럼 걱정하며 얌전히 살아가겠지만
47쪽
살아남는 덴 대가가 필요하니까
→ 살아남자면 값을 치르니까
→ 살아남으려면 피를 바치니까
50쪽
나는 날개가 있는 종으로 진화중이야
→ 나는 날개가 있는 씨로 바뀌어
→ 나는 날개가 있는 목숨이 돼
66쪽
초년운과 말년운 중 어느 쪽을 고를래
→ 첫꽃과 끝꽃 가운데 어느 쪽을 고를래
→ 첫길과 끝길에서 어느 쪽을 고를래
70쪽
오늘의 얼굴이 좋아 어제의 꼬리가 그리워
→ 오늘 얼굴이 좋아 어제 꼬리가 그리워
104쪽
낮의 길이는 조금씩 길어지고 있어요
→ 낮은 조금씩 길어요
→ 낮이 조금씩 길어요
106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