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색잉꼬 3
테츠카 오사무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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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사람이 걸어가는 길
 [만화책 즐겨읽기 170] 데즈카 오사무, 《칠색 잉꼬 (3)》

 


  저마다 제 갈 길이 있어 스스로 씩씩하게 제 길을 걸어갑니다. 누군가는 참말 씩씩하게 제 길을 걸어가고, 누군가는 더없이 꿋꿋하게 제 길을 걸어갈 텐데, 누군가는 갈팡질팡하며 제 길 앞에서 해매고, 누군가는 고단하거나 힘겹게 제 길을 걸어갑니다.


  내가 오늘 걷는 이 길은 얼마나 즐거우면서 아름다운가 하고 돌아봅니다. 내가 오늘 걸어 어제가 되고, 내가 오늘 걸을 모레나 글피는 얼마나 즐거우면서 아름다울까 하고 생각합니다.


  사람으로 태어나 살아가든, 나무 한 그루로 태어나 살아가든, 풀포기 하나로 태어나 살아가든, 딱정벌레 한 마리로 태어나 살아가든, 저마다 즐겁게 누릴 삶입니다. 씩씩하게 제 갈 길을 걸어갑니다. 예쁘게 제 갈 길을 빛냅니다.


  나비로 태어난 목숨은 나비이기에 아리땁습니다. 소금쟁이로 태어난 목숨은 소금쟁이라서 어여쁩니다. 구름을 이루는 작은 물방울로 태어난 목숨은 작은 물방울인 만큼 아름답습니다. 내 손가락을 이루고 내 머리카락을 이루는 숱한 세포는 이들 세포대로 예뻐요.


- “상대는 어떤 사람이지?” “학자라던데, 어디 외국의 유명한 대학 출신이래.” “부잣집 아들인가?” “그런 건 몰라. 부자건 아니건 이런 사람은 싫어. 난 말이야, 학자라든가 대학 출신 같은 건 정말 싫다고!” (9쪽)
- “여긴 말하자면 자동차의 시체안치소야. 여기에 오면 괜히 눈물이 난다니까. 옛날이 좋았어. 자동차 수도 적어서 소중하게 다뤄졌지. 지금은 너무 간단히 쓰고 버리고 있어. 정말 저들에겐 안 된 일이야.” (110쪽)

 


  저녁에 지는 해를 누리면서 두 아이와 들길을 자전거로 달릴까 하는데, 옆지기가 말립니다. 우리 집 앞 논에 풀약을 뿌리는데, 이렇게 풀약을 뿌릴 때에는 자전거를 달리면 안 되지 않겠느냐고 말합니다.


  듣고 보니 그렇습니다. 그런데 나는 왜 이 대목을 먼저 살피지 못했을까요. 모기약을 뿌릴 때에 모기약이 사람 몸에도 스며들기 마련이라 몹시 나쁜 줄 알면서, 마을 할아버지가 들판에 풀약을 칠 때에는 이 풀약이 바람에 날려 우리 눈과 코와 귀와 입과 살갗으로도 스미는 줄 왜 제대로 깨닫지 못했을까요.


  아이들이 많이 졸린 때라 자전거수레에 앉혀 재울 마음으로 자전거를 큰길로만 달리기로 합니다. 들판하고 조금 떨어진 큰길을 달립니다. 그러나, 시골에서 큰길이라 하더라도 왼편과 오른편 모두 논자락입니다. 이웃마을에서는 큰길 옆에 붙은 논에 경운기를 대고 두 할아버지가 줄을 잡고는 한 할아버지가 풀약을 뿌립니다. 자전거를 달리는데 바람으로도 풀약 기운을 느낄 수 있습니다. 부리나케 다른 이웃마을 쪽으로 접어듭니다. 고즈넉하니 사람이 없겠지 하고 생각했으나 천등산 자락 밑으로 할아버지 한 분이 풀약을 뿌리는 모습이 보입니다.


  이리 가도 안 되고 저리 가도 안 됩니다. 이쪽에서도 풀약을 뿌리고 저쪽에서도 풀약을 뿌립니다. 도무지 숨이 막혀 안 되겠다고 느껴 서둘러 집으로 돌아갑니다.


- “헤헤, 형사 나리의 눈에도 눈물이.” “시끄러워. 불쌍하니까 눈물이 나오는 거야. 당연한 거잖아. 넌 감정도 없는 동물이냐?” (20쪽)
- “저기, 저는 그보다 연구실이라는 것 자체를 싫어해요. 곰팡내가 나는 것 같달까.” “이거 꽤 까다로우시군요.” “애당초 학자라는 게 싫어요. 학생 때도 공부만 아는 애들을 종종 두들겨패곤 했으니까.” (35쪽)

 

 

 


  도시에서 살아갈 때에는 지나치게 많은 자동차마다 내뿜는 배기가스가 동네 바람을 더럽힌다고 느꼈습니다. 도시에서는 어느 길을 걸어도 자동차 배기가스 먼지가루를 들이마셔야 합니다. 여기에다가 숱한 공장과 숱한 건물과 숱한 가게와 숱한 아스팔트에 둘러싸여야 합니다.


  시골에서는 어느 마을을 걸어도 으레 풀약을 치는 만큼 한갓지게 들길을 걷거나 멧길을 누리고 싶어도 풀약 내음이 코를 찌르면 집안에서 꼼짝을 할 수 없습니다. 풀약 기운이 좀 수그러든 뒤에는 맑은 바람을 마시면서 상큼하거나 시원하구나 하고 느끼지만, 어쩐지 홀가분하지는 못합니다. 내가 먹고 내 이웃이 먹으며 내 아이들이 먹는데, 왜 흙일꾼 스스로 풀약이나 비료나 항생제를 흙에 뿌리고 풀에 뿌려야 할까 아리송합니다.


  등판에 살짝 돋은 땀을 느끼며 집으로 돌아와서는 작은아이를 방에 누입니다. 작은아이는 자전거를 조금 달려도 잠듭니다. 큰아이도 잠들 만하나 잠들지 않습니다. 물을 따뜻하게 해서 큰아이를 씻깁니다. 더운 여름날 큰아이와 작은아이는 대여섯 차례 씻습니다.


  다 씻은 아이한테 새 옷을 입히며 헤아립니다. 아마 우리 시골마을에서 마당이나 밭뙈기에 풀약을 안 쓰는 집은 우리 집 하나이지 싶습니다. 우리 시골마을에서 집 안팎에 모기약을 안 뿌리고 모기향을 안 태우는 집도 우리 집 하나이지 싶습니다.


  도시에서 살며 꼭 한 해 동안 모기향을 태운 적 있으나, 모기향을 태우며 ‘모기에 앞서 사람이 먼저 숨이 막혀 죽겠다’고 느꼈습니다. 모기향은 모기도 죽이고 사람도 죽이겠다고 느꼈어요. 게다가 모기는 모기향 내음에 차츰 길드니까 더 센 모기향이 있어야 합니다. 이동안 사람은 더 센 모기향에 찌들어야 해요.


- “형사 나리, 연극이란 건 말이지, 상대에게 살아갈 기력을 주기 위해 있는 거라고.” (44쪽)
- “이제 와서 사과해도 늦었겠지만 말이죠. 그 말을 취소해 주십시오! 내 명예가 걸린 말입니다.” “아니야, 늦진 않았네. 사과하려면 지금도 좋아. 물론 사과는 자네가 해야지.” “왜 내가 사과해야 합니까!” “그런 엉망진창인 연극을 보여줬으니 관객들께 죄송하다고 사과하란 말이네.” (79∼80쪽)

 


  사람은 어떻게 살아갈 때에 사람다운 목숨을 빛낼까 궁금합니다. 사람은 어떤 길을 어떤 넋으로 걸어갈 때에 사람다운 사랑을 나눌까 궁금합니다.


  나는 자동차가 나쁘다고는 여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기름만 먹고 배기가스만 내뿜는 자동차는 달갑지 않습니다. 빼어나다는 과학기술과 첨단기술이 있다면서 왜 자동차는 아직까지 기름을 먹으며 배기가스를 내뿜어야 하나요. 지구별 석유가 많이 줄었다면서 왜 여태껏 기름 아닌 햇볕이나 물이나 바람을 먹으며 굴러가는 자동차는 안 만드나요.


  사람들이 즐기는 만화나 영화를 보면, 초능력을 써서 몸을 다른 데로 옮기는 일이 곧잘 나타납니다. 몸을 이곳에서 저곳으로 옮기는 일이란 만화나 영화에서만 나오는 이야기일까요. 여느 사람 누구나 마음속에 깃든 힘을 슬기롭게 갈고닦으면 언제 어디에서라도 이곳에서 저곳으로 가뿐히 옮길 수 있지는 않을까요. 영어로 말하자면 텔레포트쯤 될 텐데, 모든 사람이 사랑스럽고 슬기롭게 텔레포트를 할 줄 안다면, 자동차도 기차도 비행기도 우주선도 없어도 되겠지요. 누구나 사랑스럽고 슬기롭게 텔레포트를 할 줄 안다면 전쟁이나 싸움이 터질 까닭이 없고, 돈이나 보배를 몰래 숨길 일도 없을 테며, 권력이나 계급이 생길 수도 없을 뿐더러 총이나 칼 같은 무기란 덧없겠지요. 그야말로 골고루 나누고 골고루 누리며 골고루 빛나는 삶이 되리라 느껴요. 저마다 숲을 아끼고 숲에 깃들며 숲으로 숨을 쉬리라 느껴요.


- “이건 진짜 축하할 일인걸. 나는 꼭 보러 갈 겁니다. 포장마차를 접고서라도. 손님, 코즈키 씨의 시라노 연기, 본 적 없지요? 난 세 번이나 봤다고요.” (89쪽)
- ‘그럼 저 머리의 상처는 연극의 분장이 아니라 진짜 상처란 얘긴가. 저분은 상처의 고통을 참고, 극장으로 달려와서 지금까지 연극을 하고 있었단 말인가.’ (97쪽)

 

 


  데즈카 오사무 님 만화책 《칠색 잉꼬》(학산문화사,2012) 셋째 권을 읽습니다. 셋째 권에 이르니, 만화책 《칠색 잉꼬》에 나오는 ‘칠색 잉꼬’하고 ‘센리 형사’가 시나브로 서로한테 마음이 끌려 사랑이 싹트는 모습이 곧잘 나타납니다. 아무래도 두 사람은 죽이 잘 맞는구나 싶습니다. 다른 어버이한테서 태어나 다른 삶길을 걸었으나, 두 사람은 같은 넋을 품으며 같은 꿈을 꾸는구나 싶어요. 하나는 도둑이고 하나는 형사라 하지만, 도둑이나 형사라는 껍데기를 벗고 맨몸뚱이 ‘사람’이라는 ‘빛’으로 돌아본다면, 칠색 잉꼬와 센리 형사 두 사람은 ‘사랑’으로 ‘지구별’을 예쁘게 어루만지고 싶은 ‘꿈’이 있어요.


- “이번만은 특별히 넘어가 줄 테니까. 그 대신 내 말을 잘 들어야 해. 내 기분이 내킬 때 같이 데이트 해 줄 것!” (173쪽)


  한 사람이 걸어가는 길은 빛 한 줄기가 흐르는 길입니다. 한 사람이 살아가는 길은 빛 한 줄기가 온누리에 따스함을 흩뿌리는 길입니다. 한 사람이 사랑하는 길은 빛 한 줄기가 모든 목숨을 살가이 사랑하는 길입니다.


  나는 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고운 기운으로 내 살붙이를 곱다시 어루만질 한 사람입니다. 나는 내 마음에서 샘솟는 착한 기운으로 내 동무를 함초롬히 얼싸안을 한 사람입니다. 나는 내 마음에서 피어나는 좋은 기운으로 내 이웃을 알뜰히 보살필 한 사람입니다. (4345.8.1.물.ㅎㄲㅅㄱ)

 


― 칠색 잉꼬 3 (데즈카 오사무 글·그림,도영명 옮김,학산문화사,2012.1.25./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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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꾸로 읽는 책

 


  만화책을 들여다보는 누나 곁에서 그림책을 뒤적이며 노는 동생. 작은아이가 그림책을 뒤적일 때에 어떤 그림이 나오는가 하고 이야기를 한다. 만화책을 들여다보는 아이는 아버지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고는 그림책을 바라본다. 그러고는 아버지가 이야기한 대로 똑같이 동생한테 무엇무엇 하는 그림이라고 이야기한다. 동생은 그림책을 거꾸로 펼쳐서 들여다본다. 그러니까, 동생으로서는 거꾸로 읽는 책인 셈인데, 바로 옆에 앉은 누나한테는 뜻밖에 똑바로 읽는 책이 된다. 어찌 보면, 동생이 누나 보라며 그림책을 펼쳐서 넘기는 모습이 된다. 만화책을 다 넘긴 큰아이는 그림책을 펼친다. 아버지가 이야기한 ‘새끼 코끼리가 어미 코끼리한테 업어 달라고 하네. 그런데 코끼리는 새끼도 무거워서 어미가 못 업어 주네.’가 나오는 대목을 들여다본다. 큰아이하고 그림책 함께 읽은 지 꽤 오래되었다고 느낀다. 이제 새벽을 지나 아침이 밝으며 새 하루가 열리면, 큰아이가 일어날 적에 잘 잤느냐고 물은 다음 아버지 무릎에 앉으라 하면서, 어제 함께 들여다본 그림책을 새삼스레 펼치고는 그림마다 어떤 모습인가 하고 조곤조곤 살을 붙여 이야기를 들려주어야겠다고 생각한다. (4345.8.1.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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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2-08-01 09:35   좋아요 1 | URL
아이 때는 하나하나가 다 귀여워요.
어른이 일부러 귀엽게 보이긴 힘들어도 아이가 자연스럽게 하는 행동은 참 귀엽고 사랑스럽습니다.
사진으로 잘 남겨 놓으셨네요. 크고 나면 아주 먼 얘기가 되어 버려요. 그래서 그 지난 시간이 그리울 때가 있답니다.

파란놀 2012-08-02 06:22   좋아요 1 | URL
사진으로 안 찍어도 마음에는 모두 남는데,
아이들은 아직 스스로 제 모습을 그리지는 않기에
사진을 찍는데,
사진이 없더라도 아이들 스스로
저희 삶을 그리려 하는 마음이 있으면,
이 모습 모두 예쁘게 받아들이겠지요~
 


 손가락으로 읽는 책

 


  다섯 살 큰아이가 듀안 마이클 사진책을 펼친다. 듀안 마이클 사진책에는 아이 눈길을 끌 만한 모습이 제법 많다 할까. 가만히 들여다보면 퍽 재미나다 여길 만한 사진일 수 있겠다 싶다. 한 자리에서 조금씩 다른 모습을 보여주면서 ‘이야기 엮는 사진’을 보여주는 듀안 마이클 사진인 만큼, 도시에 있는 사무실인지 살림집인지에서 두 사람이 옷을 한 꺼풀씩 벗으며 풀과 나무가 늘어나는 모습이라든지, 아기가 있는 모습이라든지, 여러모로 재미나다 할 만하다. 큰아이는 아기 사진이 여럿 나오는 쪽을 오래도록 펼치고는 ‘여기도 여기도 아기 있네.’ 하면서 손가락으로 아기 있는 데를 콕콕 짚는다. 그래, 거기 아기가 있구나. 아기 사진을 짚는 너도 어머니와 아버지한테는 아직 아기라 할 만한 작은 사람일 테지. 아기와 같다 할 작은 사람인 네가 좋은 사랑을 받아먹으면서 좋은 꿈을 키우도록 예쁘게 살아갈 네 두 어버이로구나. (4345.8.1.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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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얀 콩꽃 책읽기

 


  콩꽃이 하얗게 핀다. 이웃 할머니한테서 얻은 봄콩을 곧장 열두 알 심었더니 모두 예쁘게 싹이 트고 씩씩하게 자라며 꽃을 피운다. 콩씨는 콩싹을 틔우고 콩줄기를 올리면서 콩뿌리를 내리고 콩잎을 펼치면서 콩꽃을 보여준다. 콩꽃은 하얀 꽃송이 예쁘게 노래하면서 천천히 무르익어 콩꼬투리를 내놓을 테고, 콩꼬투리에 새로운 콩알을 맺을 테지. 봄콩으로 여름콩을 얻는 셈이라 할 텐데, 여름콩을 얻고 나서 다시금 콩알을 심어 가을콩을 거둘 수 있을까 궁금하다. 따사로운 햇살 마음껏 먹으면서 무럭무럭 알차게 잘 여물어 다오. 보들보들 폭신한 잎사귀를 쓰다듬는다. (4345.8.1.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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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세상을 떠도는 집 - 조병준 詩의 집
조병준 지음 / 샨티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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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 있는 하느님과 시
[시를 노래하는 시 26] 조병준, 《나는 세상을 떠도는 집》

 


- 책이름 : 나는 세상을 떠도는 집
- 글 : 조병준
- 펴낸곳 : 샨티 (2007.9.15.)
- 책값 : 9000원

 


  마당에 걸상을 놓고 앉아 파리를 잡으며 시를 읽습니다. 웬 파리가 이렇게 달라붙나 싶어 한 마리 열 마리 두 마리 스무 마리 끝없이 잡습니다. 파리는 무언가 제 먹이가 있으니 떼를 지어 붕붕 날아다니겠지요.


  파리채에 얻어맞아 목숨을 잃은 파리는 마당에 톡톡 떨어집니다. 마당에 파리 주검이 하나둘 늘면 이제 개미가 곳곳에서 나타납니다. 개미는 파리 주검을 혼자 붙잡고 나르기도 하고, 둘이나 여럿이 함께 들어 나르기도 합니다. 작은 개미는 파리 주검에 잔뜩 달라붙어 파리 주검을 조각조각 뜯어서 나르곤 합니다. 개미들은 모기도 잠자리도 나비도 조각조각 잘라서 저희 집으로 나릅니다. 개미들은 벌레 주검이 생기면 곧 냄새를 맡고는 몰려들어, 이들 주검을 깨끗이 치웁니다.


.. 꽃무늬 벽지 뒤로 사랑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 베니어합판 뒤로 꿈꾸는 사람들이 들린다 ..  (슬픈 여인숙)


  처마 밑에 어느새 생긴 거미줄이 퍽 큽니다. 거미는 처마랑 빨래줄 사이에 하얀 줄을 드리웁니다. 거미는 제법 커서 마치 하늘을 붕 뜬 채 걸어다니는 듯 보이곤 합니다. 어느 날 나비 한 마리 거미줄에 걸립니다. 나비는 꽤 크게 몸부림을 치고 거미가 가까이 다가섭니다. 그런데 나비가 거미줄에서 풀려나 멀리멀리 날아갑니다. 함께 바라보던 옆지기는 거미가 줄을 끊어 나비를 풀어 주었다고 말합니다. 그럴까, 그럴까, 생각합니다. 거미한테 너무 큰 벌레가 줄에 붙으면 줄이 몽땅 끊어지니 풀어 줄 수 있겠지요.


  지붕 위부터 퍽 높은 전깃줄 사이에 이어진 거미줄에도 잠자리가 걸립니다. 이 거미줄에 걸린 잠자리는 풀려나지 못합니다. 곳곳에 거미줄이 많고, 곳곳에 잠자리나 나비가 곧잘 걸립니다. 엊그제에는 빗물받이와 처마 사이에 새로 생긴 거미줄에 잠자리가 걸렸기에 손가락으로 줄을 끊어 풀어 줍니다. 거미도 잠자리도, 또 나비도 파리도, 또 개미도 만만하지 않은 삶일는지 모릅니다. 개미는 흙땅 큰돌 밑에 집을 짓곤 하는데, 내가 큰돌을 골라 옮길 때면 개미들은 저희 집 지붕을 잃었다며 수천 수만 마리가 한꺼번에 몰려나와 어지러이 헤매며 새 터로 옮기곤 합니다.


  나는 돌을 옮길 뿐이지만, 개미는 집을 잃은 셈입니다. 나는 자전거를 타고 들길을 달릴 뿐이지만, 때때로 나뭇가지 사이 거미줄을 머리나 자전거로 끊곤 합니다. 나는 밭뙈기 풀을 뽑지만, 밭뙈기 풀숲에 깃들던 벌레는 보금자리를 잃습니다.


  내 작은 움직임이 커다란 물결이 됩니다. 내 이웃이나 동무들 작은 움직임이 커다란 물결이 되어 나한테 찾아들곤 합니다. 나는 나대로 물결이고, 옆지기와 아이들은 서로서로 저마다 다른 물결입니다. 물결과 물결이 만나 출렁거리기도 하고, 살가이 얼크러져 녹아들기도 합니다. 여러 물결은 사이좋게 어깨동무를 하기도 하고, 여러 물결은 골을 부리듯 부딪히며 큰소리를 내기도 합니다.


.. 나뭇잎들도 비를 덮고 따뜻했을 거야 ..  (희생)


  집안에 들어온 모기를 두 손바닥을 짝 부딪혀 잡습니다. 피가 팍 튀는 모기가 잡히기도 하고, 새끼손톱보다 큰 모기가 잡히기도 합니다. 네가 먹은 피는 누가 피일까 하고 헤아립니다. 네 커다란 덩치로 우리 피를 얼마나 빨아먹으려 했니 하고 묻습니다. 흐르는 물에 손을 씻습니다.


  내 이웃이든 먼 이웃이든 사람들은 으레 모기향을 태우거나 모기약을 뿌립니다. 모기를 좇거나 잡으려고 갖가지 약을 씁니다. 약을 써서 모기가 해롱거립니다. 그리고, 약을 쓰는 만큼 모기향이든 모기약이든 사람 몸이나 옷이나 집 곳곳에 천천히 스며듭니다. 모기약은 모기도 먹고 사람도 먹습니다. 모기향은 모기도 떨어뜨리고 사람도 떨어뜨립니다.


.. 나무들이 내 안으로 들어와 서성이다 돌아갔다 / 길 잃은 햇살과 강물과 빗줄기들이 / 잠시 수군거리다 떠나기도 했다 ..  (숲으로의 여행)


  두 아이를 자전거수레에 태우고 면 소재지를 다녀오는 길에 딱정벌레 한 마리 길 한복판에 뒤집힌 채 바둥거리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꽤 큰 녀석이 어쩌다 여기에서 바둥거리나 싶어 걱정스럽습니다. 자전거가 딱정벌레를 안 밟도록 바퀴를 살살 옆으로 비껴 지나갑니다. 조금 달리다가 아무래도 걱정이 가시지 않습니다. 딱정벌레가 스스로 잘못해서 길 한복판에 뒤집혔는지 모르나, 시골길 자동차 뜸한 곳이라 하더라도 때때로 지나가던 자동차한테 치여 이곳에 뒤집혔는지 모릅니다. 자동차한테 치이지 않았더라도 자동차가 일으킨 바람에 그만 뒤집혔을 수 있어요. 내 자전거는 딱정벌레를 안 밟고 지나갔으나, 내 뒤를 따를 자동차는 그냥 밟고 지나가겠지요.


  뙤약볕 내리쬐는 길을 돌아갑니다. 딱정벌레도 이 뙤약볕에 고달프리라 생각합니다. 날개를 살살 건드려 뒤집어 주려 하는데 영 기운을 못 씁니다. 안 되겠네 싶어, 손가락 하나를 뻗어 딱정벌레가 내 손가락을 붙잡도록 합니다. 딱정벌레 겉껍질은 눈부시게 반짝이는 짙푸른 빛깔입니다. 꼭 짙푸른 빛깔 보석 같습니다. 아이들한테 딱정벌레를 보여주고는 길가 소나무 줄기 한쪽에 내려놓습니다. 그늘진 곳에서 쉬든, 이곳에서 먹이를 찾든, 이제 딱정벌레 스스로 살 길을 찾기를 바랍니다.


  다시 자전거를 달립니다. 이제 홀가분합니다. 파랗게 빛나는 하늘을 올려다보고, 하얗게 빛나며 파란하늘을 물들이는 구름을 바라봅니다.


,, 우리 이모 / 처자식 있는 남자에게 속아 시집가 / 마심이 언니 낳고 서울로 올라와 / 바지락 까서 마심이 언니 시집보내고 / 콩나물 팔아서 마심이 언니 신랑 사철 새 옷 해 입히고 / 마심이 언니 벽제에서 태운 날부터 / 두부 팔아서 / 매일매일 술 마셨다 ..  (우리 이모, 부잣집에 태어나러 가네)


  바람이 불어 후박나무를 찰랑입니다. 바람이 불어 논배미 볏포기를 흔듭니다.


  후박나무는 바람 따라 흔들리면서 열매 떨어진 꽃받침을 하나둘 마당에 떨굽니다. 빨간 꽃받침은 바다에서 자라는 산호 가지를 닮습니다.


  바람 부는 들판에 서면 쏴아아 쏴르르 하며 볏포기끼리 서로 잎사귀 부딪거나 스치는 소리가 들립니다. 바다에 설 때에 듣는 물결 소리랑 볏포기가 바람에 살랑이며 낼 때에 듣는 소리랑 비슷하구나 싶습니다.


  잠투정을 하는 작은아이를 안고 마루에 서서 깜깜한 바깥을 바라보면 풀벌레 노랫소리 고즈넉하게 들립니다. 이 풀벌레는 무슨 노래일까, 하고 물으며 아이를 바라보면 아이는 커다란 눈을 더 커다랗게 뜨고는, 응 응, 하고 되묻습니다. 새로 들리는 풀벌레 소리에 따라 고개를 까딱까딱 돌립니다. 어디에서 나는 소리인가 찾습니다. 한여름이 되어 개구리 노랫소리는 거의 잦아들었지만, 풀벌레 노랫소리 사이에 자그맣게 섞여 함께 들리기도 합니다. 풀벌레와 개구리는 우리 집 작은아이더러 예쁜 아이야 이 저녁에 예쁘게 자야지 아직 안 자고 무엇을 하니, 하고 묻습니다. 작은아이한테 풀벌레들 이야기를 들려주며 천천히 달랩니다.


.. 나는 그저 / 내 살색이 보호색이 될 수 없었던 나라들에서 / 내게 잠시 친절했던 현지인들의 얼굴을 기억했다 ..  (그의 살색은 연한 밀크초콜릿 색이었다)


  조병준 님 시집 《나는 세상을 떠도는 집》(샨티,2007)을 읽습니다. 파리를 잡다가 읽고, 모기를 잡다가 읽으며, 잠자리 날갯짓 소리를 듣다가 읽습니다. 식구들 먹을 풀을 뜯다가 질경이 잎사귀 뒤에 오도카니 붙은 작은 알을 바라보던 느낌을 떠올리며 읽습니다. 마당 한켠 꽃밭에서 줄기를 뻗은 수박풀은 줄기가 꺾여 간당간당하더니 그예 다시 기운을 차려 씩씩하게 잎사귀를 키웁니다. 수박풀이 대견하구나 싶어 잎사귀를 살살 쓰다듬습니다. 수박풀 까끌까끌한 느낌을 되새기며 시를 읽습니다.


  오늘 하루 살아가는 이야기가 시 하나로 태어납니다. 오늘 하루 꿈꾸는 이야기가 시 하나로 거듭납니다. 오늘 하루 사랑하는 이야기가 시 하나로 옷을 입습니다.


.. 아버지, 세 분 작은아버지 모시고 / 됫병 소주 들고 / 큰할아버지, 할아버지, 두 분 작은할아버지 / 무덤들 인사 다닐 때 / 어쩌면 무덤마다 / 돗나물, 취나물, 머위, 고사리, 삘기, 익모초, / 지천으로 널렸을까 ..  (지팡이 아버지)


  무더운 낮이 지나면 조금은 시원한 밤이 찾아옵니다. 조금은 시원한 밤이 지나면 다시 무더운 낮이 찾아옵니다. 아침에는 고운 햇살이 온누리를 밝힙니다. 저녁에는 포근한 달빛이 온누리를 감쌉니다. 낮에는 들판에서 고운 꽃송이와 풀잎을 바라봅니다. 밤에는 하늘에서 반짝이는 별빛을 바라봅니다.


  고운 꽃과 풀은 내 마음에 곱게 드리웁니다. 반짝이는 별은 내 가슴에 반짝이며 깃듭니다. 내 손길은 언제나 고울 수 있습니다. 내 눈길은 늘 반짝일 수 있습니다. 내 두 다리는 언제나 곱게 한 걸음씩 내딛을 수 있습니다. 내 두 눈은 늘 반짝이면서 착하게 둘레를 바라볼 수 있습니다.


.. 모든 어머니들이 그러하시듯 / 그의 어머니께서도 즐거운 세상 이야기를 / 아들에게서 얻어듣는 저녁을 / 소박하게 바라시지만, 오늘도 / 이미 밖에서 읽었던 신문을 뒤적이며 / 어머니의 질문들을 수저 소리로 떠넘기고 / 그는 밥상과 함께 어머니를 내보낸다 ..  (안개마을 사람들)


  내 마음은 어느 길을 가고 싶은가 하고 곰곰이 돌아봅니다. 손끝이 다치거나 손가락에 피가 맺혀도 씩씩하게 빨래를 하는 내 모습을 바라보면서, 이렇게 집일을 하는 나는 누구인가 하고 가만히 헤아립니다. 마음이 움직여서 하는 집일인지, 몸이 더 기운을 내며 하는 집일인지 헤아립니다. 아이한테 궂은 말을 윽박지르는 나는 마음이 움직이는 나인지 몸이 움직이는 나인지 생각합니다. 아이한테 따숩게 자장노래를 부르거나 놀이노래를 부르는 나는 마음이 이끄는 나인지 몸이 이끄는 나인지 곱씹습니다.


  나는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 나일까요. 나는 어떻게 꿈꾸고 싶은 나일까요. 나는 어떻게 사랑하고 싶은 나일까요.


  나는 어떤 밥을 어떻게 먹고, 어떤 이야기를 어떻게 나누고 싶은 나일까요. 어쩌면 나는 내 삶도 꿈도 사랑도 한 번조차 돌아보지 않으면서 오늘까지 이르지 않았을까 궁금합니다. 어쩌면 나는 내 길도 집도 넋도 찬찬히 헤아리지 않으면서 오늘까지 왔을 수 있구나 싶습니다.


.. 한겨울에도 누이들은 / 밤에야 마음 놓고 빨래를 할 수 있었다 / 식구들을 모두 재우고 / 빨래처럼 얼어버린 누이들도 잠에 들었다 ..  (겨울가족)


  시를 쓰는 조병준 님은 스스로 ‘지구별 떠도는 집’이라 말합니다. 그러면, 조병준 님 마음이 지구별을 떠도는 집일까요, 조병준 님 몸이 지구별을 떠도는 집일까요. 마음에 따라 몸이 움직여 지구별을 떠도는 삶일까요, 몸에 따라 마음이 움직여 지구별을 떠도는 삶일가요.


  사람은 홀가분하게 온누리를 마실하는 넋으로 이루어진 목숨일까 생각해 봅니다. 사람은 몸뚱이를 놀려 두 다리로 땅을 디디고 두 손으로 이것저것 붙잡으면서 온누리를 눈과 귀와 코와 머리로 겪는 목숨일까 헤아려 봅니다.


  시골집 마루에 앉아 가만히 눈을 감고는 지구별과 나를 생각합니다. 자전거수레에 아이들을 태우고 들길을 달리면서 온누리와 나를 헤아립니다. 내 안에 있는 하느님은 내가 어떻게 살아가기를 기다릴까요. 내 마음을 이루는 하느님은 내가 어떻게 꿈꾸기를 기다리며 지켜볼까요. 내 몸에 깃든 하느님은 내가 어떻게 사랑하기를 기다리며 지켜보고는 따순 햇살이 될까요.


  이제 시집을 덮습니다. 온통 땀투성이가 된 두 아이 옷을 벗기고 함께 씻습니다. 벗은 옷은 신나게 빨고, 마당 꽃밭 한켠에서 자라는 하얀 콩꽃을 바라봅니다. (4345.7.31.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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