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여자를 키우는 남자, 아니 두 여자가 키우는 남자


 딸아이 백일을 며칠 앞두고, 신포시장 떡집에 백설기와 가래떡을 맡기려고 흰쌀 사십 킬로그램 남짓을 지고 안고 갑니다. 모두 해서 사십 킬로그램이 조금 넘는 무게일 텐데(어쩌면 더 나갈는지 모릅니다만), 집부터 떡집까지 걸어가는 길이 만만하지 않습니다. 그리 멀지는 않으나 썩 가깝지 않습니다. 높은 언덕을 넘어야 하지는 않으나, 인천이라는 데는 오르락내리락 골목이 끝없이 이어진 곳이다 보니 다리가 후들후들입니다.

 새벽나절 깨어나 일손을 붙잡다가 잠깐 눈을 붙인다고 했지만, 언제나 새벽같이 깨어나서 아빠 엄마랑 함께 눈 말똥말똥 뜨면서 놀아 달라고 하는 딸아이하고 씨름하노라면, 새벽잠도 낮잠도 저녁잠도 밤잠도 어영부영, 아니 대충대충 넘기게 됩니다. 어른들은 ‘아기가 잘 때 어른도 자야 한다’고 말씀하지만, 몸이 썩 좋지 않은 애 엄마는 집안일을 하나도 할 수 없는 터라, 먹고사는 일을 하는 애 아빠는 홀로 집안일까지 도맡습니다. 없는 틈을 쪼개어 집안일을 해야 하니, 아기가 자도 깨고 아기가 깨도 함께 깨는 때가 잦습니다. 한 시간 넘게 깊이 잠들기 어렵고, 조금 쉬는가 싶으면 기저귀 빨래가 밀리니 부랴부랴 언손 녹여 빨래를 하노라면 잠이 달아납니다. 잠이 달아나면서 쌀과 콩팥을 씻고 불려 놓아야 하고, 다 마른 빨래를 걷어 놓고는 잠깐 아기를 안고 어르다가 바깥 일손을 붙잡다가, 하루 밥거리를 무엇으로 마련할까를 헤아리다가 기저귀를 빨다가, 또 아기하고 애 엄마하고 함께 어울리다가 밥을 안치다가, 그러면서 찌개나 반찬거리 하나 장만하다가 아까 걷어 놓은 기저귀를 개다가 …… 하면 하루가 훌쩍 지나갑니다.

 일기를 쓸 겨를이란 없지만, 달력 귀퉁이에다가 오늘 하루 무엇을 하고 지나가는가를 적어 놓을 겨를조차 못 내고 넘어가는 날이 늘어납니다. 겨우 잠자리에 들 무렵 ‘오늘 무슨 일이 있었나?’ 하고 돌아보면 하나도 떠오르지 않습니다. 머리속이 새하얗습니다.

 더구나 오늘은 민방위훈련이 있는 날. 일은 겹쳐서 온다고, 그나마 아침잠조차 한 시간 느긋하게 잘 수 없어 퀭한 눈으로 민방위훈련 하는 곳까지 부랴부랴 종종걸음. 세 시간 동안 졸음이 쏟아지는 강의가 이어지는데, 여느 사람들 상식밖에 안 되는 구급법과 119 전화 거는 법을 그토록 오래도록 떠벌여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교육장에서 문득 휘 둘러보니 5/6쯤 되는 우리 동네 아저씨들은 꾸벅꾸벅 졸거나 엎드려 자거나 코를 골고 있습니다. 그래도 1/6이나 되는 아저씨들은 자지 않고 깨어 있습니다. 저는 이런 때야말로 책을 읽어야 하지 않느냐 싶어 두 권을 챙겨 와 감기는 눈을 비벼 가면서 읽습니다. 세 시간 동안 이백 쪽 안팎 읽어냅니다. 그리고 마지막 넷째 시간에 비디오를 보여주는데, ‘세계 5위 군사대국 북한의 위협 가운데 화학무기가 가장 무섭다’고 하는 말머리로 ‘가정에서 화생방 대피 요령’을 연속극처럼 찍어서 틀어 줍니다.

 힘들 일은 없다고 하는 민방위훈련이기는 해도, 억지스럽게 국민의례를 하고 애국가를 부르고 ‘내 이웃이 간첩인지 아닌지 살펴보라’는 비디오까지 귀가 멍멍하도록 듣고 나서야 도장 꾹 찍히고 풀려납니다. 동사무소에서 나와 출근부(?) 도장 찍는 젊은 직원은 한손을 바지주머니에 찔러넣고 한손으로 도장을 쾅쾅 찍습니다.

 어질어질한 머리로 집으로 돌아와 그사이 밀린 기저귀를 빨다가, 애 엄마가 ‘뜨거운 물이 씻을 만큼 되느냐’고 묻기에, 넉넉하다고 이야기해 줍니다. 그러면 아기하고 함께 씻어도 되겠네 하기에, 그래도 된다고 이야기합니다. 이리하여 졸음을 꾹 참고 큰 통에 뜨거운 물을 받습니다. 기저귀 빨래를 마치고 빨래줄에 널어도 물은 더 받아야 합니다. 방을 들여다봅니다. 애 엄마도 자고 딸아이도 잡니다. 통에 2/3쯤 찼을 무렵 애 엄마를 흔들어 깨웁니다. 애 엄마도 고단한 몸이라 겨우 일어납니다. 애 엄마가 먼저 씻는방에 들어가고, 딸아이는 애 아빠가 옷을 벗겨서 나중에 들어갑니다. 물통에 들어가 앉은 애 엄마가 딸아이를 안습니다. 저는 한손으로 아기 귀를 막은 채, 한손으로 바가지에 물을 퍼서 아기 몸에 끼얹습니다. 어제까지는 작은 통에 물을 담아서 손바닥으로 끼얹으며 씻겼는데, 오늘은 처음으로 제대로 씻겨 봅니다.

 다 씻기고 나와서는 떡집으로. 이렇게 새벽 아침 낮나절을 보내고야 떡집으로 가는 길입니다. 무거운 쌀짐을 이고 가기 앞서까지 여러 가지 일이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몸은 몸대로 고단하면서 짐은 짐대로 무거우니 다리가 후들거릴밖에요. 게다가 아기를 낳아 기르는 동안 몸무게가 7킬로그램쯤 빠지며 힘도 많이 줄었으니 더욱 후들거리고요.

 그래도 떡집까지 가까스로 쌀을 다 지고 안고 찾아갔습니다. 안은 쌀과 진 쌀을 내려놓으니 팔과 등이 가볍습니다. 아니, 등짝이 없는 듯하고 팔이 없는 듯합니다. 문득, 군대에서 훈련 뛴다며 완전군장에다가 부대 깃발 들고 전화기를 목아지에 걸친 데다가, 탄약통까지 군장 위에 올려놓고 낑낑대던 일이 떠오릅니다. 그때 내 군장 무게도 오늘 쌀 무게에 버금갔을 텐데 그때는 어떻게 용케 버티면서 여덟 시간이고 열 시간이고 걸었을까 놀랍습니다. 낙오는커녕 낙오하는 후임병들 군장을 뒤에서 밀어 주고 앞에서 잡아당기고 하면서 산길을 타고 오르기까지 했으니 ……. 하기는, 그때는 지금과 견주면 몸무게가 십 몇 킬로그램이 더 나갔으니 힘이야 더 있었을 테고 젊기도 젊었으니까.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배고픈 애 엄마한테 밥을 먹이려고 밥을 차리고 찌개를 끓입니다. 그런데 애 엄마는 맛있게 먹기는 먹었으되 조금 많이 먹은 탓에 그만 숟가락질을 멈추지 못하고 더 먹어대어 탈이 납니다. 애 엄마한테 식사장애가 있는 줄 뻔히 알면서도 밥차림 부피를 늘 제대로 못 맞춥니다. 딱 알맞게끔, 아니면 조금 모자라게끔 해야 하는데. 탄수화물을 안 먹이든지 아주 조금만 먹이든지.

 탈이 난 애 엄마는 저녁 여덟 시부터 밤 두 시 가까이까지 힘겨워하며 게워내고 끅끅거리다가 겨우 잠이 듭니다. 애 엄마가 잠이 들 때까지 애 아빠는 팔다리와 등허리를 주무르고 안아 주고 등을 비벼 주고 합니다. 이동안 딸아이는 때맞춰 오줌을 누면서 기저귀갈이를 시킵니다. 그래도 낮에 똥 한 번 누고 저녁에는 안 누어 주니 이만 해도 고맙습니다. 오늘은 어인 일인지 잠투정도 얼마 안 하고 고이 잠들어 줍니다. 이리 귀여울 수가.

 애 엄마가 자리에 눕고 나서 한 시간 두 시간 세 시간이 흐릅니다. 애 아빠도 자리에 눕고 싶으나 어느새 잠이 싹 달아나 버립니다. 그러나 이동안 밀려 있는 기저귀를 빨 엄두는 못 냅니다. 팔과 팔꿈치가 너무 아프기 때문입니다. 새벽과 낮에도 기저귀를 빨고 물을 짤 때 손목과 팔꿈치가 저릿저릿해서 ‘이러다가 앞으로 어쩐담?’ 하는 소리가 ‘아이고 아이고!’ 소리와 함께 절로 튀어나왔습니다.

 이제 슬슬 몸뚱아리가 더 버티지 못하겠다는 신호를 보내니 잠자리에 들면 달게 잘 수 있을 듯한데, 새벽 다섯 시가 넘어서야 잠이 들면 언제쯤 깨어날까요. 아니, 딸아이는 새 하루에도 어김없이 새벽같이 눈 번쩍 뜨고는 까르르 웃어대면서 놀아 달라고 할 텐데, 애 아빠는 얼마나 아이 웃음을 모르는 척하면서 잠자리에서 꼼지락거릴 수 있을까요.

 속탈이 난 애 엄마 등을 어루만지면서, 애 아빠가 집일이 아닌 바깥으로 나가서 돈버는 일을 했다면, 이 모든 집살림에서 홀가분하거나 느긋할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밖에서 돈만 벌고 들어오면 애 엄마가 혼자서 집에서 아이를 돌보는 일이 얼마나 고단하며 마음이 갑갑해지기도 하는지를 조금도 못 느끼지 않았겠느냐 싶습니다. ‘출산 우울증’에 걸릴 수밖에 없는 모습을 하나도 못 느끼면서 닦달을 하지 않았으랴 싶습니다. ‘벌 수 있을 때 밖에서 조금이라도 돈을 더 벌어야 한다’고 둘레에서 자꾸자꾸 말을 하지만, 그렇게 돈을 벌어서 어디에 쓰는가를 헤아린다면, 저로서는 돈은 조금 적게 벌더라도 딸아이가 하루하루 자라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볼 뿐 아니라 함께 돌보고 함께 자라고 함께 놀고 함께 생각하면서 살 때가 돈으로는 도무지 살 수 없는 고마운 삶을 배우는 일이라고 느끼고 있습니다. 이렇게 딸아이 옆에 있고, 애 엄마 곁에 있는 일이, 돈으로 아기돌봄이 아줌마를 사서 쓸 때보다 훨씬 사랑 나누는 일이요, 한결 사랑 키우는 일이 아니겠느냐 싶어요.

 애 아빠는 젖을 물릴 수 없으니, 오롯이 애를 키운다고 할 수 없습니다만, 여러모로 많은 대목에서 아이를 키우는 한편, 몸과 마음이 많이 지치고 힘든 애 엄마를 키우고(돌보고) 있습니다. 흔히들, ‘엄마 한 사람이 아이와 아빠를 키운다’고 하는데요, 우리 집에서만큼은 ‘아빠 한 사람이 아이와 엄마를 키우고’ 있습니다.

 그런데 말입지요, 옆지기도 이런 말을 하고 저도 이런 생각, ‘두 여자를 키우는 한 남자’라는 생각이 들기는 합니다만, 애 아빠가 애 엄마와 딸아이를 키운다기보다, 애 아빠가 애 엄마하고 딸아이한테 배운다는 느낌이 짙게 들곤 합니다. 먹여살리지 살림하지 뒤치닥꺼리와 앞치닥꺼리 도맡지 하지만, 세상에 둘도 없이 깊은 가르침을 고마이 배우는 셈입니다. 가난이 세상에서 가장 으뜸가는 축복이라는 말씀처럼, 애 엄마와 딸아이 키우는 고단함은 오히려 애 엄마와 딸아이가 애 아빠를 키우는 첫손 꼽을 축복이지 싶습니다. 고단한 만큼 배우고, 고달픈 만큼 깨달으며, 지치는 만큼 느끼고, 벅찬 만큼 보람이 있습니다. 괴로운 만큼 기쁘고, 속썩이는 만큼 즐거우며, 애태우는 만큼 찡합니다.

 날마다 다짐합니다. 두 여자를 키우는 남자가 아닌 두 여자가 키우는 남자이고, 두 여자가 키워 주는 남자인 이 삶은 누구한테도 내주고 싶지 않다고. 가슴속에 켜켜이 묻어 놓고 싶습니다. 이 삶을. 몸뚱이에 알알이 새겨 놓고 싶습니다. 이 하루를. 마음밭에 차곡차곡 다져 놓고 싶습니다. 오늘 부대낀 온갖 일들을.

 눈물 한 줄기 눈가에 타고 흐릅니다. (4341.11.21.쇠.05:01.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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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하라 이야기 - 아주 특별한 사막 신혼일기
싼마오 지음, 조은 옮김 / 막내집게 / 2008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 하나 79 ― 꽃 한 송이 피지 않는 ‘사하라’를 사랑해
 : 싼마오, 《사하라 이야기》


- 책이름 : 사하라 이야기
- 글쓴이 : 싼마오
- 옮긴이 : 조은
- 펴낸곳 : 막내집게 (2008.7.21.)
- 책값 : 9800원



 (1) 겨우살이와 우리 길


 이제까지 제가 얻어서 살고 있는 집 가운데 따뜻했던 데는 아직 없습니다. 옆지기와 함께 살며 아기도 낳고 지내는 이 집 또한 겨울에는 춥기 그지없습니다. 제가 추위를 덜 탄다고는 하여도, 함께 사는 이는 추위를 안 탈 리 없고, 저는 그럭저럭 견디고 손이 얼어도 비비고 녹이며 산다 하지만, 함께 지내는 이는 몸을 옹송그리다가 괴로울 텐데, 제가 알아보며 얻는 집은 하나같이 추위를 잘 견디지 못합니다.

 아무래도 넉넉한 돈으로 움직이면서 알아볼 수 없는 집이고, 제가 늘 짊어지고 다니는 여러 만 권에 이르는 책을 간수할 만한 자리를 헤아리자면, 사람 삶이 고단할밖에 없는 응달자리에서만 맴돌게 되는가 싶기도 합니다. 앞으로는 좀 따뜻하게 몸을 뉘이고 녹이고 쉴 수 있는 보금자리를 얻고 싶은데, 우리 형편에 우리 동네에서 이와 같은 집자리가 나올는지 모르겠습니다. 더구나 이 동네가 오로지 높은층 아파트로만 다시 때려짓는 ‘구도심 재개발’로 허물리게 된다면, 우리가 갈 곳이란 고향동네에서는 아무 데도 없습니다. 눈물을 머금고 떠나야 하는 살림이 아니라, 이를 앙다물고 떠나야 하는 판입니다.


.. 나는 까무러칠 듯 놀라 할아버지 곁에 무릎을 꿇고 앉아 물었다. “위대한 예술가여, 이것들을 살 수 있나요?” 나는 손을 뻗어 사람 얼굴 조각을 집어들었다. 내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이토록 투박하고 감동적인 자연의 창작물이라니! 빼앗아서라도 갖고 싶었다 … 나는 그날 밥도 먹지 않고 바닥에 누워 그 위대한 무명 예술가의 작품을 감상했다.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감동을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가 없었다. 사하라위족 이웃들은 내가 이 예술품을 사는 데 1천 페세타나 썼다는 것을 알자 나를 마구 비웃고 백치 취급까지 했다 ..  (233∼234쪽)


 옆지기가 말합니다. 겨울에는 집을 두고 따뜻한 데를 찾아서 나들이만 하면서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백일이 채 안 된 갓난쟁이를 안고 업고 다니기에는 수월하지 않지만, 옆지기 말마따나 그리 떠돌아다녀야 할까 싶기도 합니다. 우리가 떠돌아다녀도 달삯은 나가게 마련이라 만만찮은 달삯이 허리를 휘게 할 터이나, 혼자 꾸리는 삶이 아니기에 옆지기 말을 흘려들을 수 없습니다.

 한편, 추운 날엔 추운 대로 받아들이고, 더운 날엔 더운 대로 맞아들이면서, 몸은 고달프더라도 마음은 느긋하게 살아내야 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겨울이니 찬물에 언손 녹이며 빨래를 합니다. 여름이니 시원한 물에 더위를 씻으며 빨래를 합니다. 겨울이니 집에서도 옷을 여러 벌 껴입으며 지내고, 여름이니 집에서는 반바지 하나만 걸치면서 지냅니다.

 다만, 우리는 고단함을 부러 찾아나서는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느님도 아니고 부처님도 아닙니다. 우리는 그저 골목동네에서 골목집 한켠에서 옹크리고 있는 사람일 뿐입니다. 아파트 같은 데에 들어갈 마음도 없지만, 아파트 같은 데에 들어갈 만한 살림이 되지 않는 사람입니다. 우리 형편이 이러하니 이만큼 살고, 무언가 더 얻거나 가지고픈 마음이 없으니 이 자리에서 흐뭇하게 여기며 살 뿐입니다.


.. (운전면허) 시험지에 적힌 문제는 이러했다. “1. 차를 몰고 가는데 빨간불이 켜지면? (1) 그냥 지나간다 (2) 멈춘다 (3) 클랙슨을 마구 누른다. 2. 차를 몰고 가는데 횡단보도에 사람이 지나가는 것을 보면? (1) 손을 흔들어 행인이 빨리 지나가도록 한다 (2) 무시한 채 지나간다 (3) 멈춘다” 두 장의 커다란 시험지에 적힌 문제들은 모두 이렇게 배꼽 빠지는 것들이었다. 나는 꺽꺽 하고 치밀어 오르는 웃음을 억누르느라 사레가 들어 혼났지만, 번개처럼 답을 써 내려갔다. 맨 마지막 문제는 이러했다. “차를 몰고 가는데 천주교인이 성모마리아상을 메고 지나가면? (1) 손뼉을 친다 (2) 멈춘다 (3) 무릎을 꿇는다” ..  (193쪽)


 엊저녁, 옆지기가 묻습니다. “당신, 만들고 싶어하는 국어사전을 만들지 못하고 죽으면 억울하지 않아요?” “그다지. 만들 수 있으면 만들겠지만, 만들 수 없으면 못 만들 뿐이지.” “나도. 못 만들어도 억울하거나 아쉽지 않을 것 같아.”

 마음속에 품고 있는 꿈이고, 이 꿈을 이루려고 더딘 걸음을 참 더디게 걷고 있는 ‘국어사전 엮기’입니다. 우리한테 있어야 하는 국어사전이라면 어떤 모습이어야 하고, 어떤 낱말을 어떻게 그러모으고 어떤 풀이와 보기글을 다는 한편, 어떤 짜임새로 내놓아야 하는가를 밑그림을 마련해 놓기는 했지만, 이러한 꿈을 이루면 즐겁고, 이루지 못해도 아쉽지 않습니다. 할 수 있는 만큼 할 뿐이지, 할 수 없는데 억지로 밀어붙일 수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주어진 대로 하지, 주어지지 않은 몫을 할 수 없습니다. 저한테 돈이 넉넉하게 있다 한들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며, 제 일을 거들 도움이가 많다 하여 이룰 일이 아닙니다. 내 살림 흐름과 세상 흐름이 맞아떨어질 때 비로소 할 수 있습니다.

 여태까지 살아오며 차곡차곡 읽고 곱새기면서 간직해 온 여러 가지 책들을 마련해 놓은 도서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책들을 알아보거나 즐기려고 꾸준히 찾아와 주는 분들이 있다면 고맙기도 고맙지만, 저한테 고맙기보다는 그분들한테 고맙습니다. 그분들한테는 새 세상을 열 책길을 만나고, 새 눈길을 틀 책눈을 보게 되기 때문입니다. 저야, 우리 도서관 책을 더 널리 나누지 못하더라도 아쉬움이 없습니다. 알아볼 사람은 언제든 알아볼 책이었고, 알아보지 못할 사람은 앞으로도 알아보지 못할 책인데, 이 책들이 어떻고저떻고 미주알고주알 떠들면서 ‘책 좀 읽으시지?’ 하고 옷소매를 잡아당길 수 없습니다. ‘예수천국 불신지옥’이라고 백만 번 외친들 사람들이 하느님을 믿겠습니까. ‘도를 아십니까?’ 하면서 찰거머리처럼 달라붙어서 중얼중얼 읊조린들 우리가 깨우치겠습니까. 우리가 하느님 믿음을 나누자면 하느님처럼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도를 깨우치려면 도 닦인 사람으로 살아야 합니다.

 저는 책으로 살고 책으로 믿으며 책으로 길을 걷습니다. 그 모양 그대로 책이 삶으로 되어 도서관을 동네 한켠에 열었 놓았을 뿐입니다. 가슴에 품은 국어사전 엮는 일 또한, 내 삶이 말이 되고, 말이 삶으로 녹아나고, 말마디와 글줄과 삶자락을 서로 떼어놓을 수 없도록 살아가기 때문에 꿈 하나가 됩니다.


.. “빨리 좀 몰아. 기숙사에 혼자 사는 친구들 불러다 저녁 먹자!” “생선은 절여 두고 먹을 거 아냐?” 호세가 물었다. “처음이니까 손님을 초대해 한턱 내자. 그 사람들 평소에 잘 못 먹잖아.” 호세는 무척 즐거워했다. 우리는 돌아가는 길에 맥주 한 상자와 포도주 여섯 병을 사서 손님을 초대했다 … 여러 대의 자동차가 해안선을 따라 신나게 질주했다. 밤에는 야영을 하며 (물)고기를 구워 먹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끝도 없이 나눴다. 이렇게 노는데 어찌 즐겁지 않을 수가! 돈을 모으려던 다짐은 알게 모르게 사라져 버렸다 ..  (140쪽)


 (2) 앎 쪼가리와 사람 사는 길


 어제와 그제 밥을 태웠습니다. 이제껏 밥하기를 하며 밥을 태운 일이 없었는데, 밥을 태웠습니다. 밥을 하건 찌개를 끓이건 늘 옆에서 책을 펼쳐들면서 했으니 태울 일이란 없었는데, 어제와 그제는 방에서 언몸을 녹이면서 글쓰기를 하다가 밥을 태웠습니다. 그러나 탄밥은 탄밥대로 맛이 있었고, 까맣게 눌러붙지는 않았으니 가슴을 쓸어내립니다. 다만, 어쩌다가 밥을 태울 만큼 마음을 놓고 말았나 싶어 속이 쓰립니다. 내가 이렇게 내 몸 하나 제대로 붙잡지 못하고 사나 싶어 허전합니다.


.. 하루는 이웃집 꼬맹이 라푸가 문을 두드렸다. 문을 열어 보니 집채만 한 낙타 시체가 문 앞에 놓여 있었고, 바닥은 시뻘건 피로 흥건했다. 나는 기겁을 했다. “엄마가 이 낙타를 아줌마네 냉장고에 좀 넣어 두래요.” 나는 고개를 돌려 조그만 냉장고를 바라보고는 한숨을 푹 쉬었다. 그리고 라푸 앞에 쪼그리고 앉아 말했다. “라푸, 엄마한테 너희 집 큰 방을 나한테 반짇고기로 쓰라고 주면, 이 낙타를 우리 냉장고에 넣어 준다고 해라.” 라푸는 곧바로 물었다. “아줌마 바늘이 어디 있는데요?” 당연히 낙타는 우리 냉장고에 들어가지 않았다. 그러나 라푸 엄마는 거의 한 달 동안 굳은 표정이었다. 그녀는 나에게 단지 이 말 한 마디만 했다. “내 부탁을 거절하다니, 당신은 내 자존심을 건드렸어요.” ..  (122쪽)


 어제 우리 집에 온 《함께 웃는 날》이라는 잡지 3호를 보니, 장애 있는 아이를 둔 어느 어머님이 이런 말씀을 합니다. “만약 아이한테 장애가 없었으면 난 아주 극성스러운 엄마가 되었을 거다. 요즘 엄마들처럼 아이한테 마구 욕심을 부리며 괴로워하고 아이도 괴롭히지 않았을까. 다른 엄마들이 나보고 성격 좋다는 말 많이 한다. 그게 다 아이 덕분이다. 내가 겸손해졌다.(9쪽)”

 저도 느끼고 옆지기도 느끼지만, ‘남자’라고 하는 사람은, ‘아버지’라고 하는 사람은, ‘아이를 낳을 수 없기 때문에 삶이 얼마나 딱한지’ 모릅니다. 아이를 낳을 수 없어서 못 느끼고 못 깨닫고 못 배우는 대목이 얼마나 많고 큰지 모릅니다. 세상 모든 일을 몸소 겪거나 부대껴야만 알지는 않아요. 그러나 말입지요, 몸소 겪거나 부대끼지 않을 뿐 아니라 눈길 한 번 두지 못하게 되는 매무새로 굳어져 가기 때문에 말썽입니다.

 아이를 낳아 보지 못하고 길러 보지 못하니, 아이낳기와 아이기르기를 대수롭지 않게 여겨 버릇합니다. 어린이를 어린이 그대로 바라보지 못합니다. 여자를 여자 그대로 바라보지 못합니다. 나라밖 사람들, 이 가운데 이주노동자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못합니다. 몸 한쪽을 마음대로 쓰지 못하는 사람들, 그러니까 장애인을 장애인 그대로 껴안지 못합니다. 마음을 다친 사람들을 꾸밈없이 부둥켜안지 못할 뿐더러, 힘이 여린 사람과 돈이 모자란 사람과 이름이 없는 사람을 따뜻하게 감싸안지 못하고 맙니다.


.. 여자들은 모두 작은 돌멩이를 물에 적셔 몸을 문질렀다. 한 번 문지를 때마다 시커먼 때가 주룩주룩 밀렸다. 그들은 비누를 사용하지 않았고 물도 많이 쓰지 않았다. 온몸의 때를 모조리 벗겨 내면 비로소 물을 끼얹었다. “4년 만이에요. 4년 동안 목욕을 못했어요. 난 샤이마에 살아요. 아주아주 먼 사막에 있는…….” … “당신은 왜 안 씻어요? 돌을 빌려 줄까요?” 그녀는 상냥한 표정으로 내게 돌을 건네주었다. “전 때가 없어요. 집에서 씻었거든요.” “때도 없는데 뭐 하러 왔어요! 목욕은 나처럼 3∼4년에 한 번씩 하는 거라고요.” ..  (92∼93쪽)


 우리 아버지를 보면서, 또 옆지기 아버지를 보면서, 또 동네뿐 아니라 서울이고 어디에서고 부대끼는 숱한 ‘남자’들을 보면서, 이이들이 얼마나 스스로 어리석은 줄도 모르고 이처럼 막나갈까 싶어 안쓰럽습니다. 지식으로만 알 때하고 몸으로도 알 때가 사뭇 다른데, 지식으로 좀 겉핥기를 해 보았다고 우쭐대는 사람이 많아서 놀랍니다. 겉핥기가 마치 모든 모습을 다 깨우친 일이라도 되는 듯 거들먹거리는 사람이 많은 모습을 보며 더 크게 놀랍니다.

 어쩔 수 없을까? 싶으면서도, 어쩔 수 없다고 손을 놓아도 되느냐? 싶으면서도, 다 제멋에 따라 사는데 무어라무어라 할 수 있나? 싶으면서도, 나도 너도 우리도 누구나 다 지 잘난 줄 아는데? 싶으면서도, 숨이 자꾸자꾸 막힙니다. 가슴이 먹먹하고 눈앞이 흐립니다.

 얼마 앞서 《논 생물도감》이라는 책이 새로 나왔습니다. ㅂ출판사에서 농사일 이야기를 다룬 그림책이 나온 적이 있지만,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논농사’ 이야기를 알아볼 수 있게끔 다룬 책은 아직 우리 나라에서 한 번도 안 나온 줄 압니다. 그나마 밭농사 이야기를 다룬 책은 더러 있습니다. 감자 농사나 고구마 농사나 텃밭 농사 이야기는 좀 있습니다. 그리고 ‘뜰(정원) 가꾸기’ 책은 제법 많기까지 합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늘 먹어야 한다고 하는 쌀을 어디에서 어떻게 가꾸는가 하는 이야기를 다룬 일반교양책은 한 권도 없다고 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농사꾼으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다루는 잡지는 없어도, ‘전원생활’이나 ‘전원주택 생활’ 이야기를 다루는 잡지는 있고, 꽤 팔리는 우리 형편하고 똑같습니다. 그래, 세상은 이렇게 돌아갑니다.

 늪을 다룬 책, 갯벌을 다룬 책, 산 이야기와 바다 이야기를 다루는 책은 많지만, 정작 논을 다룬 책은 참으로 드뭅니다. 논에서 농사짓는 이야기라든지, 논에 어떤 목숨붙이들이 살고 있는가를 다룬 책은 아예 눈씻고 찾아볼 수 없습니다.


.. 그리하여 우리는 현지 법원으로 가서 결혼 절차를 알아보았다. 법원 서기는 백발의 스페인 남자였다. “결혼하시게요? 아이고, 우리는 지금까지 결혼 절차는 한 번도 처리해 본 적이 없는데……. 당신들도 알다시피 여기 사하라위족은 자기네 풍속대로 결혼하니까 말이에요. 일단 법률책을 좀 찾아보고…….” 서기 선생은 책을 뒤적이며 말을 이었다. “결혼 공증이라…… 아, 여기 있네요. 이겁니다. 출생 증명, 독신 증명, 거주지 증명, 법원 공고 증명…… 여자 분 서류는 대만에서 가져와야 하고, 다시 포르투갈 주재 대만 공사관에서 번역 증명을 받아야 해요. 증명이 끝나면 포르투갈 주재 스페인 영사관에서 공증을 받고, 그 다음에 스페인 외교부에서 심사를 받고, 심사가 끝나면 여기서 우리가 보름 간 공고를 하고, 다시 두 사람의 결혼서류를 마드리드로 보내 당신들의 과거 호적지 법원에 공고하고…….” ..  (26쪽)


 잘 익은 감을 먹으면 굵고 딱딱한 감씨가 나옵니다. 이 감씨를 심으면 무엇이 싹틀까를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는지, 감 열매 얻는 감나무는 어떻게 길러야 하는지를 아는 이는 몇이나 있을지 궁금합니다. 감을 안 먹는 한국사람 드물고 감잎차 안 좋아하는 한국 지식인 드물 텐데, 감씨를 심어서 무엇이 나오는지를 아는 사람은, 감잎이 어찌 생겼고 감꽃은 어떤 빛깔 어떤 크기 어떤 맛인지 아는 지식인은 얼마나 될까 궁금합니다.

 최순애 님이 지은 어린이노래 〈오빠생각〉을 아기한테 불러 주곤 합니다. 우리 두 사람은 ‘잘못 알려진 노래말을 바르게 고쳐서’ 불러 줍니다. “뜸북 뜸북 뜸북새 논에서 울고, 뻐꾹 뻐꾹 뻐꾹새 숲에서 울제, 우리 오빠 말 타고 서울 가시면 비단댕기 사 가지고 오신답니다.” 이원수 님이 지은 어린이노래 〈고향생각〉도, 당신이 살아 계실 때 그리 고쳐졌으면 하고 바랐지만 사람들이 워낙 입에 굳어서 고치지 못하니 그대로 둘 수밖에 없다고 했던 아쉬움을 털어서 한 군데만 고쳐서 부릅니다. “우리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

 사람들 누구나 부르는 노래입니다만, 뜸북새를 본 젊은 사람은 이 나라에 없을 테고, 살구꽃 봉오리를 쓰다듬어 보면서 얼마나 곱고 향긋한가를 느끼고 나서 살구비누를 써 보는 사람도 이 나라에 없지 않으랴 싶습니다.

 저는 살구나무며 살구꽃은 보았어도 뜸북새는 못 보았습니다. 아마 앞으로도 이 나라에서는 뜸북새를 볼 수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논에서 사는 뜸북새인데, 논에 비료와 농약 안 치는 농사꾼이 얼마나 됩니꺼. 뜸북새가 살려면 농사꾼이 낫으로 벼를 베어야 하는데, 기계 안 쓰며 가을걷이를 하는 농사꾼이 얼마나 됩니꺼. 우리 먹는 쌀에 농약과 비료가 얼마나 듬뿍듬뿍 쳐지고 있는 줄 압니꺼.


.. “언젠가 우리는 이 황량한 벌판에서 죽고 말 것 같아.” 나는 한숨을 쉬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왜?” 차는 덜컹거리며 질주하고 있었다. “하루 종일 달리면서 사막을 못살게 굴었잖아. 그의 화석을 캐고, 그의 식물을 뽑고, 그의 짐승들을 쫓고, 사이다병이며 종이 상자며 온갖 쓰레기를 그의 몸 위에 버려대고, 또 차바퀴로 마구 짓밟고 다니잖아. 사막은 그러는 게 싫대. 그러니까 우리 목숨으로 배상하래. 이렇게. 우우우우…… 우우우우…….” ..  (68∼69쪽)


 모르는 일은 잘못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알면서 움직이지 않는 일이 잘못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한 가지를 붙이고 싶습니다. 허튼 앎 찌끄레기를 잔뜩 붙잡으면서 맑은 앎 알맹이를 하나도 붙잡을 마음이 없는 일 또한 잘못이면서 더없이 큰 잘못이라고.

 교육이 말썽인 줄 안다면, 자기 딸아들한테 입시교육을 시킬 수 없는 데다가 섣불리 대학교에 보낼 마음을 품을 수 없습니다. 교육이 말썽인 줄 알기에 사회와 정치도 말썽인 줄 알아야 하고, 사회와 정치가 말썽인 줄 알기에 경제가 말썽인 줄 알아야 하며, 경제가 말썽인 줄 알기에 문화와 예술도 말썽인 줄 알아야 합니다. 문화와 예술이 말썽인 줄 알기에 과학과 기술이 말썽인 줄 알아야 하고, 과학과 기술이 말썽인 줄 알기에 환경이 말썽인 줄 알아야 하며, 환경이 말썽인 줄 알기에 말과 글이 말썽인 줄 알아야 합니다. 말과 글이 말썽인 줄 안다면 다시 교육이 말썽인 줄 알아야 합니다. 모두 돌고 돕니다. 어느 한 가지에서 고이거나 그치거나 맴돌지 않습니다. 교육비평을 할 줄 안다면 영화비평을 할 줄 알아야 하고, 영화비평을 할 줄 안다면 문화비평을 할 줄 알아야 하며, 문화비평을 할 줄 안다면 정치비평 또한 할 줄 알아야 하고, 정치비평을 할 줄 안다면 우리 말과 글 비평까지 할 줄 알아야 하는 가운데, 우리 말과 글을 비평할 줄 안다면 교육비평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안다’는 사람은 무엇을 알고 있으려나요. 사하라에 사막이 있는 줄은 아나요. 그러면 사막이 왜 있는 줄은 아나요. 사막에는 누가 사는 줄 아나요. 사막에서 사는 사람은 어떤 삶을 꾸리는 줄 아나요. 사막에서 살 때에는 무엇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줄 아나요.

 한국땅에는 무엇이 있는 줄 아나요. 한국땅에서 살려면 무엇이 있어야 하나요. 한국땅에서 한국사람으로서 즐겁게 살자면 무슨 일을 하고 어떤 놀이를 하며 어떤 이웃과 동무삼으면서 살아야 하나요. 한국에서 꾸리는 삶이란 무엇인가요.


.. “축하! 축하!” “어? 천리안이 달렸나?” “감옥 옥상에 있는 죄수들이 말해 줬어.” 울타리 안에 갇힌 사람들이 울타리 밖의 사람들보다 반드시 나쁜 건 아니다. 정말 나쁜 사람은 마치 전설 속의 용처럼 마음대로 커졌다 작아졌다, 숨었다 나타났다 하기에 붙잡을 수도 없고 가둬 둘 수도 없을 것이다. 점심 준비를 하는 사이에 호세더러 감옥에 있는 죄수들에게 콜라 두 상자와 담배 두 보루를 가져다주고 오라고 했다. 그들은 마치 고적대처럼 나를 응원해 주었다. 나는 그들을 깔보지 않았다. 나나 그들이나 별반 다를 게 없었으니까 ..  (197쪽)





 (3) 사막을 사랑한 사람들 이야기


 1인 출판을 하는 ‘막내집게(인터넷 블로그 : blog.naver.com/makzip)’에서 첫 번째 책으로 《사하라 이야기》를 펴냈습니다. 저로서는 처음 읽는(어쩌면 예전에 읽고도 잊어버렸을 수 있지만) 대만문학 ‘싼마오’ 작품인데, 출판사 블로그에 적힌 글을 살피니, 1990년대에 여러 번, 그리고 2001년에 마지막으로 옮겨지곤 했던 책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앞서 나온 싼마오 책은 모두 판이 끊어진데다가 정식계약을 해서 나온 책은 따로 없었다고 합니다.

 어쩌면, 1인 출판 길을 걷게 된 펴낸이이자 옮긴이께서는, 얼결에 출판등록을 해서 갑작스레 이 책을 옮겨서 펴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동안 여러 차례 나온 적이 있음에도 굳이 이 책을 다시 펴내는 까닭, 아니 새로 우리 말로 옮기고 새 옷을 입혀서 펴내는 까닭이 있습니다. 펴낸이이면서 옮긴이로서는, 당신이 “좋아하는 책”을 즐겨읽으면서 사랑했습니다. 마음과 마음이 만났습니다. 그래서 기꺼이 옮겨냅니다. 당신 마음을 사로잡았던 좋은 책이었기에 앞으로도 오래오래 많은 이들한테 사랑받으면서 읽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새로 옮겨서 펴냅니다. 누구보다도 글쓴이 싼마오를 그리워하고 아끼기에 책을 낼 수 있고, 꿋꿋하게 출판사 문을 열고 있는 동안에는 다시는 《사하라 이야기》가 숨을 거두어 사라지는 일이 없을 테지요. 번역 글월도 ‘자기가 아끼는 작품’이기 때문에 더 땀을 들이고 마음을 쏟아서 알뜰히 여미어 내게 됩니다. 펴낸이와 옮긴이 두 가지 몫을 함께하고 있는 분은 “도대체 왜 싼마오가 호세에게 존댓말을 쓰는 건지? 중국어에는 존댓말도 없고, 둘은 오랜 친구 사이였는데.” 하고 이야기합니다.


.. “우리에겐 왜 가구가 꼭 있어야 할까? 왜 사하라 사람들처럼 평생 자리 하나만 깔고 살 수는 없는 걸까?” “우리는 그들이 아니니까.” “왜 우리는 그들의 생활방식을 받아들일 수 없지?” 나는 세 개의 판자를 껴안은 채 곰곰이 생각했다. “그러면 그들은 왜 돼지고기를 안 먹을까?” 호세가 웃으며 반문했다. “그건 종교적인 문제지, 생활방식의 문제는 아니잖아.” “그럼 당신은 왜 낙타도기를 안 먹어? 기독교 신자는 낙타를 먹으면 안 되나?” “내 종교에서 탁타는 바늘구멍에 밀어넣는 데나 써먹지 다른 데는 안 쓴다네.” “그러니까 우린 가구가 있어야만 생활이 비참하지 않아.” ..  (218∼219쪽)


 사막을 사랑한 싼마오이고, 이런 싼마오를 사랑한 투박한 스페인 사내 호세입니다. 두 사람은 서로한테 따습고 넉넉할 보금자리를 사막에 마련했습니다. 누구 보란 듯이 마련한 삶터가 아닌, 서로 즐기려고 마련한 삶터입니다. 싼마오가 남긴 글 《사하라 이야기》는 사람들한테 읽히려고 쓴 글이라 할 테지만, 남들한테 읽히기 앞서 싼마오와 호세 둘이 보낸 발자취가 고스란히 배어 있습니다. 그저 두 사람 삶자락을 적바림해 놓았다고, 꼭 일기를 쓰듯 남겨 놓았구나 싶습니다.

 ‘사막으로 오셔요. 사막은 참 좋답니다!’ 하고 외치는 책이었다면 곧바로 덮거나 집어치웠을 텐데, ‘나는 사막이 좋아. 그래서 사막에서 살지.’ 하고 조곤조곤 말문을 여는 책이기에 책상맡이나 잠자리에 얌전히 놓고 쉬엄쉬엄 읽었습니다. 제 손을 떠날 이 책은 곧 ‘사막과 고래를 좋아하는’ 우리 옆지기 손에 쥐어질 테고, 옆지기는 아기를 품에 안은 채 아기한테 또박또박 읽어 주면서 함께 가슴으로 받아들이리라 봅니다.


.. 처음으로 사하라를 가로지르며, 우리는 둘 다 사막이 만든 사랑의 늪에 빠져들고 말았다. 이제 꽃 한 송이 피지 않는 이 황야를 결코 떠날 수 없게 되었다 ..  (225쪽)


 어느새 날이 밝아 자판이 다 보이게 되는군요. 이제 곧 해가 나면 집이 조금이나마 따뜻해질까요. 새벽바람은 쌀쌀하니 보일러 살짝 돌리고 밀린 기저귀 빨래를 해야겠습니다. (4341.11.19.물.ㅎㄲㅅㄱ)

***
중국 현대문학에서 손꼽히는 싼마오는 1943년 중국 쓰촨 성 충칭에서 태어나 대만으로 옮겨서 살았습니다. 마음 넓고 넉넉한 부모와 함께 살다가 틀에 박힌 학교에서 버티지 못하고 그만두고 난 뒤 가정교육을 받았습니다. 스물네 살부터 세계 여러 나라를 떠돌아다녔고, 1973년 북아프리카 서사하라에서 스페인 사내 호세와 혼인하여 살아갑니다. 이곳에서 살던 이야기를 쓴 첫 작품이 《사하라 이야기》이고, 이 책에 쏟아진 사랑에 힘을 얻은 싼마오는 부지런히 글쓰기를 하게 됩니다. 그 뒤 《흐느끼는 낙타》와 《허수아비의 수기》와 《너에게 말 한 필을 보낸다》 들을 펴냈습니다. 그러다가 1979년 호세가 잠수 사고로 세상을 떠나자 싼마오는 대만으로 돌아옵니다. 문화대학에서 문학창작을 가르치며 글쓰기와 강연을 이어갔는데, 《곤곤홍진》을 마지막으로 1991년에 마흔여덟 나이로 세상을 떠납니다. 대만 황관출판사에서 모두 스물일곱 권에 이르는 전집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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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철 3


 볼일이 있어 옆지기와 아기까지 함께 전철을 타고 서울 외국어대 있는 데까지 나들이를 합니다. 퍽 먼길이라서 아기도 걱정이고 옆지기도 걱정입니다. 이러한 걱정은 용산역에서 내려 뒷간을 갈 때부터 조금씩 불거지고, 서울역부터 땅밑으로 파고드는 전철을 타고 달리는 내내 깊어집니다. 아기도 힘들고 옆지기도 힘겨워, 같이 나들이를 하자고 이끈 아빠는 참 바보였구나 하는 생각이 새록새록 듭니다.

 가는 길 오는 길 모두 길기 때문에, 책을 세 권 가방에 챙겼지만, 머나먼 길을 오가는 동안 책은 겨우 두 번 펼칠 뿐입니다. 그나마 돌아오는 길에 아기며 옆지기며 고단한 잠에 깊이 빠져들었기에, 두 사람 앞에 무릎 꿇고 앉아서 책을 펼쳤습니다.

 갓난쟁이하고 나들이를 가야 할 때에는 책 펼칠 생각은 꿈에도 하지 말아야 하는지, 아니면 두 사람을 돌보면서 둘 모두 새근새근 잠들고 나서야 비로소 애 아빠는 잠을 좇으면서 그 작은 틈을 쪼개어 책을 펼쳐야 하는지. (4341.11.12.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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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철 2


 차소리 시끄럽지, 손전화 소리 귀 따갑지, 사람들 수다 쟁쟁거리지, 우리 스스로 부처님처럼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면 책읽기는 어렵습니다. 자리에 앉기 쉽지 않으나 자리에 앉아도 옆에 앉은 이들이 밀거나 다리 벌리거나 신문 펼치면 고달픕니다. 서서 책을 읽는 동안, 밀고 치는 사람들한테 부대낄 때에도 힘이 듭니다. 잠깐 눈을 쉬고자 고개를 들면 수많은 광고판으로 눈이 아프고, 고개를 숙여 창밖을 내다보면 이번이 어느 역에 서는지조차 알기 어렵습니다. 역마다 역이름 적어 놓은 자리가 너무 작고 글씨도 너무 작습니다.

 덜컹거림은 버스와 견주면 많이 적다고 할 전철일 텐데, 아예 없지 않을 뿐더러 썩 밝지 않은데다가 깜빡거리는 다 된 형광등이 제법 많고, 땅밑으로 들어가면 형광등 불빛은 흐려서 눈이 아픕니다. 더군다나 공기는 얼마나 나쁜지요.

 그렇지만, 바쁜 도시사람들로서는 일터에서 책을 못 읽고 집에 가도 책을 못 펼칩니다. 일을 마치고 책을 구경할 책방 나들이를 해 볼 엄두는 얼마나 낼 수 있을는지요. 그나마 저녁에 술 한잔 걸친 뒤에라도 전철에 몸을 싣고서 겨우겨우 책 한 쪽이나 펼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고달파도 벗이요 힘이 들어도 동무입니다.

 그렇기는 한데, 사람들 북적이고 담배 냄새며 화장품 냄새며 갖가지 냄새가 범벅이 된 타는곳에 멀뚱멀뚱 다리 아프도록 선 채로 지하철이나 전철을 기다리며 책장을 펼치고 있으면 다른 세상에 와 있는 느낌입니다. 온갖 힘겨움과 고달픔을 잊고 책나라로 뛰어듭니다. 그러다가 사람물결에 휩쓸려 전철칸으로 빨려들어가서 손잡이 하나 못 잡고 허우적거리노라면 애써 펼치고 있던 책은 구겨지고 몸도 구겨지고 마음도 구겨집니다. 그나마 나 혼자 구겨지지 않고 전철에 탄 모두가 구겨지니 마음을 달랠 수 있으려나요. 뭐, 조금도 마음을 달랠 만한 일은 아닙니다만.

 언제나 머나먼 전철길을 달리기 때문에(인천으로 돌아올 때는 끝에서 두 번째), 오징어가 된 채로 웬만큼 시간을 보내고 나면 숨통이 트이고 책을 펼칠 자리도 넉넉해집니다. 그러나 이때부터는 몸 고단함이 크기 때문에 책이고 뭐고 집어치우고 어서 눈이나 감고 잠들어 버리고 싶은데, 감기는 눈을 부릅뜨거나 손가락으로 꾹꾹 눌러서 새힘을 북돋우면서 글줄 하나라도 읽으려고 발버둥을 칩니다.

 책 하나에 담긴 빛접은 줄거리를 새기자고, 달콤한 알맹이를 맛보자고, 시원한 이야기에 젖어들자고 다짐하고 또 다짐합니다. 십 분, 또는 이십 분, 이렇게 눈 부릅뜬 채로 책에 묻히고 있으면 어느새 없었던 힘이 차츰 솟습니다. 구부정했던 어깨가 펴집니다. 후들거리던 다리에도 힘이 오르고, 뒤숭숭하고 띵하던 머리도 살살 깨어납니다. 이윽고 마지막 역에 닿아 마지막 사람물결과 함께 전철역을 빠져나오면, 개미새끼 하나 없이 어둡고 고즈넉한 골목길. 홀로 골목길을 거닐며 집으로 돌아갑니다.

 옆지기나 아기하고는 함께 나들이를 할 수 없던 날, 혼자서 볼일을 마치고 돌아가는 아빠는, 옆지기한테든 아기한테든 무어 선물할 만한 것 하나 손에 들고 있지 못합니다. 그저, 다시 찾은 맑은 마음과 몸뚱아리 하나로 집 문을 따고 들어가서, 하루 내 아기와 씨름한 옆지기를 달래고, 칭얼거림으로 엄마를 들볶은 아기 기저귀를 갈고 빨고 널고 말리고 개고 씻기면서 하루를 마감합니다. (4341.9.20.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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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도 글쓰기


 아버지와 오랜 술동무인 시인 아저씨가 아버지한테 했다는 소리. “글을 쓰려면 그렇게 하지 마라!” 글쓰기란, 배부른 가운데 할 수 없고, 어깨에 힘주면서 할 수 없으며, 머리속에 든 지식을 자랑하면서 할 수 없기 때문에. 아들 된 사람으로서 아버지를 어찌 나무랄 수 있겠느냐만, 아버지가 글쓰기에 마지막 삶을 바치겠다고 다짐을 하셨다면, 나 또한 “아버지는 글을 쓸 생각이라면 이렇게 하시면 안 되지요!” 하고 말씀드리고 싶다. 글쓰기란 자기 삶을 낯모르는 사람들 누구한테나 숨김없이 내보이는 일이기 때문에. 글쓰기란 제 모든 피와 살을 남김없이 발라내고 도려내는 일이기 때문에. 글쓰기란 밥을 하듯 빨래를 하듯 걸레질을 하듯 품과 땀과 시간이 많이 들지만, 일값을 알아주는 사람 없고 일삯을 쳐주는 사람 또한 없기 때문에. 글쓰기란 이 나라 농사꾼과 공장 노동자처럼 일한 대가인 품삯은커녕 밥푼이나 얻어먹을 만큼도 돈을 벌면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아버지와 오랜 술동무인 시인 아저씨가 나한테 들려주는 이야기. “앞으로도 그러고 살 거냐?” 글써서 먹고사는 일이 얼마나 고된 줄을 당신 마흔 해 넘는 ‘글쓰기 삶’이 찬찬히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나처럼 된다.”는 당신 말씀처럼, 아직 어려만 보이는 조카 같은 아이가 걱정스럽기 때문에. 나야 글줄 붙잡는다고 깝죽을 떨기는 할 터이나, 옆지기와 딸아이 앞날은 어둡고 배고프고 힘겨울 수 있기 때문에. 나야 글쓰며 나누는 보람을 얻을지 모르지만, 애써 쓴 글에 서린 땀방울을 알알이 느끼거나 받아먹어 줄 사람은 이 나라에 넉넉하지 않기 때문에. 나야 내 길을 꿋꿋이 걸어간다고 할 테지만, 돈이 안 되는 글은 거들떠보지 않을 뿐더러, 시가 시 아닌 대접을 받듯, 우리 말 이야기나 헌책방 이야기 따위는 한물도 아닌 두물 세물 네물 닷물이 간 이야기인데다가, 세상 흐름과 거스르게 된다고들 여기고 있기 때문에.

 아버지와 오랜 술동무인 시인 아저씨하고 처음으로 막걸리잔을 부딪히고 나서 집으로 돌아와서 뻗어 버리고 새벽 세 시 오십사 분에 일어나서 차가운 마룻바닥에 놓은 셈틀 앞에 앉아서 아침 여덟 시 오십일 분까지 쉼없이 글을 쓴다. 어제 하루 내 못 쓴 글을 부지런히 쓰고, 오늘 하루 쓰고자 마음먹고 있는 글을 내 딴에는 야무지게 붙잡으며 쓴다.

 그러나 글만 쓸 수 없어서, 언손을 비비다가는 옆지기와 아기 자는 방에 불을 넣고 나서, 뒷간에서 따순 물이 나오니 기저귀 담근 빨래통에 물을 받아서 ‘손 녹이기 빨래’를 한다. 겨울이 다가오는 쌀쌀한 날씨에, 방에 불을 넣고 나면 보일러가 물도 덥혀 놓고 있기 때문에 이 물을 쓰면 빨래가 한결 손쉽고, 글을 쓰면서 딱딱하고 차갑게 굳어 가는 손가락에 보드라운 기운을 입힐 수 있다.

 아직도 펄펄 날뛰는 모기 몇 마리를 잡다가는, 이제 나도 더 버틸 수 없어서 잠이 들어야겠는데, 잠을 잔다 해도 얼마나 자는 셈일까. 자기 앞서 콩과 쌀과 보리를 씻어서 불려 놓아야겠다. (4341.11.16.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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