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들이 빨래


 홀로 나들이를 할 때에는 따로 옷가지를 챙겨 가지 않아도 된다. 하루밤 묵는 잠집에서 빨래를 하고 널어 놓으면 아침에 다 마르기 때문. 그러나 홀로 나들이를 하지 않는 요즈음은 아기 기저귀와 옷가지만으로도 가방이 하나 가득 차고도 모자라 다른 손가방을 챙겨야 한다. 그리고 이 옷가지와 기저귀를 빨아야 하기에 저녁나절 일찌감치 잠집에 들어야 하고, 잠집에 들어서도 쉼없이 빨래를 해대야 한다. 애써 나들이를 나왔지만 돌아다니며 둘러볼 겨를이란 거의 나지 않으며, 돌아다니는 사이 하나둘 늘어나고 쌓이는 빨래를 헤아리면서 걱정이 함께 늘고 근심이 소록소록 겹친다. 이윽고 나들이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가운데 일찌감치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그동안 엉성하게 했던 빨래를 다시 제대로 하느라, 그리고 여러 사람 옷가지까지 빨래감이 곱배기가 되느라, 다른 일에는 조금도 마음을 쏟을 수 없다. 더군다나 어제오늘은 날까지 궂어서 비까지 내리고 마니, 제기랄, 마당에는 빨래를 내다 널지 못한다. 궁시렁궁시렁 투덜거리며 겨우 집안에 이은 빨래줄에 널고 옷걸이에 걸지만, 하루가 다 가도록 빨래는 안 마른다. 집에서도 빨래가 밀린다. 하는 수 없이 다리미를 써서 억지로 물기를 빼낸다. (4341.12.4.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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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저귀 빨래


 백일을 맞이하는 기저귀 빨래는 삼천 장입니다. 어느덧 백일을 넘겼으니 삼천 몇 백 장에 이릅니다. 머잖아 돌을 맞이할 텐데, 돌 때까지는 만 장이 되겠군요. 아기가 언제쯤 똥오줌을 가리게 될는지 모릅니다만, 앞으로 몇 만 장 기저귀를 빨아야 아기는 제 아비 어미와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이 땅에 튼튼히 두 발을 디디는 어린이가 될는지요. (4341.12.10.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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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빨래하는 삶


 글쓰는 짬을 빼앗기고 싶지 않다면서 혼인하지 않고 살아가는 분들이 있습니다. 글쓰고 책읽는 짬을 잃고 싶지 않다면서 아기를 낳지 않고 지내는 분들이 있습니다. 저 또한 글쓰는 짬을 빼앗기고 싶지 않고, 책읽는 짬을 잃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나 혼자 살게 되든 여럿이 모여서 살게 되든 해야 할 일이 있기 마련입니다. 밥을 먹어야 하고 옷을 입어야 하며 집에서 자거나 쉬어야 합니다. 손수 농사를 지어 먹을거리를 얻지 못하더라도, 저잣거리에 나가서 먹을거리를 장만해야 하고, 먹을거리를 장만해 온 다음 집에서 끓이든 날로 먹든 볶든 지지든 해야 해요. 그런 다음에는 설거지를 하고 부엌을 치워야 합니다. 손수 실을 잣거나 솜을 틀지 못하더라도, 제 옷은 제가 장만하고 빨고 간수해야 합니다. 이불과 담요 또한 손수 빨고 널고 말리고 깔고 개야 합니다. 집을 꾸미고 먼지를 치우거나 털고 물건을 간수하고 하는 온갖 일들도 해야 합니다.

 혼자서 살다가 옆지기를 만나 함께 살면서, 빨랫감이 여러 곱 늘었습니다. 저 혼자 살 때에는 꽤 여러 날 동안 그대로 입고 다니다가 빨래를 하곤 했지만, 옆지기는 다른 여느 사람보다 덜 갈아입는다고 해도 저와 견주어 자주 갈아입는 셈이었고, 추위를 많이 타니 입는 옷도 훨씬 많습니다. 그러다가 아기를 낳으니 아기 기저귀 빨래와 저고리며 바지 빨래만 해도 한가득입니다. 날마다 서른 장 남짓 빨아야 하는 기저귀는, 말리는 시간을 헤아리면 오줌기저귀나 똥기저귀가 나올 때마다 틈틈이 빨아야 하니, 아기 기저귀를 빠는 데에 드는 시간만 헤아려도 날마다 여러 시간입니다. 겨울이 되어 빨래가 잘 안 마르니 축축한 빨래를 하나하나 다림질하는데, 빨래하는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들이게 됩니다. 여기에다가 밥하고 뭐하고 다른 집살림을 하고 보면, 막상 책 한 권 손에 들 겨를이 거의 없고, 책상맡에 앉아서 무언가 끄적거리고 싶어도 머리가 하얗습니다. 써야겠다는 글은 이렁저렁 떠오르지만 글머리가 풀리지 않습니다. 등짝을 바닥에 붙이고 눈도 붙이고플 뿐입니다. (4341.12.10.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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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엄마 이야기 사계절 그림책
신혜원 지음 / 사계절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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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랑 할머니랑 증조할머니가 만나서
 [그림책이 좋다 54] 신혜원, 《세 엄마 이야기》



- 책이름 : 세 엄마 이야기
- 글ㆍ그림 : 신혜원
- 펴낸곳 : 사계절 (2008.6.27.)
- 책값 : 9800원



 (1) 집살림은 하늘이 내린 고마운 일


 그제 저녁부터 갑자기 뱃속이 얹히고 몸살 기운이 돌아서 그저 이부자리에 누워 꼼짝을 못합니다. 태어나서 이렇게 아팠던 적이 있나 싶고, 잠바를 입고 누워서 이불을 석 장 덮었는데에도 몸이 덜덜 떨립니다. 얹힘과 추위는 가시지 않고 몸은 처지면서 눈물이 저절로 샘솟습니다. 이렇게까지 아플 수 있나 싶은데, 꼬박 스무 시간 남짓 누워서 눈물 흘리고 갤갤대니 조금은 나아집니다. 히유, 좀 살아나는가 싶어서 밀린 기저귀 빨래를 합니다. 그러나 기저귀 몇 장 낑낑대며 빠니 몸은 다시 무거워져서 몇 시간 동안 도로 드러눕습니다. 그렇게 드러눕고 일어나 아까 못 다한 기저귀 빨래를 또 하고, 다시 드러눕고.

 몸이 아파도 집안일을 미뤄 둘 수 없습니다. 아기한테 댈 천기저귀가 떨어지면 안 되니 손가락 하나 꼼짝하지 못할 만큼 아프면서도 빨래 걱정이 그치지 않습니다.

 문득, 제 어릴 적 우리 어머니는 어떠했을까 궁금합니다. 형과 저를 키우며 살림을 하는 어머니가 아플 때는 없었는지. 그무렵 몸이 아파서 드러누운 어머니를 누가 보살피거나 집안일을 치렀을는지.


.. 짐을 다 풀기도 전에 엄마는 고민에 빠졌어요. “도대체 이 넓은 밭을 어떻게 하지? 뭐든 심어야 할 텐데…….” … 콩 열다섯 알을 심고 엄마는 땀을 뻘뻘 흘리며 말했어요. “이 많은 콩을 언제 다 심는담? 혼자서는 도저히 못하겠어!” 그리고 소리쳤어요. “엄마! 도와줘!” ..  (3, 8∼9쪽)


 옆지기도 아프고 지아비도 아프니 아기는 여느 때와 달리 젖을 제대로 안 먹고 잠을 제대로 안 들며 자지러지게 울기만 합니다. 아빠가 조금 살아나서 아기 손을 잡아 주고 볼을 부벼 주고 배를 쓸어 주고 하면 아기는 울음이 조금 잦아듭니다. 아기는 지 엄마 아빠가 몸이 아픈 줄을 느끼고 있겠지요. 그래서, 이처럼 자지러지게 울면서 함께 아파해 주려고 하지 않느냐 싶곤 합니다.

 곰곰이 돌아보니, 아기가 태어나서 백일을 넘도록 하루도 제대로 쉴 틈이 없습니다. 빨래며 밥하기며 치우기며 숱한 일을 어떻게 치러냈는지 잘 떠오르지 않습니다. 잠을 잠대로 잔 날은 없고, 잠깐 동안 볼일을 보러 혼자 나들이를 나가야 할 때면 집 걱정이 가득합니다. 볼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밀린 일감이 넘칩니다.

 어쩌면 백일을 넘어 넉 달이 조금 안 되는 동안 이렇게 몸이 아프지 않고 버티어 낸 일이 대단하지 않느냐 싶습니다. 백일이란 아기가 그때까지 튼튼히 자라 준 일을 기리는 자리이기도 하지만, 백일까지 힘쓰고 애쓴 어버이 두 사람을 기리는 자리이기도 하다고 느낍니다. 우리가 태어난 날을 기리는 ‘난날잔치’도 우리 자신을 기리기보다는 우리를 낳아 기른 어버이를 기리는 날이 아니랴 싶습니다.


.. 다섯 줄을 만들고 얼굴이 빨개진 엄마의 엄마가 말했어요. “이러다간 한 달이 가도 밭을 못 만들겠어!” 엄마의 엄마는 소리쳤어요. “엄마! 도와줘!” ..  (12∼13쪽)


 물 한 모금 빨지 못한 채 하루하고 이틀을 보낸 아침, 비로소 몸이 제자리를 찾는가 싶어 효소 탄 물을 마시고 밥술을 뜹니다. 어젯밤에 우격다짐으로 해 놓았으나 아침이 되도록 마르지 않은 기저귀 빨래 몇 점을 옥상마당에 널고, 아침에 새로 한 빨래 몇 점 또한 옥상마당에 함께 널어 놓습니다.

 우리 어머님은 형과 저를 천기저귀만을 써서 길렀다고 하십니다. 그러나 그때 아버지가 천기저귀 빨래를 거들어 주었다는 이야기는 들려주지 않습니다. ‘그때가 언젠데 생각이 나냐?’고 하실 뿐입니다. 벌써 서른 몇 해가 훌쩍 지나간 일이니 떠오르지 않으실 테지만, 아버지가 새벽바람으로 시외버스를 타고 일터로 나가 밤바람으로 집으로 돌아왔음을 떠올린다면, 집안일이며 아기 돌보기는 오로지 어머니 몫이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아버지는 집안일이며 아기 돌보기를 살갗으로 느끼지 못한 채 살아오셨고, 어머니는 집안일이며 아기 돌보기며, 그리고 여러 가지 부업까지 하여 집살림을 보태기까지 하는 가운데 당신 젊음과 삶을 모두 바치셨으리라 봅니다.


.. 콩밭에선 콩 다발들이 가을 햇볕에 잘 마르고 있어요. 엄마는 다시 행복해졌어요. 하지만 엄마의 엄마는 딸네 밭에서 콩이 잘 마르고 있는지 걱정이 되어 잠을 잘 수가 없었어요. 엄마의 엄마의 엄마는 다 마른 콩을 손녀딸이 잘 털 수 있을까 걱정이 되어 잠을 잘 수가 없었어요 ..  (30∼31쪽)


 동네에서, 또 동네 바깥에서, 나이 쉰 줄을 넘긴 아저씨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눌 때가 곧잘 있습니다. 이분들은 우리 두 사람이 아기를 늘 안고 어르며 젖 먹이고 기저귀 갈고 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요새 사람 같지 않다’고 말씀하시는데, 이런 말씀 뒤에 으레, ‘나는 애들이 어릴 때 많이 안아 주지 못한 것 같아 아쉽다’는 이야기를 덧붙입니다.

 하기는, 한국과 같은 가부장 사회에서 아버지 된 사람이, 남편 된 사람이, ‘집구석에 처박혀’ 아기 돌보기를 하거나 집살림을 꾸린다는 ‘하찮은’ 일에 몸을 바치거나 시간을 들이려고 할 수 있겠습니까. ‘돈 버는 일이 아니’라서 ‘값어치없는 일’로 여겨지는 아기 돌보기요 집살림 꾸리기입니다. 적잖은 젊은 아빠들은 ‘애가 똥을 누면 더럽다며 멀리 내뺀다’고 합니다. 다른 아기도 아닌 바로 지가 낳은 아기이면서, 지 아기 똥을 더럽다고 내빼면, 그 아기 똥은 누가 치울는지요. 지저분하고 더러우니 ‘하찮은 일을 도맡으며 값어치없는 일에 온삶을 바쳐야 할 여자’들만 치워야 할까요. 그리고 그 하찮고 값어치없는 일이기에, 당신들 아버지와 어머니가 늙어서 몸져눕게 된다면, 당신들 아버지와 어머니가 똥오줌을 못 가리고 이불이고 옷이고 오줌을 싸고 똥을 지려도 ‘에그 더러워!’ 하고는 손사래를 치게 될까요. 당신을 낳은 아버지 어머니를 당신 손이 아닌 ‘돈으로 사서 쓰는 일꾼’한테 떠넘기고 탱자탱자 ‘놀러’ 다니고, ‘돈만 벌러’ 바깥으로 나돌게 될까요.


.. 엄마는 맛있는 된장 꿈을 꾸었어요. 엄마의 엄마는 맛있는 된장 꿈을 꾸며 코를 골았어요. 엄마의 엄마의 엄마는 꿈도 꾸지 않고 맛있게 잠들었어요. 내년에도 엄마는 콩을 심을까요? ..  (38쪽)


 책을 좋아하고 글을 사랑하면서 살아가기로 마음먹은 다음, 책과 글로 한삶을 마무리한 사람들 이야기를 부지런히 찾아서 읽고 있습니다. 수백 권에 이르는 책을 찬찬히 살피면서 여러모로 비슷한 대목을 많이 느낍니다. 모두들 아기를 안 낳고 살거나 혼인을 안 하고 삽니다. 혼인도 하고 아기를 낳았어도 집살림은 자기가 안 하고 다른 사람 몫입니다. 소설쓰는 공선옥 님처럼 집살림과 아기 돌보기를 껴안는 글쟁이나 책쟁이는 몹시 드뭅니다. 아니, 거의 없다고 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나라안 사람도 그렇고 나라밖 사람도 그렇습니다.

 틀림없이 우리들한테 두루 사랑받는다는 글을 쓰고 책을 내는 분들인데, 정작 이분들 삶에서 ‘살림’이 보이지 않아요. 틀림없이 이분들도 아버지와 어머니가 있어서 고운 목숨 하나 받아서 이 땅에서 사랑과 믿음을 넉넉히 누리면서 컸을 텐데, 그 어머니 사랑과 아버지 믿음이 보이지 않습니다.

 땅에 발붙이는 느낌이 보이지 않고, 땅에 깃드는 얼이 나타나지 않으며, 땅에 배인 넋이 드러나지 않습니다. 땅과 함께하는 삶이 느껴지지 않고, 땅과 어깨동무하는 매무새를 찾을 수 없으며, 땅하고 어울리는 이야기를 끄집어내지 못합니다.

 알쏭달쏭한 일입니다. 참 아리송한 노릇입니다. 다만 한 가지, 제 깜냥으로 헤아리기로는, 나라 안팎 숱한 훌륭한 글쟁이와 책쟁이 분들께서는, 한 사람이 한 목숨 얻어서 한 사랑으로 살아가는 길에서 그지없는 아름다움이요 거룩함이요 즐거움이 될 한 가지를 놓치거나 버리거나 잃거나 잊거나 멀리하거나 모르지 않느냐 싶어요. 아이가 다 크고 난 다음 ‘어릴 때 좀더 많이 안아 주지 못해 아쉽다’고 하는 늙수그레한 아저씨들마냥, ‘어릴 때 당신 아기 똥기저귀 갈아 주는 고단함이 기쁨이었음’을 못 느끼고 만, 하늘이 내려준 고마운 살림살이였음을 못 부대끼고 만, 우리 나라 남자들(요새는 여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만), 또 글쟁이와 책쟁이 들이 아닌가 싶습니다.


 (2) 즐거운 그림책 《세 엄마 이야기》


 그림책 《세 엄마 이야기》를 읽고 봅니다. 먼저 제가 책방 나들이를 하면서 즐겁게 읽고 봅니다. 다음으로 이 책을 집어들고 책값을 셈해 집까지 들고 와서 옆지기한테 보여줍니다. 그런 뒤 옆지기는 아기를 품에 안고 글을 읽어 주면서 그림을 보여줍니다. 아직 갓난쟁이인 우리 아기가 이 그림책을 볼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만, 무늬나 빛깔은 느끼고 있지 않느냐 싶어요. 뭐, 아무것도 못 느껴도 괜찮습니다. 아기로서는 지 엄마가 자기를 품에 안고 있는 따스함이 좋을 테고, 지 엄마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이야기를 들려주는 싱그러움이 좋을 테니까요.

 모두 네 여자(주인공인 어린아이, 어린아이네 엄마, 어린아이네 엄마한테 엄마, 어린아이네 엄마한테 엄마인 분한테 엄마)가 나오는 《세 엄마 이야기》는 네 세대에 걸쳐서 저마다 어떤 삶을 꾸려왔고 무슨 삶을 소담스레 여기면서 지냈는가를 곱씹게 해 줍니다. 엄마네 딸은 엄마가 꾸리는 삶을 보면서도 배우고, 엄마가 딸아이한테 가르치는 삶도 배웁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힘들 때면 언제나 엄마가 달려가마’ 하는 삶을 배워요.

 가만히 보면, 딸네 엄마뿐 아니라 아들네 엄마도 당신 아이한테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득달같이 달려옵니다. 부리나케 찾아옵니다. 아무리 홀로 일어서서 살아가야 하는 삶이라 하더라도, 어머니로서 당신 사랑은 팔짱 끼는 삶이 아니라, 곁에서 ‘잘하고 못함을 가리지 않고 너그러이 굽어살피면서 한손 거드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잘하고 못하고는 큰일이 아니고, 함께할 수 있음이 큰일이요 기쁨이기 때문입니다. 당신 딸아이가 엄마가 되어도 아직 모자라거나 어수룩한 데가 있기 마련이고, 이 모자람과 어수룩함은 ‘무엇이 모자라고 무엇이 어수룩한 줄 깨달은 당신’이 돌봐 주면서 따뜻하게 가르쳐 주면서 찬찬히 물려줄 대목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돈으로 맺어지는 사이가 아니라 사랑으로 맺어지는 사이입니다. 지식으로 맺어지는 사이가 아니라 믿음으로 맺어지는 사이입니다. 다 함께 땀흘리니 흐뭇하고, 다 함께 누리니 뿌듯합니다. 다 함께 모여 수다를 떠니 신나고, 다 함께 모여 밥술을 뜨니 세상 부러울 일이 없습니다.

 그림책 《세 여자 이야기》는 도시를 떠나 시골로 삶터를 옮긴 젊은 엄마가 밭에 콩을 심어 거두는 이야기 하나로 살뜰하게 꾸며졌습니다. 비록 젊은 엄마는 딸아이를 낳아 기르는 ‘엄마’이지만, 낳기만 낳았을 뿐 엄마 노릇은 젬병인 분이시기에 뾰족구두를 신고 밭일을 합니다. 젊은 엄마네 엄마는 집일을 많이 하셨던 분이라 젊은 엄마와 달리 운동신을 신고 밭일을 합니다. 젊은 엄마네 엄마한테 엄마인 분은 농사꾼이라서 고무신을 신고 밭일을 합니다. 일을 마치고 난 다음에도, 젊은 엄마는 얌전을 떨며 손과 낯을 씻으나, 젊은 엄마네 엄마는 손발을 씻고, 젊은 엄마네 엄마한테 엄마인 분은 농사 연장을 말끔히 씻습니다.

 다 다른 삶이요 다 다른 넋입니다. 그러나 이 다 다른 삶과 넋이 한 자리에 모입니다. 서로 허물이 없습니다. 오붓합니다. 이 허물없음과 오붓함, 여기에다가 살뜰하고 웃음나는 이야기 한 자락이 그림책 《세 엄마 이야기》가 우리한테 베푸는 고마운 선물보따리입니다.


 (3) 그러나 아쉬운 대목


 즐거운 선물보따리인 《세 엄마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여러 대목에서 아쉽습니다. 이야기 얼거리를 살피면, 이 그림책이 나오게 된 큰 밑그림은 ‘철없’기는 했어도 ‘인절미를 먹고 싶은 젊은 엄마가 콩을 심는 일’입니다. 그래서, 그토록 고단하게 밭일을 해서 콩을 거둔 다음, 처음 젊은 엄마가 꿈꾸었듯 인절미 해 먹는 일이 나와야 옳습니다. 젊은 엄마는 틀림없이 떡하는 일을 하나도 모르는 채 그저 인절미만 먹고 싶었을 터이니 콩고물을 내고 떡을 찧고 할 때마다 또다시 엄마를 부르고 그 엄마는 다시 엄마를 부르는 일이 되풀이되었을 테고, 이야기는 끝없이 이어지면서도 재미가 넘치게 되었으리라 봅니다. 그러나 끝마무리에서는 엉뚱하게 ‘된장 담그기’로 나아갑니다. 젊은 엄마는 그토록 먹고파 했던 인절미인데 아무 거리낌없이 된장 담그는 일에 빠져듭니다. 바라보기에 따라서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넘어갈 수 있지만, 그림책 흐름에서는 매끄럽지 못합니다. 나중에 《다시, 세 엄마 이야기》라고 해서 두 번째 이야기가 나와, 인절미 해 먹는 이야기를 새롭게 펼쳐 주면 좋겠다고 느낍니다.

 다음으로, 그림책에서 잘못된 대목 여섯 가지입니다. 다음 여섯 가지는 이 그림책이 다음 쇄를 찍을 때 꼭 고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ㄱ) 3쪽을 보면, 도시에서 시골로 옮길 때 타고 간 자동차가 풀빛입니다. 그런데 5쪽에서는 빨강 자동차로 바뀌어요.

 (ㄴ) 9쪽에서 ‘엄마의 엄마’가 나오는데, 할머니인 ‘엄마의 엄마’는 ‘경주용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매무새로 나타납니다. 그러나 할머니가 탄 자전거는 경주용 자전거가 아닌 ‘산악자전거와 같은 1자 손잡이’예요. 엄마네 엄마가 경주용 자전거 타는 매무새로 두고프다면 자전거도 경주용 자전거(바퀴가 가느다랗고 손잡이는 양불처럼 생긴 자전거)를 타고 나오게끔 그려야 합니다. 산악자전거를 타는 매무새로 그리겠다면 할머니 매무새를 고쳐 그려야 합니다. 그리고, 이 그림처럼 여느 생활자전거를 타고 나타나는 모습으로 그리겠다고 할 때에도 할머니 매무새는 고쳐야 합니다. 경주용 자전거와 산악자전거와 생활자전거 타는 매무새는 모두 다릅니다. 덧붙이자면, 산악자전거를 탈 때에는 안장을 아무리 올려도 9쪽 그림에 나오듯이 허리를 앞으로 잔뜩 숙일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허리를 앞으로 잔뜩 숙이고 타면 대단히 위험하게 되어요. 더욱이, 손잡이가 1자이기는 하나, 그림에 나오는 자전거는 ‘여느 생활자전거’입니다. 게다가, 페달 발구르기도 잘못되었습니다. 오른 페달이 위로 가 있으면 왼 페달은 밑으로 가 있어야 하는데 왼 페달은 밑이 아니라 가운데 크랭크축에 있습니다. 자전거 좋아하는 아이들이 이 그림을 보았다면 어떻게 생각할는지 아찔합니다.

 (ㄷ) 19쪽에 ‘엄마의 엄마’가 두 손에 ‘낫’을 들고 나타납니다. 그런데 20쪽에는 “엄마와 엄마의 엄마는 호미로 열심히 풀을 뽑았어요” 하고 나옵니다. 더욱이 21쪽에서 ‘엄마의 엄마의 엄마’도 ‘낫’을 들고 나타나시는데, 22쪽에서는 ‘괭이’를 들고 풀을 캐냅니다. 그림과 글이 똑같이 어울려야 하지 않을까요? 낫을 들고 나타나서 호미질을 했다거나, 낫을 들고 날아와서 괭이질을 했다니, 아무래도 이 그림책을 보는 아이들이 고개를 갸우뚱갸우뚱해 한다거나, 농사 연장을 제대로 모르는 아이들은 ‘호미가 어떻게 생기고 낫이 어떻게 생긴 줄을 잘못 받아들일 걱정’이 있습니다. 조금 더 덧붙여 보면, 가장 큰 할머니가 괭이질을 하는 손 매무새도 잘못되었습니다. 그림책대로 괭이질을 하면 괭이자루가 부러질 뿐더러 밭을 일굴 수 없습니다.

 (ㄹ) 23쪽을 보면, “엄마의 엄마의 엄마도 머리카락을 쓸어내리며 웃었어요” 하고 나옵니다만, ‘엄마의 엄마의 엄마’는 아주 쪼글쪼글 볶은 머리라서 ‘쓸어내릴’ 수 없어요. 이때에는 ‘쓸어올린다’고 해야 올바르다고 느낍니다.

 (ㅁ) 3쪽 그림에서 집 뒤에 복숭아나무로 보이는 꽃 또는 열매가 발그스름한 나무가 서 있는데, 5쪽에서는 이 나무가 사라지고, 그냥 푸른잎나무로 바뀝니다.

 (ㅂ) 21쪽에서 ‘엄마의 엄마의 엄마’가 낫을 들고 짠 하고 날아옵니다. 이때 ‘엄마의 엄마의 엄마’는 고무신을 신고 있는데, 고무신 바닥이 운동화 바닥처럼 그려져 있습니다. 지난날 고무신을 신고 다니신 분들은 모두 알 터인데, 검정고무신은 바닥이 판판합니다. 다만, 요사이 나오는 자주빛 고무신은 바닥이 운동화처럼 ‘1111’과 같이 빗살이 새겨져 있어서 덜 미끄러지게끔 되어 있어요. 그렇다면, 그림책에 나오는 고무신이 자줏빛이어야 할 텐데 검정빛입니다. 흰고무신도 바닥에 빗살이 새겨져 있습니다. 고무신을 그리려 했다면 마땅히 알맞는 빛깔로 그려야 합니다. 한 마디 덧붙이자면, 할머님들은 검정고무신을 잘 안 신습니다. 검정고무신을 신다 보면, 처음 한 달 동안 뒷꿈치나 앞꿈치가 나가게 마련이라, 말랑말랑하면서 잘 안 닳는 자주빛 고무신을 훨씬 많이 신으셔요.



 저로서는 아쉬운 대목을 여섯 가지 들었습니다만, 좀더 꼼꼼히 살피면 더 많은 아쉬움이 드러날 수 있으리라 봅니다. 그러나 이런 아쉬움 몇 가지가 있다 해서 그림책 《세 엄마 이야기》 빛이나 값이 떨어질 수 없습니다. 사랑스럽고 애틋하고 아름다우며 웃음 묻어나는 즐거운 그림책입니다. 그저, 앞으로는 이와 같은 잘못이 나타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며, 이처럼 살아가는 기쁨이 짙게 묻어나는 그림책이 꾸준히 나와 주기를 바랄 뿐입니다. (4341.12.10.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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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 장정일 단상
장정일 지음 / 행복한책읽기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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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 책 하나 80 ― 책읽는 생각, 살아가는 생각, 장정일 생각
 : 장정일, 《생각, 장정일 단상》



- 책이름 : 생각, 장정일 단상
- 글쓴이 : 장정일
- 펴낸곳 : 행복한책읽기 (2005.1.17.)
- 책값 : 8900원



 (1) 책읽는 생각


 생각없는 사람이라면, 생각없는 줄거리 가득하고 생각없이 만들어진 책을 으레 집어들게 마련입니다. 생각있는 사람이라면, 생각있는 줄거리 차곡차곡 담기고 생각있게 만들어진 책을 저절로 집어들게 마련입니다. 누구나 제 눈높이에 따라서 책 하나 집어듭니다. 누구나 제 눈높이에 걸맞게 사람을 만나고 어울리게 마련입니다. 누구나 제 눈높이에 어울리게 집자리를 알아보며 살고, 제 눈높이에 따라 일거리를 찾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생각없는 삶이요 생각없는 눈높이요 생각없는 사람이라고 하여 ‘나쁜’ 쪽으로만 빠지지는 않습니다. 생각있는 삶이요 생각있는 눈높이요 생각있는 사람이라고 해서 ‘좋게’만 흐르지는 않아요.


.. 취미에 빠진 사람에 의해 그의 가족이나 친구가 착취당하는 것은 돈이 아니라, 시간이다. 그들은 자기 취미 속에 빠지기 위해 늘 “다음에” 하면서 달아나 버린다 ..  (22쪽)


 생각이 있다면 아무 책이나 집어들지 않습니다. 생각이 없다면 주어진 책을 곧이곧대로 받아먹습니다. 생각이 있어도 돈이나 이름이나 힘에 매여서 책을 집어들곤 합니다. 생각이 없으나 이웃에서 사랑스럽고 믿음직한 책을 건네주는 바람에 철부지 매무새를 하루아침에 벗어던지기도 합니다.


.. 종교인은 자신의 행동으로 자기가 믿는 신의 가르침을 나타내야 한다. 아주 모범적인 시민이 알고 보니 불자로 밝혀지거나 카톨리커로 밝혀졌을 때 이웃은 그와 종교가 달라도, 그 종교를 편견 없이 이해하게 된다. 예수님이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하셨던 것은 인간들에게 신앙의 가장 바람직한 태도를 일깨워 주신 것이지 단순히 자선의 원칙으로 새겨서는 안 된다 ..  (36쪽)


 우리 나라 사람들이 나라밖 사람들보다 좀더 책을 안 읽거나 멀리한다고들 합니다. 얼마나 책을 안 읽기에 그러느냐 싶곤 한데, 조금만 생각을 해도 이와 같은 까닭을 알 수 있습니다. 초중고등학교와 대학교에 이르기까지 아이한테 책을 읽히는 어버이는 몹시 드뭅니다. 그저 책이 좋고 아름답고 훌륭하기에, 책에 깃든 좋음과 아름다움과 훌륭함을 아이한테 선물해 주고 싶어서 읽히는 어버이가 매우 드뭅니다.

 나라안에서 손꼽히는 대학교에 철썩 붙기를 바라는 마음에, 나아가 손꼽히는 대학교 졸업장으로 손꼽히는 재벌회사 직원이 되거나 공무원이 되어서 연봉 수천만 원이나 억대를 떵떵거리며 받으며 살기를 바라는 마음에 쥐어 주는 권장도서나 교양도서 목록만 있습니다. 더욱이 학과 공부라는 이름으로 책을 멀리하도록 하는 일이 법으로 지켜지고 있습니다. 교과서 공부를 잘해서 시험을 잘 치러야지, 교과서 아닌 책을 읽다가 교과서 지식하고는 담을 쌓고 시험을 못 보면 낙오자가 되고 맙니다. 교과서가 얼마나 올바르게 되어 있는지를, 교과서가 얼마나 알맞게 짜여져 있는가를 살피는 눈이 없습니다. 교과서는 그야말로 간추린 이야기일 뿐인데, 아이들 스스로 교과서 틀을 넘어서 제 몸뚱아리로 세상을 부대끼면서 참 지식과 참 슬기를 갈고닦도록 하지 못합니다.


.. 예쁜 사람이 머리 나쁜 것은 신이 그만큼 공평하다는 것을 증거하는 것이지 쪽팔릴 일도 아니고 사는 데 지장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 뜻에서 나는 안티미스코리아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엄청 잔인하게 느껴진다. 모든 분야에서 완벽할 수 없기에 인간은 누구나 자신에게서 가장 뛰어난 장점과 특기로 성공하고자 노력한다. 예를 들어 나처럼 구구단도 못 외우고 영어도 할 줄 모르지만 기막히게 예쁜 얼굴과 몸매를 가진 여자가 있다면 그녀에게도 1등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되어야 하고, 타고난 두뇌가 부러움의 대상이 되듯이 타고난 미모로도 자긍심과 성취욕을 느낄 수 있는 장이 마련되어야 한다. 생각해 보라. 예쁘고 머리 나븐 여자는 이벤트 도우미나 대형 마트의 점원을 해야만 당신들의 직성이 풀리나? ..  (39쪽)


 우리들은 학교를 다니는 기나신 세월에 걸쳐서 ‘책방 나들이’를 배우지 못합니다. 새책방 나들이건 헌책방 나들이건 배우지 못합니다. 하물며 도서관 나들이는 배울는지요. 요즈음은 학교마다 도서관이 생기고 있으나, 아이들이 학교 도서관을 마음껏 드나들면서 책을 즐길 수 있게끔 ‘시험 공부 짐’이 적은지, 교과서로 모자란 지식을 채우도록 도서관이 활짝 열려 있는지 궁금합니다.

 국어사전 찾기도 제대로 배워야 하는 한편, 책을 읽을 때 몸가짐이 어떠해야 하고, 책장은 어떻게 잡아서 어떻게 넘기는지, 책을 다치지 않게 하는 길, 책꽂이에 알맞게 꽂는 일, 책꽂이를 손수 나무질을 해서 짜기, 책을 끈으로 묶어서 나르기(이삿짐), 책을 봉투에 넣어서 보내기(동무 생일선물로 보낼 때)처럼, 아주 밑바탕이 되는 이야기들을 학교에서는 얼마나 알뜰히 가르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어쩌면, 교사 된 분들이 학교(교대나 사범대)에서 ‘책읽기를 가르치는 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을 뿐더러, 교사 되기 앞서 스스로 책하고 벗삼지 못했기에 자기가 교사가 된 다음에 아이들하고 책읽기를 삶으로 즐기는 버릇을 못 들이지 않으랴 싶기도 합니다. 교사가 먼저 책을 즐겨야 아이들이 책읽기를 배울 수 있습니다. 교사가 먼저 아이들한테 책읽는 삶이 기쁨임을 몸으로 보여주어야 아이들이 책에서 기쁨보따리를 찾으려고 나설 수 있습니다.


 (2) 살아가는 생각


.. 민중을 위하여 시를 쓰는 민중시인이 일류 호텔의 바텐에 앉아 칵테일을 마시고 있다면 사기꾼처럼 보일 것이다. 반대로 모던한 시인이 거진 인민복 차림으로 시장통에 죽치고 앉아 있으면 표절가로 보인다 ..  (42쪽)


 부모님 집을 나와서 혼자서 살림을 꾸린 때는 1995년 4월 5일입니다. 어느덧 열세 해가 흐르고 있습니다. 그때부터 오늘까지, 제가 살고 있는 집은 어디에서나 찬방입니다. 제가 추위를 덜 타서 차디찬 방에서 깃드는지 모릅니다만, 언제나 짐차로 여러 번 날라야 할 만한 책더미를 이고 지고 다니는 터라, 책더미를 집어넣을 만한 집을 적은 돈으로 얻어서 달삯 내고 살자면, 살림집이 추운 곳 아니고는 얻지 못하기 일쑤입니다.

 군대에 있던 스물여섯 달 동안에도 내무반은 늘 추웠고, 부대는 참으로 추웠습니다. 남녘땅에서 가장 추운 곳이기도 했지만, 한여름인 8월에도 밤에는 0도로 떨어져서 야상을 입어야만 했어요. 눈이 녹는 때는 부처님오신날이었고, 첫눈은 시월이 다 갈 무렵 비로소 내렸지만, 한 번 내린 눈은 두 번 다시 녹지 않는데다가, 영 도 밑으로 20∼30도 내려가는 일은 아주 우스웠어요. 1997년 12월 31일에 전역하던 그날까지 뻬치카를 쓰던 내무반이었기에, 난로가 아닌 난로에서 떨어진 곳은 내무반이었음에도 영 도 밑으로 내려가 있었습니다.

 신문사 지국에서 먹고살 때에도 한결같이 추위에 떨었는데, 한겨울에도 실장갑 한 켤레 끼고 얼어붙은 손가락으로 자전거를 몰면서 집집마다 신문을 두어 시간 돌리고 돌아오면, 한 시간 가까이 이불에 파묻힌 채로 눈물을 흘리면서 손가락과 발가락을 녹이고 코와 귀를 녹이며 사타구니와 팔다리를 녹였습니다. 뜨거운 물이 나오지 않으니 실장갑이고 옷이고 찬물로만 빨래를 했어요. 나이 서른이 넘어간 뒤부터는 겨울 찬물 빨래는 도무지 힘들어, 물을 덥혀서 쓰곤 하는데, 빨래를 마친 뒤 손가락이 뻣뻣해지는 일은 다르지 않습니다.


.. 버스 요금보다 비싼 돈을 주고 택시를 탈 때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대중교통이 아닌 바에야 그것은 아주 사적인 공간이 되어야 한다. 사람들은 진짜로 조용한 택시를 타 보지 않아서 그게 얼마만큼 호젓할 수 있는지, 그래서 도시생활 속의 내밀한 축복이 되는지 알지 못한다. 그걸 타 보지 못했기 때문에, 우리는 문득 내 영혼을 돌아보게 하는 정일한 공간과 시간을 상상하지 못한다 ..  (58∼59쪽)


 인천을 떠나 서울에서 살며, 서울을 떠나 강원도 양구에서 살며, 강원도 양구에서 벗어나 서울에서 살며, 서울을 떠나 충북 충주에서 살며, 다시 인천으로 돌아와서 살며, 잠자는 방을 뺀 집구석 다른 데는 겨울이면 꼭 영 도 밑입니다. 그래도 한데에서 안 자고 기름보일러라도 돌릴 수 있는 집이니 얼마나 고마우랴 싶습니다. 다만, 잠자는 방에서도 잠바떼기를 걸치고 손가락을 엉덩이에 깔아 녹이면서 글을 쓰고 책을 읽고 안 마르는 기저귀를 다리고 아기 기저귀를 갈고 쌀을 씻어 밥을 하고 감자와 당근을 헹구어 찌개를 끓이고 있는데, 서른 줄이 꺾이는 나이에 다다르면서 ‘겨울에 추위 걱정을 않고 느긋하게 보낼 수 있는 방 하나 얻어서 지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빨래를 했을 때 한나절이 지나면 제법 마르게 되는 곳에서 지낸다면 얼마나 넉넉할까. 글을 쓸 때 손가락이 뻣뻣하게 얼어붙어서 눈물이 찔끔 나오는 일이 없으면 얼마나 잘 써질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지만 따순 방에서 살게 된다고 하여 아이를 더 잘 키울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따뜻한 방에서 지내게 된다고 하여 우리 살림이 더 넉넉해질 수 있을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따사로운 방에서 일하게 된다고 하여 내 글이 더 알차고 훌륭해질 수 있을는지는 모르겠습니다.


.. 영화평론가가 일반적인 관객보다 더 잘 볼 수 있는 비법은 물론 ‘다섯 번 이상’이 기본인 준비 과정에만 있지 않다. 오랫동안 영화를 공부해 왔다는 사실을 감안하고서라도 그들은 제작 현장을 방문할 수 있고 제작자와 감독ㆍ작가ㆍ스태프 등과 작품에 대해 캐물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으며, 기술 시사회와 같은 중요한 자리에 초대받을 수 있다 ..  (77쪽)


 아기를 안고 길을 걷거나 전철을 타거나 어디 가게에 들어갈 때면, 우리한테 고이 마음써 주는 분들이 있지만, 아랑곳하지 않는 분들도 많습니다. 틀림없이 우리가 아기를 안고 있음을, 아기를 안고 건널목에 서 있음을 알면서도 바로 옆에서 담배를 태우는 어르신(모두 다 남자입니다)이 꼭 있습니다. 제가 다니는 차림새를 본 분은 그림이 그려질 텐데, 앞뒤로 가방 서너 개씩 대롱대롱 매달면서 사진기까지 오른어깨에 걸치고 아기를 안고 걷는 사람 앞에서 길을 터 주지 않을 뿐더러 툭툭 치고 가는 분들(거의 모두 남자입니다. 그러나 아주머니도 많고 아가씨나 어린 학생도 많습니다)이 참 많습니다. 전철을 타고 일산 처가집에 찾아갈 때, 아기가 젖을 먹어야 되어 물려야 하는데, 빈자리가 없어서 맨바닥에 털푸덕 앉아서 젖을 물리지만, 자리 두 칸을 내어주는 분을 보기란 힘듭니다(‘두 칸’을 내주어야 하는 까닭은 아기와 애 엄마가 둘이기도 하지만, 십 킬로그램에 가까운 아기를 내내 무릎에 올려놓고 젖을 물리거나 안는다는 일이 얼마나 팔 빠지고 무릎 뽀개지는 일인 줄을 모르면, 그야말로 모를 뿐입니다). 가만히 보면, 거의 할머님들이 ‘노약자 장애인 임산부 영유아 동반자 자리’에서 일어나 앉으라고 부르시지만, 한 자리만 날 때에는 차라리 맨바닥에 털푸덕 앉아서 젖을 물리고, 제가 무릎 꿇고 앉아서 무릎에서 오줌기저귀를 갈아 줄 때가 훨씬 수월합니다.

 용케 세 자리를 모두 얻어서 아기를 눕힌다고 해도, 전철 걸상은 살짝 기울어져 있으니 아기 목이나 허리에 참 안 좋습니다. 다른 자리도 아니고 ‘영유아 동반자’ 자리라 한다면, 갓난아기가 어린 아기를 눕힐 때를 헤아려야 할 텐데, 그런 마음씀이란 없어요. 인천에서도 동인천역에는 ‘수유실(젖먹이는 방)’이 마련되어 있습니다만, 그 많은 사람이 북적거리며 드나드는 신도림역이나 서울역이나 용산역이나 시청역이나 종로3가역이나 동대문역 들에서 젖 물릴 수 있는 조용하고 바람 안 드는 자리를 찾을 수 없습니다.


.. 반면 인간들은 배우는 일에 속수무책이다. 예를 들어, 유치원 시절부터 대학 졸업까지 ‘거짓말하지 말고, 훔치지 말고, 싸우지 말라’는 도덕과 교훈을 배우지만, ‘배운 놈이 더 무섭다’는 말이 가리키는 것처럼, 배움은 아무 소용 없고 말짱 도루묵이다 ..  (82쪽)


 그러나, 이렇게 온몸으로 부딪히게 되니까 보일 뿐이에요. 이처럼 온몸으로 살아가니까 깨닫고 있을 뿐이에요.

 어느 시인 말마따나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머리로는 어렴풋이 생각하고 있었지만 ‘내 일’로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버스나 전철을 탈 때에 거의 자리에 앉는 일이 드물었고, 자리에 앉았어도 벌떡벌떡 일어나서 다른 이가 앉게 내어주었지만, 어린아이를 데리고 다니는 어머님들한테 자리 하나 내어준다고 해서, 그분들 나들이길이 수월하지는 않음을 뼛속으로 느끼지 못했습니다.

 막상 아이를 낳아 키우기까지, ‘아기를 어떻게 안아야 하는가’를 알지 못했습니다. ‘아기를 어떻게 재우는가’를, ‘아기를 어떻게 씻기는가’를, ‘아기 사는 집을 어떻게 고쳐야 하는가’를 조금도 살피지 못했습니다. 겨우겨우 알아가고 있으며, 차근차근 깨닫고 있습니다. 이제 막 걸음마를 떼듯 세상을 보고 있으며, 앞으로 느끼고 받아들이고 삭여야 할 일이 많다고 느낍니다.


.. 예를 들어, 가야산에 골프장을 만드는 일을 반대하기 위해 100만 인 서명운동이 필요할까? 혹은 시인 이상화의 생가를 보존하기 위해 그게 필요할까? 박정희기념관을 반대하기 위해서는 그것도 필요악일까? 열 명 혹은 다섯 명으로는 안 될까? 진정 단 한 명의 의견이라도 소중하게 받아들이고 고심하는 사회에서라면 100만 인 서명운동 따위는 우스갯거리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서명운동의 규모와 목표가 걸핏하면 100만 인이 넘는 진풍경은 우리 사회의 병폐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100만 인 서명운동은 그것이 어떤 선의에서 행해지든지 간에 우리 사회가 물량과 물리적인 세가 득세하는 사회라는 것을 가르쳐 준다. 이처럼 머릿수가 말하기 시작할수록 소수 의견은 점차 설득력을 잃게 되리란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  (88쪽)


 (3) 장정일을 생각


 소설쓰는 장정일 님을 딱 두 번 보았습니다. 두 번 모두 헌책방에서 보았습니다. 두 번 보기 앞서는 장정일 님이 자주 들렀다고 하는 헌책방 아저씨한테 틈틈이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 헌책방 아저씨는 처음에는 몰랐다고 하는데, 나중에 다른 분한테 이야기를 듣고는, ‘《장정일의 독서일기》에서 장정일 님이 당신이 보던 책을 헌책방에 내놓았다’는 대목을 읽고 당신 헌책방에 ‘장정일 님이 내놓았음직한 헌책’을 찾으려는 손님이 꽤 있었음을 알았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를 듣던 무렵, 나라 안팎에 내로라하는 분들 말 한 마디와 글 한 줄이 얼마나 큰힘을 내는가 싶어 새삼 놀랐습니다. 내로라하는 분들이 헌책방을 사랑스럽게 바라보면, 이분들을 따르거나 좋아하는 분들도 으레 헌책방을 사랑스럽게 바라봅니다. 내로라하는 분들이 헌책방을 개골창만도 못한 낡아빠진 시시껄렁 껍데기로 바라보면, 이분들을 따르거나 좋아하는 분들도 으레 헌책방을 개골창만도 못한 낡아빠진 시시껄렁 껍데기로 바라봅니다. 이냥저냥 아무 눈길도 안 두면, 이때에도 마찬가지로 강 너머 불 구경입니다.


.. 영화란 무엇인가에 대한 많은 해석이 있어 왔지만, 나에게 영화란 너무나 명확하게 규정된다. ‘두 번 본 것’만이 영화다. 한 번 보고 만 것은 영화가 아니다. 그건 길거리에서 우연하게 목격하게 된 교통사고와 같은 것 ..  (131쪽)


 다른 헌책방에서 듣는 장정일 님은 ‘헌책방 아저씨와 때때로 술잔을 부딪히기도 하는 사이’였기에, 좀더 다른 이야기를 들었고, 또 만났습니다(다만, 아직 장정일 님과 술잔을 부딪혀 보지 못했습니다. 언젠가 장정일 님하고 술잔을 부딪히면서 두런두런 시끌버끌 수다를 떨게 된다면, 그 뒤로 읽는 장정일 님 책은 사뭇 달라질 수 있으리라 봅니다). ‘하루에 다섯 차례씩 헌책방 나들이를 한다’고 했는데, ‘글쓰느라 바쁜데 하루에 다섯 차례나 오려니 너무 힘들다’고, ‘나(장정일)한테 돈이 많다면 헌책방을 통째로 사서 집에서 신나게 책만 읽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말을 한다고 합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으며, 장정일 님은 책을 참으로 좋아하는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편 부럽기도 합니다. 비록 한 군데만 다섯 차례를 들락거린다고 하지만, 하루에 책방을 다섯 차례나 갈 수 있을 만큼 주머니 형편이 되는구나 싶어서 부럽습니다. 제 살림살이는 하루에 한 번은커녕 이틀이나 사흘에 한 번 가면 괜찮으려나 싶을 만큼이기에(저 또한 예전에는 날마다 두어 군데씩 들르곤 했습니다), ‘나도 돈을 넉넉히 벌면 날마다 한 군데씩 헌책방 나들이를 하고 싶구나’ 하는 꿈을 꾸게 됩니다. 그러면서도, 지금은 지금대로 좋다고, 지금은 날마다 책방 나들이를 하면 못 읽게 되는 책이 많이 늘어날 테니, 지금 이대로가 딱 알맞다고 느낍니다. 아이 돌보고 집살림 꾸리고 하는 데에도 밤잠이 모자라서 허구헌날 눈밑이 시커멓게 타들어가는데, 무슨 얼어죽을 책 타령을 하겠느냐 싶어요.


.. 이런 생각이 시대착오적일 수도 있고 환상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게 개꿈이라고 하더라도 신문 사회면을 매일 스크랩해서 읽는 작가가 어디 하나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오랜만에 낸 L형의 신작 장편은 홍콩 느와르나 할리우드 문법과 너무 가까운 만큼, 내가 공들여 읽는 신문 사회면과는 동덜어져 있었다 ..  (175쪽)


 《생각, 장정일 단상》을 덮으면서, 저는 제 깜냥껏 생각합니다. 그동안 이 책을 읽는 동안에도 숱한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습니다만, 새롭게 생각하고 거듭 생각하며 또다시 생각합니다.

 민방위훈련장에 가서 졸음을 쏟아지게 하는 비디오를 보는 내내 읽으면서 생각했습니다. 흔들리는 전철간에서 아기 오줌기저귀를 갈고 나서 한숨 돌리는 가운데 읽으면서 생각했습니다. 고단하게 잠든 아기와 옆지기 머리를 쓰다듬다가 나 또한 잠이 쏟아졌지만 찬물로 낯 씻고 눈 부릅뜨고 읽으면서 생각했습니다.

 생각을 하고 또 생각을 합니다. 지금 내 삶은 얼마나 나다운 삶인지를. 지금 내가 손에 쥐는 책은 내 마음밭을 얼마나 일구어 놓는 책인지를. 지금 내가 어울리는 사람들은 얼마나 내 몸이 기쁨으로 들뜨게 해 주는 만남을 꽃피우고 있는지를. (4341.12.7.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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