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쪽지 2011.1.5.
 : 추운 눈길



- 동지가 지나며 겨울해가 아주 조금 길어진다. 살림집에는 유리창이 많아 바깥이 훤히 내다보인다. 아침부터 기저귀 빨래를 하고 물을 길어 온 다음 곧바로 밥을 해서 차리느라 고단해 한숨 잔다며 누웠는데, 어느새 네 시가 코앞. 졸리면 낮잠을 함께 자면 좋을 아이가 낮잠 잘 생각이 없어 보여, 날은 춥지만 자전거수레에 태워 살짝 마실을 할까 생각한다.

- 아침에 눈발이 흩날리다가 햇볕이 들며 녹았는데, 다시 눈발이 조금 흩날린다. 아이한테 옷을 입힌다. 바깥은 추우니까 솜바지를 입히고, 웃옷 단추를 모두 꿴다. 모자를 쓰라 하고 장갑을 끼운다. 앞마당 눈밭에 자전거와 수레를 끌고 나와 둘을 붙인다. 수레에 놓은 담요를 꺼내 자전거 안장과 수레 위쪽에 얹는다. 아이 겨드랑이에 두 손을 끼고는 번쩍 들어 수레 안쪽에 앉힌다. 작은 담요를 아이 무릎에 하나씩 놓고 조금 큰 담요로 허벅지 쪽을 덮는다. 이불 하나로 몸과 다리를 덮고는, 두툼한 마고자로 마무리를 한다. 아이는 길을 나서기 앞서 자꾸 손을 밖으로 빼려 한다. 날이 춥다 해도 말을 안 듣는다.

- 자전거에 올라탄다. 눈길에서는 자전거 바퀴가 헛돈다. 눈길 자전거는 오랜만이라고 새삼 느낀다. 집살림을 꾸리며 눈길 자전거 타기는 거의 못하리라 생각했는데, 아이를 수레에 태우고 이렇게 할 수 있구나. 다만, 오래는 못 타고 짧은 거리만 달릴 수 있지.

- 오른쪽 논둑길로 달릴까 왼쪽 마을길을 달릴까 하다가 왼쪽으로 간다. 조금 달리자니 바람이 맞바람. 바람이 꽤 매섭다 싶어 뒤를 돌아보며 아이한테 묻는다. “안 춥니? 괜찮아?” 아이는 아무 말이 없다. 밖으로 내놓던 손은 어느새 마고자와 이불 안쪽으로 집어넣고 옹크린다. 칼바람을 맞아야 비로소 손을 넣니. 에그, 처음부터 넣으면 좀 좋으니.

- 마을길 오르막 막바지에서 택배 짐차를 만난다. 택배 짐차는 내 옆에서 멈추며 “책자 같은 게 왔는데, 집에 있으세요?” 하고 묻는다. “네, 집에 사람 있어요.” 하고 대꾸하는데, 눈길 오르막에서 자전거를 멈추었기에 자전거 페달이 나가지 않는다. 하는 수 없이 자전거수레를 질질 끈다. 택배 짐차 일꾼 옆자리에 아기를 품에 안은 아주머니가 앉았다. 택배 일꾼은 이렇게 함께 다닐 수 있겠구나.

- 겨우 십 분 즈음 달리는데 손가락이 얼어붙는다. 아이도 얼굴이 다 얼어붙겠지.

- 마을 들머리이자 큰길가에 자리한 보리밥집에 닿는다. 달걀 스무 알하고 얼음과자 셋하고 아이 까까하고 고른다. 얼음과자는 이 추위에 집으로 가져가는 동안 녹지 않으리라. 아이 얼굴과 손이 좀 녹았다 싶을 무렵 다시 아이를 수레에 태우고 집으로 달린다. 이번에는 논둑길 쪽으로 간다.

- 날이 춥기도 하지만, 여느 때에도 마을 살림집 사이를 달릴 때에는 사람들을 보기 힘들다. 생각해 보면, 우리도 집 바깥으로 나와서 마당을 거닌다거나 하지 않으니까. 광월리 수월마을 쪽 마지막 집을 지나 호젓한 논둑길을 달리는데, 개우리 옆에서 코를 찌르는 똥내음이 물씬 풍긴다. 개똥 냄새인가 싶어 놀란다. 다른 때에는 개똥 냄새가 이렇게 나지 않았으니까. 조금 더 달리니 오른쪽 새로 일구는 인삼밭에 뿌린 거름이 보인다. 그렇구나. 인삼밭을 퍽 널따랗게 일구며 거름과 흙을 잔뜩 뿌리니까 이 냄새가 퍼지는구나.

- 집 앞 가파르면서 짧은 비알길에서는 자전거를 내려 자전거를 민다. 미끌미끌한 눈을 밟으며 자전거를 끌어올린다. 겨울에는 칼바람을 맞는 추위를 느끼는 가운데 눈밭에서 미끄러지는 맛으로 자전거를 타지. 아무렴. 집 앞 마당에서 자전거를 세우니 아이는 꼼짝을 않는다. 졸음이 오기도 했고 춥기도 했으니까. 아이를 안아 자전거수레에서 내린다. 아이는 “추워.” 하고 말하면서 집으로 들어간다. 아이가 신은 목긴신은 아빠가 한 짝씩 벗긴다. 바퀴에 눈이 소복하게 묻은 자전거를 굴려 도서관에 넣는다. 풀리는 날씨 하루 없이 꽁꽁 얼어붙기만 한 겨울이 참 길다. 기름 300리터를 넣었어도 두 달을 견디기 힘들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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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12.30. 

밥 먹는 자리에서 비손하는 어린이. 예뻐라. 

 

낮에는 눈을 밟고. 

 

저녁에는 다시금 노래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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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나누는 기쁨 ㉥ 사진기와 사진장비
 ― 사진길 못 찾는 사람한테 찾아드는 장비병



 돈이 있으면 ‘더 좋은’ 사진기하고 사진장비를 갖춘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참말 그렇습니다. 돈이 있으면 돈을 더 치러 ‘사진을 한결 잘 찍을 만한’ 기계를 갖출 테지요. 다만, 돈이 없을 때에는 내가 갖고프거나 쓰고픈 장비를 장만하려고 돈을 모으면 됩니다. 하루아침에 떡하니 살 생각은 접고, 두고두고 목돈을 마련하여 장만할 노릇입니다. 돈이 많은 사람들이야 하루아침에 한 번에 장만할 일이지, 돈이 없거나 적은 사람은 차곡차곡 모아서 장만해야지요.

 구구단을 금세 외우는 아이가 있으나 한 달이 걸려도 못 외우거나 한두 해가 지나서 비로소 외우는 아이가 있습니다. 길눈이 밝은 사람이 있고 길눈이 어두운 사람이 있습니다. 똑같은 사람이란 없습니다. 사진기 다루는 솜씨가 빼어나야 사진찍기를 할 수 있지 않고, 사진 작품 읽는 눈매가 날카롭거나 글재주가 뛰어나야 사진읽기를 할 수 있지 않아요. 다 다른 사람은 다 다른 삶결에 맞추어 사진기를 장만하고, 사진을 찍으며, 사진을 읽습니다.

 사진을 한다는 분들 가운데 ‘장비병’에 걸린 이가 꽤 많습니다. 참 슬픕니다. 왜 장비병에 걸려야 하나요. 무엇하러 장비병을 앓으며 어리석은 짓을 하는가요.

 저는 장비병에 걸린 적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돈이 많거나 넉넉하지 않습니다. 맨 처음 사진기를 쥐던 1998년 여름에는 후배한테서 미놀타 엑스700을 빌려서 썼습니다. 신문사지국에서 먹고자며 대학교를 한창 다니던 때였는데, 이무렵 신문사지국에 도둑이 들어 후배한테서 빌린 사진기를 잃었습니다. 어떡해야 할지 몰라 숨통이 조이다가, 우체국에서 30만 원을 빌었습니다. 한 달 십육만 원 벌이에 구만육천 얼마를 우체국적금으로 부었기에 이만 한 돈을 빌었어요. 헌 물건 파는 가게로 가서 미놀타 엑스700보다 한 단계 낮은 엑스300을 십삼만 원에 샀습니다. 엑스700을 살 돈이 안 되었고 살림돈이 모자랐습니다. 두 해쯤 걸려 돈을 푼푼이 모아 엑스300을 팔고 엑스700을 겨우 되사면서 후배한테 돌려주고, 대학교를 그만둔 다음 출판사에 일자리를 얻어 한 달 육십이만 원을 받으면서 우체국 빚을 갚고 캐논 에이 1번을 새로 장만합니다.

 요사이는 수동사진기로 니콘 에프엠3에이 기종을 씁니다. 이 사진기는 고마운 사진벗이 빌려주었습니다. 열 차례째 사진기를 잃어 더는 되사지 못하겠다 싶을 때에 고맙게 빌려주었어요. 사진기가 제 손에 없거나, 가까스로 쓰던 사진기는 목숨을 다해 못 쓰고 말 무렵, 이제 사진은 더 못 찍는가 하고 생각했습니다. 이를테면, 다른 사람들은 장비병에 걸린다지만, 마땅하거나 변변한 사진기 하나 얻어 쓰기 벅찬 살림으로는 어떠한 녀석이라도 좋으니 사진기만 있어도 좋다는 마음이었어요.

 그렇지만, 살림이 가난하다 해서 아무 사진기라도 좋다는 마음은 아닙니다. 어떠한 사진기를 내 손으로 쥐어 사진을 찍든, 사진기마다 다 달리 갖춘 기능을 잘 살려서 내 눈길과 손길과 마음길을 필름 한 장에 앉히면 좋은 사진을 즐길 수 있다고 느꼈어요. 사람들이 장비병에 걸리는 까닭이라면, 스스로 좋은 사진을 즐기지 못하기 때문이요, 스스로 좋은 사진을 사랑하기보다는 남 앞에서 그럴듯하게 내보이려는 잘난 사진을 바라기 때문이라 하겠어요.

 자동사진기면 어떻고 한 번 쓰고 버리는 사진기면 어떻겠어요. 우리들은 ‘사진을 찍으면’ 됩니다. ‘사진을 찍을 때’에 즐겁습니다. ‘사진을 찍어’ 나와 내 이웃하고 오붓하게 나눌 좋은 이야기를 빚으면 넉넉합니다.

 돈이 있어 더 좋아 보인다는 장비를 갖추는 일은 나쁘지 않습니다. 내 사진이 한 걸음 더 나아가도록 힘쓰는 모습이니 반가우며 흐뭇합니다. 돈이 있을 때에는 거리낌없이 한결 낫다 싶은 장비를 갖출 노릇입니다. 돈이 적거나 없으니 내 살림에 걸맞게 장비를 갖출 일입니다. 이렇게 한 다음, 저마다 다 다른 자리와 살림과 터전에 알맞춤하게 사진을 즐기면 돼요.

 아파트에서 살아가면 아파트숲을 사진으로 담을 수 있습니다. 가난해서 달동네에서 살아가면 달동네 터전을 사진으로 찍을 수 있어요. 아파트숲을 찍는다고 볼썽사나운 사진이 되지 않아요. 골목동네 가난한 사람들 모습을 찍어야 비로소 다큐사진이 되지 않습니다. 우리 식구들 복닥이는 삶을 담으면 됩니다. 내가 일하는 터전에서 일동무들하고 어깨동무하는 모습을 찍으면 돼요. 내 아이 사랑스러운 모습을 담고, 내 짝꿍 믿음직한 매무새를 찍으면 됩니다. 애써 비정규직 일터나 공사판을 찾아가야 뭔가 내놓을 만한 사진이 나오지 않습니다. 내가 자가용을 타고 돌아다니든 자전거를 타고 움직이든 두 다리로 걷든, 집과 일터 사이를 오가는 동안 신나게 사진을 일구면 됩니다. 어떤 이는 택시기사로 일하며 ‘택시 창문 밖으로 보이는 모습’을 찍어 사진이야기를 빚었습니다. 자전거마실을 하는 이야기를 사진이야기로 다시 태어나도록 할 수 있겠지요. 걷는 동안 바라본 삶터를 사진이야기로 길어올릴 수 있고요.

 사진기가 사진을 이루지 않습니다. 사진장비로 사진을 꽃피우지 않습니다. 사진 갈래에 따라 어떠한 사진기를 써야 하거나 어떠한 사진장비가 있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사진기와 사진장비가 있습니다. 그러나 사진기이든 사진장비이든 때와 곳에 따라 쓸모와 값어치가 다르지, 이 사진기들과 사진장비들을 모든 사진쟁이가 똑같이 갖추어야 하지 않아요. 북극에서 북극곰을 찍는 사람하고 달동네에서 동네이웃을 찍는 사람하고 똑같은 장비를 쓸까요. 광고에 넣을 밥그릇과 시계를 찍는 사람하고 딸아이가 집에서 조용히 책 읽는 모습을 찍는 사람하고 똑같은 사진기를 써야 할까요. 아직 ‘손전화로 담은 사진으로 사진책 마련한 사람’은 거의 없지 않나 싶은데, 화소수가 떨어지는 손전화라 할지라도 얼마든지 ‘이야기 아리따운 사진’을 빚는다면, 놀라우며 훌륭하고 멋진 사진책이 태어납니다. 안셀 아담스 님이 대형사진기를 썼다 해서 모든 이가 대형사진기를 쓴다고 안셀 아담스 님처럼 사진을 찍을 수 있지 않아요. 안셀 아담스 님한테는 대형사진기로 바라보는 눈길이 당신 사진을 일구는 데에 가장 걸맞았을 뿐입니다.

 소설만 문학이 아닙니다. 수필만 문학이지 않고, 시나 희곡만 문학이지 않아요. 일기나 편지만 문학이 되란 법이 없어요. 동화도 문학이고 비평도 문학입니다. 노래도 춤도 연극도 영화도 문학이 될 수 있고, 모두 한결같은 문학입니다. 문학이며 문화요, 문화면서 삶이에요. 소설 가운데에도 짧은소설이 있고 참말 아주 짤막한 소설이 있으며, 긴소설이 있고 더없이 길디긴 소설이 있어요. 추리소설이 있고 사랑소설이 있으며 역사소설이 있습니다. 소설마다 소설을 쓰는 결이 다르며, 소설을 길어올리는 붓이 다릅니다.

 사진은 숱한 갈래로 나눕니다. 숱한 갈래 숱한 사진이니, 아주 마땅히 숱한 사진기와 사진장비로 갖가지 사진을 꽃피웁니다. 저마다 다른 갈래 사진을 하니까 저마다 다른 갈래 장비를 쓰는데, 아직 내가 걸어갈 사진길이 어디인지 모르거나 갈팡질팡하는 나머지 장비병에 걸리지 않았나 돌아볼 노릇이에요. 내가 무엇을 사진으로 담을는지 잘 모른다면 누구나 장비병에 허덕이고 말아요. 내가 좋아하는 사진을 찾고, 내가 즐길 사진을 깨달으며, 내 이웃과 동무랑 살붙이하고 기쁘게 나눌 사진을 붙잡는다면 고맙겠습니다. 사진기는 사진이 아니라 사진기입니다. 사진은 사진기가 아닌 ‘사람이 살아가는 사랑’으로 이룹니다. (4344.1.5.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1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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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1-01-05 15: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사진가는 보통 두부류로 나뉘죠.장비를 사랑하는 사람과 사진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말이죠.대다수 사진가들은 보통 장비를 사랑합니다.그래서 플레그쉽이라는 각 회사의 카메라들이 아마츄어 사진가들에게 선망의 대상이 된거 겠지요.사실 필림 카메라의 경우 니콘의 F시리즈나 캐논의 EOS-1 미놀타의 알파 9같은 경우는 물론 성능도 성능이자만 프로들이 극한의 상황속에서도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내구성을 강화시킨 제품이다 보니 가격이 비싼것이지 그걸로 찍는다고 좋은 사진이 나오는것이 아니지만 그래도 견물 생심이라고 많은 이들이 최고급 카메라와 렌즈와 목을 매단다고 생각됩니다.
가끔 목에 플레그쉽 카메라와 무겁고 비싼 렌즈를 가지고 아이들을 찍는 아빠 사진사를 보는데 그 무게를 주체못해 힘들어 하는것을 종종 보는데 가벼운 똑딱이 디카 하나 들고 아이들의 즐거워하는 모습을 찍는것이 더 낫지 않을까 싶습니다.
된장님 늦었지만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

파란놀 2011-01-05 15:58   좋아요 0 | URL
나중에라도 깨달아 주면 좋지요. 무거운 사진기가 더 예쁜 사진이 나오도록 하지 않는걸요. '화각'을 잘 살리면서, 아이가 예쁜 모습을 잘 잡아채면 좋은 사진이 되는데~
 

나. 글쓰기 삶쓰기 ㉠ 말을 가꾸고 글을 일구기


 말사랑벗님은 글쓰기 숙제를 얼마나 하는가요. 책을 읽고 나서 느낌글을 쓰라는 숙제나, 일기를 쓰라는 숙제나, 어디 현장학습 다녀와서 보고서 쓰라는 숙제 들을 하는지요?

 저는 초·중·고등학교 열두 해를 다니는 동안 글쓰기 아닌 글짓기 숙제를 몹시 많이 하며 살았어요. 국민학교라는 이름이 붙은 초등학교 여섯 해를 다닐 때에는 무엇보다 일기쓰기가 가장 벅찼습니다. 그때 일기는 한 주에 세 번 넘게 써야 매를 안 맞았어요. 한 주에 사흘치를 썼더라도 일기를 쓴 길이가 일기장 한쪽 2/3를 넘지 않으면 안 쓴 셈치고 똑같이 매를 맞았고요. 한 주에 너덧새는 일기를 쓰라는 소리를 들었고, 한 주에 예닐곱 날치 일기를 쓴 아이들은 선생님이 따숩게 머리를 쓰다듬으며 저 같은 동무들한테서 부러움을 샀어요.

 다달이 느낌글 쓰기가 아닌 독후감 숙제를 해야 했고, 두어 달에 한 차례씩 반공 글짓기를 하면서 웅변처럼 발표를 해야 했습니다. 한 달 걸러 과학 글짓기를 하고, 군인 아저씨께 올리는 위문편지를 쓰는 한편, 부모님께 띄우는 효도편지를 써야 했어요. 게다가 한 해에 몇 차례씩 동시쓰기까지 했어요. 방학을 맞이하면 방학숙제로 여행글 쓰기까지 해야 했습니다. 제 둘레에는 가난한 동무가 많아 여름이고 겨울이고 방학이라 해 보았자 어디 나들이 다니지 못하는 아이가 많았기에, 다른 글보다 여행글 쓰기를 아주 힘들어 했습니다.

 한편, 날마다 받아쓰기를 하고, 교과서 베껴쓰기 숙제를 했어요. 히유, 이제 와 돌아보면 그때 학교를 어떻게 꾹 참고 다녔나 모를 일이에요. 숙제만 해도 한 가득인데요. 중학교에 들어서자 ‘깜지’라는 이름으로 손목이 달아날 만큼 힘겨운 베껴쓰기 숙제를 날마다 수없이 해야 했습니다. 초등학생 때에 교사들이 베푸는 매질은 가벼운 어루만짐이라 느낄 만큼, 중학생 때부터는 큼직한 나무몽둥이에 골프채에 밀걸레 자루에 곡괭이 자루에 야구방망이에 …… 선생님들은 매타작을 하러 학교에 나오는가 싶도록 ‘베껴쓰기 숙제 안 한 아이를 두들겨패며’ 하루를 보냈어요.

 열두 해에 걸쳐 학교를 다니는 동안 이처럼 매질하고 글짓기가 어우러지다 보니, 제 동무들 가운데 ‘글 좀 쓰라’는 이야기를 달가이 맞아들이는 녀석은 거의 없어요. 다들 몸서리를 쳐요. 글을 어떻게 쓰느냐는 둥, 글을 왜 쓰느냐는 둥 이야기합니다. 말사랑벗님들이 다니는 학교에서는 어떠한가 궁금하네요.

 가만히 돌아보면, 글을 써서 내 마음을 나타내는 일은 몹시 뜻이 있습니다. 쓸모가 있고 보람이 있어요. 그렇지만 글을 써서 내 마음을 이웃하고 나누도록 즐거이 이끄는 몫을 우리네 학교에서는 제대로 맡지 못했어요. 제가 학교를 다니던 때에는 한 반에 아이들 숫자가 지나치게 많기도 했고, 교사마다 주어진 행정업무 짐이 참 컸습니다. 그러나, 이와 맞물려 더 벅차며 무거운 짐이나 굴레는 대학입시가 아니었을까 싶어요. 학교며 사회며 정치며 문화며 온통 ‘더 이름나고 훌륭하다는 대학교로 보내는 일’에 얽매였으니까요.

 저는 고등학생 때 릴케 시집이나 황순원 소설책을 선생님한테 빼앗기곤 했습니다. 학교에서는 교과서와 참고서 아닌 책을 가방에 넣고 다니면 모조리 ‘불온도서’로 여겼어요. 지난해였나, 우리나라 국방부에서 불온도서를 스물 몇 가지인가 꼽으며 이런 책을 군인한테 읽히지 못하도록 한 적 있는데, 이 불온도서 가운데에는 동화쓰는 권정생 할아버지가 쓴 《우리들의 하느님》 같은 책도 끼었어요. 그저 우리한테 ‘첫손 꼽는 대학교에 들어갈 생각만 하라’고 짓누르는 흐름이 아직까지 이어지는 모습이라 할까요. 초등학교부터 아이들을 짓누르고 길들이면서 홀가분하거나 너그러운 마음꽃이 피지 못하도록 가로막았다고 할까요. 아니, 초등학교에 앞서 어린이집이나 유치원부터 영어를 가르치고 갖가지 지식그림책과 과학동화를 읽히니까, 모두 똑같은 틀에 똑같은 생각에 똑같은 눈길로 살아가도록 옥죈다고 할까요.

 좋은 책 하나를 좋은 넋으로 읽으면 좋은 삶을 일구는 밑거름을 넉넉히 다스리는 데에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애 아빠인 저부터 학교를 다니는 말사랑벗까지, 누구나 좋은 책 하나로 좋은 넋을 보듬고 좋은 삶을 일구면서 하루하루 아름다이 여미면 즐겁습니다. 이처럼 좋은 삶이라 느끼며 하루하루 아름다이 여밀 때에, 이 같은 결과 무늬와 빛깔이 내 넋으로 곱게 아로새겨지고, 내 넋이 곱게 아로새겨질 때에 내 말 또한 곱게 아로새길 수 있습니다.

 글쓰기를 한다고 할 때에는, 머리로 이 생각 저 생각 쥐어짜서 글을 써서는 내가 읽어 보아도 따분하며 싱거운 글만 쏟아지지만, 나 스스로 내 삶을 좋아하거나 사랑하는 가운데 꾸밈없이 한 줄 두 줄 적바림하노라면, 내가 내 글을 읽으면서 빙긋 웃거나 뚝뚝 눈물을 흘려요. 가슴으로 책을 읽듯이, 가슴으로 글을 씁니다. 가슴으로 책 줄거리를 받아들이듯이, 가슴으로 내 삶을 일구면서 이 이야기를 글로 담아요. 말을 가꾸는 일이란 삶을 가꾸는 일이고, 삶을 가꿀 때에 바야흐로 빛나는 말 하나 알뜰살뜰 얻어요. 글을 일구는 일이란 삶을 일구는 일이고, 삶을 일굴 때에 비로소 알찬 글 하나 기쁘게 얻습니다.
 

(최종규 . 2011 -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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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선뎐
김점선 지음 / 시작 / 2009년 3월
평점 :
절판




 사랑을 읽는 삶과 책과 사람
 [책읽기 삶읽기 33] 김점선, 《점선뎐》



 책이란 줄거리읽기가 아닌 삶읽기입니다. 책이란 지식쌓기가 아니라 이야기나눔입니다. 책이란 정보찾기가 아닌 마음읽기입니다.

 어느 책 하나를 읽으면서 줄거리를 헤아리기만 한다면 참으로 덧없습니다. 흔히들, 초·중·고등학교에서 아이들한테 책을 읽히고 나서 독후감을 쓰도록 하는데, 이 독후감이라는 글을 읽으면 하나같이 줄거리를 간추려 줄줄줄 늘어놓기만 합니다. 한자말 ‘독후감’이란 “읽은 다음 느낌”을 뜻하는데, 정작 아이들한테 독후감을 쓰라 하는 어른들부터 독후감이 어떻게 써야 하는 글인 줄 제대로 모릅니다. 차라리, 우리 말로 쉽게 ‘느낌글’을 쓰라 이야기한다면, 아이들도 줄거리 간추리기에 허덕일 일은 좀 줄지 않으랴 싶습니다.

 그렇지만, 이름만 느낌글로 고쳐서 쓴다 한들, 독후감이든 느낌글이든 책을 읽고 나서 글 하나를 쓴다 할 때에, 또는 신문이나 잡지 같은 데에서 ‘책 소개 기사’를 싣는다 할 때에 보면, 어김없이 줄거리 늘어놓기에서 허덕입니다.

 어느 책 하나를 찾고 장만하여 읽어서 얻는 삶이란 고작 줄거리에 머물 뿐인 오늘날 대한민국입니다. 책 하나 읽으며 아름다운 삶을 만났다는 느낌글을 찾아 읽기 너무 힘듭니다. 책 하나 읽으면서 글쓴이하고 살가이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느낌글을 마주하기는 너무 어렵습니다. 책 하나 읽고 난 다음, 글쓴이뿐 아니라 내 둘레에서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하고 마음읽기와 마음얘기를 나누도록 새로 태어나는 사람은 몹시 드뭅니다.


.. 동료가 훌륭할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그것은 곧 내 또래도, 그래서 나 자신도 훌륭할 수 있다는 느낌이었다. 사물을 독자적으로 느끼고 표현하는 일, 그것은 훌륭한 일이고, 칭찬받는 일이라는 것을 그때 알게 되었다 … 시골사람들은 그걸 자선이라고 부르지도 않는다. 너무나도 당연히 나누어 먹는다. 무엇이든 나눈다. 정보도 나누고 우환도 나눈다. 그런 나눔 문화는 취미생활이나 여가활동이 아니다 ..  (37, 216쪽)


 그림쟁이였던 김점선 님 발자국을 찬찬히 아로새긴 책 《점선뎐》을 읽었습니다. 김점선 님은 당신이 그리고픈 대로 그림을 그렸다 합니다. 김점선 님은 당신이 살고픈 대로 한삶을 보냈다 합니다.

 김점선 님 그림이 좋은지 안 좋은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저로서는 딱히 제 마음이나 눈길을 사로잡는 그림이 아니라 더욱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누구 그림을 흉내내어 그렸다고는 느끼지 않아 반갑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그림이라 해서 더 훌륭한 그림일 수 없어요. 제가 안 좋아하거나 몰라보거나 눈길을 안 두는 그림이라 해서 덜 떨어지거나 형편없는 그림일 수 없습니다. 그저 그림은 그림입니다.

 김점선 님이 꾸린 삶 또한 ‘좋다 나쁘다’라 잘라말할 수 없습니다. 김점선 님 삶은 그예 김점선 님 삶입니다. 김점선 님 스스로 좋아하는 대로 즐겼다고 흙으로 돌아간 삶이면 넉넉합니다. 아쉬울 대목이란 슬플 대목이란 서운할 대목이란 없습니다. 스스로 좋아하는 길을 따라 씩씩하고 힘차며 슬기롭게 걸어가면 될 삶입니다.


.. 그전까지 어른들이 내 앞에서 자기 자신을 조금이라도 낮춰 본 적이 없었다. 어른들은 한결같이 의욕에 차서, 욕망에 부풀어 터질 듯한 모습이었다. 그때까지 어른들은 나를 어린아이 취급하면서, 너희들이 뭘 아니 하면서 잘난 체하든지, 나를 소외시키든지 했었다 … 내가 실컷 놀고 들어가서 져넉 밥상머리에서 오늘은 이런저런 놀이를 했다며 즐겁게 떠들면 어머니는 자기도 어려서 그런 놀이를 했었는데 아주 신이 났었다고 하셨다. 나는 그런 어머니가 친구같이 여겨져 아주 기분이 좋았다 … 나는 우리 나라에서 활기차게 아무 데나 다니면서 아무나 만나면서 천진난만하게 살고 싶다 ..  (51, 61, 310쪽)


 책이란 내가 좋아하는 삶에 걸맞게 찾아서 만나는 읽을거리입니다. 내가 좋아하지 않는 삶을 억지스레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에 꾸릴 수 없습니다. ‘뜻을 이룬다(성공)는 생각으로 이름을 얻으려고 하기 때문’에 자꾸 엉뚱한 데로 흐르도록 한다면 참 안쓰럽습니다. 한 나라에서 손꼽히는 그림쟁이가 되어야 할 까닭이 있을까요. 온누리에 첫손 꼽히는 그림쟁이로 사랑받아야 할 까닭이 있나요.

 나는 내 삶터에서 내 그림을 좋아하며 내 삶을 사랑하는 사람이면 넉넉합니다. 김점선 님은 다른 사람 말고 김점선 님 스스로 당신 삶을 사랑하며 당신 그림을 좋아하면 넉넉합니다.

 《점선뎐》이라는 책, 이른바 김점선 님 자서전은 당신 스스로 죽음이 곧 다가왔구나 하고 깨달으며 허물없이 털어놓은 이야기책입니다. 김점선 님 스스로 당신 삶을 참다이 사랑했는지, 거짓스레 사랑한다 말했는지, 아쉬움은 있는지, 얼마나 즐거운 삶이었는지를 곰곰이 돌아보며 적바림한 일기장입니다.


.. 홀로 나의 길을 가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스스로 자신이 가장 원하는 짓을 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을 철학적인 사고체계 같은 거는 다 바다에 처넣어 버리고 그림 속으로 들어갔다 … 결국 그림도 생각을 벗어난 행위는 아니라는 것을. 오히려 생각을 더 많이 해서 생각이 가지게 되는 해석마저 제거해야 그림이 그려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 청년실업이 문제가 되는 세상이다. 지금의 청년들을 기른 어른들 자체가 일률적인 가치관이니 이 꼴이 된 것이다. 청년의 부모들이 오직 밥 먹고 사는 데 허덕이던 부모 밑에서 자랐기 때문이다 ..  (110, 111, 274쪽)


 책을 덮으면서 생각합니다. 김점선 님 이야기책은 그다지 대단하지 않습니다. 그림쟁이 한 사람 삶은 그리 놀랍지 않습니다. 어디에나 있는 흔한 삶이요 어디에서나 보는 여느 이웃입니다.

 박수근이면 어떻고 이중섭이면 어떠하겠습니까. 박수근이든 이중섭이든 김점선이든, 하나같이 내 곁에서 함께 살아간 이웃입니다. 또는 동무입니다. 때로는 동생이고, 누군가한테는 살붙이일 테지요.

 대단하다 싶은 사람이 쓰는 자서전이 아닙니다. 내 삶을 스스로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쓸 자서전입니다. 많은 사람들한테 널리 읽히려고 쓰는 자서전이 아닙니다. 나 스스로 내 삶을 돌아보며 내 한길이 얼마나 즐거웠는가를 짚어 보고자 쓰는 자서전입니다.

 자서전은 뉘우치는 책이 될 수 있고, 아쉬워하는 책이 될 수 있습니다. 삶이 저물고 죽음 문으로 들어서는 길목에서, 내 한삶을 되짚는 가운데 내 뒤에 선 숱한 사람들한테 한 마디 남겨 놓는 선물입니다. 막상 죽음을 코앞에 두고 보니, 내가 걸어온 길이 나한테 어떠하더라 하고 이야기를 걸면서, 한 사람이 살아가는 길에서 보배롭게 보듬을 대목이란 무엇이더라 하고 깨달은 여러 가지를 적바림하는 일기장입니다.


.. 무언가를 아끼고 무언가를 조심하느라 주춤거리고 그러면서 좋은 작품이 나오리라고 기대하는 자는 예술가가 아닌 협잡꾼이다 ..  (386쪽)


 김점선 님은 “대기업 앞에 길게 줄서는 청년들의 머리속에, 일류대학에 목맨 부모나 학생들의 머리속에 다른 꿈을 심어 줘야 한다(274쪽).”는 이야기를 남기며 삶을 마무리짓습니다. 생뚱맞은 이야기가 되려나요. 자서전이라는 글을 쓰면서 이 같은 이야기를 적는 사람은 좀 엉뚱하다 싶으려나요. 그렇다고 김점선 님이 제도권 교육을 나무란다든지 자율학습·보충수업 때문에 아이들이 얼마나 시들어 간다든지 하는 이야기를 잘 안다거나 손사래치는지는 알 노릇이 없습니다. 다만, 사람이 사람다이 살다가 사람다이 죽는 길을 즐거이 걷자면, 누구보다 당신과 당신 아이를 생각한다면, “대기업 앞에 길게 줄서는 청년들의 머리속에, 일류대학에 목맨 부모나 학생들의 머리속에 다른 꿈을 심어 줘야 한다.”는 말을 되뇔밖에 없다고 느낍니다.

 책을 읽는 삶은 사람을 읽는 삶입니다. 사람을 읽는 삶은 마음을 읽는 삶입니다. 마음을 읽는 삶은 사랑을 읽는 삶입니다. 대기업이든 공공기관이든 대학교이든 갤러리이든 청와대이든 모두 사랑이 아닌 돈입니다. (4344.1.5.물.ㅎㄲㅅㄱ)


― 점선뎐 (김점선 글·그림,시작 펴냄,2003.3.2./1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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