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과 우리 말 78] 봄이 왔다

 이오덕자유학교에서는 네 글자 “봄이 왔다.”를 붓으로 써서 문에 붙인다. 그래, 봄이 왔으니 봄이 왔다고 적어서 붙인다. (4344.2.11.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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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카밀로의 곤경
조반니노 과레스키 지음, 이선구 옮김 / 새남 / 1994년 12월
평점 :
절판


 (돈 까밀로 책을 우리 말로 처음 옮긴 이선구 님 번역이 아직 하나 살았네...)

다시 태어나는 책과 삶과 사람
― 조반니 꽈레스끼, 《명랑한 돈 까밀로》



- 책이름 : 명랑한 돈 까밀로
- 글 : 조반니 꽈레스끼
- 옮긴이 : 이선구(李璇求)
- 펴낸곳 : 가톨릭출판사 (1969.2.20.)



 조반니노 과레스키(조반니 꽈레스키·죠반니노 과레스끼) 님 책은 1969년에 처음 우리 말로 옮겨졌으나, 이 책은 그다지 많이 안 읽혔습니다. 천주교 출판사에서 나온 터라 천주교 믿는 분들 사이에서 조금 읽혔습니다. 1979년에 ‘백제’ 출판사에서 새옷을 입고 나오면서 비로소 널리 읽히고, 나중에 백제출판사가 문을 닫은 뒤 다른 출판사에서 거듭 펴내며 많이 읽힙니다. 조반니노 과레스키 님 문학은 《신부님 우리들의 신부님》 다섯 권이 끝은 아니지만, 우리 나라에는 이 다섯 가지 책 테두리에서만 머물고, 좀처럼 다른 문학과 삶을 들여다보는 쪽으로는 이어지지 못합니다. 《비밀일기》(막내집게,2010) 같은 책이 어렵게 우리 말로 옮겨지지만, 막상 이러한 문학을 알아보거나 곰삭이거나 맞아들이는 사람은 퍽 적어요.

 다시 태어나는 책만 다시 태어나고, 다시 읽히는 책만 다시 읽히며, 다시 팔리는 책만 다시 팔립니다.

 출판사도 먹고살아야 하는 만큼, 이 나라 출판사들은 (돈이 있건 없건) 안 팔리거나 덜 팔리거나 못 팔릴 책을 좀처럼 내놓지는 않습니다. 아무리 좋거나 훌륭하거나 아름답다 싶은 책을 내놓아야 하더라도, 먹고살 수 없을 뿐더러 돈이 없다면 좋든 훌륭하든 아름답든 거들떠보기 힘듭니다.

 오늘 바로 끼니를 굶는데 무슨 책을 사서 읽는다 하겠습니까. 오늘은 끼니를 때웠어도 이듬날 밥끼니가 걱정스러운데 무슨 영화를 찾아 보겠습니까. 이듬날 밥끼니는 때울 만하더라도 글피에는 잠자리가 마땅하지 않은데 무슨 노래를 부르겠습니까.

 요즈막 우리 삶은 온통 먹기·입기·잠자기에 푹 빠집니다. 어른은 어른대로 먹고 입으며 잠자기 고단하다 하고, 아이는 아이대로 먹고 입으며 잠자기 팍팍하다 합니다. 아이들을 낳고 키우기보다는 아이들을 학교와 학원에 보내느라 등허리가 휩니다. 식구들과 살가이 얼크러지기보다는 회사나 공장에 붙들리느라 다른 데에는 마음을 쏟지 못합니다.

 갓 태어난 아이가 어느덧 일고여덟 살이 되고, 어느새 열다섯 살을 지나며, 금세 스물일곱을 지나, 서른다섯 마흔다섯 쉰다섯을 휙휙 달립니다. 이윽고 예순 일흔 여든 고개에 접어들자니, 끽 하고 꺾여 스러집니다. 한삶을 너무 바삐 아주 빨리 달리고 맙니다. 어릴 적에는 돈버는 솜씨를 기르자니 바쁘고, 나이들어서는 돈버는 살림에 매여 빠듯합니다. 참말 복닥복닥 어수선하니까 책이고 뭐고 없습니다. 참으로 고단하며 지치니까 문화이고 예술이고 나 몰라라, 아니 냇물 너머 불구경, 아니 먼 나라 다른 사람 일입니다.


.. 내가 지금부터 하려는 이야기의 주인공인 돈 까밀로 신부가 살고 있는 조그만 세계는 뽀오 강 어느 아늑한 골짜기에 박혀 있다. 그것은 저 허리띠처럼 길게 늘어진 북쪽 이태리 가운데 어느 마을이라고 생각해도 좋다. 뽀오 강과 아빼닝 산맥 사이에 있는 그 고장은 기후가 항상 똑같다. 따라서 풍경도 변화가 없다. 그러나 강냉이와 삼을 가꾸는 농촌들은 저마다 자기의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  (5쪽)


 한갓지거나 돈이 넘치는 사람이 읽는 책이 아닙니다. 한갓진 사람은 책을 읽지 않습니다. 돈이 넘치는 사람 또한 책을 가까이하지 않습니다. 한갓지지 않은 사람이 책을 읽고, 돈이 적은 사람이 책을 가까이합니다.

 이름이 있거나 이름을 날리는 사람은 책을 안 읽습니다. 이름이 없거나 이름을 드날릴 생각을 않는 사람이 책을 읽습니다.

 힘세다며 주먹을 휘두르는 사람들, 이른바 권력자는 책을 읽을 까닭이 없습니다. 힘여리기에 주먹은커녕 아무런 무기조차 들지 않는 사람들, 이를테면 수수한 여느 사람은 종이책이 아닌 사람책을 읽습니다. 종이에 직어야만 책이 아닙니다. 한 사람 몸과 마음에 아로새긴 이야기 또한 책입니다. 수수한 여느 사람들은 서로서로 이웃이나 동무가 되어 도란도란 삶책을 나눕니다.

 대단할 이야기를 담는 책이 아닙니다. 참으로 하잘것없거나 보잘것없는 이야기를 담는 책입니다. 흔하디흔한 이야기가 아닌 수수한 이야기를 담는 책입니다. 하찮다 싶다고들 하는 작디작은 이야기를 담으나, 이 작디작은 이야기란 투박하면서 조촐합니다. 누구나 겪되 누구나 다르게 부대끼는 삶을 담는 이야기입니다.

 내 옆지기와 밥상을 마주하며 한 마디 두 마디 나누는 이야기가 사랑스러울 때에, 내 아이와 밥상을 마주하며 한 마디 두 마디 주고받는 이야기가 사랑스럽습니다. 오순도순 나누는 이야기를 애써 글로 갈무리해서 일기로 남기거나 책으로 엮을 수 있습니다. 도란도란 나누는 이야기로 흐뭇하기에 그저 이야기꽃 피우는 나날을 고이 이으면서 조용히 흙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그야말로 “저 허리띠처럼 길게 늘어진 북쪽 이태리 가운데 어느 마을” 어디에서나 사랑스러운 이야기가 태어납니다. 그야말로 서울 아닌 시골자락 어느 마을 누군가한테서나 사랑스러운 이야기가 샘솟습니다.

 나날이 돈되는 종이책만 자꾸 다시 태어나지만, 나날이 돈되는 일거리만 붙잡는 사람으로 자꾸 길들여지지만, 사랑을 담은 사랑책과 삶을 담은 삶책과 사람을 담은 사람책은 언제 어디에서나 가만히 피고 지며 바람에 흩날립니다. 햇살을 받으며 방긋 웃습니다. (4343.2.11.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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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규항 님과 진보집권플랜


 김규항 님이 〈한겨레〉라는 신문에 “좀더 양식 있게”라는 글을 실었단다. 이 글에서 오연호 님과 조국 님이 낸 책이름 《진보집권플랜》을 걸고 넘어진다. 걸고 넘어질 수밖에 없는 책이름이니 마땅히 걸고 넘어져야 한다. 나는 이런 엉터리 이름은 아예 걸고 넘어질 값이나 뜻이나 보람이 없다고 느꼈다. 누리신문 〈오마이뉴스〉는 처음부터 진보신문도 좌파신문도 개혁신문도 민주신문도 아니었으니까. 그러나 보수신문이나 우파신문이나 수구신문이나 짝퉁신문이나 상업신문도 아니다. 그냥 ‘서울 지식인 신문’쯤이라고 하면 될까. 김규항 님은 오연호 님이나 조국 님을 일컬어 ‘개혁적인 중산층 엘리트’라고 하지만, ‘개혁적’과 ‘엘리트’라는 낱말은 걸맞지 않다. ‘중산층’ 하나는 걸맞는다고 느낀다. 이명박 정권을 나무라고 노무현 정권을 추켜세운대서 개혁이지 않다. 무엇을 나무라고 무엇을 추켜세우는가를 돌아보면서 개혁이 참다운 개혁인가 아닌가를 살펴야 한다. 어떤 삶을 바라보면서 이러한 ‘삶바라기’가 참으로 개혁다운가 아닌가를 돌아보아야 한다.

 생각해 보면, 모든 부질없는 말놀이는 다들 ‘서울에서 살아가기’ 때문에 생겨난다고 느낀다. 서울에 몰려들어 서울에서 오글오글 권력다툼 이름다툼 돈다툼을 하니까 불거지는구나 싶다.

 가만히 보면 ‘진보 집권’이든 ‘개혁 집권’이든 ‘민주 집권’이든 걸맞지 않다. ‘서울 집권’일 뿐이다. 서울에서 서울시장이나 서울에서 정치하는 사람들 몸짓 발짓 손짓에 따라 춤을 춘다. 큰 틀에서 볼 수 있다면, 조선일보이든 한겨레이든 중앙일보이든 경향신문이든 온통 ‘서울신문’이다. 매일경제이든 파이낸셜뉴스이든 오로지 ‘서울신문’이다. 서울에서 정치하고 장사하며 문화하고 철학하는 사람들 이야기만 다루는 신문들이다.

 기자와 지식인과 교수와 운동가와 시민단체가 ‘서울 아닌 한국땅’에서 ‘서울사람 아닌 지역사람’으로서 살아간다면, 진보집권플랜처럼 껍데기만 잘 씌운 빈수레 이야기는 나올 까닭이 없을 뿐 아니라, 이런 책을 옳게 못 읽는 사람 또한 없으리라 생각한다.

 김규항 님은 서울 또는 서울 둘레에서 살아가지만 서울바라기가 아니다. 이리하여, 진보집권플랜 같은 이름과 책과 속살을 이럭저럭 옳게 짚거나 읽는다. 서울 또는 서울 둘레에서 안 살더라도 서울바라기와 같은 삶매무새라면 진보집권플랜이 뒤집어쓴 껍데기를 알아채지 못한다. (4344.2.11.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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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잘 읽어 주는 사람


 책을 잘 읽어 주는 사람은 꼭 있다. 사진을 잘 헤아리는 사람 또한 반드시 있다. 그리고, 책을 잘 못 읽거나 사진을 엉뚱하게 헤아리는 사람은 늘 있다.

 내가 쓴 글을 잘 읽어 주기에 이이를 고맙게 여겨야 하는가. 내가 찍은 사진을 옳게 헤아리기에 이녁을 살가이 마주해야 하는가. 내가 쓴 글을 잘 못 읽었기에 이이를 불쌍히 생각해야 하는가. 내가 찍은 사진을 엉터리로 살피기에 이녁하고 등을 돌려야 하는가.

 사람들은 누구나 스스로 살아온 결에 따라 사람을 본다. 머리에 든 지식으로 사람을 보려 한다면, 이 사람은 그동안 지식을 머리에 가득가득 쌓는 삶을 꾸렸다는 소리이다. 주머니에 든 돈으로 사람을 재려 한다면, 이 사람은 이제껏 주머니에 돈을 그득그득 채우는 삶을 일구었다는 뜻이다.

 스스로 살아가는 매무새가 아닌 매무새로 사람을 맞이하거나 마주하거나 맞아들이지 못한다. 스스로 착하게 살아가는 사람은 착하게 이웃이나 동무를 사귄다. 스스로 올바로 살아가는 사람은 올바르게 이웃이나 동무를 사귄다. 스스로 참다이 살아가는 사람은 참답게 이웃이나 동무를 사귄다.

 사람은 삶으로 보아야지 얼굴이나 몸매나 옷차림으로 볼 수 없다. 사람은 사랑으로 만나야지 주먹이나 주머니나 주민등록증으로 볼 수 없다. 사람은 그저 사람으로 사귄다. 사람 아닌 이름값으로 사귈 수 있을까. 나 스스로 이름값으로 사람을 사귈 때에는 나한테 다가오는 사람 또한 이름값으로 다가올밖에 없다. 나부터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서 나한테 다가오는 사람이 다르다.

 내가 읽는 글이나 책이란 내가 즐기며 좋아하는 삶에 걸맞는 글이나 책이다. 훌륭하다는 책이나 거룩하다는 책이나 아름답다는 책이 아니라, 내가 즐기며 좋아하는 삶에 걸맞게 내가 읽을 글이나 책을 고르기 마련이다. 온누리에는 훌륭한 책이나 거룩한 책이나 아름다운 책은 없다. 즐기는 책과 좋아하는 책과 사랑하는 책이 있을 뿐이다.

 누구나 스스로 살아가고 싶은 길대로, 누구나 스스로 살아가는 오늘 하루대로, 누구나 스스로 꿈꾸거나 바라는 모양대로, 책 하나 골라서 장만하여 읽는다.

 글이나 책을 잘 읽어 주는 사람은 글이나 책에 앞서 사람을 잘 읽어 주고 사랑과 삶을 잘 읽어 주는 사람이다. 글이나 책을 잘 못 읽어 주는 사람이라면, 글이나 책에 앞서 사람과 사랑과 삶을 잘 못 읽어 주는 사람이다.

 마음이 맞는 벗이 고맙고, 나 스스로 마음이 맞는 좋은 벗으로 살아가고 싶다. 마음을 읽는 사람이 사랑스럽고, 나부터 마음을 읽는 사람으로서 사랑스럽고 싶다. 그렇지만 참 어수룩하다. 참 어수룩하니까 꿈을 꾸고, 꿈을 꾸는 대로 살아간다. (4344.2.11.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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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팔꿈치와 책읽기


 요사이 오른팔꿈치가 새삼스레 다시 저리다. 한동안 잊고 지내던 오른팔꿈치인데, 요사이 오른팔을 쓸 일이 많았을까. 아니면 몸이 힘들기에 오른팔꿈치도 다시금 찌릿찌릿 저리는가. 병원에 가 보면 금세 나을 오른팔꿈치일는지 모른다. 그렇지만 병원에 간다 한들 달라질 수 없는 오른팔꿈치일는지 모른다. 그저 앞으로 살아가는 동안 죽 안고 지내야 할 내 팔꿈치이고, 더 다치거나 도지지 않도록 알뜰히 건사해야 할 테지. 그런데 둘째를 낳아 두 아이를 데리고 다녀야 할 때면 이 팔꿈치는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아이를 안거나 업는다 해서 팔꿈치가 저리지는 않는다. 아마 손빨래 때문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만, 손빨래를 안 한대서 오른팔꿈치가 좋아질 수 있다고 느끼지 않는다. 도서관 책을 나르거나 옮기거나 갈무리하지 않는대서 이 팔꿈치가 나아지겠는가. 사진기를 쥐지 않거나 글을 안 쓴다면 이 팔꿈치가 안 아플 수 있겠는가.

 아프니까 아픈 채 살아간다. 고단하니 고단한 채 지낸다. 배고프면 배고픈 대로 산다. 그렇지만 배고프면 살기 어려우니까 밥을 먹으려 애쓰고, 끼니를 이으려 용을 쓴다. 아픈 데는 틈틈이 주물러 주고, 아픈 옆지기 또한 틈틈이 몸 곳곳을 주물러 주면서, 집안을 조금이나마 치워야 한다. 몸이 고단하거나 지치더라도 아이하고 놀아 주거나 아이한테 그림책 읽는 틈을 내어야 한다.

 날마다 이래저래 밀리거나 쌓이는 일이 많다. 날마다 조금이기는 하고 모자라기는 하나 이럭저럭 하는 일도 있다. 밀리는 일이라 해서 서운해 할 까닭이 없다. 나는 내 몸과 마음을 고스란히 받아들이면서 내 걸음걸이대로 걸어가면 된다. 할 수 있으면 하고, 할 수 없으면 못한다. 할 수 있으니 꾸준히 하고, 할 수 없으니 손을 놓을는지 모르지만, 할 수 없더라도 조금은 건드려 본다. 하다가 안 되기에 도와주면 고맙겠다는 말을 꺼내고, 할 수 없기에 해 달라고 비손을 한다.

 내 몸 팔꿈치가 오롯하거나 튼튼하기만 하다면 내 삶은 어떠했을까. 몸 여러 곳이 쑤시고 결리며 저리지만, 이렇게 몸 곳곳에서 아픈 소리를 내니까 서툰 꿈을 덜 꿀 수 있지 않느냐고 여긴다. 몸 곳곳에서 아픈 소리를 내니, 나보다 힘들 옆지기가 둘째를 더욱 사랑스레 보듬도록 옆에서 북돋우지 못하지만, 내 몸이 한결 튼튼했다면, 아픈 사람 아픈 몸이나 마음을 더 못 느끼거나 안 느낀 채 집 바깥으로만 맴돌려고 했으리라 본다. 팔꿈치가 아프니 멧골집에 고맙게 머물면서 이제껏 그러모은 책을 되읽고 다시 읽는다. (4344.2.11.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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