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하는 어린이


 지난 토요일에 충주로 와서 여러 날 보낸다. 집에는 날마다 한두 차례 전화를 건다. 집으로 전화를 걸면 세 차례 가운데 두 차례 아이가 받는다. 전화 울리는 소리가 한 번이나 두 번 될 즈음 잽싸게 받는다. 전화를 받은 첫째 아이는 쉬지 않고 이야기꽃을 피운다. 아는 말 모르는 말 끝없이 늘어놓는다. 그동안 짐 꾸리느니 짐 푸느니 벽종이 바르느니 밥하느니 청소하느니, 아이 눈빛 마주보면서 아이가 사랑스러이 말을 배우고 삶을 느끼도록 하지 못했다고 아주 깊이 깨닫는다. 집에 전화를 걸어 네 살 아이와 이야기를 나눌 때에는 오직 이 아이만 생각한다. 오직 네 살 아이 목소리만을 듣고 네 살 아이가 어떤 몸짓으로 전화기를 붙잡고 수다꽃을 피우는가를 헤아린다. 네 살 아이는 제 어머니랑 아버지가 여느 때에 쓰는 말로 제 삶과 꿈을 나타내는 어린이말을 삼는다. (4344.11.8.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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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삿날 걸레 빨기


 어제 낮, 충청북도 충주 멧골집 살림짐 꾸리기를 마무리짓는다. 여태껏 숱하게 살림집을 옮기면서 짐차 들어오기 앞서 모든 짐을 다 꾸린 적은 처음이다. 언제나 이삿날까지 짐을 다 꾸리지 못해 허둥지둥했다. 이제 처음으로 아주 느긋하게 이삿날을 맞이한다.

 내가 더 많이 땀흘리고 더 많이 품을 들였으니까 살림짐 꾸리기를 마무리지었다고 할 수 없다. 먼저, 옆지기가 아이들하고 새 보금자리에서 씩씩하고 즐거이 여러 날 지낸다. 다음으로, 옆지기 아버님과 어머님이 자잘하며 손 많이 가는 일을 기꺼이 해 주셨다. 내 둘레 좋은 사람들이 크고작은 손길을 보태어 우리 도서관 새로 여는 일에 큰힘이 되어 주었다. 이 모두가 어우러지기에 나는 아주 홀가분하게 책짐과 살림짐을 꾸렸고, 오늘 새벽 드디어 이 짐꾸러미를 커다란 짐차에 가득 싣고 새 보금자리로 떠날 수 있다.

 옛 멧골집에서는 물을 쓰지 못한다. 물을 쓸 수 있으면 걸레를 바지런히 빨아 집 청소를 할 텐데, 물을 쓸 수 없으니 먼지만 얼추 훔치고 만다. 나중에는 흙먼지를 한쪽으로 몰아 놓기만 한다. 여관으로 걸레 여덟 장을 챙겨 온다. 여관에서 몸을 씻으며 걸레 여덟 장을 빤다. 짐을 꾸리며 한 번도 못 빨며 쓰던 걸레였기에 시커먼 구정물이 끝없이 나온다. 한참을 빨아 구정물이 거의 안 나오도록 한다. 여관 방바닥에 가지런히 펼친다. 걸레들은 금세 마른다. 비닐봉지에 주섬주섬 담는다. 이제 이 걸레들은 새터에서 짐을 끌르며 다시 제몫을 해 주겠지. 고맙다. (4344.11.8.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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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은 책 누리기


 좋은 책을 누릴 줄 안다면, 둘레 사람들한테 좋은 책에 서린 좋은 넋을 차근차근 나눌 수 있어요. 좋은 책을 누리지 못한다면, 나부터 좋은 넋을 북돋우지 못하고, 내 둘레 사람들한테 좋은 넋이 서리는 책을 나누지 못해요.

 내가 좋은 꿈을 사랑하면서 살아갈 때에는, 따로 온 마디 즈믄 마디 말을 읊지 않더라도 좋은 꿈이 내 둘레 사람들한테 시나브로 스며들어서 예쁘게 태어나요. 내가 좋은 꿈하고는 동떨어진 채 사랑 없이 살아갈 때에는, 따로 온 마디 즈믄 마디 말을 그럴듯하게 읊거나 외친다 하더라도 내 둘레 사람들 누구나 좋은 꿈을 조금도 받아들이지 못해요.

 좋은 삶이라면 좋은 책을 마다 할 수 없지만, 좋은 삶이라면 스스로 좋은 책을 알아채고 느껴요. 좋은 삶이라면 내 오늘 하루가 온통 좋은 이야기책이에요. 좋은 삶이라면 내 좋은 삶을 이루는 좋은 사랑으로 좋은 마음이 책씨처럼 싱그러이 새로 자라나요.

 좋다고 하는 책을 열·백·천·만 권 선물받거나 장만한다 하더라도, 내 하루를 오늘부터 좋은 사랑으로 보듬지 않는다면, 나한테는 무거운 책짐만 잔뜩 생기고 말아요. 삶은 삶꿈이에요. 삶은 삶짐이 될 수 없어요. 삶은 삶사랑이에요. 삶굴레가 될 수 없어요. (4344.11.8.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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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책짐을 나르려고 옛 집에 왔다. 잠은 여관에서 잔다. 옛 집은 보일러를 쓸 수 없고 물도 쓰지 못한다. 참 딱하다. 그러나 어쩌는 수 없지. 집으로 돌아가면 주문할 생각에 살포시 담아 본다. 2권으로 끝날는지, 2권에서 3권으로 이어질 새 이야기가 담길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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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일생 2
니시 케이코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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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1월 07일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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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는 말 75] 학교옷

 아이들이 중학교 들어갈 무렵 학교옷을 맞춥니다. 똑같은 모양과 빛깔로 맞춘 학교옷을 입은 아이들이 버스나 자가용이나 두 다리나 자전거로 학교에 갑니다. 옷을 똑같이 맞춘 만큼, 학교에서 이 아이들한테 베푸는 앎조각이란 모두 똑같습니다. 똑같은 대학교에 시험성적 더 잘 받은 아이가 들어가게끔 힘씁니다. 아이들은 학교옷을 똑같이 맞춰 입기에 한결 예뻐 보이는지, 아니면 학교 밖에서 미운 짓이나 못난 짓을 못하도록 가로막거나 지키거나 다스리려고 틀에 맞추는 셈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 아이들이 학교옷을 따로 맞추지 않을 때에도 끔찍한 입시지옥이 그대로 있을까 궁금합니다. 다 다른 아이들이 저마다 다 다른 옷을 입고, 다 다른 꿈에 걸맞게 다 다른 이야기를 다 다른 어른한테서 배울 수 있다면, 이리하여 다 다른 아이들이 다 다른 길을 씩씩하게 걸어가며 다 다른 삶을 예쁘게 일굴 수 있으면, 우리한테 대학교란 어떤 값이나 보람이나 뜻이 있을까요. 학교옷을 입고 운동장에서 뒹굴 수 없습니다. 땀내 물씬 나는 옷을 한 주 내내 입기 어렵습니다. 학교옷을 입고 논밭에서 일할 수 없습니다. 학교옷을 입고 바다에서 고기를 낚을 수 없습니다. 학교옷을 입고 어린 갓난쟁이 동생을 돌볼 수 없습니다. 학교옷 똑같이 입은 아이들은 회사원이나 공무원 되는 길만 걷습니다. (4344.11.7.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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