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속의 꼬마 인디언
루터 스탠딩 베어 지음, 배윤진 옮김 / 갈라파고스 / 2005년 3월
평점 :
절판


내가 참 좋아하는 환경책 가운데 하나인 <숲속의 꼬마 인디언>인데 아마 2쇄를 못 찍은 듯싶다. 더구나, 이 책은 '좋은 환경책'으로 뽑히는 일조차 아직 못 보았다고 느낀다. 이 밤에 문득 너무 슬프다고 느낀다. 2005년에 이 책이 나오자마자 사서 읽고 느낌글을 썼지만, 오마이뉴스에만 걸쳤을 뿐 아무 데도 올리지 않았던 옛글을 새로 손질해서 올려 본다. 부디, 늦게나마 이 책이 제대로 읽히며 받아들여지기를 꿈꾼다.....

 

 

‘혀 간수하는 법’을 못 배운 흰둥이
 [환경책 삶책] 루터 스탠딩 베어, 《숲속의 꼬마 인디언》


 - 책이름 : 숲속의 꼬마 인디언
 - 글쓴이 : 루터 스탠딩 베어(오타크테)
 - 옮긴이 : 배윤진
 - 펴낸곳 : 갈라파고스 (2005.3.19.)
 - 책값 : 8500원

 


 (1) 자연과 사랑


  해마다 오월이면 시골에서는 모내기가 한창입니다. 고속버스를 타고 서울이나 부산 같은 큰도시에서 조금만 벗어나더라도, 논마다 모를 심어 물 가득 댄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볕이 좋은 날이면 논물이 반짝반짝 빛나는 모습을 볼 수 있어요. 이제 시골은 더할 나위 없이 바쁜 철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모내기철은 지난날하고 견주어 무척 이르다고 합니다. 모내기는 보리를 다 거두어들이고 털고 밭을 간 뒤에야 했다고 하는데, 요사이는 거의 달포쯤 일찍 모내기를 한다고 할까요. 날씨와 철을 거스르고 그저 ‘빨리빨리, 많이많이’를 외치는 도시 물질문명 흐름이 시골 구석구석까지 스며들어 ‘얼른 심고 얼른 거두어 돈을 더 벌자’는 데로 이어진다고 할까요.


.. 우리는 자연에서 이런저런 것들을 모두 배워 나갔기 때문에 자연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우리는 자연을 사랑했다. 자연은 우리에게 편히 먹고 살아가라고 그 모든 것들을 풍성하게 내어주는 것 같았다 ..  (16쪽)


  맹자를 낳아 가르친 어머님은 아이가 자라는 삶터를 참으로 깊이 살펴야 한다고 일찌감치 깨달았습니다. 그래, 우리는 어릴 적부터 ‘맹자 어머니가 집을 세 차례 옮긴’ 이야기를 듣고 자라요. 그러면 요즈음 우리 모습은 어떠할까요? 아이를 낳는 어버이나, 아이를 낳지 않았지만 어른이 된 우리들은 둘레 삶터를 어느 만큼 생각하며 살아가나요?


  사람들이 착하게 어울리고 오순도순 사이좋게 지낼 수 있는 삶터라야 아이들이 사람답게 잘 클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곳에서 아이들이 서로서로 사이좋게 지내도록 북돋우는 어버이요 어른인가요? 더 이름높은 대학교에 잘 들어가도록 할 만한 터전이 되는 데에 아이들을 몰아넣는 어버이요 어른인가요?


  돈을 버는 일자리 얻는 어른들 일터를 보아도 이와 비슷합니다. 오늘날 삶터는 위와 아래와 옆에 누가 사는지 모르는 시멘트 도시입니다만, 일터 또한 옆 부서 사람도 모르고 옆 회사 사람도 모릅니다. 옆 가게에 누가 어떤 꿈과 사랑으로 일하는지 헤아리지 않아요. 옆 건물은 어떤 이야기 감도는 터전인지 살피지 않아요.


  어린이나 어른이나 둘레 삶터에서 ‘배울’ 수 있는 이야기나 ‘나눌’ 만한 사랑이란 없어요. 오로지 ‘남보다 돈을 더 많이 벌어서 더 빨리 성공하고 떵떵거리면서 아늑하게 사는 일이야’ 하는 대목만 되풀이합니다. 풀과 흙과 햇살과 냇물을 곁에 두면서 사랑을 배우던 마음(자연스러움을 배우는 마음)은 어느 결엔가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어요.


  《숲속의 꼬마 인디언》이라는 책을 읽으며 곰곰이 생각합니다. 이 책을 쓴 분은 “인디언들은 자연이 지혜롭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자연을 유심히 관찰하면서 자연의 현명한 법칙을 깨우쳤다(17쪽)”고 말합니다. 하늘을 보고 구름을 보고 해와 달을 보면 날씨를 알 수 있습니다. 바람이 촉촉한지 메마른지를 느끼면 날씨를 알 수 있습니다. 벌레와 새가 어떻게 움직이는가를 보아도 날씨를 알 수 있습니다. 그뿐인가요. 우리 옛사람들은 아주 오랜 옛날부터 풀과 열매와 나무를 찬찬히 살펴서 ‘사람이 먹어 좋은 푸나무 열매와 곡식’을 알아냈습니다. 이 모두 자연을 찬찬히 살펴보면서 얻는 슬기이자 깨달음입니다.


.. 백인들이 말을 길들일 때 보면 거칠고 잔인한 면이 있다. 그러나 우리가 말을 길들일 때에는 말에게 절대로 가혹하게 대하지 않았다. 온순하게 길들인 조랑말은 학대를 받으며 길든 녀석보다 훌륭했고 믿음직스러웠다 ..  (42쪽)


  “우리가 말을 잘 아는 만큼 녀석도 우리를 참 잘 이해했다”는 수우겨레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글쓴이는 “수우족에게는 욕도 없고 흉악한 말도 없다. 나는 백인들이 말몰이를 대대적으로 할 때마다 동물들에게 심한 욕을 하는 것을 보았다. 백인들은 혀를 간수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것 같다(48쪽)” 하고 덧붙입니다.


  참말, 지난날 흰둥이랑 오늘날 한겨레랑 엇비슷합니다. 너무 거친 오늘날 한겨레예요. 너무 메마르고 차가우며 쌀쌀맞은 오늘날 한겨레입니다. 어른도 어린이도 끔찍하게 거칠고 메마릅니다. 학교도 집도 마을도 학원도 회사도 국회의사당도 신문사도 방송국도 …… 어디를 보고 어디를 찾아가도 차가우며 쌀쌀맞습니다.


  ‘혀를 간수하는 길’을 배우지 못한 흰둥이들 맞습니다. 이들 흰둥이는 혀뿐 아니라 손도 제대로 간수하지 못합니다. 둘레 사람을 괴롭히고 끔찍하게 죽이는 무기를 엄청나게 만들어서 잘못도 죄도 없는 착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모질게 때려잡고 죽입니다. 흰둥이들은 머리 간수하는 길마저 배우지 못해서, 그 많은 책과 학문으로 이뤄낸 지식과 기술을 ‘온누리 여러 나라 사람들이 즐겁게 두루 나누는 데’에 쓰지 않고 돈만 많이 벌고 남보다 높고 큰 자리에 올라앉으려는 데에만 씁니다. 이를테면 경제학과 법학을 훌륭하게 공부한 이들이 이런 지식으로 ‘대기업 세금 안 내기’ 하는 일에 머리를 빌려주듯 말입니다.


.. 초원뇌조들이 아침 일찍 일어나서 떠오르는 해와 함께 춤을 추는 사실에서 나는 한 가지 교훈을 얻었다. 그것은 바로 새벽녘이야말로 생명체들이 하루 활동을 시작하기에 알맞은 시각이라는 점이다. 다시 말하면 밤새도록 춤을 추고서 해가 뜰 무렵 잠자리에 드는 건 좋지 않다는 것이다 … 인디언과 그들이 기르는 동물이 말이나 눈빛만으로도 서로 잘 헤아리는 사이라는 것은 신비로울 것도 없는 그저 자연스러운 일일 뿐이다..  (85, 202쪽)


  사람도 목숨이요, 짐승도 목숨입니다. 어느 목숨이든 햇볕과 함께 따사로운 사랑을 북돋웁니다. 햇살을 누리며 너그러운 꿈을 빛냅니다. 햇빛을 나누며 살가이 어깨동무를 합니다.


  ‘매질이나 손찌검’만 아이들을 괴롭히지 않아요. ‘막말이랑 거친 몸짓’으로도 아이들을 들볶아요. 돈으로도 아이들을 괴롭히고, 학벌과 학원과 시험공부로도 아이들을 닦달합니다.


  체벌은 ‘사랑스러운 매’가 아닌 ‘폭력’입니다. 체벌을 안 한대서 사랑이 되지 않습니다. 사랑을 해야 사랑이 됩니다. 밥을 안 굶긴대서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을 담은 밥을 차려야 사랑입니다. 예쁘장하게 옷을 입히고 자가용을 태운대서 사랑이지 않아요. 참으로 사랑스레 아이들을 얼싸안고 아낄 수 있을 때에 사랑이에요.

 


 (2) 자연과 사람


  아이들을 낳아 학교에 보내려 할 때에는, 더 낫다 싶은 교육법이라든지 교수법이라든지 학원이나 학교를 알아볼 수 있습니다. 어버이라면 누구나 이와 같으리라 생각해요. 그런데, 아이들한테 더 낫다 싶은 교재와 교육과 학교와 시설을 살피기 앞서, 어버이부터 스스로 더 나은 사람으로 거듭나려는 길을 찾는 분은 뜻밖에 몹시 드물구나 싶어요.


  아이들은 굳이 학교에 안 가도 되거든요. 아이들은 반드시 학원을 다녀야 더 똑똑해지거나 슬기롭게 거듭나지 않거든요.


.. 아이들은 자라면서 결코 호되게 비난을 받거나 심한 체벌을 받지 않았다. 그 까닭은 수우족 부모들이 아이들을 키우는 데 호된 질책이나 매질이 효과가 있다고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 아이들은 활과 화살 다루는 법을 익히기 전에 먼저 그것을 만드는 기술과 지식을 배워야 했다 ..  (18, 24쪽)


  책을 읽기 앞서 ‘무언가 읽을 때에는, 이렇게 읽은 이야기를 내 삶으로 받아들여 하나씩 즐거이 옮기는 몸가짐’을 익혀야 좋다고 느껴요. 책을 더 많이 읽는 일은 대수롭지 않아요. 한 권을 읽든 몇 쪽만 읽든, 즐겁게 받아들여 즐거이 살아갈 수 있어야 아름답다고 느껴요.


  언제나 그래요. 책을 읽는 됨됨이가 먼저예요. 책으로 얻는 지식과 기술은 나중이에요. 활과 화살 다루는 법을 먼저 익힌다면, 활과 화살을 잘못 쓰거나 나쁘게 쓸까 걱정스럽고 근심하고 말아요. 책을 읽어 지식과 기술을 얻는다고 할 때에도 ‘어떻게 쓸는지’를 배우지 못하거나 깨닫지 않는다면 엉뚱한 데에 쓰거나, 그저 지식과 기술만 머릿속에 잔뜩 집어넣고 말아요.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래요. 저를 낳아 기른 아버지와 어머니도 ‘어떤 일을 잘하기’보다는 ‘어떤 일을 왜 어떻게 하는지’를 먼저 몸으로 보여주었습니다. 누구나 처음에는 잘못하기 마련이고, 하다 보면 시나브로 익숙해지기 마련이에요. 그러니, 어떤 일이건 배움이건 기술이건, 이런 일이나 배움이나 기술을 몸에 익히는 까닭을 헤아리고 받아들여야 즐거운 삶으로 거듭나요.


.. 우리 부모님들은 우리에게 둘도 없는 스승이었다. 우리는 학교에 다니고, 학교를 마치고 나면 졸업장이라는 종잇장을 들고 집으로 돌아오는 식의 교육을 받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 나름의 훈련을 다 받고 나면, 스스로 살아나갈 수 있는 만반의 준비를 갖춘 셈이었다 ..  (62쪽)


  어버이는 아이들한테 ‘한 사람으로 우뚝 서서 살아가는 모든 길’을 가르치고 물려줄 사람이에요. 아이들은 어버이한테서 ‘한 사람으로 사랑스럽고 착하게 살아가는 좋은 길’을 배우며 이어갈 사람이에요.


  아이한테 말을 가르쳐 주는 사람은 바로 어버이입니다. 어버이가 어떤 말을 쓰느냐에 따라 아이들이 쓰는 말이 달라집니다. 어버이가 옳고 깨끗하며 아름다이 말을 하면 아이들도 아주 마땅히 옳고 깨끗하며 아름다이 말을 하기 마련입니다. 어버이가 그릇되고 잘못되며 비뚤어진 넋으로 일을 하면서 이웃을 괴롭힌다면, 아이들도 이 모습과 버릇을 따르고 배우기 일쑤입니다.


  어버이는 둘도 없는 스승이에요. 어버이는 가장 좋은 길동무예요. 어버이는 곁에서 늘 마주하는 이슬떨이예요. 어버이는 언제나 첫손으로 꼽을 살붙이예요.


  아이들 앞에서 둘도 없는 스승이 되어야 할 어버이예요. 아이들을 ‘공부 지옥’과 ‘시험 지옥’에다가 ‘학원 감옥’으로 옭아매어서는 안 될 어버이예요. 아이들이 저마다 슬기와 꿈과 사랑을 뽐내고 빛내는 길을 찾아야 할 어버이예요.


.. 백인들은 몸이 아프면 쓰디쓴 약을 먹고 비싼 약값도 지불해야 한다. 그러나 만일 백인이 인디언처럼 소박한 생활에 만족하고 살아간다면, 그들의 건강은 지금보다 훨씬 좋을 것이다. 그런데도 백인들은 자연을 업신여기며 살아가고, 그 결과로 어렵게 번 돈을 약값으로 쓰고 있다. 우리 인디언 의사들(주술사)은 가난하지만 백인 의사들은 부자다 ..  (109쪽)


  아름답게 살아야 좋은 나날이에요. 돈을 벌어 돈을 쓸 때에는 하나도 아름답지 못한 나날이에요.


  몸에 좋은 먹을거리를 큰돈을 주고 사서 먹는다는 요즈음이에요. 몸을 살리는 밥도 약도 뭣도 다 바깥에서 사다 먹는다는 오늘날이에요. 신문이나 텔레비전 광고를 수놓는 온갖 먹을거리 가운데 ‘우리 몸에 나쁘다’ 하는 먹을거리는 하나도 없겠지요. 가게에 가득 늘어놓은 먹을거리 가운데 ‘이것을 먹으면 우리 몸이 나빠져요’ 하고 외치는 먹을거리는 하나도 없겠지요. 그러나 오늘날 우리들은 병이 참 쉽게 납니다. 몸이 금세 지칩니다. 병원에 가고 약국에 갑니다.


  참 궁금합니다. ‘가공식품을 먹는다고 죽는 일이란 없다’고 하지만, 곰곰이 살피면, ‘가공식품을 먹는 사람은 천천히 죽음길로 가는 꼴’ 아닌가요. 몸속에 나쁜 것들이 차츰 쌓이면서, 아주 돌이킬 수 없는 죽음길로 가는 모양새 아닌가요.


  저마다 스스로 하고픈 일을 찾아서 돈을 번다고는 하지만, 오늘날 사람들이 저마다 일하는 곳을 스스로 아주 즐겁게 여기면서 ‘일하는 즐거움’을 맛보기는 하는지 몹시 궁금해요. 회사라 하니까 다니고, 어쩔 수 없이 얽매여, 이제는 이냥저냥 길들여진 채 도시에서 돈벌이 쳇바퀴에 빠진 삶은 아닌가 궁금해요. 연애요 여행이요 술이요 담배요 하지만, 막상 사랑도 나들이도 좋은 놀이조차도 아닌 흐리멍덩한 나날은 아닌가요.


  사람들마다 꿈을 품으면 좋겠어요. 부질없는 욕심이 아닌 ‘사랑스레 바라는 마음’이 있으면 좋겠어요. ‘바라는 마음’을 ‘내 삶을 흐뭇하게 받아들이며 즐기는 마음’으로 일구면 참 좋겠어요. 숨을 쉴 수 있는 하루로도 고맙고, 두 다리 멀쩡하다는 나날로 고마우며, 팔 하나 제대로 못 쓰더라도 한 팔이 있으니 고맙다고 여길 줄 알면 좋겠어요. 한 달 벌이가 30만 원이면 어떻고 50만 원이면 어떻고 1000만 원이면 어떻습니까. 많이 벌어서 많이 쓰기보다는 알맞게 벌어서 즐겁게 쓰는 삶이 훨씬 좋구나 싶어요. 더 벌어서 더 쓰기보다는 내 삶을 누릴 만큼 벌어서 기쁘게 쓰는 삶이 매우 즐거우리라 느껴요.


.. 우리에게는 빵도 파이도 케이크도 없었다. 그렇지만 우리가 먹을 과일과 식물은 지천에 널려 있었다. 우리는 소박하게 살았지만 건강하게 잘 살았다. 왜냐하면 우리가 먹는 음식이 신선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깡통에 몇 달씩이나 저장한 음식을 먹을 일이 없었다. 이런 식으로 보관한 음식은 생기가 없을 뿐 아니라 건강에도 좋지 않다 ..  (124쪽)


  좋은 삶을 생각하면서 사랑할 때에는 누구나 아름다운 사람이 될 수 있어요.

 


 (3) 자연과 사랑


  읍내 나들이를 하다가 여든 가까운 할머니 한 분을 만났습니다. 할머니는 길에서 차를 잡습니다. 한 시간에 한 대 지나가는 버스를 놓치신 듯합니다. 읍내로 가는 길에 다니는 차는 얼마 없고, 할머니 앞에서 차를 세워서 태워 주는 사람도 없다고 할 만합니다. 할머니는 “버스 타문 젊은 사람들은 없어유. 죄 칠십 노인들뿐이지. 젊은 사람들은 살면 안 돼유. 뭐, 해먹을 게 읎으니께유.” 하고 말씀합니다.


  읍내로 가는 동안 할머니 이야기를 듣습니다. 할머니는, 벌이도 시원찮고 꿈도 이루기 어려우며, 일마저 고된 시골에 젊은 사람들보고 와서 살라 할 수 없답니다. 젊은이보고 시골로 오라 해서도 안 된다고 합니다. 시골에서 태어나 이곳 시골 언저리를 거의 벗어난 적이 없는 할머니가 이런 말씀을 하니 듣는 마음이 참 무겁습니다. 그렇지만 우리 모습인걸요. 오늘 우리 삶이 이렇거든요. 할머니는 “도시로 나가면 다들 힘들다고 하지만, 아무도 안 돌아오잖유. 먹고살기 힘들어도 다 도시로 가야지.” 하고도 덧붙입니다.


.. 겨울이 와도 우리는 여전히 재미있게 놀았다. 겨울은 길었고 지독하게도 추웠다. 온 세상이 모두 눈으로 뒤덮였고, 강은 꽁꽁 얼었다. 그래도 우리는 추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신나게 잘 놀았다 ..  (159쪽)


  추우면 추운 대로 놀면 됩니다. 더우면 더운 대로 일하면 좋습니다. 춥다고 방에서 웅크릴 까닭 없고, 덥다고 그늘에서 땀을 들이지 않아도 됩니다. 더위도 즐기고 추위도 즐겨야 사람 몸은 튼튼해집니다. 우리 몸을 튼튼히 가꾸면 우리 마음도 차츰차츰 튼튼해집니다.


  봄입니다. 이 봄에는 들과 멧자락에 온갖 풀과 꽃이 잘 자랍니다. 이 풀과 꽃은 우리한테 좋은 나물이 됩니다. 맛은 심심하다고 하겠지만 원추리 잎을 따서 먹는 나물은 우리 몸에 참 좋습니다. 두릅도 좋습니다. 홑잎나물도 좋습니다. 죽나무도 좋고 돈나물도 좋습니다. 고사리와 도라지와 쑥과 냉이만 있지 않아요. 멧자락과 들판에 나는 모든 풀이 밥이자 약입니다. 이런 풀을 먹으면, 이렇게 철에 맞추어 스스로 자라나는 열매를 먹으면 몸에 탈이 날 일이 없습니다. 인삼을 먹거나 녹용을 안 먹어도 좋습니다. 추운 겨울을 이겨낸 씀바귀 뿌리를 캐서 먹어 보셔요. 곰쓸개보다 훨씬 우리 몸을 아늑하게 보살펴 줍니다.


.. 추장은 부족 사람들에게 보상을 바라지 않고 기꺼이 봉사해야 한다. 그는 철저하게 이타적이어야 하고, 노인들과 가난한 사람들에게 따뜻하게 대해야 하며,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에게 언제나 베풀 자세가 되어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그는 모든 사람을 똑같이 공평하게 대해야 한다 …… 전쟁에 나가는 것만으로 그 용기가 충분히 입증되지 않는다. 개인적인 희생을 할 수 있고, 사적인 이득을 생각하지 않을 만큼 용감해야만 한다 ..  (171쪽)


  “전시보다는 평화시에 더 큰 시험을 받았다”고 하는 수우겨레라고 합니다. 수우겨레 사람들이 시험받는 용기란, 전쟁터에서 물불을 가리지 않고 싸우는 일로만 시험받을 수 없고, 여느 때에 이웃을 얼마나 보살피고 사랑할 수 있는가로 헤아린다고 합니다.


.. 그 순간 난 아버지한테 절대 거짓말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아버지는 나를 너무 사랑했고, 나도 아버지를 너무나 자랑스러워했다. 아버지는 언제나 나한테 진실해야 한다고 말했다 ..  (212쪽)


  처음이자 마지막으로(그 뒤로는 흰둥이들이 수우겨레가 살던 땅을 모조리 빼앗아 버리는 바람에) 들소사냥을 나간 우뚝선곰(글쓴이 이름. 수우겨레 사람들은 태어날 적에 어버이한테서 이름을 받지만, 나중에 크면 제 이름을 스스로 새롭게 짓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글쓴이는 처음에 ‘오타쿠테(적을 많이 죽인 이)’였지만 나중에 ‘우뚝선곰’으로 이름을 바꾸었답니다.)은, 어린 나이에 가까스로 새끼 들소를 잡았다는데, 화살을 다섯 발 쏘았답니다. 이때 어린 아들은 스스로 생각합니다. 훌륭한 사냥꾼이라면 한 발에 잡았어야 했는데, 다섯 발이나 쏜 일이 조금 부끄러워 나머지를 감출까 하고 생각했답니다. 그런데 이 마음이 아버지를 보자 사라졌고, 거짓말을 해서 내가 잘났다고 우쭐거리기보다는, 부끄럽다 하더라도 떳떳해야 한다고 느꼈다고 해요.


  글쓴이는 흰둥이 사회에서 살아가야 하면서 이 책을 내놓았습니다. 글쓴이는 이 책을 내놓으며 “백인 소년 소녀들이 이 책을 읽고 인디언 소년 소녀들에게 좀더 친절한 마음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란다.” 하고 밝혀요. 아마 인디언 동무뿐 아니라 지구별 모든 동무를 사랑하고 따스히 돌아볼 수 있기를 바라겠지요. 지구별 사람뿐 아니라 지구별 풀과 나무와 새와 벌레 모두 곱게 아끼며 보살필 수 있기를 꿈꾸겠지요.


  곧, 이웃을 마주할 때에 나 스스로 살갑고 따뜻한 마음이라면, 서로를 다치게 하거나 해코지할 일이 없습니다. 전쟁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꼼수나 꿍꿍이도 자리할 수 없어요. 수우겨레 마지막 추장으로 삶을 마감한 ‘우뚝선곰’은 흰둥이들이 수우겨레 삶과 발자국을 제대로 알아주기를 바라는 한편,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는 길이 어디에 있는가를 가만가만 들려주면서, 모든 사람들이 살갑고 따뜻하게 어울리며 지낼 수 있기를 바랐겠다 싶습니다.


  《숲속의 꼬마 인디언》을 한국말로 옮긴 배윤진 님은 책끝에 한 마디 붙입니다. “글이라는 것을 꼼꼼하고 세밀한 논리와 설명의 그물이라고 생각하면서 조금만 세련되지 못한 흐름이 나타나면 이상하게 여기는 것 자체가 촘촘한 백인 문화에 동화된 것이 아닐까(223쪽)” 하고.


  한국사람은 한국사람답게 한국땅에서 즐겁게 살아가면 됩니다. 나는 나대로 내 보금자리에서 예쁘게 얼크러지면 됩니다. 스스로 가장 즐겁고 살가우며 사람답게 살아가는 길이 무엇인지 돌아볼 때에 해맑게 빛나는 나날입니다. 내 터전도, 내 마을도, 내 살림집도, 내 넋을 곱게 빛내며 곱게 돌볼 수 있습니다.

 

 ‘혀 간수하는 법’을 못 배운 흰둥이라고 하지요? ‘혀 간수하는 법’을 못 배운 한겨레로 바뀌며 슬픈 벼랑으로 굴러떨어질 수 있습니다. 혀뿐 아니라 손과 머리와 마음 간수하는 길을 잃거나 잊으며 바보스레 나뒹굴 수 있습니다.


  좋은 새봄을 좋은 새봄으로 느껴 맞이하고 싶습니다. 좋은 살붙이를 좋은 살붙이로 껴안으며 새날을 기쁜 새날로 누리고 싶습니다. 나는 내 나이가 늘 좋습니다. 나는 내 동무와 이웃이 언제나 좋습니다. 나는 내 일거리가 좋고, 내 얼굴 팔다리 몸뚱이 모두 사랑스럽습니다. 나를 낳아 돌본 어버이가 고맙고, 내가 돌볼 아이들이 사랑스럽습니다. (4338.5.25.물./4345.3.11.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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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멋진 그림보다는 이야기

 


  한국말로 나오는 일본만화가 한국사람이 스스로 빚는 한국만화보다 훨씬 많지 않으랴 생각한다. 이 많은 만화책이 모두 팔리는가 싶어 궁금하지만, 꽤 잘 팔리니까 이렇게 어마어마하게 한국말로 옮길 수 있겠지. 그런데, 이들 일본만화 가운데에는 그림이 좀 엉성한 작품이 꽤 된다. 만화쟁이라 하면서 어쩜 이렇게 그림을 못 그리느냐 싶은데, 나는 이 그림 엉성한 만화를 읽으면서 그닥 거슬리지 않는다. 꼭 글을 잘 쓴 글책이 더 읽기 좋지 않으며, 사진 잘 찍은 사진책이 더 보기 좋지 않기 때문이다.


  이야기가 있을 때에 비로소 글책이고 그림책이며 만화책이 된다. 이야기가 없다면 만화책도 노래책도 동화책도 되지 않는다. 이야기를 담아야 시집이요, 이야기가 없으면 말짱 글놀이밖에 안 된다.


  오늘날 한국만화는 그림을 꽤 잘 그리는 만화가 되었다고 느낀다. 그러나, 어떤 그림을 왜 잘 그리는 만화인지는 모르겠고, 무엇보다 이야기를 느끼기 어렵다. 요즈음 한국만화는 이야기를 살찌우거나 북돋우는 대목이 너무 얕으면서, 그림만 잘 그리려 너무 애쓴다.


  참말 그림은 꽤 못 그려도 된다. 주인공 얼굴이 자꾸 바뀌어도 된다. 그렇지만, 이야기가 없으면 안 된다. 이야기가 있고, 이야기가 살아숨쉬며, 이야기가 빛날 때에 비로소 만화라 할 만하고, 사진이라 할 만하며, 글이라 할 수 있다. (4345.3.11.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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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부 소량인쇄를 금요일에 맡겼는데 토요일 낮에 짠! 하고 왔어요.

오... 이렇게 빨리.... ㅠ.ㅜ

 

앞뒤에 넣은 그림은

다섯 살 사름벼리가

네 살 적 그린 그림입니다.

 

 

속에는

크게 나눈 자리에 따라

아이들 사진을 하나씩

큼지막하게 넣었어요.

 

눈을 쉬며 넘기는 자리입니다~

 

 

첫째 사진이 더 많을 수밖에 없으니

둘째는

나중에 커서

'왜 내 사진은 얼마 없어!' 하고

따져도 하는 수 없습니다 ^^;;;

 

<동시집 할머니>는

딱 120부만 찍은 책이고

여느 책방에는 넣지 않아요.

 

'1인잡지 함께살기'를 받아보거나

'사진책 도서관 함께살기' 뒷배를 하는 분한테만

보냅니다.

 

이 동시집이 보고 싶다면,

잡지 구독이나

도서관 뒷배를 하시면 돼요~ ^^

 

(또는, 어느 청소년-어린이책 출판사에서

 이 동시집을 펴내 주기를 꿈꾸어 주시면 됩니다)

 

자전거 바구니에 싣고...

 

한 권 사 주셔요~ ㅋ

 

 

 + + + + +

 

   ‘1인잡지 함께살기’ 둘째 권으로, 동시집 《할머니》를 내놓습니다. 동시집 《할머니》는 여느 책방에서 다루지 않습니다. ‘1인잡지 함께살기’를 정기구독하는 분하고, ‘사진책도서관 함께살기’를 뒷배하는 분한테만 보냅니다. 120부만 찍었습니다.


  어린이책 펴내는 출판사에서 이 작은 동시집을 예쁘게 바라보며 새롭게 꾸며 내놓아 준다면, 여느 책방에서 누구나 이 동시집을 장만하실 수 있겠지요. 어린이책 펴내는 출판사에서 이 작은 동시집을 예쁘게 바라보아 주기를 즐거이 꿈꿉니다.

 


 ◎ ‘1인잡지 함께살기’ 정기구독하기
 여섯 권 받기 14000원 × 6 = 8만 4천 원
 열두 권 받기 14000원 × 12 = 168000 - 8000 = 16만 원
 평생구독 하기 = 200만 원
 ◎ ‘사진책도서관 함께살기’ 뒷배하기
 한 평 지킴이 = 한 해에 10만 원, 또는 다달이 1만 원
 평생 지킴이 = 200만 원
 (돈 넣을 곳) 우체국 012625-02-025891 최종규


  ‘1인잡지 함께살기’는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며 사진을 찍는 최종규가 전라남도 고흥군 동백마을에서 네 식구끼리 오순도순 지내는 삶을 바탕으로 부대끼는 이야기를 그러모으는 책입니다.


  아름다이 살아가고픈 이야기를 담고, 참답게 살고픈 꿈을 담으며, 착하게 지내려는 넋을 실으려고 합니다.


  글쓴이는 글쓴이 삶을 사랑하면서 1인잡지 《함께살기》를 내놓습니다. 이 책을 읽으시는 분들은 모두들 저마다 사랑하는 삶을 살포시 담는 다 다른 이야기책 하나 일구시면 기쁘겠어요.

 

  최종규  011.341.7125.  hbooklove@naver.com


  지난 ‘1인잡지 함께살기’를 따로 받고 싶으면 손전화로 전화해 주시거나 쪽글을 보내 주셔요. 여느 책방에서 다루지 않는 글쓴이 책은 이와 같습니다.

 

ㄱ. 자가용을 버려야 책을 읽는다 (14000원)  * 함께살기 1
ㄴ. 아이들과 살아가며 책방마실 (8000원)  * 우리 말과 헌책방 11
ㄷ. 책을 읽는 마음 삶을 읽는 마음 (8000원)  * 우리 말과 헌책방 10
ㄹ. 작은 책방이 살리는 책마을 (8000원)  * 우리 말과 헌책방 9
ㅁ. 오래된 책은 아름답다 (8000원)  * 우리 말과 헌책방 8
ㅂ. 말은 삶이다, ‘존재’ 다듬기 (7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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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2-03-10 1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시집이 나왔네요, 축하합니다~~~
표지그림은 사르벼리 작품이군요.^^
어제 우리도서관에 온 시인 언니가 <사진책과 함께 살기> 보면서 '좋다'는 말을 쏟아냈어요, 저자가 고흥에서 산다는 얘기도 살짝 전해주었죠.

파란놀 2012-03-11 03:46   좋아요 0 | URL
에고 고맙습니다~
비매품 한정판으로 스스로 낸 책인걸요 뭐 ^^;

앞으로 다른 곳에서
예쁘게 엮어 주기를 기다립니다~~

stella.K 2012-03-11 1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저도 축하합니다.
된장님은 어떻게 그렇게 부지런히 책을 내십니까?
부럽습니다.ㅠ

파란놀 2012-03-12 06:24   좋아요 0 | URL
더 자주 낼 수 있지만
주머니에 돈이 모자라
겨우겨우 내는걸요 ^^;;;

고마워요~

2012-03-12 01: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3-12 06: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3-12 18: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3-12 20: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분꽃 2012-03-17 08: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마운 책... 잘 받았습니다~~

파란놀 2012-03-18 07:07   좋아요 0 | URL
언제나 좋은 생각 즐거이 누리시기를 빌어요~
 
고사리 손 요리책
배영희 글, 정유정 그림 / 길벗어린이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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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꿉놀이와 밥삶과 밥짓기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147] 정유정·배영희, 《고사리손 요리책》(길벗어린이,1995)

 


  나는 어릴 적에 소꿉놀이를 가끔 해 보기도 했지만, 그리 자주 하지는 못했습니다. 사내아이가 소꿉놀이를 하면 으레 비웃거나 놀렸고, 사내아이란 땅바닥에 얌전히 쭈그려앉아 소꿉을 만지작거려서는 안 되는 양 여겼어요. 사내라면 집일을 안 해야 마땅한 듯 여기는데다가, 사내라면 바깥에서 개구지게 뛰어놀아야 어울리는 듯 바라보기까지 했습니다.

  어린 나는 소꿉놀이가 싫거나 따분하거나 못마땅하지 않았습니다. 아직 집일이 썩 익숙하지 않았고, 다른 사내 동무들이 놀릴까 걱정스러웠습니다. 내 밑으로 동생이 없었기에 아기로 삼는 인형을 어떻게 안아 어떻게 달래며 놀아야 하는가를 알지 못했습니다. 집에서 어머니 심부름을 곧잘 하기는 하더라도 이모저모 알뜰살뜰 앙증맞게 차리거나 꾸리는 집일은 만만하지 않았습니다.


  내 어릴 적 국민학교에서는 한 달에 한 차례쯤 학교에서 밥을 지어 함께 먹었습니다. 사내이든 가시내이든 3학년 나이가 되면 누구나 솥밥을 지어야 할 줄 알았고, 조금 이른 아이는 2학년 즈음부터 집에서 김치를 함께 담글 뿐 아니라, 혼자서 담글 줄 알기도 했습니다. 밀가루 반죽은 웬만한 아이들 모두 알맞게 맞추어 할 수 있고, 부침개이든 지짐이이든 퍽 수월하게 해내곤 했습니다. 이만 한 부엌일조차 하지 못하면 바보스러운 아이로 여기곤 했어요. 이는 가시내이든 사내이든 모두 매한가지였습니다. 내 국민학교 실과를 배울 때에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스스로 밥을 차려 먹는 길’을 익혀야 한다고 했습니다.

 

 


  나로서는 몇 학기 안 다니고 그만두었던 대학교이지만, 대학생이 되어 또래 아이들이나 선배들하고 몇 밤씩 자는 마실을 다니며 여러모로 놀랐습니다. 틀림없이 나하고 비슷한 즈음 국민학교를 다니고 어린 나날을 보냈을 사람들인데, 솥밥을 처음 해 본다거나 할 줄 모른다거나, 감자나 양파나 파를 다듬거나 벗길 줄 모른다거나, 칼질을 할 줄 모른다거나, 국을 간 하거나 물 부피를 맞출 줄 모른다거나, 불세기를 헤아릴 줄 모르는 사람이 너무 많았어요.


  이름있다는 대학교를 다니는 동무이든 선배이든 후배이든 엇비슷했습니다. 하나같이 ‘똑똑하다’는 말을 자주 들었을 텐데, 똑똑하다는 머리가 무엇인지 궁금했습니다. 밥 한 그릇 끓여 차릴 줄 모른다면, 맛나게 먹은 밥상을 치울 줄 모른다면, 부엌자리를 건사할 줄 모른다면, 걸레 한 장 빨아 방바닥을 훔칠 줄 모른다면, 옷가지 한 벌 스스로 빨고 짜서 널어 말린 다음 갤 줄을 모른다면, 이불 한 장 곱게 펴고 갤 줄 모른다면, 도무지 무슨 사람 구실을 하느냐 싶었습니다.


  집일을 모르거나 생각하지 않기로는, 또래 사내만 모르거나 생각하지 않는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또래 가시내도 집일을 모르거나 생각하지 않아요. 남녀라는 틀을 넘어, 모두들 대학시험에 목을 매달 뿐, 스스로 살림을 짓고 삶을 빚는 길을 걷지 못해요. 자격증을 따고 큰회사에 들어가 돈은 많이 번다지만, 맛난 밥집과 좋다는 찻집은 널리 안다지만, 막상 내 집에서 내 사랑을 담은 내 좋은 밥 한 그릇을 누리는 길만큼은 하나도 모른다면, 이런 삶이란 어떤 삶인지 몹시 알쏭달쏭했어요.

 

 


  어머니가 밥을 차려 주거나 집에 밥어미 일을 하는 분이 들락거리면 될 노릇이라고 느끼지 않아요. 내가 어머니가 되거나 아버지가 되어도 내 아이한테 내 손으로 밥 한 그릇 차려서 내놓지 못하면, 나는 무슨 어버이 구실을 하는 사람인지 궁금했어요. 학교라는 곳은 아이들한테 무엇을 가르치거나 보여주는 곳인지 궁금했어요. 학교라는 곳을 오래 다니면 다닐수록 ‘사랑스러운 삶’과 ‘아름다운 삶’에다가 ‘즐거운 삶’하고는 너무 동떨어지고 마는구나 싶었어요.


.. 가끔 아이들에게 식탁을 정리하라고 하거나 음식을 담으라고 할 때가 있다. 예쁘게 담고, 바르게 담고, 알맞게 담고, 제대로 놓고, 이런 것들이 아이들에게는 배움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  (64쪽)


  정유정 님이 그리고 배영희 님이 글을 쓴 그림책 《고사리손 요리책》(길벗어린이,1995)을 읽습니다. 아이들하고 신나게 밥상을 차리는 이야기를 담는 그림책입니다. 아이들도 어렵지 않게 밥을 짓거나 반찬을 마련할 수 있는 길을 보여줍니다. 아기자기한 그림이 예쁘고, 아이들 자그마한 손으로 자그맣게 빚는 먹을거리가 소담스럽구나 싶습니다.

  한편으로는 적잖이 서운하기도 합니다. 이런 이야기까지 그림책으로 담아야 할까 싶어서.

 


  더없이 마땅한 삶인데, 이렇게 마땅한 삶을 아이나 어버이나 옳게 누리지 못하고 마니까, 이처럼 그림책 하나로 그려서 담아야 하는구나 싶어, 여러모로 슬프기도 합니다. 오늘날 아이들은 저희 어버이랑 밥짓기 삶짓기 꿈짓기를 함께 못 하는 나머지, 그림책을 따로 읽으며 밥하기를 살펴야 하나 싶어 안타깝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그림책이란 어디 별나라 이야기를 담는 책이 아니에요. 내가 사랑하며 살아가는 나날을 담는 그림책이에요. 내가 꿈꾸며 사랑하는 이야기를 갈무리하는 그림책이에요. 날마다 아이들하고 알콩달콩 밥짓기를 하니까, 이 이야기가 고스란히 그림책으로 나타납니다. 언제나 아이들하고 사이좋게 삶짓기를 하는 만큼, 이 모습이 낱낱이 그림책으로 깃듭니다.


  《고사리손 요리책》이 태어나는 모습은 슬프지만, 《고사리손 요리책》을 만든 넋은 아름답습니다. 《고사리손 요리책》 같은 그림책은 없을 만하지만, 《고사리손 요리책》 같은 그림책이야말로 집집마다 다 다른 삶자리와 다 다른 삶무늬를 한껏 담아 예쁘게 빚을 만합니다.

 


.. 아이들이 그것보다 더 좋아하며 두고두고 기뻐하는 일이 있다. 깨소금 빻고, 프라이팬에 밀전 한 국자 떠 붓고, 수제비에 넣을 감자 썰고 반죽 떼어 국물에 넣는 일이다 ..  (64쪽)


  그런데, 그림책 《고사리손 요리책》에는 몇 가지 빠졌습니다. 아이들하고 밥을 함께 짓는 모습은 아름답지만, ‘밥을 할 때에 쓰는 감(재료)’이 무엇이고 어디에서 어떻게 얻는가 하는 대목을 생각해야지요. 굳이 유기농이나 무농약이니 하는 먹을거리를 따지자는 소리는 아니에요. 달걀을 너무 많이 쓰고, 고기를 너무 쉽게 쓰는 모습은 달갑지 않습니다. 쌀은 어떤 쌀을 써야 할까요. 씨눈을 다 깎은 흰쌀을 써야 할까요. 밀가루는 어떤 밀가루를 쓰지요? 한국에서 심어 기르고 거두는 밀은 얼마나 될까요. 호밀이랑 통밀은 어떻게 다를까요.

  두부는 어떻게 마련할까요. 가게에서 값싸게 사면 그만일까요. 소포제와 응고제를 쓰는 두부를 아이한테 먹여도 괜찮나요. 왜 우리는 소젖만 마셔야 할까요. 사료만 먹고 자라는 젖소한테서 얻은 소젖을 아이들한테 주는 일은 얼마나 좋을까요. 염소젖을 먹이거나 산양젖을 먹는 일은 헤아릴 수 없을까요.


  곁다리로 여길 수 있는지 모르나, 도무지 곁다리일 수 없는 ‘밥을 할 때에 쓰는 감’, 곧 ‘밥감’입니다. 내 보금자리 한쪽에 텃밭을 일구어 당근이랑 무랑 배추를 얻을 수 있어요. 그림책 한켠에 이러한 이야기를 살며시 실을 만해요. 토마토이든 오이이든, 꽃그릇 하나에 심어서 거두어도 꽤 많이 얻어요. 콩이든 감자이든 고구마이든, 조그마한 땅뙈기에서 꽤 많이 거둘 수 있어요.


  ‘먹는’ 이야기에서도 아이들과 무엇을 어떻게 먹으면 좋을까 하는 대목을 조금 더 찬찬히 살핀다면 좋겠어요. ‘더 많은 가짓수’보다는 ‘한두 가지 흔한 가짓수’라 하더라도 아이들과 한결 깊이 생각하면서 더욱 널리 헤아릴 줄 아는 길을 찾는다면 참으로 아름다운 밥삶이 되리라 믿어요. (4345.3.10.흙.ㅎㄲㅅㄱ)


― 고사리손 요리책 (정유정 그림,배영희 글,길벗어린이 펴냄,1995.9.10./10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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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파리 잡는 어린이

 


 날이 포근해지면서 날파리가 깨어난다. 아이가 파리채를 들고는 날파리 윙윙거리는 앞에 선다. 때때로 휙휙 휘두른다. 잡았니? 잡혔니? 따사롭게 하루를 빛내던 햇살이 차츰 기울어지는 저녁나절 문간에 앉아 네 헛팔질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4345.3.10.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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