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호종이문 그림

 


  나무문에 창호종이를 곱게 발랐더니 어느새 아이가 무언가 꼬물꼬물 그림을 그렸다. 문에 그림을 그리지 말아 주렴, 그림종이가 따로 있잖니, 하고 얘기하지만 귓등으로조차 안 듣는다. 그래, 얼마나 그림을 그리려는지 한 번 지켜보자, 하고는 곁에 서서 쳐다본다. 먼저 아이 키높이에서 그림을 그리고, 이윽고 문고리를 잡으며 높은 데까지 손을 뻗어 그림을 그린다. 문짝이 그냥 문짝이 아니요, 문짝에 종이를 바르니, 너로서는 온통 그림판이 되는 셈이니.


  생각해 본다. 벽에 종이를 바르니 벽종이인데, 그림을 그린다는 그림종이도 종이요, 벽종이도 종이인 셈이다. 아이한테는 그림종이 묶은 빈책만 그림 그릴 데가 아니라, 종이를 바른 벽도 문도 그림판이 될 만하다.


  사람은 종이로 묶은 종이책을 읽는다. 사람은 좋은 이웃을 사귀며 사람책을 읽는다. 사람은 너른 들판과 멧자락을 어깨동무하며 풀책과 자연책과 꽃책을 읽는다. 사람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하늘책과 별책과 달책을 읽는다. 사람은 따스한 날씨를 누리며 햇님책을 읽는다.
 

살아가며 모두 책이다. 사랑하며 모두 책이다. 살아가며 모두 그림판이다. 사랑하며 모두 그림판이다. 아이들 웃음은 어버이한테 사랑이요, 어버이 노래는 아이한테 사랑이다. 좋은 하루가 날마다 새롭게 열린다. (4345.5.10.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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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언 부시 - 나를 사로잡은 아프리카의 눈빛, 김경상 사진집
김경상 사진 / 세상의아침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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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이웃이 되어 사진을 찍습니까
 [찾아 읽는 사진책 92] 김경상, 《라이언 부시》(세상의아침,2007)

 


  종교 이야기를 다큐멘터리로 찍는다는 김경상 님 사진책 《라이언 부시》(세상의아침,2007)를 읽다가 아프리카 땅금을 생각합니다. 김경상 님은 서양사람이 아프리카 땅에서 식민지 전쟁을 일삼으며 죽죽 금을 그었다고 이야기합니다. 이 말을 듣고 아프리카 땅덩이에 죽죽 그어진 ‘반듯한 금’을 떠올립니다. 참말, 지구별 어느 나라 땅금도 반듯하게 죽죽 그어지지 않습니다. 남과 북을 가르는 휴전선이란 얼마나 구불구불합니까. 한국과 일본을 가르는 바닷길 금이라 하더라도 반듯한 금이 아닙니다. 한국과 중국을 가르는 바닷길 금 또한 반듯한 금이 아니에요. 뭍에서도 물에서도 반듯하게 쪽쪽 가를 만한 금이란 없습니다. 프랑스와 독일을 가르는 금이든, 덴마크와 스웨덴을 가르는 금이든, 베트남과 라오스를 가르는 금이든, 냇물과 멧등성이를 따라 구불구불 휘어집니다. 아프리카 땅덩이에서도 나라와 나라를 가르는 금은 구불구불해야 올바릅니다. 사막을 가로지르든 무얼 가로지르든 반듯하게 금을 그어서 이루는 땅금은 있을 수 없어요.


  그러고 보면, 지난날 1945년에 미국과 소련이 함부로 그은 38선이란 얼마나 끔찍한 땅금이었을까요. 한겨레는 몹시 끔찍하며 매우 슬픈 땅금을 겪어야 했는데, 1945년에 오늘날까지 얼마나 되었다고 이 모질며 아픈 땅금을 자꾸 잊을까요.

 


  사진책 《라이언 부시》에 실린 ‘에이즈 걸린 사람’ 모습을 바라봅니다. 끝내 목숨을 잃고 땅속에 묻히는 모습을 바라봅니다. 돌이켜보니, 에이즈 걸린 사람을 땅속에 묻고는 장례를 치르는 사진까지 본 일은 퍽 드물구나 싶습니다. 이들은 나와 내 이웃하고 똑같은 목숨이요 사람인데, 막상 ‘에이즈 걸린 사람’ 이야기를 다루는 사진들은 병원 침대에 드러누운 모습 틀거리에서 벗어나지 않는구나 싶습니다. 이들 벗과 살붙이와 이웃을 찬찬히 돌아보는 사진은 꽤 드물구나 싶습니다.


  그런데, 에이즈라 하는 병은 언제 왜 생겼을까요. 에이즈라 하는 병은 어떻게 생겼고, 이 병을 고치는 길이란 무엇일까요. 아프리카땅 사람들이나 한국땅 사람들은 에이즈라 하는 병을 얼마나 깊이 알고, 얼마나 깊이 살피며, 얼마나 깊이 깨우칠까요.


  《라이언 부시》를 내놓은 김경상 님은 “카메라와 필름을 챙기면서도 내가 무엇을 찍을 수 있을지 겁이 났습니다. 그러다, 그곳에서 나는 아이들을 보았습니다. 아프리카의 누렇게 마른 사바나에 한 그루 서 있는 나무처럼 내 눈에는 아이들이 초록의 나무처럼 보였습니다(13쪽).” 하고 이야기합니다. 학문으로 파헤치려 한대서 파헤칠 수 있을 에이즈가 될는지, 전쟁이 될는지, 식민지가 될는지, 아프리카가 될는지 궁금합니다. 학문으로 파헤치고 나면 앙금이나 아픔이나 고름이나 생채기가 말끔히 걷힐 에이즈가 될는지, 전쟁이 될는지, 식민지가 될는지, 아프리카가 될는지 궁금합니다.

 


  사진을 들여다봅니다. 사진책에 실린 살결 까만 아이들 모습을 들여다봅니다. 아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어른들 모습을 들여다봅니다. 집을 보아도 흙으로 이루어지고, 길을 보아도 흙으로 이루어집니다. 푸른 빛 가득한 너른 들판이 보입니다. 하늘은 파랗고, 들판은 푸르며, 길과 집은 누렇습니다. 아이나 어른이나 맨발로 들과 길과 집을 누립니다. 한국 선교사나 사진쟁이나 의사나 예술쟁이가 아프리카를 찾아갈 때에는 비행기를 탈 테고, 자동차로 갈아타서 먼길을 달릴 테지요. 한국사람은 선교사나 사진쟁이라 하더라도 아프리카땅 사람들처럼 맨발과 가벼운 옷차림은 아닐 테지요. 천 하나만 걸친다든지, 때로는 맨몸이 된다든지 하면서, 함께 웃고 떠들며 사진을 찍는 한국사람은 있을까 궁금합니다. 서양 사진쟁이 가운데에는, 일본 사진쟁이 가운데에는, 아프리카땅에서 아프리카 겨레와 나란히 보금자리를 이루어 살아가면서 어깨동무하는 나날을 사진으로 담는 이가 있을까 궁금합니다.
 

아니, 이보다 아프리카 겨레 가운데 스스로 저희 모습을 담으며 나누는 이가 있을까 궁금합니다. 짐바브웨 삶을 짐바브웨땅 사람 결을 고스란히 보여주며 나누는 사진쟁이가 있을까요. 잠비아 삶을 잠비아땅 사람 빛으로 찬찬히 보여주며 나누는 사진쟁이가 있을까요. 우간다 삶을 우간다땅 사람 꿈으로 따스히 보여주며 나누는 사진쟁이가 있을까요.


  김경상 님은 “아프리카 아이들은 참 잘 웃는다. 나이 많은 아이가 자기보다 어린 아이를 데리고 정글을 달리거나 노는 방법을 가르쳐 준다. 이 아이들에게는 게임기 같은 값비싼 장난감은 없다. 대신에 대자연이라는 놀이터가 있다(25쪽).” 하고 이야기합니다. 김경상 님도 잘 웃는 분인지 살짝 궁금합니다. 왜냐하면, 참 잘 웃는다는 아프리카 아이들이라 할 때에, 이렇게 참 잘 웃는 아이들 손마다 사진기가 있어 저희끼리 저희 모습을 사진으로 담는다 하면, 어떤 그림이 그려질까 궁금하거든요. 아이들이 저희끼리 웃고 떠들며 놀 적에, 정글에서 어떤 사진을 찍을까 궁금하거든요. 아이들이 너른 자연을 품에 안고 살아가며 어떤 사진을 빚을까 궁금하거든요.

 

 

 

 


  한동안 머물고 떠나는 손님이 아닌, 태어나서 밥을 얻고 밥을 일구며 살아가는 붙박이 삶으로 바라보는 아프리카 땅덩이와 너른 자연과 들판과 하늘과 이웃이라 하면, 사진으로는 어떤 꿈과 사랑이 깃들까요. 가슴이 파르르 떨립니다. 얼마나 푸르고 얼마나 파라며 얼마나 누런 빛깔로 곱게 물들까 싶어 가슴이 두근두근합니다.


  사진은 그야말로 나 스스로 어떤 이웃이 되어 이루려는 삶인가에 따라 달라집니다. 사진은 그야말로 나 스스로 어떤 사랑이 되어 어깨동무하려는 삶인가에 따라 새롭습니다.


  “대지는 아이의 맨발이 닿을 때 기뻐하고 바람은 아이의 머리칼과 놀기를 간절히 바란다(29쪽).”고 하는군요. 한국에서도 이와 같아요. 한국에서도 너른 땅과 들판은 아스팔트나 자동차를 바라지 않아요. 한국에서도 너른 땅과 들판은 아이와 어른 모두 맨발로 살포시 밟고 누리기를 바라요. 군화발이나 장갑차 쇠바퀴를 바라지 않는 너른 땅과 들판입니다. 왜 군화발이나 장갑차 쇠바퀴로 군사훈련을 하며 이 나라 너른 땅과 들판을 짓이겨야 할까요. 왜 미사일을 쏘고 총알을 쏘며 이 나라 너른 땅과 들판을 망가뜨려야 할까요. 저쪽에서 군대를 키우니까 이쪽에서도 군대를 키워야 하나요. 저쪽에서 핵무기를 만드니까 이쪽에서도 핵발전소를 새로 지어 핵연료를 갖춘 다음 핵무기를 거느려야 하나요.

 


 

  “아프리카의 아이들은 어른들에게서 풍요로운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기쁨과 냉엄한 현실 속에서 살아가기 위한 마음가짐과 지혜를 배운다(36쪽).”고 하는군요. 한국에서도 이와 같아요. 사랑으로 살아가는 어버이는 아이한테 사랑으로 살아가는 길을 보여주고 가르칩니다. 돈벌이에 매인 어버이는 아이한테 돈벌이에 매인 굴레를 물려줍니다.


  입시지옥은 아이들이 만들지 않았습니다. 제도권사회는 아이들이 만들지 않았습니다. 썩은 정치나 구린 정치 모두 아이들이 만들지 않았습니다. 청소년범죄라 말하지만, 어른들이 범죄를 저지르니 청소년도 어른들 꽁무니를 따라 범죄를 저지릅니다. 어른들 스스로 어른으로서 이녁 삶을 사랑하지 못하기에, 아이들 또한 아이들 스스로 저희 삶을 사랑하지 못해요. 어른들 스스로 어른으로서 이녁 삶을 아끼며 빛낼 때에, 아이들 또한 아이들 스스로 저희 삶을 아끼며 빛낼 수 있어요.


  한국땅에서는 ‘맑게 웃는 아이 모습’을 사진으로 찍기에 만만하지 않습니다. 한국땅에도 환하게 웃거나 기쁘게 웃는 아이들은 있으나, 이 웃음은 오래 가지 않아요. 이 웃음이 곱게 이어갈 만한 삶터가 줄어들어요. 푸른 들판이 사라져요. 너른 숲이 사라져요. 시원한 냇물이 사라져요. 우거진 숲 깃든 멧자락이 사라져요. 갯벌이 사라지고 티없이 맑은 바다가 사라져요. 섬이 사라지고 시골이 사라져요. 온통 도시가 생기고, 온통 시멘트 건물이 생기며, 온통 자동차투성이가 돼요.


  한국땅 사진쟁이는 아프리카땅으로 찾아가 《라이언 부시》 같은 사진책 하나를 빚습니다. 잠비아나 케냐나 탄자니아에서 사진쟁이로 일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들이 한국땅에 찾아와서 어떤 사진책 하나 빚을 수 있을까 알쏭달쏭합니다. 이들이 한국땅에 찾아올 적에도 ‘맑게 웃는 아이 모습’이나 ‘기쁘게 땀흘리는 푸른 어른 삶’을 사진으로 담을 수 있을까 아리송합니다. 아니, 너른 자연을 마음껏 누리는 아프리카땅 사람들이 굳이 한국땅까지 ‘다큐멘터리 사진을 찍으러’ 찾아올까 모르겠습니다. (4345.5.10.나무.ㅎㄲㅅㄱ)

 


― 라이언 부시 (김경상 글·사진,세상의아침 펴냄,2007.6.30./2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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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찍기에 천주교나 개신교나 불교라고 하는 테두리가 얼마나 뜻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한국에서 '가난한 이웃나라'로 찾아가 선교와 봉사를 하며 찍는 사진 가운데 개신교 일꾼이 담는 사진에서는 드러나지 않는 몇 가지 기운이 김경상 님 사진에 잘 드러나 반갑다고 느낀다. 그저 웃거나 우는 모습을 찍는다고 되는 '가난한 이웃나라' 사진이 아니다. 무엇을 보여주고 무엇을 함께 나누려 하는가 하는 뜻과 사랑을 서로 어깨동무하면서 사진으로 빚을 때에 빛나는 사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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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블 루트
김경상 지음 / 눈빛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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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간다에서 만난 차일드 마더- 김경상 사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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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래하며 재우는 마음

 


  두 아이를 재우려고 하나는 가슴에 얹고 하나는 한 팔로 감싸면서 한 시간 반 즈음 노래를 부르자면 힘들기는 꽤 힘들다. 그런데, 이렇게 두 아이를 달래면서 목이 살짝 쉴락 말락 노래를 하다 보면 내 마음이 따사롭게 달라진다. 내 마음이 넉넉하게 바뀐다. 내 마음이 차분하게 거듭난다.


  아이들이 제아무리 짓궂거나 얄궂다 싶은 짓을 일삼았어도 이 아이들 곁에 끼고 노래를 부르며 재우다 보면, 그래 그래, 아이들이잖아, 예쁜 아이들이잖아, 예쁜 아이들이 더 놀고 싶고, 더 얼크러지고 싶고, 더 살을 부비고 싶어 이렇게 나한테 말을 걸거나 눈길을 보내며 하루를 보냈겠지. 고맙다, 사랑한다, 좋아한다, 오래오래 한결같이 서로 아끼면서 어깨동무하자, 하는 마음이 되어 노래를 부른다.


  오늘 저녁, 옆지기가 두 아이한테 노래를 불러 주며 재운다. 쳇, 오늘은 두 아이랑 노래하며 재우는 즐거움을 혼자 차지하는구나. 그러나, 옆지기가 두 아이를 재워 주면서 나로서는 저녁나절 일거리를 홀가분하게 끝마칠 수 있다. 우리 두 어버이 노래가 아이들 가슴으로 차곡차곡 스며들기를 빈다. (4345.5.9.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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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섯 시 책읽기

 


  다섯 시가 되면 우리 집 처마에서 함께 살아가는 제비들이 재재배배 노래를 한다. 제비들 노래소리를 들으면서 새날이 밝았다고 깨닫는다. 그러나, 제비들 노래를 들으며 아침에 일어나지는 않는다. 나는 언제나 새벽 두어 시면 아이들을 살며시 토닥이고는 조용히 일어나니까. 새벽 다섯 시에 제비들 노래소리를 들으며 이제 좀 자리에 다시 드러누워 아침까지 쉬자고 생각한다. 아이들이 일고여덟 시 사이에 일어날 테니, 이때에 홀가분하며 기쁘게 다시 일어나도록 몸을 누여야지. (4345.5.9.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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