쿨쿨쿨 세계의 걸작 그림책 지크 74
다시마 세이조 글 그림 / 보림 / 2008년 7월
평점 :
품절



 “얼른 와.”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164] 다시마 세이조, 《쿨쿨쿨》(보림,2008)

 


  밤 열두 시 반에 쉬 마렵다며 깬 아이는 새벽 세 시에 쉬를 누려고 한 번 더 깹니다. 새벽오줌 누이고 나서 잠자리에 들도록 한 다음, 아이한테 “그래, 아버지도 이제 곧 누울 테니까 먼저 들어가서 누워.” 하고 말하며 다독입니다. 두 아이 아버지는 열두 시 반에 아이와 함께 일어나 글을 씁니다. 새벽 세 시에 아이를 다시 재우고서 적잖이 아쉽다고 느낍니다. 모처럼 고요하게 누리는 이 한때를 조금 더 누리고 싶습니다. 그렇지만 아이가 옆에 누워 함께 자자 말하니 달리 어찌할 수 없습니다. “그래, 곧 갈게.” 하고 말한 뒤 이십 분 남짓 글조각을 더 붙잡습니다.


  깊은 밤, 아이는 잠들락 말락 하다가 슥슥 기어나와 고개를 빼꼼 내밀더니, “얼른 와.” 한 마디 합니다. 옆에 누워 잔다면서 왜 안 오느냐 짤막하게 한 소리 합니다. 더 미적미적 할 수 없구나 싶어 글쓰기를 끝냅니다. 졸린 아이가 스르르 잠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지만, 곁에서 깊이 잘 재우고 난 다음이 아니라면, 아이가 이렇게 재촉하는 마당에, 늑장을 부릴 수 없습니다.


  아이는 아버지 품에 안깁니다. 이내 아이 스스로 아버지 무릎에 눕습니다. 무릎에 누운 아이를 토닥입니다. 셈틀을 끕니다. 아이를 안고 옆방으로 건너갑니다. 아이를 먼저 반듯하게 누입니다. 나도 옆에 반듯하게 눕습니다. 등허리가 쪼옥 펴지며 개운하구나 싶습니다. 어제 하루 얼마나 고단하게 보냈는가 돌이킵니다. 엊저녁 아이를 처음 재우며 기쁘게 재우지 못해, 아이가 꿈나라에서 즐거이 날아다니지 못했으리라 생각합니다. 새벽에 오줌을 누고 다시 잠들 때에는 부디, 엊저녁부터 새벽까지 제대로 날지 못했을 꿈나라에서 예쁘고 씩씩하게 날아다니기를 빕니다. 한손으로 아이 머리카락과 볼과 가슴을 토닥토닥 합니다. 아이는 작은 손으로 아버지 손을 만지작만지작 합니다. 네 식구 모두 달게 잡니다. 달게 자느라 새벽 다섯 시부터 노래하는 들새와 멧새 이야기를 듣지 못합니다. 새소리와 함께 동이 트는 아침을 맞이하지 못합니다.

 

 


  일곱 시를 조금 지나 눈을 번쩍 뜹니다. 창호지문 바깥이 훤합니다. 얼마나 잤나 시계를 봅니다. 늦잠까지는 아니라고 느낍니다. 뒷밭 고랑에 쉬를 하고 뒷밭 감자와 오이와 토마토한테 물을 줍니다. 손바닥만큼 조그마한 뒷밭 감자는 무럭무럭 줄기를 올립니다. 새 잎이 싱그럽습니다. 야들야들한 오이잎은 벌레가 꽤 갉아먹었습니다. 오이꽃 필 무렵까지 오이잎을 잘 건사해야겠습니다.


  이웃 할머니와 할아버지 들은 아침부터 마늘밭이며 논이며 일하러 다니느라 부산합니다. 웃마을 못에서 물꼬를 텄으니, 논에 물 대실 분은 얼른 나와 논에 물 대라며 마을방송 울려퍼집니다.


  달력으로 치면 일요일 아침, 시골마을에는 일요일이 따로 없습니다. 흙하고 살아가는 사람한테는 절기와 명절이 있지, 주말이나 공휴일이나 기념일은 없으니까요. 햇볕은 따사롭고 바람은 싱그럽습니다.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푹푹 찌는 무더위라고들 말하는데, 우리 시골마을 시골집은 밤에 서늘합니다. 아침에도 선선합니다. 햇살은 맑아 이른아침부터 빨래를 널 만하지만, 아직 이슬이 걷히지 않았으니 아홉 시쯤 되어야 이불을 내놓을 만합니다. 한낮에도 그닥 후덥지근하지 않습니다.

 


  도시에서는 봄밤에도 선풍기나 에어컨을 틀지 않으면 더워서 잠을 못 이룰까요. 도시에서는 봄밤에도 냉방기를 돌리느라 전기를 많이 써야 할까요. 정부와 기업에서는 우리 시골마을 한쪽에 ‘도시사람 쓸 전기를 만들 어마어마하게 큰 화력발전소’를 짓겠다고 나섭니다. 막상 시골에서는 전기 쓸 일이 아주 드문데, 전기 쓸 일 많은 도시에는 발전소를 짓지 않습니다. 도시사람 쓸 전기 때문에 시골에 발전소를 지으려 하면서, 시골사람이 시골땅 더러워지기에 ‘시골에 발전소 짓지 마셔요’ 하고 외치면, 지역이기주의라도 되는 양 몰아세웁니다. 정작 지역이기주의라 한다면, 전기를 펑펑 쓰느라 전기가 모자란 도시에 발전소를 지어야 하는데 도시에 안 지으니 도시사람이야말로 지역이기주의입니다. 도시에 지어야 할 발전소를 도시에는 ‘위해시설’이 들어서도록 하면 안 된다고 몽땅 시골에 몰아세우는 짓이 참말 지역이기주의입니다.


  그러나, 무슨무슨 이기주의입네 무어네를 떠나 생각할 일입니다. 우리는 왜 봄밤조차 후끈후끈 무덥게 보내야 하나요. 우리는 왜 전기를 이토록 펑펑 쓰는 도시에서 일거리를 얻으며 돈을 벌어야 하나요. 우리는 왜 살랑살랑 봄바람과 따슷따슷 봄햇살 누리는 좋은 숲자락을 어깨동무하지 못해야 하나요.

 


  집 둘레에서 아침노래 신나게 부르는 새들이 두 아이를 깨웁니다. 두 아이는 맑은 눈빛으로 잠을 깹니다. 두 아이는 저마다 예쁘게 웃으며 아침부터 놉니다. 햇살은 포근하고 바람은 보드랍습니다. 좋은 햇살 낮 동안 듬뿍 받으니 좋은 꿈누리에 살며시 접어들겠지요. 좋은 바람 낮 동안 실컷 받아들이니 좋은 꿈나라에서 훨훨 날아다니겠지요.


  다시마 세이조 님이 빚은 그림책 《쿨쿨쿨》(보림,2008)에 나오는 모든 목숨들이 햇살과 바람과 흙과 물을 골고루 누리며 서로 달콤하게 꿈나라에서 날개옷 입고 춤을 춥니다. (4345.5.20.해.ㅎㄲㅅㄱ)

 


― 쿨쿨쿨 (다시마 세이조 글·그림,보림 펴냄,2008.7.21./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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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집 2012-05-20 12:21   좋아요 0 | URL
다시마 세이조, 정말 좋은 그림책 작가여요. 사진으로 보니 좋네요.

파란놀 2012-05-21 11:19   좋아요 0 | URL
참 재미나며 아름답게 그림을 그릴 줄 아는 분이라고 느껴요
 

다른 데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고흥'으로 관광을 올 테지만, 고흥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이곳에서 '삶'을 누린다. 남녘땅 섬마을 돌아다니는 분은 무엇을 보고 느끼며 이렇게 책을 엮으려 할까. 그러고 보니, 고흥 시골마을에서 사는 동안, 촬영기와 사진기를 들며 마을을 도는 사람을 더러 본 듯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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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문화 답사기 : 여수, 고흥편- 孤島의 일상과 역사에 관한 서사
김준 지음 / 서책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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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 쓰고 싶은 글, 더 읽고 싶은 책

 


  두 아이 잠들었을 때, 글 한 줄이라도 더 쓰고 싶다. 두 아이 새근새근 꿈누리를 날아다닐 때, 책 한 줄이라도 더 읽고 싶다. 그러나, 색색 소리내며 깊이 잠든 아이들이 뒤척이며 아버지를 부른다. 예쁘게 잠든 아이들이 기저귀에 쉬를 하든, 자다가 쉬가 마렵다 하든, 또 곁에서 아버지 손을 잡거나 품에 안겨 자고 싶다 하든, 아버지를 부른다. 나는 모처럼 한갓지게 글을 쓰거나 책을 읽을 수 있네 하고 마음을 놓다가도, 못내 아쉬운걸 하고 생각하지만, 이내 이 마음을 접는다. 아버지인 내가 쓰는 글은 너희들 손을 가만히 쥐며 이마로 흘러내리는 머리칼을 쓰다듬는 삶인걸. 아버지인 내가 읽는 책은 너희들 작은 몸뚱이를 구석구석 주물러 뭉친 데 풀어 주면서 곱게 목소리 가다듬어 자장노래 부르는 삶인걸. (4345.5.20.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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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마친 빨래
마당에 널자
생각하는데

 

눈 발갛게 졸린
둘째 아이
엉금엉금

 

너부터 재워야겠네
기저귀 살펴 갈고
가슴에 눕히며
나도 눕는다

 

자장 자장 코코 자장
예쁜 아기 잘도 잔다
코코 자고 배꼽 자고
또또 먹고 또또 놀자

 


4345.4.20.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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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으로 보는 눈 182 : 고향이 되는 책

 

 

  2006년에 처음 나온 《열네 살의 철학》(민들레)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일본 푸름이 가운데 30만 남짓 이 책을 읽었다고 합니다. 뭐 그리 대단하기에 그리 많이 읽는가 생각하다가는 그만 이 책을 잊은 채 여러 해 흐릅니다. 지난날을 돌이켜봅니다. 나는 2006년 3월에 이 책이 나올 무렵 삶터를 옮겨야 했습니다. 이무렵부터 책짐을 싸서 이듬해 봄에 새 삶터로 옮겼지만, 혼자 책짐을 꾸리고 새 삶터를 알아보러 다니느라 이무렵 갓 나온 이 책은 끈으로 친친 묶인 채 한 해를 넘겼고, 새 삶터로 옮긴 뒤에도 끈에서 좀처럼 풀리지 못하다가 또 두 차례 더 삶터를 옮깁니다. 느긋하게 책을 펼칠 겨를 없이 하루하루 보냈어요. 이제 우리 식구는 고즈넉한 시골마을에 기쁘게 집을 얻어 지내기에 다시는 책짐을 꾸리지 않아도 되리라 생각합니다. 자그마치 여섯 해만에 《열네 살의 철학》이라는 책을 ‘갓 나온 책’으로 삼아 읽습니다.


  “나와 인류 전체는 다른 게 아니기 때문에 내가 좋아지지 않으면 인류는 좋아지지 않는 거야(170쪽).”라든지 “부모님은 일을 하기 위해 사는지, 아니면 살기 위해 일하는지, 과연 어느 쪽일까(131쪽)?”라든지 “관념이 현실을 만들지, 현실이 관념을 만드는 건 결코 아니야(92쪽).”라든지, 천천히 밑줄을 그으며 찬찬히 되새깁니다. 사람들이 쓰는 말은 어떻게 해서 태어났을까를 생각해 보자(40쪽)는 대목도 가만히 생각해 보면서 내가 오늘 적바림하는 글 한 줄에는 어떠한 사랑과 꿈이 깃드는가를 되새깁니다.


  아이들이 아버지를 부르는 소리를 듣습니다. 아버지더러 ‘책 그만 읽’고 ‘저희랑 같이 놀’자고 합니다. 책을 덮습니다. 아버지라고 책만 읽는 사람이 아니라, 이른새벽부터 늦은밤까지 너희랑 복닥이고 또 너희 밥을 먹이고 또 너희 옷을 빨고 또 너희 잠잘 집을 치우고 또 너희 누릴 온갖 것 건사한다며 땀흘리다가, 등허리 두들기며 살짝 허리 펴자면서 이렇게 몇 분쯤 책을 쥘 뿐인데, 요만큼이나마 봐주면 안 되겠니, 하는 말이 슬며시 새어나려다가 맙니다. 새삼스레 이런 말 한 마디 다시금 돌아봅니다.


  아이랑 손을 잡고 달립니다. 아이를 안고 간지럼 피웁니다. 같이 노래하고 같이 풀내음 맡습니다. 아이들 모두 가까스로 재우고 나서 살짝살짝 넘기던 《어머니전》(호미,2012)에 나오는 이 나라 섬마을 어머니들 삶이 떠오릅니다. 《어머니전》을 쓴 강제윤 님은 섬마을에서 만나는 할머니(어머니)들한테서 얘기를 찬찬히 듣고는 책 하나로 갈무리했는데, 어느 섬마을을 찾아가든 “이제는 할머니가 스스로 고향이 되었다(39쪽).”고 느낀다는 생각자락을 적바림합니다. 그래, 이런 말마따나 우리 식구들은 ‘아버지네 어머니랑 아버지’하고 ‘어머니네 어머니랑 아버지’를 뵈러 먼먼 마실을 다닙니다. 아이들 할머니랑 할아버지는 아이들을 보려고 먼먼 길을 기꺼이 찾아오십니다. 내 어머니와 옆지기 어머니는 당신 스스로 ‘고향’입니다. 나와 옆지기는 우리 스스로 아이한테 ‘고향’입니다. 그리고, 내 아버지와 옆지기 아버지한테 우리 집 두 아이는 ‘또다른 고향’이 됩니다. 먼먼 길 고단히 달려오면서 싱긋 웃을 수 있습니다. 먼먼 길 바쁜 틈 쪼개어 찾아오면서 맑게 노래할 수 있습니다. (4345.5.20.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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