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야, 제비야 - 봄나무 자연 그림책 1
윤봉선 그림, 이상대 글, 원병오 감수 / 봄나무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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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229

 


내 삶을 이루는 선물
― 나야, 제비야
 윤봉선 그림,이상대 글
 봄나무 펴냄,2005.4.5./11000원

 


  전라남도에 두루 눈발이 흩날린다고 하는 날, 고흥에도 눈발이 듣기는 하지만, 새벽녘부터 눈소리가 빗소리로 바뀝니다. 밤새 지붕에 소복소복 쌓인 눈은 아침부터 천천히 뜨는 햇볕을 받으며 차츰 녹고, 지붕에서 녹는 눈은 처마를 타고 주르르 흘러 물소리를 냅니다. 한겨울에 듣는 ‘떨물’ 소리란.


  한국 곳곳에 골고루 눈송이 펑펑 쏟아진다고 하는 날, 고흥에도 더러 눈발이 날리기는 하지만, 으레 빗방울이 떨어지곤 합니다. 한겨울에 맞이하는 톡톡 지붕 때리는 빗방울 노랫소리란.


.. 지지배배 지지배배. 문을 열어 봐. 우리가 왔어. 들녘에는 꽃도 피고 나비도 날고 온통 봄이야. 와아, 제비꽃도 피었네. 그래, 우리는 꼭 이맘때쯤 돌아와. 음력으로는 삼월삼짇날 무렵이야 ..  (2쪽)


  네 식구 살아가는 고흥 시골집에서 밥을 먹고 잠을 자며 이야기를 나눕니다. 옆지기와 나는 도시

에서 태어나 자랐으나, 우리 둘은 도시를 보금자리로 여기지 않고, 씩씩하게 시골로 삶자리 옮겨 지냅니다. 우리 아이한테 선물할 삶을 생각하니, 시골에서 살아야 하는구나 싶었습니다. 누구보다 옆지기와 나 스스로, 서로한테 선물할 삶을 돌아보면, 아이에 앞서 어른인 우리부터 시골에서 살아야 하는구나 싶었어요.


  맑은 볕을 쬐고 싶고, 밝은 빛을 누리고 싶으며, 시원한 바람과 물을 마시고 싶어요. 싱그러운 풀을 만지고, 고운 꽃을 쓰다듬으며, 우람한 나무를 껴안고 싶어요. 그러니, 나는 식구들이랑 시골에서 살아갈밖에 없어요. 밤에는 별빛과 함께 자장노래 부르고 아이들 재우며 즐겁습니다. 낮에는 파랗게 눈부신 하늘을 올려다보고 아이들과 콩콩콩 뛰놀며 기쁩니다.


  나한테 선물하는 삶입니다. 내가 일구는 삶이란, 내가 나한테 선물하는 삶입니다. 내가 사랑하는 삶입니다. 내가 누리는 삶이란, 내가 사랑하는 삶입니다.

 

 


  돈이 적어 살림이 쪼들린대서 내 삶이 슬프지 않습니다. 돈이 적을 때에는 돈이 적은 대로 내 삶을 야무지게 건사하며 즐거이 누릴 수 있어요. 돈이 많대서 내 삶이 기쁘지 않아요. 돈이 많으면 많은 대로 이웃사랑을 펼치며 지낼 텐데, 돈이 많을 때에는 ‘돈이 없어 살림 요모조모 따지며 꾸리는 맛’을 누리지 못해요. 돈이 적을 때에는 살림을 조이느라 버겁다 하니까, ‘느긋하게 돈으로 무언가를 장만해서 선물하는 일’은 거의 못해요. 그러나, 돈이 없으면 돈이 없을 뿐, 나한테는 다른 것이 많이 있어요. 먼저, 씩씩하고 튼튼한 내 몸이 있습니다. 몸과 마음이 아파서 힘든 나날을 보내지만, 곧은 넋과 얼로 하루를 일구려는 옆지기가 있습니다. 언제나 새힘 북돋우며 개구지게 뛰노는 두 아이가 있습니다. 우리 네 식구는 돈으로는 헤아릴 길 없이 아름다운 사랑을 누립니다. 그리고, 돈이 없으니 ‘돈으로 무언가 사서 선물’하지는 못하는데, 나한테는 글을 쓸 힘과 슬기가 있어, 정갈한 종이에 정갈한 글씨로 시 하나 적어 이웃한테 예쁘게 드립니다.


  나한테 돈이 없어 아이들 옷을 사 주는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 내 둘레 이웃들은 우리 살림을 들여다보며 틈틈이 아이들 옷을 보내 줍니다. 돈은 없으나 이웃들 사랑을 즐겁게 받으며 아이들 옷을 기쁘게 입히는 나날을 누려요.


  그러고 보면, 네 식구 시골에서 살아가기에 봄마다 한껏 푸른 잎사귀를 누립니다. 우리 식구는 아직 풀이름 꽃이름 잘 모릅니다. 어떻게 보면 굳이 풀꽃 이름 외우려 하지 않아 모른달 수 있습니다. 들마실을 하다 어여쁜 꽃을 보면 사진으로 곧잘 찍지만, 늘 ‘참 예쁘구나.’ 하고 생각하며 지나갑니다. 들놀이를 하며 싱그러이 빛나는 풀을 보면 으레 톡톡 뜯거나 끊어서 먹습니다. 간장이나 된장으로 버무려서 먹기도 하지만, 날로 냠냠짭짭 씹어서 먹어요.


  우리 식구 뜯어먹는 풀이 어떤 풀인지 잘 몰라요. 그러니까, 사람들이 부르는 이름은 모릅니다. 그저 혀로 풀을 헤아리고 몸으로 풀을 느끼며 마음으로 풀을 생각합니다. 이 풀은 이런 맛이니 나중에 이 풀을 보면 ‘이야, 여기 이런 맛 풀이 있네.’ 하고 반갑게 인사합니다.


  그리고, 우리 네 식구 고흥 시골마을에서 살아가기에 봄이면 처마 밑으로 찾아드는 제비를 만납니다. 봄날 푸른 들판을 가득 채우며 날아다니는 제비떼를 바라보며 ‘너희 가운데 누가 우리 집에 깃들까?’ 하고 마음이 부풀어올라요. 암제비 숫제비 두 마리 부산스레 날며 춤을 추다가는 우리 집 처마를 저희 보금자리로 삼아서, 흙과 짚을 물어다가 둥지를 추슬러 깃을 들이는 모습을 보고는, 입이 헤 벌어집니다. 예쁜 벗님아, 올해에도 찾아오는구나, 하고 노래를 부릅니다. 면소재지로 마실을 가도, 또 읍내로 나들이를 가도, 고흥에서는 어디에서나 제비를 만나고 제비집을 보며 제비집에서 꺅꺅 울며 어미를 찾는 새끼 제비들을 봅니다.

 

 


.. 다들 어찌나 먹성이 좋은지 몰라. 모기, 메뚜기, 벼멸구, 잠자리 같은 벌레를 잘 먹는데, 이런 먹잇감에는 농사를 해치는 벌레가 많아서 농부 아저씨들이 우리를 참 좋아하시지 ..  (19쪽)


  윤봉선 그림과 이상대 님 글이 어우러진 그림책 《나야, 제비야》(봄나무,2005)를 읽습니다. 한국에서는 거의 사라졌다고 여길 만한 철새인 제비인데, 제비를 기리는 그림책 하나 빚어 주어 무척 고맙습니다. 내 어릴 적을 돌이켜보면, 나는 인천에서 나고 자랐어도 인천에서 제비를 늘 보았어요. 나는 1991년까지 인천에서 제비를 보았다고 떠올립니다. 그러나 요즈음에는 인천에서든 또 서울에서든, 경기도에 크게 들어서는 커다란 도시에서든, 제비 보기 매우 힘들겠지요. 제비는 ‘둥지를 틀 때에 쓸 흙과 짚이 없는 도시’에서는 둥지를 못 트니까요. 게다가, 논과 밭이 없으면 제비 먹이가 없어요.


  도시는 사람이 백만이나 천만씩 모여서 살아갈 수 있다고 하는데, 막상 도시는 제비 한 마리 깃을 들이지 못해요. 도시에는 참새나 까치나 비둘기도 함께 살아간다지만, 도시에서 참새와 까치와 비둘기는 ‘삶벗’으로 살아가지 못해요. 도시사람은 도시에 깃든 새를 못마땅하게 여기거나 지저분하다고 여겨요.


  그림책 《나야, 제비야》를 읽을 서울 아이들은 제비를 어떻게 바라보면서 맞아들일 수 있을까요.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만 학교를 다니거나 일자리 얻어 살아간다면, 참말 제비 볼 일이 없을 텐데, 그림책으로만 제비를 보면, 제비를 이녁 삶에 어떤 벗님으로 여길 수 있을까요. 제비를 그림책으로 만나는 아이들은 얼마나 예쁜 꿈과 사랑을 가슴에 씨앗 하나로 심을 수 있을까요.


  사람들 누구나 스스로 선물하는 삶을 누리면 아름다우리라 생각합니다. 사람들 누구나 저마다 꿈과 사랑을 주고받는 삶을 빛내면 아름다우리라 생각합니다. 가만히 보면, 봄마다 찾아오는 제비는 우리들이 꿈과 사랑을 잊거나 잃지 않으면서 활짝 웃음노래 부르라는 이야기벗 아닌가 싶습니다. 4345.12.29.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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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페 일기 첫 권을 보며, 이들은 틀림없이 2권 3권 꾸준히 내놓으리라 느꼈는데, 참말 2권에 이어 3권도 나오는구나. 재미있게 잘 살면서 사진이야기 예쁘게 꾸미는구나. 참 예쁜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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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페 일기 3- 행복이란, 분명 이런 것
모리 유지 지음, 권남희 옮김 / 북스코프(아카넷)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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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에서 2012년으로 넘어서며

내 나름대로 세운 여러 가지를

얼마나 이루었을까.

 

서재지수를 본다면... 40만을 코앞에 두고

2012년에 40만을 넘기지 못한다. 이궁.

 

마이리뷰는 1400꼭지를 코앞에 두고

이 또한 2012년에 채우지 못한다. 흠.

 

마이페이퍼는 2013년에 곧

4000꼭지를 넘기겠지. 으음.

 

그래도,

이만큼 달렸으면 잘 달렸다.

잘 했어.

너 으뜸이야.

 

흠... 남사스럽지만

내가 나를 칭찬해 보고 싶다.

아...

 

2013년 다짐.

서재지수 : 60만 넘겨 보자

마이리뷰 : 2000꼭지 넘겨 보자

마이페이퍼 : 6000꼭지 이루어 보자

 

돌아보면, 2013년에는 100자평 같은 짧은 리뷰 없이

온통 '꽉 채운 느낌글(서평)'로만 500꼭지 가까이 썼으니

나도 참 잘 했다고 생각한다.

 

아무튼, 2015년이나 2016년에는

서재지수 100만을 이룰 수 있으려나...

내 걸음은 참 더디지만,

내가 보기에도 꾸준해서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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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집 마실 설거지

 


  이웃집에 마실을 간다. 집들이를 하는 이웃은 손님들한테 이것저것 차리느라 부산하다. 즐거우며 고맙게 밥을 얻어먹고는 밥상을 슬쩍 돌아보니, 빈 그릇 제법 보인다. 밥상에서 빈 그릇 좀 날라 부엌 개수대에 놓는다. 그러고는 조용히 물꼭지를 틀어 설거지를 한다. 설거지거리는 이 말고도 많으나, 사이사이 조금씩 빈 그릇 설거지를 하면, 그동안 이 그릇들 물기가 말라 치우기도 수월하고, 새로 그릇을 써야 할 때에 쓰기도 좋다.


  그런데 이런 설거지이든 저런 밥차림이든, 이웃집이든 동무집이든, 2013년을 며칠 앞둔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런 집일 저런 집살림을 ‘사내’들이 먼저 나서서 하는 모습은 거의 찾아보지 못한다. 집안 아이들도, 집안 어른들도, 사내들은 으레 엉덩이가 무거워 방바닥에 눌러붙고, 가시내들은 ‘사내보다 엉덩이가 더 큰’데도 엉덩이가 가벼운지(?) 쉬지 않고 일어나서 무엇을 나르고 무엇을 차리고 무엇을 하고 …… 끝이 없다. 4345.12.29.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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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사람 얼굴

 


  요 며칠 여러 가지 일이 잇달아 나한테 찾아온다. 왜 찾아올까 하고 곰곰이 생각하며 찬찬히 뿌리를 찾고 짚다가 문득 한 가지 깨닫는다. 내 삶 어느 한 자락이라도 뜻없는 대목이 없는데, ‘군 면제 대상’이던 내가 ‘4급 현역’이 되어 군대에 붙들려 들어가서 보낸 스물여섯 달은 여러모로 내 뒷날 삶을 톺아보도록 북돋우는 길이 되기도 했구나 싶다. 이제껏 못 느낀 한 가지 일이 있는데, 나는 강원도 양구 깊디깊은 멧골에서 지낼 적에, 이곳까지 끌려온 ‘내 또래 군인’들 얼굴을 오늘이 되어서야 비로소 알아챈다. 도시에서 태어나 살다 온 또래들 얼굴빛과 시골에서 태어나 살다 온 또래들 얼굴빛이 다르다. 도시에서 살았어도 시골스러운 넋인 또래들이랑 시골에서 살았어도 도시스러운 넋인 또래들 얼굴빛이 다르다. 내가 다시 만나고프다고 생각하는 ‘군대 적 동무들’을 돌아보면, 모두 ‘두멧시골에서 태어나 흙을 만지며 살다가 군대로 끌려온 아이들’이다. 두멧시골에서 흙을 만지던 내 또래들이 그무렵 열아홉 스물 스물한 살인데, 더할 나위 없이 아늑하고 느긋하며 사랑스러운 얼굴빛이었다. 어쩜 그럴 수 있었을까. 어쩜 여태껏 이를 못 알아채고 살았을까.


  내 낯빛에 그늘이 드리우거나 찡그린 고랑이 생길 적을 떠올린다. 이때에는 어김없이 나 스스로 ‘흙을 안 만진 나날’이 좀 길기 일쑤이다. 내 낯빛에 웃음꽃이 피거나 맑은 기운 퍼질 적을 떠올린다. 이때에는 어김없이 나 스스로 ‘늘 흙을 가까이하며 만진 나날’이기 일쑤이다.


  마을 들길을 걷는다든지, 집 언저리를 돌며 풀을 훑어 밥상을 차린다든지, 자전거 몰며 아이들과 이웃마을 돌아다닌다든지, 이럴 적에 내 얼굴빛은 내가 느끼기로도 환하고 사랑스럽다.


  그래, 내가 반기고 좋아하는 이웃은 시골사람이다. 나 스스로 살아가고픈 내 모습은 ‘시골사람’이다. 시골에서 스스로 사랑하는 삶을 일구는 사람이 되기. 바로 내가 꿈꾸는 ‘어른이 되고 싶어요’는 이런 뜻이었네, 하고 오늘 아침 즐겁게 깨우친다. 4345.12.29.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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